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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5:11 / 좋은 제자./ 김동호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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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제자.
눅 5:1-11.2005-11-06


다음 주일에 저희 교회는 장로, 집사, 권사 임직식을 갖게 됩니다. 장로 임직은 두 번째라고 할 수 있지만 집사와 권사 임직은 우리 교회가 생기고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에 참 기쁘고 감격스러우며 흥분이 됩니다. 그리고 솔직히 조금 두렵기도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첫 번 째 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첫 단추를 잘 끼우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번에 임직을 하시는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들이 어떠한 마음과 자세로 일을 하느냐가 나름대로 우리 교회의 전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틀림없이 우리 교회에 합당한, 그리고 우리 교회와 한국 교회를 축복할만한 좋은 인물들을 선출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다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이 마음에 들어 직접 뽑으신 제자 베드로의 모습을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 베드로의 모습을 통하여 좋은 제자의 모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저는 이번에 임직하시는 여러분들이 베드로와 같은 사람 되시기를 바라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이 설교를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다 베드로와 같은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사람을 외모를 보고 판단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우리는 하나님은 사람은 판단하시지 않으신다는 말씀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도 사람을 판단하십니다. 다만 우리들처럼 외모로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신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별 볼일 없는 하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명문 대학을 나온 적도 없고,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에게 베드로는 참으로 귀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예수님이 마음에 들어 하실 좋은 자질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하여 그와 같은 좋은 자질을 가진 분들이 교회의 일군으로 세워질 수 있기를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 15절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게 되는 것을 보거든 산으로 도망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지나친 확대 해석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원리는 똑 같습니다. 목사가 서야 할 자리에 좋은 목사가 서고, 장로가 서야 할 자리에 좋은 장로가 서는 것이 축복입니다. 집사가 서야 할 자리에 좋은 집사가 서고, 권사가 서야 할 자리에 좋은 권사가 서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볼 때 별로 좋지 못한 목사와 장로와 권사와 집사들이 교회의 일군으로 세워지는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과 거리가 먼 교회입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이번 임직에 관심이 많고 기대가 많습니다.

예수님이 마음에 드셔서 스카우트 하시다시피 뽑아 일군 삼으신 베드로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어떤 좋은 자질을 가졌기에 제일 먼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까요? 오늘 짧은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베드로의 좋은 제자로서의 자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에게서 발견되어지는 첫 번 째 좋은 제자의 자질은 작은 일에 성실함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는 때까지 밤새도록 그물질을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였습니다.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우리들의 눈으로 보면 무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능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에 눈에 베드로는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작은 일 하나에도 자기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을 귀히 보십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과 방식을 달란트 비유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 충성스러운 종들에게 한결같이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큰 것으로 네게 맡기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큰일을 잘 하는 어렵겠습니까? 작은 일을 잘 하는 것이 어렵겠습니까? 사람들은 작은 일을 잘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일을 잘 하는 것은 모두 쉽지 않습니다. 큰일은 우리의 능력이 따르지 못해 잘 하기가 쉽지 않고, 작은 일은 우리의 마음이 따르지 못해 잘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작은 일은 누구나 마음먹으면 잘 할 수 있지만 그런 마음을 먹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해봐도 별로 드러나지 않는 작은 일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큰일을 잘하는 것은 야망 때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일을 잘하는 것은 야망이 아니라 소명감 때문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적인 야망 때문에 일하는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보시지 않으십니다. 크던 작던 상관하지 아니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좋은 일군이라고 생각하십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위기는 소명감을 가지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일군들보다 야망을 가지고 자신의 명예나 성취감을 위하여 일하는 일군들이 많아지면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그와 같이 우리 교회 안에서도 나타나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우리도 사람들이 모인 교회이기 때문에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장로로 임직하시는 분들은 장로로 임직하는 것이 집사 권사로 임직하는 것보다 명예롭게 여겨지는 것과 싸워야 합니다. 듣기는 쉬우나 실제로 그런 마음을 갖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번에 집사와 권사로 임직하시는 분들은 집사와 권사로 임직하는 것이 장로로 임직하는 것보다 낮아 보이고 하찮아 보여서 자존심 상해하는 마음과 싸워야 합니다. 설마 그런 마음을 가질까 싶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라면 그런 마음을 갖기가 쉽습니다. 교회와 자신을 위하여 싸워야 할 것입니다.

인간적인 야망으로 임직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대한 소명과 그 소명에 대한 충성으로 임직하시는 임직자들이 되실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에게서 발견되어지는 두 번 째 좋은 제자의 자질은 겸손과 순종입니다. 성실하고 충성스러운 사람들에게도 보편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도 문제는 있습니다. 고집이 세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밤새도록 빈 그물질을 하리만큼 성실한 사람이었으나 그에게는 뜻밖에 고집이 없었습니다. 자기의 생각과 방식을 쉽게 바꿀 줄 아는 유연함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참으로 쉽지 않은 겸손함에서 나오는 순종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의 입자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고기 잡는 것은 예수님보다도 베드로가 더 전문가였기 때문입니다. 어부들은 대개 고기가 언제 잘 잡히는지 어디서 잘 잡히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베드로는 아직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말씀에 순종을 하여 고기를 많이 잡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을 때 비로소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로 인식하게 됩니다. 베드로의 순종은 예수님을 주로 인식한 후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이전의 일이라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을 때 베드로는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의 말 속에 그의 생각과 감정이 보여지는데 자기의 생각에는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지지만 말씀하시니 한번 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참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도 겸손하였고 영적으로도 겸손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인식하기 전에도 겸손하였고, 예수님을 주로 인식한 후에도 그는 겸손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인식한 후 그의 첫 고백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였습니다.

자신을 밤새도록 수고를 하였어도 얻은 것이 없는 무능한 자로,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죄인으로 인식하고 고백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군에게 없어서는 아니 될 귀한 것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의지하고 그것을 자랑하려고 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무능한 자가 되고 쓸모없는 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는 민주적인 교회를 표방하는 교회입니다. 민주적인 교회에는 민주적인 지도자들이 있어야만 합니다. 민주적인 지도자들과 봉건적인 지도자들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봉건적인 지도자들은 말하고 명령하고 지시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때문에 잘 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적인 지도자는 백성들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남의 의견을 존중하여 자기의 생각도 꺽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번에 임직하시는 임직자들이 이런 민주적인 리더 쉽을 가지시기를 기대합니다. 교회와 교인 앞에 군림하는 직분자들이 아니라 말 그대로 교회와 교인들을 섬기는 리더 쉽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king servant의 리더 쉽이 아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베드로에게서 보여 지는 좋은 제자의 자질은 헌신입니다. 베드로는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하나님은 주를 위하여 쓸 줄 아는 사람을 쓰십니다. 주를 위하여 쓸 줄 모르는 사람을 쓰지 않으십니다. 아니 쓰실 수 없으십니다.

좋은 제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를 위하여 버릴 줄 알고 쓸 줄 아는 것입니다. 베드로에는 그와 같은 면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마음 놓고 베드로를 쓰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저는 80년 5월 6일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84년도에 첫 담임목사가 되어 나이에 비해서는 담임목회의 경험이 짧지 않습니다. 제 목회 경험에 의하면 가장 힘든 사람 중에 하나가 십일조가 정직하지 않은 장로, 집사, 권사와 함께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십일조가 정확하다는 것만으로 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들 중에도 힘든 사람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러나 십일조가 정직하지 못한 장로와 집사와 권사는 원칙적으로, 논리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우리 노회 안에 어느 교회는 장로, 집사, 권사 투표를 할 때 후보가 되면 몇 년 동안의 헌금생활을 온 교인들 앞에 공개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야만적인 것이 아닌가라고 까지 생각을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 목사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되려면 그만한 검증은 거쳐야 한다는 것이 그 목사님의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이 부담스러우면 교회의 지도자가 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이나 장관 그리고 국회위원과 고위 공무원이 되면 재산을 공개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아마 해마다 변동 상황을 공개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들에게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보다 저들의 직책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단순히 십일조와 헌금생활을 잘 하느냐 안 하느냐만 가지고 판단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십일조와 헌금생활을 잘 하는 사람들 중에 위험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자기 의에 사로 잡혀 교회를 마치 자기 개인의 교인인양 착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십일조와 헌금생활만 가지고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와 헌금생활을 잘 하는 사람도 다른 여러 가지 면을 검토해 보아야만 합니다. 그것만 보고 무조건 사람을 뽑으면 교회가 위험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나 헌금생활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여기서 잘 하지 못한다는 말은 많이 하지 못한다는 말과는 다른 것입니다, 더 이상 검토해 볼 여지가 사실 없습니다. 그 자체로 그는 자격 미달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교회에서도 직분자들의 헌금생활 공개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장로와 집사와 권사가 되는 것은 교회를 위하여 죽을 사람을 뽑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부담을 질 사람을 뽑는 것입니다. 누가 먼저 죽을 것인가? 누가 더 많이 희생할 것인가를 뽑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람들이 다른 헌금은 몰라도 십일조 생활이 정확하지 못하다면, 그와 같은 사람들이 그냥 일반 교인이 아닌 교회의 지도자가 된다면 그 교회는 힘 있게 하나님께 쓰임 받는 교회가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헌신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교인들이 저들보다 앞장서서 헌신을 하겠습니까?

교회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 중에 하나는 희생과 헌신입니다. 특히 우리 교회는 그 희생과 헌신의 자세가 더욱 더 필요한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주인이 많지 않다는 것이 장점이고, 주인이 많지 않다는 것이 단점인 교회입니다.

저희 교회에 새로 등록한 분들 중에 당황하시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교회에 비해 열열한 환영과 영접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당황해 하시는 분들에게 이렇게 변명하곤 합니다. 우리 교회는 대부분 환영과 영접을 받아야 할 분이고, 여러분들과 같은 분들을 열열이 환영해 줄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아직 우리 교회의 교인들은 대부분이 손님이십니다.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4년 밖에 안 된 교회이니까요. 4년이 지나면서 5살이 되는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에 가장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부정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긍정적인 면에서, 다시 말해서 권리를 주장하는 면에서가 아니라 의무를 다하려고 하는 면에서, 교회를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와 같은 필요 때문에 장로를 선출하고 권사를 선출하고 집사를 선출하는 것입니다.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를 생각할 때 최악의 케이스는 저들이 부정적인 의미에서 교회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권리와 주장에서는 주인이 되고, 의무와 헌신에 대해서는 여전히 손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교회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 주일에 임직을 받으시는 임직자 여러분, 여러분들은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의 앞날을 가늠할 첫 단추와 같으신 분들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베드로와 같은 좋은 제자가 되어 주시기를 교회를 담임한 목사로서 부탁드립니다.

직분과 직책을 개인적인 야망인 아닌 소명으로 받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큰 일에도 충성하시지만 특히 작은 일에도,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일에도,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충성하시는 분들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적으로 영적으로 늘 겸손한 종들이 되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인간적인 교만과 영적인 교만은 교회와 개인에게 있어서 치명적입니다. 늘 자신을 무능한 사람으로, 그리고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인식하시는 귀한 종들이 되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교인들이 말을 들을 줄 아는 신앙적이고도 민주적인 지도자들이 되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인들에게 공개되어도 크게 부끄러울 것이 없는 헌금생활을 부탁드립니다. 흠 없는 온전한 십일조를 부탁드립니다. 교회의 긍정적인 의미의 주인으로서의 부담을 감당해 주시는 분들이 되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2006년이 높은 뜻 숭의교회 부흥의 원년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동안은 그와 같은 부흥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워밍업은 끝이 났습니다. 후손들에게 물려 줄 아름다운 교회, 한국 교회에 좋은 모델이 될만한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하여 마음을 다 잡고 헌신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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