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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얻는 회개 행11:18 설교 녹취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 함이라 행11:18
◑‘골고다’에서 죽으신 특별한 이유
▲골고다의 의미
골고다는 예수의 십자가가 세워진 언덕이다.
‘골고다’는 번역하면 ‘해골’이란 의미다. 요19:17
왜 그 언덕이 ‘해골’이라고 불려졌을까?
-그 언덕 모양이 해골처럼 생겼다는 설이 있다.
-예로부터 그 언덕이 사형집행장으로 사용되어져 왔기 때문에,
언덕 여기저기에 해골들이 나뒹굴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하나님께서 최초로 창조하신 아담의 무덤이 그 언덕위에 있었고,
바로 그 아담의 유골이 그 언덕에서 발견되었다는 설도 있다.
어떤 설이 정확한지는, 우리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예수의 십자가가 해골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그 광경을 ‘믿음의 눈’으로 한 번 바라보자.
해골 언덕이 있다.
그 해골의 정수리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그 십자가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피가 아래 해골로 흘러내린다.
그 피가 사망을 상징하는 해골언덕(골고다)을 적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흠뻑 젖은 해골이,
그 생명을 힘입어... 소생한다. - 이것이 복음이다.
<죽음과 생명이 대비되고 있습니다.>
성경 66권을 단 한 컷의 영상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해골, 그 죽음의 정수리에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생명>이다.
죽음의 덫에 갇힌 모든 인간은, 사실은 해골과 같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죽음을 이기는/깨뜨리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5~26
◑프쉬케 와 조에
헬라어에는 ‘생명’을 나타내는 두 단어가 있다.
▲1. 프쉬케 - 인간 육체의 생명
자기의 생명(프쉬케)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프쉬케)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요12:25
-안 믿는 사람들은 자기 생명(목숨)에 집착하며 살게 되어 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프쉬케)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바울은 자기 생명(목숨)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어쨌든 ‘생명’이라 번역한 위의 성경구절은
‘프쉬케 - 육체적 생명, 인간의 목숨’을 뜻한다.
▲2. 조에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뜻한다.
우리말로는 다 똑같은 ‘생명’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 원문에는, 그 의미에 따라 구별되어 사용되고 있다.
①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조에) 얻는 회개를 주셨다 함이라 행11:18
②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5~2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4:16
위 구절에서, 겉사람은 프쉬케에, 속사람은 조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은, 자기 육체가 쇠퇴하고 늙어가는 것에 대해 조금도 낙심하지 않았다.
자신의 ‘프쉬케’가 쇠퇴해 가는 것과 반비례해서,
자기 심령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조에’가 날로 더 새로워졌기 때문이다.)
◑‘조에’(영원한 생명)를 얻는 길
▲그렇다면 예수 안에 있는 그 참된 생명인 조에를 어떻게 얻을 수 있나?
- 그것은 바로 <생명 얻는 회개>를 통해서이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조에) 얻는 회개를 주셨다 함이라 행11:18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에(영원한 생명)를 얻는 관문이다.
※생명 얻는 회개는, 직역하면 ‘생명을 향하는 회개’라는 뜻이 된다.
▲회개란?
회개는 입이나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입으로 자기 죄를 뉘우치고 고하는 것을, 성경은 ‘자백, 자복’이라고 말한다.
회개는 그것들과는 좀 다른 뜻이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메타노이아)는 <돌아선다. 방향을 바꾸는 행동>을 의미한다.
죽음(골고다)을 향하여 질주하던 인간이
그 죽음의 삶으로부터 ‘조에를 향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돌아서는 것’이
바로 회개이다. ※생명을 향하는 회개 행11:18↑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해골인 자기 정수리에,
십자가를 세우고,
그 십자가에서 타고 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에(생명)를 향해
자기 삶의 방향을 회개(바꾸는)하는 것이다.
바로 그 때, 예수 그리스도의 조에가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는 것이다.
▲전기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내가 전기 스위치를 올리면, 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해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는 이미 우리 집 안방까지 와 있다.
그런데 내가 스위치를 올릴 때, 비로소 전기가 들어오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주신 ‘생명 얻는 회개’. 즉 ‘회개를 통해 얻는 생명’은
이미 선행적으로 주어져 있다. (즉, 우리 집 안방까지 와 있다.)
그런데 내가 전기 스위치를 올려야 하듯이,
내가 회개할 때, 즉 삶의 방향을 바꿀 때, 그 생명이 비로소 내 삶에 흘러들어오는 것과 같다.
▲베드로나 바울이 위대한 것이 아니다.
이미 선행적으로 주어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조에)을 얻기 위해
그들이 회개한 것뿐이다. 삶의 방향을 바꾼 것뿐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적자들이 되었을 뻔했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기 삶에 흘러 들어오자
그들은 놀랍게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 ‘생명’(조에)을 사방 천지에 흘러 보내는 위대한 통로가 되었던 것이다.
오늘 당신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흐르고 있는가? 통로가 되었는가?
당신은 회개한 사람이다.
◑100년 전 대부흥 당시의 회개
▲1907년 당시 부흥의 모습
옥성득 교수의「한반도 대부흥」에서는, 당시의 회개 운동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죄의 회개에서 시작된 신앙운동은, 게으름과 거짓, 주색잡기 등의 그릇된 습성을 버리고
축첩과 반상(양반상놈)차별 등의 악습을 철폐하며, 노비를 해방하는 등
기독교 윤리의 실천을 자극했고,
이를 통해 한국의 봉건사회를 개혁하는데, 큰 동력이 되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회개는 입이나 말로 한 회개가 아니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돌아서는, 삶의 회개를 한 것이었다.
게으르던 인간이... 변해서 근면한 사람이 되고
거짓으로 먹고 살던 사람이... 거짓을 청산하고
주색잡기, 첩을 두었던 사람이... 거기서 벗어나고
어제까지 상놈이라고 폄하하던 사람을, 자기와 같은 양반으로 대접해 주는 것,
재산목록 제1호인 노비문서를 불태워버리고, 자기 노비를 해방시켜 주는 것,
이 모든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사회 풍속 상 맨 정신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크리스천들은 참 회개를 실천했다.
▲어떻게 이런 일(회개)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자신들에게 임해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에(생명)앞에 비추어 볼 때
그동안 자신들이 당연한 듯 집착해왔던 삶은..
송장/해골/죽음 같은 삶이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의 삶을 미련 없이 벗어던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돌아서는 삶의 회개를 했다.
그들은 자기 정수리에 십자가를 세우고,
십자가를 통해 내려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에를 향해
삶의 방향을 바꾸는, 돌아서는 회개를 실천했다.
1907년 평양대부흥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에(생명)가 역사한 부흥이었다.
죄악된 인간들이, 그 참 생명 앞에 섰을 때, 그 생명의 가치를 깨닫고,
자신의 죄악의 추함을 파악하고, 그 생명을 향하여, 자신의 삶의 진로를 바꾸었다.
골고다, 해골의 삶으로부터 돌아섰던 것이다.
▲입으로만 회개는 안 됨, 삶의 방향을 돌아서야!
오늘날 우리는, 설교하는 저를 포함해서, 회개를 입으로만 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더 원인을 찾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조에(생명)앞에
철저하게 자신을 맞딱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 앞에 나아가면, 죽음(해골, 골고다)을 벗어던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 중에 많은 이들이, 아직도 죽음(골고다)의 삶을 더 귀하게 여긴다.
방향을 돌아서기는커녕, 돌아설까봐 걱정이다.
영원한 생명(조에)을 향해서.. 살아가야할 터인데
육체적 생명(프쉬케)을 향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달려간다.
회개는, 프쉬케에서 조에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을 바꾼 사람만, 진정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다.
▲사순절은 회개의 기간
이 사순절 기간동안 확실한 회개의 사람들이 됩시다.
해골 같은 삶을 버리고,
해골 같은 내 인생의 정수리에 십자가를 세우고
그 십자가에서 타고 흘러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에를 향해
우리 삶의 방향을 회개하십시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조에(생명)의 역사가 충만할 때
이 땅에는 회개와 부흥의 역사가 다시 일어날 것이다.
▲내가 변화되는 만큼만 변화된다.
우리 가정도, 일터도, 공동체, 사회도.. 내가 변화되는 만큼만 변화된다.
나의 변화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조에(생명)로만 가능하다.
<09.02.22. 인터넷설교 녹취, 요약 *원제목 : 생명 얻는 회개를 ▣ 죄, 복된 회개
1. 요약 Summary
행 11:18의 “생명 얻는 회개(조에를 향한 회개)”를 중심 주제로 삼아,
사람은 영적 의미에서 ‘해골(죽음)’과 같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임할 때만 참 생명(조에)이 주어진다고 설교는 강조한다.
회개는 단순한 자백이 아니라 **삶의 방향 전환(메타노이아)**이며, 죽음(프쉬케 중심의 삶)에서 생명(조에 중심의 삶)으로 방향을 돌이키는 실제적 행동이다.
1907년 대부흥은 이런 ‘삶의 회개’가 실제 사회 변화를 일으킨 대표적 사례이며,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회개가 요청된다.
해골 같은 삶의 정수리에 십자가를 세우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향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생명 얻는 회개”의 핵심이다.
2. 묵상 포인트 Meditation Points
- 나는 여전히 프쉬케(육적 삶)에 집착하고 있는가?
조에를 향한 회개가 있는가? - 내 삶의 정수리에는 지금 무엇이 세워져 있는가?
십자가인가, 아니면 세속적 욕망인가? - 회개는 말뿐이 아니라 방향 전환이다.
내 삶의 실제적 행동 중 무엇이 바뀌었는가? - 예수의 생명은 이미 내 삶의 문 앞까지 와 있다.
나는 스위치를 올렸는가? (회개했는가?) - 1907년처럼 나의 회개는 사회적·윤리적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3. 강해 Exposition
1) 해골 언덕(골고다) — 죽음 vs 생명
- 골고다는 ‘해골’이라는 의미를 가진 장소이며, 죽음의 상징이다.
- 예수의 십자가가 해골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 자체가 죽음 위에 임한 생명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 피가 흘러 해골을 적시고 해골이 살아나는 이미지는 복음의 핵심을 상징하는 절정적 장면이다.
2) 성경의 두 생명 — 프쉬케와 조에
- 프쉬케: 육체의 목숨, 자기 보존, 본능, 세속적 집착
- 조에: 예수 안에서 얻는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생명
- 요11:25~26은 죽음(프쉬케의 끝)을 넘어서는 조에를 선언한다.
- 고후4:16의 ‘겉사람’과 ‘속사람’은 프쉬케와 조에의 대비로 이해할 수 있다.
3) 생명 얻는 회개 — 메타노이아
- ‘회개’는 단순한 감정, 눈물, 자백이 아니라
메타노이아—방향 전환, 삶의 진로 변화이다. - 죽음을 향해 가던 삶(골고다의 삶)에서 십자가의 생명(조에)을 향해 돌아서는 것이 회개다.
- 생명은 이미 주어져 있으나, 회개라는 “스위치”를 켤 때 그 생명이 실제로 흐른다.
4) 회개의 역사적 증명 — 1907년 평양 대부흥
- 당시 회개는 단순 신앙 열정이 아니라 실제 삶의 변화를 가져왔다.
- 거짓·게으름 버림
- 축첩 폐기
- 양반/상놈 차별 철폐
- 노비 해방 등
- 이는 조에가 임할 때 사회 전체가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5) 현대의 교회를 향한 경고
- 오늘날의 회개는 입술의 회개가 많다.
- 조에의 광채 앞에 자신을 정직히 맞대지 않기에
여전히 ‘해골의 삶’을 더 귀하게 여기며 회개를 두려워한다. - 진짜 변화(부흥)는 나 자신이 변화될 때 시작된다.
4. 주석 Commentary
행 11:18 “생명 얻는 회개”
- 직역: “조에에 이르게 하는 회개.”
-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시는 은혜이며,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이 주도하는 생명적 회개를 의미한다.
- 이방인에게 동일하게 주셨다는 선언은 구원의 보편성(universal grace)을 선포한다.
요 12:25
- “자기 생명(프쉬케)을 사랑하는 자는 잃고...”
- 프쉬케에 집착하는 삶은 결국 소멸한다는 경고.
행 20:24
- 바울의 “프쉬케조차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고백은
조에 중심의 삶을 선택한 회개의 결과.
요 11:25~26
- 부활과 생명(조에)은 예수의 속성, 존재 자체이다.
- 죽음은 조에를 가진 자에게 더 이상 최종 권세가 아니다.
5. 자료 노트 Study Notes
- 회개 = 메타노이아:
방향 전환. 마음과 행동을 포함하는 총체적 변혁. - 골고다의 신학:
죽음(해골)에 생명이 임함 →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구속사적 상징. - 이미 주어진 구원 VS 실천:
“생명은 이미 안방까지 와 있다.”
(개혁파 구원론의 ‘선행 은혜’와도 일치) - 평양 대부흥의 특징
- 죄의 깊은 각성
- 공동체적 공개 회개
- 사회 개혁적 열매
- 조에가 지역 전체에 흐른 사건
- 오늘날의 교회 문제
입술의 회개 → 실제 방향 전환 없음 → 부흥 없음.
6. 원어정리 Original Language
| 생명(육적) | ψυχή psyche | 호흡, 생명, 목숨, 자기 보존 욕구 |
| 생명(영적) | ζωή zoe | 하나님의 생명, 참되며 영원한 생명 |
| 회개 | μετάνοια metanoia | 마음·방향의 변화, 삶의 방향 전환 |
| 부활 | ἀνάστασις anastasis | 일어남, 다시 일어남 |
| 구원 | σωτηρία soteria | 구출, 생명 보존, 영적 구원 |
7. 금언/핵심 문장 Maxims
- “회개는 말이 아니라 방향이다.”
- “프쉬케에 머물면 죽음이지만, 조에로 돌아서면 생명이다.”
- “십자가는 해골 위에 세워졌고, 그 피는 죽음을 생명으로 만든다.”
- “생명은 이미 우리 문 앞까지 와 있다. 스위치를 켜라.”
- “1907년 부흥은 삶이 변한 회개가 만든 기적이었다.”
- “내가 변화되는 만큼만 가정도 공동체도 변한다.”
8. 예화 Illustrations
■ 골고다 예화
해골 언덕의 정수리에 세워진 십자가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죽음을 적시고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이미지는, 복음 전체를 한 장면에 담은 것과 같다.
■ 전기 스위치 예화
전기는 이미 집까지 와 있으나 스위치를 올릴 때 빛이 들어오듯, 생명은 이미 주어졌으나 회개의 스위치를 켜야 그 생명이 흘러든다.
■ 평양 대부흥 예화
노비 해방, 양반/상놈 차별 철폐, 축첩 폐기 등은 회개의 실제 변화가 사회적 영향을 미친 대표적 증거다.
9. 주제별 정리 Thematic Categories
① 생명(조에)의 본질
- 예수의 속성
- 죽음을 이기는 생명
- 영원한 삶
② 프쉬케 vs 조에
- 프쉬케: 자기 중심, 본능, 소멸
- 조에: 하나님 중심, 영원, 변화
③ 회개(메타노이아)
- 자백과 구별
- 삶의 방향 전환
-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동
④ 골고다 신학
- 해골 = 죽음
- 십자가 = 생명
- 죽음 위에 세워진 생명
⑤ 부흥의 조건
- 진짜 회개
- 죄를 미워함
- 삶의 전환(행동 변화)
- 사회적 영향력
⑥ 현대 교회의 문제
- 입술의 회개
- 조에 앞에 서지 못함
- 변화 없는 신앙
⑦ 개인의 적용
- 자기 정수리에 십자가 세우기
- 조에의 흐름을 막지 않는 삶
- 내가 변화되는 만큼 가정·직장·교회가 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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