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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마태복음 4:1-11
설교방송 (설교본문)
우리는 지난주까지 사탄의 세 가지 시험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시 한번 복습 삼아 정리를 해보면 첫째 시험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시험으로 그것은 마태복음 6장 33절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을 뒤집는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셨는데 사탄은 먼저 먹을 것부터 챙기고 보라고 시험을 하였던 것입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순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고 살면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지 아니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부터 생각하고 살면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시험은 성전에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발을 붙들어 줄 것이라는 시험이었는데 저는 그것을 마태복음 16장 24절의 말씀인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는 말씀을 뒤집는 시험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헛된 영광에 눈 어둡게 하여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부인하게 하여 자기 소명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는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시험에 못지 않게 우리가 잘 걸려드는 시험입니다. 특히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로 부흥하고 성장한 우리 한국 교회가 가장 많이 빠지고 있는 시험이 바로 이 시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 번째 시험은 사탄에게 절하면 천하 만국의 영광을 주겠다는 시험이었습니다. 이 시험은 마태복음 16장 26절의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는 말씀을 뒤집으려는 시험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리 만큼 사랑하시는 존재요 그러므로 천하보다 귀한 존재인데 사탄은 그와 같은 사실을 은근슬쩍 뒤집어 놓으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높은 뜻 숭의교회 교우 여러분 이 사탄의 세 가지 시험을 이겨내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시험에 패스하기 위하여 공부하고 노력하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기의 이익을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사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진정한 이익(眞利)을 축복으로 받게 되실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하실 것입니다. 천하만국의 영광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무릎을 꿇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 사탄의 세 가지 시험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심으로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말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탄의 집요하고도 예리한 공격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보다도 말씀으로 무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잘 암송하고 공부해 놓고 있으면 어떠한 시험과 유혹이 온다고 하여도 능히 그것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암송하거나 은혜 받은 말씀도 곧 잊어버린다고 그것을 염려하고 걱정하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창고에서 무의식의 창고로 옮겨지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우리 인간을 잘 설계하셨는지 모릅니다. 당장 필요한 것은 의식의 창고 속에 넣어두고 늘 사용하게 하시지만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은 무의식이라는 창고 속에 옮겨 넣었다가 그것이 꼭 필요할 때 자동적으로 튀어나와 다시 의식의 창고로 옮겨지게 설계해 놓으신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무의식이라는 창고가 없다면 많은 것을 학습할 수 없고 또 많은 것을 학습한다면 의식의 창고가 차고 넘쳐서 아마 미쳐 버리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말씀은 몰라도 은혜 받은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의식의 창고에서 무의식의 창고로 옮겨지는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기억에 남고 안 남고 하는 것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마시고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읽고 암송하고 은혜 받기에 힘쓰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제 아내가 부엌 식당 벽면에 헌 달력을 뒤집어 거기에 성경 말씀을 써 놓아두곤 했었습니다. 아이들이 밥을 먹기 전 먼저 성경을 읽고 그리고 기도한 후 밥을 먹게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기억력이 좋은 때가 몇 번만 읽으면 보지 않고도 줄줄 그 말씀을 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습관적으로 와와 성경을 외워버리고 고개를 꾸뻑 숙였다 드는 식으로 기도를 한 후 밥을 먹곤 하였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성경을 읽고 외우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막내 아이가 담배 모양으로 된 껌을 구해와 저 엄마 보는 앞에서 담배 피우는 흉내를 냈습니다. 아이 엄마가 놀라서 빗자루를 들고 뛰어갔습니다. 그러자 담배 모양으로 된 껌의 껍질을 벗기며 '껌이에요 껌'이라고 막내가 저 엄마를 놀렸습니다. 때리자니 담배가 아니고 안 때리자니 뭔가 좀 이상하고 해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그 때 둘째 아들 아이가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는데...."
결국 막내는 그날 저 엄마에게 한 대 맞았습니다. 둘째가 담배 모양으로 된 껌으로 엄마를 놀린 막내가 맞아야만 할 성경적인 근거를 대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막내는 모양은 담배지만 내용은 껌이기 때문에 안 맞아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성경은 그 모양까지도 흉내내는 것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둘째 아이가 가르쳐 준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날 그와 같은 모습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암송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막내 아이는 생각 없이 그냥 밥 먹기 위해 성경을 읽었었고 읽다보니 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말씀에 왜 그리고 무엇에 필요한 말씀인지는 생각지도 아니하고 외웠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곧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꼭 필요한 상황이 되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그 말씀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왔을 뿐만 아니라 해석되고 적용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2002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마 나름대로 새로운 결심들을 이것 저것 많이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새해가 되면 새로운 결심들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작심 사흘이 될 것을 두려워하여 아예 작심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아무리 작심사흘이라고 하여도 작심하면 사흘은 가지 않습니까? 그러니 작심을 아예 하지 않는 것 보다 낫습니다. 그리고 고집스럽게 사흘마다 작심을 하면 그 작심이 사흘을 가다가 나흘이 되고 나흘을 가다가 닷새가 되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니 새로운 결심들을 하시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새해에 새롭게 결심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올 한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해가 되도록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고 암송하며 공부하고 뿐만 아니라 설교를 들을 때 은혜를 받으실 수 있기를 위하여 결심하고 노력하고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무의식의 창고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저축하고 저장하는 한해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루에 한 장씩이라도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는 대로 건성으로 읽지 마시고 그 성경 속에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깨닫고 그 음성을 듣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그와 같은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시고 기가막히게 나의 모든 일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체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적용하시고 실천하시려고 노력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습니다.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길을 찾아보고 노력하고 기도하다보면 길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좁을 길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갈수록 넓어지는 신기한 길입니다. 처음에는 십자가를 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나중에는 그 말씀이 우리의 면류관이 되고 하는 일마다 형통케 하시는 축복이 된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를 은혜스럽게 듣는 훈련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교를 잘 듣고 은혜를 받는 것이 말씀의 무장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무장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생활에 얽매여 생활하다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그것을 깊이 묵상할 시간과 기회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일을 등지고 성경과만 씨름하면 살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아시고 좋은 방법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것은 월급 받고 성경만 보고 사는 직업을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바로 목사입니다. 목사는 성경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고 그것을 강의하고 설교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면에서 목사도 똑같은 월급쟁이입니다.
목사는 성경을 읽고 은혜를 받는 것이 직업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성경을 아마츄어처럼 읽으면 안됩니다. 프로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 한 장을 읽어도 깊이 읽어야만 합니다. 은혜를 받을 때까지 읽어야만 합니다. 광부가 금을 캐듯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렇게 찾은 하나님의 은혜를 강의와 설교를 통하여 교인들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교인들은 목사의 설교와 강의를 통하여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목회만큼이나 중요한 세상의 일을 하면서도 말씀의 은혜를 풍성히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알아야 할 매우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목사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은혜의 통로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와의 바르고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수학선생님과 크게 다투었습니다. 선생님과 다투고 난 후 수학이 싫어졌습니다. 수학 시간이 되면 강의를 듣지 아니하고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잤습니다. 결국 수학을 망치게 되었고 결국 대학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당회를 하다보면 가끔 의견이 대립되어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꼭 은혜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회의에서는 자기 주장을 내세우며 토론을 하고 격렬한 논쟁을 하다가도 일단 회의가 끝나면 회의에서 결정 된 대로 의견을 일치하여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회의에서 토론 끝에 결론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기가 주장하던 것과 다르다고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목사와 당회에서 의견이 대립되어 다투게 되는 수가 있는데 대개의 경우 그렇게 되면 장로님들이 예배 시간에 눈을 감는다던가 예배당 뒷 구석 기둥 뒤에 앉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고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사는 여러분의 은혜의 통로입니다. 그 통로가 막히면 은혜의 상당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언제나 그 점을 유의하셔야만 합니다.
마태복음 26장 31절에 보면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탄은 양떼를 흩기 위하여 목자를 치는 수법을 쓰곤 합니다. 여러분 그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교인들만이 목자를 치는 것은 아닙니다. 상당부분 목자가 목자 스스로를 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을 우리는 목회자의 부패와 타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목회자를 정말 영적인 아버지와 스승처럼 존경하며 은혜와 축복의 통로로 귀히 여기는데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실망을 끼쳐서 그 축복과 은혜의 통로가 막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와 같은 목회자는 늘 그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6절에 보면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와 같은 목회자들은 이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목회자들 중에는 교인들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교인들 중에는 목회자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와 같은 상처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탄이 그와 같은 상처를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상처를 이용하여 목회자와 교인들의 사이를 이간질한다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하여 목회자와 교인들의 관계를 멀리하게 하고 지나친 조심과 경계가 지나쳐서 오해와 의심이 많아지게 하며 조그마한 일에도 큰 상처를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와 같은 것이 우리가 높은 뜻 숭의교회를 함께 섬길 때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목사와 교인의 관계는 은혜와 축복의 중요한 통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그 통로가 유일한 통로는 아닙니다. 교인들 스스로 얼마든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개신교의 중요한 전통입니다. 목회자는 할 수 있는 대로 교인들 스스로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도록 그 능력을 개선시키고 증진시키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교인들을 목회자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영적인 마마보이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와 교인들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은혜와 축복의 통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 중에 가장 귀한 축복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은 마치 보물 지도와 같습니다. 사람들이 제대로 해독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보물 지도와 같습니다. 말씀 속에 길이 있습니다. 말씀 곳에 삶의 식이 있습니다. 말씀 속에 잘 사는 법이 있습니다. 말씀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 속에 사탄의 어떤 시험과 유혹도 능히 물리칠 수 있는 칼이 있습니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한 검이 있습니다.
말씀을 귀히 여기시는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공부하십시다. 그리고 열심히 설교를 들으십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의 창고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득하게 쌓아 놓으십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삶의 해답이 되게 하십시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튀어나오도록 하십시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그 말씀을 적용하며 실천하십시다. 그리하여 삶의 현장에서 말씀의 열매를 맺으면서 사십시다.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말씀의 열매를 축복으로 누리며 세상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이 무엇이며 잘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며 사십시다.
찬송가 235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을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르심으로 오늘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 주니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귀한 그 말씀 내 노래 제목이 되도다 모든 사람에 복 주는 생명의 말씀을 값도 없이 받 아 생명 길을 가니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 다.
널리 울리고 퍼지는 생명의 말씀은 맘에 용서와 평안을 골고루 주나니 다만 예수 말씀 들어 복을 받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아멘
새해 첫 주일을 맞는 오늘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께 드렸던 말씀을 우리도 드리십시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아멘. 말씀으로 승리하는 한 해가 되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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