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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 말씀들을 설교자 이재철
말씀: 요한복음 17 : 6∼9
금년도 프로 야구 최고 스타중의 한사람은 한국프로야구사상 최초로 홈런 30개와 도루 30개를 동시에 기록한, 신인 박재홍 선수 였습니다. 금년도에 대학을 졸업한, 아직 앳띤 얼굴의 박재홍 선수에게 누구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느냐고 기자가 물었을 때, 그는 주저없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박재홍 선수가 야구선수로서 뿐만 아니라,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였다고 합니다. 박재홍 선수가 연세대 진학을 위해 고향의 울타리를 벗어날 때, 홀로 객지를 향해 떠나는 아들의 손에 아버지는 50쪽 분량의 노트를 쥐어 주었다고 합니다. 박재홍 선수가 서울에 도착하여 그 노트를 펼쳐 보았을 때 거기에는 전문가 수준 못지 않는 야구 이야기와 돈, 여자, 사회생활등, 인생 전반에 걸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밝힌, 금쪽 같은 이야기가 깨알처럼 적혀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인생지침서 였던 것입니다.
이제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이 어린 자식이 혈혈단신 타향으로 떠나는데 어찌 그 아버지가 돈을 주지 않았으며, 옷은 주지 않았겠습니까? 분명히 필요한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장만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끝났다면, 그 아버지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감동을 줄 아무런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객지로 떠나는 자식에게, 그 정도는,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다하는 일입니다.
박재홍 선수의 아버지가, 가슴이 찡하도록 우리를 감동시키는 까닭은, 사랑하는 아들의 손에 쥐어준 인생지침서 때문입니다. 깨알처럼 빼곡하게 적혀 있는, 대학노트 50쪽 분량의 인생지침서, 그것을 기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겠습니까? 내 사랑하는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까? 무엇을 써 주어야 할까?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날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만 했겠습니까? 그 노트 위에 씌어 있는 글자 한자 한자야말로, 자식을 위한 아버지의 뼈저린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식에게 돈만 주면, 그 돈은 반드시 자식을 해칩니다. 그렇기에 돈만 주는 것은 참 사랑일 수가 없습니다. 자식이 무엇이든 하는 대로 가만히 내버려두면 결국 그 자식을 망치고 맙니다. 방치하는 것이 자식 사랑일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참된 자식 사랑은, 그 자식이 자신의 인생을 의미없이 탕진치 않고, 바르고 알차게 그 인생을 꾸려 갈 수 있도록 돕고 끌어 주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단 한번밖에 없는 삶의 기회이기에 인생보다 더 귀한 보배는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박재홍 선수가 정말 자신 인생을, 이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 더 보배롭게 엮어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 위해, 아버지가 그토록 정성을 다해 써 준 인생지침서야말로 가히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의 결정체요, 사랑의 극치라 하기에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어라 말씀하고 계십니까? 여인이 혹 그 젖먹는 자식을 잊을지언정,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겠다고, 즐거움을 가눌 수 없으시다고 고백하십니다. 도대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에게 이렇듯 직설적으로 고백하시겠습니까? 이처럼 말할 수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고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세상만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돈만 주시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영원토록 바르고 아름답게 가꿀 수 있도록 인생지침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바로 성경말씀입니다. 이 지침서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주전 1,500년 모세를 통해 창세기를 기록하신 이래, 주후 100년경 요한 사도를 통해 요한계시록을 마무리하시기까지 무려 1,600년을 필요로 하셨습니다. 그 긴 기간 동안,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실까? 무엇을 써 주실까? 얼마나 많고도 깊은 생각들을 하셨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성경의 한 글자 한 글자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뼈저린 사랑의 고백이요, 성경자체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요,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박재홍 선수의 아버지가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아들에게 인생지침서를 써 주었다 할지라도, 박재홍 선수가 그 지침서를 읽고 마음에 새기지 않는다면, 그 지침을 삶 속에 적용치 않는다면, 그 노트는 폐지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입니다. 만약 서울 아들 방을 방문한 아버지가, 자신이 써준 지침서를 박재홍 선수가 단 한번도 읽지 않아, 노트 위에 하얀 먼지만 수북히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서글프겠습니까? 아버지의 말을 무시한 아들이 행여 라도 마음 내키는 대로 살다가 그 인생을 망치기라도 한다면, 밤새워 가며 인생지침서를 써 주었던 그 아버지는 땅을 치며 통탄치 않겠습니까?
예레미아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렘 13:17)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을 인하여 은근히 곡할 것이며, 여호와의 양무리가 사로잡힘을 인하여 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
하나님께서 1,600년에 걸쳐, 가다듬고 가다듬어 우리에게 주신 이 생명의 말씀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허망한 욕망에 사로잡혀 천하보다 더 귀한 우리의 인생을 덧없이 탕진해 버린다면, 그 인생을 주신 하나님께서 어찌 눈물을 흘려 통곡치 않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실제로 박재홍 선수는, 아버지로부터 건네 받은 그 귀한 인생지침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잠이 오지 않거나 혹은 마음이 해이해질 때면, 박재홍 선수는 언제나 아버지가 써준 지침서를 읽고 또 읽는다고 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수도 없이 정독했었다고 합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애써 그 지침서를 써준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흐뭇했겠습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 박재홍 선수가 그 지침서가 이르는 대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하는 친구들을 바르게 인도하는 인생의 길잡이가 된다면, 그 아버지의 기쁨은 배가될 것입니다.
박재홍 선수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써준 인생지침서는 결코 완전한 지침서일 수가 없습니다. 그 지침서를 쓴 장본인이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박재홍 선수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지침서로는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혈을 기울여 지침서를 써준 아버지에게 감사하면서, 아버지의 정신을 따르기 위해 그 지침서를 읽고 또 읽고 있다면, 하물며 우리의 인생을 영원토록 바르고 아름답게 세워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주신, 이 영원한 지침서의 말씀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하여야할지, 또 이 귀한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는, 너무나 명약관하 해서 재론의 여지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오늘 본문 상반절을 통하여 주님께서 이렇게 고백하고 계십니다.
(8a)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여기에서 `저희'란 누구를 일컫는 말입니까? 본문 6절에서 말씀하시는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 곧 하나님께서 주님께 맡기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하나님께 드리는 마지막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을 믿으시고 당신에게 맡겨 주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무엇을 했었는지를 보고 드리고 있는 바, 우리는 2주전부터 그 내용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님께서는 본문 6절을 통하여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다"고 고백하셨고, 그 의미에 대해서는 지난 주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8절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두 번째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었노라 고백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들에게 딴 것을 주시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해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지침, 영원한 진리의 지침, 영원한 구원의 지침, 영원한 소망의 지침, 영원한 기쁨의 지침, 영원한 승리의 지침인 이 말씀을 전해 주는 것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더 원하시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주님께서는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께 맡겨 주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결과가 어떠했었다고 고백하고 계십니까? 8절이 계속하여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주시었을 뿐이었는데, 사람들은 그 말씀을 받아 들였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하시는 주님이 하나님께로서 나오신 분이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심을 알고 믿기까지 하였습니다. 참으로 놀랄만한 결과가 아닙니까? 어떻게 이처럼 놀라운 일이 가능하였습니까? 주님께서는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다'고 고백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온전히 받으셨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받은 말씀을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전하시는 순간, 그 말씀이 주님에게서 소멸되어 버렸더라면 그같은 엄청난 결과는 초래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신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셨지만, 그 말씀은 여전히 주님 안에 온전히 담겨 있었고, 담긴 그 말씀은 삶으로 incarnation, 즉 육화(肉化)되어, 사람들이 눈으로 고스란히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주님을 통해, 인생의 영원한 지침인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의 참됨과 가치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기에 주님의 전해주시는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주님이야말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분이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임을,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만이 인생의 영원하고 참된 지침임을 인정치 않을래야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인생이 그 분의 말씀 속에서 전혀 새롭게 변화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중 가장 귀한 것은 인생의 영원한 지침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게 맡겨 주신 사람들이 그 인생을 바르게 참되게 꾸려가도록 도우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일은 없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는 것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늘 담겨 있어야 하고, 그 담긴 말씀은 우리의 삶으로 incarnation, 육화되어 상대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만 시작됩니다. 우리가 도무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고도, 그 말씀으로 나를 채우려고 하지 않는데, 어찌 우리의 삶이 타인의 인생을 바르게 인도하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지침의 통로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삶으로는 타인의 인생을 바로 세우기는커녕 내 자신의 인생마저 망치기 일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는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것은, 그 겉모양이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 핵심은 언제나 인간을 파멸시키는 허망한 욕망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해안에 살고 있는 어부들은 바닷속 중요지점에 어초(魚草)를 만들어 둡니다. 어초란 고기 `어'에 풀 `초', 즉 물고기를 위한 초가집이란 뜻입니다. 크기는 일정치 않지만 대게 가로 세로 높이 5m정도의 콘크리트 층층집을 짓고 그 위를 짚으로 덮고 엮은 뒤, 그것을 바다 속의 중요지점에다 설치해 둡니다. 그러면 산란기가 된 물고기가 바로 그 곳에 알을 낳고, 시간이 지나 부화된 물고기는 그 어초 인근해역에서 계속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부가 바다 속에 어초를 짓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쏟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오히려 어획고를 올려주는 첩경입니다. 다시 말해 어초야말로 어부로 하여금, 자기 인생을 어부답게 굳건히 지탱케 해줄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딸린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확고한 보증서가 되는 것입니다. 어초가 많을수록 어획고는 더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부는 어초를 만드는데 투여되는 시간과 노력을 조금도 귀찮아하거나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쁨으로 그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동해안 어부에게 고기 `魚', 어초가 필요하다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안에 산란할 수 있는 말씀 `言', 언초(言草)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내 마음 속에 담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과 정성을 쏟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속에 언초가 자리 잡는 것으로부터, 바로 우리의 삶이 영원한 하나님의 지침에 따라 비로소 바르게 세워지는 것이며, 또한 우리의 삶이 타인의 삶을 바르게 인도하는 이정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참되고 영원한 인생의 지침을 주기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이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기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세우시는 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람들에게 무엇을 했었노라 기쁨으로 보고 드리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마음 속에 영원한 지침, 하나님 말씀을 위한 언초를 세우십시오. 천하개벽도 내속에 언초가 세워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절이 이렇게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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