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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열매를 감사(롬 6:15-23) / 이철신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6.

거룩한 열매를 감사
로마서6:15-23


추수감사절이 교회의 명절이 되고, 또 교회 명절이 국가적인 명절이 된 것은 미국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국교도들에게 핍박을 받아 더 이상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화란으로 피해 갔다가 다시 또 신대륙 미국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메이플라워호라는 배를 타고 미국으로 피난을 갔는데, 벌써 배에서부터 사람이 죽기 시작해서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병들고 반 이상이 죽었습니다. 또한 미국에 도착해서 푸른 꿈을 가지고 애를 써서 농사를 지었는데 흉년으로 인해 고통을 겪었습니다. 새로운 땅에 와서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될지 어떠한 작물이 잘 자라는지 이런 것들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통을 겪게 되었을 때에 청교도들은 금식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해에도 흉년이 들고 농작물이 잘 안 되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금식기도를 하고 또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같이 모여서 대화를 하고 의논하던 중에 그들이 사고를 전환하기로 했습니다. 사고를 전환했다는 것은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영어로는 ‘Paradigm Shift’라고 하는데, 이제껏 가지고 있던 생각을 완전히 전환해서 바꾸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농작물 경작이 잘 안되었던 어려움만을 바라보고 고민했지만, 이젠 생각을 바꿔서 우리가 이런 어려움 중에 있지만 우리가 감사할 일이 무엇인지 감사할 일에 초점을 맞추기로 작정했습니다. 유럽에서 살아갈 때보다 식량도 적고 생활 여건도 나쁘고 환경도 나쁘지만 그러나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았는데, 가장 중요했던 감사의 조건은 신앙의 자유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자유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넓은 땅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여기서 우리가 노력하고 애를 쓰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바라보고 금식하는 대신 그런 어려움 중에서도 감사할 제목을 찾아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게 된 것이 추수감사절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1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을 우리가 감사해야겠지만, 그것보다 더 근본적으로 감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신앙적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감사를 해야겠습니다.






오늘 17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라는 말씀으로 감사해야 될 조건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여러 가지 말씀이 요약된 것이 22절 말씀입니다. 그래서 17절 말씀과 22절 말씀을 연결해서 읽어본다면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약을 해 본다면, 감사할 제목이 세 가지인데, 첫째는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었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I. 신분 바뀜을 감사.


1. 죄의 종(16a)


우리가 근본적으로 감사할 제목의 첫번째는 우리가 죄의 종으로서의 삶으로부터, 의의 종으로 우리의 신분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종’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종에 대해서 별로 잘 알지 못하고 이해를 못합니다만 바울 당시에는 종에 대해서 너무나 잘 이해했습니다. 바울 당시의 큰 도시는 인구가 한 60만 정도가 된다고 하면, 한 20만은 자유민이고 40만은 종이었다고 합니다. 한 5만 정도 되는 도시라면, 1만 명이나 1만 5천명 정도가 자유민이고 4만 명이나 3만 5천명 정도는 종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유민 보다는 노예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여러분 종이란 주인의 소유물입니다. 인간이긴 하지만 자기 생각과 뜻대로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주인의 소유물이어서, 주인이 지배하고 다스리고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죄의 종’이란 무엇입니까? ‘죄의 종’이란 죄가 나의 주인이 되어 나를 지배하고 다스리고 죄가 시키는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죄의 종’입니다. 인간의 죄악 된 본성과 죄악 된 탐욕이 지배하고 다스려서 그것이 시키는 대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죄의 종’입니다.






2. 17-18절 말씀은 우리가 본래 죄의 종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탐욕과 본능의 지배를 받는 죄의 종이었습니다. 죄의 습관에 젖어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전심으로 순종하게 되었을 때에 죄의 종에서부터 의의 종으로 우리의 신분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죄의 종’과 ‘의의 종’ 사이에는 중간적인 장소가 없습니다. ‘죄의 종’이든지 ‘의의 종’이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죄’든지 ‘의’든지 둘 중 하나를 섬겨야 합니다. 양자택일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3. 18절과 20절에는 우리가 죄에게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으면 의의 종이 되고 그 반대로 의에게서 자유를 얻으면 죄의 종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죄의 종과 의의 종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죄의 종에서부터 자유를 얻으면 의의 종이 되는 것이고, 의의 종에서부터 자유를 얻으면 죄의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4. 여러분,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라나서 교회에서 줄곧 생활했는데 교회의 여러 가지 규율과 규칙이 나를 억압하는 것 같이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이런 규율과 규칙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여러 가지 말씀으로부터 자유 하게 되는 순간, 그 때부터 죄의 종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타락하게 되고, 신앙적으로 방종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의에서 해방되면 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서부터 해방되어 자유해서 의의 종이 되어야만 합니다.






5. 한 아이가 가출을 했습니다. 집에 있으면 부모님들이 자꾸 잔소리하고 간섭이 많으니깐 부모님의 잔소리와 간섭에서 벗어나서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가출했습니다. 부모의 집에서 벗어 났습니다. 오락실에 가서 하루종일 오락을 하는데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오락실에서 큰 형을 한 사람 만났습니다. 그런데 형이 오락하라고 돈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본드도 주고…즐겁기가 그지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그 형이 돈을 벌어오라고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껌 들고 나가서 돈을 벌어오고, 돈을 적게 벌어왔다고 매 맞고, 먹을 것이 없어서 도둑질을 하고 살아가는 고통스럽기 그지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엉뚱한 사람에게 사로 잡혀서 종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신분이 바뀌어서 의의 종이 된 것입니다. 죄의 종이 되었을 때는 늘 불안하고 초조한 가운데 삶을 살아갔는데,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신분이 바뀌어서 의의 종이 되어 평안과 기쁨 가운데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의 종에서부터 해방되어 의의 종으로 신분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II. 거룩한 삶을 감사.


두 번째로 우리가 감사할 제목은 의의 종이 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1. 죄의 종


1) 죄의 종일 때 우리는 지저분하고 더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방종하고, 방탕하고, 무질서한 삶을 살았습니다. 죄악 된 본능이 시키는 대로, 죄악 된 욕심이 시키는 대로, 타락한 삶, 깨끗치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재미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가운데 쾌락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방탕하고 더러운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2) 모든 일에는 결과가 있기 마련입니다. 열매를 맺게 마련입니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21).


죄의 종으로서, 죄악 된 욕망과 탐욕이 시키는 대로 삶을 살면, 그 결과 부정적인 열매를 맺게 되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21). 모든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기도 하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진작 우리의 죄를 고백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은 괜찮지만 마지막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종으로 삶을 살아가게 되면 이렇게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의의 종


1) 그러나 의의 종으로 삶을 살아가면, 자기의 모든 삶을, 자기 육체를 ‘의’에 헌신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고 성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19b). 의로운 삶, 성화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겉으로 볼 때는 재미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쾌락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갑갑해 보입니다. 답답해 보입니다.


2) 그러나 의의 종으로 선하고 의로운, 깨끗한 삶을 살아가게 되면, 거룩한 열매를 맺습니다(22). 여러분,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화된 삶을 살아감으로써 거룩한 열매를 많이 맺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바라볼 때 얼마나 우리가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까? 그 주위에는 의로운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됩니다. 이렇게 거룩한 삶을 살아갈 때에 그 속에 진정한 기쁨과 평화가 있게 됩니다.


저는 이번에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다닌 지역을 성지순례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경을 볼 때에 지명과 기사가 나오면 쉽게 읽었던 부분들이 실제로 현장에 가서 사도 바울이 지나간 자리, 또 사도 요한이 기도하고 사역한 자리를 쭉 돌아볼 때에 성경에 있는 것들이 결코 쉬운 일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먼 길을 걸어서 다니면서 배고픔과 매맞음과 감옥에 갇히는 등의 고초 속에서 복음을 전한 사실을 보고, 내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것이 그렇게 값싼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많은 희생과 고통 속에서 복음이 전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유익하고 은혜로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이 지금 회교국이 되었습니다. 그 나라의 인플레가 얼마나 심한지 미국 돈 1달러가 그 나라 돈으로 150만 리라입니다. 화장실 한번 가는 것도 전부 돈을 받습니다. 그곳에서 밥 먹고, 과자 사 먹어도 화장실은 별도로 돈을 내고 사용해야 합니다. 화장실 한번 가는데 25만 리라를 내야 합니다. 한번은 아침에 식사를 하러 나와서 주스를 한 잔 마셨습니다. 보통은 빈 잔에 내가 주스를 따라 먹는데, 보니까 문간에 주스를 만들어서 잔에 따라 놓은 것이 몇 개 있었습니다. 저는 ‘이 집이 오늘은 참 친절하구나’ 생각을 하고 반쯤 마셨는데 돈을 받으러 왔습니다. 얼마냐고 하니 400만 리라라고 합니다. 테이블에 네 사람이 그것을 마셨는데 네 명이 마신 것을 계산하니까 1600만 리라입니다. 그래서 제가 농담으로 이거 주스 몇 잔 마시면 전세방 빼야겠다는 농담을 했습니다. 회교는 신앙생활 하는데 몇 가지 규칙들을 만들어서 회교도들이 그것을 지키도록 합니다. 하루에 다섯 번 기도를 합니다. 새벽, 정오, 낮, 저녁, 밤에 정규적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 시간이 되면 거리의 대형 스피커에서 경을 읽는 소리가 들리고 사원에 와서 기도하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또 제가 성지순례 하던 기간 중이 마침 라마단 금식기도 기간이었습니다. 1달 동안 금식하는 기간입니다. 그런데 해가 있을 때만 금식하는 것입니다. 해가 없을 때 먹고, 해 있을 때 금식하는 것입니다. 밤에 잠을 자는데, 새벽 3시 반경이 되니까 북을 둥둥 치면서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해가 뜨면 밥을 못 먹으니까 해가 뜨기 전에 밥을 먹으라고 깨우는 것입니다. 다니다 보니까 오후 5시가 되가니까 상점에 일하는 사람들이 음식을 차리느라 부산해요. 그래서 왜 저렇게 음식을 차리느라 바쁠까 궁금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5시가 되니까 기도하라고 고성능 스피커에서 경 읽는 소리가 들리는데 기도하러 갈 생각은 하지 않고 그때부터 밥을 먹기 시작합니다. 그 소리가 이제부터는 밥을 먹어도 된다는 신호인가 봅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이 종교가 완전히 형식적인 종교이구나, 하나님 앞에서 나의 결단이라든지 내가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결단보다는 규율을 가지고 사회적인 억압을 통해서 형식을 지키는 종교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내가 기독교인이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내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누가 나한테 억압하고 규율을 주지 않아도 내가 하나님 앞에서 내 스스로 자유스럽게 신앙생활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는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여러분 금년 한해동안 신앙생활 해 나갈 때에 의의 종으로서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아갔나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만족스럽지는 않지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내 스스로 자유스럽게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늘 나아가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의의 종으로서 한 해 동안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III, 영생을 감사 (v.22b, 23)


1. 세 번째로 우리가 감사할 것은 영생 얻은 것을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23절 말씀을 보시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죄의 종으로, 죄악 된 본능과 탐욕의 지배를 받고 살면 부끄러운 열매를 맺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죄악 된 삶을 살아가면 죄의 삯,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23a). 죄악 된 삶은 재미있고 즐거워 보이나, 그러나 부끄러운 열매를 맺게 되는 삶이 될 수 밖에 없고, 최종적으로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영원한 멸망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의의 종이 될 것이냐, 죄의 종이 될 것이냐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죄의 종을 선택하게 되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그 마지막 대가는 영원한 멸망, 영원한 사망입니다.






2. 그러나 의의 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와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삶을 살아가게 되면, 거룩한 열매를 맺게 되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선물을 주십니다. 그 선물은 영생입니다. 여러분, 영생이 무엇입니까? 영생은 하나님 앞에서 영원토록 영광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 영원토록 평안과 기쁨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영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미래가 어떤 미래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미래가 하나님께로부터 영생의 선물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서 영광된 삶을 영원토록 누리를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결 론.


여러분, 우리가 감사할 제목 세가지가 오늘 본문에 주어졌습니다. 물질이 얼마나 늘었느냐 줄었느냐, 소유가 얼마나 늘었느냐 줄었느냐, 환경이 얼마나 좋아졌느냐 나빠졌느냐 보다는 더 근본적인, 본질적인 감사의 제목이 오늘 본문 말씀가운데 나옵니다.


첫째로는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우리의 신분이 바뀐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었는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의의 종으로 그 신분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의의 종으로서 부끄러움 없이 삶을 살아가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서 우리의 영적인, 신앙적인 수준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영생 얻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죄의 종으로 삶을 살아가면 결국 사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인데, 의의 종으로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영생의 선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영생의 선물을 받아서 우리 하나님 앞에서 영원토록 영광된 삶을 누리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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