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다굼
마가복음 5:35-43
35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 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 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예수께 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치 아니하시고 38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 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 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 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저희가 비웃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 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 께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 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 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42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두 살 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 라거늘 43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 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 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저의 첫 미국 유학시절에 신학교 에서 저희들에게 준 과목 가운데에 사회봉사 전도라는 과목이 있었습 니다. 그것은 일종의 실천적 봉사 시간으로 사회 봉사나 전도를 실습 하고 그것을 보고하는 그런 과목이 었습니다. 저는 토요일 주말마다 구세군이 운영하는 쉘터에 나가서 한 학기를 봉사하기로 작정을 했습 니다. 제가 첫 날 구세군이 운영하 는 쉘터에 갔을 때 저는 충격을 금 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 풍요의 나 라 미국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구 나. 마약 중독자들, 그리고 집을 떠 나 노숙하고 있는 집이 없는 소위 homeless People 이런 사람들이 눈의 초점을 잃어버린 채로 여기저 기 누워 쓰러져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것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삶을 차라리 포기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젊은이도 있었어요. 제가 한 청년에게 접근 을 해서 예수 믿으시죠. 예수 믿으 세요. 그런데 들은 척도 안해요. 제 가 큰 소리로 예수님은 당신의 희 망이 되십니다. Jesus is your hope 예수님은 당신의 희망이 되 십니다. 그랬더니 얼굴을 쳐다 보 면서 두 마디 말을 내뱉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No hope, No hope 희망 없어요. 희망 없어요. 라는 말을 두 마디로 했습니다. 프 로그램에 따라서 신학생들의 순서 가 시작되어 찬양을 했습니다. 그 리고 간증 순서가 되었습니다. 저 도 간증을 한 세 사람 중에 끼어서 간증을 했어요. 제가 간증을 하다 가 이렇게 보니까 아까 희망이 없 다고 소리쳤던 그 청년이 듣고 있 더라고요. 얘기를 듣고 있어요. 저 는 들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는 데 잘 경청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 습니다. 우리 중에 한 사람이 짧 막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초청 시간 이 되었습니다. 그 초청 시간에 저 희 함께 갔던 신학생들이 back ground 성가대를 만들어서 찬송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마침 Gospel Song 하나가 처음으로 소개 되었 습니다. 1970년대 초반인데 그 찬 송이 미국 크리스챤들이 아주 좋아 했어요. 지금 한국 그리스도인들 도 이 찬송을 아주 좋아합니다마는 이제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찬송 이 되었습니다.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네 내 모든 죄 다 사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나의 구세주 살아계신 주 나의 참 된 소망 걱정 근심 사라졌네. 우리 말 번역에서는 걱정 근심 사라졌네 이렇게 되어 있는데 본래 그 영어 찬송에는 모든 두려움은 사라졌네 All fear is gone. 모든 두려움은 다 사라졌네 그 다음에 그분이 살 아 계시기 때문에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그 분이 살아계시 기 때문에 나는 내 인생의 미래를 만날 수가 있네. 본래 찬송의 내용 이 그렇습니다. 이 찬송을 부르는 데, 그리고 구원 초청을 하는데 그 청년이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거예 요. 앞에 서는 거예요. 그리고 메 시지를 증거한 우리 중에 한 사람 이 정말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면 이 기도를 따라서 하십시오. 저는 그 청년이 기도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 다. 주 예수님 제가 주님 앞에 돌 아 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주를 영접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습 니다. 고백을 하는 이 청년의 눈에 서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리 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죽은 사람이 살아 나는 것을 보았습니 다. 오늘 여러분들은 죽어있던 인 생,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새로운 생명의 삶을 고백하는 분들의 그 신앙 고백의 광경에 증인이 되셨습 니다.
오늘 본문에도 12살 먹은 소녀 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기적의 드라마가 증언 되고 있습니다. 자, 죽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뿐 아 니라 죽음은 청년도 삼키고 죽음은 어린 아이도 삼킬 수가 있습니다. 12살 먹은 소녀 그가 죽은 그 곁 에 예수께서 다가 오셨습니다. 그 리고 한마디 말씀을 하십니다. 달 리다굼 이것은 아람 말이예요. 본 래 아람어인데 이것은 그 당시에 상당히 많이 쓰이던 보편적인 말이 었다고 합니다. 언제 쓰느냐 하면 우리가 아이들이 틴에이저가 되면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죠? 그래 서 부모가 아침이 되면, 날이 밝아 오면 자녀들을 깨웁니다. 야, 너 일 어나. 그럴 때 쓰는 말이예요. 달리 다는 말은 달려간다라는 뜻이 아니 라 달리다는 아주 작은 것, 미천 한 것, 불쌍한 것, 연약한 것 그런 것들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작은 아이야. Little child 달리다 작은 아이야. 굼 일어나라 굼 또는 구미 일어나라 나의 사랑하는 작은 아이 야, 일어나라. 이 말씀과 함께 이 소녀는 벌떡 일어납니다. 새로운 삶이 그에게 시작되는 순간이었습 니다. 일어 날 수 없는 사람이 일 어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절망의 시대입니 다. 다시 일어설 기력이 없이 주 저 앉아 버린 인생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적입니다. 단순한 도덕이 아니라, 단순한 사 회적 갱신이 아니라 그들에게 필요 한 것은 기적이 필요합니다. 생명 의 기적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들 어야 할 것, 그것은 예수의 음성이 십니다. 달리다굼. 사랑하는 아아 야 일어나라 이 음성을 듣는 자 마 다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그 부활의 기적, 그것이 나 의 삶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기 위 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까 요? 내 삶이 부활의 기적을 경험 하려며는 무엇을 해야 옳습니까?
첫째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올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의 시작은사 실은 35 절이 아닙니다. 좀더 앞서서 22절 을 보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 5 장 22절과 23절을 보시겠습니다.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 드리어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이 소녀 의 아버지는 회당장이었다고 성경 은 기록합니다. 회당장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 다. 우리는 회당 그러니까 이스라 엘의 시나고개, 이 회당이 단순한 종교적 기능을 발휘하는 곳이라 생 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 회 당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한복 판에, 중심에 있었던 그런 기관입 니다. 이것은 물론 종교적 기능도 수행되었지만 더 많은 사회적 기능 들이 수행됩니다. 회당은 학교역할 도 했고, 심지어 재판소 역할도 했 습니다. 문제를 가지고 나오는 사 람들에게 마지막 판결을 내리는 재 판관과 비슷한 역할까지 회당장은 겸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사 회적 명예가 있었고, 사회적 존경 이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회당마 다 적어도 10명쯤의 관리들이 배 치되어 있었고, 큰 회당의 경우에 는 회당장이 3사람씩 배치되어 있 었습니다. 자, 이런 정도의 신분을 누리는 사람이라면 예수를 찾는 것 이 쉽지 않습니다. 그 당시 예수 는 젊은 예언자, 아직 사회적으로 공인되지 못한 사람, 어떤 이단의 교주처럼 취급될 수도 있었던 그 분. 그러나 그 예수 앞에 와서 회 당장이 엎드립니다. 그냥 나와서 예수를 만났다고 기록한 것이 아니 라 오늘22절에 보시면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그 다음에 보시면 발 아래 엎드렸다고 그랬습니다. 발 아래에 엎드렸다. 이것이 쉬운 일 이 아니지요. 이 정도의 사회적 신 분을 가진 사람이 예수 앞에 엎드 리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에게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랑하 는 딸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별 별 노력을 다 했을 것입니다. 그 러나 살릴 길이 없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희망, 마지막 소망을 예수 께 걸고 그는 예수 앞에 엎드립니 다. 그리고 보면 사랑하시는 여러 분,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경험하 는 고통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 예 요. 이 회당장에게 사랑하는 딸로 말미암은 고통의 딜레마 그것이 없 었다면 이 회당장이 예수 앞에 나 왔겠습니까? 우리 중에서도 고통 받지 않는다면, 인생의 역경이 없 었더라면 그리고 비바람과 폭풍우 가 없었더라면 예수 앞에 나올 수 없었던 사람, 참 많을 거예요. 그 래서 옛날 청교도들은 고통이나 역 경을 가리켜서 변장 된 축복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고통이, 이 역경이 이 회당장을 겸손하게 만들었습니 다. 그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 식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신분과 지위에도 불구하고 그는 겸허하게 나사렛 예수 앞에 엎드립 니다. 엎드려서 어떻게 합니까? 23절에 보시면 많이 간구하여 한 번만 호소한 것이 아니 예요. 선생 님 살려 주세요. 내 딸 살려 주세 요. 부탁입니다. 제발 살려주십시 오. 이 소리치고 부르짖는 이 사람 의 모습을 보십시오.
저는 우리 한국인들이 예수 앞 에 나오지 못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 도의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체면이라고 생각합 니다. 저는 지상에서 가장 그 체 면에 민감한 의식을 가진 민족이 있다면 대표적으로 한국 사람과 일 본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요. 참 체면에 민감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싶어도, 은혜 받고 싶어도, 깊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들어가고 싶어도 나를 가로막는 의식적인 장 애물이 뭐냐 하면 자기 얼굴의식, 자기 체면 때문에. 내가 뭐 이 나 이에. 이런 사람들. 체면 때문에 믿지 못해요. 제가 자주 드리는 얘기입니다마는 한국 언어를 잘 살펴보면 한국 말 가운데 유달리 발달된 언어 가운데 하나가 이 얼 굴과 관련된 단어입니다. 체면 이 면이란 말이 얼굴이라는 말이잖아 요. 뵐 낯이 없습니다. 면목이 서 지 않습니다. 얼굴을 들 수가 없습 니다. 그 사람 얼굴 한번 넓다. 그 사람 얼굴이면 통하지 않는데 가 없다. 내 얼굴에 먹칠을 하지 말아 다오. 제 얼굴을 봐서 선생님 한번 만 부탁합니다. 이 얼굴에 대한 단어들이 얼마나 발달이 되었는지 몰라요. 사람들을 그 체면 때문에 오늘도 인생의 절박한 문제를 안고 있어도 그리고 해결될 수 없는 인 생의 딜레마를 안고 있어도 주 앞 에 나오지를 못합니다. 여러분의 절망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딜 레마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갈등 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고통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문제가 무 엇입니까? 내 인생 속에 주님의 부활의 능력, 그리고 부활의 소망 을 체험하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문제를 가지고 나사렛 예수 앞에 나와 주 앞에 엎드려 보시기 바랍 니다. 내 인생에 마지막 희망, 최 후의 희망을 걸고 주 앞에 엎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 부활의 기 적은 시작될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내 인생 속에 부활의 능력 이 필요하다고 느끼십니까? 첫 째 로는 그 문제 가지고 주 앞에 엎드 리시고요.
두 번째로는, 아직 문제가 해결 되지 않았어도 예수님과 함께 걸어 가셔야 합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었어도 주님과 함께 걸어가셔야 합니다. 자, 다시 한번 같은 장에 있었던 23절의 말씀을 읽습니다. 마가복음 5장23절에 보시면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 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 거늘"
자, 그 다음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24절입니다.
"이에 그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 가며 에워싸 밀더라"
자, 어떤 일 이 생겼어요? '선생님 살려주세요.' 예수님이 응답하세요. 여러분 기도 하면 주님이 응답하실줄 믿습니까? 주님! 제 집에 오세요. 여러분, 내 집에 찾아오시기를 즐겨하시는 주 님을 아십니까? 그런데 내가 가지 고 있는 이 문제와 갈등과 그리고 이 불안에도 불구하고 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가정에 초청 하지 않으세요? 초청하니까 함께 가세요. '그와 함께 가실새...' 회당 장은 드디어 예수와 함께 걷기 시 작했습니다. 예수님 만나고, 이제 예수와 함께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집으로 갑니다. 아직 이 시점에서 그의 문제는 해결되지는 않았습니 다. 물론 그는 이제 주님 만나고 주님과 함께 걷게 되었으니까 그 주님을 통하여 해결의 소망을 안고 걷고 있었을것입니다. 주님만 우리 집에 가시면, 그리고 우리 아이에 게 손을 얹으시면 우리 아이는 살 아날 것이다. 해결의 희망을 안고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해결 된 것은 아니예요. 그런데 그가 걷 고 있었던 도상, 주님과 함께 걷고 있었던 도상에서 문제가, 사건이 또 하나 발생합니다. 자, 25절을 읽겠습니다.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 이 사건이 열 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이 치료받는 사건과 맞물려 있습니다. 사실은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가다 가 한 여인이 주님앞에 와서 또 도 움을 호소하는 것이예요. 그래서 물론 이 여인을 치료를 받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좋은 사건이 발생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 구하고 회당장 야이로의 편에서 보 면 이것은 안타까운 일이예요. 왜 그렇습니까? 자기 사랑하는 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일 분이 아쉬운 때예요. 한 순간이 새 로운 때인데 그의 해결이, 사랑하 는 딸의 문제의 해결이 열 두해를 혈루증을로 앓는 여인 때문에 지연 될 수밖에 없었던 사건, 회당장의 편에서 보면 이것은 방해거리 사건 이 발생한 것입니다. 자, 왜 주님이 이런 사건을 허용하셨을까요? 저는 한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 다. 첫째로 이것은 이 회당장 야이 로의 믿음을 강화시켜주시려는 의 도적 사건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 다. 여러분, 내 문제가 급합니다. 그런데 내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아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주 변에서 다른 사람들은 기도해서 빨 리 빨리 응답을 받습니다. 다른 사 람들은 다 응답을 받는데 나만 응 답 않받는 것 같아요. 여러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요? 다른 사 람은 다 해결되는데 나만 해결되지 않아요. 자,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기도응답 받고, 다른 사람들이 문 제해결을 경험하는 그 사건을 보면 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하나님! 다 른 사람들의 기도는 다 들어주는데 왜 내 기도만 안 들어주세요? 이렇 게 접근하지 마시고요, 내 친구의 기도를 응답하신 주님! 그렇다, 그 주님은 내 기도도 응답해 주신다. 이렇게 접근하시길 바랍니다. 내 주변의 이웃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주 님! 그 주님은 나에게도 동일한 자 비와 동일한 긍휼을 베풀어 주실줄 을 믿습니다. 이렇게 나오셔야 합 니다. 내 이웃들을 불쌍히 여기신 주님! 열 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다 가 인생을 포기해 버린 이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사람을 자비 히 여기시고, 이 사람을 치료하시 는 주님은 내 집에서도 동일한 역 사를 행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웃들을 보면서 내 믿음이 강화될 수가 있어야 돼요. 그러나 또 한편 에서 보자면 이것은 회당장 야이로 의 믿음을 테스트하는 사건이었다 고 생각합니다. 갈 길이 바쁩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체하고 있습니 다. 자, 성질 급한 사람은 여기서 모든 것을 때려 치우고 돌아갈 수 도 있어요. 그러나 주님은 여기서, 그런 의미에서 이 사람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었던 사건이라고 볼 수 가 있습니다. 네가 기다릴 수가 있 느냐? 포기하지 않고 기다릴 수가 있느냐? 바로 이러한 시험이 또한 이 사건 속에 게재되어 있다고 생 각할 수 있습니다. 사복음서 가운 데서, 예수님의 생애를 관찰하던 사복음서의 기자가 특별히 기도의 교훈을 중심으로 써 내려간 복음서 중 가운데 하나가 누가복음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을 읽어보시면 유 달리 기도에 대한 레슨이 거기에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누가복음 18장을 보시면 우리가 잘 아는 사건인데요, 억울한 일을 경험한 과부 한 사람이 재판관에게 와서 자기 억울한 사정을 해결해달 라고 호소하는 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가르 치면서 누가복음 18장 1절은 어떤 레슨으로, 어떤 말씀으로 시작됩니 까?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가라사대... 그렇습 니다. 주님은 단 한번의 기도로 우 리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강조하지는 않았어요. 어떤 경우에 문제의 해결보다도 더 중요한 레슨 을 위해서,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주님과의 신뢰의 관계가 생기도록, 문제의 해결을 지연하면서 기다리 게 하시고 기도를 시키시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엎 드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더 기다 리셔야 합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 망치 말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마 시기 바랍니다. 더 엎드리시길 바 랍니다. 계속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믿으 십니까? 그런데 여기서 구하라, 찾 으라, 문을 두드리라, 이 말씀이 한 번만 구하라라는 말이 아닙니다. 한 번만 찾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한 번만 문을 두드리라는 말이 아 닙니다. 본래 이 말의 뜻은 계속해 서 구하라, 그런 뜻입니다. 계속해 서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이 말은 계속해서 두드리라는 말입니다. 여 러분! 몇 번 두들겨 봐도 이 문은 열릴 것 같지 않게 잠겨 있습니다. 닫혀진 문 앞에서 인생을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더 두드리세요. 아직 포 기할 때가 아닙니다. 더 두드리시 길 바랍니다. 구하고 찾고 계속 두 드리십시오. 마침내 열릴 것입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주 님이 곁에 계시다면 사랑하시는 여 러분, 절망의 때는 아닙니다. 계속 두드리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본 문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아직 문 제가 해결되지 않았어도 주님만 곁 에 계시다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계속 구하시길 바랍니다. 그렇습니 다.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주님곁에 머물러 서셔야 합니다.
내 인생속에서 마침내 부활의 기적을 체험하시고 하나님의 위대 한 능력을 맛보시길 원하신다면 세 번째로 최악의 절망 속에서도 예수 를 믿으셔야 합니다. 최악의 절망 속에서도 예수님을 믿으셔야 합니 다. 자, 오늘 본문이 어떻게 시작돼 요? 35절 같이 읽겠습니다. 35절 다같이 시작.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 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 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집에서 사람들이 왔어요. 가족들하 고 하인들도 왔을지 몰라요. 당신 의 딸은 죽었습니다. 상황은 끝났 습니다. 희망은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은 철저한 절망의 보고였습니 다. 회당장 집에서는 이미 장례식 준비가 한창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38절 이하에 보면 장례식의 광경 을, 이 집의 모습을 좀 들여다 볼 수가 있어요.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괴상한 한국말이 다 나와요. 훤화함과. 읽으면서 고 민도 안하시죠? 이게 무슨 뜻일까. 훤화함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 곡함을 보시고 39절에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 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훤화라는 말이 다른 말이아니예요. 소요하며 그런 뜻입니다. 시끄럽고 복잡하게. 사람들은 혼란되어 있습니다. 소란 을 일으키고 혼란되어 있었습니다. 어쩔줄을 몰라했습니다. 통곡 소리 가 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절 망의 한 복판 속에서 예수님은 이 회당장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 니까. 36절을 읽어보세요. 다같이 36절 읽겠습니다.시작. 예수께서 그 하는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 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 만 하라. 네. 이 절망의 상황 한복 판 속에서 주님은 어떻게 말씀하세 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따 라서 하시죠.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이 것은 현재 시제로 기록 되어있습니 다. 현재 명령형입니다. 무슨 뜻이 냐 하면, 두려워 말고 믿어라. 계속 해서 믿어라 이 말입니다. 상황 끝 이예요. 절망이예요. 그런데도 주님 은 아직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계속해서 믿어라. 이 순간 속에서 도 계속해서 믿음을 져버리지 않는 다면, 상상할 수 없었던 위대한 기 적이 일어날 수가 있다. 그리고 그 기적은 마침내 일어났습니다. 인생 을 살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최후의 절망, 마지막 절망은 뭐예요. 죽음 입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을 삼킵 니다. 어린이도 삼킵니다. 노인도 삼킵니다. 죽음의 확률은 100%입 니다. 아무도 죽지 않을 사람이 없 어요. 그러나 이 최악의 절망 속에 서도 주님은 우리들에게 믿음을 요 구하십니다. 또 하나의 부활의 드 라마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의 친 구였던 나사로.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주님은 이 무덤 앞에 오십니 다. 그리고 이 놀라운 메시지를 선 포하십니다. 뭐라구요. 나는 부활이 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 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거기서 끝 나지 않아요. 그 다음에 네가 이것 을 믿느냐, 네가 나를 믿느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이 위대한 선포에 이어서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 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네가 믿으 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우리 가 이 최악의 절망 속에서도 주님 을 믿으면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 님의 영광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이 소녀도 일어났습니다. 달리다굼. 일 어나라. 부활했습니다. 부활의 위대 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이 가진 육체적 사망의 절망. 육체적 사망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부활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이 확실하다면 깨어 일어남이 확실하 다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할 필 요가 없지 않습니까? 아무도 잠자 리에 들면서 절망하는 사람은 없습 니다.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죽음 은 안식일 수가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이 죽음 의 사건 앞에서도 우리는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주님에 대한 신뢰를 고백할 수가 있습니다. 네 가 이것을 믿느냐. 사랑하시는 여 러분, 그러나 육체적 사망에 못지 않은 또 하나의 절망은 영적 사망 입니다. 사람은 육체적 사망을 두 려워하고 고민하지만 영적 사망을 두려워하진 않아요. 영적 사망 아 십니까. 영적인 죽음. 그것은 하나 님과 관계가 단절된 채 인생을 살 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살 아 있으나 죽은 사람입니다. 영적 인 사망. 이 영적인 사망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영적 으로 단절되어 있어요. 왜그래요. 죄 때문에 하나님과 나 사이에 관 계가 단절된 것이예요. 그런데 하 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살리 시려고 하나님과 나 사이에 하나님 과 하나님을 떠난 인간사이에 중보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 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 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 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예수님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오셔 서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단절시킨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보배로 운 피를 쏟으셨고 장사한지 사흘만 에 부활하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 스도를 믿는 순간, 그리스도를 영 접하는 순간 나는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 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연 결 됩니다. 믿으십니까. 나는 영적 으로 부활하는 거예요. 다시 살아 나는 거예요. 새로운 생명을 얻었 습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오늘 침례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들이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순간, 나는 죽 었고 예수 안에있던 새로운 생명을 받아들였서 나는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나는 새로운 사람으로 새 출발을 합니다. 물속에서 나오 면서 그들은 새로운 사람이 된 것 을 고백합니다. 동시에 이 침례식 은 또 하나의 위대한 사건을 상징 합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구원받 은 사람도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재림하시는 날 우리는 육체적으로도 부활할 것 입니다. 그들이 물속에서 나오는 광경은 부활의 picture. 부활의 그 림.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우리는 다시 살 것입니다. 이것을 믿습니 까. 여러분. 이 부활의 위대하신 주 님은 나의 새로운 생명을 주시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실뿐만 아 니라, 죽음 건너편에 부활의 소망 을 약속하실 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도상에서 우리가 무력함 에 시달리고 우리가 좌절하고 우리 가 주저앉아 앞이 캄캄할 때 주저 앉은 우리 곁에 부활의 주님은 그 때도 어김없이 다가오십니다. 뭐라 고 말씀하실까요. 달리다굼.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여 딸이여 일어나 라. 여러분 주님의 touch 그리고 주의 말씀을 듣는 순간 우리는 다 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약속의 말씀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믿으십 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 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뭐예요.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한복음 5장 24절 믿으십니까. 25 절 아십니까. 그 다음절. 그 다음 절. 그 다음절에, 진실로 진실로 너 희에게 이르노니, 따라서 하세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 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여러분 죽어있던 자들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예 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 순간 그렇습니다. 주님의 음성, 주님의 말씀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 서 이 음성을 듣는 순간 살아날 것 입니다. 달리다굼. 주께서 말씀하시 면 이 말씀은 소망이 되어 희망이 되어 이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말 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 는 순간, 우리는 절망을 박차고 일 어날 것입니다. 달리다굼. 일어나시 기 바랍니다. 새로운 미래를 향해 서 걸어 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 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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