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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
로마서 1:14-17
설교방송 (설교본문)
예배당 건축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제법 큰 건물을 지어 보았는데 건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기초공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초공사는 나중에 땅에 다 묻히게 됨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은 공사라고 소홀히 하게 되면 그 허술한 기초 위에 쌓은 모든 것이 다 흔들리게 되어 큰 손해와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급성장을 해 온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의 성장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리만큼 빨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아는 한국 말 중의 하나가 '빨리 빨리'라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모든 면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해 왔고 또 그것을 추구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빠른 성장을 추구하면서 우리가 소홀히 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초와 기본입니다. 기초와 기본은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기초와 기본을 소홀히 하기가 쉬운 법입니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경제와 기술 제일 주위로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기초와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는 문학과 철학 그리고 윤리와 같은 부분들을 소홀히 하고 등한히 한 것이 사실입니다.
1970년대 우리는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새마을 운동을 한마디로 평하라면 그것은 잘 살기 운동이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의 표어가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였습니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이었고 건강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무엇이 잘 사는 것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이해가 부족하였습니다.
새마을 운동의 잘 살기 운동은 경제적인 측면만이 강조되었습니다. 그것은 새마을 노래의 가사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마을길도 넓히고 초가집도 고치고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물론 초가집을 고치고 마을길을 넓히는 것과 같은 경제적인 부흥과 성장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그것만을 강조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해 보아야만 합니다.
초가집을 고치고 마을길을 넓히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로 잘 사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잘 사는 사회를 건설할 수 없습니다. 잘 사는 사람이 되고 잘 사는 사회를 건설하려면 그 보다 먼저 바르게 살고 정직하게 살아야만 합니다. 바르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의 기본과 기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 같은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무조건 경제적 성장만을 목표로 달려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어느 정도 70년대에 목표하였던 것들을 성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가집도 고쳤고 마을길도 넓혔습니다. 국민소득도 만 불에 이르게 되었고 아직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OECD에도 가입하여 선진국의 문턱도 넘어섰습니다.
개인소득 만 불까지는 정말 쾌속으로 잘 달려 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만 불을 넘어서면서부터 속도가 붙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공들여 잘 쌓아오던 이런 저런 탑들이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여러분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것이 바로 기초와 기본이 부실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0층의 건물을 건축하려면 10층의 건물을 버틸 수 있는 기초공사를 하여야 합니다.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그것을 생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생략하고 2-3층 정도 건물을 위한 기초공사를 하고 10층 공사를 한다면 10층 건물을 위한 기초를 튼튼히 하면서 건축을 하는 사람들보다 처음에는 빠르게 층수를 올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2-3층 정도의 기초를 하고 10층 공사를 할 수는 없습니다. 혹시 4-5층까지는 좀 위험하지만 버틸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6-7층까지 무리하게 공사를 하다보면 결국은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10층 공사를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10층 건물을 위한 기초를 튼튼히 한 사람은 처음에는 좀 더뎌 보여도 결국에는 그가 빠릅니다. 결국 그는 10층 건물을 성공적으로 건축하게 될 것입니다. 무너질 건물의 속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저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소득 2만 불, 3만 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에 전혀 관심 없습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국민 소득이 전혀 성장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국민소득 만 불 사회도 바르게만 움직여진다면 사는데 큰 문제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남에게 좀 뒤지는 것 같아도 한 10년 동안 그 동안 우리가 소홀히 하였던 국민과 사회의 기초와 기본을 튼튼히 하는 일을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10년 후 우리는 정말 건강한 성장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힘써 쌓아야 할 기초와 기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저는 정직함에서 오는 신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용이 있는 나라와 개인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그러나 신용이 없는 개인과 나라는 반드시 망합니다. 사람들은 절대로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한 두 번 속지만 계속 속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인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영적인 세상에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은 믿음으로 삽니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믿음과 신뢰가 무너진 사회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과 국가의 장래를 믿음에 걸 수 있어야만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믿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아무개는 믿을 수 있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하여도 반드시 성공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보통 성공이 아닌 아주 큰 성공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의인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저들은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얻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모양은 있으나 실속은 없습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사는 의인의 삶을 나무에 비유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풀에 비유하였습니다.
"악인은 풀같이 생장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시92:7)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시 92편 12절)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며 믿음을 경히 여기며 사는 사람들에게 신용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믿음이 없고 신용이 없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우리 민족이 다 정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만이라도 정직하여 믿음으로 살 수 있다면, 아니 그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절반만이라도 정직하여 믿음으로 살 수 있다면, 아니 그 절반의 절반만이라도 정직하여 믿음으로 살 수 있다면 이 사회가 이처럼 힘없이 맥없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높은 뜻 숭의교회 교인 여러분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살기 위하여 힘쓰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라고 평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살고 믿음을 위하여 사십시다. 그리하여 믿음의 축복을 받으십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사람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십시다. 그리고 힘써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보다 믿을만한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일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꾀로 살지 않고 법으로 살아야 합니다. 꾀를 부리면 잠간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믿음 즉 신용을 잃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 세상은 바보가 아닙니다. 우리가 꾀로 사는 사람인지 법으로 사는 사람인지를 다 압니다. 법대로 살면 손해를 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손해는 절대로 손해가 아닙니다. 손해를 보면서도 법대로 살기를 고집하면 손해 본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믿음 즉 신용을 얻게 됩니다. 신용을 얻게 되면, 믿음을 얻게 되면 그때부터는 영적인 일이든 육적인 일이든 정말 순풍에 돛을 단 듯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꾀와 요령으로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저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어 보여도 우직하게 법대로, 하나님의 법대로, 율법대로 사는 사람은 시냇가 심기운 나무 같게 되어서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앞의 이익을 위하여 꾀와 요령을 피우려는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는 교인이지 의인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원죄가 있어서 하나님의 식과 법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악인의 꾀와 요령을 신뢰하는 어리석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 어리석은 마음과 싸워야 합니다.
꾀와 요령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법과 식을 고집하다보면 많은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그것은 절대로 손해가 아닙니다. 보다 많은 이익을 위한 건강하고도 확실한 투자가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투자를 통하여 얻게 될 것은 믿음입니다. 신용입니다. 세상에 믿음과 신용보다 더 확실한 자본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업을 하세요. 물건 하나를 만들어도 최선을 다하여 정직하게 만드세요. 그리고 손해를 보아도 약속을 지키므로 신용을 얻으세요. 세상 사람들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믿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기도하며 자신과 세상과 싸우세요. 그리고 믿음으로 승리하세요. 그리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씀의 증인이 되어 주세요.
우리가 믿음을 위하여 살고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우리를 믿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믿어주시면 그날로 천국의 문이 열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이 땅에서 천국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제자들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대답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와 같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즉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고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믿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믿으실 수 없게 됩니다. 인생의 승부는 하나님의 신용을 얻는데서 결정됩니다. 하나님에게 믿음의 인정을 받게 되면 우리도 베드로와 똑같은 천국의 열쇠를 얻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백 원이나 천 원은 달라고 할 때 웬만하면 주었습니다. 그러나 만 원은 꼭 물어보고 주고 난 후에도 꼭 확인을 하였습니다. 만 원이 없어서도 아니요, 만 원이 아까워서도 아닙니다. 아직 아이들이 철이 없어서 돈 때문에 아이들이 잘못될까봐 조심하였던 것입니다.
어느 날 아이들이 제 차를 탔습니다. 아이들이 제 설교 테잎을 듣자고 하였습니다. 설교 테잎에서는 '저는 제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제 아이들이 제게는 귀합니다. 천하보다 귀하고 제 생명보다 귀합니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때 저는 괜히 캥기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꼭 '아이구 생명은 나중에 주시고 만 원이나 제 때 제 때 주시지...'라고 말 할 것 같았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만일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였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포항에 있는 한동대학교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멀리 있으면서 갑자기 돈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아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비자카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카드를 맏들어 준 후 한 일년 동안은 신경을 쓰면서 아이가 카드를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 쓰는가를 주시하였습니다. 아이가 만일 카드를 잘못 사용하여 저에게 신용을 잃게 된다면 아마 카드를 회수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아이는 그 믿음의 시험에 패스 하였습니다. 제 아이는 비자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때든지 카드만 긁으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꾀와 요령으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면 세상도 우리를 믿게 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믿으실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믿으시게 되면 하나님은 즉시 우리를 믿으시고 천국의 열쇠를 주실 것입니다. 옛날에 카드제도가 없어서 예수님은 열쇠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오늘날 말씀하신다면 아마 '천국의 카드를 네게 주리니'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큰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연 제 아이의 카드사용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큰 부자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카드사용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람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에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며 믿음을 가지고 살면 나만 손해라고 가르칩니다. 믿음과 신용이 없는 개인과 나라는 망할 나라와 사람입니다. 사탄은 있는 힘을 다하여 우리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믿음을 없이하기 위하여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없이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법대로 살지 아니하고 꾀와 요령을 좇아 살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높은 뜻 숭의교회 교인 여러분 믿음에 승부를 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법대로 살다가 보게 되는 손해를 과감하게 믿음에 투자하십시오. 그리하여 사람들과 하나님에게 인정받고 신뢰받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하나님으로부터 천국의 열쇠와 카드를 발급 받아 땅에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는 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의 기초가 무너진 우리 나라에 다시 믿음과 정직의 기초를 쌓아 가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보이지 아니하는 주춧돌이 되어 세상을 축복하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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