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자에게도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5
저는 주일마다 예수님의 말씀을 중 심으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 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고 있습 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다 귀하지만 그 중에서도 요즘 우리들이 공부하 고 있는 말씀을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고 귀한 말씀이라고 하여 산 상보훈이라고 한다는 사실은 여러분 들도 다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이 말씀에 귀를 기우리시고 집중하 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 욕심을 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과 상반된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안타까워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자신의 삶을 이 말씀 에 일치시키시기 위하여 애쓰고 노 력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심령이 가난하지 못하여 아직도 쓸 데없는 욕심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안타까워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사는 것 이 자신에게 화가 될 줄을 알고 두 려워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 고 힘써 세상 욕심을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위하여 진심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간 절한 기도를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 다. 죄를 밥먹듯 하면서도 그것이 아프지 않고 괴롭지 않는 자신을 염 려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암이나 에이즈에 걸린 것처럼 염려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죄에 민감하여 죄 가 아픈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하 나님께 정말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 랍니다. 저는 지난 주 '애통하는 자 는 복이 있다'하신 말씀을 설교하면 서 제가 아직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 있는 사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습 니다. 제가 애통하는 자의 복을 받 지 못했다 라는 사실을 정말 뼈아프 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정 말 제가 그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열 심히 기도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 도 아직 이와 같은 복을 받지 못했 다면 저와 함께 그 복을 받기를 위 하여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하려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산상보훈의 세 번 째 말씀으로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예수님 이 팔복 중에 하나로 말씀하신 '온 유함'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온유 함이란 성격적인 유약함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더더군다나 줏대 없 음에서 오는 연약함을 이야기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 는 온유함은 엄청난 삶의 훈련과 연 단을 통하여 세상의 많은 역경과 고 통을 인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 람만이 나타낼 수 있는 덕목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약한 자는 온유할 수 없습니다. 강하고 실력이 있는 사람만이 온유할 수 있습니다. 강하 고 실력이 있는 사람 중에 두 종류 의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 는 교만한 사람이요 또 다른 하나는 온유한 사람입니다. 실력에 사랑이 더 하여지면 온유한 사람이 되고 실 력에 사랑이 더하여지지 아니하면 교만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온 유한 사람은 실력에 사랑을 더한 완 전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약한 사람 중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허세를 부리며 강한 척 하는 사람이요 둘째는 비굴하여 온유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입니다. 저들은 강한 자에게 온유하나 자기 보다 약 한 자에게 절대로 온유하지 않습니 다. 그러므로 그것은 진정한 온유함 이 아닙니다. 온유함은 강함에서만 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온유 함은 엄청난 훈련과 연단을 통하여 얻게 된 실력과 강함에서부터 나오 는 진정한 의미의 온유함입니다. 그 것은 참으로 팔복 중에 들어갈 중요 한 복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 복을 사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온유한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온유함 을 지니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 니다. 세상에 온유함처럼 강한 것은 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온유 함을 나약함으로 착각하지만 온유함 은 나약함이 아닙니다. 진정한 강함 은 강함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진정 한 강함은 부드러움에서 나옵니다. 모든 강하고 딱딱한 것은 죽음의 부 류입니다. 나무는 살아있을 때 부드 럽습니다. 휘어집니다. 그러나 죽으 면 딱딱해 집니다. 장작이 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있을 때는 부드럽습니다. 그러나 죽으면 즉시 딱딱해 집니다. 사람도 장작같 이 됩니다. 물은 부드럽습니다. 그러 나 세상에 물보다 더 강하고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만 흐릅니다. 물은 낮은 곳으 로만 흐르지만 언제나 대해를 이룹 니다. 낮은 곳의 물은 대해를 이루 지만 높은 곳의 물은 보잘것없는 실 개천을 이룰 뿐입니다. 그것은 우리 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유함과 겸손함을 갖춘 사람은 큰 대해(大 海)같은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온유 함과 겸손함을 갖추지 못하고 늘 교 만하여 자기를 높이려고 하는 사람 은 작고 보잘것없는 실개천 같은 사 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 중에 모세만 큼 큰 일을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 나님께서 이와 같은 선지자가 없다 고 하실 만큼 모세는 크고 능력 있 는 지도자이었습니다. 모세가 그렇 게 큰 능력의 사람이 되게 된데 에 도 온유함이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 습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보면 '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 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는 말씀이 있 습니다. 지면의 그 어떤 사람보다 승했던 그의 온유함이 그를 그처럼 크고 훌륭한 지도자가 되게 한 것이 었습니다. 우리는 시편 18편 35절에 서도 그와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편 18편 35절에는 '주 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를 정말 크고 강하게 하는 것이 온유함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삭개오를 변화시킨 힘은 예수님의 온유하심이 었습니다. 삶에 대한 깊은 회의와 갈망을 가지고 뽕나무에 올라간 삭 개오를 예수님은 꾸짖지 않으셨습니 다.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불 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가지시고 온 유한 음성과 눈빛으로 '삭개오야 내 려오라 내가 오늘 너희 집에서 유하 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온유하심이 삭개오의 온 삶을 뒤집 어 놓았습니다. 재산의 절반을 가난 한 자에게 내어놓고 토색 한 것을 네 배로 갚겠다고 자진해서 말씀했 습니다. 말로만 하는 입술의 회개가 아니라 진정한 회개를 삭개오가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너무 기쁘셔서 '이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오늘날 구원이 이 집에 임했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삭개오가 변하여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천지가 개벽하는 것만큼 어렵고 힘든 일 중 에 하나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의 온유하심이 그와 같은 개벽을 이 루어 놓은 것입니다. 지나가는 나그 네의 웃옷을 벗긴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뜻하고 온유한 태양이었다 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 다. 군인도 소위와 중위 그리고 대 위와 같은 위관급 장교를 용장(勇 將)이라고 부릅니다. 위관급 장교가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덕목은 용 기입니다. 그러나 소령과 중령 그리 고 대령과 같은 영관급 장교를 지장 (智將)이라고 부릅니다. 영관급 장교 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지혜입니다. 그러나 장군을 군대에서는 덕장(德 將)이라고 부릅니다. 힘과 용기를 생명으로 여기는 군대에서도 힘과 용기는 최고의 힘이 아닙니다. 그보 다는 지혜가 더 힘이 있고 지혜보다 는 덕이 더 힘이 있다는 것을 저들 도 알고 있습니다. 최고의 힘은 강 함에서 나오지 않고 온유함에서 나 온다는 것을 저들도 알고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하숙을 할 때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 한 마리가 상에 차려 놓은 생선을 물고 마루 밑으로 도망 을 하였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고 마루 밑으로 도망한 고양이에게 나 오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매를 맞을 까봐 나오지 않는 고양이를 한 시간 이상 불렀습니다. 나중에 할 수 없 이 나왔습니다. 자기 잘못을 아는 듯 기가 죽어서 겁을 먹고 나왔습니 다. 그 고양이 잡아서 품에 안고 야 단을 쳤습니다. 눈을 감고 꼼짝도 못하고 있는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매 맞을 각오(?)를 하고 있는 고양 이를 때리지 아니하고 꼭 한번 안아 준 후 말귀도 못 알아듣는 고양이에 게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 훈계(?) 한 후 땅에 내려놓았습니다. 그 날 로 저희 집 고양이가 거듭났습니다. 변하여 새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변하여 강아지가 되어버렸 습니다. 고양이는 본시 강아지처럼 사람을 따라 다니는 동물이 아닌데 우리 고양이는 그 날부터 강아지처 럼 제가 가는 곳마다 따라 다니는 강아지 같은 고양이가 되고 말았습 니다. 저는 그와 같은 일을 경험하 면서 삭개오가 변한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에 게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야만 땅과 세상과 사람들이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온 유한 사람은 자신의 실력과 힘을 자 신만을 위하여 사용하는 사람이 아 닙니다. 온유한 사람은 실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땅과 세상과 사람을 사 랑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 님은 그와 같은 사람에게 땅을 기업 으로 맡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사람으로 복의 근원을 삼으 십니다. 그에게 복을 주어 나라와 민족을 축복하려 하시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어 나라와 민족을 축 복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5 천명분을 혼자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니라 5천명을 먹이는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온유한 사람이 되기를 힘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은 온유한 사람에게 땅을 기업을 맡 기십니다. 사탄의 전략은 욕심 많고 사람과 세상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 람에게 땅을 기업으로 맡기는 것입 니다. 그래야만 땅과 세상이 화를 입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욕심 많 고 사람과 세상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땅을 차지함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지 모릅니다. 저들은 아주 힘이 있 고 강합니다. 그러나 저들은 온유하 지 않습니다. 교만합니다. 세상과 사 람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고 돈과 땅만을 사 랑합니다. 저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약한 자의 것을 착취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를 더 늘리는데 에만 온 힘을 다합니다. 세상은 점점 불공평 해지고 흉흉해 집니다. 땅을 차지한 사람들 중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 니다. 하나는 사탄의 지원을 받는 사람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지원을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는 교 만한 사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온유 하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하나는 세 상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세상과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많아져서 하나님으로부터 땅을 기업 으로 받는 사람이 많아져야 이 세상 이 좋은 세상이 됩니다. 땅을 욕심 으로 차지하지 아니하고 소명으로 받아 온유한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 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이 많아져야만 좋은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은 세상에 대하여 욕심이 없는 사람 을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하여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온유한 사람 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말 씀하고 계십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 는다는 것은 세상적인 말로 이야기 하면 부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 하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부자에도 두 종류의 부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세상적이고 인간 적인 욕심을 가지고 부자가 된 사람 이고 또 다른 하나님은 소명을 가지 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자가 된 사 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된다고 하여 무 조건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무조 건 부자는 심령이 가난하지 못한 사 람이라고 단정해서도 안됩니다. 온 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온유 하고 세상과 땅에 욕심 없는 사람이 땅을 정복하고 차지하여야만 합니 다. 욕심이 아닌 소명으로 땅을 차 지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도전해야 할 궁극 적인 목적은 세상 욕심 버리고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벼개하고 누워있 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버리고 소명 으로 땅을 정복하고 차지하는 것이 고 그와 같은 일을 통하여 세상과 사람들을 축복하고 섬기는 것입니 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온유한 사람되기를 힘쓰실 수 있기를 바랍 니다. 온유한 사람되기를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용기 있고 강한 사람이 되는 것도 필요합니다. 높은 사람이 되는 것도 물론 중요합 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고지를 정 복해야만 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 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약 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과 성실 함으로 실력을 갖추고 세상의 누구 보다도 강하고 실력 있는 사람이 된 후 예수님을 본 받아 교만하고 이기 적인 사람이 되지 아니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겸손과 온유 함으로 세상을 섬기고 사람들을 축 복하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 니다. 온유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 의 축복인 땅을 기업으로 받아 그것 으로 5천명을 먹이고 나라와 민족을 축복하는 삶을 사실 수 있기를 기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동 안교회 교인들 중에 그와 같은 복을 받아 그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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