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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과 신뢰와 경배의 삶(마 4:1-11 ) / 이수영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7.

<순종과 신뢰와 경배의 삶> 마4:1-11

새문안교회 주일예배

 

설교 : 이수영 목사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에게 제일 먼저 있었던 일은, 본문 1절에 따르면,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광야로 가셔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는 이 사실을 두고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인류구원의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거치셔야 할 필수적인 준비단계 또는 메시아로서의 자격을 검증 받기 위한 당연한 과정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이 생각에 우리는 반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셔야 했는가? 예수님께서 마귀와의 시험을 거치지 않으신다면 인류를 구원하시기에 그 능력이 부족하실 것이었다는 말인가? 하나님께서 미리 테스트를 해보시지 않고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마음이 안 놓이셨었다는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사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시험을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꼭 같은 인간이셨지만 죄만은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는 마귀의 유혹에 빠지거나 하나님 앞에 범죄할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은 다른 어떤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인간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범죄함으로써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될 때가 왔으며 그 일을 이루려 당신께서 오셨음을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려는 마귀의 모든 의도가 이제는 당신 앞에서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시기 위하여 마귀를 부르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마귀 스스로 확인해볼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봅니다. 마귀에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당신까지도 무너뜨려 볼 기회를 세 차례나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것도 스스로 40일간 주야로 금식하심으로써 사람이 마귀에게 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상황까지 만들어주시며 마귀에게 당신을 한 번 이겨보라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사실은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귀가 예수님에게 시험을 받은 것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그의 모든 시험에 실패하고 물러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일은 흔히들 생각하듯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기 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일 자체가 그의 공생애의 시작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공생애전체의 결과로서 주어질 마귀와 이 세상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결정적 승리를 앞당겨 선포하신 놀랍도록 통쾌한 행위였다고 봅니다.

 

 

 

이 예수님의 행위는 의미심장한 상징성을 띄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가 예수님을 무엇으로 시험했는지를 살펴보면 잘 드러납니다. 우리는 마귀가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넘어뜨린 시험을 예수님에게도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이겼던 마귀에게 예수님께서는 같은 시험으로 패배를 안겨주신 것입니다.

 

 

 

첫 번째 시험이 무엇이었습니까? 3절에 보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4절에 있는 대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다소 동문서답적인 데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문서답 같이 들리는 예수님의 대답들은 언제나 예수님께서 문제의 핵심을 곧바로 찌르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이 대답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속아넘어간 마귀의 간계가 무엇이었는지를 우리에게 적시하는 말씀입니다. 마귀의 간계는 허기를 채우거나 식욕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아담과 하와의 욕구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귀의 의도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단순히 선악과를 먹게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만드는 데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경우에 있어서도 예수님의 극심한 허기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무너뜨리고자 접근한 마귀의 간계를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대답하심으로써 원천적으로 봉쇄해 버리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에게 그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함으로써 하나님나라를 상실하게 했지만 당신께는 그것이 안 통할 것임을 미리 밝히신 말씀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간계를 그렇게 분쇄하심으로써 이제 그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인간에게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무너뜨리려는 마귀의 두 번째 시도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려는 것이었습니다. 5-6절을 봅니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께서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셔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실 것이라 하지 않았느냐. 정말인지 아닌지 한 번 뛰어내려봐라" 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의 신실성에 대한 예수님의 믿음을 흔들어 보려는, 그래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시험하게 만들려는 간계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꿰뚫어보셨습니다. 그래서 7절에서 보는 대로 간단명료하게 대답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첫 번째 시험을 물리치실 때 예수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대답하셨기 때문에 간교한 마귀는 이번에는 "기록되었으되 ..."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 하며 유혹을 시도한 것에 대해 예수님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받아치신 것입니다: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무너뜨리려는 두 번째 마귀의 시도를 그렇게 무력화시키심으로써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17)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기보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3:4)는 마귀의 말에 더 귀기울인 불신의 죄를 대신 이기시고 인간에게 다시금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키시는 역사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두 번째 시도도 실패하자 마귀는 예수님을 무너뜨리려는 마지막 시도를 감행했습니다. 8-9절을 봅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운 시도도 실패하자 마귀는 이번에는 아주 대담하고 노골적인 유혹을 한 것입니다.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이라는 미끼로 유혹하여 하나님을 버리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께만 돌려져야 할 경배를 하나님 아닌 존재에게 돌리게 함으로써 하나님과 같은 존재를 또 하나 만들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5) 하는 말로 아담과 하와를 속여 하나님이 아니면서도 하나님과 같이 되어보려는 교만의 죄에 빠지게 했던 마귀의 간계와 통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응수가 무엇이었습니까? 10절에서 보는 대로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라"는 말씀과 "다만 그를 섬기라"는 말씀이 함께 주어지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된 하나님 경배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꼭 10년 전 일본에 학회 참석차 갔을 때 일본에서 제일 크고 유명하다는 신사를 구경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는 정말 귀신 섬기는 본산지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일본사람들 중에는 하루에 아침 낮 저녁으로 교회에도 가고 신사에도 가고 절간에도 가는 겹치기 신앙인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예수 믿는 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경배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겹치기 신앙인들은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도 있고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 사이에도 있습니다. 대학입시 때가 가까워지면 새벽에는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 드리고 낮에는 성당에 가서 기도하고 저녁에는 절간이나 산에 가서 또 촛불 켜놓고 비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장로라 하면서도 사찰마다 좇아다니며 불상 앞에서 합장하고 머리 조아리며 연등 달아주고 후원금 내고 다니는 정치인들이 그런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뿐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치관과 바램 속에서 재물이든 명예든 쾌락이든 하나님 외의 다른 어떤 것을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두는 것은 다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높은 산으로 올라가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이며 예수님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돌려보려던 마귀의 술책을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말씀 한 마디로 간단히 수포로 돌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마귀를 물리치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현혹하며 억누르고 있던 죄와 마귀의 권세로부터 이 세상을 해방시키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는 그의 구원사역의 문을 힘차게 여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승리하신 것은 그의 공생애 시작 전의 일이 아니라 바로 그 공생애의 힘찬 출발이었습니다. 공생애의 사역을 위해 자신을 연단시키는 준비가 아니라 그 공생애가 성취할 바를 마귀에게 예고하신 것이었습니다. 즉 마귀와 그 사악한 권세에 대한 선전포고였으며 마귀의 패망과 하나님나라의 회복과 도래를 예표한 대단히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일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상실한 원인이 무엇이며, 바른 하나님나라 삶의 도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무너뜨리고 하나님나라의 회복을 무산시키려는 마귀의 세 차례의 시도에 대응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셋째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만을 섬기는 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자리를 드리고 그 앞에서 인간의 자리를 지키는 겸손입니다. 교만이 불신을 낳았고 불신이 불순종을 낳은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상실하게 한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범죄와 그 비극의 출발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죄를 물리치시고 그 비극을 걷어내심으로써 우리에게 하나님나라를 회복시켜주시는 상징적 행위를 그의 구원사역의 첫 출발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영원히 즐기며 살 하나님나라 백성들의 삶임을 분명하게 우리에게 선포하시며 가르치신 것입니다.

 

 

 

본문 마지막 절인 11절에 보면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마귀와 멀어지고 천사들이 지키며 인도하는 삶이 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만을 경배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먹는 것이든 마시는 것이든 입는 것이든, 건강하고 안전하게 몸을 지키는 것이든 천하만국을 소유하고 그 영광을 누리는 것이든, 그 어떤 것이든 하나님과 같은 비중을 우리의 생각과 삶 속에서 지니는 것은 이미 우리가 순종과 신뢰와 경배의 삶으로부터 떨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불신과 교만과 불순종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의 복된 삶을 잃어버린 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순종과 신뢰와 참된 경배의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순종과 신뢰와 경배의 삶으로 하나님나라를 소유하고 향유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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