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 여호수아 14:6-12
2003년 첫 주를 맞으면서 우리가 가져야 될 좋은 생활 태도는 기대감을 갖는 것입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내일이지만, 불안해 하거나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보다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합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매일매일에는 놀라움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하고 있을 때만 그 놀라움을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다." 놀라움에 대한 기대감, 이것을 가지고 금년 한 해를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기대감이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분명한 꿈, 다시 말하면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도전할 때, 기대감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목표가 없습니까? 그래서 도전할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적당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삽니까? 그런 사람은 내일에 관한 기대감을 갖기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 가운데 간혹 운명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섭리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하고 자주 이야기하지만, 그 사고의 밑바닥에는 운명론이 깔려 있는 것을 봅니다. "아이고, 내 팔자. 더 이상 뭘 기대하겠어요? 그저 내가 태어날 때부터 피할 수 없는 숙명인데요. 내가 어떻게 합니까? 이젠 어쩔 수 없어요." 이런 말 자기도 모르게 내뱉는 것을 봅니다. 이런 운명론은 우리를 보이지 않는 감옥에 처넣는 무서운 손입니다. 일단 그 감옥에 갇히면 우리는 자포자기해 버립니다. 세월 가는 데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목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기대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아직도 이런 운명론에 끌려 다니는 흔적이 있습니까? 신년 벽두부터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잠재 의식들을 깨끗이 불태워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지는 태도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절대로 용납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운명에 끌려 다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믿음의 사람은 목표를 정하고 도전할 줄 압니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헨리 포드 자동차 회사의 한 모퉁이에 헨리 포드 부부의 사진이 걸려 있고, 그 옆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고 합니다. '남편 포드는 믿음으로 꿈꾸는 자이고, 아내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의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한평생 추구해야 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살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도전한 사람들이었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으며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인 갈렙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의 주인공인 갈렙을 통해 우리가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도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이 넘도록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기적으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광야를 거쳐 가데스바네아라는 곳까지 왔습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눈 앞에 활짝 펼쳐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 겁부터 집어 먹었습니다. 이미 가나안 땅에는 수백 년 동안 뿌리를 내리고 사는 거대한 족속이 있었기에 섣불리 들어갔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탐을 먼저 보내 모든 지형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정보를 입수한 후 진격합시다." 하고 제안을 했습니다. 결국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각 지파마다 한 사람씩 유능한 젊은이들을 뽑아 열두 명을 가나안 땅에 먼저 들여보냈습니다. 그들은 몰래 다니면서 40일 동안 온 땅을 정탐했습니다. 성이 얼마나 높고 큰지, 백성들이 얼마나 무장을 하고 있는지,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다 조사해 가지고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수고대하면서 그들의 정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떠한 정보를 얻느냐에 따라, 어떠한 보고를 듣느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기에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열두 명이 40일 동안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열두 명 중 열 명은 다음과 같이 보고했습니다. "틀렸어. 그곳에 사는 아낙 자손들은 굉장한 거인들이야. 그들 앞에서 우리는 마치 메뚜기 같았어. 성곽들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쌓여 있고 말이야.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그 땅을 정복할 수 있겠어? 우리 힘으로는 안 돼."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간담이 녹아 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으로 보고했습니다. "아니야. 그 성이 굉장히 높고 튼튼하지만, 게다가 백성들마저 크고 장대하지만, 그런 것을 겁내선 안 돼.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땅이다. 그것은 우리의 땅이야. 올라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싸우시고, 우리는 반드시 그 땅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두 사람은 믿음을 가지고 보고하고, 열 사람은 불신앙을 가지고 보고 했습니다.
사실 불신앙이라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모욕하고 분노케 하는 행동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광야 길을 걸어올 때 모두 하나님의 능력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복하는 것만은 마치 자기 힘으로 할 것 같이 불신앙으로 보고 했으니 이 얼마나 하나님에 대한 도전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열 명을 징계하셔서 전부 그 자리에서 즉사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광야로 들여보내시고는 열 명의 보고를 듣고 하나님을 원망했던 20세 이상의 사람들이 지면에서 사라질 때까지 40년을 유리 방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40년이 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가나안 땅을 밟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여리고 성을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차근차근 주변 성을 정복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진격하기 쉬운 지형, 정복하기 쉬운 성읍들은 이제 거의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 놓고 살만한 땅은 확보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손에 쥘 땅이 많이 남아 있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전쟁에 지치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만 싸웠으면 좋겠다. 이 정도 차지했으면 우리도 살만한데 전쟁을 그만 했으면 좋겠다."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풀어져 버렸습니다.
이런 시점에 갈렙이 여호수아 앞에 나왔습니다. "내 나이 85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45년 동안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나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여기에서 산지란 유대 나라 가나안 땅의 남방부에 있는 산과 언덕으로 구성된 산악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곳은 굉장한 요새일 뿐 아니라 땅도 비옥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신장이 크고 힘있는 족속인 아낙 자손들이 그 지역에 포진하고 있었으며, 헤브론과 같은 큰 성을 만들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수년 동안 전투를 해왔지만 그곳은 아직 감히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슬슬 피하면서 지금까지 남겨 놓은 땅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갈렙이 그 땅을 여호수아에게 요구한 것입니다. "저 산지를 내게 주소서. 내가 올라가서 저 산지를 취하겠나이다. 저 땅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땅이니 내가 소유하겠습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갈렙에게 그 땅을 허락했습니다. 성경을 조금 넘기다 보면 드디어 갈렙이 그 땅을 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지역에서 가장 신장이 크고 강한 아르바 족을 쫓아 내어 헤브론 성을 소유한 것입니다. 그 성은 나중에 다윗 왕이 유대 나라를 통치할 때 7년 동안 왕도로 사용하던 성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갈렙으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 당시 갈렙의 나이가 85세였습니다. 아무리 옛날이지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85세면 노인입니다. 아무리 체력이 좋고 싸움도 할 수 있고 칼도 쓸 수 있다고 하나 역시 노인은 노인인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이 자리에 50대, 60대 이상 되시는 분들은 이런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교훈하시는 지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50대를 넘어서면 대부분 무기력해지고, 인생의 목표를 상실한 채 하루하루를 살기 쉽습니다. 일에서 손을 떼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한 채로 앞으로 20~30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갈렙과 같은 사람을 통해서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 받아야 합니다.
맥아더 장군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단순이 오래 산다고 해서 늙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늙어가는 이유는 목적과 이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할 뿐이지만, 목적이 없는 무관심한 생활은 영혼을 주름지게 만든다. 당신은 믿는 만큼 젊고, 의심하는 것만큼 늙는다. 당신은 자신감을 갖는 것만큼 두려워하는 것만큼 늙는다. 당신은 희망을 갖는 것만큼 젊고, 절망하는 것만큼 늙는다." 매우 뼈가 있는 말입니다. 갈렙은 나이가 들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목표를 상실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할 것인지 잊어버린 일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세월이 피부는 주름지게 할지는 모르지만, 그 정신은 늙도록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다음은 워너세이 박사라는 분의 주도로 연구한 시애틀 연구 자료 입니다. 60~80세까지의 30년 사이에 해당되는 노인 2,000명을 조사한 결과, 60세에 은퇴를 했지만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정해놓고 날마다 능동적이고 활동적으로 사는 사람은 70대가 되어도 그 지능이 거의 쇠퇴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마땅히 뚜렷한 직업이 아니더라도 사회에 나가 이런저런 자원봉사를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퇴 후 무엇을 해야 될지 몰라 하루하루 세월을 보낸 사람은 70대에 들어서자마자 급격하게 그 지능이 떨어지고 급기야 치매까지 야기합니다.
우리가 갈렙에게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나이가 많던 적던 인생의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리라고 약속하신 산지가 어디인지 기도하면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도전해야 될 목표가 무엇인지 각자 하나님 앞에 질문해 보십시오. 나이에 관계없이 금년에 내가 도전해야 될 목표가 무엇인지, 나의 남은 생 몇 년 동안 도전해야 될 목표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분명히 찾으십시오. 찾고 나면 거기에 도전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의 삶이 활력을 되찾는 것입니다.
목표를 분명히 찾으면 분명히 도전하게 됩니다. 갈렙처럼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정복하겠다는 도전 의식이 생겨 납니다. 갈렙은 높고 안전한 성곽에서 진을 치고 있는 강한 아낙 자손과 위험한 도박을 벌린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지역을 점령하려면 얼마나 많은 인명 피해가 있을는지 모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갖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땅이다. 내 발로 밟는 땅은 다 내 것이 된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어. 그러므로 내가 가서 밟으면 그것은 내 땅이야.' 확신이 분명했기에 값을 지불하는 것쯤은 두려워 않은 것입니다. 그 결과 자신의 믿음대로 그 땅을 손에 넣었던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고 성령을 마음에 모시고 있는 사람은 내가 도전해야 될 산지가 어디에 있는지 보게 합니다. 빌립보서 1장 6절 말씀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성령이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이 착한 일이란 산지요, 목표입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인도해 주세요." 하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주여, 금년에 어떻게 해야 될까요?"라고 물으면 성령의 사람의 마음 속에 무언가 하고 싶은 착한 일이 생각이 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10분이든 30분이든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에 있는 생각을 간절히 아뢰면,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착한 일이 눈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이 주시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막연히 내가 생각했다고 그럴지 모르지만, 우리는 나 혼자 존재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과 함께 존재합니다.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계십니다. 그 주님을 모시고 살면서 성령의 감동함을 받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이것은 해보고 싶다'는 착한 일이 생각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산지요, 목표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꽉 붙들어야 합니다.
어떤 조사 내용에 의하면, 겉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분명한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100명 중 5명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그냥 되는대로 산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래선 안됩니다. 어떤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이 결정됩니다. 확실한 목표를 갖고 있습니까? 그 삶의 질은 분명히 높을 것입니다. 모호한 목표를 갖고 있습니까? 그 삶의 질은 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반드시 두 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적인 목표요, 다른 하나는 현실적인 목표입니다. 영적인 산지와 현실적인 두 가지 입니다.
영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이라면 똑같이 적용되는 목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끝까지 추구해야 될 목표가 하나 있는 데,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최종적인 목표입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신약 성경에서는 그 말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라고 바꾸어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자가 되는 것,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는 것, 예수님을 닮은 제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예수 믿고 구원을 받은 다음, 생명이 남아 있는 동안 끝까지 추구해야 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창조하실 때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자 그 목적에서 이탈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며, 우리를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래적인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오늘도 성령과 말씀을 통해 우리를 계속 인도하고 계십니다.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성화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닮은, 예수님을 닮은 정말로 고귀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존재로 계속 다듬어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창조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자마자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할 만한 다윗과 같은 사람에게서 질투를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것은 질투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보면 질투해야 합니다. '어쩌면 저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거룩한 질투,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본 내용입니다. 역사상 세계적으로 아주 위대한 일을 한 인물들을 전부 조사한 결과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약 12만 명을 상대로 아주 광범위한 조사를 했는데,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공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들 대부분이 장자가 아닌 아우나 동생, 막내라는 것입니다. 참 희한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 동생 되는 사람들이 특별히 성공하는 확률이 많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동생들은 자랄 때부터 부모들에게 형만큼 인정을 못 받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항상 형만 위해주므로 그 밑에서 치어 자기가 인정을 못 받는다는 콤플렉스를 갖고 자랍니다. 따라서 어떻게 하든지 남들이 알아주는 존재가 되겠다는 본질적인 질투 감정이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계속 가지고 살면서 그 질투의 감정이 창조적인 자질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형보다 나아질 거야.", "나는 형보다 성공할거야."라는 몸부림이 그로 하여금 더 많이 노력하고 도전하게 만들어서 결국 훌륭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아우 콤플렉스가 결국 성공의 지름길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동생 중에서도 형편없는 막내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뭔가 도전하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질투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목사를 보고 '하나님이 참 기뻐하시는 목사구나. 나는 왜 저렇게 못 되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어야 되는데...' 하고 질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좋은 장로님들, 좋은 순장들을 보십시오.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진 않지만 은밀히 보시는 주님 앞에 신실하고, 주님이 항상 기뻐하겠다고 느껴질 만한 형제 자매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볼 때 질투하십시오. 나도 저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정하고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작년에 비해서 새해에는 하나님의 마음에 더 드는 자가 되어야지.' 이것처럼 거룩하고 아름다운 목표가 어디에 있습니까? 분명히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 더 주님을 닮아가는 자리로 올라가야 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인생의 승자는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한 자가 아니고, 과거보다도 오늘 더 우월한 자입니다." 작년보다도 오늘, 더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가 되고 주님의 마음에 더 기쁨을 드리는 자가 되었다면 그가 승자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은 지 20년이 되었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별로 발전이 없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요소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벌써 패자입니다. 지금까지 목적 없는 신앙생활을 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것을 목표로 세웠으면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놓고 도전하십시오. 각자가 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실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나는 성경에 대해서 무식해서 탈이야. 1주일 동안 성경을 한 장도 제대로 안 읽어. 그저 설교 듣는 것이 전부야. 하나님께서 날 보실 때 이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실 거야.' 이처럼 마음에 어떠한 가책이 오면 이에 대해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찾으십시오. 이것이 도전입니다. 첫날부터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런 식으로 읽겠다고 각오하고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자 하는 사람이 그런 도전도 없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있겠습니까?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마음에 꼭 들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것이 뭐가 있어요? 기도입니까? 하루에 5분도 제대로 기도를 안 합니까? 그러면서도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합니까? 사탄이 시험할 때 100% 넘어지는 신앙생활 이라면 하나께서 기뻐하실 리가 없습니다. '내가 기도 좀 해야 되겠다. 작심하고 기도 좀 하자.' 했으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교회로 달려오든지, 아니면 골방에 들어가 적어도 20분, 30분 엎드려 기도한다든지 뭔가 각오를 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물질에 애착이 있어 제대로 헌금하지 못합니까? 십일조도 안 합니까? 헌금하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인상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좋아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 그 동안 제게 많이 주셨는데, 금년의 목표는 제가 가진 것을 좀더 내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 좀 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헌금을 어떻게 해야 되겠다. 자선사업을 어떻게 해야 되겠다. 선한 일에는 어떻게 써야 되겠다.'는 나름대로 실천사항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실천사항을 가지고 우리가 도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주일을 철저히 지키지 않습니까? 남이 모르는 죄를 계속 용인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말씀으로 그것을 지적하고 책망할 때 귀를 막아버립니까? 그런 태도를 가지고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업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설교하는 제게 물을 것입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 금년에 어떤 도전을 하려고 합니까? 먼저 이야기해주세요?" 그러면 전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몇 달 전부터 제겐 도전해야 될 분명한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것만은 해야겠다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내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게 있어서 실천 사항입니다. 대형 교회 목사가 되어 지금 제 마음에 쓸데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습니다. 없어도 될 것들이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제 됐어. 그 정도면 됐어. 내 마음에 쏙 들어." 하고 말씀하실 때까지 마음을 비우려고 합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해 주시리라고 믿고 도전하려 합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마음을 비워야 될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쓸데 없는 잡동사니를 가득 넣고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비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자가 되길 사모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를 주십니다. 기쁨을 주십니다. 만족을 주십니다.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이 찬송처럼 우리가 이런 목표 가지고 새해를 살도록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현실적인 목표를 정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할 일을 주셨습니다. 다양한 일이 있고, 다양한 직업이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일해야 될 장소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할 일이 있고 소명이 있는 이상, 해마다 각자가 성취하고 달성해야 될 목표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막연한 꿈이 아닙니다. 당장 노력하고 준비해서 일정한 시간 안에 성취해야 되는 현실적인 목표를 말합니다.
채용정보 사이트 파워잡(www.powerjob.co.kr)이 지난 달 직장인 1,407명을 조사한 결과, 신년에 원하는 목표 1위가 이직으로 나타났습니다. 10명 중의 4명이 대우나 근무환경 면에서 좀더 나은 직장으로 옮기고 싶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자기 개발, 세 번째로는 봉급인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입니다. 남편입니다. 아내입니다. 어머니입니다. 회사의 팀장입니다. 학생입니다. 우리는 각자 사회에서 여러 가지 역할과 일을 맡아서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따라 우리가 바라는 꿈과 소원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막연한 꿈이나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면 안됩니다. 다시 말해 측정 가능하고 달성 가능한 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들고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놓고 도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목표를 바로 알면 삶이 단순해집니다. 확실한 목표는 내가 해야 할 행동과 내가 하지 말아야 될 행동을 분별해주는 기준이 됩니다. 성령의 사람은 반드시 설정해야 할 목표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구체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목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면서 도전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1등 집착증을 가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1등이 아니면 마음이 풀리지 않는 잘못된 태도를 가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 사람은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은메달을 따면 그것으로 눈물을 펑펑 쏟는 세계 유일의 민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금메달도 소중하고 은메달도 소중하고 동메달도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은 울 일이 아니라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도 1등이 아니면 못 견디는 악성 바이러스와 같은 병에 걸려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분수가 무엇인가를 인정합니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분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릇이 똑같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그릇을 놓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의 분수를 지킬 줄 아는 슬기를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자람을 아는 슬기를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모자람을 아는 슬기, 이것이 필요합니다. 이럴 때 내 분수 안에서 분명한 구체적인 목표를 찾고 그 목표를 달성하고자 도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 후 한두 번 실패한다고 해서 주저앉으면 안됩니다. 계속 도전해야 됩니다.
한 예를 들겠습니다. LA에서 여객기가 떠서 태평양을 건너 열 몇 시간 만에 서울로 온다고 합시다. 그런데 여객기가 열 몇 시간 동안 날면서 지정된 항로대로 나는 경우는 전체 10%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나머지 90%는 항로를 벗어난다고 합니다. 본래 항로를 벗어났다가 제자리에 돌아오고, 벗어났다가 또 제자리에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나중에는 목적지 공항에 도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때는 목표에서 벗어나고, 실패하고, 주저 앉기도 하지만, 계속 그 목표를 향해 믿음으로 도전하면 결국은 그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의 구체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만일 돈을 많이 벌어야 되겠다는 목표를 하나님께서 주셨으면 구체적으로 실천사항을 정해야 합니다. 얼마를 벌기 위해서 서비스를 어떻게 업그레이드를 시켜야 하는지 구체적인 사항을 놓고 하나님께 도전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의 경우 금년에 토플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면 목표 점수가 얼마인지 정해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금년에 이 점수가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날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열심히 할 것입니다. 도와주세요.' 이럴 때 그의 도전의식이 항상 활활 타오르고, 하나님 앞에 문을 두드리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목표가 희미해서는 뜨거운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금년에 도전하고 싶은 현실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잘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목표를 분명히 정하면 최선을 다해서 도전하십시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될 사실은 실패해도 또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주저 앉거나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십시오.
이렇게 1년 동안에 우리가 달려가야 될 길, 우리가 손에 넣어야 할 산지를 분명히 확인하면서 달려가면 금년 한해 동안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질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목표, 곧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열심히 뜁시다. 또 내 삶에 있어서 반드시 얻어야 되는 목표를 설정하고 하나님께 구하면서 열심히 도전합시다. 그래서 아말렉이 있는 산지를 우리의 소유로 만드는 한 해가 될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갈렙처럼 우리에게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는 분명한 목표와 도전 의식을 가지고 새해를 시작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께서 함께 하시오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착한 일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주옵소서.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일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알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 가정, 직장, 사회생활에서 우리가 분명히 달성하고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지 알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확실한 목표를 주셔서 금년에는 반드시 성공하는 한 해가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3년 첫 주를 맞으면서 우리가 가져야 될 좋은 생활 태도는 기대감을 갖는 것입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내일이지만, 불안해 하거나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보다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합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매일매일에는 놀라움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하고 있을 때만 그 놀라움을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다." 놀라움에 대한 기대감, 이것을 가지고 금년 한 해를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기대감이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분명한 꿈, 다시 말하면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도전할 때, 기대감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목표가 없습니까? 그래서 도전할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적당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삽니까? 그런 사람은 내일에 관한 기대감을 갖기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 가운데 간혹 운명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섭리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하고 자주 이야기하지만, 그 사고의 밑바닥에는 운명론이 깔려 있는 것을 봅니다. "아이고, 내 팔자. 더 이상 뭘 기대하겠어요? 그저 내가 태어날 때부터 피할 수 없는 숙명인데요. 내가 어떻게 합니까? 이젠 어쩔 수 없어요." 이런 말 자기도 모르게 내뱉는 것을 봅니다. 이런 운명론은 우리를 보이지 않는 감옥에 처넣는 무서운 손입니다. 일단 그 감옥에 갇히면 우리는 자포자기해 버립니다. 세월 가는 데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목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기대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아직도 이런 운명론에 끌려 다니는 흔적이 있습니까? 신년 벽두부터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잠재 의식들을 깨끗이 불태워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지는 태도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절대로 용납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운명에 끌려 다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믿음의 사람은 목표를 정하고 도전할 줄 압니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헨리 포드 자동차 회사의 한 모퉁이에 헨리 포드 부부의 사진이 걸려 있고, 그 옆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고 합니다. '남편 포드는 믿음으로 꿈꾸는 자이고, 아내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의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한평생 추구해야 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살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도전한 사람들이었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으며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인 갈렙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의 주인공인 갈렙을 통해 우리가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도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이 넘도록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기적으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광야를 거쳐 가데스바네아라는 곳까지 왔습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눈 앞에 활짝 펼쳐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 겁부터 집어 먹었습니다. 이미 가나안 땅에는 수백 년 동안 뿌리를 내리고 사는 거대한 족속이 있었기에 섣불리 들어갔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탐을 먼저 보내 모든 지형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정보를 입수한 후 진격합시다." 하고 제안을 했습니다. 결국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각 지파마다 한 사람씩 유능한 젊은이들을 뽑아 열두 명을 가나안 땅에 먼저 들여보냈습니다. 그들은 몰래 다니면서 40일 동안 온 땅을 정탐했습니다. 성이 얼마나 높고 큰지, 백성들이 얼마나 무장을 하고 있는지,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다 조사해 가지고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수고대하면서 그들의 정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떠한 정보를 얻느냐에 따라, 어떠한 보고를 듣느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기에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열두 명이 40일 동안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열두 명 중 열 명은 다음과 같이 보고했습니다. "틀렸어. 그곳에 사는 아낙 자손들은 굉장한 거인들이야. 그들 앞에서 우리는 마치 메뚜기 같았어. 성곽들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쌓여 있고 말이야.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그 땅을 정복할 수 있겠어? 우리 힘으로는 안 돼."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간담이 녹아 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으로 보고했습니다. "아니야. 그 성이 굉장히 높고 튼튼하지만, 게다가 백성들마저 크고 장대하지만, 그런 것을 겁내선 안 돼.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땅이다. 그것은 우리의 땅이야. 올라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싸우시고, 우리는 반드시 그 땅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두 사람은 믿음을 가지고 보고하고, 열 사람은 불신앙을 가지고 보고 했습니다.
사실 불신앙이라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모욕하고 분노케 하는 행동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광야 길을 걸어올 때 모두 하나님의 능력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복하는 것만은 마치 자기 힘으로 할 것 같이 불신앙으로 보고 했으니 이 얼마나 하나님에 대한 도전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열 명을 징계하셔서 전부 그 자리에서 즉사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광야로 들여보내시고는 열 명의 보고를 듣고 하나님을 원망했던 20세 이상의 사람들이 지면에서 사라질 때까지 40년을 유리 방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40년이 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가나안 땅을 밟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여리고 성을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차근차근 주변 성을 정복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진격하기 쉬운 지형, 정복하기 쉬운 성읍들은 이제 거의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 놓고 살만한 땅은 확보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손에 쥘 땅이 많이 남아 있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전쟁에 지치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만 싸웠으면 좋겠다. 이 정도 차지했으면 우리도 살만한데 전쟁을 그만 했으면 좋겠다."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풀어져 버렸습니다.
이런 시점에 갈렙이 여호수아 앞에 나왔습니다. "내 나이 85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45년 동안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나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여기에서 산지란 유대 나라 가나안 땅의 남방부에 있는 산과 언덕으로 구성된 산악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곳은 굉장한 요새일 뿐 아니라 땅도 비옥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신장이 크고 힘있는 족속인 아낙 자손들이 그 지역에 포진하고 있었으며, 헤브론과 같은 큰 성을 만들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수년 동안 전투를 해왔지만 그곳은 아직 감히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슬슬 피하면서 지금까지 남겨 놓은 땅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갈렙이 그 땅을 여호수아에게 요구한 것입니다. "저 산지를 내게 주소서. 내가 올라가서 저 산지를 취하겠나이다. 저 땅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땅이니 내가 소유하겠습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갈렙에게 그 땅을 허락했습니다. 성경을 조금 넘기다 보면 드디어 갈렙이 그 땅을 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지역에서 가장 신장이 크고 강한 아르바 족을 쫓아 내어 헤브론 성을 소유한 것입니다. 그 성은 나중에 다윗 왕이 유대 나라를 통치할 때 7년 동안 왕도로 사용하던 성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갈렙으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 당시 갈렙의 나이가 85세였습니다. 아무리 옛날이지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85세면 노인입니다. 아무리 체력이 좋고 싸움도 할 수 있고 칼도 쓸 수 있다고 하나 역시 노인은 노인인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이 자리에 50대, 60대 이상 되시는 분들은 이런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교훈하시는 지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50대를 넘어서면 대부분 무기력해지고, 인생의 목표를 상실한 채 하루하루를 살기 쉽습니다. 일에서 손을 떼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한 채로 앞으로 20~30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갈렙과 같은 사람을 통해서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 받아야 합니다.
맥아더 장군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단순이 오래 산다고 해서 늙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늙어가는 이유는 목적과 이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할 뿐이지만, 목적이 없는 무관심한 생활은 영혼을 주름지게 만든다. 당신은 믿는 만큼 젊고, 의심하는 것만큼 늙는다. 당신은 자신감을 갖는 것만큼 두려워하는 것만큼 늙는다. 당신은 희망을 갖는 것만큼 젊고, 절망하는 것만큼 늙는다." 매우 뼈가 있는 말입니다. 갈렙은 나이가 들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목표를 상실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할 것인지 잊어버린 일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세월이 피부는 주름지게 할지는 모르지만, 그 정신은 늙도록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다음은 워너세이 박사라는 분의 주도로 연구한 시애틀 연구 자료 입니다. 60~80세까지의 30년 사이에 해당되는 노인 2,000명을 조사한 결과, 60세에 은퇴를 했지만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정해놓고 날마다 능동적이고 활동적으로 사는 사람은 70대가 되어도 그 지능이 거의 쇠퇴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마땅히 뚜렷한 직업이 아니더라도 사회에 나가 이런저런 자원봉사를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퇴 후 무엇을 해야 될지 몰라 하루하루 세월을 보낸 사람은 70대에 들어서자마자 급격하게 그 지능이 떨어지고 급기야 치매까지 야기합니다.
우리가 갈렙에게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나이가 많던 적던 인생의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리라고 약속하신 산지가 어디인지 기도하면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도전해야 될 목표가 무엇인지 각자 하나님 앞에 질문해 보십시오. 나이에 관계없이 금년에 내가 도전해야 될 목표가 무엇인지, 나의 남은 생 몇 년 동안 도전해야 될 목표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분명히 찾으십시오. 찾고 나면 거기에 도전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의 삶이 활력을 되찾는 것입니다.
목표를 분명히 찾으면 분명히 도전하게 됩니다. 갈렙처럼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정복하겠다는 도전 의식이 생겨 납니다. 갈렙은 높고 안전한 성곽에서 진을 치고 있는 강한 아낙 자손과 위험한 도박을 벌린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지역을 점령하려면 얼마나 많은 인명 피해가 있을는지 모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갖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땅이다. 내 발로 밟는 땅은 다 내 것이 된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어. 그러므로 내가 가서 밟으면 그것은 내 땅이야.' 확신이 분명했기에 값을 지불하는 것쯤은 두려워 않은 것입니다. 그 결과 자신의 믿음대로 그 땅을 손에 넣었던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고 성령을 마음에 모시고 있는 사람은 내가 도전해야 될 산지가 어디에 있는지 보게 합니다. 빌립보서 1장 6절 말씀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성령이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이 착한 일이란 산지요, 목표입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인도해 주세요." 하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주여, 금년에 어떻게 해야 될까요?"라고 물으면 성령의 사람의 마음 속에 무언가 하고 싶은 착한 일이 생각이 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10분이든 30분이든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에 있는 생각을 간절히 아뢰면,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착한 일이 눈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이 주시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막연히 내가 생각했다고 그럴지 모르지만, 우리는 나 혼자 존재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과 함께 존재합니다.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계십니다. 그 주님을 모시고 살면서 성령의 감동함을 받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이것은 해보고 싶다'는 착한 일이 생각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산지요, 목표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꽉 붙들어야 합니다.
어떤 조사 내용에 의하면, 겉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분명한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100명 중 5명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그냥 되는대로 산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래선 안됩니다. 어떤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이 결정됩니다. 확실한 목표를 갖고 있습니까? 그 삶의 질은 분명히 높을 것입니다. 모호한 목표를 갖고 있습니까? 그 삶의 질은 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반드시 두 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적인 목표요, 다른 하나는 현실적인 목표입니다. 영적인 산지와 현실적인 두 가지 입니다.
영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이라면 똑같이 적용되는 목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끝까지 추구해야 될 목표가 하나 있는 데,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최종적인 목표입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신약 성경에서는 그 말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라고 바꾸어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자가 되는 것,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는 것, 예수님을 닮은 제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예수 믿고 구원을 받은 다음, 생명이 남아 있는 동안 끝까지 추구해야 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창조하실 때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자 그 목적에서 이탈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며, 우리를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래적인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오늘도 성령과 말씀을 통해 우리를 계속 인도하고 계십니다.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성화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닮은, 예수님을 닮은 정말로 고귀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존재로 계속 다듬어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창조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자마자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할 만한 다윗과 같은 사람에게서 질투를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것은 질투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보면 질투해야 합니다. '어쩌면 저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거룩한 질투,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본 내용입니다. 역사상 세계적으로 아주 위대한 일을 한 인물들을 전부 조사한 결과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약 12만 명을 상대로 아주 광범위한 조사를 했는데,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공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들 대부분이 장자가 아닌 아우나 동생, 막내라는 것입니다. 참 희한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 동생 되는 사람들이 특별히 성공하는 확률이 많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동생들은 자랄 때부터 부모들에게 형만큼 인정을 못 받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항상 형만 위해주므로 그 밑에서 치어 자기가 인정을 못 받는다는 콤플렉스를 갖고 자랍니다. 따라서 어떻게 하든지 남들이 알아주는 존재가 되겠다는 본질적인 질투 감정이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계속 가지고 살면서 그 질투의 감정이 창조적인 자질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형보다 나아질 거야.", "나는 형보다 성공할거야."라는 몸부림이 그로 하여금 더 많이 노력하고 도전하게 만들어서 결국 훌륭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아우 콤플렉스가 결국 성공의 지름길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동생 중에서도 형편없는 막내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뭔가 도전하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질투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목사를 보고 '하나님이 참 기뻐하시는 목사구나. 나는 왜 저렇게 못 되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어야 되는데...' 하고 질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좋은 장로님들, 좋은 순장들을 보십시오.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진 않지만 은밀히 보시는 주님 앞에 신실하고, 주님이 항상 기뻐하겠다고 느껴질 만한 형제 자매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볼 때 질투하십시오. 나도 저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정하고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작년에 비해서 새해에는 하나님의 마음에 더 드는 자가 되어야지.' 이것처럼 거룩하고 아름다운 목표가 어디에 있습니까? 분명히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 더 주님을 닮아가는 자리로 올라가야 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인생의 승자는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한 자가 아니고, 과거보다도 오늘 더 우월한 자입니다." 작년보다도 오늘, 더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가 되고 주님의 마음에 더 기쁨을 드리는 자가 되었다면 그가 승자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은 지 20년이 되었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별로 발전이 없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요소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벌써 패자입니다. 지금까지 목적 없는 신앙생활을 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것을 목표로 세웠으면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놓고 도전하십시오. 각자가 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실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나는 성경에 대해서 무식해서 탈이야. 1주일 동안 성경을 한 장도 제대로 안 읽어. 그저 설교 듣는 것이 전부야. 하나님께서 날 보실 때 이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실 거야.' 이처럼 마음에 어떠한 가책이 오면 이에 대해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찾으십시오. 이것이 도전입니다. 첫날부터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런 식으로 읽겠다고 각오하고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자 하는 사람이 그런 도전도 없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있겠습니까?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마음에 꼭 들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것이 뭐가 있어요? 기도입니까? 하루에 5분도 제대로 기도를 안 합니까? 그러면서도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합니까? 사탄이 시험할 때 100% 넘어지는 신앙생활 이라면 하나께서 기뻐하실 리가 없습니다. '내가 기도 좀 해야 되겠다. 작심하고 기도 좀 하자.' 했으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교회로 달려오든지, 아니면 골방에 들어가 적어도 20분, 30분 엎드려 기도한다든지 뭔가 각오를 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물질에 애착이 있어 제대로 헌금하지 못합니까? 십일조도 안 합니까? 헌금하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인상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좋아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 그 동안 제게 많이 주셨는데, 금년의 목표는 제가 가진 것을 좀더 내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 좀 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헌금을 어떻게 해야 되겠다. 자선사업을 어떻게 해야 되겠다. 선한 일에는 어떻게 써야 되겠다.'는 나름대로 실천사항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실천사항을 가지고 우리가 도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주일을 철저히 지키지 않습니까? 남이 모르는 죄를 계속 용인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말씀으로 그것을 지적하고 책망할 때 귀를 막아버립니까? 그런 태도를 가지고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업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설교하는 제게 물을 것입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 금년에 어떤 도전을 하려고 합니까? 먼저 이야기해주세요?" 그러면 전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몇 달 전부터 제겐 도전해야 될 분명한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것만은 해야겠다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내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게 있어서 실천 사항입니다. 대형 교회 목사가 되어 지금 제 마음에 쓸데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습니다. 없어도 될 것들이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제 됐어. 그 정도면 됐어. 내 마음에 쏙 들어." 하고 말씀하실 때까지 마음을 비우려고 합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해 주시리라고 믿고 도전하려 합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마음을 비워야 될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쓸데 없는 잡동사니를 가득 넣고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비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자가 되길 사모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를 주십니다. 기쁨을 주십니다. 만족을 주십니다.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이 찬송처럼 우리가 이런 목표 가지고 새해를 살도록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현실적인 목표를 정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할 일을 주셨습니다. 다양한 일이 있고, 다양한 직업이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일해야 될 장소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할 일이 있고 소명이 있는 이상, 해마다 각자가 성취하고 달성해야 될 목표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막연한 꿈이 아닙니다. 당장 노력하고 준비해서 일정한 시간 안에 성취해야 되는 현실적인 목표를 말합니다.
채용정보 사이트 파워잡(www.powerjob.co.kr)이 지난 달 직장인 1,407명을 조사한 결과, 신년에 원하는 목표 1위가 이직으로 나타났습니다. 10명 중의 4명이 대우나 근무환경 면에서 좀더 나은 직장으로 옮기고 싶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자기 개발, 세 번째로는 봉급인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입니다. 남편입니다. 아내입니다. 어머니입니다. 회사의 팀장입니다. 학생입니다. 우리는 각자 사회에서 여러 가지 역할과 일을 맡아서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따라 우리가 바라는 꿈과 소원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막연한 꿈이나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면 안됩니다. 다시 말해 측정 가능하고 달성 가능한 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들고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놓고 도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목표를 바로 알면 삶이 단순해집니다. 확실한 목표는 내가 해야 할 행동과 내가 하지 말아야 될 행동을 분별해주는 기준이 됩니다. 성령의 사람은 반드시 설정해야 할 목표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구체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목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면서 도전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1등 집착증을 가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1등이 아니면 마음이 풀리지 않는 잘못된 태도를 가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 사람은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은메달을 따면 그것으로 눈물을 펑펑 쏟는 세계 유일의 민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금메달도 소중하고 은메달도 소중하고 동메달도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은 울 일이 아니라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도 1등이 아니면 못 견디는 악성 바이러스와 같은 병에 걸려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분수가 무엇인가를 인정합니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분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릇이 똑같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그릇을 놓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의 분수를 지킬 줄 아는 슬기를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자람을 아는 슬기를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모자람을 아는 슬기, 이것이 필요합니다. 이럴 때 내 분수 안에서 분명한 구체적인 목표를 찾고 그 목표를 달성하고자 도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 후 한두 번 실패한다고 해서 주저앉으면 안됩니다. 계속 도전해야 됩니다.
한 예를 들겠습니다. LA에서 여객기가 떠서 태평양을 건너 열 몇 시간 만에 서울로 온다고 합시다. 그런데 여객기가 열 몇 시간 동안 날면서 지정된 항로대로 나는 경우는 전체 10%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나머지 90%는 항로를 벗어난다고 합니다. 본래 항로를 벗어났다가 제자리에 돌아오고, 벗어났다가 또 제자리에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나중에는 목적지 공항에 도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때는 목표에서 벗어나고, 실패하고, 주저 앉기도 하지만, 계속 그 목표를 향해 믿음으로 도전하면 결국은 그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의 구체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만일 돈을 많이 벌어야 되겠다는 목표를 하나님께서 주셨으면 구체적으로 실천사항을 정해야 합니다. 얼마를 벌기 위해서 서비스를 어떻게 업그레이드를 시켜야 하는지 구체적인 사항을 놓고 하나님께 도전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의 경우 금년에 토플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면 목표 점수가 얼마인지 정해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금년에 이 점수가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날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열심히 할 것입니다. 도와주세요.' 이럴 때 그의 도전의식이 항상 활활 타오르고, 하나님 앞에 문을 두드리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목표가 희미해서는 뜨거운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금년에 도전하고 싶은 현실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잘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목표를 분명히 정하면 최선을 다해서 도전하십시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될 사실은 실패해도 또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주저 앉거나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십시오.
이렇게 1년 동안에 우리가 달려가야 될 길, 우리가 손에 넣어야 할 산지를 분명히 확인하면서 달려가면 금년 한해 동안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질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목표, 곧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열심히 뜁시다. 또 내 삶에 있어서 반드시 얻어야 되는 목표를 설정하고 하나님께 구하면서 열심히 도전합시다. 그래서 아말렉이 있는 산지를 우리의 소유로 만드는 한 해가 될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갈렙처럼 우리에게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는 분명한 목표와 도전 의식을 가지고 새해를 시작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께서 함께 하시오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착한 일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주옵소서.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일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알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 가정, 직장, 사회생활에서 우리가 분명히 달성하고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지 알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확실한 목표를 주셔서 금년에는 반드시 성공하는 한 해가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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