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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가 하락하던 어느 날 /창12:10-20

by 【고동엽】 2021. 12. 24.
주가가 하락하던 어느 날
창12:10-20

미국의 심리학자 가운데 아브라함 매슬로우 라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분은 필요의 위계질서 라는 이론을 주창했습니다. 인간의 필요를 단계적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한 단계의 필요가 사람에게 채워질 때 인간은 그 다음 단계의 필요를 추구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 다. 예컨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 장 basic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굶주림과 목마름의 욕구, 먹어야 하 고 마셔야 한다는 육체적인 욕구인 데 이것이 채워지면 그 다음 단계로 사람은 편리하고 안전한 것을 추구 하게 되고 또 사랑 받고 사랑하고 싶어하는 사랑의 욕구를 추구하게 됩니다. 그것이 충족되면 그 다음 단계로 아름다움도 추구하게 되고 가치도 추구하고 인간이 마지막으로 추구하는 아주 최고급한 가장 중요 한 인간의 욕구는 자아실현의 욕구 다 라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어느 정도 진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 는 말할 것도 없이 먹어야 하고 마 셔야 하는 그런 육체적인 욕구입니 다. 이것이 제대로 충족이 안 되면 사람은 모든 인생의 방향이 흔들리 고 또 판단이 흐려지고 인생이 비틀 거리게 됩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생계의 문제, 생존의 문제는 해결된 오늘날에 있어서도 이것은 아직도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 문제 는 아직도 우리 피부에 닿는 아주 감각적인 중요한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국제적인 휴머를 다루는 어떤 책에 보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유럽의 목사님이 나체촌에 가 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설교를 하고 왔더니 목사님 사모님이 소감 이 어떠했냐고, 무슨 생각을 하며 설교를 했냐고 물어보더랍니다. 여 러분, 목사님 무슨 생각하며 설교 했을 것 같습니까? 몰라요? 입장 이 안 돼서. 이 분이 자기 부인 보 고 대답하기를 '저 사람들이 헌금 과연 낼 것인가 안 낼 것인가' 그 생각하면서 설교를 하셨답니다. 주 머니를 안 가지고 왔을 테니까. '목 사도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얘기를 풍자한 것입니다. 본문에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워 지는 아브라함이 어느 날 경험했던 경제적인 그런 시련의 문제가 취급 되고 있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 됩니다. 창세기12장10절에 보시면
"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 므로"
그래서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 갔다. 이런 말씀으로 본문이 시작이 됩니다. 농경 시대에 기근이 있었다는 것은 굉장한 타격이죠. 지 금도 물론 타격입니다만. 요즈음 말 로 바꾸면 우리에게 실감나는 현상 으로 바꿀 수 있다면 주가가 추락했 다, 하락했다, 주가가 폭락했다 이런 얘기입니다. 요즈음 신문 보도에 보 면 국제 원유가가 급등하고 환율이 불안정하고 종합주가지수가 930대까 지 내려오고 코스닥 지수에 심리적 지지선인 200선이 무너졌다 이런 보 도들이 나옵니다. 아마 주식 투자를 하시는 분들은 무척 곤혹스럽고 고 통스러운 시간을 지나게 될 것이라 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이 예를 들 어서 주식 투자에 실패했다면 그가 주식이 추락하고 삶이 곤경에 처한 그 어느 날의 에피소드가 본문에 기 록되어 있습니다. 경제적인 충격은 비단 이런 주식 투자를 한 사람에게 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에 게 있어서 아무도 예외일 수가 없습 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치고 경 제적 타격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 는,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나의 삶에 이런 경제적 충격이 다가 올 때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맞이하 느냐? 크리스천으로서, 특별히 그리 스도 인으로서 경제적 시련을 어떻 게 극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매 우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가 없습니 다. 아브라함은 실패했습니다. 아브 라함은 실패했어요. 그래서 오늘 본 문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하지 말았 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역으로 그가 해야만 했었던 일들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아브라함의 인생의 레슨을 우리의 레슨으로 취하고자 합니다. 경제적 시련이 우리의 삶의 장에 다가올 때 우리가 배워야 할, 기억해야 할 레 슨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저는 그 첫째 레슨은 우리의 삶의 자리를 쉽게 옮기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은 삶의 자리 를 쉽게 옮기지 말았어야만 했었습 니다. 자, 오늘 우리가 본문 10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어디 로 내려갔습니까?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그랬습니 다. 애굽으로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갔 던 그 사실 자체를 지나치게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애굽으 로 갈 수도 있지요. 또 하나님이 그 렇게 인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내려간 사연과 그 배경은 좀 다릅니다. 그 것은 아브라함의 매우 일관성 있는 신앙의 어떤 행진을 뒤집어 버린 사 건이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자, 다시 본문의 문맥을 기억하시기 를 바랍니다. 창세기12장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 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 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 라함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올 때에 이에 아브라함이 무엇을 좇 아왔다고 그랬습니까?
"여호와의 말 씀을 좇아"
거기 언더라인 해 두세 요. 그게 참 중요한 거예요. 하나님 의 말씀을 좇아왔다.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고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까지 올 수 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다시 한번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7 절에 보세요. 우리 다시 한 번 7절 을 읽습니다. 7절 시작.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 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 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아브 라함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가나안까지 왔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가나안까 지 왔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 오자마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아브 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지 아 브라함은 그 땅에 머물러 있는 것이 정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조금 어려움이 생겼다고 기근이 생겼다고 그래서 쉽게 포기하고 애굽으로 내 려간 것 이예요. 이것은 엄격하게 말하면 아브라함의 도피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도피는 아브라함만의 사 건이 아니라 우리도 인생의 어려움 의 문제 앞에 부딪치면 장애물이 생 기면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뜻을 묻 기 보다 찾기 보다 말씀을 붙들기 보다 우리는 삶의 장에서 도피하려 는 유혹을 받습니다. 도피할 때 저 마다 자기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 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유가 있었겠 지요. 하나님이 정말 나를 이 땅에 살기를 원하신다면 왜 이런 어려움 이 찾아와 라고 아브라함은 생각했 을 지 모릅니다. 아마도 내가 하나 님의 뜻은 저 아래 애굽 땅일지도 몰라 생각했을 지도 모르지요. 하나 님이 축복하신다면 인생의 길은 만 사형통해야 한다 우리가 이것을 기 독교인들의 신화 라고 할 수가 있습 니다. Christian myth 라고 말할 수 가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아닙니다. 찬송가에는 만사형통 하 리라 있지만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 진 않습니다. 너희들이 그리스도인 들이 세상에 살 때 너희가 이 세상 에서는 환란을 당한다고 그랬어요 안 당한다고 그랬어요? 당하나 그랬 어요. 우리가 그리스도인 임에도 불 구하고.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 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 땅을 살아갈 때에 환란 은 있을 수가 있다고 성경은 가르칩 니다. 왜 환란을 주시는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그 환란 때문에, 장애물 때문에 우리가 긴장의 띠를 풀지 않고 계속 주님 의지하고 기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다소간의 장애물을 인생의 장에 지속적으로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지도 모릅니 다. 저 유명한 느헤미야가 고국을 떠나 페르시아 라는 나라에서 출세해서 장관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느헤 미야는 자기 조국을 잊을 수가 없었 어요. 그래서 자기가 모시고 있는 아닥사스다 왕이라는 그 당시 유명 한 왕에게 열심히 기도하고 넉 달 동안 기도하고 마음을 준비하고 드 디어 부탁을 해서 허락을 받아냅니 다. 너도 돌아가면 좋다. 돌아가서 네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라. 성을 쌓아주고 오너라. 얼마나 기뻤겠어 요? 우리가 느헤미야서에 보면 여호 와의 선한 손이 나를 축복하셔서 왕 이 나를 허락해 주셨다. 기도의 응 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했어요. 그는 기쁨과 감격으로 조국으로 가서 예루살렘에 성을 쌓 아주는 일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시 작하자마자 만사형통 했습니까? 어 려움에 부딪칩니까? 읽어보셨어야 알지? 일을 시작하자마자 어려움이 생겨요. 자,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 기도에 응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착수하자마자 느헤미야는 장애물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장애 물 때문에 느헤미야는 더 엎드려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 과업을 완성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인생의 장에 불어 닥친 폭풍우, 경제적인 시련, 그 밖의 어떤 시련 앞에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도피하십니까? 쉽게 자리를 옮기십니까? 너무나 쉽 게 그래 여기 있을 곳이 못돼 직장 을 옮기시는 분은 아닙니까? 쉽게 그렇게 이사를 결심하지는 않으십니 까? 그렇게 해서 쉽게 이민을 결심 하지는 않으시나요? 너무나 쉽게 이 혼을 결심하지는 않으십니까? 너무 나 쉽게 은행도 옮기지 않으십니까? 은행 옮길 때도 기도하고 옮기세요. 하나님 정말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 님의 합의한 뜻일까요? 우리는 주의 뜻을 찾기 보다 묻기 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기 보다 단순 히 어렵다 불편하다는 사실 때문에 너무나 쉽게 삶의 자리를 옮기려고 합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mistake 실수 No.1. 아브라함이 배웠어야만 했었던 교훈은 무엇입니까? 삶의 자 리를 너무 쉽게 옮기지 말아야 한다 는 사실 이예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그리 고 이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여기 서 서 이 장애물과 대결해야 할 이유가 있지 않은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 리는 삶의 자리를 너무 쉽게 옮기지 말아야 합니다. 자, 아브라함이 배웠어야 할 두 번 째 교훈이 있습니다. Lesson No.2 두 번째는 그는 사람을 두려워 하지 말았어야만 했었습니다. 우리가 배 우는 두 번째 교훈은 사람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 이예요. 여러분, 사람이 한 번 실패하기 시 작하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두려움 이 생기면 그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일단 그 두려움에 사로잡히 게 되면 사고와 판단이 마비돼요. 무얼 해야 좋을지 모르게 됩니다. 인생의 방향이 막 흔들립니다. 그렇 게 되면 매사에 아무런 일을 할 수 가 없게 됩니다. 이 두려움 이란 것 은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가 방금 IMF를 겪었고 또 아직 도 지나가고 있습니다마는 미국도 IMF 비슷한 대 경제공황을 지난 때 가 있어요. 그 때 미국 사람들이 벌 벌 떨면서 그들의 미래를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대공황 중에 유 명한 대통령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 실의에 빠진 절망적인 사람들에게 그의 유명한 취임사를 통해서 그 장애물에 다시 대결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었던 유명한 스 피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국민여 러분, 우리가 정말 두려워 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뿐입니다. 이 두려움을 빼고서는 두려워 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만큼 두려움 이라는 것은 우리의 행동을 마비시키고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바로 그 케이스 에 빠진 것입니다. 그가 비틀거리면 서 어렵다 애굽으로 가면 나을까 이 런 생각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가자 마자 그가 더 커다란 함정 속에 빠 져들어가는 모습을 보세요. 그가 두 려우니까 혹시 낯선 문화 속에서 사 람들이 나를 해치지나 않을까 자기 와이프가 이뻤던 모양 이예요. 내 이쁜 와이프를 탐낸 나머지 사람들 이 내 목숨까지 노리지 않을까 생각 한 나머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아내에게 어떻게 말합니까? 여보 당 신에게 나하고의 관계를 묻거든 내 누이라고 그래. 세상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 치졸한 모습을 보십 시오. 그럴 수가 있습니까? 믿음의 조상님이. 도대체. 물론 거기서도 아 브라함의 변명이 있을 수는 있어요. 사실 아브라함과 그 아내의 관계가 누이관계 예요. 배 다른 누이관계, 이복누이 관계입니다. 창세기20장12 절에 보시면
"저는 나의 이복누이라
"는 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계 모의 딸이 바로 아브라함의 아내였 던 사라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스코 어 도대체 누이하고 사는 거예요 아 니잖아요? 현재는 어쨌든 와이프 아 니예요. 그러나 자기가 두렵다 사람 들이 나를 해칠지 모른다 는 생각 때문에 와이프에게 자기의 신분을 감추고 누이라고 말하라고 말하고 있는 이 아브라함의 그 꼬라지를 보 세요. 아브라함의 모습. 그런데 여러분, 사람이 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아브라함 같은 실 수가 나에게는 없다고 장담할 수가 있습니까? 최근에 불미한 기독교인 들이 연루된 사건 때문에 어떻게 하 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수가 있느냐 우리가 돌을 던지기는 쉽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그 입장, 그 자리에 설 때 과 연 나는 그렇지 않다고 100% 장담 할 수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 니다. 미국에 제가 좋아하는 유명한 목사 님 가운데 찰스 스윈돌 이라는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이 한 번 주일날 설교를 하다가 우리 크리스천들은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교통신호도 정확하게 지키 십시오. 이렇게 설교를 했습니다. 저 도 가끔 그 설교를 합니다만. 설교 끝나고 예배 끝나고 이 목사님이 집 에 가다가 딴 생각을 하다가 빨간불 에 지나갔어요. 지나가는 순간 감이 이상해서 내가 빨간불 지나갔구나 그러고 옆에 보니까 자꾸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애요. 순간적으로 아 교인들이로구나 우리 교인들이로구 나 내가 설교 해놓고 내가 어기고 교인들에게 들킨 거라 말이죠. 그냥 쳐다보지 않고 엑셀레이터를 밟고 얼른 집으로 와 버렸습니다. 얼마 후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아까 아까 어디 차 가지고 지나가셨죠? 내일 한 번 우리 교인들이 목사님 만나고 싶습니다.' 아이구 이거 큰 일 났어요. 교인들이 아마 따지자고 나를 만나자는 모양이다. 그냥 점심 같이 해요? 목사님. 그렇지만 아이 이거 설교한 것 실천하지 않았다고 단단히 나를 아마 따질 모양이다. 한참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다가 그 러자고 만나자고. 그 이튿 날 점심 시간에 약속된 자리로 갔습니다. 이 분이 굉장히 휴머가 많은 분이었어 요. 아주 sense of humor가 있는 분이었어요. 딱 약속 장소에 목사님 이 나타나는데 목에다 무얼 걸고 나 왔어요. 무얼 써 갖고 나왔어요. 영 어로 I am guilty. 나는 죄인이다 나는 죄인이다 쓰고 나오니까 얼마 나 우스워요. 교인들이 막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박수를 치고 환영을 하더래요. 딱 그 모습을 보더니 목 사님이 갑자기 뒤를 딱 돌아섰어요. 뒤에도 무얼 걸고 있어요. 뒤에 보 니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을 들어 나를 치라. 사람들이 그런 자리에 처하면 그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할 수도 있습 니다. 잠언서29장2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려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어디서 보신 말씀 같지 않아요? 엘리베이터 속에다 적어 놨어요. 좀 읽어봐요. 타신 분들은. 따라서 하세요.
"사람 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 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 하리라"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이 런 실수를 낳은 것 이예요. 그러나 같은 잠언에, 아니 잠언 전체에 가 장 중요한 강조점이 있다면 한 말씀 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하나님 두려워하 게 되면 사람 두려워 하지 않게 돼 요. 우리가 인생을 두려워 할 수 있 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 나님을 봐야 돼요.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돼요. 그러면 사람은 두 렵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의 포커스 가, 초점이 하나님을 떠날 때 그리 스도인들도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 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 하면 사람을 두려워 하고 상황을 두 려워 하기 시작해요.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할 때 루 터와 그 당시 캐톨릭 교권과의 싸움 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상의 싸 움이었습니다. 유럽 전체를 지배하 고 있었던 대제국의 세력이었던 캐 톨릭과 단신의 루터가 어떻게 그 대 결이 가능할 수 있겠어요? 그가 보 름스 라는 웜스의 재판정에 소환을 받았을 때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말 립니다. 가면 너는 죽음이다. 네 파 문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 고 네 책은 이단의 책으로 이미 다 불살라졌고 너는 끝이다 가지 마라. 그날 밤 기도합니다. 깊이 루터가 기도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 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 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봤을 때 그 이튿 날 벌떡 일어나서 이렇게 말합 니다. 나는 보름스로 가겠다. 친구들 이 말립니다. 가지 말라고. 저 보름 스에서 저 보름스의 재판정의 기왓 장 보다 더 많은 숫자의 악마들이 나를 기다린다 해도 나는 기어이 가 겠다. 갔습니다. 그리고 재판정에 서 서 이단의 교리를 시인하라고 말하 는 재판정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만 매여 있 나이다. 내가 여기 섰나이다. 나는 달리 말할 수가 없나이다. 오 주여 나를 도와 주소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자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극 복할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배 웠어야만 했었던 레슨은 사람을 두 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라는 교훈입 니다. 세 번째로 아브라함이 배웠어야만 했던 또 하나의 레슨은 제단 쌓기를 소홀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교훈 입니다. 제단 쌓기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경제적 시련이 올 때 인생의 어려움이 올 때 우리는 무엇보다 제단 쌓기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 아브라함이 이런 궁지에 빠졌을 때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애굽 땅에 밀려 났을 때 기도한 일 있습 니까? 자기 와이프를 바로가 데려가 려고 그래요. 기도합니까? 아브라함 이. 제단을 쌓았다는 흔적이 없어요. 참 이상한 것은 정말 기도가 필요한 순간에 아브라함이 기도하지 않습니 다. 우리 새가족반 공부를 할 때 아마 여러분, 아프리카에서 기르는 secretary bird 라는 새의 얘기를 여 러분이 들었을지 몰라요. 비서 새 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학명은 따로 있다고 그래요. Secretary bird 이 새는 아주 이상한 새입니다. 평소에 는 아주 잘 날아요. 그런데 위험을 감지하면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나를 공격하고 있다 위험을 느끼기 시작 하면 날지 못하고 땅을 깁니다. 날 아야 할 때 날지 못하는 새. 정말 날아야 할 시간에는 날지 못하는 새. 기도가 필요할 때 기도하지 못 하는 나. 그 새의 모습은 꼭 우리의 모습과 얼마나 방불합니까? 다같이 그 꼴이 내 꼴이다. 그것이 바로 내 모습일 수가 있어요. 우리들의 모습 이예요. 어떤 때보다 기도가 필요한 시간 기도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찬양하는 아브라 함의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예 배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언제 다시 제단을 쌓게 되는 줄 아십니까, 여러분? 여기 창 세기13장에 보시면 1절에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창세기13장1절에 아브라함이 애굽을 떠나서 다시 가 나안 땅으로 와요.
"아브람이 애굽 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그 다음에3절 보세요.
"그 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아이 사이 전에 장막쳤던 곳 에 이르니"
자, 4절 다같이 읽겠습 니다. 창세기13장4절 다같이 시작.
"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 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 라"
전에 제단을 쌓았던 벧엘, 가나 안 땅 벧엘에 와서 거기서 비로소 아브라함은 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애굽 땅에 있을 때 그는 하나님을 부르지 못했습니 다. 제단이 없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제단이 필요한 시각, 기도가 필요한 시각, 찬양이 필요한 시각 그는 완 전히 하나님을 망각하고 기도를 망 각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하나님이? 그런데도 애굽 땅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 가족을 보호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두려워 했던 사실이 왔어요. 아내가 이쁘니 까 바로가 그 나라의 왕 바로가 데 려오라 그래서 궁중에 갔어요. 갑자 기 바로의 궁중에 막 사건이 생기면 서 바로가 왜 그럴까 나중에 알았어 요. 아브라함의 아내 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래서 그녀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주 특별히 보 호하신 것이지요. 왜 보호하셨을까? 이 지경의 아브라함, 이런 모습의 아브라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보 호하신 이유가 어디 있느냐? 17절에 그 대답이 나와 있습니다. 창세기12 장17절 한 번 다같이 읽겠습니다. 창세기12장17절 시작.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 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누구 때문에? 사래의 연고로. 사래 때문에 아브라함이 형편없이 흔들리 고 실수하고 있지마는 하나님이 보 시니까 그 부인 사래가 안 됐거든 요. 사래를 보시고 사래의 연고로 사래 때문에 하나님이 그녀를 보호 하시고 오히려 그 환경 속에서 잘 지켜 주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보면 기도하는 아 내의 덕을 보고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여기 남자들은 자기들이 잘 해서 집안이 무사한 것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그렇지 않아요. 저 도 이따금씩 참 제 부족을 느낄 때 마다 하나님이 나같은 사람을 왜 쓰 시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가 이 말씀을 설교로 준비하면서 내가 목 회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이 말 씀을 저는 이렇게 적용했습니다. 이 목사야 니가 목회하는 것은 명자의 연고니라. 웃지 마세요. 저뿐만 아니 라 여기 그런 사람 많아요. 따라서 하십시오. 당신의 연고입니다. '우리 가정이 이만큼 살고 있는 것' 같이 오신 남자들은 옆에 있는 여자들 보 고 '당신의 연고입니다' 한번 말해 보세요. 시작. 당신의 연고입니다. 못 해요? 당신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속으로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 당신 때문입니다' 이런 식 으로 말하는 사람 있는지 몰라요. 더 중요한 이유는 저는 하나님의 자 비와 긍휼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아 브라함의 부족함, 연약함에도 불구 하고 이 가문을, 아브라함을, 사래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 에 보존이 되었어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 이 창피를 당합니다. 무안을 당합니 다. 이 기막힌 광경을 보세요. 18절, 창세기12장18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 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 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
자, 이걸 오늘 식으로 바꾸어서 말하면 바로가 하나님 믿는 사람 이 예요 안 믿는 사람 이예요? 안 믿는 사람 이예요. 그러니까 바로가 안 크리스천이예요. Non Christian입니 다. 안 크리스천인 바로가 크리스천 인 아브라함을 불러놓고 말하기를 ' 네가 어찌하여 거짓말을 하고 나를 이런 궁지에 빠트렸느냐? 네가 어찌 하여 이럴 수가 있느냐?' 여러분, 크리스천이 세상 앞에 부끄러움을 당하는 장면을 보세요. 아니, 하나님 을 믿는 당신이 어째서 거짓말을 하 고 그럴 수가 있습니까? 당신 그럴 수가 있습니까? 오히려 거꾸로 지금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세요. 세상 앞에 부끄러운 그리스도인의 모습. 여러분, 우리가 이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자리에 설 수가 있습니 다. 만약 아브라함이 기도했었더라 면 하나님을 붙들었었더라면 그리고 주님의 인도를 구할 수가 있었더라 면 이 부끄러움을 이 창피를 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의 시련이 닥쳐오 고 경제적인 충격을 당하고 어려움 을 당할 때 그럴 때일수록 할 일이 뭔 줄 아세요? 그럴 때일수록 기도 하셔야 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찬양 하셔야 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예배 하셔야 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봉사 도 더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후퇴 하시면 절대로 안 돼요. 제가 잘 아는 조그만 중소기업 사장 중의 한 분인데 이 분이 자기 사업 의 모델로 이랜드의 박성수 사장을 생각했습니다. 세금도 정직하게 내 고 정직하게 사업을 해서 성공을 한 박성수 사장을 자기의 모델로 삼아 서 자기도 한 번 그렇게 사업을 해 보자. 그래서 정직하게 세금 신고하 고 다 하다가 쫄딱 망했습니다. 박 성수 사장 흉내 내다가 쫄딱 망했습 니다. 그 회사의 직원 몇 사람 안 돼지만 직원으로 있던 사람 하나를 또 제가 알아요. 그래서 회사 문 닫 은 다음에 제가 만나서 요즈음 어떻 게 지내느냐고 그랬더니 목사님 저 요새 교회 열심히 나가요. 그 사람 본래 교회 안 나갔던 사람 이예요. 회사도 망하고 그랬는데 어떻게 당 신 교회 나가게 되었느냐고 했더니 이런 얘기를 해요. 자기 회사가 망 하는 과정에 있어서 자기 사장을 잘 지켜 봤대요. 자기는 이렇게 생각했 대요. 우리 사장이 열심히 기도하고 세금도 정직하게 내고 그러는데 회 사가 더 잘 되지 않고 더 망해간다 말이죠. 그러니까 틀림없이 우리 사 장이 이제는 예수를 안 믿는다고 선 언을 하고 교회를 안 나갈 거라고 생각을 했대요. 그런데 사업이 안 될수록 회사가 망해갈수록 자기 사 장이 더 열심히 예수 믿는 것 보고 야 예수가 뭔가가 있기는 있구나. 그래 자기도 믿기로 결심했대요. 망 해가는 회사 속에서 은혜를 받았어 요. 신기하게 그렇게 은혜를 받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저는 거기에 중 요한 레슨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우리의 가치관의 모든 것이 만약에 돈이라면 돈이 없어지면 끝나는 것 이지요. 그러나 이 사장의 가치관은 돈이 아니예요. 돈 때문에 그렇게 포기할 수 있는 예수가 아니었다 말 이죠. 이 점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련을 받으셨습니다. 배고픈 시련이 있었 습니다. 광야에서 금식하고 계셨습 니다. 마귀는 와서 이 돌들을 명하 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그 분은 그 돌을 떡으로 변하게 할 수 있었지만 그 기적을 예수님은 행하지 않으셨 습니다. 계속 배고팠어요. 배 고프면 서 견디신 거예요. 그러면서 이런 대답을 하셨습니다. 사탄에게 뭐라 고 대답하셨어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
떡이 부족한 순간에 떡 때문에 비굴하고 떡 때문에 죄 짓지 아니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을 수가 있다는 것, 이것은 더 높은 가치관 아니예요? 이런 자존심 이 있어야 할 것 아니예요? 내가 망 해도 거짓말하지 않겠다. 망해도 내 가 예수 포기하지 않는다. 망해도 나는 하나님을 붙든다 말이예요. 떡 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 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라고 생각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삶을 살다 보면 생활이 어려워지고 시련을 당 하고 그런 순간들이 있을 수가 있습 니다. 그 때에도 제단을 허물지 마 십시오. 기도하셔야 합니다. 찬양을 부르셔야 합니다. 더 열심히 주께 봉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님의 승리를 믿을 수 있어야 합 니다. 제가 마지막 얘기를 드리죠. 제가 최근에 그 망한 중소기업의 사장을 만났어요. 목사님 제가 재기했어요. 아름답게 재기했습니다. 요즈음 괜 찮아요. 잘 풀리고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은 믿는 자를 결코 놓지 않으 십니다. 그에게 마지막 승리를 주실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여 러분,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밝아오 는 새 천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정황이 어렵고 힘들고 아플지 라도 저와 여러분이 함께 주님을 붙 들고 제단을 쌓고 기도하고 찬양하 며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는 봉사자 의 모습으로 이 한해 길을 걸어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형편이 항상 내가 기대하는 것처럼 순탄하 거나 축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붙잡아야 할 예수, 내 가 신뢰해야 할 예수, 나를 위해 생 명을 주시고 삶의 진정한 의미와 그 리고 영원한 가치를 주신 예수 그리 스도를 붙들고 산다면 마지막 승리 는 반드시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 다. 주님 어려워도 저는 주님 버리 지 않겠습니다. 삶의 정황이 어려워 도 저는 기도하겠습니다. 찬양하겠 습니다. 주님 붙들고 살겠습니다. 주 님 높여 드리겠습니다. 주님을 더 열심히 섬기는 봉사자로 살겠습니 다. 하나님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십시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 다. 밝아오는 새 천년의 첫 해를 맞 이 하면서 정말 우리의 삶에 많은 도전과 어려움이 있지마는 사랑하는 주님 귀한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 고 우리가 한평생을 진정한 봉사자 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게 해 주시옵 소서. 오 아버지 하나님 도와 주시 옵소서. 성령님 함께 하시고 우리의 삶 속에 진정한 승리, 마지막 승리 를 허락해 주옵소서. 하나님 감사합 니다. 밝아오는 새 천년 우리를 둘 러싸고 있는 삶의 정황이 여전히 피 곤하고 어렵고 무겁고 부담스런 인 생이라 해도 그러나 기도를 끊이지 않겠습니다. 찬양을 쉬지 않겠습니 다. 제단을 쌓겠습니다. 주님을 경배 하겠습니다. 주님을 봉사하겠습니다. 섬기겠습니다. 주여 우리를 도와 주 시옵소서. 우리에게 마지막 승리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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