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Άλλα σε προετοιμασία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다(2) / 마 8:1-4

by 【고동엽】 2021. 12. 24.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다(2)

마태복음 8:1-4

 

설교방송 (설교본문)

 

학생 때 어깨 너머로 배운 바둑을 두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10급이나 될까 말까한 실력이었으니 바둑이랄 것도 없지만 신기한 것은 남의 바둑을 훈수 할 때는 실력이 한 8급쯤으로 올라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왜 사람들은 자기 바둑보다 훈수를 둘 때 실력이 더 높아지는 것일까요?

 

 

 

우리말에 '욕심에 눈이 먼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이 욕심에 눈이 머는 현상 때문에 훈수를 둘 때보다 자기 바둑을 둘 때 실력이 낮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바둑을 두면 누구든지 이기고 싶은 승부 욕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승부에 대한 욕심이 눈을 멀게 해 볼 수 있는 수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의 바둑 훈수를 둘 때는 바로 승부 욕이 없어지게 되어 자기 바둑을 둘 때 보다 수가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산상보훈의 8복 중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음이 깨끗하고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본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이 보인다는 뜻으로 바둑에 비유하자면 하나님의 수를 읽을 수 있다는 뜻과도 같습니다. 마음이 깨끗해지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수가 보입니다. 하나님의 수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수로 이 세상을 산다면 그는 어떠한 일에도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깨끗하게 살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나중에는 큰 이익을 보게 됩니다. 깨끗하게 사는 것은 손해를 보면서도 해야만 하는 도덕적인 의무가 아닙니다. 물론 손해를 본다고 하여도 우리 크리스천들은 깨끗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하나님은 깨끗하게 사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세상을 만들어 놓으시지 않으셨습니다.

 

 

 

깨끗하게 살면 손해를 볼 것 같은 생각은 착각입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불어넣어 준 착각과 환상입니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환상과 착각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잠시 동안 그와 같은 환상과 착각이 현실로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시험(test)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시험에 보시기 위하여 잠시 그와 같은 환상과 착각을 현실로 나타나게 하시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깨끗하게 살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본다는 사실입니다. 깨끗하게 살면 패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깨끗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까닭은 하나님을 위해서 만도 아니고 세상을 위해서 만도 아닙니다. 그것은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인 것입니다. 깨끗하게 살아야만 결국 승리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깨끗하게 산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것이 아마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게 살도록 늘 힘쓰고 노력하여야만 합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을 하여도 완전히 깨끗한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살아야 하고 늘 깨끗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힘써야 하고 노력하다가 실패하고 무너질 때마다 그 때문에 아파하고 애통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깨끗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가장 먼저 노력하여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돈입니다. 죄의 뿌리가 되는 욕심 중에 가장 대표적인 욕심이 바로 돈에 대한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돈에 대하여 깨끗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것에 대하여도 어렵지 않게 깨끗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훌륭한 삶에 대하여 욕심을 가진 사람들이 돈에 대하여 깨끗한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훌륭한 삶을 살고 또 살려고 노력하였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돈에 대하여 깨끗한 삶을 버리기 위하여 돈 자체를 부인하였습니다. 가난함과 무소유를 선택하였습니다.

 

 

 

깨끗한 가난함을 우리는 청빈(淸貧)이라고 합니다. 청빈은 참으로 훌륭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청빈은 불완전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매우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돈에 대하여 좀더 완전하고 적극적인 개념으로 깨끗한 부자에 대한 생각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깨끗한 부자를 우리는 청부(淸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부(富) 자체를 복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부(富) 자체를 악(惡)이라고도 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 자체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비천한데도 처할 줄 알고 부한데도 처할 줄 안다라고 말씀함으로 부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을 받은 사람들 중에 부자가 많이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을 받은 사람들 중에 가난한 사람도 있었지만 부자도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들이 가난해도 깨끗한 삶을 살아가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저는 사랑하는 높은 뜻 숭의교회 교인 여러분들이 보다 적극적이어서 깨끗한 부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돈을 욕심으로 벌지 아니하고 소명으로 벌며 돈에 연연해하지 아니하고 돈을 바르게 잘 쓰는 사람들이 되어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인 돈이 잘 돌게 하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돈에 대하여 깨끗한 사람이 되려면 크게 두 가지를 염두에 두시고 살아야만 합니다. 첫째는 돈을 깨끗하게 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데는 두 가지 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 식으로 돈을 버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식으로 돈을 버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벌지 않으려면 모르지만 돈을 벌려고 하면 세상 식으로 해야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세상 식이 쉽고 하나님의 식이 어렵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의 식이 쉽고 세상 식이 어렵습니다.

 

 

 

처음에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깨끗한 사람이 되려면 특히 돈에 대하여 깨끗한 사람이 되려면 처음에 청빈에 대한 용기부터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가난하게 사는 한이 있어도 깨끗하겠다는 용기와 배짱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용기와 배짱의 근거는 하나님이어야만 합니다. 저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세요. 그러나 돈에 대한 소명을 가지세요.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린다고 돈에 대한 소명까지 버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돈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돈을 버세요. 돈 버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기독교의 정신이 아닙니다. 돈을 버세요.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버세요. 저는 돈에 대한 욕심이 없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야 세상이 좋은 세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돈에 대한 욕심이 없는 사람들이 돈에 대한 소명까지 버려서 결국 돈이 돈에 대한 욕심 있는 사람들에게만 몰려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돈에 대한 소명감까지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돈에 대한 욕심은 버려야만 합니다. 욕심으로 돈을 벌어서는 안 됩니다. 억만 금이 생겨도 하나님의 뜻과 식이 아니라면 과감히 포기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식과 방법으로만 돈을 버는 사람되기를 위하여 힘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돈을 벌려고 할 때마다 그 돈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주는 것인지를 확인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돈이 하나님의 식으로 버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 식으로 버는 것인지를 확인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꼭 하나님이 주시는 돈과 하나님의 식으로 버는 돈만을 선택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돈에 대하여 깨끗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좀 힘든 것 같고 때문에 돈을 벌 수 없는 것 같아도 돈에 대한 소명감을 버리지 아니하고 기도하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세상 식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큰 부자가 되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확신합니다.

 

 

 

돈에 대하여 깨끗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깨끗하게 돈을 번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돈을 바르게 잘 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돈을 바르게 잘 쓰는 사람이 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가 번 돈 중에 내 몫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몫이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돈에 대하여 깨끗하고 반듯한 사람이 되려면 몫 가르기를 정확하게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내가 깨끗하게 땀흘려 번 돈 중이라고 하여도 다 내 몫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크게 세 몫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몫이고 둘째는 가난한 자의 몫이고 셋째는 내 몫입니다. 그 몫에 대하여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기도하고 노력하면 우리도 얼마든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몫의 최소한 기준은 십일조입니다. 최소한 십의 일조를 뗄 수 있으면 그는 돈에 대하여 정직하고 반듯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돈에 대하여 깨끗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도둑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당신의 것을 도적질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도적은 돈에 대하여 깨끗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남의 것을 훔치지 않았다고 도적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몫을 정확하게 뗄 줄 모른 것도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도적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십일조에 관한 한 지극히 율법적이라고 하리만큼 철저 하려고 노력합니다. 통장에 넣어 둔 돈에 이자 붙으면 즉시 십일조를 뗍니다. 교인들이 사과 한 알을 주어도 할 수 있는 대로 그것의 십일조를 떼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십일조 외에도 구제와 선교를 위하여 떼는 돈들이 있음으로 십의 삼 사조 정도를 떼는 셈이 됩니다만 십일조로 드리는 헌금에 대하여 거의 율법적으로 철저 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사랑하는 높은 뜻 숭의교회 교인들이 십일조 대하여 정직한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 사람들 중에는 십일조를 구약의 율법으로 이해하여 신약 시대인 지금은 꼭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이해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 구약의 율법을 다 지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십일조는 율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돈에 대하여 반듯하고 깨끗한 사람이 되어 이 땅에서도 승리하고 성공하는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물론 정직한 십일조 생활을 하다가도 실패하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러나 그 실패를 궁극적인 실패로 보지 않습니다. 의인 욥도 넘어진 때가 있었고 잃어버린 때가 있었으나 결국은 인간적으로도 갑절의 복을 받았던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 교인 여러분들이 정직한 십일조를 하는 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진심으로 제 사랑하는 자녀들이 정직한 십일조 생활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깨끗하고 바르게 번 돈 중에는 다른 사람의 몫이 있습니다. 그 몫을 뗄 줄 모르면, 내가 번 돈이라고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돈에 대하여 반듯한 사람이 아닙니다. 깨끗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돈을 도적질 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몫 중에는 나라의 몫인 세금이 있습니다. 돈에 대하여 반듯하고 깨끗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정직한 세금을 내야만 합니다. 절세는 몰라도 탈세는 안됩니다. 탈세로 돈을 벌고 모으려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몫 중에는 임금과 노동이 있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 중에 하나는 내 몫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돈 중에 노동자들의 몫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몫을 정확히 뗄 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노동자의 임금을 도적질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직장에서 월급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들은 자기 받은 임금 중에 회사와 기업주에 정직하게 돌려주어야 할 노동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노동자의 임금을 착취하는 사업주도 많이 있지만 세상에는 불성실한 노동으로 회사와 사업주의 재산을 착취하는 노동자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정당한 임금과 노동으로 다른 사람의 몫을 정확하게 뗄 줄 아는 정직한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의 몫 중에는 가난한 사람의 몫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추수할 때 밭 네 모틍이를 모두 베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모퉁이는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남겨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혹 곡식 단을 나르다가 떨어트리거든 줍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남겨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삼 년에 한번 씩은 십일조를 더 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구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번 돈이라고 내가 다 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무리 깨끗하게 돈을 벌어도 하나님의 몫과 나라의 몫 그리고 다른 사람의 몫에 대하여 정직하고 반듯하게 몫 가름을 할 줄 모른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의 것을 도적질하는 도적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대충 이 정도만 말씀을 들어도 어떻게 그 모든 것을 다 지키고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믿음으로 도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다 실천하고 살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실 줄 저는 믿습니다.

 

 

 

전에 있던 교회에서 돈에 대한 설교를 몇 달 동안 계속해서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설교를 오늘 하루에 다 하려고 하니 참 힘들고 벅찹니다. 그 설교를 '깨끗한 부자'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습니다. 제 책을 권하는 것이 무척이나 쑥스럽지만 여러분 그 책을 한번 정독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의 나병환자(한센씨 병 환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깨끗케 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는 정말 깨끗한 사람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에게도 그 깨끗함과 건강함에 대한 욕심이 있어야만 합니다. 깨끗하지 못하면, 건강하지 못하면 결국 승리할 수 없습니다. 성공할 수 없습니다.

 

 

 

지난 번 설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오늘 우리 한국의 문제는 깨끗하지 못함에 있습니다. 엄청난 능력과 은사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셨지만 그리고 세계 일등 국가가 되어 세계를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계시지만 단 하나 깨끗하고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깨끗한 사람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그와 같은 기여를 해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돈에 대하여 깨끗하고 투명한 사람과 교회가 되기를 위하여 힘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가 이 때에 그와 같은 기여를 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저는 그것이 이곳에 높은 뜻 숭의교회를 세워주신 하나님의 높으신 뜻이라고 믿습니다. 몇 년 살지도 못할 세상에서 수치스럽게 부끄럽게 살지 말고 깨끗하고 건강하게 살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나라와 민족을 축복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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