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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믿음으로 주를 영접하라(막 11:15-18) : 종려주일 / 이수영 목사

by 【고동엽】 2021. 12. 19.

참 믿음으로 주를 영접하라
막11:15-18


새문안교회 종려주일예배
설교 이수영 목사

복음서들의 증언을 따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예루살렘은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을 조금 앞서는 7-10절은 그 때의 그 광경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했습니다. 이 끝 절에서는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라고 했다고 기록함으로써 영화로운 다윗왕국의 재현에 대한 그 때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을 표현하고 있는가 하면, 눅19:38은 사람들이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소리질렀다고 전함으로써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그 메시아이며 그로 말미암아 드디어 다윗왕국의 재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그들의 믿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던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였다"고 마21:10은 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광적인 군중들의 환호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셨는지에 대해서는 복음서들이 이상하리만큼 침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두 손을 번쩍 들고 군중들의 환호에 답하셨다든가,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자리에 오르셔서 일장연설을 하셨다든가, 아니면 하다못해 회심의 미소라도 지으셨다든가 하는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그가 행하신 첫 두 행적은 군중들의 이러한 열광적인 영접과는 오히려 상반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 두 행적 가운데 하나가 오늘 본문이 전하는 대로 성전에 들어가셔서 그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니지 못하게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셨다고 했는데 그들은 제사에 바쳐질 소나 양이나 비둘기 또는 기타 제물들을 파는 사람들입니다. 제사드리려는 사람들이 밖에서 사갖고 들어올 수 있었지만 검시관 제사장에게서 제사에 드려지기에 흠없는 것으로 확인된 것을 안심하고 사기 위해서 그 안에서도 그것들이 매매되고 있었는데 밖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비싸게 팔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둘러엎으셨다고 했는데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전세를 내야 했고 그 세금은 반드시 유대인의 화폐로만 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온갖 나라의 돈을 바꿔주며 수수료도 챙기고 계산을 엉터리로 해서 바가지를 씌우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성전에 들어가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이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거의 강탈과도 같은 이 관행을 가리키시며 예수님께서는 "강도의 소굴"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강도같은 장사꾼, 환전쟁이들 때문에 너무나 시끄럽고 혼잡해서 이방인들이 조용히 와서 기도하며 예배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16절에 있는 대로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첫째로는 가난한 순례자들을 착취하는 장사꾼과 환전꾼들의 불의 때문에 분노하셨고, 둘째로는 그러한 불의한 일로 성전이 더럽혀지는 것 때문에 분노하셨으며, 세 번째는 이방인들도 다 와서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하신 하나님의 뜻이 짓밟히는 사실 때문에 분노하셨다고 이해됩니다. 겉으로는 성전이었지만 그 속은 성전이라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행하신 첫 두 행적 중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멀리서 보기에 잎사귀는 무성하게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열매는 없었던 무화과나무가 말라죽게 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일견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사건 사이에는 분명 예수님께서 그 일들을 행하시면서 의도하셨으리라고 여겨지는 본질적인 공통점이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실속은 없이 겉으로만 그럴싸해 보이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성전이고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듯 싶으나 막상 그 속은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린 예루살렘 성전과, 겉으로 보기에는 잎사귀 무성한 무화과나무인데 그 속에는 아무 열매가 맺혀있지 않은 무화과나무 사이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공통점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인 1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 무화과나무더러 말씀하시기를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셨다고 했는데 본문을 뒤따르는 20절에 보면 예수님 일행이 그 다음날 아침에 다시 그 앞을 지나가다 보니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눅21:5-6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하신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며졌던 그 예루살렘 성전은 그 후 40년도 못간 서기 70년에 로마군에 의해 파괴되고 불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예루살렘 성전에 관계되어 행하신 일과 무화과나무 사건 사이에 있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앞서 참된 믿음을 촉구하신 것입니다.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형식적이고 거짓되고 위선적인 신앙에 대한 강력하고 분명하게 경고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옷을 벗어 길에 깔고 종려나무가지를 베어 흔들며 환호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영접하는 군중들에게 예루살렘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며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버리시는 행동으로써 응답하신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거기서 주님을 바르게 영접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의도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이득을 기대하며 그를 영접했던 바로 그 무리들이 불과 몇 일 후 돌아서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칠 것임을 예수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그저 군중심리에 휩쓸려서 환호하고 어떤 이득을 얻고자 영접하는 것은 참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고자 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짓되지 않고 겉과 속이 다르지 않으며 열매있는 믿음을 갖는 것이 주님을 바로 영접하는 길임을 가르치시려고 하신 것이 그의 의도였다고 믿습니다. 참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것, 이것이 다시 종려주일을 맞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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