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 시편 105:17-22 / 2010.01.24 / 개역개정판
17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20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
21 그를 그의 집의 주관자로 삼아 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하고
22 그의 뜻대로 모든 신하를 다스리며 그의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요셉의 인생은 대부분 신앙경력을 가지신 분들에겐 익숙한 것입니다. 그 익숙한 것만큼이나 요셉에 대한 이해도 약간 왜곡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요셉에 대해서 생각하려는 것은 성경이 설명하려는 요셉에 대한 이해를 분명히 해서 기독교 신앙의 참다운 본질과 신자에 대한 인생의 그 무한한 힘을, 요셉의 인생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힘으로 확인하는 그런 목적을 가지고, 신년설교로,,,구정을 기준으로해서,,,^^ 준비했는데, 아픈 바람에몇주 연기되었습니다.
간략하게 요셉의 생애를 생각해 봅시다. 요셉은 야곱의 아들이었고, 야곱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서 형들에게는 미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열일곱살에 이상한 꿈을 꾸어서 형들이, 부모까지라도 자기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꾸게되고, 가뜩이나 미웠던 동생이 꿈까지 고약한 꿈을 꾸자, 그 미움이 극에 달해서 기어코 형들이 요셉을 그 미디안 대상에게 팝니다. 그는 팔려서 에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들어가게 되고, 성실히 믿음을 가지고 그 종생활을 했으나 그 부인의 유혹을 물리친 믿음의 죄로 감옥에 갖히게 되고 감옥에서 고생 고생하다가 바로의 꿈을 해결하고 총리가 됐다하는 것이 간략한 요셉의 인생입니다.
제가 자라나면서 들어온 설교들이나 아직까지도 한국교회에서 그 펼쳐지고 있는 설교에 대해서 요셉의 이해는 다른 성경에 대해서 하는 이해같이 요셉 자신에게서 어떤 이유나 조건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자면 요셉은 비젼의 인물이었다, 또는 그가 어려울 때도 믿음을 지켰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그에게 상을 주었다 하는 식의 설명을 우리가 여전히 듣고 있습니다. 그렇게해도 분명히 인간의 신앙생활에 어떤 동기를 부여하고 격려하며 힘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요셉의 생애를 통해서 교정하려고 하는 것은 그 신앙의 근거에 차이가 있다는 것 때문에 현실적으로 신앙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그 신앙의 근거가 무엇이며, 그 신앙하는 본질이 무엇인가에 있어서는 우리가 이런식의 설명을 성경적으로 분명하게 고쳐놔야겠다, 그래야 실제적으로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신앙적인 힘을 얻는다 라는 생각에 오늘 요셉의 생애를 성경적인 추적을 하려고하는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우리가 볼때 훌륭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요셉이 훌륭하다고 하는 것은 사실 모호한 근거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요셉이 훌륭하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총리가 되었기 때문에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그의 결과 때문에 우리는 그가 위인이고, 그가 위인이 된 조건을 억지로 찾다보니까 그의 꿈과 그가 당한 시험에서 믿음을 지킨 것과 또 하나님이 때에따라 그와 함께 하신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고 형통케 하셨다는 말들을, 우리가 우리식으로 조건으로 삼아 버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의 불합리함은 요셉의 생애를 성경이 설명하는대로 보면은, 요셉의 생애는 요셉이 얼마나 위인인가에 촛점이 없다! 라고 성경이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면, 우리가 자라났던 시절에, 또는 지금 우리가 자녀를 기르는 현실에서도 한 동네에서 '누구를 봐라' 라는 설명은 그가 남과 다르다는 것임죠. 여러분들의 동네에서 여러분들이 그 주인공이었을 수도 있을거고 그 주인공 때문에 고생한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우리가 소위 성경이 얘기하는 거를 우리가 좀 오해해서 '요셉을 봐라!' 얘기한다면 그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요셉은 믿음의 사람이었다, 신실한 사람이었다, 효자였다, 인내심을 가졌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충성했다, 늘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려움에서도 기도했다, 그래서 결국 보상받았다, 이렇게 될 것 아닙니까?
그러나 요셉의 생애를 가만히 성경이 성경이 하는데로 보자면, 요셉은 말하자면, 자기의 의지, 자기의 이상, 자기의 소원을 붙잡고 있었던 의지와 노력과 책임과 성공의 사람이었다고 전혀 얘기하고 있지않습니다.
우리 가장 큰 오해를 자아내는 창세기 39장을 찾아가 봅시다.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은 어려움속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형통케 하셨고 그것을 그 주인도 알아 볼만큼 풍성하게 형통케 하셨습니다.
19절 이하에 감옥에 간 때에도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이 두 말씀은 우리가 요셉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오해의 그 내용입니다. 요셉은 어디에가서나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형통했다, 그는 어려움이 없었다라고 우리를 오해시키곤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종되었던 집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지켜서 환경이 개선되거나 그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을 지킨 것 때문에 보상을 받지 못하고 감옥에 갑니다. 현실은 악화 됩니다. 물론 감옥에 가서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고 그는 형통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이 비록 외적인 조건에서는 어려웠지만, 내적 평화가 있고 자신이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것, 그건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본 시편 105편의 가치입니다.
시편 105편 17절이하에 있는 오늘 말씀은, 감옥에 갖힌 요셉이 혹은 요셉의 전 인생이 영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에 대한 아주 귀한 증언 입니다.
시편 105편 17절의 말씀부터 다시 제가 봅니다.
17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1)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그 발이 차꼬를 찼습니다. 족쇄에 매여있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는데, 그 몸이라고 쓴 자리에 일이라는 훈 노트가 붙어있습니다그죠?
맨 밑에 난하주를 보시면 뭐가 되어있습니까. 히, 혼 이렇게 되어있죠? 히브리 원어로는 혼이라는 말입니다. 그 혼이 쇠사슬에 매였습니다. 이 쇠사슬에 매였다는 것도 약간 의역입니다. 이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혼을 쇠사슬이 꾀었도다 그런 뜻입니다. 육체적인 고통속에 있었던것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그가 어떤 상황이었는가를 설명하는데 그 혼을 쇠사슬이 꾀었다, 우리말로 적당한 표현이 있죠, 혼비백산했다는 뜻입니다. 넋이 빠져 나갔습니다.
그는 믿음을 지켰지만 그 믿음의 댓가로 당하게 된 현실은 넋이 빠지는 상황입니다.
요셉은 서두에서 말씀드린데로 의지의 인물이 아닙니다.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위하여 평생 그 집중력과 인내심을 놓치 않았던 의지의 영웅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 자기의 인생을 이해할 수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가 열일곱살에 꿈을 꾸었을 때도 그 꿈은 본인의 야망이 아닙니다.
꿈은 100% 수동적으로 꾸어지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 꿈에 나타난 내용을 야심으로 가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본인도 그 꿈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개꿈인 줄 알고 형들 앞에 얘기한 겁니다. 그것이 야심이었으면, 형들을 자기 무릎앞에 꿇일 것이었다면 그는 그 얘기를 안했을 것입니다. 그기는 부모님까지도 자기에게 절하는 것으로 등장합니다. 열일곱살난 아이가 볼 때 얼마나 얼마나 토종 개꿈이었겠습니까.
그러니까 재미있자고 그 얘기를 했죠. 그리고 지금 그가 겪는 인생을 그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최소한의 믿음을 지키고 있지만 이제 그 믿음도 바닥이 나는 것입니다. 종노릇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모시듯이 종노릇을 했고 그 시험도 물리쳤지만 이제 당한 감옥생활에서는 그는 자기가 가졌던 믿음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봅니다.
이 문제는 요셉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들의 현실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여러분 신자들의 현실은 어떤가 하면, 믿음을 놓을 수도 없고 지킬 수도 없는 넋이 빠진 현실이 실제적인 현실입니다. 여러분 주일을 빼먹기에는 여러분 마음 깊이에 있는 믿음을 외면할 수없고, 믿음생활을 하자니 도대체 아무런 보상도 없고 효과도 없고 그걸로 인하여 재난만 발생하는 일에 대하여 여러분은 근본적인 근본적인 절망과 분노를 터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현실입니다. 실존이죠. 그것을 우리만 겪는게 아니라 여러분이 어떠한 무궁하게 특수한 경우에만 겪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겪는 일이라고 요셉의 인생을 통하여 성경이 증언합니다. 마음 놓으십시요. 여러분의 특별한 잘못이 아닙니다. 넋이 빠지게 신앙이 흔들립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보는 놀라움은 뭐냐하면 요셉의 이 문제는 그러니까 요셉의 인생이라는 것이, 요셉이 작정하고 준비하고 목적하는 인생으로써 '요셉을 보라' 라고 할 얘기는 없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떻게 처음부터 다른 사람이었는가, 어떻게 모든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의지력과 분별과 기특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는가, 그리고 그 생각을 어떻게 시종일관 지켜 나갔는가 이런 얘기들이 아닙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으로 오늘 벌어지는 일밖에는 이해하고 해석할 능력이 없는 내일을 내다볼 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이 꿈으로 그에게 무엇을 확인했느냐 , 네 인생은 내가 내가 인도한다, 네 인생의 결론은 내 손에 있다는 먼저 가르쳐 줬죠.
요셉이 그게 무슨 소린지 모를 때, 왜? 나중을 위해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요셉에게 꿈을 먼저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요셉의 인생에 들어와 요셉을 붙잡아 그 인생을 인도하십니다.
요셉은 어땠죠? 정신이 없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생각을 할 틈이 없습니다. 왜요?. 고통스러우니까, 절망스러우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이런 길을 걷게 하실리가 없다라는 생각이 그의 생애에게 가장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그의 영혼에 쇠사슬을 꾀셨다니까요. 이 일들은 전부 요셉의 잘잘못과 혹은 요셉의 무슨 소원과 계획과 관계되어 있지않고 하나님이 요셉의 인생에 그 목적을 갖고 계셔서 그 인생에 개입하셔서 인도하시는 바람에 생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표현들이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도권을 갖고 있는것으로 등장을 합니다.
본문의 17절을 다시 보시죠.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입니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는데 누가 여기까지 가게 했단 말이요. 누가 그 발에 족쇄를 채우는가요.
하나님이! 누가 그 영혼을 쇠사슬로 꾀는가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왜요!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요셉이 그 말씀을 붙잡고 인내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뜻하심과 선하심과 복주시려는 작정이 그를 그의 마음에 들 때까지 그의 뜻에 부합할 때까지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훈련이 하나님의 성실하시고 선하시고 복을 주시려는 간섭이라고 요셉은 느끼지 못합니다. 요셉은 뭐라고 느낍니까. 하나님이 부재하시다고 느끼죠. 기도에 응답하시지않고 내 형편을 돌아보*지않고 있다고 느끼죠. 내가 믿음을 가지는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느끼지, 하나님이 나를 이 감옥에 보내고 내 영혼에 쇠사슬을 꾀고 계시다고는 전혀 느끼지 못하죠.
이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겪으시는 신앙의 현실, 이 세상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되는, 일어나는 모든 억울함, 불평등, 재난, 고난, 억울함, 분노, 하나님이 외면하셔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리로 적극적으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하십시요.
하이고 그런 하나님이라면 뒀다 믿을 걸 그랬죠, 이게 이제 요셉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요셉이 자기의지와 야망을 이룬 사람이라면 우리는 '요셉을 보라' 라는 얘기속에서 요셉의 비범함, 남다름, 위인과 영웅의 조건들을 추출해내야 됩니다.
우리도 요셉같이 하자! 그렇게 말을 해야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요셉을 봐라' 그럴 때 요셉이 준비하고 노력한 자리에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개입하여 그를 하나님의 작정한 자리에 세운 사람이다 라고 얘기한다면, '요셉을 봐라' 에서 우리가 확인할 것은 그가 어떻게 의지의 사람이었는가, 그가 어떻게 집념의 사람이었는가가 아니라, 우리의 보잘 것 없음과 분별없음과 지혜없음과 의지력의 부족과 미련하고 게으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자신의 능력과 변함없으신 신실한 사랑으로 요셉을 만들어 내시듯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란 말이냐! 라는 자리로 옮겨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에게서 조건을 찾고 이유를 찾게 되면, 우리가 비젼을 갖자! 믿음을 갖자! 라는 것은 전혀 우리가 우리를 격려하자는 얘기가 됩니다.
우리안에 있는 어떤 가능성에 불을 붙이자! 그걸 증폭시키자! 그것을 발휘하자의 싸움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성경이 얘기하는 '요셉을 봐라'를 얘기한다면, 나의 게으름과 미련함과 보잘 것 없음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의 존재와 인생을 하나님이 만드셨고 인도하시는 인생이기 때문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듯 죽은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이 우리를 가치있게 할 것이라, 놀랍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비젼을 가져라가 강요되어야 할 책임이 아니라, 믿고 기대할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젼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못난 것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조건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조건으로 부족한 자격을 갖고 있는것이 아니라, 이 감옥에서 넋이 빠진, 형들의 미움을 받아 팔려가야 했고 종노릇해야 됐고 무고를 당하여 감옥에까지 와 이제는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넋이라도 있고없고의 상황에서도 그를 총리로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의 작정과 개입의 신비와 능력이 사실이라면, 내가 나를 어떤 조건에서 절망한다고 말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과 일하시는 능력속에서 장애물이 될 수 없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신자들이 가질 수 있는 비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당하고 있는 형편,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것, 신자노릇을 번듯이 할 아무런 조건도 없고, 허덕이기에 바쁘고 죽음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절망과 고통과 내일이 없는 어둠속에 있다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요셉의 이 감옥생활과 방불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타임머신을 타고 감옥에 갖힌 이 넋이 빠진 요셉을 위문했다고 하십시다. 그 옥중에 면회를 갔다고 하십시다.
여러분이 해 줄 수있는 말은 무엇입니까? 고생스러우시죠. 그러나 당신은 승리하실 분이십니다. 지지 마십시요. 그 말할 것 아닙니까? 당신의 미래는 절망이 아닙니다. 파멸이 아닙니다. 이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지금 이것이 영원한 영광에 중한 것을 만드는 하나님의 개입이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지금! 지금 손대고 계시고 인도하고 계셔서 이 지경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 말할 수 있죠. 요셉에게는 결과를 아니까, 결과를 아니까 요셉의 생애는 전혀 요셉을 위해서 등장하지 않습니다. 요셉이 얼마나 영웅인가를 위해서 등장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다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백성을 어떻게 인도하시느냐에 촛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요셉입니다. 전혀 우리를 위하여 요셉의 생애는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셉에게 사실인 것은 우리에게 사실입니다.
여러분 지금 누구도 내 형편을 이해할 수 없을 거요. 나에게는 내일이 없어 방법이 없어. 남은 건 죽음 뿐이야. 오늘 죽을 것인가 내일 죽을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만 남았어. 인상쓰고 죽을 것인가 웃고 죽을 것인가만 남았어. 아닙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은 요셉입니다.
지금 잠시 쇠사슬이 여러분을 꾀고 있을 겁니다. 고통스러우실 것입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오늘이 지나가고 내일 태양이 뜨는 걸 안보는 것이 복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부재하시고 외면하시고 여러분을 괄시하셔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애에 개입하시고 복주시기 위하여 능력과 지혜를 동원한 사랑 탓입니다.
만일 이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기독교 신앙은 힘을 얻을 토대가 없어집니다. 하나님이 누구시냐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과연 선하신가? 나에게 과연 관심이 있으신가? 나를 만드실 때 나를 목적하고 만드셨는가? 내 인생을 지켜보고 계시는가? 개입하시는가,,,,?
하나님은 하나님 되기를 중단한 적이 없으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그의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이라고 얘기 합니다.
요셉은 스스로의 생애를 그래서 자기의 생애가 자기가 만들어 온 결과가 아니요, 보이지아니하는 힘의 의해서라는 것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창세기 45장 입니다.
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그가 형들을 용서합니다. 그가 포용력과 관용과 용서하는 힘이 커져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생이 하나님 손에 붙들려 이 길을 걸었어야만 했다는 걸 이해해서 용서합니다. 그 형들은 자기 인생에 아무런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요셉을 곤란하게 만들지도 못했고 도와줄 수도 없는 자들 입니다.
요셉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당신 한분 뿐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요셉을 자신과 가족과 세계와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이길로 인도하셨음을 깨우칩니다.
나를 이리로 보내신 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그가 내 인생을 인도하셨습니다. 나는 억울할 것이 없습니다. 내 인생은 감사로 넘칩니다. 우리 모든 신자된 인생에 성경은 이런 책임을 요구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것은 다만 책임이 아닙니다. 하니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자녀로 부르셨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런 영광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당하는 어떤 고난과 어떤 고통과 어떤 절망의 자리에 갈지라도 여러분은 빛이며 소금입니다.
어두운데 빛은 서 있는 겁니다. 가로등 끼리 모여있는 그런 골목은 없습니다. 어두움속에 빛은 서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려분의 인생이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인도함을 받고있고 여러분을 통하여 이 세상이 하나님의 은혜를 얻도록 인도함을 받고 있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완성되며 그의 나라가 자비와 긍휼과 선하신 하나님의 영광으로 펼쳐기기 위하여 인도함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요.
여러분의 믿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그의 너무나 크고 깊고 영원하시고 신실하신 손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편 136편에 이 멋진 시편의 고백으로 오늘의 말씀을 마무리 할 수 있습니다. 1절부터 4절까지를 우리 함께 읽습니다.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4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 고백이 모든 신자의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당하시는 어려움들이 하나님의 기이한 인도하심이요 승리과 영광을 위한 과정이라는 것 잊지마십시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외면하시거나 떠나있지 않으십니다.
그의 전능하신 능력과 그 아들을 주시는 사랑으로 개입하고 간섭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면 우리는 더이상 겁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되심으로 신실하시고 선하시고 자비하시고 눈동자같이 우리를 지키시고 변함없으시며 영원토록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어떤 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복주심과 간섭에서 벗어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고통과 곤경을 하나님앞에 바칠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내할 믿음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그 성공을 완성을 결과를 내다보는 믿음을 주옵소서.
순종하며 인내하며 기도하는 저희들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하늘 하나님을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인생의 귀한 것 자랑 언제나 동행하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현실 기억하고 충성과 감사를 약속하고 돌아가는 심령들 위에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 믿음으로 주를 영접하라(막 11:15-18) : 종려주일 / 이수영 목사 (0) | 2021.12.19 |
---|---|
성도의 행복관은(고전 13:1-13) / 박조준 목사 (0) | 2021.12.19 |
맹세에 대한 교훈 / 마 5:33-37 (0) | 2021.12.19 |
예배와 말씀 사역자 (0) | 2021.12.19 |
영화롭게 하옵소서 / 요한복음 17 : 1∼5 <7-128> (0) | 2021.12.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