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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δεδομένα 18,185편 ◑/प्रवचन पूरा

성령의 힘

by 【고동엽】 2021. 12. 23.

사무엘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
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욥은 산다는 것은 전쟁과 같다고 했습니다(욥 7:1). 우리는 많
은 것들과 싸워야 합니다. 가난, 질병, 문제, 타락한 문화, 악한 영들과 싸워야 합니다. 이처
럼 삶 속에 수많은 전쟁이 있기에, 사람들은 영웅을 원합니다. 좋은 지도자를 갈망하고, 과
거의 위인들을 추억하기도 합니다.

성도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 중 한 명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전쟁의 영웅입니다. 신앙의
모범이며, 위대한 나라를 세운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에 처음 등장할 때, 다윗은
별 볼일 없는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재주라고는 수금 타는 것뿐이었습니다. 나이도 어렸
고, 배움이 깊지 않았습니다. 리더로서 특별한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가 가진 것이
라고는 지팡이와 막대기뿐이었습니다. 이러한 다윗이 시대의 영웅이 된 것은 성령의 역사
입니다. 성경은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삼상 16:13)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성령으로 감
동된 사람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것, 전쟁에서 승승장구한 것, 역사에 남는 지도
자가 된 것, 모두 성령의 힘입니다(삼상 16:18).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의 시종
에 불과한 여호수아가 위대한 지도자가 된 것도 성령의 힘입니다(민 27:18-20). 오늘의 우
리들도 성령의 힘을 덧입어야 합니다. 성령의 힘을 입으면, 달라집니다(겔 36:26,27).

그러면, 성령의 힘을 받으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알아봄으로, 세상을 능히 이기는 하나님
나라의 용사들이 됩시다.

첫째, 생각이 달라진다

성령의 힘으로 무장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사무엘상 17장을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만 말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과 자신에 대한 다윗의 생각입니다. 블레셋과 골리앗은 이스라엘
군대를 우습게 생각했습니다(삼상 17:10). 사울 왕과 이스라엘도 스스로를 약한 존재로 생
각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싸워보지도 않고 골리앗 앞에서 두려워 떨었습니다(삼상
17:11).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령으로 감동된 다윗은 환경과 사람을 보고 떨
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이스라엘 군대를 하나님의 군대로 생각했습니다(삼상
17:26).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짐승의 하나로 생각했습니다(삼상 17:36). 이것이 성령의 힘
입니다. 다윗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것을 보았고, 미리 싸워본 것도 아닙니다. 어쩌
면 다윗은 아직 소년이기에 더 두려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성령의 힘을 덧입
었기에, 골리앗 대신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라는 정체성을 먼저 생각했습
니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입니다. 누구에게나 환경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성령의 힘을 덧
입지 아니하면, 환경에 무너지고, 유혹에 넘어가고, 시험에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
나 성령의 힘을 덧입으면, 예수님 생각으로 충만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부터 생각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부터 생각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승리의 삶을 살기 원
하십니까? 그렇다면 생각을 악한 마귀에게 점령당하지 맙시다. 날마다 기도함으로 성령의
힘을 덧입읍시다. 성경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
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
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고 약속합니다. 성령의 힘으로
항상 예수님만 생각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히 3:1).

둘째, 말이 달라진다

성령의 힘으로 무장하면, 말이 달라집니다.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 120문도
는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했습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
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성령의 힘으
로 무장한 제자들이 나가 입을 열 때, 하루에 3천 명이 회개했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
이 된 자가 일어나 뛰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세상의 학식 있는 자들이 주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한 도시가 변화되었습니다. 이는 성령의 힘
으로 무장된 말의 능력이요, 권세입니다(잠 18:21).

안타깝게도 오늘날 말이 타락해가고 있습니다. 너무나 거침없이 욕을 합니다. 상스러운 이
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합니다. 알지도 못하는 것을 마치 진짜인 것처럼 말합니다. 비
난과 다툼의 말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말의 공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로 인해 상처 받고 있습니다. 말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말에 존경심이 없습
니다. 언어의 품격이 사라졌습니다. 좋은 신앙은 아름다운 말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을 이
기는 힘은 성령의 말입니다. 말만 잘해도 복 받는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생명을 사모하
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
에서 금할지어다."(시 34:12,13).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이 숱한 고난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은 비결은 ‘말’입니다. 다윗은 어렵고 힘들 때마다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쫓기는 광야생
활 중에서 시편을 지었습니다. 사람을 축복하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다윗은 말한 그대로 푸른 초장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
와 막대기를 통하여 승리의 영광을 누렸습니다. 우리 모두 다윗처럼 성령의 힘을 의지하
여 천국의 말을 합시다. 복된 말, 살리는 말, 긍정적인 말, 적극적인 말을 많이 합시다. 성령
은 입술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게 하십니다.

셋째, 행동이 달라진다

성령의 힘으로 무장하면, 행동이 달라집니다. 많은 행동 중에서 우리의 삶에 중요한 것
은 반복되는 행동입니다. 즉, 습관입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입니다. 교회에 다녀도 습관
이 달라지지 않으면 삶의 변화는 없습니다. 혹시 나쁜 습관이 있다면 빨리 버려야 합니다.
엘리의 두 아들들이 왜 범죄했습니까? 제사장이었지만,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
니다(삼상 2:13,14).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습관적으로 자기가 먼저 취했습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도 나쁜 습관 때문에 실패를 만났습니다(렘 22:21).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습관은 기도하는 습관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습관을 가지셨습니
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그곳에 이르러 저
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눅 22:39,40). 예수님은 새벽을 깨
워 기도하셨습니다(막 1:35).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눅 6:12). 예수님은 기도하심으
로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을 받았습니다. 기도하심으로 성령의 힘을 계속 덧입을 수 있었습
니다.

2007년에는 우리도 기도의 습관을 가집시다. 지금이야말로 기도의 불을 밝힐 때입니다. 새
벽을 깨워 시대의 여명을 밝히는 기도의 용사들이 됩시다. 내 힘으로 하는 것 아닙니다. 내
육체를 이길 힘은 오직 성령뿐이십니다. 성령의 힘으로 기도합시다. 기도의 자리에 주인공
이 됩시다. 우리가 기도하기를 결단하면 성령이 도우십니다. 우리가 기도의 땀을 흘리면
천군천사가 우리를 돕습니다(히 1:14).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즐겨 들으십니다(시
55:17).

성령의 힘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이며, 힘의 근원이며, 의지해야 할 유일한 힘입
니다. 예수님도 성령의 힘으로 사셨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일하셨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살아감으로 달라지는 인생이 됩시다. 내가 달라지면 환경이 달라집니다. 지금이 달라지면
미래가 달라집니다. 다른 사람도 살맛나게 해주는 복된 사람이 됩시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령의 힘으로 살기를 원합니
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성령을 통해 달라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
립니다. 아멘.

출처/최성규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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