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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쉬십시오/마가복음 6:30-34

by 【고동엽】 2021. 12. 20.
잠깐 쉬십시오
마가복음 6:30-34


문화부 장관을 지내신 이어령씨 가 쓴 책 가운데 신한국인이라는 책 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새로 운 시대의 한국인과 옛날의 전통적 인 한국인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옛날 한국인과 새 시대의 한국 인의 하나의 생활패턴의 가장 커다 란 차이를 속도감에서 찾고 있습니 다. 속도감각이 다르다. 한국인이 기다림에 익숙한 인내의 세대이었다 면 요즈음 새로운 시대의 한국인은 조급해진 소위 빨리빨리의 세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분의 다른 표 현을 빌리면 소위 밥세대와 라면세 대의 차이다 이렇게도 말할 수가 있 습니다. 옛날에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나 혹은 자녀들을 위해서 가 정의 주부들 어머니들은 밥을 지어 놓고 아랫목에 그 뜸을 들이기 위해 서 묻어 놓은 밥의 온기처럼 그렇게 은근한 기다림의 세대였다면 오늘의 시대는 그런 여유나 그런 낭만을 다 소간 아니 어쩌면 상당히 잃어버린 세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조급하 고 어쩌면 독하기까지한 그런 이웃 들의 얼굴을 우리는 거리에서 쉽게 만나 볼 수가 있습니다. 과거에 우 리가 읖조리던 소월의 시가운데 엄 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시가 있 었는데 요즘 이 시는 바뀌었습니다. 엄마야 누나야 간편 살자. 간편하게 살자 그래서 간편한 삶을 대표하는 상징이 바로 라면이라고 할수가 있 습니다. 소위 인스턴트 문화를 대표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 서 제가 언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 라면을 가만히 관찰해 보니까 숫자별로 다 있더라구요. 그래서 일 뭐가 있습니까? 일번지라면 이는 이 백냥라면 삼은 삼양라면 또 사는 사 발면 또 오는 오향면 육은 육개장라 면 칠은 세븐 뭐요? 세븐 뭐 있어 요? 없으면 누가 그 라면을 발명하 시기 바랍니다. 팔은 팔도라면. 숫 자별로 있더라구요.. 패스트 산업의 발달은 확실히 우리들의 속도감을 촉진 시켰습니다. 좋은 결과도 있지 만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많다고 생 각 하는데 그 중에 우리가 가장 잃 어버린 커다란 손실이 인내심의 상 실이다.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우리 는 가만히 있는 것을 낭비로 생각하 기 시작 했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 는 휴식의 의미 혹은 안식의 축복을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오늘 본분의 30절은 이런 말씀으로 시작 합니다.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제자들입니 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도하러 나 갔다 들어 왔습니다. 그들을 왜 사 도라 불렀는고 하니 사도란 말의 뜻 이 보내심을 받은 자다 이런 뜻입니 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보내심을 받 아 전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도 에 상당한 실적을 거두고 돌아왔습 니다.보고를 시작 합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숨 돌릴 겨를도 없이 헐레 벌떡 예수님 앞에 보고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 의 얼굴을 쳐다보시더니 아마도 그 보고를 중단 시킨 것으로 보여 집니 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서두르지 말고 우리 어디 조 용한데 가서 한적한데 가서 쉬면서 같이 얘기하자 그렇게 말씀하십니 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갈릴리 사역 은 상당한 성공이었습니다. 가버나 움을 중심으로 제자들의 전도 활동 은 많은 결신자를 얻었습니다. 병든 사람들이 또한 고침을 받고, 귀신들 린 사람들은 자유를 얻었고, 많은 무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 왔습니다. 예수의 명성은 높아졌고 주님의 이름은 찬양을 받게 되었습 니다. 제자들은 다소간 지치기는 했 지만은 흥분을 가누기 어려운 감동 이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그들은 격앙된 심정으로 주님 우리가 가버 나움에서는 이런 일을 경험 했구요 또 나가서 전도할 때 저기서는 이런 놀라운 결과가 일어 났습니다. 이렇 게 보고를 올리는 도중에 주님은 갑 자기 보고를 중단시키고 휴식을 제 안 하신 것 입니다. 이것이 31절이 예요. 자 본문의 31절 다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31절 시작 이러 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 이라 자 주님이 왜 제자들에게 휴식 을 제안 하셨을까요? 우리 이 질문 을 바꾸어서 매우 중요한 이런 질문 으로 다시 바꿔 볼수가 있습니다. 인생의 도상에서 삶의 길에서 왜 무 엇 때문에 휴식은 필요 할까요? 중 요한 질문입니다. 휴식은 왜 필요할 까요.?
우리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본 문에서 몇 가지로 얻을 수 있습니 다. 첫째로 성취를 돌아보기 위한 여유를 갖기 위해서 휴식은 필요합 니다. 우리들의 성취를 돌아보기 위 한 여유 바로 그 여유를 위해서 휴 식은 필요 하다는 것 입니다. 우리 가 30절을 가만히 읽어보시면 어떤 긴장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단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 본문이 시작하 는 30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 니다. 다 같이 시작. 사도들이 예수 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어떤 단어가 스 트레스를 일으킵니까? 낱낱이 그 렇죠? 정확하다는 면에서 매우 좋은 것이예요. 그러나 아마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도착하자 마자 아마 숨 돌 릴 겨를도 없이 몰아 세우면서 그들 이 있었던 일들을 막 보고 하기 시 작 했을 거예요.. 낱낱이 보고하자 주님은 제자들을 얼굴을 바라 보시 다가 그 보고를 중단 시킨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마도 그 보다 중요 한 안식의 여유가 제자들에게 필요 하다고 주님이 판단 하셨기 때문입 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안식이란 단 어가 맨 처음 나오는 곳은 어디 일 까요? 안식이라는 단어. 네 창세기 에 나오죠. 몇 장에 나옵니까? 1장 에 나와요? 2장에 네 두 장만 인내 하고 읽으셨으면 대답을 알 수가 있 습니다. 2장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 하시고 그리 고 제 칠일 날 하나님이 쉬셨습니 다. 중요한 것은 이겁니다. 하나님 도 쉬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해요. 왜 쉬셨을까요. 저는 그 이유가 돌 아봄의 여유를 갖기 위해서다 하나 님도 돌아보시고 싶어 하셨다. 그 창조의 한 단계가 끝날때 마다 창세 기 1장에 보시면 이런 말이 나옵니 다. 보시기에 좋았다 그런데 여섯쨋 날 창조를 완료 하신 다음에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지으 신 이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뭐라 그랬어요 심히 좋았다 하나님 이 창조 해 놓은 것을 보면서 야 좋 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오셨을 것입니다. 지금 은 고통의 시기 어떤 시련의시기를 겪고 있지만 저마다 땀 흘려서 우 리는 여기까지 인생의 길을 걸어왔 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입 니다. 돌아 온 인생을 길을 여러분 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최근에 가 져 보셨습니까? 돌아볼 수 있는 여유 이 여유란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저 시카고에 가면 기독교 명문인 윗튼 이라는 대학 이란 곳이 있습니다. 이 윗튼 대학에서 기독교 문학을 가르키는 라이켄 박사라는 분이 계시는데 라이켄교수는 이런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 주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기능적 우주로만 창조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은 보다 더 심미적 우주로 지으셨다. 이란 매우 중요한 애기를 했습니다 심미적 우주란 말 은 아티스틱 유니버스 아름다운 우 주로 지으셨다. 여러분 만약 하나 님께서 이 우주라는 땅덩이를 기능 적으로 살기에 편리한 곳으로만 지 으셨다면 우린 그냥 편리하게만 살 아가면 되요. 그러나 라이켄 교수 는 말하기는 하나님은 지구를 살기 에 편리한 곳일 뿐만 아니라, 살기 에 적합하니까 지구에서 오랫동안 인류가 생존해 왔겠죠? 이 지구는 살기에 편리한 곳일 뿐만 아니라 또 한 살기에 아름다운 곳이다. 살기에 아름다운 지구다. 만약 편리만이 목 적 이었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라이켄 교수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 다. 이 자연 사철마다 옷을 갈아 입 는 이 자연에게 번거럽고 황홀한 변 신은 왜 필요 했을까요? 라이켄 교 수는 계속 이렇게 글을 씁니다. 여 름마다 바다에는 해일이 넘치고 가 을에는 낙엽이 져야하고 겨울에는 백설이 대지를 덮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왜 이 우주는 신 묘한 음악 그리고 절묘한 미학을 지 닌 광채로 가득차 있을까요? 그 이 유는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하나 님은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즐기기를 원하십니다. 즐기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만약 이 전도에서 돌아 온 제 자들이 전도의 상당한 실적을 보고 하고 싶은 급한 마음이 있었겠지만 주님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전도하 러 내 보내서 그 전도에 대한 놀라 운 결과가 있게 하시고 전도의 보람 을 체험하도록 도우신 주님 정말 감 사해요.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보 고를 드리기 앞서서 우리 주님을 좀 찬양하고 싶습니다. 주님을 예배하 고 싶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시작 되었다면 주님이 절대로 중단 시키 지 않으셨을 것 같애요. 그러나 서 둘러서 보고 그 자체에만 지금 메달 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마 음 속에 그들의 그 아름다운 일 그 들이 성취한 놀라운 것들을 마음으 로 즐거워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 진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현대는 소위 실용주의적 가치 관 혹은 실용주의적 윤리관에 설득 당한 나머지 오늘 우리는 행동하고 있는 시간 움직이는 시간 만이 가치 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이예요. 그래서 가만히 있는 시간은 낭비다.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런 생각 을 했어요. 그러나 사실은 여유, 한 가함 이것이 보다 위대한 창조의 전 제가 될 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숲 속에 서 두 노동자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똑같은 시작에서 똑같은 시간까지 도끼를 들고 나무를 찍는 작업을 했 습니다. 같이 시작했어요. 같이 끝 났어요. 한 사람은 점심 시간에 잠 깐 한 20분 정도 브레이크 타임 쉬 는 시간 을 제외하고 아침부터 저 녁까지 부지런히 도끼를 들고 나무 를 찍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또 한사람 은 적어도 하루에 4차례 정 도 넉넉히 쉬어가며 그는 일을 했 습니다. 그런데 저녁 시간에 일이 완료되고 나서 일을 비교를 해 보니 까 4번씩이나 쉬어가며 일한 사람 이 더 많은 나무를 찍어 놨어요. 그 러니까 이 첫번째 사람 조금밖에 쉬 지 않고 일했던 사람이 놀라면서 아 니 당신은 나 보다 훨씬 더 많이 쉬면서 일을 했는데 어째서 나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있었단 말이요. 이때 쉬어 가면서 일한 일 꾼이 이런 대답을 했답니다. 자네가 잘 보면 나는 쉬면서 도끼의 날을 세우고 있었다네. 그 도끼를 다듬 고 날을 세우고 있었다네. 그리고 나는 쉬고나서 더 힘차게 이 나무 를 찍었고 그리고 더 많은 결과를 자네보다 얻을 수가 있었다네. 여 러분 여유가 낭비가 아니예요.. 여 유는 성취를 돌아보고 또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의 미래를 준비 할 수 있는 중요한 바탕인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이 여유를 가지고 인 생을 살고 있을까요? 무엇보다 우리 가 지금까지 달려온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 그 여유를 가지고 인 생을 살아오셨습니까? 그 여유를 위해서 휴식은 필요합니다. 우리의 지나온 삶의 성취를 잠시 돌아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한 걸음 더 나 아가서 새로운 힘을, 오늘 이 현재 에서 새로운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 휴식은 필요한 것입니다. 휴식이 필 요한 이유는 인간이 휴식을 필요로 하는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렇습니다. 자 본문의 31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너희 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 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을 봤습니까? 마지막에 쉬라 고 주께서 제안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이 음식도 먹지 못하 고 지금 '보고'라는 행동에 매달리 는 것을 봤습니다. 자, 이렇게 되면 제자들이 조금 있다가 음식도 먹지 못한 상태속에서 이렇게 서두르다가 그들이 탈진할 것은 뻔한 일이었습 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서 탈진 의 징후, burn-out징후를 보고 있었 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 자들에게 휴식을 제안하신 것입니 다. 잠깐 접어두고 우리 가서 먼저 쉬십시다. 그리고 쉬면서 우리 얘기 하십시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쉼이 필요없는, 안식이 필요없는 유일한 분이 있다면 저는 그것이 하나님 자 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하나님도 쉼을 필요로 하셨 습니다. 그 쉼을 필요로 하신 이유 중의 하나는 하나님도 새로워지고자 하셨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입 니까? 하나님에게도 이 새로워짐의 필요가 있었을까요? 저는 어느 날 이 안식을 주제로 하는 성경공부를 하다가 이 성경 한 구절앞에서 무척 놀랐습니다. 한 번 찾아보시길 바랍 니다. 출애굽기 31장17절의 말씀입 니다. 성경찾을 수 있는 여유가 계 신 분은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이 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 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 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쉬기만 하 신 것이 아니예요, 쉬었다는 단어만 강조된 것이 아니라 '쉬어 평안하였 다'. 그런데 이 '평안하였다'라는 말이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 보시면 영어 단어에는 이런 단어가 씌어있 어요. God(하나님이) refreshed Himself.- 하나님이 자신을 새롭게 하셨다. 하나님이 쉬면서 자신을 새 롭게 하셨다. 이렇게 성경은 기록하 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새로 운 힘을 얻으신 것이예요. 하나님에 게 새로워짐의 필요가 있었다면 사 랑하시는 여러분, 피조물인 저와 여 러분에게는 얼마나 새로워짐의 필요 가 있었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 예 수님의 제자들에게는 먹어야 할 필 요가 있었고, 지금 이 순간 제자들 에겐 쉬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 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휴식을 제안한 것입니다. 우리 한적 한 곳으로 갑시다. 문자 그대로 한 적한 곳은 사막입니다. 이 사막은 멀리 간 것은 아니예요. 갈릴리 바 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벳세다라는 평야가 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사 막, 아주 작은 사막이었습니다. 저 는 문자 그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우 리들에게 있어서 자기만의 사막, 자 기만의 광야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 다. 우리 집안에 방 하나를 여러분 사막으로 만들 수 가 있습니다. 그 래서 조용히 쉴 수가 있는 곳, 혹은 여러분 집 근처의 조용한 오솔길, 혹은 어느 산마루, 늘 내가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 때 찾을 수 있는 사 막, 거기서 주 앞에 엎드리고 기도 할 수 있는 자기만의 사막, 자기만 의 광야가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문자 그대로 우리의 삶의 회복을 위해서 이 한적한 곳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한 사람이 아주 흥미있는 실험을 했어요. 어떤 조용한 도서관 을 찾아가서 하루를 머물면서, 아침 부터 저녁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매 시간 책을 잔뜩 끼고 사람들이 나타 나면 그 책을 고의성있게 떨어뜨렸 습니다. 책을 왕창 떨어뜨리니까 지 나가던 사람이 도와줄 것 아니예요? 그런데 얼마나 도와주었느냐? 적어 도 지나가던 사람들의 50%이상이 책 을 떨어뜨린 이 사람을 도와주었습 니다. 그것을 1시간 간격으로 실험 을 해 보았어요. 그리고 그 다음 날 똑같은 실험을 하는데, 그러나 똑 같은 실험을 하기에 앞서서 도서관 에 양해를 구하고 도서관 바로 바깥 에다가 잔디깍는 기계를 작동시켰습 니다. 부르릉~ 시끄러워진 것입니 다. 그리고 똑 같은 시간에 시작해 서 1시간 간격으로 또 책을 떨어뜨 리는 거예요. 그랬더니 얼마나 많 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도와주었을 것 같습니까? 10%미만이었어요. '시 끄럽다' - 이 시끄러움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여유를 빼앗아 간 것입 니다. 사람들은 조용함 가운데 여유 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우 리가 조용함의 여유, 조용함이라는 축복을 누리고 있을까요? 예수님의 일상 생활을 가만히 복음서에서 관 찰해 보면 예수님은 바쁘셨어요. 한 가하신 분이 아니예요. 굉장히 바쁘 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서 에서 예수님은 허둥거리는 모습을 전혀 보여 주지 않으셨습니다. 바쁘 셨으나 여전히 침착한 그 분의 삶, 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한, 예수님의 전기를 시도해 본 사람들이 많습니 다. 그 중에 저는 가장 감동적인 '예수전'의 작가인 르낭의 글의 한 부분을 기억합니다.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 르낭이 라는 사람은 절묘한 필체로 예수님 의 일상생활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 니다. 제가 번역을 해 봤습니다. 그 대로 번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 이처럼 완벽하고 조화된 풍성한 삶의 모본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는 열심히 일하셨다. 그러나 그는 적절 히 쉬셨다. 그는 일할 때와 쉬실때 를 아셨다. 그는 열중할 때와 관조 할 때를 아셨다. 그는 즐거워할 때 와 슬퍼할 때를 아셨다. 그는 사람 들과 어울릴 때를 아셨고, 홀로 있 을 때를 아셨다. 그는 사람들과 어 울릴 때 즐거워하셨다. 그러나 그는 홀로 있을 때도 여유로우셨다. 그에 게는 언제나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즐겁게 그를 따라 다닐 수 가 있었다. 그가 있는 곳에 잔치가 있었다. 그가 있는 곳에 웃음이 있 었고, 그가 있는 곳에 평화가 있었 다. 그러나 그는 한 순간 조용히 다 시 자신의 침묵의 성소로 돌아오셨 다. 그는 자주 하늘을 응시하셨다. 그리고 자주 그는 들판을 내다 보셨 다. 그의 눈길은 숲과 산에 머물러 있었다. 겟세마네동산 가는 길, 포 도원 밭길, 기드론 시냇가, 이 길은 언제나 예수의 산책로요, 기도의 오 솔길이었다. 그는 확고하셨으나 부 드러우셨다. 그는 천천히, 단호하게 십자가를 향해 걸어 가셨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내 사명을 이루었다고 고백할 수가 있었다. 그의 삶은 충 만한 생명 그 자체였다."
뭐 느낌이 와요? 여유가 있어야 이것도 느낌이 오죠? 새로워짐 - 소위 refreshment, 휴식이 우리 주님에게 도 이러한 여유를 주셨던 것입니다. 바쁘고 급박한 인생길에서 사랑하시 는 여러분, 그러기에 휴식은 우리에 게 얼마나 더 필요한 것입니까? 새 로워짐의 회복을 위해서 말입니다.

세번째로 휴식은 왜 필요할까 요? 미래의 사역을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휴식은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쉼을 제안하시고 그리고 쉬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계속 쉬신 것은 아니예요. 사실상 예수님은 쉴 팔자도 되지 못하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볼 수가 있어요.자. 33절 다 같이 한본 읽어 보겠습니 다. ' 그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 이 저희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 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저희보다 먼저 갔더라' 벳세다에 갔더니 예수 님이 벳세다에 가셨다는 소문이 나 면서 먼저 많은 사람들이 진치고 있 었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곧바로 다 시 사역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습니 다. 34절을 같이 읽어보십시다. '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 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 치시더라 ' 그렇다면 예수님은 전 혀 쉴 수가 없을까요? 어떤 성서학 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때 예수님 이 가졌던 유일한 쉼은 배타고 가 시면서 취했던 선상의 휴식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32절에 보세요. '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 자, 이 가버나움 타운으로부 터 시작해서 갈릴리 동편에 있는 베세다로 가기 위해서 탔던 짧은 거리의 선상에 휴식. 그러나 이 잠 깐의 휴식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함께 필요한 휴식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반드시 긴 안식만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예 요. 잠깐의 안식, 여러분 잠깐의 새 우잠, 얼마나 달아요. 잠깐의 낮잠, 잠깐의 산책, 잠깐의 망중한, 이 잠 깐의 휴식도 우리 인생의 장에서 얼 마나 여유를 제공할 수가 있습니까? 주님은 그리고 다시 이 잠깐의 휴식 을 통해서 얻어진 삶의 에너지를 가지고 다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산 적한 문제앞에 서서 복음을 외치고 말씀의 사역 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 니다. 쉼은 그에게 재충전을 해 주 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다시 새로운 창조를 위한 사역의 장에 설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휴식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RECREATION' 새로운 창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기 위한 그리고 새 로운 내일을 만들어 가기 위한 사역 의 장에 주님은 휴식 후에 담대하게 설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사랑하시는 여러분, 휴식은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합니 다. 안식이라는 것은 억지로라도 선 택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유대인 출 신 심리학자 가운데 세계적으로 유 명한 빅터 프랭클린이라느 분이 계 십니다. 소위 의미의 요법이라는 것 을 창안한 분입니다. 이 분이 나치 독일에게서 체포 되어서 감옥소에서 많은 세월을 보내면서 나중에 그것 을 회고하는 전기를,책을 썼습니다. 자, 이 비참한 감옥, 나치 독일의 비참한 감옥 속에서 그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자기 감옥 안에 갇힌 사 람들에게 한 말이라고 합니다. '여 러분, 우리는 많은 것을 빼앗겼습니 다. 저들은 나치 독일은 우리에게서 부모를 빼앗아 갔고, 처자식을 빼 앗아갔고, 사랑하는 친구를 빼앗아 갔고 사랑하는 애인을 빼앗아 갔습 니다. 저들은 우리에게서 편리한 모 든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결코 빼앗지 못할 것이 있습 니다. 우리는 고통스런 환경 속에 있지마는 이 고통스런 환경속에 어 떻게 반응 하느냐, 반응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 이것만은 아무도 빼앗 지 못합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여호 와를 찬양하셔야 합니다. 위대한 미 래를 꿈꾸어야 합니다. 이것은 아무 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우리만의 선택입니다. 여러분, IMF 시대에 우리가 다 같이 고통을 받고 있지만, 고통에 반응하는 것 이것 은 사람마다 달라요. 이 고통 속에 좌절하고 생을 포기 하는 사람이 있 지만, 그러나 이 고통은 도전할 만 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 고통 앞에서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설계 하는 선택은 아직도 가능합니다. 다 같이 불행하지만, 불행 앞에서 우리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는 거 예요. 그러면서 빅터 플랭크린 박사 는 말하기를 '나는 여기에서 묵상을 선택한다. 나는 눈을 감고 미래를 쳐다본다. 그리고 빛나는 미래를 향 해서 나는 나아간다. 나는 이 감옥 에서도 희망을 선택한다.' 여러분, 그래서 휴식이라는 것은 억지로라도 필요한 것입니다. 휴식 그러면 어 디로 가는 것만을 생각지 마세요. 우리가 좀 돈이 없어도, 여유가 없 어도, 우리 식구들에게 안겨줄 수 있는푸짐한 선물이 없어도 여러분, 가족들이 오래간만에 좋은 시간을 가져보세요. 전화코드도 뽑아버리 고, 온 식구들이 가슴을 폭 놓고 인 생도 이야기하고, 하나님도 찬양하 고 예배도 들이고 오래간만에 이 조 촐한 시간, 이것도 위대한 안식아니 예요? 진장한 안식은 영적인 자리 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진정한 안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예 배는 안식일 수가 있습니다. 이따금 식 보면 예배시간에도 삐삐. '그렇 게 인생을 살 필요가 있냐?' 그것을 꺼버리고 예배 시간만이라도 마음 으로라도 안식하면 얼마나 좋아요. 그거 없으면 인생을 못 살아요? 저 는 삐삐를 팔아치우는 놀라운 역사 가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여유있게 사세요. 인생을 여유있게. 그렇게 살지 말아요. 이 번 추석절에 쉬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나와도 괜찮아요. 가끔 빠지시기 바랍니다. 밤나 제 얼굴 보고사는 것 여러분 얼마나 피곤해요? 네, 주 님 바라보시고 오랫만에 가족들과 푹 쉬세요. 어떤 영어 번역에 보니 까 오늘 본문에 '잠깐 와서 쉬어 라.' 이 영어 번역을 어떤 영어 성 경 번역은 독특하게 했어요. 예수님 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있 습니다. ' Come with me ' 나와 함 께 같이 가자 . 휴식은 주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안식은 우리 주와 더불어 함께 있는 것이예요. 여러분 오래간만에 주님을 묵상하시 고 깊이 주님 안에 빠져보세요. 주 님은 안식의 주인인 줄로 믿습니다. 자, 제자들에게 휴식을 제안하던 주 님,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는 우리 가 잘 아는 유명한 말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 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 그 주님이 오늘 우리의 주님인 것을 인해서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 다. 그 분은 안식의 주인이라고 친 히 선포하신 분, 그는 참으로 안식 의 주님이십니다. 세계적인 신학자 요 전도자 가운데 버논 맥기라는 분 이 계십니다. 신학교 학장도 지내신 분인데 버논 맥기 박사가 어느 날 안식교인을 만났어요. 이 안식 교인 들은 토요일 날 예배드리죠. 토요일 을 안식일로 그래서 구약 시대에도 그랬어요. 그래서 버논 맥기 박사 를 만나갔고, 이 분이 입에 거품을 물면서 안식일은 토요일날 지켜야지 왜 일요일 날 지킵니까? 성경에 안 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change 되었다는 성서적 근거가 있습니까? 이때 버논 맥기 박사가 뜻밖에도 이런 대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나는 그날이 change되었다고 생각지 않습 니다. 안식일은 안식일입니다. 그러 니까 깜짝 놀라서 그러면 토요일날 예배를 드리셔야지 왜 주일 날 드리 십니까? 그 날이 change 되지 않았 다면 여전히 그날을 지키셔야죠. 이때 버논 맥기 박사가 이런 대답을 하셨다고 그래요. 맞습니다. 그날은 'The day was not changed. ' 그 날 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제 는 내가 바뀌었습니다. ' I am changed. ' 내가 바뀌었습니다. 그 리스도가 내게 찾아 온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와 주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가 나의 죄를 용 서하시고 그가 나에게 영원한 생명 을 주시고 삶의 비전을 주시고 ,그 리고 이 땅에서 진정한 삶의 축복을 나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나에게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내게 영생의 소망을 주실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죽음을 이기시고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셨기 때문에 안식 후 첫날, 그 다음날 주께서 부활하 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부활의 날, 내가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 뭐 가 잘못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부 활의 주님. 그주님이 우리에게 안식 을 주신 줄 믿습니다. 그가 우리에 게 진정한 안식 그리고 영원한 안식 그리고 영원한 평안 그리고 이땅의 모든 고통과 절망을 이길 수 있는 삶의 능력과 소망을 주신 주님인 것 을 인해서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Come with me ' 나와 함께 가자 . 잠깐 쉬십시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오늘 내 영 혼이 쉬지 못하는 분, 삶의 고통, 걱정, 괴롭고 아파 잠이 들 수 없는 안식을 갖지 못하는 아프고 외롭고 영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 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 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 라.' 안생에 안식하지 못하는 이유 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중 요한 원인은 죄때문입니다. 죄가 안 식을 빼앗아 갔습니다. 죄가 우리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죄가 우리 를 방황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께서 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이유,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나 대신 저 주를 받으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내 짐을 , 죄악의 짐을 대신 지신 그분, 죄의 짐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짐을 짊어지시는 바로 그분,그 분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 십니다.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 그리스도 앞에 오는 자 그를 의지하는 자 죄 사함을 받습니다. 구원을 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워 집니다. 그리스 도인들도 구원을 확신하는 그리스도 인들도 인생을 살다보면 다시 무거 운 짐이 얹어지고 허우적거립니다. 충분히 묵상하지 못할 때 여유를 잃 어버릴 때, 주님을 향한 시선을 잃 어버릴 때우리도 피곤해지기 시작합 니다. 지금은 쉬어야 할 때입니다. 서두르지 마시고, 조용히 주님을 바 라보십시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 내가 너 희를 쉬게 하리라. (조용히 기도하 시며 찬양하십시다. 마음이 많이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분들 몸부림치 지 마시고 주님 앞에 다 의탁하세 요. 그 주님을 의뢰하시고 주님 안 에 쉬어보세요. 우리의 영혼에 진정 한 안식이 온다면 우리는 이 거친 세상을 향해서 다시 도전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해요 주님. 깊이 마 음을 주님 앞에 내려 놓고 기도하십 시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만져주시고 이시간 우리를 치료해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혼을 주께서 만져주시고, 우리의 상처들 이 씻어지고 새로워지고, 이 세대를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이 가득찰 수 있도록 도 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들을 일 으켜 세워 주시고 저들의 심령이 새 로워지게 도와 주시고, 아버지, 이 세대를 이기는 주의 놀라운 능력으 로 채워 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 에게 쉼을 주시 옵소서.)
아무도 이 세대의 고통에서 예 외일 수 없는, 그래서 우리 모두 아 프고 우리 모두 외롭고 우리 모두 고통스러운 걸음 걸음. 그런데 하나 님, 한가위 추석절이 찾아옵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식구들과 함께 어 울려서도 노래할 용기조차 없는 고 통스런 가정이 있을 것입니다. 불안 한 미래, 기약없는 내일 때문에 더 욱 고통스러운 아픈 가슴으로 이 추석절에 식구들과 둘러 앉아야 하 는 가정들, 하나님, 이런 가정들 속 에 특별히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 의 성령으로 임하시옵소서. 저들의 가슴을 치료해주시 옵소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저들의 마음 속에 노래 와 하늘의 기쁨으로 채워지게 도와 주시 옵소서. 다시 일어나 내일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비전과 꿈이 회복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땅을 불쌍히 여기시고, 이 땅에 주의 자 비와 긍휼을 내려 주시 옵소서. 하 나님, 복음이 이 민족을 새롭게 하 는 능력이 되도록 도와주시 옵소서. 이 땅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 오게 도와 주시 옵소서. 십자기 앞 에 무릎꿇게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 이 참된 안식과 평강의 주인이신 것 을 알게해 주시옵소서. 이제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 버지의사랑하심과 성령의 교통케 하 심이 오늘도 주를 예배하고 다시 삶 의 장으로 나아가는 모든 주의 자녀 들의 머리 위에 저들의 삶의 현장마 다 성령의 권능 그리고 성령의 샬 롬,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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