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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사랑하는 사람 / 시 122:1-9

by 【고동엽】 2021. 12. 25.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

시편 122:1-9

 

 

 

오늘은 우리 동안교회 창립 4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창립 41주 년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면서 먼 저 우리는 진정 마음에서부터 우러 나오는 감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할 줄을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아무런 흠이 없는 완전한 교회는 물론 아니 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기에 충분한 좋은 교회인 것 은 틀림 없습니다. 우리에게 동안교 회를 허락해 주시고 우리를 동안교 회의 교인으로 삼아주신 것은 분명 한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여 러분도 이 말씀에 동의하신다면 아 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동안교회는 지난 41년 동안 한번도 교회의 분쟁으로 인하 여 갈라짐이 없이 계속 부흥 성장한 교회입니다. 물론 사람이 모인 교회 이기 때문에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저런 갈등도 있고 다툼도 있게 마련입니다만은 그래도 41년 동안 한번도 교회가 갈라지지 아니하고 큰 상처없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정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일이 아 닐 수 없습니다. 41년이라고 하는 역사는 짧은 역사가 아닙니다. 그 짧지 않은 역사중에 담임목사가 3명 밖에 없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 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린바와 같이 물론 우리 교회안에도 이런 저 런 갈등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와 같은 갈등까지도 줄여 나가기 위하여 힘쓰고 애를 써야 할 것이지 만 여러분 이 땅에 있는 동안 아무 런 갈등이 없는 완벽한 교회는 불가 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보면 교회는 그런 갈등을 통하여 온 전해지고 발전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교회안에 있는 이런 저런 갈등으로 인하여 힘들고 어려운 일 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여러분 우 리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41년 동안 한번도 분쟁이 없이 계속 성장 을 해왔다는 것은 정말 얼마나 감사 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 감사 해야 마땅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 다. 하나님께 이와 같은 사실을 감 사드리며 이와 같은 아름다운 전통 을 예수님 오실 때까지 지켜나가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교회를 보다 더 좋은 교회로 성장시켜 나갈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 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 들이 복을 받는 그런 아름다운 교회 가 되도록 우리의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다윗의 시편으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 는 표제가 붙어있는 시편입니다. 다 윗의 마음에 예루살렘 성전이 얼마 나 아름다웠는지 모릅니다. 사람들 이 성전이 좋아서 그리고 올라가는 것을 즐거워하고 서로 성전에 올라 가자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감사했 습니다. 그래서 그 감사한 마음을 오늘 본문과 같은 시편으로 찬송하 였던 것입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 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 루살렘아 너는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 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거기 판단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 집의 보좌로다.

 

 

 

다윗에게는 예루살렘 성전 이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이 자신과 사 람들에게 가장 큰 하나님의 축복임 을 알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예루살 렘 성전을 축복하는 삶이 중요하다 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하고 있 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 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 다. 내가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 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

 

 

 

하나님은 성전을 통하여 우 리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그 중요한 축복의 기관인 교회를 사랑하고 축 복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가장 기뻐 하시며 그에게 먼저 그리고 가장 큰 축복을 주실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 에 나오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축복 하고 교회의 발전을 위하여 헌신하 면 큰 복을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 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된 하나님 의 축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동안교회를 오늘 본문 의 예루살렘과 같은 교회로 만들어 가는 것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렇 게 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을 하여야 하는가를 먼저 생각해야만 합니다. 건강한 교회, 아름다운 교 회, 교인들을 축복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를 먼저 생각해야만 합니 다.

 

앞으로 여러 주일에 걸쳐서 어떤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이며 교 인들을 축복하는 건강한 교회인가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생각하려고 합 니다. 그와 같은 말씀을 통하여 우 리 교회의 나아가 방향을 찾고 그 방향을 향하여 함께 노력하고 기도 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먼저 예배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자자손손 교인들을 축복 하는 교회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 는 뜨겁고 아름다운 예배가 있는 교 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생명은 예배에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생명 도 예배에 있습니다. 예배가 죽으면 교회가 죽고 예배가 죽으면 신앙이 죽습니다. 교회의 생명과 우리 신앙 의 생명은 예배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아름다워지도록 힘 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가 뜨거워 질 수 있도록 힘쓰실 수 있 기를 바랍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송 이 뜨거워지고 감동적이어야 합니 다. 그와 같은 예배를 사모하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시고 노력하 셔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다음 몇가지를 조심하여야만 합니다.

 

첫째, 일보다 예배를 중히 여겨야만 합니다. 우리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를 마음에 새길 수 있어야만 합니다. 봉사하고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듣고 은혜 를 받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일보 다 예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동안 교회를 참으로 계속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로 만 들어 나가기 위하여 우리는 마리아 가 먼저 되어야만 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보다 봉사하고 일하는 것이 앞서는 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닙니 다. 물론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은 후에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지만 일이 말씀과 예배를 앞 서서는 안됩니다.

 

사탄이 열심있는 교인들에 게 쓰는 전략중에 하나가 바로 예배 보다 일에 더 빠지게 하는 것입니 다. 이와 같은 사탄의 전략에 가장 먼저 빠지는 사람이 바로 목사와 장 로같은 중직자들입니다. 저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들이 주어집니다. 그 일을 잘하려고 하다보면 일에 빠져 서 예배가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뿐 만아니라 일을 하다보면 마음에 갈 등과 상처가 생기는 수가 있는데 이 갈등과 상처가 예배를 방해합니다. 특히 일을 하다보면 목회자와 갈등 이 생기는 수가 많은데 그 갈등이 예배에 아주 치명적입니다. 일이 예 배에 영향을 미치게 하여서는 안됩 니다. 예배가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하여야만 합니다. 모든 중직자 들은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직자들이 이와 같은 사탄 의 전략에 넘어가 예배보다 일을 앞 세우게 되고 일 때문에 상처를 받아 예배를 놓치게 되면 교회는 절대로 좋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중직 자들은 일보다 예배를 중히 여겨 교 인들에게 예배하는데 모범이 되실 수 있기를 위하여 힘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직자들의 예배 분위기 와 자세가 교회를 좌우한다는 사실 을 마음에 깊이 명심하실 수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기독교에 맞지 않은 의식과 전통을 탈피하여야만 합니 다. 교회의 예배를 살리기 위하여 살리기 위하여 우리가 깊이 그리고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 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안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유교적 문화 와 전통에 관한 것입니다.

 

유교는 우리 문화에 가장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종교입니 다. 유교에는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유교 적인 전통과 문화중에 우리 기독교 신앙에 반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대표적인 예중에 하나 가 죽은 조상에게 대하여 제사를 지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 상을 위하는 것 까지는 좋으나 그것 이 신격화되어 우상화되게 한 것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흔들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는 것 때 문에 순교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 리고 그 엄청난 핏값을 치루고 난 후에야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심을 믿는 기독교의 뿌 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우 리 기독교 신앙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교의 지나친 체면 문화입니다. 유 교에는 체면과 권위가 중요한 덕 중 에 하나입니다. 물론 체면과 권위는 어느 면에서 볼 때 우리의 삶을 반 듯하게 하고 사회의 질서를 잡아주 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유교 적인 문화와 전통이 예배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흔히 '젊잖다'는 말 을 하곤 합니다. '젊잖다'는 말은 유 교적인 문화를 대표하는 말중에 하 나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의 삶을 반듯하게 하는데 매우 도움 이 되는 말이요 삶의 자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할 때 '젊잖음 '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예배 를 가로막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 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젊잖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교만한 것입 니다. 건방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 우리는 모두가 다 어린 아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 에서 나아와 젊잔을 떤다는 것은 옳 지 않습니다.

 

다윗은 한 나라의 왕이었지 만 하나님께 제사할 때 마치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을 찬양 할 때 기뻐서 아이같이 춤을 추었습 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기뻐서 춤 을 출 수 있는 마음이 예배에 필요 합니다. 그런에 우리 마음과 삶속에 깊이 뿌리고 내리고 있는 체면 문화 가 그 예배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책 중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는 다른 것 은 몰라도 우리 예배에 있어서 그 말처럼 옳은 말은 없다고 생각합니 다. 하나님께 예배할 때 공자는 도 움이 되지 않습니다. 공자가 죽어야 예배가 삽니다. 예배가 살아야 교회 가 살고 예배가 살아야 교인들이 삽 니다. 전통적인 한국 교회가 점점 죽어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중 에 하나는 유교적인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상투를 틀고 가부좌를 하고 근엄하게 예배를 드려야만 경건하다 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은 생각입 니다. 물론 그렇다고 시끄럽고 요란 한 서양문화와 젊은이들 문화가 예 배에 맞는다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 예배가 치우쳐서 젊은이 위주로 가 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교회안에 아직도 뿌리 깊 이 내리고 있는 유교적인 문화와 전 통에 대하여 우리는 스스로 비판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공자와 부처가 교회안에 있 으면 교회는 교회다워지지 않습니 다. 예배가 살아날 수 없습니다. 교 회안에 있는 특히 예배 안에 있는 공자와 부처를 교회 밖으로 내 몰아 야 예배가 살고 교회가 살게 될 것 입니다.

 

 

 

예수님은 어디서 예배를 드 리는 것이 옳으냐를 질문하는 사마 리아 여인에게 어디서 예배를 드리 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라고 가르쳐 주시면서

 

"아버지께 참 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 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 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 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 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동안교회를 오늘 본문 의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교회로 만 들어가고 세워가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먼저 되어 야만 합니다. 그것을 제외하고 다른 것들을 아무리 잘한다고 하여도 그 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신령과 진정 으로 감격과 감동이 있는 예배를 드 리지 못하는 교회를 어떻게 좋은 교 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와 같 은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을 어 떻게 좋은 교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 니까?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 로다.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부 족하지만 저도 그 말씀의 증인입니 다. 저는 교회를 사랑하다가 말로 다할 수 없는 복을 받은 사람입니 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동안 교 회를 예루살렘 성전과 같이 건강하 고 아름다운 교회로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고 헌신하는 모든 사람들과 그 자녀 손들이 복을 받게 될 것입 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 배를 드리는 사람이 먼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그 아 름다운 예배를 통하여 우리 동안교 회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교회, 은혜가 충만한 교회,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예루살렘과 같은 복된 성전이 될 것 입니다.

 

아름다운 예배를 통하여 우 리 후배들과 자녀 손들에게 아름답 고 복된 성전을 물려주는 저와 여러 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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