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사명이다! (출 3:1-12)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2;15)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이끌어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신 후에 다스리며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은 일감이 있는 일터였습니다. 놀이기구가 있는 놀이터가 아니었습니다. 휴게실이 있는 쉼터가 아니었습니다. 놀이기구가 있는 놀이터도 아니었습니다. 에덴동산을 일터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후 모든 인간들에게 일하다가 하나님 앞으로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습니다.
로스엔젤레스에 은혜 한인 교회 집회를 세 번 인도하였습니다. 세 번째 부흥회를 마치고 김 광신 목사님 내외와 우리 부부가 한 상에 둘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김 목사님 사모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보! 이제 부흥회를 마치고 당신과 강 목사님은 빅베어 산에 올라가 3박 4일 뜨레스 디아스에 참석하실 것이지요. 우리는 그 동안 집에 있어야 해요. 그러니 우리 둘이 팜 스프링 온천에 가서 2박 3일만 지내고 와도 될까요? 휴가 좀 주세요" 나는 이 말을 받아 얼른 말했습니다. "그것 참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남자끼리만 일하면 되니까 여자들은 온천에 다녀 오시지요" 그 때 김 목사님이 오른 손가락을 하늘로 가르키면서 한 마디 하셨습니다. "여보! 저 나라에 가면 영원한 휴가가 있는 데 왜 이 곳에서 놀려고 그래. 열심히 일하자구" 나는 좀 무한하여졌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좀 쉬고 싶고 놀러 가고 싶으면 김 목사님의 그 손가락이 나를 가리키고 있어서 편히 쉬지를 못 하고 있습니다.
저 하늘 나라에 가면 영원한 휴가가 있으니 이 곳에서는 열심히 일하여야 합니다. 우리 교회 차 복희 장로님은 기도할 때마다 이런 기도를 거의 빠뜨리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몸이 늙어서 없어지지 않게 하시고 일하다가 닳아서 없어지게 하옵소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뜻이 있으셔서 우리를 이 땅에 파송하셨습니다.
칼 힐티는 <사명을 받은 날은 생일날보다 나은 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사명과 관계하며 두 사람을 비교하려고 합니다. 한 명은 오프라 윈프리이고 다른 한 명은 성경속에 나오는 모세입니다.
오프라 윈프리 최근 타임지는 금세기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 100명을 선정하여 발표하였습니다.그 중에 한 명이 미국에서 토크 쇼를 진행하고 있는 여자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이로서 매일 그의 프로를 보는 이는 1,400만 명이나 됩니다. 132개국에 위성으로 중계되고 있습니다.
그가 한번 책을 추천하기만 하면 일약 베스트 셀러가 됩니다. 장애인들을 대학보내기 켐페인을 벌렸더니 순식간에 100만불의 성금이 모금되었습니다.
지난 번에는 광우병이 돌자 TV에서 "이제는 햄버거를 먹지 말아야 겠습니다" 라고 한 마디 한 것이 미국 전역에 햄버거 매출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습니다.축산업이 도산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미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윈프리는 아픔이 있는 여자입니다. 1954년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외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손을 전전하며 상처투성이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눈물속에서도 성경을 매일 읽으며 암송하며 위로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열심히 책을 읽었습니다. 아픔과 슬픔과 비애를 독서로 달랬습니다. 심지어는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읽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선생님이 장학금을 추천하여 주었고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었습니다.
윈프리는 좋지 않은 환경속에서도 열심히 노력하여 이렇게 훌륭한 100명중에 한 명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모세 모세는 아들낳으면 죽이라는 바로의 명령이 시퍼렇게 살아 있을 때 태어난 사람입니다. 아들이면 다 즉시 살해될 때 모세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나를 잘 만나서 생명을 건질 수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궁중에서 살았습니다.
약 200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노예로 고통을 받고 살 때 모세만은 궁중에서 평안하게 살다가 40살에 뛰쳐 나와 이스라엘을 해방시는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오프라 윈프리와 모세를 비교하면서 이제 두 명의 사명의 공통점을 살펴 보려고 합니다.
두 사람을 보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1. 남보다 더 많이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무엇이든지 남보다 더 많은 것을 받은 이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여야 할 사명이 주어진 사람들입니다. 남보다 지혜가 많다가 그 지혜로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명령입니다. 남보다 물질을 많이 받았다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용하라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남보다 더 건강을 받았다면 남을 위하여 건강을 사용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남보다 더 많이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강간당하여 태어난 혼혈아로 자랐습니다. 멤피스 어느 조그만 교회로 피신하여 목사님 차고에서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할 일 없으니까 기도만 하고, 할 일 없으니까 기도만 하고 책만 읽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교인들이 밥 사먹으로 10불을 주고, 책 사보라고 50불도 주고, 옷 사입으라고 100불도 줄 때 너무나 그 돈이 귀하였습니다.
그 때 이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남보다 더 많이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민족은 모두 노예요, 종이었습니다. 그 때 모세는 혼자서 너무나 좋은 것을,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모세는 자기만 특별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산다고 만족하며 지내지 않았습니다.
<남보다 더 많이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그래서 40살에 그 좋은 궁중을 뛰쳐나가 없는 이들과 낮은 이들과 같이 지냈습니다.
지난 목요일 여수에서 비행기를 타고 조선일보를 읽는 데 일면에 톱기사가 <한국 경제회복 불구 빈민층 두배 늘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작년 9%였던 빈민층이 금년 19%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빈민층의 기준은 하루에 소비액이 일인당 5,600원 이하를 빈민층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빈부격차가 너무나 심하여졌다는 보고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 광고가 나왔습니다. <스위스 그랜드 호텔 송년 하춘화 스페셜.저녁과 쇼관람 120,000원> 한 끼 식사비로 서민 20일 생활비를 지불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더 가졌다는 것은 나누어 주라는 사명입니다.
얼마 전에 장로님들이 내 생일에 돈을 조금씩 거두어서 금반지 5돈을 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금반지를 끼는 것이 오히려 신경이 쓰여지고 손가락이 무거워지는 것만 같아서 금반지를 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책상 설합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장로님 한 분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그래도 우리 장로들 12명이 돈을 거두어 정성껏 하여 드렸는 데 한번은 끼고 설교하셔야 우리도 좋지요"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런 것같아서 주일 낮 설교에 금반지를 끼고 설교를 하였습니다. 아마 제스처를 쓰며 손을 흔들 때마다 그 금반지가 번쩍 번쩍 빛났을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 왔을 때 여집사님 한 분이 따라 들어 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아들 등록금을 못 내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얼마인 데요?" "25만원이요" 나는 빨리 반지를 빼어 집사님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집사님! 이 반지 팔아서 등록금 내요. 그리고 돈이 생기면 도로 해오세요"
사실은 도로 해오라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자존심을 살려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3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오지 못 하고 있습니다. 결코 안 해오고 있는 것은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설교하다가고 그 집사님 얼굴만 보면 금반지 생각이 종종 나곤합니다. 집사님이 금반지를 받아 들고 눈물을 흘리며 나가는 뒷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중얼거렸습니다.
"그렇다. 내가 금반지를 끼고 설교할 때 저 집사님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 가? 내 설교를 들으려고 앉아 있는 성도들 사이에는 돈 10,000원이 없어서 아픔을 당하고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금반지를 끼고 설고하지 말자"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남보다 더 많이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2. 남보다 아파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하나님이 아픔을 주셨다면 그것은 사명입니다. 그 아픔을 통하여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사랑하라고 하시는 명령입니다. 윈프리는 너무나 많은 아픔을 지니고 있는 여자입니다. 가난의 아픔, 집이 없는 아픔, 배고픈 아픔,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아픔, 혼혈의 아픔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가지고 있는 여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을 보면 그 아픔을 너무나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윈프리는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싫컷 먹기만 하는 이와 토크 쇼를 하면서 "나도 과거에 화가 나면 그렇게 배터지게 먹은 적이 있어요. 핫도그를 한 박스나 한꺼번에 먹은 적이 있거든요"라고 말하며 아픔을 나눌 때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한 여인은 남자들에게 윤간을 당하고 마약을 한다고 말할 때 윈프리는 "나도 사생아로 태어나 어렸을 때 강간을 당한 적이 있어요"라고 1,400만 명이 보는 앞에서 솔직하고 담대하게 이야기함으로 동감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는 아들 낳으면 죽이라고 할 때 태어 났습니다. 수 만 가구에서 아들을 낳으면 죽여야 하는 아픈 시절에 태어 났습니다. 여인들이 임신하고 나면 "하나님! 딸 낳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때 태어 났습니다.
그러러나 모세는 살았습니다. 그 때 모세는 혼자만 살아 났다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고 살아간다고 자부하지 않았습니다. 아픔을 가지고 있는 자기 백성과 함께 아픔을 같이 나누며 살기로 결심하고 궁중을 버렸습니다. 최상에서 최하로, 궁중에서 노예로 스스로 전락하였습니다. 아픔을 같이 나누기로 한 것입니다.
여기에 모세와 오프라 윈프리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내가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남의 아픔을 나누어 가지라는 사명입니다. 나는 하와이에서 비행기로 30분 정도 가면 나타나는 몰로카이 섬에 카라우파파를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성 다미엔이 문둥병자를 돌보다가 자기도 같이 문둥병자가 되어 지내던 곳이었습니다. 1830년 중국상선이 하와이를 다녀간 후 문둥병자가 생기기 시작하여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하와이 인구는 124,049명이었다. 그러나 1860년에는 66,894명으로 줄었습니다. 문둥병이 어느 정도 심하였지는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이런 중에 카메하메하(Kamehameha)가 132개 섬을 모두 통일하고 첫 왕이 되었습니다. 카메하메하는 문둥병자때문에 고민에 빠졌습니다. 정부 예산의 10%를 문둥병자 치료와 돌봄에 사용하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둥병자들에게 10일분의 양식을 주어서 몰로카이 섬에 가둔 것입니다. 그 곳에 가서 문둥병자를 돌보던 다미엔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이 아픔은 더욱 문둥병자를 이해하고 사랑하라는 사명감으로 받아드렸습니다. 하와이 본토로 나와 치료하다가 그는 1886년 7월 29일 치료를 포기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카라우파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를 아직 모르고 있는 그들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당신들을 사랑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다른 설교를 할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나도 여러분들처럼 문둥병자가 되었습니다. 누구보다도 나는 당신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설교에 거기에 모여있던 문둥병자들은 3,000볼트의 전기가 통하는 듯한 전률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픔을 주신 것은 이 아픔으로 동일한 아픔을 당한 이들을 사랑하라고 하시는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일하라고 하시는 명령입니다. 내가 신학교때 가르친 학생중에 최 수동이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우디 아라비아 사막에서 일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리를 잘렸습니다. 추럭 운전수가 "어설프게 살아 있으면 골치 아프다. 아예 깔아 죽여"라는 소리를 얼떨결에 들었습니다. 추럭이 다시 덮쳤습니다. 하나 남은 다리마저 잘려 나갔습니다. 죽은 줄 알고 추럭운전수는 갔지만 간신히 구사일생으로 살아 났습니다. 그는 <두 다리 선교회>를 만들어 다리가 없는 자를 모아 사랑하고 있습니다.
<불속에라도 들어가서>라는 복음송은 그가 지은 노래입니다. 아픔은 사명입니다. 미국에서 성장하는 10대 교회중에 하나가 겔로웨이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새소망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세운 데일 겔로웨이 목사는 12년 동안 같이 살던 아내와 이혼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하였습니다. "과연 이혼한 사람이 복음적인 교회의 목사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고 있는 퍼시픽 노스웨스트는 미국에서 가장 세속적인 도시였습니다. 더구나 반 이상이 이혼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이혼한 것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이 혼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자기를 통하여 이혼한 이들에게 복음을 줄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성막 목회처럼 10명씩 이혼한 이들을 조직하여 작은 천국을 만들었습니다. 교회 생활에서 행복감을 맛보게 만들었습니다. 이혼한 이들을 위로하고 사랑하였습니다. 작은 그룹들은 의무적으로 6개월에 이혼한 가정을 한 가정씩은 주앞으로 데리고 오게 하였습니다. 옆에 한 자리는 비워 앉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혼한 아픔을 당한 이들의 안식처를 만들었습니다. 아픔을 주신 것은 같은 종류의 사람들에게 사랑하고 위로하라고 주신 사명의 선물입니다. 나는 우 한나 목사님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강간을 당하였습니다. 음란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강단에 서기만 하면 그런 종류의 사람들의 위로를 받고 몰려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시애틀에 살고 있는 프랭크 루프 박사는 23년간이나 관절염으로 고생했습니다. 건강 관리에 실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건강을 잃어 버리고 움직이지 못 하니까 인생은 기울어져 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생을 새롭게 풍족하게 사는 비결 하나를 찾아 냈습니다. 병상에 누워서 자기같은 불구자들의 이름과 주소를 입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정한 편지를 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랑이 담기고 용기를 주는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격려로 가득찬 편지였습니다. 이것이 시작이 되어 움직일 수 없는 불구자들이 서로 위로하며 편지를 보내는 협회가 구성되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침대에 누운 채 일년 14,000 통 편지를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방송도 하게 되었습니다. 글과 말로 수 만명을 사랑하는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나는 선포하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도 일할 수 있습니다> <어떤 위치에서도 멋진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아픔도 사명입니다.
3. 남보다 가슴 설레이는 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그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그것만 생각하면 미치도록 좋은 것이 사명입니다. 차 범근은 늘 말했습니다. <나는 공을 찰 땐 공만 찼고 공 차지 않을 때는 공만 생각하였다> 이렇게 가슴 설레이는 것이 사명입니다.
오프라 윈츠리는 자기가 그렇게 불행하게 살아 왔기에 자기 같은 불행한 아이들을 위하여 사는 것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그래서 일년 93억원 정도 버는 돈을 그들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사생아, 혼혈아들만 생각하면 그들을 위하여 살고 싶어서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가슴 설레임이 사명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40살에 궁중을 뛰쳐 나간 것은 고통받는 자기 민족을 해방시켜야 겠다는 가슴 설레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명입니다. 마침내 모세는 그 가슴설레임을 이루고 말았습니다. 가슴 설레임이 사명입니다.
코카콜라 사장은 콜라만 생각하면 자다가 깨도 즐겁습니다. 핏줄속에서 피를 모두 빼어 버리고 콜라를 넣어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열심히 콜라를 개발하고 팔아서 지난번에 1000만불 120억원을 에모리 신학대학에 헌금하였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음속에 불타는 소원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사명입니다. 나는 자나깨나 불타는 소원이 있습니다. 성막 모델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나는 여러분에서 <성막회 모세목사>라는 책을 나누어 드렸습니다. 성막교회처럼 10명씩 모여 작은 천국을 이루는 교회를 만들어 즐겁게 사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서 미칠 정도입니다. 교회를 1,000평 정도 대지에 8층정도 세워서 성막 강의실을 만들고 성막 박물관을 만들어 일년에 5만명쯤 드나드는 교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성막으로 수입이 5억원쯤 들어오는 교회,우리 교회는 5,000명쯤 모이는 대교회가 되어 한국에서 선교 제일 많이 하는 교회를 만들고 싶어 미칠 지경입니다. 자다가 밤 1시쯤 깨면 이런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설레임으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가슴 설레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사명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하라고 마음에 소원을 두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소원의 사명입니다. 그것을 하여야 합니다. 가슴 설레임이 사명입니다.
4. 남보다 부담이 되는 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이다.
하나님께서 부담감을 주시는 것이 바로 사명입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길을 가다가 고아들이나 사생아나 혼혈아가 눈에 띄면 부담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양육원에 데려다가 기르고 있습니다. 자기가 부담을 느끼는 일을 사람들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담감이 사명입니다.
모세도 그렇습니다. 모세는 40살에 자기 백성을 고통에서 해방시켜 하겠다는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행7;23) 그 생각은 바로 부담감의 생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400년이나 살았지만 자기 백성을 바로의 손아귀에서 구하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진 사람은 겨우 모세 한 명이었습니다. 부담감을 가진 사람이 그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천우 목사님은 거지들만 보면 부담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는 <나그네 선교회>를 조직하여 거지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파나이섬 선교 동지 울산 흰돌 교회 조인호 목사님은 길거리에 노인들만 보면 부담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들을 모두 교회로 모아 양노원을 만들었습니다. 내년부터 우리교회가 그 곳을 돕기로 하였습니다. 나는 감리사가 되기 전에는 몰랐는 데 지방에 어려운 14교회 교역자들에게 부담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년말을 맞아 도우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개척교회 목사들을 사랑하는 사명이 생긴 것입니다.
부담감이 사명입니다.그 일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강권하시는 부담감이 사명입니다 하나님도 부담감을 가지신 적이 있습니다. 야곱의 식구 70명이 애급에 들어가서 400년을 살다보니 민족이 되었습니다.바로가 몹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해방시켜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9-10)
하나님의 부담감은 모세에게로 돌아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모세에게 해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명입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 아닙니다. 하고 싶어서 미치도록 소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해야만 하는 부담감이 바로 사명입니다.
나는 요즈음 엄청난 부담감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수많은 한국의 교회들이 우리 교회에 부담감을 주고 있습니다. 전도법을 개발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전도법 개발 사명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성장시킨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더 성장시키라는 부담감을 엄청나게 주시고 계십니다. 성막의 모델교회를 어서 멋지게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사명이 성큼성큼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서 박물관을 만들어 공개하라는 것입니다. 박물관 부담감이 주어졌습니다. 부담감이 사명입니디.
그렇습니다. 모세와 오프라 윈프리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음 네 가지 입니다. 1. 남보다 많이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2. 남보다 아파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3. 남보다 가슴 설레이는 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4. 남보다 부담이 되는 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이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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