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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러기 은혜라도/마가복음 7:24-30

by 【고동엽】 2021. 12. 20.
부스러기 은혜라도
마가복음 7:24-30

우리가 좋아하는 찬송가 가운데 Amazing Grace라는 찬양이 있지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 와 …' 이 찬송가를 작사하신 분은 영국의 죤 뉴톤이라는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십니다. 이 분이 남긴 얘기 가운데 전세계적으로 회자되는 유명 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천국 에 가면 나는 세 가지 사실 때문에 놀랄 것이다. 첫째는 내가 천국에 가서 꼭 볼것으로 기대했던 사람들 이 천국에 없는 것을 보고 나는 놀 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천국에서 볼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 던 사람들이 거기에 와 있는 것을 보고 또 한번 두 번째로 놀랠 것이 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내가 거기 에 있는 것을 보고 내가 놀랠 것이 다. 그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저 는 이 말이 하나님 자신의 말씀의 교리를 부정하는 어떤 의외성에 대 한 증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 다. 다시 말하면 안 믿은 사람이 천 국 갈 수 있다든지 혹은 믿은 사람 이 천국에 올 수 없다는 그런 의외 성에 대한 증언은 결코 아니라고 생 각합니다. 외견상 어떤 사람이 믿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사실은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사람들 때문 에 우리는 천국에서 놀라게 될 것입 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너무 너무 잘 믿어서 천국에서 굉장한 상을 받 을 줄 알았는데 주님이 `너는 열심 히 믿은 것 같았으나 내가 보기에는 별로였다.' 이렇게 아마 책망받을 사람이 없지 않아 있을 것 같구요. 또 어떤 사람들은 굉장히 조용한 그 런 무명의 성도처럼 보였지만 천국 에서 주님이 너무너무 그의 믿음을 칭찬해 주시는 분들도 없지 않아 천 국에 가면 틀림없이 있게 될 것입니 다. 저는 이런 신앙의 의외성에 대 한 모습들은 천국에서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 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 땅에서 가장 신앙이 좋아야 할 분, 신앙이 좋을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 가운데서 대표적인 분들은 어떤 사 람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목사님, 장로님.. 아마 이런 사람들을 생각 할 거예요. 그런데 기독교 역사에 보시면, 교회사에 보시면 가끔 핍박 의 시기, 박해의 시기가 있었는데 어떤 분들은 순교도 했지만 어떤 목 사님들은 의외로 장로님들도 예수님 을 부인하고 떠나간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참 우리를 실망시켜주 는 그런 의외성에 대한 하나의 모습 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그런가하 면 저는 이 목회를 하면서 이따금씩 우리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할 때 또 어떤 분들과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 누다가 제가 깜짝 놀라는 순간들이 좀 있습니다. 그 분이 특별히 평범 한 성도라고 생각했을 때 제가 저 분이 참 좋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분들, 그러나 의외 로 앉아서 얘기를 하다 보면 제가 놀래요. 아! 아주 순진하고 순수하 고 아름다운 믿음이 있었구나! 제가 놀라는 경우들이 적지 않게 많이 있 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저는 그런 현상들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 러분,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 주변에 서 가장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 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들로 나타나 야 하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이었겠 습니까? 제자들이겠지요. 제자들 가 운데서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런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좋은 믿음 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이지요. 왜냐 하면 가까이서 예수님을 모시고 또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으까요. 그런 데 복음서를 읽다가 우리가 놀라는 장면들은 예수님이 이 대표적인 제 자들에게 자주 이런 말씀을 하십니 다. 어찌하여 너희들은 믿음이 없느 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혹은 너희 들의 믿음이 어디 있단 말이냐? 너 희들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제자들을 책망하시고 나무라시고 꾸 중하는 장면들이 적지 않게 복음서 에 나옵니다. 그런가하면의외성의 모습들이 나와요. 아마도 복음서에 서 예수님앞에 좋은 믿음, 큰 믿음 을 가진 사람으로 대표적으로 칭찬 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 생각나십니까? 마리아? 글쎄요. 마 리아가 좋은 편을 선택했다. 이런 말은 들었지만은 그러나 `네 믿음이 크도다' 이런 칭찬받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오늘 본문하고 관계가 있 다고 생각해보면 되지 않겠어요? 본 문에 나타난 여인이 칭찬을 받았구 요. 또 한 사람 어떤 사람입니까? 백부장 생각나십니까?

로마의 백부장, 로마에서 파견나 온 군대 장교였어요. 자기 아들이 아팠단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 찾아 와서 예수님 고쳐 주세요. 그런데 이렇게 말했어요. 예수님 말씀만 해 주세요. 그러면 내 아들이 나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 대 한 치유를 부탁할 때, 치유의 은혜 를 받고자 할 때 일상적인 부탁의 형식은 아마도 이런 모습일 겁니다. 예수님, 우리 아들이 아픈데요, 죄 송스럽지만 우리 아들 아픈데 까지 와 주세요. 내 아들에게 손을 얹어 주세요. 안수해 주세요. 그리고 기 도해 주세요. 그러면 내 아들이 나 을 것 같아요. 이것이 아마 의례적 으로 치유의 기도를 부탁하는 한 틀, 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 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이렇게 말 했거든요. 예수님 오실 필요도 없어 요. 예수님 말씀만 하시면 나을 것 입니다. 이것은 이 백부장의 마음속 에 예수님께 대한 어떤 절대적 신뢰 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죠?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렇게 말하겠어요. 말씀만 해 주세요. 그러면 내 아들 이 나을 것입니다. 그랬더니 이런 백부장을 보시면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도 이만한 믿음을 가 진 사람을 내가 보지를 못했다. 자, 이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 다. 이방인입니다. 로마에서 온 사 람, 신앙적인 백 그라운드가 하나도 없었던 사람이예요. 그럼에도 불구 하고 예수님앞에 이런 칭찬을 받았 습니다. 내가 소위 선민이라고 자랑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도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내가 만 나지 못했다. 그리고 또 칭찬받은 사람이 본문에 나타난 여자, 본문의 기사가 마태복음에도 나옵니다. 그 런데 마태복음 15장에 보면 28절- 예수께서 본문에 나온 여자를 향해 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 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공통 점이 뭐냐하면 자식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왔어요. 여러분, 사람들이 예수믿게 되는, 교회에 나오게 되는 동기는 사람마다 다르지요. 그런데 아마도 조사를 하게 되면 상당히 많 은 사람들이 자식 때문에 예수 믿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자식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노력을 해 봤 지만 쉽게 해결이 안돼요. 자, 자식 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 고통하고 있는 자식들의 문제, 인간의 한계를 느끼면서 하나님 우리 아들 고쳐주 세요. 우리 자녀에게 좀 도와주세 요. 그런 안타까운 심정으로 예수님 만나는 사람들 많습니다. 이 두 사 람은 그런 의미에서 공통점을 가지 고 있어요. 그들은 자식들의 문제를 끌어안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빌면서 접근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나타낼 수가 있었습니다. 예 수님께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 음이 커다란 믿음, 아주 존귀한 믿 음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두사람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면 저는 백부장보다도 이 여인의 믿음 이 더 귀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 여인의 경우에는 무슨 커다란 기적 을 기대한 것도 아닙니다. 커다란 대우, 커다란 은혜를 받을려고 기대 한 것도 아니구요, 본문의 한 절정 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여인의 유명 한 고백가운데 보면 여자가 대답하 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만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주님 저는 부스러기라도 좋아요. 부스러기라도! 따라서 해 보십시오. 부스러기라도. 부스러기 은혜라도. 이것 참 절박한 심정이지 요? 우리 한국말 표현 가운데도 너 무 절박한 상황과 환경속에 빠지게 되면 지푸라기라도 붙들고 싶은 이 런 심정이 있잖아요? 그런데 부스러 기라도.. 그래서 내 딸이 고침받을 수 있다면, 내 딸이 새 인생을 살 수가 있다면 부스러기 은혜라도 베 풀어 주세요. 그러나 부스러기 은혜 를 구하며 예수님앞에 나왔던 이 여 인은 부스러기 은혜가 아니라 큰 은 혜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여인이 가졌던 믿음이야말로 큰 믿음이라고 칭찬해 주십니다. 사랑 하시는 여러분! 오늘 우리를 둘러싸 고 있는 답답한 환경, 그리고 이 답 답한 현실속에서 오늘 우리도 주 앞 에 나와서 기도할 때, 구할 때 우리 의 기도가 응답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여인에게서 배워야 할 필요가 있 습니다. 이 여인이 가졌던 믿음 그 큰 믿음, 그 큰 믿음은 어떤 믿음이 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 기를 소망하는 사람마다 그리고 내 가 가진 절실한 문제에 대한 응답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마다 이 여인에 게서 배워야 할 믿음이 있습니다. 큰 믿음, 이여인이 가졌던 믿음, 그 믿음의 특성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첫째로 이 여인의 믿음은 불리한 상황의 조건을 극복한 믿음이었습니 다.
불리한 환경의 조건을 극복할 수 있었던 믿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 수 믿을만한, 하나님 믿을만한 좋은 조건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믿었어 요. 자, 우선 이 여인에 대한 소개 를 본문은 어떻게 시작하고 있습니 까? 본문의 26절 그 여자는 헬라인 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 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 거늘 자, 우선 이 여자가 어디 여자 였습니까? 헬라 여자 - 그리이스 여 자예요. 희랍여자. 정말 헬라 여자 였을까? 우리가 같은 기사를 마태복 음에서 보면 마태복음에서는 이 여 자를 가나안 여자라고 그랬습니다. 똑같은 사건인데 왜 헬라여자, 가나 안 여자 이런 표현이 나왔을까요?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당시 에 이스라엘 백성 아닌 비 이스라엘 백성, 비유대인, 자기들 빼놓고 모 든 사람들을 가리켜 흔히 쉽게 통상 적으로 헬라사람 이렇게 말했습니 다. 왜냐하면 그 당시 세계문화는 문자 그대로 헬라문화, 헬레니즘의 문화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 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 헬라문 화의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었겠지 만 이스라엘 백성은 독특한 자기 문 화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자 기 빼놓고 모든 사람들을 가리켜 통 상적으로 헬라사람, 이렇게 말을 많 이 했구요. 또는 그렇지 않으면 팔 레스타인 지경안에서 자기 족속 아 닌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들은 본래 거기 와 있던 원주민, 가나안 족속이던가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 들을 향해서 가나안 사람, 헬라 사 람 이렇게 두 가지로 많이 통칭했습 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사건이예요. 헬라사람, 가나안 사람 그래도. 그 런데 본문에 보시면 그가 수로보니 게의 족속이라고 씌여 있습니다. 이 것은 두 가지 단어의 합성입니다. ` 수리'라는 말은 시리아라는 말입니 다. 수리아지방, `보니게'는 페니키 아라는 말 들었지요? 시리아의 베니 게 사람이었다. 그 중에 한 사람, 한 여인이었다는 말입니다. 자, 이 사건이 발생한 지역은 두로라는 지 역이었습니다. 자, 본문이 시작되는 24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그랬습니다. 이 두로가 어디냐 하면 이스라엘의 갈릴리 바다에서 강을 따라,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 가면 얼마 올라가지 않아서 두로가 나옵니다. 그러나 두로는 이스라엘 지경 바깥입니다. 지금 나라로 말하 자면 이 두로는 레바논에 속한 도시 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같이 있습니 다. 일종의 쌍둥이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바논 지역이예요. 이스 라엘 지경 바깥에 아주 가까운 이웃 마을 도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이스라엘하고는 아주 사이가 않 좋았어요. 반 유대적인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거기에 살 고 있었고 유대인들은 이웃에 연한 도시였지만 그러나 이 지경 사람들 을 박대했습니다. 그들을 철저한 이 방인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땅을 이방인의 땅, 어두움의 땅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특별히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방인에게 붙일 수 있는 최대의 모욕적인 표현이 있다 면 `개'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그것 은 이스라엘 사람들만의 표현이 아 니예요. 우리도 맘에 안 드는 사람 을 보면 `개 같은 분' 이러잖아요? 예수님이 왜 두로 지방에 갔을까? 생각해 보면 오늘 본문의 사건에 도 달하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추적해 보면 예수님이 팔레스타인땅에서 바 리새인들과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 리고 그들과 싸웠습니다. 바리새인 들은 예수님을 율법을 파괴하는 자 로 규정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벌이 고 그들에게 핍박을 받으신 예수님 은 잠시동안 아마 휴식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 안에 서는 그런 휴식이 불가능하다고 판 단했던 예수님은 바깥을 벗어나서 두로 지방으로 가신 것입니다. 이방 인의 땅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뜻 밖에 이 이방인의 땅에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신뢰했던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을 만난 것은 예수님에게 있어서도 문 자 그대로 하나의 감격이었을 것입 니다. 어째서 이방인 가운데서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 수가 있 었겠는가? 자, 이방인 신앙적인 백 그라운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 다고 해서 신앙을 가질 수 없다는 이유나 핑계가 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예수믿는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어요. 우리 집안에는 믿을만한 그런 조건이 없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러기에 그의 믿음은 더욱 순수할 수가 있어요. 사실 모태신앙 인 사람을 가만히 보면 이 모태신앙 에 문제가 많아요. 모태신앙이 `못 해요' 신앙이예요 오히려 전혀 배경 이 없는 사람들, 주변에 전혀 배경 이 없는 사람들이 더 순수한 믿음을 가지게 될 가능성 많은 사례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하 나 이 여자가 가지고 있던 불리한 조건은 이 여자는 남자가 아니라 여 자였습니다. 왜냐하면 여자는 그 당 시에 이류 인간으로 취급되고 있었 어요. 요즈음 여기 사시는, 이 시대 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여성 동무들은 여성으로 태어난 것 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옛날 유 태인 남자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세 가지의 감사 기도를 드려요. 첫 번 째는 하나님, 내가 이방인이 아니라 유태인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합니 다. 두 번째 감사는 하나님, 내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합니다. 세 번째는 내가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으로 태어난 것을 감 사합니다. 이 짤막한 에피소드를 통 해서도 얼마나 그 당시에 사회적으 로 인권이 박탈당하고 천시 당하고 있는가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예수를 못 믿을까요? 가끔 전도를 해 보면 `제가 워낙 상 황이 어려워서 저는 못 믿겠습니 다.'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사 랑하시는 여러분! 그러나 내가 가지 고 있는 삶의 열등한 조건, 나의 무 력함, 그러나 내가 무력하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아 요? 나의 무지를 알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의 지 혜가 필요하지는 않으신가요? 통상 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인생의 불 리한 조건이 반드시 신앙의 불리한 조건이 아니에요. 내가 연약하기 때 문에 주님앞에 올 수가 있다면, 그 렇습니다. 내 육체의 질병 때문에 하나님의 치유를 바라고 주 앞에 나 오는 과정이 있어서 예수믿게 되었 다면 내 인생의 불리한 조건이 오히 려 은헤의 통로인 것을 믿으시길 바 랍니다. 이 여인은 그런 의미에서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믿음에 도 달했던 사람입니다. 삶의 불리한 조 건을 극복한 믿음, 여기 이 여인에 게서 배워야 할 믿음의 한 모습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이 여인의 믿음 은 냉소적 거절을 극복한 믿음이었 습니다. 26절 그 여인은 헬라인이 요, 스로보니아 족속이라 자기 딸에 게서 귀신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님의 응답이십니다. 어떻게 대 답하셨습니까?
27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 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 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것이 허락입니까? 거절입니까? 거 절이죠. 거절도 그냥 거절이 아니라 거의 모욕에 가까운 거절처럼 느껴 지지 않으시나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 짐이 마땅치 아니하다. 어떤 사람은 흥분하는 사람도 있어요. 예수님도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흥분할 만 합니다. 적어도 피상적으로 관찰하 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예수님의 편견을 말한다고 생각하지 는 않습니다. 여러분. 편견의 특성 은요, 편견은 오래갑니다. 편견은 쉽게 수정되지 않아요. 그렇다면 이 땅에 편견이 없을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우리 한국땅에 뿌리박힌 끈끈한 지방색의 편견. 그거 쉽게 없어져요? 한평생 붙들고 있더라구 요. 편견은 쉽게 깨지는 것이 아니 예요. 만약 예수님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여자에 대한 편견. 이 방인에 대한 편견. 예수님도 별 수 없이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면 조금 후에 대화의 격을 완전히 바꿔 서 이 여인에 대해 칭찬하시면서 야..당신의 믿음은 정말 위대하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어요? 아닙니 다. 이것은 편견이 아니라 테스트입 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여인을 테 스트하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반응 하나? 바로 이 테스트의 창에서 이 여인의 순수한 믿음을 예수님은 확 인하고 싶어하신 것입니다. 삶은 테 스트입니다. 믿습니까? 인생이 테스 트예요. 여러분이 믿거나 말거나 그 렇게 인지하거나 말거나 내가 의식 하던 의식하지 않던 우리의 삶은 테 스트입니다. 살아가는 모습. 하나님 이 지켜보고 있어요. 테스트당하고 있는 것이예요. 요즘 한국 사회에서 이 도청문제, 감청문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만은 생각해 보면 끔찍한 일이 아니예요? 몰래카 메라를 백화점 화장실에도 설치해 놨다고 하는데 얼마나 놀랬어요? 내 행동하나하나가 낱낱이 감시되고 있 다. 나는 테스트 당하고 있다고 생 각해 보세요. 사람들이 모든 것을 피할 수가 있지만 하나님의 눈을 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 님. 그분은 우리의 삶의 장을 지켜 보고 계십니다. 낱낱의 사건. 우리 가 경험하는 일체의 사건. 우리의 인간관계. 이 관계 앞에 우리가 어 떻게 반응하는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주님이 보고 있어요.
삶전체가 사실은 테스트예요. 그 러나 특별히 오늘 이 사건을 통해서 주님은 이 여인의 믿음이 드러날 수 있는 하나의 창을 오히려 제공하시 고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 고 이 여인은 합격했습니다.
사실 마태복음하고 비교해 보면 마태복음의 기사에서는 예수님이 처 음에는 한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셨 다 그랬습니다. 침묵하셨습니다.
여러분, 때때로 우리가 주님 앞 에 기도할 때 주님. 도와주세요 그 랬을때 우리가 종종 경험하는 기도 바로 다음의 사건은 뭡니까? 대답이 없어요. 응답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응답을 거절로 해석합니다. 주님 이 내 기도를 거절하셨다. 때로는 그러면 그렇지. 주님이 내 기도 응 답하실 리가 없어 우리는 스스로를 자조하면서 신앙의 자리에서 쉽게 후퇴해 버립니다. 그것은 우리가 참 된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구 체적인 증거라고 할 수가 있어요.
믿음은 믿음의 속성상 그것은 지 속적입니다. 우리가 한번 기도해서 딱 응답이 왔다. 그러면 믿고 응답 안오면 안믿는다. 그러면 신앙은 신 앙이 아니예요. 그것은 흥정입니다. 바겐입니다. 마치 우리가 일회용 자 동 기계에다가 동전을 집어넣고 거 기서 내가 필요한 콕이나 소다를 끄 집어 내는 것처럼 우리는 기도를 그 런 차원에서 생각할 거예요. 기도는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내가 하나님 을 믿는다. 그럼 계속 믿어야 되요.
좋으신 하나님. 하나님은 하나님 의 어떤 계획이 있어서 지금 당장 내가 구하는 그대로를 응답하지 않 으실 지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가 하 나님을 믿는다면 여러분, 하나님은 나를 아시죠? 내 과거도 아시고 현 재도 아시고 미래도 아시고 무엇이 최선인가를 아시는 하나님. 우리는 성경의 말씀 그대로 하나님을 사랑 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 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을 믿습니다. 이 전 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가 당장 응답이 안나타나도 계속 믿고 있어야 되요. 계속 구해야 되요. 여 기 우리의 기도에 대한 테스트. 신 앙에 대한 테스트가 있습니다. 그래 서 누가복음 18장인가요? 소위 불의 한 재판관에게 나와서 요청을 했던 과부의 이야기. 생각나시죠. 자, 이 말씀은 이런 구절로 시작됩니다. 항 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자, 여기 과 부 한사람이 억울한 일이 있었습니 다. 그래서 재판관에게 나와서 호소 합니다. 그런데 재판관이 불의한 재 판관이예요. 좋은 재판관이 아니고 악질 재판관입니다. 그러나 이 과부 가 계속 도와달라고 호소합니다. 호 소하고 또 호소하고 또다시 와서 졸 라댑니다. 자, 뭐 뇌물도 안갖다주 는데 이 악질 재판관이 응답하겠습 니까? 그렇지만 이 여인이 또오고 다시오고 또와서 괴롭히니까 야.. 이러다가 한평생 이여인의 나를 향 한 괴롭힘의 강청에서 내가 벗어나 지 못하겠다. 하도 귀찮아가지고 나 중에 들어줬어요. 자, 예수님이 그 얘기를 하시면서 어떻게 말씀하십 니까? 이 불의한 재판관이 말한 것 을 들어보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 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여러분 그렇다고 해서 꼭 하나 님이 이 악질 재판관과 비슷하다 이 렇게 비약을 해버리시면 안되요. 그 말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자, 불의 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어보라. 하물며.. 이 하물며라는 얘기가 하 나님이 불의한 재판관 같다는 얘기 예요. 같지 않다는 얘기예요? 안같 다는 얘기죠. 불의한 재판관도 들어 줬는데 하물며 좋으신 하나님. 전능 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아시는 하 나님. 은혜로우신 하나님. 나를 불 쌍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밤낮 부 르짖는 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아 니하시겠느냐..이말이예요. 그러면 서 이 말씀에 한마디를 덧붙였습니 다. 덧붙여진 말이 뭐냐면 그러나 인자가 올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 겠느냐? 거기 믿음이라는 단어가 나 와요. 다시 말하면 주님이 역사하실 때 드디어 주님이 응답하실 때에 믿 음을 보겠느냐? 주님은 믿음을 매개 체로 하여 응답하시거든요. 거기서 믿음이 어떤 믿음입니까? 여기서 말 하는 믿음이. 지속적인 신뢰. 지속 적인 인격적 신뢰. 하나님을 믿는다 면 계속해서 그 분을 신뢰하고 있어 야 합니다. 하늘이 어두워도 응답의 싸인이 없어도 하늘이 침묵할 때 우리가 구했습니다. 부르짖었습니 다. 그러나 하늘은 침묵하고 있습니 다. 하나님이 나를 버린 것 같고 하 나님조차도 나를 내버리신 것 같은 그런 황량한 들판에 내가 홀로 버림 을 당할 때 중요한 것은 그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시겠습니까? 그때에 도 하나님을 신뢰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정말 하나님앞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믿음이예 요. 지속적인 신뢰. 그렇습니다. 그 래서 기도의 풍성한 응답을 경험하 는 사람들에게 있어야 할 요소가운 데 하나는 지속적인 신뢰. 이 지속 적인 나아감. 이것이 필요해요. 이 끈기 있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제가 사오정 얘기 듣다가 아.. 때때로 신앙인들도 사오정처럼 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봤어요. 사오 정 시리즈에 보니까 이런 얘기가 있 더라구요. 어느날 사오정이 식당에 갔습니다. 그래서 자기 먹을 것을 주문합니다. 돈까스와 우유 주세요 그랬더니 뭐라고 대답을 하냐면요 주인이 돈까스는 없습니다. 그래요. 사오정이 그래요? 그러면 돈까스와 커피주세요 그랬어요. 아니 그러니 까 주인이 화가 나서 돈까스는 없단 말입니다 그랬더니 아..알았습니다. 그러면 돈까스만 주세요 그랬답니 다. 이 말을 아예 알아듣지 못하신 분들도 있어요. 그게 바로 사오정입 니다. 알아듣지 못하시는 분들이 바 로.
상대방이 뭐라 그러던 집요하게 계속해서 자기의 메뉴를 고집하는 이 우직함. 이 사오정의 우직함이 신앙인에게도 좀 필요해요.
나. 포기할 수 없어요. 하나님 꼭 주셔야 되요. 하나님. 이것이 제 가 단순한 욕심을 위해서 그럽니까? 나의 생존과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 님. 그래야 우리 가정 더 잘 하나님 섬길 것 아닙니까? 하나님 주세요. 돈까스 주세요. 계속해서 주 앞에 나와서 구하세요.
전 앞으로 두주간 새벽기도회 여러분이 끈질김. 이런 집요함을 가 지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와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응답 하실 것입니다. 하늘이 침묵할 때도 나와서 구하시기 바랍니다. 거절하 시는 것 같은 주님. 그러나 거절하 는 거 아니예요. 거절 뒤에 미소를 지으시면서 한없는 연민으로 나를 바라다보고 계시는 주님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고 이 시련의 장에 주 앞에 엎드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냉소적 거절을 극복할 수 있었던 믿음 이것이 여인의 믿음이예요.

세번 째로, 주님의 은혜에 매달 리는 믿음. 자, 주님의 은혜에 매달 리는 믿음. 자, 이 주님의 거절같은 음성을 듣고 이 여인이 어떻게 말합 니까? 다시 한번 본문의 클라이막 스라 할 수 있는 이 여인의 유명한 요청입니다. 28절 다 같이 읽어보겠 습니다.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 얼마나 윗트있는 말이예요. 어떤 사람은 자존심도 없나? 그럴지 몰라 요. 그러나 은혜받으려면 이 자존심 을 극복해야 해요. 이 자존심 때문 에 은혜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 나 많은 지 몰라요. 저는 이 여인의 자세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은혜에 매달리는 믿음, 저는 이 여 인에게 주님에 대한 분명한 신뢰가 그 마음의 바탕에 이미 존재하고 있 었다는 증거를 여기서 발견합니다. 잘 보시면, 28절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뭐라고 불렀습니까? 예수님 을 향해서.
"주여"
이것이 중요한 것이예요. 희랍어로 '퀴리에' '주여 '. 한 유명한 성서 신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가복음 전체를 통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처음 나와서 예수님을 향해서 주여라고 부른 사람은 이 여인 밖에는 없었 다. 저는 이미 주님 앞에 나오기 전 에 그래서 예수가 주님이라는 어떤 믿음이 이 여인 속에 이미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주여라는 것은 단 순한 그 예수님을 그저 병고치는 분 정도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자기 메 시아, 자기 삶의 주인, 내 인생을 구원하시고 내 인생을 새롭게 하시 고 내 인생을 하나님의 기대처럼 빚 어 만들 수 있는 나의 구원자 , 나 의 주님 메시아, 주여, 주여 . 똑 같은 기사를 마태복음에서 보시면,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고 하니,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 소서' 이렇게 여자가 말합니다. 다 윗의 자손이여. 이것은 매우 중요한 주목할 만한 표현입니다. 다윗의 자 손. 이것은 메시아라는 말이예요. 왜냐하면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 로 오시도록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 가 메시아시다. 이 믿음이 있었던 것이예요. 메시아시다. 그리고 저는 이 여인이 상당히 성경을 알고 미리 사랑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을 알았던 것 같아요. 구약의 메시아의 약속을 보면, 그 메시아의 약속 가운데는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포함 되어 있었습니다. 좀더 자세히 연구 하고 싶으신 분들을 이사야 60장, 61장, 62장 이사야의 마지막 장들을 읽어 보세요. 메시아로 오시는 그 분, 그분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복 음을 전하시고 마음이 상한 자들을 싸메주시고 그리고 만민들에게, 열 방들에게 구원으로 오실 구세주. 그 분은 이스라엘 만을 위한 구세주 가 아니라 이방인들을 위한 구세주 로 묘사되어 있는 구약의 약속을 이 여인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 고 그 약속을 붙든거예요. 그렇다면 주님. 나에게도 은혜를 주실 수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27절을 자세히 읽어 보 시면, 아주 중요한 한 단어가 있습 니다. 27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세 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 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 니하니라' 이것은 외견상 표면 상 으로는 거절처럼 들리는 예수님의 말이지만 저는 이 여자의 경우에는 이 말씀을 거절로 듣지 아니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도 이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자세 히 들었을 것입니다. 은혜 받으려면 말씀을 자세히 들어야 되요. 피상적 으로 들어서는 않되요. 자세히 읽어 보면, 자세히 들어보면 여기서 주목 할 만한 중요한 단어 하나가 있습니 다. '먼저'라는 단어예요.
자, 2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 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 여기서 자녀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 다. 주님은 메시아로 오셨을 때 팔 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 땅에 오셨 습니다. 주님의 구원사의 섭리는 먼저 이슬라엘 땅에 오셔서 먼저 이 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속의 복음을 증거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이 이방 사람들을 제외할 것이 아니예요. 그 것은 하나님의 구속사의 섭리의 순 서일 다름입니다. 먼저 이스라엘에 복음을 전하십니다. 그러나 먼저 다음에는 복음이 어디로 가요? 이 방인에게로 가는 것이예요. 먼저 이스리엘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 다 음에 이방인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아마도 자세히 주의 말씀을 들었을 이 여인은 이 말씀을 붙잡았을 것입 니다. 이 약속을 붙잡았어요. 그래 요. 먼저는 이스라엘이예요. 나는 그것을 반대하지 않아요. 그러나 그 다음은 나도 포함되지 않아요? 그 다음에는 이방인인 나도 포함되 지 않아요? 이 여인은 그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엎드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생활 가만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은혜 받는 사람들에게 증거가 있습니다. 은혜받는 사람들은 말씀 을 붙들어요. 그리고 은혜 받은 증 거도 말씀에 대한 애정, 그 말씀에 대한 사랑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저 는 늘 말씀과 나의 거리 . 내가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내 가슴 속에 다가오는 가 , 말씀이 소중하게 느껴지는가, 말씀을 들으 면 감동이 있고 감격이 있습니다. 말씀과 나의 거리는 하나님과 나 사 이의 거리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은 혜 받는 사람들을 보면 말씀이 너무 너무 좋은 거예요.
어제 밤 10시 쯤, 미국에 있는 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 딱 오면 애들이 전화오면 뻔한 것 아니예요. 뭐 요청하기 위해서. 뭐야? 뭐 필요해? 그러니까 아니예 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요. 나 , 아빠하고 말하고 싶어요. 아빠하 고 너무너무 말하고 싶어요. 뭔데? 그 전화가 한 시간 이상 계속되었읍 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야 기예요. 계속 말씀에 대한 이야기 예요. 그 표현을 할 수가 없어요. 자기다 갑자기 성경을 열었다가 그 말씀 속에서 그가 받은 은혜. 우리 부부는 그것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 해 왔는 지 몰라요. 목사의 아들이 기 때문에, 혹은 제직의 아들들 이 런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말씀을 대 하기 때문에 그 말씀이 내게 그렇게 부딪쳐 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 다. 이 말씀이 자기의 생명이 되고 이 말씀이 자기의 능력이 되기를 위 해서 얼마나 기도해 왔는 지 '아빠, 말씀이 너무너무 좋아, 아빠가 말한 모든 것이 한 순간 이해가 되기 시 작해. 이 말씀이 내 말씀이야. 나 이 말씀을 놓을 수가 없어. 성경 보다가 엄마가, 아빠가 성경에 줄 쳐 놓은 구절이 내 마음 속에 막 들어 오는 거야. 나처음으로 realize 하기 시작했어. 이 말씀의 뜻을 깨닫기 시작했어.아빠.' 전화 는 한 시간 이상 계속되었어요. 엄 마 좀 바꿔 줘. 엄마 한테 얘기 하 고 . 이 은혜를 받고 있는 사람의 증거는 분명한 사실이예요. 그 말씀 이 내 말씀으로 다가 오는 거예요. 나를 향해서 다가오는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 나를 붙들고, 나를 지배하고 , 나를 바꾸고 있다는 사 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 아야 할 사람에게도 분명한 것이 있 어요. 말씀을 붙드는 사람, 그들은 반드시 은혜를 받고야 말 것입니다. 믿음은 어디에서 나며, 들음에서 나 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 미암은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여인은 지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듭 니다. 붙들고 주 앞에 엎드립니다. 성경의 약속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첫 번째 약속은 이스라엘에게, 그러 나 그 다음은 이방인에게도 먼저는 유태인에게요. 다음에는 로마 사람 인 우리에게도 다음에는 한국 사람 인 우리에게도, 하나님 맞아요. 나 는 하나님의 역사와 그 주권을 부정 하지 않습니다. 먼저는 이스라엘에 게 구원의 역사를 나타내신 주님, 그러나 그 다음에는 나도 포함시켜 주세요.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 래에서 개 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 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라고 엎드 리는 이 여인의 심정, 주님, 부스러 기라도 나에게 주세요. 왜 부스러기 를 주겠어요. 이방인에게 유대인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포함시킨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 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 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 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방인을 똑같이 자녀로 삼아 주시고, 부스러 기 아닌 가장 놀라운 은혜를 준비하 신 이 주님은 이 여인을 테스트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 테스트에 합격 한 이 여인, 마침내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겸손히 주 앞에 엎드려 주 여, 부스러기라도 , 부스러기 은혜 라도 내게 주옵소서.라고 구했던 이 여인에게 주님은 마침내 커다란 은 혜를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 님의 은혜가 이 여인에게 임했습니 다. 이 여인의 딸이 고침을 받았습 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드디어 귀 신에게서 자유를 얻습니다. 가정의 샬롬, 하나님의 평안이 임하기 시작 합니다. 기도하는 자마다 이런 은혜 를 받을 것입니다. 물러가지 아니하 면 이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 나님을 계속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주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주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이 은혜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그러8?주 앞 에 엎드려서 이렇게 구하시겠습니 까? ' 주여, 부스러기라도 주세요.'
기도하십시다. 어제 밤에 우리 아들이 전화로 그러더라구요. '아 빠, 이렇게 말씀이 좋은데, 좋은 걸 깨닫는데 왜 22년이나 걸렸을까 ? 그렇지만 아빠, 내가 안 믿고 있었 던 것은 아니야. 내가 항상 믿었어. 그런데 깨달아 진거야. 아빠.' 그렇 습니다. 이 깨달음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은 들려 올것입니다. 거절처럼 보이는 침묵처럼 보이는 그 배후에서 우리 는 주의 그 변함없는 사랑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랑을 바 라보는 사람, 주를 바라보는 사람. 그들은 어두운 하늘 아래서 찬양을 부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를 향해서 변함없이 다가 오시는 그 분의 손길을 잡을 것이고, 그의 은 혜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 님, 그 사랑의 눈으로 나를 어느 때 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 언제나 나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 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 볼지 라.
엎드립니다. 주님. 은혜를 주시 옵소서. 엎드립니다. 주를 바라 봅 니다. 주님,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 시옵소서. 그러면 부스러기 안주세 요. 가장 좋은 것으로 주세요. 그 러나 그 심정이 부스러기라도 주님, 제가 자격이 없잖아요? 제가 자격 이 없어요. 그러나 은혜라는 것은 자격 없는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 은 혜예요. 그렇습니다. 주님, 제가 주 앞에 많이 잘 못했고, 부끄럽고 그 래서 나는 은혜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이렇게 구할 수 밖에 없습 니다. 부스러기라도. 그러나 부스러 기 은혜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오늘 이 은혜를 발견하시기를 바랍 니다. 주여, 엎드립니다. 나에게 은혜를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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