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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찬송하는 사람들 / 시편 42:6-11

by 【고동엽】 2021. 12. 16.

오히려 찬송하는 사람들

시편 42:6-11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훌륭한 군인이었으며 훌륭한 대통령이었습니다. 그가 백악관에 있을 때 백악관 출입 기자들과 간담회나 회견을 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하루는 기자 회견이 끝난 후 기자 한 사람이 짓궂은 질문을 했습니다.

"각하, 각하는 어디까지가 얼굴이고 어디까지가 머리입니까?" 이 질문이 떨어지자 장내엔 폭소가 터졌습니다. 이유는 아이젠하워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머리와 이마와 얼굴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철저한 대머리였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대답이 궁금했습니다.

대통령이 잠시 후 입을 열었습니다. "내일 아침 백악관에 다시 와서 내가 세수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손으로 씻는 부분까지가 얼굴이고 씻지 않는 부분은 머리입니다." 기자실 안엔 다시 폭소가 터졌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기자들은 한결같이 대통령의 여유 있는 유머에 감탄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여유가 없습니다. 더욱이 정치판을 들여다보면 죽기 아니면 죽이기를 반복하는 살얼음판입니다.

길거리에 차를 세운 채 두 사람이 멱살을 잡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는 30여대의 자동차들이 밀려 있었습니다. 그들이 싸우는 이유는 갑자기 뒤따라오던 차가 끼여드는 바람에 사고가 날 뻔했다는 것입니다. 사고가 날 뻔했을 뿐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차를 세우고 넥타이까지 맨 신사들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하루빨리 우리는 마음의 여유를 회복해야합니다.

시편 42편의 시인은 주변의 조소가 빗발칠 때 이일 저 일로 마음이 상처받았을 때, 그리고 절망과 낙심이 밀려오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장엄한 노래를 읊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바라고 그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믿음 때문이었음을 본문 속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 정황과 해결법을 본문 속에서 찾아보겠습니다.

5절 끝을 보면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찬송한다는 당당한 고백이며 노래인 것입니다. 언제, 왜 시인은 찬송하기로 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마음 상하고 낙심될 때입니다.

4절 끝을 보면 "내 마음이 상하는 도다"라고 했고, 5절을 보면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라고 했고, 6절을 보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라고 했고, 9절을 보면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라고 했고, 11절에서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라고 했습니다.

시인은 계속해서 "마음이 상했다, 낙망되고 불안하다"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그 사람의 행동은 결정합니다. 영혼은 그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결정합니다. 어떤 마음을 지니느냐에 따라 사건이 결정되고 인생이 결정됩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나 땅위를 달리는 자동차나 기차의 경우 하루아침에 불쑥 뛰쳐나온 것이 아닙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 사고의 산물인 것입니다. 만일 자동차나 비행기를 발명한 사람들이 사람은 절대로 하늘을 날 수 없다든지, 시속 200의 속도로 땅위를 달릴 수 없다는 자기암시에 빠져 있었다면 비행기나 자동차가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절망, 고통, 실패, 좌절, 불안, 이런 것들은 없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다보면 밀어닥치는 그것들을 피할 수 없게 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올 테면 오라. 나는 너와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그런 것들이 겁 날리 없는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가 남긴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 있다. 그것은 공포자체이다."

브리스톨이 쓴 적극적 사고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그 책 속에서 "지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이긴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안 돼, 나는 질 꺼야, 나는 끝났어, 나는 손들었어" 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슬픔, 괴로움, 번 민, 실패, 아니면 건강, 재산, 행복, 성공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 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성공, 건강, 행복, 부귀를 마음먹고 선택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 현실로 다가서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택은 내가 할 수 있지만 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성경의 대답입니다.

잠언 16:1을 보면 "미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했고, 16:3을 보면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6:9을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했습니다.

계획하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시고 완성하시고 성취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일찍이 깨달은 시인은 고통과 아픔과 상처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히려 찬송하겠다고 노래한 것입니다.

 

2. 도우심을 받았을 때입니다.

5절을 보면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시인의 두 입장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괴롭고 힘들 때도 찬송하고, 도우심을 받았을 때도 찬송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힘들고 괴로울 때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들으시고 도와주셨습니다. 그 도우심 때문에 다시 찬송하며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5절에서 "도우심을 인하여 찬송한다"는 것은 도우심 때문에 감사한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찬송하며 기도 드린다는 것입니다.

하루야마 시게오 박사는 자신의 저서뇌내혁명속에서 "아무리 혹독한 상황에 처했다 해도 잠자리에 들 때는 미래의 꿈이나 희망 혹은 인생의 계획 등을 떠올리도록 하는 것이 좋다. 심한 스트레스가 쌓여 그것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그것은 긍정적 발상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장수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끙끙 앓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젊었을 때 고생은 돈을 주고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이나 근심을 돈주고 사서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돈을 줘서라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걱정, 근심, 염려들이 쌓여 만드는 스트레스는 풀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8월초 두 가정이 동해안으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두 가정이 가까운 친구사이였고 두 가정 모두 남매를 둔 가정이었습니다. 애들도 서로 친하게 지내기 때문에 목적지를 같은 곳으로 정했고, 각각 승용차 편으로 떠났습니다. 한창 휴가철이어서 목적지까지 열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그런데 두 가정이 무덥고 지루하고 짜증나는 열시간을 길거리에서 보낸 상황이 너무나 달랐습니다.

A가정은 부부가 서로 나누어 운전을 합니다. 미리 준비한 카셋트 테잎으로 찬송을 듣고 설교를 듣습니다. 뒷좌석에 탄 두 아이들에게는 상금을 걸고 성경구절 암송을 시킵니다. 준비해온 간식이며 음식을 나눠 먹습니다. 네 식구가 돌아가며 노래자랑을 하고, 끝말잇기 게임을 하고, 엄마 아빠 어렸을 적 얘기, 아빠 군대가서 기합 받은 얘기, 엄마 아빠 연애하던 얘기 등으로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피곤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열시간이 언제 지났나 싶게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B가정은 달랐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이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땅 덩어리도 게딱지만한 나라가 웬놈의 차는 이렇게 많이 만들어 개나 고양이나 차 몰게 만드는 거야. 차가 밀릴 땐 톨게이트를 확 열어서 차가 쑥쑥 빠지게 해야지 표 빼느라 밀리고 돈 내느라 밀리고... 한가해진 다음에 휴가 가자니까 여편네가 이주간에 꼭 함께 가야 된다고 고집 피우는 바람에 사서 쌩 고생하게 됐다"며 신경질을 냅니다.

그쯤 되면 아내가 곁에서 "여보 미안해요. 저 때문에 당신 고생이 크구려. 피곤하면 길가에 세우고 잠시 쉬었다 갑시다. 애들아 아빠한테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라고 인사드려라"라며 아양을 떨고 남편어깨라도 주물러 준다면 성질 급한 남편도 수그러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참 이상한 사람이구려. 우리만 휴가 떠났수? 수만 명이 같이 차 몰고 가는데 뭘 그렇게 유세를 떠시우. 그리고 일년에 한번 애들 데리고 가는 건데 기분 좋게 가면 어디가 덧이라도 나우?"라며 바가지를 긁어 댔습니다.

차안에서 부부가 싸웁니다. 소리를 지릅니다. 아이들이 웁니다. B가정의 올 여름휴가는 지옥여행이었습니다.

두 가정은 식구도 넷씩이었고, 자동차도 현대가 만든 XG라는 차였습니다. 목적지도 강원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떠난 시간도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 가정은 축제가 되게 하고 한 가정은 지옥여행이 되게 했을까요?

간단합니다. 주어진 부정적 현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신앙으로 극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싸운 가정은 힘들고 짜증나는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거기에 무릎을 꿇고 만 것입니다.

이원설 박사와 강헌구 박가 두 사람이 함께 쓴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나 짧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 가운데 이런 일화들이 적혀있었습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 씨가 된다"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는 "세계 모든 가정 모든 책상 위에 반드시 하나 이상의 컴퓨터가 놓여있는 세상을 만들겠노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는데 그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화감독 스필버그는 "나는 세계최고의 이야기꾼이다"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말하곤 했는데 그대로 되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 사람들은 입을 모아 "우리 대학은 서부의 하버드"라고 말했는데 그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생 길엔 어려움도 기쁜 일도 있습니다. 낮도 있고 밤도 있습니다. 누가 성공하고 누가 웃을 수 있습니다? 시인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갈망하고(1), 하나님께 기도하고(8),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11)사람인 것입니다.

비관적인 말보다는 희망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어둡고 힘든 절망을 바라보지 말고, 아침햇살 떠오르는 동쪽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저는 "칠흙같이 어두운 밤하늘이라도 자세히 하늘을 바라보면 거기 한 두개의 별이 반짝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1절을 보면 "주를 찾기에 갈급 하나이다"라고 했고, 2절에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라고 했고, 8절에서는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라고 했고, 9절에서는 "반석이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1절에서는 "도우시는 내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시인의 신관, 하나님 신앙이 어떤 것인가를 밝혀 줍니다.

외롭고 괴로울 때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행복하고 기쁠 때도 주를 향해 찬송합시다. 기도하고 찬송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요한 피터슨이 만든 찬양으로 결론을 삼겠습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힘이 없고 내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주시며 늘 지켜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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