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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전투 / 마 17:1-13

by 【고동엽】 2021. 12. 25.
변화와 전투
마태복음 17:1-13


예수님은 사랑하는 세 제자를 데 리시고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세 제 자는 거기서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변화하신 것과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말씀하시는 것을 본 것이었습니다. 세 제자는 그것이 너무 황홀하고 놀라워서 예 수님에게 그곳에 초막을 짓고 그냥 거기서 살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세상의 궁궐에서 사는 것 보다 그 변화산의 초막에서 사는 것이 더 낫 다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와같은 고백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 니다. 그것은 마치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 함을 인하여 세상의 모든 자랑을 배 설물로 여겼다는 고백과 같은 고백 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와같은 고백을 위하여 예 수님은 제자들을 그곳으로 데리고 가셨는지도 모릅니다. 힘들고 어려 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 하기 위하여 세상과 싸워야 할 사람 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변화산의 초 막을 위하여 세상의 궁궐을 버릴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저들 의 제안에 동의 하시지 않으셨습니 다. 변화산의 초막을 위하여 세상의 궁궐을 버릴 수 있는 능력도 목적이 었지만 그것이 최종적인 목적이 아 니었기 때문입니다. 변화산의 초막 을 위하여 세상의 궁궐도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원하신 것이었지 실제 로 변화산에 초막을 짓고 거기서 눌 러 사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 입니다. 그와같은 능력을 가지고 하 여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세상 으로 내려가 세상의 온갖 악한 것과 불의한 것과 더불어 싸우는 것이었 습니다.


그것은 전투이었습니다. 세상과의 전투, 온갖 불의와 악과의 전투, 마 귀와의 전투가 바로 그것이었습니 다. 변화는 바로 전투를 위한 무장 이었던 것입니다. 변화산에서의 그 황홀한 체험, 그리고 그 때문에 세 상의 궁궐보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초막이 더 좋다는 고백은 세상과 싸 워야 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무장중에 하나이었기 때문입 니다.






이와같은 본문의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교인 들중에 세 종류의 교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변화산 아래의 교인입니 다. 저들은 평생을 교회를 다니지만 끝까지 변화하지 않는 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인들 중 상당 부 분이 이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의 제 자 12명중 9명이 변화산 아래에 있 었습니다. 그 비율이 지금도 맞는 것 같습니다. 교회 생활을 하는 사 람 4명중 3명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면 거의 정확하지 않을까 싶습니 다.


예수님 만남의 체험 즉 성령에 대 한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체험없이 그저 교회만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교회에 깊이 관여하게 되거 나 신비한 영적인 체험을 경험하게 되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 이 흔히 이야기하는 성전 뜰만 밟고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 다.


저들이 교회생활을 하는데는 몇가 지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첫째는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부적을 가 지고 다니듯 교회생활을 하는 사람 입니다. 오랜 습관을 통하여 주일날 교회라도 가지 않은면 웬지 좋지 않 은 일이 생길 것 같기 때문에 부적 을 쓰듯 주일날 한 번씩 교회를 나 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냥 교회에 다니면 좋 은 이야기를 듣고 건전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정신 수양과 인격 단련 차원에서 교 회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기독교 신앙 속에 그와같은 기능이 있는 것 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목적이라면 구지 예수만 믿어야 할 이유는 없습 니다. 그 정도의 목적은 불교를 통 해서도 얻을 수 있고 유교를 통해서 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 므로 대개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교 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종교는 다 마찬가지다라는 종교다원 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교회안에 있는 인간적 이고도 사회적인 매력 때문입니다. 교회도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회입니 다. 교회안에 형성된 사회도 완전하 지는 않지만 그래도 세상 보다는 낫 기 때문에 세상에서 기회를 얻는 것 보다 교회 안에서 기회를 얻는 것이 헐씬 더 쉽습니다.


세상은 아무리 노력하고 성실하게 생활을 하여도 쉽게 기회를 얻을 수 없는 반면 교회는 조금난 성실하게 노력하면 빠른 시일내에 목표하는 기회와 지위를 쟁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같은 기회와 지위가 주 는 만족은 세상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와같은 매력도 우리들 에게는 상당한 것이서 변화와 거듭 남이 주는 영적인 매력을 맛보지 않 고도 얼마든지 우리를 교회에 열심 일 수 있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의 체험 없이 평생을 그리고 제 법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는 가장 중 요한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변화산 위의 교인입니다. 교인들 4명중 1명 정도는 기도와 찬 양과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여 그 맛 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 다. 쉽게 말하면 성령을 체험한 사 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 하겠지만 그 맛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그와 같은 체험을 한 사람들은 세상을 우 습게 여기고 교회에만 몰두하게 되 는 것입니다. 저들은 사도바울이 세 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와 자랑을 배 설물로 여겼다는 고백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며 저들은 오늘 본문의 베 드로가 변화산에 초막 셋을 짓고 거 기서 살자는 말을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들이며 저들은 찬송가 중에 '높 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 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찬송을 그 누구보다 도 확실히 이해하고 동의하는 사람 들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그곳이 너무 좋아 세상을 잊어 버리고 등한히 하는 사 람들입니다. 기도도 많이하고 성령 의 체험도 있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고 헌신적이지만 세상에서 그리스 도의 군사로 살아가는 일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입 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과 같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궁궐같 은 세상보다 초막같은 교회를 더 좋 아하는 것은 좋으나 온 힘을 교회에 만 쏟아 정작 변화하여야 할 세상은 관심없이 포기한채 살아가기 때문에 교회는 부흥하고 성장하나 세상은 교회의 성장과 발전과는 반대로 점 점 더 나빠지고 부패하게 되는 것입 니다.






셋째는 변화산의 체험으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세상으로 다시 내려가 세상과 싸우는 교인입니다. 산 아래 에는 귀신이 들려 물에도 쓰러지고 불에도 쓰러지는 아이가 있었습니 다. 그러나 변화산 아래에 남아있던 제자들은 그 귀신을 쫓아 내는데 실 패하였습니다. 능력이 없었기 때문 입니다.


베드로의 말대로 만일 그냥 변화 산이 좋아 세상으로 내려 오지 않고 있었다면 자신들이야 삼층천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었겠지만 산 아래서 고생하고 있는 어린 아이를 고쳐 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와같은 일을 하 게 하시기 위하여 사랑하는 세 제자 를 변화산으로 데리고 가셨던 것입 니다. 변화산에서의 영적인 체험으 로 무장을 하고 세상으로 내려가 귀 신 아이와 같은 이 세상과 싸워 모 든 어그러진 것들을 바로 잡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게 하 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사랑하는 세 제자를 변화산으로 데리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와같으신 하나님의 뜻은 지금도 똑 같으시지만 여전히 교인들은 예 수님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변화산 에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냥 변화산 밑에 무능한 교인으로 머물러 있거 나 변화산에 올라가 능력은 받았으 나 세상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무관 심한 사람으로 머물러 있거나 합니 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 체험 을 한 뜨거운 사람들이 세상으로 내 려가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세상과 싸우며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를 실 현하기 위하여 싸우는 사람들은 참 으로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종류의 교인중 어 디에 속하시는가를 한 번 생각해 보 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 나님이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바라고 계시는 변화산에서의 영적인 체험으로 무장을 하고 세상으로 내 려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 하기 위하여 싸우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전 뜰만 밟고 다니는 교인이 되 지 말고 변화산으로 올라가십시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세상 의 부귀영화 다 우습게 볼 수 있는 능력을 받으십시다. 사도바울과 같 이 그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는 신앙의 자리에 들어가십시 다. 평생 주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에 연연하여 세상 욕심 버리지 못하고 세상의 종노릇하면서 사는 삶을 청산하십시다. 그리하여 세상 이 감당할 수 없는 당당한 그리스도 인들이 되십시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그렇지 하 나님을 믿고 섬기는 일에는 놀라운 일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줄 수 없는 참 기쁨과 평안이 있습 니다. 감동이 있고 감격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평생을 성전 뜰 만 밟고 다닌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 까운 일이지 모릅니다. 변화산으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놀랍 고 황홀한 광경을 우리도 직접 목도 해야만 합니다. 그 감격과 감동 때 문에 세상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데 까지 우리의 믿음도 자라야만 합 니다.


평생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 믿는 참 맛을 알지 못하여 쓴 약 먹 듯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우 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 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주와 같이 길을 가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릅니다.


다윗은 그와같은 기쁨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시편 4편 7절과 8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 백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 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 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 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아멘.






평생을 예수를 믿는다고 교회를 다니면서도 그와같은 기쁨과 즐거움 을 모른다면 그것을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 다. 영적 체험을 간구하세요. 성령의 충만함에 대한 사모함을 가지세요.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 구하세요. 그리고 변화산으로 올라가세요. 적 극적으로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 참 여하세요. 그리고 인내하세요. 하나 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에게 변화산의 축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체험이 여러분에게 능력이 될 줄로 믿습니다. 세상의 궁궐을 우습 게 볼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될 것이 기 때문입니다. 변화산의 초막을 우 습게 보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우리 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세 상의 종 노릇을 하게 하고 있기 때 문입니다. 세상의 궁궐을 우습게 여 길 수 있는 마음은 우리를 세상에 대하여 자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할 것입니다.


IMF와 같은 일을 경제적으로 해 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 한 것은 신앙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합니다. 변화산의 체험 이 있는 사람에게는 IMF가 세상 사 람들처럼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자유함을 가진 사람 에게는 부함과 비천함이 차이가 없 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우리 동안교회의 교인 여러분들이 먼저 이와같은 신앙으로 이 어려운 난세 를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와같은 해결없이 이 문제를 경제적 으로만 해결하려고 한다면 해결이 되어도 진정한 의미의 해결은 아니 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그 믿음과 신앙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 세상과 싸워야만 한다는 것 입니다. 변화산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세상으로 내려가 하나님 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모 든 일에 대하여 싸워야만 합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 여 세상과 타협하는 생활을 하여서 는 안됩니다. 세상과 타협하여 세상 을 얻는다 하여도 어차피 그것은 배 설물과 같은 것인데 그것이 우리에 게 무슨 큰 소용이 있겠습니까? 배 설물과 같은 것을 얻기 위하여 세상 과 싸우지 아니하고 세상과 타협하 여 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수 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싸움은 힘든 것입니다. 어려 운 것입니다.그러나 싸우는 것이 힘 들고 어렵다고 싸움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세상의 종으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세상의 종으로 살면 싸움은 없습니다. 그리고 배설물을 배당으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 나 그것은 패배입니다. 세상의 종으 로 평생을 살아야만 합니다. 세상의 종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 들고 불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패배 는 싸움보다 비참한 것입니다. 힘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주일이면 들 어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단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40년이나 방황하여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땅히 싸워야 할 전쟁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 하고 있습니다. 물론 싸움은 힘든 것이지만 그리고 무서운 것이지만 약간의 믿음만 있었다면 그리 두렵 게만 생각 할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로를 꺽으신 하나님, 홍해를 건너 게 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조금 만 있었다면 저들은 우리들의 밥이 라고 당당하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 입니다. 그리고 다윗과 같이 용감하 게 나아가 싸워 승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그러 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저 들이 싸우지 아니하고 다시 애굽으 로 돌아갈 것을 염려하셔서 저들을 광야의 길로 돌리셨던 것입니다.


힘들어도 믿음으로 싸웠더라면 일 주일이면 끝낼 수 있었을 것을 그 믿음이 없었음으로 인하여 광야에서 40년간을 고생하여야만 했던 것입니 다. 그와같은 일이 바로 우리들에게 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과 싸우지 아니 함으로 세상은 점점 광야같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 에서의 싸움을 포기하고 교회 안으 로만 들어와 변화산에 초막 짓고 영 적인 소꿉장난만 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악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세상으로 내려 가는 것을 교인들에게 가르쳐 주어 야만 합니다. 너무 교인들을 교회에 만 머무르게 하여서는 안됩니다. 교 회의 일만 하게 하여서는 안됩니다. 교회의 일만 하나님의 일이고 세상 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처럼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그리하여 교 회는 부흥하고 성장하는데 세상은 교회의 성장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은 세속화되어가게 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은 싸우기도 전에 그 싸움 은 불가능한 싸움이라고 하지만 그 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 한 싸움은 절대로 질 수 없는 싸움 입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 않고 만만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에 합 당한 싸움은 반드시 이기는 싸움입 니다. 비록 좁은길을 가야만 하고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싸움이지만 그 싸움은 이긴 싸움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긴 싸움을 싸워야만 하 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에게 그 싸움은 이 길 수 없는 싸움이지만 믿음이 있는 자에게 그 싸움은 이긴 싸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교인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교인들에게 전투를 가르쳐 주어야만 합니다. 더 이상 물러 설 수는 없습니다. 더 이상 이긴 싸움 에서 패배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을 이렇게 내 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변화의 힘을 가지고 세상으로 내려 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변화와 전투.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만 할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 까? 변화에 대한 부담 때문에 여전 히 성전 뜰만 밟고 다니시는 분들은 아니십니까? 전투에 대한 부담 때문 에 여전히 변화산 위에 초막 셋을 짓고 영적인 소꿉장난만 하고 계시 는 분들은 아니십니까?


변화산으로 올라가십시다. 세상이 우습게 보이는 그 근사한 자리에 한 번 서 보십시다. 그리고 그 능력을 가지고 세상으로 다시 내려와 세상 과 싸우십시다. 지난 주일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서자라는 말씀 을 함께 생각했습니다. 주가 주신 능력으로 일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가 주신 능력으로 세상과 싸우는 것은 더 중요한 일입니다. 주가 주 신 능력으로 일어날 뿐 아니라 주가 주신 능력으로 세상과 싸워 승리함 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 해 나가는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 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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