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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및 신조〓/한국 교회사

제 4강 한국종교는 무엇일까요 4 ?

by 【고동엽】 2021. 12. 18.

제 4강 한국종교는 무엇일까요 4 ?
 한국종교는 무엇일 까요?
 . 일반적으로는 샤머니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샤머니즘은 세계 곳곳에 있습니
다 그래서 그냥 샤머니즘 을 한국종교 라고만 한다면 이는 두루뭉술한 주장에 불 . ‘ ’ ‘ ’
과합니다 한국은 다종교 사회였습니다 즉 한국은 고대로부터 다종교성의 상황 안 . .
에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최고운의 난랑비 서문 및 삼국사 에는 다음 . . “ ”
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실로 삼교 를 모두 포함한다 들어가서 어버이에 , ( ) . 三敎
게 효도하고 나가서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은 노 사구 의 뜻이요 무 ( : ) , 魯司寇 孔子
위 의 일에 처하고 불언 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 주사 ( ) ( ) ( : ) 無爲 不言 周住史 老子
의 종지요 제악 을 짓지 않고 제선 을 봉행하는 것은 축건 태자 , ( ) ( ) ( 諸惡 諸善 筑乾太
子 釋迦 : ) . 의 교화이다 1)
 . , , 이 말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첫째 한국에는 유교신자 따로 도
교신자 따로 불교신자가 따로 그래서 세 종교의 신자들이 각각이었다 둘째 한국 , , . ,
의 고대인들은 유교와 불교와 도교를 모두 받아들이는 다종교성을 가진 사람들이 ‘
었다 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었을 것 같습니까 제 생각은 후자입니 ’ . ?
다 즉 고대의 한국인들은 유일신관 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복합적 종교 . ( ) 唯一神觀
성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아이가 태어나 . . ‘
면 출생신고는 신도의 사원에 가서 하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서양식으로 하며 장례 , ,
식은 불교식으로 화장 한다 이럴 경우에 단지 양태만으로는 일본인들의 종교 ( ) .’ 火葬
를 하나로 단정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고대의 한국 사람들은 달랐을 까요 . ?
최치원의 말을 더 들어보십시다 지증 화상 비명 에는 다음과 같이 . “ ( )” 智證和尙碑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국관국( ) 以國觀國 2)의 관점에 입각하여 어느 지역에서 건너왔고 어느 지역으로 ,
옮겨갔는지를 고찰해 보건대 불교의 . 바람이 사막과 산맥을 거쳐 중국에 전해지고
나서 비로소 그 물결이 바다모퉁이 동방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옛날 동방에 삼국
( ) , ( ) ( ) ( ) 三國 이 솥발처럼 대치하고 있을 당시에 백제 에 百濟 蘇塗 祭儀 소도 의 제의 가
있었는데, ( ) ( ) . 이는 감천궁 甘泉宮 金人 에서 금인 을 제사하던 것과 같았다 그 뒤에
서진 의 ( ) ( ) , ( ) 西晉 曇始 攝摩騰 담시 가 처음으로 고구려에 들어왔는데 이는 섭마등 이
1) , , ( : , 2 최치원 고운 � 집� 이상현 옮김 서울 한국고전번역원 009), 105.
2) , ( ) 나라를 가지고 나라를 살핀다는 뜻으로 한 나라의 종교 一 등 총체적 문화현상을 가지고 그 나라
의 전반적 수준을 가늠한다는 말인데, ( ) �노자 장에 나 老子 � 54 ( ). 온다 譯者 註
- 2 -
동한 에 들어 ( ) . ( ) ( ) 東漢 阿度 新羅 온 것과 같았다 또 고구려의 아도 가 우리 신라 에 건
너왔는데, ( ) ( ) . 이는 강승회 가 康僧會 吳 남쪽 오 나라에 간 것과 같았다 3)
 , ( ), 이를 따르면 삼국시대의 세 종교를 말할 수도 있는데 백제의 소도 고구 蘇塗
려의 담시 그 ( ) ( ) . 曇始 阿度 리고 신라의 아도 입니다 그렇다면 이 종교들은 무엇일까
요 첫째 ? , ( ) ( ) . 감천궁의 금인 은 金人 佛像 흉노지역에 있었던 불상 입니다 4) 그러니까
소도 도 불교의 한 ( ) . , ( 蘇塗 西 형태이겠군요 둘째 고구려의 담시는 중국의 서진 晉)으
로부터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종교가 . 설령 불교의 형태를 가졌더라도 서진 식
불교일 겁니다 세 . , , ( ) . 번째 이게 궁금한데 고구려의 아도 입니다 이게 신라로 阿度
갔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이 역시도 불교의 한 . . 형태인 듯합니다 그러니까 고대 삼
국의 종교는 모두 불교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불교라고 하여 모두 같은 . 패턴일
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보십시다 ? . . 티벳의 라마교와 중국의 대승불교는
모두 불교이지만 그 행태는 차이가 큽니다 그래서 . 설령 중국으로부터 불교가 전해
졌다고 하더라도 그 패턴상의 차이들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불교는 시기적으 .
로 좀 늦습니다. . 물론 유교는 더 늦게 한반도에 정착했을 테구요 그렇다면 불교 이
전에는 한국 종교가 없었을 까요 그럴 ? ? 리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불교 이전에도 한
국인들에게는 종교가 있었겠지요 그렇다면 고구 . 려 이전이라고 할 수 있는 고조선
시기의 종교는 무엇이었을 까요? ( ) . 윤내현 박사께서는 이를 선도 로 여 仙道 깁니다 5)
즉 선교 입니다 즉 신선 종교 라는 뜻인 ( ) . ‘ ’ , 仙敎 데 그 종교의 행태는 구체적으로 전
해지지 않습니다 다만 고대의 국가들 . ‘ ( )’ 중 이 선 을 어 仙 떤 형태로든 보존해 보려
했던 집단이 있었다면 그것은 신라의 화랑 이었 ( ) . 花郞 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라의
화랑이 고대의 선도 를 그대로 보 ( ) . 仙道 존해 왔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고
대의 삼국에서는 불교라는 단일종교 만을 따랐을 까요 (?) ?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겠
지요 이미 . , ( ) 알려져 있다시피 신라의 화랑도는 어떤 형태로든 선교 와의 仙敎 연관
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하기 전까지는 백성들이 어떤 형
태로든 자신들의 신앙심들을 가졌을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국가가 . 백성의 종교
를 통제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 랬다면 당연히 법흥왕 이후부터 불교가 강성
해졌다고 할지라도 백성들은 여전히 다종교성을 가졌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화
랑도 역시 선교 와는 어 ( ) 仙敎 떤 형태로든지 연관성을 가졌을 것이므로 신라인들의
종교를 불교만으로 여기기는 어렵습니다.
 ‘ ’ 그리고 소위 고구려 고분 으로 알려진 벽화들에 나타난 고대 한민족의 종교성이
있습니다 이에 대 . , 해서는 전호태 박사께서 많이 연구를 하셨는데 6) 그 분의 책을
따르면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나타난 종교성은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초기
의 그림들은 계세사상( ) 繼世思想 7)이 발달되어 있고, ( ) 영혼불멸 靈魂不滅 적으로 사고
3) , , 41 최치원 고운 � 집� 6-417.
4) , , 41 최치원 고운 � 집� 7의 譯者 註 참고.
5) , ( : , 1 윤내현 고� 조선 연구 서 � 울 일지사 994), 694-696.
6) , ( : , 2 전호태 고구 � 려 고분벽화 연구 서 � 울 사계절출판사 000) . 참고
- 3 -
( ) . , 思考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기가 되면 더 다양한 세계관이 유입되는데 불교적 내
세관 입니다 ( ) . 來世觀 전호태 박사님의 주장을 따르면 특별히 고구려의 고분에 나타
난 신앙적 양태는 중국의 문화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우. 리는 흔히 고대 한민족의
신관( ) ( ) . 神觀 중 하나로 천신 을 天神 꼽습니다 그러나 천신은 중국에도 있었습니
다.
8) () 물론 한민족 韓民族 의 천신이 중국의 천신과 같았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럼에
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도 천신을 섬겼음이 밝혀졌습니다. 물론 고대인들의 종교관에
는 ‘ ( ), ( ), ( )’ ‘ ’ 천신 지신 인신 들을 天神 地神 人神 섬기는 소위 범신론적 요소 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9) , 그래서 고대의 한민족 역시 이와 같은 범신론적이고 인신숭
배적이었던 요소가 배제되지는 않았겠지요 그. . 런데 한 가지를 덧붙여야 합니다 고
구려의 고분은 동방적 요소만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서역 적 즉 . ( ) , 西域 중동의 요
소들도 나타납니다.10) 하지만 고대 고구려에 서역의 종교가 뿌리를 내렸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고대의 한국종교를 찾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특성을 말씀
드리자면 고대 한국인들의 종교는 유일신 신 ( ) . 唯一神 앙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기독
교의 신처럼 인격성( ) . 또는 초월성 을 가진 신으로 보기에도 무리가 있겠군요 단정적
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통용되던 개념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고대 한국의 종교들
에는 몇 가지의 특성들이 나타납니다 첫째 . , . , 범신론적 요소가 있습니다 범신론이란
자연이나 우주를 신으로 여기는 관점입니다 둘째 . , . 내세적 요소가 강하였습니다 그
래서 유교적 요소는 매우 약하였거나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 . 해 제자백가
들 중에는 공자도 들고 노자도 들지만 그 , 럼에도 불구하고 유교의 사상은 거의 드
러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를 따라서 본다면 유교는 상대적으로 불교보다 . 늦게
들어왔습니다. 공자의 탄생을 따진다면 도교와 같이 들어왔을 법도 하지만 실질적
으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 . , 리하자면 첫째 고대 고구려의 고분에서는 계
세적 내세관과 불교적 내세관의 요소가 강합니다 둘째 고대 고구 . , 려 벽화고분의 신
앙에는 중국의 종교성과 밀접한 관련성들이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유교적 색채를 찾
기는 어렵습니다. , ( ) 셋째 고구려의 고분에서는 서아시아적 요 西域的 소도 있지만 서
역의 종교가 고구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알지 못합니다.
 ( ) ( ) 최치원은 고대의 삼교 三敎 중 하나로 유교 도 儒敎 넣어주지만 실지로는 유교
의 영향이 약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뿐만 아니라 유교는 도교보다 늦게 한반도로
전래되었거나 도교나 불교보다는 많이 늦은 시기에 한반도에서 꽃 피웠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유교가 한반도에서 본 . . 격적으로 꽃 피웠던 시기는 조선시대입니다 그리
7) () () . 현세 와 現世 來世 내세 를 본질적으로 동일한 세계라 여기는 사상
8) , “ : ” ( 朴美羅 中國 祭天儀禮 硏究 郊祀 上帝 의례에 나타난 와 의 이 天 天 중적 을 神觀 중심으로 서울대
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7) . 참고
9) , “ : 李恩奉 韓國 古代 宗敎思想의 의 성 構造的 探究 天神· · 地神 人神 構造” ( 균관대학교 박사학위 논
문, 1984) . 참고
10) ( ) , “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서역 적 요 西域 소에 대해서는 朴雅林 高句麗 集安 地域 中期 壁畵
古墳의 과의 비교를 西域的 要素 硏究 中: ,” 國 北朝 古墳美術 中 중심으로 � 國史硏究� 50 (2007.
10): 25-61 . 을 참고 하라
- 4 -
고 고려의 유학자 들은 불교를 주장 ( ) 儒學者 했던 사람들과는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기도 했죠. KBS에서 방영한 드라마 �천추태후 도 이를 � 잘 보여준 셈입니다.
드라마에서 보셨다시피 고려시대에도 유교 식 관료들은 사대적 성 ( ) 事大的 향이 강하
였습니다.
 ? . 그러면 이정도로 한국종교를 설명했다고 할 수 있을 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 ) . 고대 한국인들의 종교성 안에는 국조 숭배 國祖 의 전통들도 있군요 물론 국조는
신 이 아 ( ) . ‘ ’ ( ) 神 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의 한국인들은 국조 에 대한 예 를 禮
갖추었습니다.
11) . 우리는 여기서 현대사의 문제를 살펴보십시다 의 주장 E. H. Carr
처럼 역사는 과 “ ” , 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 라는 이론에 의하여 본다면 기독교
의 독립운동에 대해 연구한 책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1-7 3 절까지 이루어져 있는데 절 ‘광야 물 위에 앉아서 손에 금 술잔 들고
일곱 머리 열 뿔 가진 무저갱 짐승타고 음란하고 피에 취한 큰 음녀( ) 는 어
린 양의 큰 진노로 피 밭 되게 하셨네’ () 의 내용은 천조대신 을 제 天照大神
사하고 있는 이세신궁( ) 伊勢神宮 이 미군기의 폭격을 받아 불탄 것을 기념한
노래이다.12)
 ( ) ( ) ‘ ( )’ . 그러니까 일본 신사 의 신 神祀 神 중에는 천조대신 이 있었 天照大神 군요 그런
데 이게 웬일입니까? ‘ ( )’ 김운회 교수님의 책을 따르면 아마테라스오미가미 天照大神
라는 태양의 여신 은 고대 가 ‘ ’ ( ) () . 야 伽倻 의 신 이었습니다 神 13) 즉 우리가 우상이라고
여겼던 바로 그 신이 고대 한민족의 신들 중 하나였군요 일제시대에는 충 . 청도 지
방에 많은 수의 부여신궁( ) . 夫餘神宮 들이 세워집니다 아마 일본에서는 한 때나마 그
곳을 옛 백제가 도읍했던 지역으로 여겼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어 . 떤 형태로든 일
본은 고대 한민족( ) ‘ ( )’ 韓民族 의 국조제사 國祖祭祀 내지 고대의 신앙 또는 고대 한민
족의 종교를 한반도로 가져왔군요 다시 말하면 이성계가 세운 . , 조선이 국조를 등한
시 하면서 공자와 맹자에게 제사를 올렸을 뿐만 아니라 만동묘에 제사를 지내면서
고대의 위대하신 국조들을 오랜 기간 동안 무시하였는데, 일본은 바로 그 조선 사
람들이 무시하였던 조, , 선 사람들의 조상들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살던 조선인들이
망각했을 수도 있는 고대의 제의 들 ( ) 祭儀 을 회생시키는 효과를 노렸습니다 이는 아 .
마도 정치적 수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런데 이런 행태는 정치적 수단이라 하더라
도 쉽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 이를 . 테면 공자와 맹자를 밀어내고 그 대신에 고구려
와 백제와 가야와 신라의 신들을 한반도로 모셔왔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우. 리는 흔
11) , “ : ” ( , 朴承範 신라 제의의 변천과정 연구 시조묘와 신궁을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95) . , , , “ .” 참고 그리고 金富軾 �三國史記 卷第 � 三十二 雜志 第一 祭祀 ; , , 김부식 삼국사기 � � 3.
이재호 옮김 서( : , 1 울 솔출판사 997), 15.
12) , , , , ( : 정중호 최덕성 조원경 최은영 �일제말기 영남지역 기독교인 항일운동� 대구 대원당 기획출판
사, 2008), 101.
13) , , 1. ( : , 2 김운회 대� 쥬신을 찾아서 서 � 울 해냄출판사 006), 306-320.
- 5 -
히 별 생각 없이 신사 는 우상이라 여 ‘ ( )’ . 神祀 겨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 당시의 상
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생각 일 수도 있습니다 현대의 . 젊은 세대들은 주로
‘ ’ . 독립운동사 라는 관점에서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
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달랐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자신들의 의 , . 견을 말하기 어려
운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하지 않아서 그렇지 세기 , 20 초 중· 반 일본
이 조선인들에게 제시하였던 낙관론이란 어마어마한 것들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은 .
엄청난 명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 당시의 조선인들은 과연 일제의 칼이 무서워
‘ ’ ? ‘ 텐노 헤이가 반자이 를 외쳤을 까요 자발적으로 천황 폐하 만세 를 !’ 외친 이들은
없었을 까요 그 시대에는 ? , ,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영국의 처칠 이탈리아의 무솔리
니가 활동하였습니다 어느 나라라 할지라도 . 백성의 여론을 모아내지 못한다면 전
쟁은 어렵습니다. ,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선전술이 동원되는데 바로 거기에
‘ ’ . 고대 한민족의 제의 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성계나 정도전이 지독히도 무시하
다시피 한 그 고대의 제의 , ( ), 祭儀 바로 그것을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게 전하여 주
었습니다. 민중 층에서는 몰라도 적어도 조선의 권력층이 철저히 무시하다시피 했
던 그 제의들을 다시 가져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게 고 ! , 조선의 것이었든 고구려의
것이었든 백, , , 제의 것이었든 신라의 것이었든 가야의 것이었든 간에 그 고대의 위
대한 영광을 일제는 재현 하는 ( ) . 再現 듯 보였습니다
 . 그 당시의 일본은 청나라와 싸워 이겼습니다 그 당시의 일본은 러시아와 싸워
서도 이겼습니다 그 . 당시의 일본은 조선이 지독히도 섬겼던 그 중국을 쳐들어갔습
니다 그 . . 당시의 일본은 동남아를 잡아먹었어요 그 일본은 드디어 미국하고도 붙을
까 말까 합니다 만주는 일본의 . , 손으로 아이신죠로 푸이는 만주제국의 황제로 세워
집니다. . 철로가 연결됩니다 일부의 고등학생들은 수학여행도 만주로 갔다고 합니
다 실지로 일제시대 . ( ) 때 살았던 어느 분은 자신이 기차를 타고 만주 로 수 滿洲 학여
행을 했던 경험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전하였다고 합니다 어. ? 떻습니까 마치 고대
한민족의 영광이 재현되는 것 같지 않습니까?
 , ? ‘ 여러분 서양의 종교개혁이 뭡니까 원 ad fontes!( 전으로 돌아가라 입니다 여 !)’ .
기서의 원전이란, ( ) 성경과 고대 교부들의 가르침 특히 어거스틴의 가르침 이었습니
다 즉 종교 . 개혁은 새로운 발견이라기보다는 잃어버렸던 그 기억들을 되찾은 겁니
다 즉 로 . 마 가톨릭 교회의 관습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다고 여겼던 그 소중한 가
치들을 되살린 거죠. 이에 견줄 때 일제시대의 조선이야 말로 어마어마한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었던 겁니다. ‘ ’ ( ) 설령 그것이 전쟁 이라고 하는 비도덕적 행위 非道德的
이었을지라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일제의 선 . 전술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
이 윤리적 당위로는 가능하지만 그것은 체화 되지 ( ) . 體化 못한 지식입니다 좀 더 냉
정해 질 필요가 있습니다.
 1933년도까지 ‘ ’ 1 조선예수교 장로회 의 세례교인 수는 만 명이 0 조금 넘습니
다.14) 1 그러나 이는 그 당시 전 국민의 에도 미치지 % 못하는 소수 였습니다 ( ) . 少數
14) , ( : , ), . 郭安連 長老 � 敎會史典彙集 京城 朝鮮耶 � 穌敎書會 一九三五 二三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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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 기독교인들 중 신사 ‘ ’ 참배 를 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전체 조선 기독교인
들 중 몇 퍼센트였을 까요 이 역시 ? ( ) . 소수 였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 少數
렇다면 수치 상 계산을 해 보십시다. ( ) 전 全 장로교회의 교인들이 모두 신사참배를
거부한다고 해도 전 국민의 가 되지 1% 못할 텐데, 그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소수만
이 하지 않았다면 그 당시 신사참배를 하지 않았거나 거부한 기독교인들의 수치를
퍼센테이지로 계산한다면, . 전 국민의 영점 영 몇 퍼센트 밖에 되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퍼센테이지가 모든 것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수적으로는 . 너무 미약
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주기철 목사님처럼 매우 위대하신 순교자들도 계셨습
니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주기 . . 철 목사님 같은 분들은 예외
중에도 한참 예외에 해당하십니다 그래서 . ‘ ’ 오늘날의 독립운동사 에 익숙한 현 세대
들은 그 시대의 참상을 깊이 알지 못합니다. ‘ ’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아이돌 스타 만
봐도 열광합니다 그러나 일제의 . ( ) . 천황 은 그 天皇 런 차원이 아닙니다 김산호 화백
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하늘의 뜻이 곧 움직일 수 없는 절대명령이므로 하늘에 대한 제
사 는 그들 나라 최고 ( ) . ( ) 祭天 地 권력자의 고유권한이었다 일반 백성들은 님 神 에
대한 제사나 선신( ), ( ) 仙神 조상신 에 대한 제사만 모실 수 있고 그들 나라 祖上神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제천의식은 최고 권력자 한 사람에게만 의지하였다 이러 .
한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일본의 경우 천황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바로 자
국의 번영과 안녕을 비는 천제 의 제관 임무인 것이다 () () . 天祭 祭官 15)
 ( ) ‘ ’ . 따라서 일본에서의 천황 이 天皇 란 민족의 대제사장 입니다 일본인들은 바로 그
대제사장에게 예를 취하라고 조선인들에게 선전 및 강요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
문제는 이 대제사장적이고 고대 한 , ( ) 민족적 인 제의를 韓民族的 거절할 수 있는 용기
를 가질 수 있는가하는 점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 시대인들은 주의 . ( ) . 現 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입장에서 그
시대를 판단하는 것은 체화 된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의 . 급격했던 흐
름을 살필 때 일본은 미국에게 패하였고, 2차 대전이 끝나자 일본에서 살던 많은
수의 조선인들은 빠른 속도로 조선으로 귀향했거나 그들의 입장을 바꾸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 일본보다는 미국이 더 강한 나라라고 인식 . , 했기 때문
일 것입니다 이. . 런 현상은 통계상으로도 분석이 가능합니다 즉 분단으로 인하여 전
체 인구가 반 이하로 ( ) 半 줄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는 기독교인들의 수가
2 . 차 대전이후부터 빠른 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6) 이는 혹시 미국의 종교가
15) , ( : , 2 김산호 �倭史� 서울 여아시아문 003), 15.
16) 1 예장 통합과 예장 합동이 갈라진 이후였던 960년대에는 이미 예장통합의 세례교인 수만 해도
10만 명이 넘는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 , 44 총회 제 회 회 회의록 서 � -48 � ( : , 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1960∼1963); , 그리고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제 회 보고서 서 � 52 ( : , � 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1967) ). 에 기록된 교세의 통계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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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개신교 라고 여긴 까닭은 아닐 까요
 . ,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십시다 고대에 신라가 당나라와 힘을 합쳐 백제를 몰
아내었습니다 그 . . 백제가 고국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그들은 청나라로부
터 조선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들은 러시아로부터 . 조선을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서양인들의 기세에 . 눌리지 않도록 조선인들의 기세도 세워주겠다고 약
속합니다. . 물론 이는 선전술이었겠지만 거절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 ( )’ . 우리는 흔히 독립 獨立 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꼭 같은 용어일지라
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상당히 다른 의미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일본은 . 굳이 조선
을 지배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 . 조선을 보호해 주겠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
의 특성은 조선이 일본의 제의를 거절할 만한 힘이 있었는가입니다. 조선은 애써
미국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그 당시의 미국은 조선의 정치판에는 끼어 들
생각이 없었습니다. . 조선에서는 러시아를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러시아마
저도 전쟁에서 일본한테 졌습니다 그렇다면 . 조선으로서는 더 이상 버틸 만한 힘이
없게 됩니다 그 . 당시 일본은 조선을 점령하는 데에는 별로 힘을 들일 필요가 없었
습니다. . ‘ 애초부터 일본의 관심은 만주대륙에 있었습니다 국 3 간섭’만 아니었더라
도 그 만주는 일찌감치 일본이 차지했을 것입니다 다만 . 조선은 그 일본인들이 필
요로 할 교두보 정도였을지도 모릅니다 일본은 . 당근과 채찍을 함께 쓸 줄 아는 나
라였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인들이 . 채찍만 썼다면 조선인들은 강하게 반발하였을
것입니다 경. . 험해 보셔서 아시겠지만 한국인들을 지배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기질을 좀 알잖아요 무. . 조건 왈력으로만 지배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조선인들이 들었을 때 호감이 갈 만한 명분을 제시해야 백성이 따라올 것 아니겠습
니까 그? . 런데 바로 그 명분 중 하나가 종교였습니다 물론 그 일본은 실정성에 있
어서만큼은 셀 수도 없는, . , 많은 문제들을 야기했습니다 이를테면 정신대 징용에서
의 과도한 노동 및 열악한 근무환경 고문과 , , 살해 조선사편수회를 통한 철저한 역
사왜곡 등 수많은 문제들을 드러내었습니다 이는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 . . 럼에
도 불구하고 그 당시 일부의 지식인들은 여전히 친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
그 당시의 지성인들은 왜 친일을 했을 까요 일제의 ? ? 칼이 무서워서였을 까요 과연
그렇기만 했을 까요?
 오늘날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보시는 분들은 얼마나 자국의 승리를 기대하십니
까 그? 런데 전쟁에서의 승리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스포츠에서의 승리와는 차
원이 다릅니다. . 스포츠는 게임일 뿐이지만 전쟁은 철저한 현실입니다 이겼을 때에
주어지는 혜택이란 말로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그. 리고 바로 그 놀라운 선전술의
배경에 고대 한 ‘ ’ . 민족의 제의 가 어떤 형태로든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즉 이성계와
그 군인들 때문에 잃어버렸던 고대의 제의가 일본 때문에 되살아 난 겁니다. 물론
그 일본은 단군을 모시는 민족 종교인 대종교인들을 박해하고 역사의 복원을 꿈꾸
었던 단재 신채호와 같은 위대한 사람들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선전술은
그러했습니다 일제시대 . 당시 신사참배를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종교는 기독교였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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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불교나 . ( ) 동학이나 여타의 자연 自然 인들은 적어도 교리적으로 기독교만큼 강
하게 신사 를 ( ) . 神祀 꺼리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그 신사를
몸으로 거부한 이들은 소수 중에도 소수였습니다 이를 따를 . , 때 언제나 다수가 옳
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수의 주장이 . . ‘ 틀릴 때도 많습니다 성경을 보면 오직 여호
와만을 섬기라 고 명 ’ , 령하는데 그 명령에 순종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우리의
삶이 증명할 것입니다.
 , 교회에게는 시대마다 과제가 주어져 있는데 그 기준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
는 수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대 . , 전 당시 독일에서는 다수의 신학자들을 비롯
한 교계의 지도자들은 국가교회의 편에 서 있었습니다 고. . 백교회는 소수였습니다
물론 전쟁이 끝난 뒤의 평가는 달랐지만 전쟁을 수행할 당시에는 그 이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 . ? 리나라의 경우에는 어떠합니까 광복 이후에는 출옥성도
들이 일제시대의 신사참배 문제를 거론하였습니다 하지만 .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시
다 그. 런 상황이 다시 도래한다 해도 다수는 역시 국가의 여론을 따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사람들이 언제나 . 바른 신학 또는 바른 신앙의 기준으로 생활하기란 어렵
습니다 하지 않아 . ‘ ’ ‘ ’ . 야 한다 가 아니라 하기가 어렵다 는 점입니다
 . 오늘날에는 단군상을 깨부수어 감옥을 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사찰의
불상을 훼손하기까지 합니다 그. 런 일을 한다고 해서 자신의 신앙이 확고한 걸 까
요 더러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 , 써 또는 상대와 내가 다르다고 여기면서 바
로 그 차별성 때문에 내가 더 의롭고 지, , 조가 있으며 곧은 신앙생활을 한다고 여기
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 바로 그 옳다는 기준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에
있습니다. . 특히 일제시대의 경우에는 그 기준을 찾는 일이 더욱 어려웠습니다 즉
그 당시를 살았던 다수의 사람들은 후대의 평가가 어떻게 될지를 모르고 살았던 경
우가 허다했기 때문입니다.
 . 이제 정리해 보십시다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개신교회가 꽃 피워지고 있었을 때
일본의 종교적 제의( ) . 祭儀 또한 한반도로 유입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건이
혐오스러울 수도 있고 그 사건에 무관 , . 심 할 수도 있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잣대로
판단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을 . , , 싫어할 수도 일본을 좋아할 수도 일본을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어. 떤 선택을 하더라도 양심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가능합
니다 그러나 그 . . 런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을
하기 전에 저는 다음의 두 가지를 요청합니다 첫째 일본을 . , , 싫어할 수도 좋아할
수도, , 용서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지만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일본에 대한 이
해입니다 둘째 . , ( ) , 체화 되지 體化 못한 지식으로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교과
서적 지식이나 독립운동사에 의한 학습만으로 일본을 판단하는 것은 충분한 이해가
아닙니다 우. , 리는 일본으로부터 헤아릴 수도 없는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고 국제사
회에 호소해 왔습니다. . 물론 이는 지극히 타당한 주장입니다 그러나 후기 몽고시대
에 세조 쿠빌라이 칸의 군대 인 여, ·몽 연합군이 일본을 밟았을 때의 두려움을 일본
사람들은 뚜렷하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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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에게 무의식적으로 체화 된 혹은 잊혀 진 고대 한민족의 제의들이 현대 한
국의 기독교와는 무관할 수 있을 까요? 저는 그리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지만 실지로 기 . , 독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볼 때 그렇지 않을지도 모
른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이유들은 무엇 일 까요?
 ‘ ’ . 이제 한국기독교는 서양 종교 가 아닙니다 들어온 지 백년 넘었다면 더 이상
그 종교는 외국의 종교가 아닙니다. ,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국기독교는 이제 한
국인들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 런데 그 한국종교 안에 어떠한 집단무의식들이 내
재하고 있을 까요? , 물론 이는 인류학적이고 종교학적 접근이기 때문에 프리드리히
헼켈은 지극히 꺼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 . 리는 순수이성만으로 한국 기독
교를 설명할 수 있을 까요? . 저는 한국의 신학자들에게 이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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