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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크리스천

by 【고동엽】 202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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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크리스천 행10:9-23, 갈3:28 08/07/13 인터넷설교 부분 녹취
*원제목 : "유숙하게 하니라"

 

 

 

▲‘거룩한 공회’란 ‘보편적 교회’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할 때, ‘거룩한 공회를 믿으며...’ 고백한다.

‘거룩한 공회’란 라틴어>영어로 ‘catholic church, 보편적 교회’란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가톨릭교회’를 뜻하므로,

개신교에서는

그 비슷한 말인 ‘universal church, 보편적 교회’로 바꾸어 부른다.

(catholic이나 universal이나 단어의 뜻은 똑같다. ‘보편적’이란 뜻)

 

결국 ‘보편적 교회’라는 말뜻은,

국적, 혈통, 신분, 사상, 이념, 문화, 지역, 학력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들이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데 어우러지는 교회를 뜻한다.

 

우리가 매 주일 사도신경으로 ‘거룩한 공회(보편적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는 '보편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요,

무엇보다도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나 자신이

'보편적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의 표현이다.

 

▲왜 이 땅의 모든 교회는 ‘보편적 교회’가 되어야 하고,

이 땅의 모든 크리스천은 ‘보편적 크리스천’이 되어야 하는가?

 

그 해답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년에 이 땅에 계실 때,

그렇게 사는 모범을 먼저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비천한 갈릴리의 어부들,

인간으로 취급조차 받지 못했던 더러운 창녀들,

가난한 과부 등 사회 저변 층과 함께 어울리셨는가 하면,

 

이와 반대로 지체 높은 산헤드린 공회원들,

부자들,

세금을 징수해서 축적한 세리들,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무력투쟁을 불사하는 열심당원들까지도

모두 함께 품고 어울리셨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예수님 주위에는

수구, 보수파로부터 시작해서 진보파를 넘어 급진파까지

모든 계층과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총 망라되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셨지만,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특정 계층에 소속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사람들의 '위에' 계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삶의 배경과 신념이 제각각 다른 그 많은 사람들을

당신의 생명과 진리로 한 사람씩 배려해 주실 수 있으셨고,

 

그 이질적인 각각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진리 안에서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생각과 신념을 차츰 교정해 가면서

그리스도안에서 모두 한 데 어우러지는 보편적인 교회를 이루고

보편적인 크리스천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보편적 교회>정신으로 살았던 베드로 사도

베드로 역시 주님을 본 받아, 자신은 정통 유대인이면서도,

기꺼이 가이사랴의 로마인 백부장 고넬료의 집을 방문했다.

<보편적 교회>정신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은 유대인만의 예수님이 아니요,

유대인과 이방인을 초월하여 그 위에 계신

<보편적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이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교회를 대표하는 대 사도가,

욥바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한 것도,

당시 부정不淨하고 낮은 (한국의 백정 같은) 사회계층과도 기꺼이 어울린 것도,

<보편적 교회> 정신이 그에게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보편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가 지난 몇 년 동안 애써서, 양화진 선교사 묘역도 새로 정비하고,

교육관도 새로 건립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우리가 교회의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사실 이런 것은, 재정과 뜻만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우리가 참된 교회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보편적 교회>가 되어야 하며,

우리 각자가 진정한 <보편적 크리스천>으로 살아가야 한다.

바로 이것이 참된 믿음의 시발점이요, 과정이요, 동시에 종착점이기 때문이다.

 

▲쇠고기 수입파동의 이면

좌파 정권 10년 만에, 우파 정권이 들어선 이래

우리사회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계의 추가 좌우를 왔다갔다 하면서 시간이 나아가는 것처럼

진보와 보수가 공생하고 상생할 때에만

이 나라의 역사가 진전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좌파와 우파들은, 서로 철천지원수처럼

매사에 서로 대립하고, 충돌하고, 싸우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서 촉발된 ‘촛불집회’로 인해

온 사회가 대립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쇠고기 수입을 빌미로 한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다.

 

안타까운 것은, 종교인까지도 거기에 가세해서

대립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보편적 교회>

크리스천들 가운데 ‘진보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보파’의 선봉장으로 간주한다.

강도의 소굴로 전락한 성전의 장사치들을 몰아내실 때의 예수님은

진보주의자를 넘어 과격 혁신주의자처럼 보인다.

 

반면에 ‘보수주의자’들에게 예수그리스도는 보수주의자로 투영된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며 세금 납세를 명하신 예수님은

체제순응적인 수구 보수주의자로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실 진보도, 보수도 아니셨다.

예수님께서는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위에' 계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공의를 구현하시면서도

그 이질적인 모든 사람들을 한 데 아우러실 수 있으셨고,

 

당신의 생명과 진리로 그들의 극단적 생각을 교정시켜 가시면서

그들이 모두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게 만드시는

진정한 <보편적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보편적 크리스천>

교우여러분 중에,

혹시 ‘진보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행동하시는 분이 계시는가?

그럴지라도 <진보주의자>가 되지 마시라!

 

혹시 ‘보수적 기조’위에서 판단하고 행동하시는가?

그럴지라도 <보수주의자>가 되지 마시라!

 

진보주의자나 보수주의자가 되어서는

절대로 참된 크리스천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참된 크리스천은 <보편적 크리스천>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보주의자든, 보수주의자든

어떤 ‘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신념이나 이념을 <절대화>하는 것이기에,

 

그때부터 자신의 생각은 절대로 ‘교정’될 수 없고,

자신과 다른 진영의 사람을 ‘배려’할 수 없고,

오직 상대진영을 '제압'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그래서 무슨 ‘주의자’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고, 심화될 뿐

사회통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모두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위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보편적 크리스천>으로 살아가자.

그 분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자.

 

그 때 우리는 우리와 다른 모든 사람들을 한 데 아우르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베드로같은,

이 시대의 진정한 <보편적 크리스천>이 될 것이고,

우리 교회는 이 사회를 통합시키는 진정한 <보편적 교회>가 될 것이다.

 

<08.07.13. 인터넷 설교에서 부분 녹취 [주제별 분류] 기독교 사상

출처 : 냉수 한 그릇
글쓴이 : 김지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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