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그가 슬퍼하며 떠난 진짜 이유/마가복음 10:17-22

by 【고동엽】 2021. 12. 23.

그가 슬퍼하며 떠난 진짜 이유
마가복음 10:17-22


어떤 집의 부부가 박찬호때문에 부부싸움을 했대요.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부인이 남편에게 말하기를 당신 박찬호 선수 어머니가 일본 사 람인 것 알아요? 그러더래요. 이 남 편이 뭐 헛소리 하는 것 아니요? 헛 소리라니요 신문에 났는데요, 신문 에. 참, 당신 정말 정신 어떻게 된 것아니야? 그랬더니 그 아내가 신문 쌓아놓은 것을 뒤지더니 신문 한 장 을 가지고 왔더래요. 일간 신문의 스포츠란을 펼치더니 큰 글씨로 쓴 것을 보여주는데 보니까 '한국인 박 찬호와 일본인 노모'... 아직 그 뜻 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도 있어요. 일본인 노모선수를 늙은 어머니로 오해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오해 는 아주 애교가 있는 오해이고, 또 피해성이 전혀 없는 오해라고 할 수 가 있겠지요. 그런데 어떤 오해는 우리 인생의 길에서 매우 중대한 돌 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남길 수도 있 습니다. 세계 제 2차대전이 종료된 직후에 필립핀의 산악지대에 숨어있 는 일본 군인에게 헬리콥터가 저공 비행을 하면서 종전 방송을 했습니 다.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방송을 했습니다. 전쟁은 끝났습니 다. 일본군들은 항복을 하고 나오시 고 당신들은 당신들의 조국인 일본 으로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산악지대에 숨어있던 많은 일 본군인들은 이것을 연합군의 전술 전략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그 들은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은신 했습니다. 어떤 일본 군인은 종전 후 무려 30년 동안 동굴 속에 들어 가서 생명을 유지하다가 1970년대 말에 원시인과 같은 모습으로 동굴 속에서 발견된 일본인들이 있었습니 다. 이것은 오해 때문에 30년간의 세월을 잃어버린 비극이라고 할 수 가 있겠지요. 오늘 본문에도 참 안 타깝고 슬픈 그런 비극의 에피소드 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오해 때문이 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주인 공을 가리켜서 한 사람이다 이렇게 성경은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17절에 보시면 한 사람이 달려왔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 그런 데 같은 기사를 기록하고 있는 마태 복음 19장 20절에 보시면 그를 한 청년이라고 기록합니다. 같은 기사 가 누가복음 18장 18절에는 그가 관 원이었다. 그 사회의 엘리트 계층이 었던 관리였다. 관원이었다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으로 봐 서 그는 또한 부자였습니다. 젊은이, 그는 청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천국 이나 영생의 문제를 인생을 다 산 노인들이 기댈수 있는 어떤 망상의 나라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 았습니다. 그는 사회적 성공을 거둔 관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천국이나 영생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실패한 사람들이 취하는 일종의 정신적 도 피처와 같은 곳으로 생각하지도 않 았습니다. 그는 부자였습니다만 천 국을 가난한 사람들의 심리적 보상 의 인간의 내면속에 존재하는 허구 의 나라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 다. 그는 진지했고 경건한 구도자의 자세를 가져 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인생의 숙제를 풀 수 있는 올 바른 대상 앞에 찾아왔습니다. 예수 님앞에 찾아왔습니다. 그는
올바른 대상을 찾아왔을 뿐만 아 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영 생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비극적인 사 건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본문의 22절에 보시면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 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을 그냥 이 사람이 부자였기 때문 에, 혹은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예수님을 떠나 갔다. 이렇 게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피 상적 관찰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등 지고 슬퍼하며 떠나간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해때문이었습 니다. 그를 예수님으로부터 돌이켜 떠나가게 만든 오해의 정체는 도대 체 무엇일까요?
첫째로, 그것은 예수가 누구이신 가에 대한 오해가 있었습니다. 첫째 오해는 예수님이 누구냐에 대한 오 해가 있었어요. 자, 본문 시작되는 1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성경을 똑 바로 읽으면 그 말씀 자체가 살아납 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 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 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자, 이 말 씀 속에서 그가 예수님을 어떤 호칭 으로 불렀습니까? '선한 선생님'이 여 이렇게 불렀습니다. 이 호칭에 대해서 예수님 자신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 다음 18절에
"예수 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또 이 말씀을 피상적으로 관찰해서 얼른 결론을 짓기를 예수님은 자신이 선하다는 것을 부인하셨다고 생각하시면 안됩 니다. 절대로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가운데는 선한 이가 없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선함이 구원의 조건일수가 없다, 자신의 선 함을 들고 하나님앞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 우리가 잘 아는 말 씀을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말씀했고 이어서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 앞에 인정될 수 있는 선함을 가지고 있는 자는 하나님 앞에는 없다. 인 간의 선은 상대적 선에 불과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안목에서 관찰될 때 그 선을 가지고 주 앞에 나올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 문은 저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선 한 자는 하나님밖에 없다."라고 말 씀하시는 의도가 어디 있을까? 저는 간접적으로 본문을 통해서 예수께서 시사하려는 더 중요한 진리는 이것 입니다.
"내가 하나님이다"
이 말이 예요. 나는 선한 선생의 차원에 있 는 사람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이시 다라는 선언이라는 것을 우리가 주 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대한 모델 로서의 인간, 오늘 예수님을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존경 할 만한 스승, 위대한 인류의 교사, 위대한 휴머니테리안으로 예수를 생 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예수 에 대한 올바른 관점이 아닙니다. 예수는 스승 이상의 분이십니다. 그 는 하나님이시고 무엇보다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구주이십니다. 이것 이 정답입니다. 위대한 인간은 위대 한 모본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 일 수는 없습니다. 영국의 옥스퍼드 와 켐브리지에서 가르쳤던 금세기의 위대한 크리스챤 평신도였던 C.S 루이스가 켐브리지의 채플에서 한 번은 설교를 하면서 '예수의 구주되 심' 이란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가 끝난 뒤 한 학생이 C.S 루 이스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 다. 만약 오늘 선생님께서 예수는 위대한 본받아야 할 스승이라고 말 했다면 우리 모두는 선생님에게 박 수를 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구세주이다. 케케묵은 기독교의 교 리를 얘기했음으로 우리는 어떤 반 응을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이 때 C.S 루이스는 그 청년에게 이런 반 문을 했다고 합니다.
"자네는 정말 예수가 완벽한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가?"
"아, 생각하지요."

"그러면 이 완벽한 모델이신 예수를 따라가는 것이 중요한 삶이라고 믿는가?"
"그 렇지요"
"그러면 자네에게 묻겠네, 자네는 완벽한 도덕적인 모델이신 예수를 자네가 완전히 따라갈 수 있 다고 생각하나?"
청년은 한참 생각 하다가
"완전하게 따라 갈 수는 없 겠지요.""아, 그러면 자네도 도덕적 실패를 인정하는구나."

"자네의 삶 속에서 실수가 있었고 죄가 있었던 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아, 인 정이지요."
"그렇다면 자네에게 필 요한 것은 도덕적 모델로서의 예수 가 아니네, 자네의 도덕적인 실패와 죄에서부터 자네를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 이신 예수가 먼저 필요하다 네. 죄인에게는 모델로서의 예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세주로서의 예수가 필요하다네. 구주이신 그리 스도를 만난 다음에 비로소 그 분은 자네에게 모델이 될 수가 있다네. 이런 유명한 대화를 남겼다는 기록 이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세계를 정 복한 정복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러나 여러분, 나폴레옹이 기독교인 들에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 한 아주 뛰어난 많은 명언을 남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 중 에 하나는 이런 얘기입니다. 소크라 테스가 이 방에 들어온다면 우리는 모두 일어나 그 분에게 경의를, 존 경심을 표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 나 나사렛 예수가 이 방안에 들어온 다면 우리 모두는 엎드려 그 분을 경배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은 그 가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한 존경받 을만한 스승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는 예배를 받으시고 또 우리의 삶 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주님으로 서의, 하나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를 그가 이해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청년 관 원, 본문에 나타난 청년 관원은 예 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가 선한 선 생의 수준이었습니다. 선한 선생으 로서의 예수는 자기 손익 계산서가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에 는, 그런 결론이 생길 때에는 언제 라도 쉽게 떠날 수 있는 그런 예수 였습니다. 선생님 예수 - 선생님에 게서 배울 것 배우고 떠나가도 전혀 무방한 것처럼 그런 존재에 불과했 던 것입니다. 그가 슬픈 기색을 띠 고 예수를 등지고 떠나간 진짜 이 유, 그는 예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 다. 누구인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 는 선한 스승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가 하나님이시고 나를 구원할 수 있 는 구주이시다.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신은 어떠십니 까?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오늘도 사람들이 예수를 등지고 떠나가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두 번째로 영생을 행위로 얻을 수가 있다고 오해했기 때문입 니다.
청년이 던진 질문 그 자체는 아 주 바람직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 이었습니다. 영생에 관한 질문이었 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을 안으로 들여다 보면, 분석해 보면 이 질문 은 매우 그릇된 신학적이고 교리적 인 전제를 갖고 있었어요. 저는 이 것을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구 원에 대한, 기독교에 대한 보편적 편견이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17절을 다시 보면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 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 까"
다시 잘 들어보세요.
"내가 무 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다시 말하면 영생을 얻기 위해서 내 가 무엇을 하여야 한다. 라는 사실 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행해야만, 굉장한 커다란 업 적을 세워야만 주님이 아마도 나에 게 영생을 주실 것이다. 그렇게 영 생을 얻는 방법을 그는 생각하고 있 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 람들이 영생을 얻는, 구원얻는 길에 있어서 가지고 있는 매우 보편적인 선입견 또 편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 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청년과의 지속적인 대화 가운데서 구원의 근 거로써 행함을 가정하고 있는 이 잘 못된 가정이나 근거를 파괴시키기 위한 질문을 계속 하십니다. 18절에 서는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 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 가 없다. 이것은 네 선을 들고 하나 님앞에 접근할 수 있다고 네가 생각 하느냐? 선으로 영생을 얻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 정도로 네가 선하다고 생각하느냐? 찌르는 반문 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계속되는 얘기 보세요. 19절에서
"네가 계명 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 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 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이대로 하 고 있느냐? 말이예요. 그러나 깜짝 놀랍게도 20절에 보시면 청년은 이 렇게 대답합니다.
"여짜오되 선생님 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 키었나이다"
저는 상당히 이 청년이 도덕적으로 자신이 있었던 사람인 것 같아요. 도덕적인 프라이드를 가 지고 있었던, 꽤 괜찮은 삶을 살아 온 사람이 아니면 이 정도의 대답이 힘들지요? 선생님 어려서부터 저는 이런 계명을 다 지키면서 살아왔습 니다. 그러나 이런 대답의 밑바탕에 아직도 그가 그의 정체를, 자기의 진실한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을 안타 까와 하시며 그 다음절에 보시면 '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 이것은 차라리 불쌍히 여기는 아가 페의 사랑이었습니다. 이런 사랑으 로 이렇게 묻습니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 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 우리가 이 말씀을 또 비약시켜서 구원을 얻 기 위해서는 재산을 다 팔아야 한다 는 말로 오해하시면 안돼요. 잘 알 아들으셔야 합니다. 그런 얘기가 아 닙니다. 이 청년은 아직도 죄인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만나기 위해서, 영생 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인됨을 깨달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예수 님은 아픈 곳을 찔렀습니다. 이 사 람이 가지고 있었던 도덕적 프라이 드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숨기고 있 었던 자기 내면의 갈등, 그를 지배 하고 있었던 가장 강력한 삶의 동기 중의 하나는 재물에 대한 탐심이었 습니다. 이 한 가지의 죄를 통해서 그의 죄인됨을 보여주시고 있는 것 입니다. 한 가지 부족한 것, 이것을 통해서 한 가지 죄를 통해서 그의 전면적인 죄인된 모습을 주께서는 보여주시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 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죄인이기 위 해서는 많은 계명을 파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하나의 죄명의 파기로 도 우리는 하나님앞에 충분히 죄인 이고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저 주를 피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 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 은 다 자기의 죄는 비교적 가볍고 남들의 죄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 요. 자, 여기 교도소에 살인자와 간 음자 두 사람이 붙잡혀 왔다고 가정 을 해 봅시다. 살인자는 간음자에게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야, 나는 흥분하고 좀 열이 올라서 사람을 죽 였지만 나는 여자는 건드리지 않는 다. 나는 그런 치사한 일은 하지 않 는다. 그러나 간음한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신 성하고 거룩한 사람의 생명을 해칠 수가 있느냐? 나는 로맨스의 빠진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자기를 합리 화시킬 수가 있어요. 사람들은 다 남의 죄는 지적하면서 자기 죄는 아 무 것도 아닌 것으로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야고보서 2장 10절에서 이런 말씀을 보신 일 이 있습니까?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 한 자가 되나니"
단 하나의 계명의 파계, 단 하나의 거짓말로도 충분히 하나님앞에 우리는 죄인이고, 하나 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다는 사실 을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는 죄인이지요. 아마도 여러분 가운 데 틀림없이 이런 반문을 제기할 것 입니다. 그렇다면 목사님, 누가 도대 체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까? 오 늘 본문에 보시면 청년과 예수님의 대화를 옆에서 엿들고 있었던 제자 들이 드디어 이 질문을 끄집어냅니 다. 자, 본문 지나서 마가복음 10장 26절에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 그렇다면 누가? 누 가? 인간 가운데 구원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자,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께서 어떻게 대답하세요? 27절 에 보시면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 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 예수님의 대답이 뭐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사람을 구원할 수가 없다. 사람은 사람을 결코 구원할 수 없다. 누구만이 하실 수 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 다. 사람의 어떤 최선도 자기 자신 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이웃을 돕 는 어떤 자선 행위도 그것으로 이웃 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동정할 수 는 있습니다. 일시적인 도움을 베풀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 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다 죄인이고, 사람은 다 그릇된 길로 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만 이 구원할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실 때 인간의 행함에 근거하지 아니하 시고 하나님은 구원을, 영원한 생명 을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신 줄로 믿 습니다. 구원은 선물입니다. 에베소 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 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 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 서 난 것이 아니니, 사람의 행동으 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 이는 아무 든지, 누구든지 하나님앞에서 자기 의 선을 자랑할 자는 없기 때문입니 다. 그래서 구원은 선물로 주십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습 니까? 영생이나 구원은 인간의 행함 의 성취를 통해서 결과적으로 얻는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이 조건없 고 자격없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를 받아 마땅한 나에게 하나님은 예 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과 영생 을 선물로 내어 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인 것입 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 23절에 보 시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 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 에 있는 영생이니라"
대조를 이룹니 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그 다음에 접속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죄의 삯은 사망이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은 사 바꿔말하면 하나님의 선물은 그 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 생이니라. 자, 묻습니다. 선물은 어 떻게 받습니까? 구원과 영생이 선물 이라면 선물은 어떻게 받아요? 선물 은 그냥 받아요. 그냥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선물을 염치없이 제일 받 는 인간이 어떤 사람입니까? 몰라 요? 아이들이에요. 아이들에게 선물 을 줘 보세요. 그냥 잘 받아요. 어른 들은 선물을 딱 주면 이것이 선물인 가? 뇌물인가? 하고 무슨 의도가 뒤에 있는가? 하고 우리가 항상 생 각하지만 아이들은 선물을 있는 그 대로 잘 받아요. 여러분, 이 청년이 예수께서 주시는 영생의 선물을 받 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저는 이렇 게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사건 직 전에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누 가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까? 어린 아이와 같은 자, 지난 주일의 말씀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 을 가진 사람이라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잘 받아들여요. 청년에게는 아이와 같 은 인식이 없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의 인식이 없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는 자기의 부조리, 내 안에 있는 행함의 부조리를 알면서 도 그러나 여전히 자기 행위에 매달 립니다. 내가 그래도 무엇을 해야지 그리고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 을 때, 자기의 전 재산을 내어 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별 수 없이 예수에게서 돌이킬 수 밖에 없 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떠십니 까? 이 오해가 당신에게는 없으십니 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등지고 떠나 가는 또 하나의 진짜 이유가 있습니 다.
마지막 이유. 세번 째로, 그것은 인생의 우선 순위를 오해한 것입니 다. 우선 순위란 무엇입니까? 무엇 이 가장 중요한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이 좀 더 중요한가 그 순서죠?
행복이라는 것은 우선순위를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불행이란 무엇 일까요? 불행은 우선 순위의 혼란 에서 부터 인생의 불행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축구 좋아 하는데 미국 사람들은 미식 축구를 좋아하죠? 미국에 미식 축구팀이 많 은데 그 중에서 전통적인 영예로운 별명을 갖고 있는 팀이 달라스 카우 보이팀이예요. 제가 아까 10시에 설교하고나니까 어떤 분이 미국에서 오셨데요. 제가 달라스 카우보이에 서 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시던데. 이 달라스 카우보이팀이 아주 유명 합니다. 그런데 이팀이 여러번 우 승을 했고 그리고 많은 팬을 가지고 있고 사랑을 받는 이유 중에 하나가 코치가 아주 유명한 전설적인 코치 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 코치의 이 름이 탐 랜드리라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신화적 코치요. 감독이었고 여 러번 달라스 카우보이를 우승시켰 고, 아주 인기있는 팀으로 만들었습 니다. 명예의 전당 속에 들어간 사 람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훌륭한 축구 코치요, 감독이었을 뿐만아니 라 아주 인기있는 신사였습니다. 아 주 멋진 신사였고, 탁월한 Bible Teacher 였어요. 성경 공부를 잘 가르치는 사람이었어요. 자기 선수 들과 늘 말씀 공부를 하고 Home Bible Study 를 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아주 행복한 가정을 가진 사람 으로서 또한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 을 받았습니다. 가정 생활에 성공을 하고, 사회 생활에 성공을 하고 축 구 코치로 이름을 날리고.
어떤 날 기자가 찾아와서 물었 습니다. '당신의 행복의 비밀은 무 엇입니까? ' 탐 랜드리는 이런 유 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예수 믿은 그 날부터, 내가 예수를 믿기 시작한 그날 부터 우선 순위를 붙잡 고 살아 왔습니다.' 그러니까 또 묻 기를 당신의 우선 순위는 무엇입니 까? 그는 이런 대답을 했어요. '첫 째는 하나님(first God), 두번째는 나의가족( second family), 그리고 세번째는 축구, 저는 이 우선 순위 가 한번도 흔들린 일이 없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두번 째는 가족, 그 리고 세번 째는 축구였습니다. ' 이 우선 순위를 따라 살아가는 삶, 매 우 중요한 것이죠.
불행은 우선 순위의 혼란에서 부터 생깁니다. 저는 본문에 나타 난 이 청년이 우선 순위를 혼돈했다 고 생각해요. 이 사람은 영생을 얻 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을 까요? 안 했을까요? 했죠. 그래서 예수님 앞에 온거예요. 그러면 예 수님에 대한 관심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있었어요. 예수님에 대한 관심도 있었고, 영생 얻는 문 제에 관해서 진지한 관심이 있었습 니다. 그러나 이 관심 보다도 이 청년을 지배하고 있었던 더 중요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었을까요? 재물에 대한 탐심이었어 요. 예수가 안 중요한 것은 아니예 요. 영생얻는 것이 안 중요한 것이 아니예요. 구원 문제가 인생에서 중 요하다. 그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을 지배 하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관심은 재 물에 대한 탐심이었습니다. 자기 재산 늘리고 재물을 축적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우선 순위 넘버 원이었습니다. 결국 우선 순위에서 예수는 밀려 났고, 우선 순위에 있 어서 영생의 문제는 밀려났던 것입 니다. 그는 마침내 예수님을 등지 고 떠나갈 수 밖에 없었던 슬픔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 신앙 생활하고 교회 에 출입하면서도 그런 우선 순위의 혼란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 까? 제가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요. 어떤 부모가 자기 아이가 교회 잘 안나가니까 얘들 교회나가라고 막 꼬시고 달래도 잘 안나가는 거예요. 어느날 드디어 돈으로 흥정을 했습 니다. ' 너 교회에 가면 만원 줄께. 너 만원 가지고 극장도 가고 네가 하고 싶은것 할 수 있지 않아? 정말 이야? 엄마? 그럼 약속해.' 그리고 교회가는 거예요. 교회 갈때 교회가 면 헌금도 내라. 꼭 잊어 버리지 말 고. 그러면서 자기 아이의 손에다 헌금 천원을 주었어요. 나쁜것은 아 니지만 이 아이가 받은 메시지는 뭘 까요? 교회는 천원짜리, 극장은 만 원짜리. 우선순위의 혼란이 가는 시그널을, 메시지를 잘 못 주고 있 는거예요. 여러분, 가장 중요한 우선 순위가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자, 이 사람이 예수도 영생도 중요 하게 생각했지만, 그 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그 무엇, 그 어떤것, 그 것은 재물이었습니다. 그것이 우상 이었습니다. 우상의 정체가 무었일 까요? 우상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끼어 드는 것. 그것 때문에 하나님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님 사 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체의 것이 우상일 수가 있습니다. 그는 이 우 상을 극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영국이 전 세계의 모든 바다를 지배하던 해상의 왕이던 계절에 일 어났던 얘기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영국 무역선 하나가 영국 해역에 거 의 다 오다가 그 해역 근처에서 조 난을 당했습니다. 파선을 하게 되었 어요. 그래서 구조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파도가 너무 높아서 구조 선들이 그 조난 당한 큰 배에 가까 이 접근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별 수없이 로프를 던지고 사람들 보고 그 구조선 까지 오라고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여러 사람이 그 구조선 에 헤엄을 치고 그 로프를 붙잡고 많은 사람들이 배까지, 구조선 까지 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 람들은 또 죽었어요. 죽은 사람들 가운데 그 이유가 다양하겠지요 물 론, 어떤 사람들은 수영을 못해서 미처 그 로프를 못 잡아서.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죽 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그 배에서 뛰어 내리는 과정에 있어서 아프리 카에서 오는 그 배에는 금괘들이 많 이 있었습니다. 금을 배에 막 차고, 금을 가지고 오다가 그 금괘의 무 게 때문에 다 빠져 죽은 거예요.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이예요. '사람 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 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무 엇이 더 중요하냐? 이 순간 무엇이 더 중요한가 판단이 흐려졌어요. 오 늘 여러분의 생애에서 무엇이 중요 합니까? 예수보다 더 중요한 분이 있습니까? 예수보다? 여러분 예수 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믿으 십니까? 그리고 예수보다 더 중요 한 분이 누굴까요? 예수가 나의 구 주요,나의 주님이십니다. 나를 구원 하신 분, 그리고 나의 전 일생을 다 스리고 나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 하시는 나의 삶의 놀라우신 그 분, 그렇다면 예수보다 중요한 분이 없 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구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 제가 어디있을까요? 영생의 문제보 다도 . 우리가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하십시다. 그러나 구원을 얻지 못 했습니다. 그는 끝없이 영원을 그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불꽃 타오른 지옥에서 보내야 할 것입니다. 구 원 얻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 디있어요? 내가 예수를 믿고 그리스 도 앞에 왔을 때 주께서 나를 용서 하시고 그리고 십자가에서 나 대신 피 흘리신 그 거룩한 사랑으로 예 수 그리스도 앞에 나온 나에게 그 리스도 안에 있던 영생을 선물로 주 신다. 그래서 나는 영생을 얻었습니 다. 할렐루야! 이 보다 더 위대한 축복이 어디 있을까요? 예수 믿고 구원얻은 행복을 확인하시기 바랍니 다.
오늘 여러분 가운데 아직 예수 님을 모르고 아직도 구원을 경험하 지 못했다면 여러분의 우선순위를 바꾸세요. 십자가 앞에 서세요. 하 나님이 오늘 나의 주인됨을 보이시 고 깨우쳐 주셨다면 할 수 없는 이 죄인, 나의 최선도 나의 노력도 나 를 구원할 수 없었다면 이제 십자 가 앞에 겸손히 서십시오. 그리고 거기서 주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 셨는지. 나의 허물과 죄를 담당하시 고 피 흘린 십자가. 그리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나의 주인됨을 고백하며 예수 그리 스도 앞에 나와 사랑의 하나님을 바 라보는 그자들에게 믿음으로 주님 을 올려다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 생을 선물로 주실 줄 믿습니다. 이 행복을 받아 누리시고 올바른 우선 순위 안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인 생을 사는 이 놀라운 행복 속에 들 어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 다. 기도하십시다.
우리 일어나서 기도 하는 조용 한 이 시간에. 여러분 가운데 교회 는 왔다갔다 하지만 아직 구원의 확 신이 없는 분들. 내가 지금 죽으면 하나님 나라 갈 수 있어요? 이 중 요한 질문. 아직도 확신이 없는 분 이 있다면 조용한 시간 기도하면서, 오 예수님. 제가 오늘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입니다. 제가 예수를 믿고자 하나이다. 하나님, 영생을 선물로 주 신다고요? 제가 믿음으로 이 선물 을 받겠습니다. 기도하신다면 사랑 하는 여러분 이 단순한 믿음의 결단 이 오늘 여러분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영생의 선물을 지금 믿음으로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오, 주님, 예수를 받아들이고 영생 을 나의 선물로 받습니다.
지나간 날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는 여러분, 인생의 길이 험하고 어려워도 나는 아직도 주 앞에 감사 와 찬송을 드려야할 이유가 있는 자 들이예요. 우리는 저 영원을 얻은 사람들, 영생을 얻은 사람들. 하나님 , 감사합니다. 기뻐하며, 찬양하며 걷겠사오니 주 예수님, 당신을 바라 보고 당신과 더불어 동행하는 내가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나의 최선의 행 함을 가지고 주 앞에 감히 얼굴을 들 수 없었던 나, 정녕 죄인이었던 나, 나를 조건없이 사랑하시고 조건 없이 나를 용서하시고, 조건없이 나 에게 영생의 선물을 주신 주님을 찬 양합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과 상 관없이 살아왔던 분들이 있다면 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인정케 도와주시옵소서.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감격을 주시옵소서. 주 안에서 영생얻은 이 기쁨 속에 살아 가는 당신의 백성들, 삶이 어려워도 험해도 고달퍼도 우리는 찬송과 감 사 속에 살아갈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이 내 주님 되셨기 때문입니다. 오, 주 예수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찬양하며, 감사하며 살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차양하시겠습니다. [ 많 은 사람들 진리를 모른 채 주님을 떠나갔지만, 나를 주의 자녀로 삼아 주신 놀라우신 주님을 찬양하십시 다......]
이제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그 조건없 는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케 하 심이 오늘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으시고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 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주신 그 주 님, 이 주님만 함께 있다면 나는 행 복한 자 임을 확인하며 이 자리를 떠나가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성령의 평안으로 , 성령의 권능으로 함께해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