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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 예루살렘 / 느 11:1-2

by 【고동엽】 2021. 12. 25.

변방 예루살렘

느헤미야 11:1-2

 

 

 

오늘 설교는 몇 년전 여러분들 에게 이미 하였던 설교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생각하다가 전에 하였 던 이 설교를 다시 하여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이 이 설교를 듣기는 하였으 나 아직도 이 설교를 삶으로 옮기지 는 못하였기 때문이며 이 설교를 우 리의 삶에 옮기는 일이 지금 필요하 다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 늘 여러분들에게 들려지는 이 설교 를 마음에 깊이 새기시기를 바라며 이 설교에 응답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 때 왕 의 술을 맡은 아주 높은 관원장이었 습니다. 그러나 그는 궁궐에서 예루 살렘 성전이 훼파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몹시 괴로 워합니다. 결국 그는 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귀한 기회와 자리를 버 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훼파된 성전을 다시 수축하게 됩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에 굴하지 아 니하고 그는 그 귀한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수축한 사람 으로 성경에 기록되는 놀라운 축복 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왕의 술을 맡은 관원장이 라면 날아가는 새를 떨어트릴 수 있 는 권세를 가진 자리이었지만 느헤 미야가 그것에 연연하여 성전 수축 의 일을 감당치 아니하고 자기 자리 만 지키고 있었다면 우리는 지금 그 가 누구인지를 도무지 알지 못할 그 러한 사람으로 인생을 끝마쳤을 것 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는 느헤미야 가 어리석어 보였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습니 다. 술맡은 관원장 느헤미야와 그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많은 어려움과 위험속에서도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수축한 사람 느헤미야와는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우 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술맡은 관원장 느 헤미야로 인생을 마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 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귀한 기회들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하나님 의 성전을 잘 수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그 일에 뛰어 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들중에 느 헤미야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와같은 귀한 몫과 기 회를 놓치지 아니하는 지혜롭고 용 감한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 다.

 

교회에 술맡은 관원장은 아무 소 용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 위와 재산을 자랑하고 또 그것을 은 근히 부러워도 하지만 하나님이 기 대하시고 바라시는 삶은 그것이 아 닙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늘 이 설 교를 들으시면서 술맡은 관원장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인생을 건 느헤미야로 살 것 인가를 결정하실 수 있어야 할 것입 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수축하였을 때 예루살렘 성전이 있 는 곳은 아직도 적의 위험이 도사리 고 있는 변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살려고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 다.

 

그러나 사람이 살지 않으면 성을 지키기가 어려웠으므로 누군가는 그 곳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당시 세 종류의 사람들 이 변방 예루살렘에서 생활을 시작 하였습니다.

 

첫째는 백성들의 두목이었고, 둘 째는 자원하는 사람들이었고, 셋째 는 백성들 중에서 제비 뽑힌 사람들 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려고 하 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 들 중에 십분의 일을 제비 뽑아 예 루살렘으로 강제 이주를 시켰던 것 입니다.

 

이와같은 역사적인 사실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은 언 제나 처음에는 변방이라는 사실입니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루살렘은 사람들 보기에 변방이나 다름이 없 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축복의 땅 예루살렘은 오히려 한적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도 생명으로 인도 한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이가 적 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땅 예루살렘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인기 가 없고 매력이 없는 변방을 먼저 찾아 보아야만 합니다. 세상 사람들 이 좋아하고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 는 곳은 예루살렘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 니다.

 

 

 

둘째, 예루살렘은 언제나 나중에 는 중심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은 처음에는 변방이었지 만 나중에는 중심이 되었습니다. 오 히려 중심에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변방에 살게 되었습니다. 변방이었 던 예루살렘이 중심이 되니 당시 중 심이었던 곳이 변방이 될 수밖에 없 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처음에는 언제나 변방 이지만 나중에는 언제나 중심이 된 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 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중에 시편 122편 6절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 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 다"

 

저는 그 말씀을 믿습니다.

 

에루살렘이 아직 변방일 때 느헤 미야처럼 백성의 두목처럼 그리고 자원하는 백성들처럼 예루살렘을 사 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형통하게 되 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강제적이기 는 하였지만 순종하여 변방 예루살 렘에서 살던 사람들도 결국 형통하 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를 부리고 꾀를 부리며 당시 중심에 살던 모든 사람들의 삶 은 결국 변방이 되고 말았습니다.

 

 

 

셋째, 제일 먼저 변방 예루살렘 성에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백성 들의 두목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두목들이 변방을 선택하는 나라는 부흥하고 발절한 나라요 두목들이 먼저 중심을 차지하려고 하고 힘없 는 백성들만 변방으로 내 모는 나라 는 쇠퇴하고 망할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흥할 나라인가 아니면 망할 나라인가를 알아보려면 그 나라의 지도자들이 변방에 있느가 아니면 중심에 있는가를 먼저 알아보면 됩 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교회 가 될 교회인가 아닌가를 알아보려 면 교회의 지도자들이 어떤 자세로 교회를 섬기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힘들고 위험하며 또 낯이 안서는 변방에는 교인들만 있고 교 회의 중직자라고 하는 지도자은 존 귀하고 대접받는 자리에만 있으려고 한다면 그 교회는 결코 좋은 교회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ㅅ산 목자인가 아니면 삯군 목자인가를 알아보는 가장 좋 은 방법은 변방에 있기를 좋아하는 가 아니면 중심에 있기를 좋아하는 가를보면 됩니다. 우리 동안교회에 도 두목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저들 을 무거울 중(重)자를 쓰는 중직자 라고 부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의 변방에 서 언제나 무거운 일을 교인들 앞서 서 감당해야 한다는 뜻에서 중직자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참된 의미의 중직자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무거울 重자의 중직자 보 다는 가운데 中자의 중직자가 많으 며 무거운 직분을 감당하려고 하는 중직자보다는 자기의 자리를 중히 여기고 무겁게 하려고 하는 重席者 들이 많지 않은가 한 번쯤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동안교회 교우 여러분들 두목이 되기를 힘쓰십시오. 그리고 변방에 가기를 힘쓰십시오!.

 

 

 

넷째,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성 예루살렘을 지켜주기를 원하고 계신 다는 것입니다.

 

두목들만으로는 예루살렘 성을 지 킬 수 없습니다. 자원하는 백성들이 있어야만 예루살렘 성을 지킬 수 있 습니다. 그것은 우리 동안교회도 마 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얼마든지 당신의 성을 지키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가 당신의 성 을 지키시는 일을 좋아하시지 않으 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과 삶을 지켜주시는 일은 즐겨하시지만 당신 스스로 당신의 성을 지키시는 것은 좋아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성을 지켜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성을 지킬 능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성 을 지켜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능력이 아 니라 마음입니다. 우리가 비록 힘이 없고 능력이 없어도 하나님을 사랑 하는 마음에 하나님의 성을 지키겠 다고 헌신하면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그에게 축복과 은사를 주실 것입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예루살렘성을 지 키려고 하였던 백성들의 두목들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을 지키려고 하였던 백성들은 모두가 다 복을 받 았습니다. 그리고 비록 억지로 이기 는 하지만 순종하여 예루살렘 성에 살았던 사람들도 복을 받았습니다. 변방이 중심이 되는 복을 받게 되었 습니다.

 

지난 주 저는 엘리에셀에 대하여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는 상속에는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주 인의 일에만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 었습니다. 우리 동안교회에도 엘리 에셀과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 직 우리 동안교회는 변방과 같은 교 회입니다. 온전한 교회로 하나님께 드려지기 위하여 해야 할 많은 일들 이 남아있는 교회입니다. 인간적인 말로 쉽게 이야기해서 아직도 2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야만 온전 한 교회로 수축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마무리하실 수 있으 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남겨 놓으셨 습니다.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가 이 일을 다 마무리하는 것을 좋아 하시 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누군가가 당신의 이 짐을 져 주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거운 일 입니다.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래 서 누군가 선뜻 나서서 그 일을 감 당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일이 다 마무리 되기전 까지 동안교회는 변방과 같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우리동안 교회는 그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고 모든 교회의 중심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위하여 느헤미야와 같이 그리고 백성들의 두목들과 같이 그리고 자원하는 마 음으로 그 어렵고 위험한 짐을 감당 하였던 백성들과 같이 우리 동안교 회를 위하여 헌신한 사람들은 교회

 

와 함께 중심에 설 수 있게 될 것 입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우리도 그때 교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 스스로 변 방에 섰던 사람들이 중심에 서서 일 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밀어 주 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저들은 그 때에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 고 마음으로 신앙으로 또 변방에 서 려고 할 것이지만 그와같은 사람들 이 교회의 중심에 서도록 하나님은 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변방에 있을 때는 모른척 외면하다가 교회가 중심에 설 때에 염치없이 중심에 서려고하 는 사람들을 경계하여야만 합니다. 틀림없이 그와같은 사람들이 생겨날 터인데 우리는 그것을 철저히 막아 내야만 할 것입니다. 그와같은 사람 들이 교회의 중심에 서게 되면 교회 는 정말 무력하고 힘없는 교회로 전 락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설교는 이렇게 하지만 변방 예루살렘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그와같은 삶을 살아내야만 합니다. 그와같은 삶을 살아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도 있어 야 합니다. 소위 중직자라고 하는 목회자와 당회원 그리고 안수받은 집사와 권사님들이 먼저 앞장을 서 서 그와같은 역할을 감당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와같은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앞 다투어 책임을 외면하 는 일은 교회를 놓고 볼 때 매우 슬 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중에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나 서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예루살렘이 변방에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그 때를 놓치면 평생 변방 예루살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 동안교회가 힘 들고 어려운 때를 사는 것 같지만 그 시간도 정말 얼마 되지 않을 것 입니다.

 

예루살렘이 변방에 있을 때가 기 회입니다.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와 같은 때와 기회를 놓치는 사람은 정 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꾀 부리지 말고 느헤미야와 같이 백성들의 두 목과 같이 그리고 자원하는 마음으 로 변방에 나섰던 백성들과 같이 우 리 동안교회의 짐을 앞장 서서 감당 함으로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중심 에 서는 축복을 받으시는 저와 여러 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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