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 사도행전 5:30~32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제자들과 이 세상에 등장할 하나님의 교회를 향해 복음을 전하라는 특별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되 소규모가 아닌 모든 민족에게 온 세상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명령이 굉장히 엄숙한 명령이기에 학자들은 대사명, 제일 큰 명령이라고 별명을 지어 부릅니다.
신약성경에는 이 지상명령이 약 5회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마태복음 28장 19절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의 제자를 삼으라고 했으니 대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으로 넘어가면 16장 15절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말씀합니다. 또 누가복음 24장 47-48절에서는 간접적으로 복음을 전하도록 명령합니다. 구약에 기록한 대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이 모든 일에 너희가 증인'이라는 말은 '너희는 이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명령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20장 21절에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말씀합니다. 곧 '파송한다'는 말씀을 하시고, 드디어 클라이맥스인 사도행전 1장 8절에 이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은 '내 증인이 되라.'는 명령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권세와 땅의 권세를 하나님으로부터 위임 받은 최고의 통치자요, 최고의 권력자입니다. 이 왕 중의 왕이 우리를 향해서 이렇게 마지막으로 명령하셨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그리고는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엄숙한 명령 앞에 아무도 '아니오'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주님!"하고 부르는 사람은 예외 없이 이 명령에 복종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대수롭게 않게 여기면서 세상을 산다면 예수님의 가장 큰 명령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도 안하고 그저 적당히 신앙생활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분들은, 천당이야 갈 지 모르지만 예수님의 가장 큰 명령을 고의적으로 거부하거나 무시하고 살았다는 점에서 책임을 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만큼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순종하는 것은 우리모두에게 대단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 형제들을 볼 때 '아, 이 형제 구원해야지. 예수 믿도록 해야지. 어떻게 하면 전도할 수 있을까?' 하면서 안타까워 합니까? 예수님께서 전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안타까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20년 가까이 대각성전도집회라는 새생명축제를 열고 해마다 6개월 동안 준비하면서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려고 정성을 쏟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가 세상 끝날까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조금이라도 등한히 한다면, 그 교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매년마다 어떻게 하든지 주님의 이 명령을 한번 순종해보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대각성전도집회, 새생명축제를 열어서 오늘까지 이어온 것입니다. 얼마나 엄청난 열매들이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까? 전도는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이기 때문에 이것을 거역하면 교회의 머리 되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명령을 예사로 보지 마십시오. 선교사들이나 하는 특별한 소명으로 보지 마십시오. 여러분, 예수님의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합니까? '주여' 하고 부릅니까? 나의 왕이라고 고백합니까?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까? 그렇다면 그분이 주신 제일 큰 명령을 거역하면서 인생을 살거나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모순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그 명령은 세상적으로 볼 때는 너무 비현실적입니다. 왜냐하면 그 정도의 어마어마한 일을 하도록 명령받은 사람이라면 무언가 갖추어져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명령을 들은 11명의 사도들을 보십시오. 대부분 그 당시에 무시당하던 갈릴리 지방의 배우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온 세상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으니 무슨 현실성이 있습니까?
그리고 나중에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인 120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는 남자, 여자,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다 모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병이 나은 경험이 있거나, 또는 예수님을 통해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한 사람들로서 대부분 사회적으로 주목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에게 전세계를 향해 복음을 전하라고 했으니 무슨 현실성이 있겠습니까? 예루살렘에서 명함도 못 내밀 사람들인 것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예루살렘 골목 모퉁이에서 갈릴리 사투리로 "예수 믿으십시오. 예수님은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하면 어느 누가 그 말을 듣겠습니까? 한 사람도 전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으니 얼마나 비현실적입니까?
여러분, 전도지를 가지고 젊은이들이 많이 드나드는 광장에 한번 나가보십시오. 그리고 어느 골목에 서서 "예수 믿으세요." 하고 한번 전해보십시오. 그러면 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약한지를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남자들은 대부분 마음이 좀 너그러운 편이어서 전도지도 받고, 머리도 끄덕끄덕 합니다. 그런데 팔짱 끼고 가는 여자들은 참 표독해요. 탁 뿌리치고는 안 받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그들을 예수 믿게 할 수 있습니까?'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아, 이것은 절벽이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하잘 젓 없는 존재들을 불러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했으니 현실성이 없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예수님의 명령이 현실성이 없는 이유는 이 세상이 너무도 악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세상은 아직도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점령지역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이미 악한 권세를 짓밟고 승리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은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마귀와 사탄과 악령을 일컬어 '세상의 신'이라고 요한복음에서 3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권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한 지 30~40년이 지난 후에도,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사탄을 일컬어 '이 세상 신', '이 세상 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승리하셨지만 아직 사탄은 병도 안 걸렸습니다. 드러누워서 앓고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여전히 원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무서운 세력입니다. 그러므로 우주는 아직 전쟁 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사탄의 세력이 비등해서 서로 파워 게임을 하는 전쟁은 아닙니다. 이것은 일종의 내란입니다.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들어와서 내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초강대국인 미국에 몇 명의 테러범들이 들어와 미국 전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공포를 불러 일으키며 혼란을 일으킨 것처럼, 오늘날 사탄은 여전히 하나님이 다스리는 이 큰 우주 속에 여기저기 다니면서 내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세력을 확보하고 자기가 지배하는 백성들을 여전히 늘려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탄에게 지배당하고, 점령당한 지역들이 우리 주변이나 세계 도처에 많이 있습니다. 큰 세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보면 이 세상 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도록 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흐트려놓아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듣지 못하게 하고, 설령 들었다 해도 깨닫지 못하게 하고, 깨달았다 해도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그 마음을 꽉 붙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이 점령하는 지역입니다. 이런 사탄의 점령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이처럼 악한 세상을 향해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기에 너무나 현실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을 보아도 신통치 못하고, 복음을 전해야 할 현장을 보아도 악하고 무서운데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땅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습니까? 하지만 도무지 될 것 같지도 않은 일을 주님께서는 분명히 명령하고 가셨습니다.
그러나 이 난제를 푸는 열쇠가 있습니다. 바로 성령입니다. 우리 같은 별수없는 존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key가 성령입니다. 이 악한 세상을 다룰 수 있는 열쇠가 성령이라는 말입니다. 성령의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우리는 강해집니다. 얼마만큼 강해집니까? 예수님만큼 강해집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어두워도 우리 앞에 대적하지 못하는, 적수가 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성령이 key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미 입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할렐루야!
아무리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입고 오셨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입니다. 벌써 그분 자신이 이 세상의 모든 권세를 지배할 수 있는 영광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상에 오셔서 일할 동안에는 모든 것을 성령께 의탁하셨습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셔서 말하셨고, 성령이 전도하게 하셔서 전도하셨습니다. 성령이 병든 자를 고치게 하셔서 고치셨고, 나중에는 성령이 죽은 무덤에서 일어나게 하셔서 예수님이 일어나셨습니다. 전적으로 성령께 의탁하셨습니다.
그 사실에 대해 사도행전 10장 3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이렇듯 예수님께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시고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바로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제자들과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너희들이 성령을 받아야 돼. 성령을 받아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어.' 하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너희를 권능으로 무장시키기 전에는 밖에 나가서 예수 믿으라는 하지말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장 8절에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그 다음에 그 권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말씀합니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만 전도할 수 있는 권능입니까? 예루살렘에만 전도할 수 있는 권능입니까? 우리 집안 식구만 전도할 수 있는 권능입니까? 아닙니다. 예루살렘을 넘어 사마리아까지, 우리나라로 말하면 전라도까지, 그 다음에 더 나아가서 갈릴리까지, 저 북한까지 입니다. 그 다음에 성령의 능력은 그 정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너무나 그 능력이 커서 그 이상으로 뻗어 나갑니다. 어디까지입니까? 땅 끝까지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세계 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교회에 주십니다. 성령의 능력은 이 만큼 강합니다. 이 만큼 역사합니다. 제자들이 이 성령의 능력을 받아 그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몸소 체험했지 않습니까? 절대 안될 것 같이 보였던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굉장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30, 31절을 보면 전도가 무엇이라고 나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살아나셨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도가 무엇입니까? 이 사랑하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예수님!'하고 부르면 죄사함을 받는다고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전도하러 나가서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나 혼자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전도하느냐?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곧 성령도 증인이더라 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전도할 때, 나 혼자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나와 같이 전도하는 것을 그들이 체험했습니다. 그 결과 엄청난 열매들이 그들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듯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그렇게 비겁한 사람 베드로가 전도를 하니 얼마나 큰 일이 일어났습니까? 몇 일전에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이느라고 흥분해서 씩씩거리던 그 폭도들, 아직도 그 감정이 누그러지지 않은 그들에게 "너희들이 못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 예수 믿고 죄사함 받으라."고 베드로가 전했더니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슴을 치고 돌아오는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누구의 능력입니까? 성령의 능력입니다.
사도행전 1장부터 28장까지의 기간을 보통 약 30년으로 잡습니다. 그러면 사도행전에서 제일 처음 등장한 교회의 교인 수는 몇 명입니까? 120밖에 안됩니다. 그런데 약 30년이 지난 후, 사도행전의 기간동안 예수 믿고 돌아온 모든 성도들의 숫자를 학자들은 10만 명으로 어림잡습니다. 30년 사이에 120명의 갈릴리 촌놈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는데, 한 세대가 가기 전에 사마리아를 넘어 헬라권에 이르기까지 수만 명의 사람들이 예수 믿고 돌아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누구의 역사입니까?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그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입증하셨습니다. 사도들이 성령을 받고 그 능력이 얼마나 강한가를 입증한 것입니다. 초대 교회가 이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과 사도들과 초대교회 사람들이 마신 우물물을 똑같이 마셔야 됩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의 원천인 성령을 마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성령은 이미 교회에 임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성령은 우리 모두에게 임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거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주님을 향해 찬양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사랑의교회에 임하셔서 역사하셨기 때문에 지난 23년 동안 대각성전도집회를 18번 거듭하면서 많은 기적들을 보았습니다. 적어도 14,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자리에서 복음을 듣고 일어나 예수를 믿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성령이 거하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납니까?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사랑의교회에 성령이 임하시고, 사랑의교회에 지금까지 역사하신 성령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내 안에 성령이 거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이 교회에 거하시고, 성령이 내 안에 임하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안주하면 안됩니다. 중요한 사실 하나가 필요합니다. 그 성령은 충만해야 합니다. 교회에 충만해야 합니다. 내 안에 충만해야 합니다. 내 가정에 충만해야 됩니다. 한국교회에 충만해야 됩니다. 충만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바울이 성령 충만하여 가로되', 스데반을 놓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모두가 충만한 대명사가 있습니다. 이 충만의 역사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된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충만해야 됩니다.
여러분,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특징이 있습니다. 오늘 제가 몇 가지 특징을 말씀드릴 것입니다. 마음에 잘 담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본인이 성령 충만한 지 안 한지를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만약 성령 충만하지 못하다면 충만하기를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첫번째로 성령 충만하면 입이 열립니다. 오순절 다락방에 임한 성령은 제일 먼저 120명의 입을 열어 놓았습니다. 꼭 다물고 있던 사람들의 입을 열어 하나님의 큰 일,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온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날 정도로 소리를 지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을 옆에 두고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합니다. '아, 저 영혼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복음을 좀 전할 수 있을까?' 어쩌다가 입을 열지 않고 피곤해서 입을 다물고 전할 기회를 놓쳐버리면 집에 돌아와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여러분, 누가 우리 안에 충만한 것입니까?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니까 그런 감정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을 차를 타고 가다 만나든지, 길에서 만나든지, 커피숍에서 만나든지 간에 이상하게도 말을 하고 싶습니다. 어쩌다가 20년 전의 동창을 만났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내가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처음에는 벙벙합니다. 그러나 일단 "너 교회에 나가니? 예수 믿니?" 하고 일단 입을 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전도폭발을 배웠던지 안 배웠던지, 성경을 많이 알든 모르든 상관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말문이 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께서 말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성령 충만하면 담대해집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겁쟁이 베드로가 성령충만하자 얼마나 담대해졌는지 사도행전을 열기만 하면 금방 나옵니다. 전도라는 것은 사탄을 향해 선전포고하는 것입니다. 내가 벌써 전도지 들고 나간다는 것은 사탄을 향해 선전포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일컬어 전투하는 종교라고 합니다. 지금도 사탄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교회를 핍박하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혹독하게 교회를 핍박하는지 모릅니다. 전도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못살게 구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데이빗 바렛(David B. Barrett)이라고 하는 유명한 통계학자가 있습니다. 그의 통계에 의하면 1900년대 복음을 전하다가 끌려가 죽은 순교자들, 그 다음에 예수 믿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다가 죽은 순교자들이 1년에 15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즉 하루에 약 400명이 지구 도처에서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는 말입니다. 북한에 있는 참혹한 핍박까지 포함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만큼 사탄은 오늘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집요하게 갖은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해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핍박하고,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자들을 못살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리 사탄이 아우성을 쳐도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이 사탄의 역사를 짓밟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람보고 겁이 납니까? 전도하려고 하면 부끄럽습니까? 아직도 충만하지 못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충만하게 해주세요.' 술 먹고 길거리에서 갈 지(之)자 걸음을 걸으며 비틀거리는 것은 하나도 부끄럽게 생각지 않으면서, 한 영혼을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만들려고 수고하는 것은 부끄럽게 생각합니까? 이것은 성령 충만하지 못해서 나오는 인간적인 반응입니다.
세번째로 성령 충만하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납니다. 마가복음 16장 17-18절을 보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개인적으로 기독교 일각에서 주장하는 능력 전도에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전도할 때 무조건 악한 귀신하고 혈투를 벌여야 전도가 된다고 주장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러 나갈 때마다 '이 귀신들아, 내가 나왔다. 한번 싸워보자.' 하며 이런 식으로 쫓아내고, 그 다음에 무슨 표적이 일어나야 전도가 된다고 주장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나갑니다. 예수 이름 자체가 권능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고 충만합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지난 23년 동안 사랑의교회가 무슨 표적, 기사와 같은 것을 보지 않았어도 수많은 심령이 어두움의 쇠사슬을 끊고 주님 앞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예수의 이름, 복음 그 자체가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하나님께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기도 하십니다. 특별히 전도하기가 어렵고, 잡다한 귀신이 진을 치고 있는 선교지의 최전방에서는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마다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십니다.
램지 맥뮬랜(Ramsay MacMullan) 박사라는 예일대 역사학 교수가 있습니다. 로마 제국을 연구한 가장 권위있는 교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다시피 로마 제국은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잡다한 신들과 신화에 겁을 먹고는 날마다 제사를 지내는 나라였습니다. 이런 나라가 어떻게 300년 사이에 기독교 나라로 바뀌었을까? 어떻게 300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그 시골스런 몇 사람들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 그 큰 제국이 무릎을 꿇게 되었을까요? 이것이 맥뮬런 박사에게는 굉장히 관심거리였습니다. 그래서 그 300년 기간 동안에 어떻게 해서 복음이 전 세계에 확산되었는지를 연구해서 책을 1권 냈습니다.
그 책에 의하면, 그 당시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정복할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가장 두드러진 이유는 귀신을 쫓아내는데 탁월했다는 점입니다. 표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전도자들이 귀신들린 사람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가라." 하자 귀신이 깨끗하게 물러가서 새사람이 되고, 예수를 믿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또 어떤 신전에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한마디 전하자 그 신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수라장이 되어 버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소위 이런 하나님과 하나님보다도 못한 어떤 열등신과의 대결에서 예수의 이름이 이기는 능력과 표적이 계속 나타나자, 나중에는 로마 제국을 흔들어 놓는 큰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지금도 선교지에 가면 무식한 토족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할 때 선교사를 통해서 표적과 기사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성령 충만하면 이와 같은 표적과 기사가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네번째로 성령 충만하면 놀라운 전도의 열매가 일어납니다. 예루살렘에서처럼 집단 회심이 일어납니다. 빌립보에처럼 가족들의 회심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개인 회심이 일어납니다. 개인적으로, 가족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대부흥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전도해서 한 사람이 예수 믿고 돌아왔다면 여러분이 성령 충만한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 때문에 그 가족 10명이 다 예수 믿고 돌아와서 교회에 나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라고 하는 것은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회개를 촉구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준다는 약속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란 결코 쉬운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놓고 무릎을 꿇으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일을 누가 감히 강조할 수 있습니까?
C. S. 루이스의 말처럼 '회개하라'는 말은 그 사람을 향해 죽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즉 일종의 죽음을 각오하라는 말인데, 누가 감히 가서 사람들에게 '너 칼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죽으라.'고 누가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 놀라운 정도의 열매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가운데 세계적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작년에 중앙 아프리카에 가서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도집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수만 명이 마을 외곽의 큰 광장에 모였다고 합니다. 문제는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탓에 그곳에 화장실 시설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몸에 약한 부분이 있어 화장실을 자주 가시는 편이었다고 합니다. 제대로 시설이 된 곳이면 단상에 앉아 있다가도 필요하면 다녀오면 되는데, 이곳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아이들에게 채워주는 기저귀를 차고 나갔습니다.
이제 단상에 앉아 있는데, 원래 약한 심장이 그 날 따라 더욱 조여 오는 것 같고 답답해서 하나님 앞에 계속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러 왔는데, 만약 심장에 무리가 와서 쓰러지면 무슨 망신입니까? 이 잡다한 우상을 다 섬기는 사람들 앞에서 그런 일은 도무지 안됩니다. 복음을 전하고 호텔에 가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저를 좀 도와주세요. 꼭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가 나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복음을 전하시자 수천 명이 예수를 믿겠다고 나오는 광경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하면 엄청난 열매가 지금도 일어납니다.
지난 8월에 박우인, 임효숙 집사 부부가 팀장이 되어 자원자 39명과 함께 제주도 섬전도를 떠난 적이 있습니다. 팀원 중에는 71세의 허학관 집사님도 있었습니다. 알다시피 제주도는 전국에서 복음화율이 가장 낮은 지역으 로, 단지 8%만이 신자일 정도로 열악한 곳입니다. 그래서 현지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들은 "한 사람 전도해서 예수 믿고 돌아오면 육지에서 100명이 돌아오는 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저희 교회 전도팀이 그곳에서 기도하고 300명 가까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결과, 놀랍게도 110명이 예수를 믿겠다고 결신했습니다. 이것은 전도팀이 성령으로 충만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결신으로 끝나지 않고 그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날 제주도에 있는 법환교회 목사님이 매우 흥분해서 연락하셨습니다. 사랑의교회 전도팀이 다녀간 후, 그 주일에 13명이 예수를 믿겠다고 교회로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에 나온 사람까지 합하면 35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는 1명이 100명에 해당되기 때문에 3500명의 영혼이 돌아온 것이나 다름없는 숫자였습니다. 이렇듯 그 교회가 새생명의 잔치로 들떠 있었던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께서 큰 열매를 주십니다. 아무리 내 가정에 믿지 않고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내가 성령 충만하면 그 사람이 예수 믿고 반드시 돌아 옵니다. 여러분, 사랑의교회가 성령 충만하면 이 앞에 있는 젊은이광장을 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 모두가 성령 충만하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충만할 것이냐? 대답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적으로 '나는 성령 충만하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되면 열심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교회가 대각성전도집회를 앞에 놓고 기도해야 됩니다. 성령 충만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미 몇 일전부터 24시간 기도체인이 가동되었습니다. 다락방 순장과 순원이 정해진 시간에 교회에 나와서 기도합니다. 1시간 동안 기도하고는 그 다음 다락방에 바톤을 건네주고 갑니다. 그래서 24시간 기도가 끊어지지 않도록 앞으로 2주 이상 기도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통해서 개인이 성령 충만하게 될 뿐만 아니라 교회가 성령 충만하게 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중보기도실에는 이 예배를 위해서 기도하는 팀들이 있습니다. 설교하는 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팀들이 24시간 변함없이 성령 충만하기를 위해 기도하고, 대각성전도집회에 수많은 영혼이 구원받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기도하면 성령 충만해집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사람이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령 충만해서 우리 입이 열리도록 합시다. 성령 충만해서 담대한 전도인 되도록 합시다. 성령 충만해서 우리를 통해서도 이적과 기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합시다. 성령 충만해서 우리를 통해서 수많은 영혼이 구원받는 대부흥이 일어나도록 합시다. 주님의 소원입니다.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큰 명령을 공공연히 거역하면서 예수 잘 믿는 것처럼, 신앙생활 잘 하는 것처럼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이 시간 주신 말씀 마음에 담고 우리 모두가 성령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주여, 우리 각자의 심령에 기도의 문을 여시고 하늘로부터 임하는 성령의 충만함이 우리를 온전히 사로잡아 우리 한 사람 비록 심히 적어 보이고 약해 보이지만, 우리를 통하여 천을 이루고 강국을 이루는 기적이 서초동에서 시작하여 땅 끝까지 일어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사랑의교회만이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가 성령 충만하여 이 나라를 다시 한번 치유하고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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