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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3:13-17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 김동호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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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마태복음 3:13-17

 

 

 

우리 기독교를 한 마디로 정의하여 설명할 때 가장 잘 사용하 는 말은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라 고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말씀의 종교라고 함은 욕심의 종교라고 할 수 있는 미신적인 종교와 차별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신은 욕심의 종교입니다. 미신을 섬기는 목적이 욕심을 채우 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미신 은 믿으면 믿을수록 사람이 나빠집 니다. 사람들은 욕심을 채우면 행복 해 질 줄 알지만 욕심을 채움으로 인간은 점점 더 악해지고 나빠집니 다. 그리고 결국은 그 악과 죄로 말 미암아 인간은 망하고 죽게 될 것입 니다. 왜냐하면 사망의 뿌리는 죄요 죄의 뿌리는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까닭 은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의 욕심을 채우려함이 아니요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의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욕심을 버리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까닭 은 욕심 속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 니라 말씀 속에 우리의 구원과 행복 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신앙은 예수 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신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 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 고 하신 말씀과 어린 사무엘이 하나 님께 드린 말씀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는 말씀 속 에서 그 완벽한 모델을 찾을 수 있 습니다.

 

우리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최고의 축 복은 '말씀하심' 입니다. 반대로 우 리를 향하신 최고의 징계 있다면 그 것은 '말씀을 그치심'이 될 것입니 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늘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축복하시 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몇 번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향하 여 말씀을 그치셨던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 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이 말씀하신 가나안 땅을 버렸을 때 하나님은 400여년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말씀을 그치셨습니다. 창세기의 마 지막 장과 출애굽기의 첫 장 사이에 400년의 시차가 있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구원을 얻으 며 이 땅과 하늘에서 늘 천국의 삶 을 살기를 원한다면 늘 하나님의 말 씀에 귀를 기우려야만 합니다. 구원 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믿음 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부터 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 경에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 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 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귀 히 여기며 그것을 읽고 묵상하고 암 송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중에 가장 분명하고도 확실한 말씀은 예 수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 고 오셔서 33년 동안 이 세상에 계 시면서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여 주 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말씀 중 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빨간색으로 인쇄하여 다른 간접적인 하나님의 말씀과 구 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바로 그 성 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 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직접적인 말씀 을 중심으로 앞으로 계속될 설교를 통하여 보다 분명한 하나님을 뜻을 깨닫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 땅 에서도 천국을 사는 축복을 받는 저 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 로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면서 하신 말씀이신 오늘 본문 15절의

 

 

 

예수께서 대답 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 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 는 것이 합당하니라"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당신 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먼저 세례 요한에게 나아가셔서 요단강에서 세 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 기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하셨을 때 세례 요한은 놀라서 자신이 예수 님에게 세례를 받아야만 할 터인데 어떻게 예수님이 저에게 세례를 받 으시려고 하느냐며 놀랐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요한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인 간이 받아야 할 세례가 필요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 간으로 오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우 리 인간의 완벽한 모델을 보여 주시 기 위하여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러 므로 세례는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받으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받 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 를 받으시면서 '이제 허락하라 우리 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 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마태복음에 나타난 첫 번째 예 수님의 말씀입니다.

 

세례는 죄와 욕심에 대하여 는 죽고 하나님과 말씀에 대하여 살 겠다는 뜻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 는 언약의 예식입니다. 예수님은 바 로 이 세례의 예식을 통하여 우리들 에게 죄와 욕심에 대하여는 죽고 하 나님과 말씀에 대하여는 언제나 사 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을 하시기 위 하여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면서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 하셨는데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 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목적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식과 생각대로 살아 자신의 의와 뜻을 이 루면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식 과 방법대로 행하여 하나님의 의와 뜻을 이루면서 사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그와 같이 말 씀하신 것이며 또한 세례를 받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 과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신의 욕 심과 뜻대로 살려고 하는 죄악 된 본능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만 나 타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 는다고 하는 우리들에게도 아주 보 편적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현상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율법 을 매우 중히 여겼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바리새인들은 그 율법대로 살려고 얼마나 애를 쓰고 노력을 하 였는지 모릅니다. 저들은 말씀과 율 법을 중히 여겨 손목에도 시계처럼 말씀을 적어 차고 다녔으며 하나님 의 말씀을 띠에 적어 머리에 띠고 다니기도 하고 집안 문설주에도 말 씀을 적어 놓고 그곳을 들고 날 때 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 였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기 위하여 안식일을 지키는 규례와 법을 600여 가지나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저들이 얼마나 말씀 과 율법을 중히 여기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였는가를 알 수 있습 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구원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였습니 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여러 분 아십니까? 우리는 그 해답을 로 마서 10장 1절에서 3절 사이의 말씀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내가 증거 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 10:1-3)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 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으나 하나 님께 대한 지식이 부족함으로 결국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 하지 아니하 고 자기의 의를 이루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세우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를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 열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저들은 자신의 구원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축 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여기서 우 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하나를 발견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에 대하여 열심인 사 람도 구원받지 못하고 축복을 받지 못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 야 할 매우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 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단어와 '자기의 의'라고 하는 단어 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핵심 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에 대하여 얼마나 열심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누구의 의 를 이루려고 그토록 힘쓰고 애 쓰느 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그가 하나님과 교회에 대하여 열심이라고 하여도 그 목적이 하나님의 의를 이 루고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 의 의를 이루고 나타내기 위함이라 면 그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사실을 마 7장 21절에서 23절 사이에 있는 말씀 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 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

 

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 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 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주의 이름을 부른 사람뿐만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을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까지 쫓 아낸 사람까지도 구원을 받지 못하 는 경우가 생길 것이라는 말씀입니 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지 모릅니 다.

 

왜 저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까지도 쫓아내면서 살았는데도 구원을 얻지 못하였을까요? 그 이유 는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 내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나 타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 니하고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자기 의 자랑과 영광을 위하여 그와 같은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를 위함 이냐 아니면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함'이냐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철저한 자기 부인과 부정입니 다. 우리는 철저한 자기 부인과 부 정을 통하여 철저한 하나님 시인과 긍정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그래 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 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세례는 바로 이와 같은 철 저한 자기 부인과 부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죄와 욕심에 대하여는 죽 고 의와 하나님께 대하여 살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 은 자요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기겠다는 것입니다. (롬16:11)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 수님은 그것을 하나님의 의를 이루 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의 본래 의미가 하나님의 의를 이룸에 있습니다. 자기 의를 드러내 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드러 내려고 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 습니다. 그것은 구원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우리가 평생을 예수를 믿어 도 그처럼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봉 사하여도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간증할 구원의 감격이 없는 까닭은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모 든 일에 중심과 목적에 자신이 살아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의를 이루려고 살아가고 있 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세례를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의미의 세 례를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 사 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 다. 자신의 의를 이루려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이루 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 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온전한 구 원을 이루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천국을 살며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며 구원의 감격 을 누리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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