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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주님의 영적 가족/마가복음 3:31-35

by 【고동엽】 2021. 12. 14.

주님의 영적 가족

 

마가복음 3:31-35

31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 수를 부르니 32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둘 러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가라사 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 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이 땅에 기독교가 상륙한지는 카톨릭의 경우 한 이 백년 넘었고 개신교는 백년이 넘었습니다. 기독 교가 이 땅에 상륙하면서 이 땅에 먼저 전해지고 그리고 뿌리를 박은 전통 종교와 만나게 됩니다. 또 전 통 문화와 만나게 되고 또 유교의 바탕을 둔 전통 윤리와 기독교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만남 의 과정 속에서 소위 이 땅에 있었 던 전통윤리가 기독교를 향해서 재 기한 매우 심각한 질문 하나가 있 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기독교에 도 과연 효도관이 있느냐? 라는 것 이었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함 께 읽었던 이 본문을 피상적으로 읽어 본다면 기독교 효도관의 실제 를 의심할만 합니다. 자, 어떤 얘기 입니까?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형님을 걱정하는 동 생들이 찾아 와서 예수님 만나자고 면회를 요청했습니다. 예수님의 대 답이 뭐냐하면, 누가 내 모친이며 누가 내 형제며 자녀들이냐 하나님 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 매요 모친이다. 어떻게 보면 냉정 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 씀 하나 가지고 주님께서 효도관이 없었다고 결론을 내리시면 안됩니 다. 우리가 어떤 사실에 관한 결론 을 내리려면 한 사건, 한 에피소드 갖고 전체를 볼 수는 없어요. 전체 적으로 접근을 해야합니다. 자, 예 수님의 생애 전체, 복음서가 그려 주고 있는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에 서 예수님은 효도관을 어떻게 피력 하셨을까요? 실제로 예수님은 자 기의 부모와 형제들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을 하셨는가를 전체적 으로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 다. 우선 예수님이 이런 효도에 대 한 가르침을 안 가르쳤을까요? 오 늘 본문이 마가복음 3장이지요. 몇 장 더 지나가면 마가복음 7장이 나 옵니다. 이 7장에서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인들 특별히 바리새인들 과 더불어 고르반이라는 문제를 둘 러 싸고 논쟁을 벌입니다. 이것을 고르반 논쟁이라고 부릅니다. 고르 반의 뜻은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 께 드렸습니다. 이것이 고르반이라 는 말의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성전 안에서 사람들은 이런 제도를 만들어 냈습니다. 뭐냐하면 어떤 사람이 가난합니다. 가난한데, 하나 님 사랑해요. 부모님도 사랑하지만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래서 그 하나님 앞에 드 리기 위해서 헌금을 했어요. 헌금 을 하고나니까 부모님을 도와드릴 돈이 없어요. 그때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저 사람, 뭐 부모도 제대로 봉양을 못 하는데' 그러나 이런 경우에 예수 님 당시에 성전 제도에 의하면 이 런 사람은 이해 되어야 마땅하다, 보호되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하 나님 앞에 드렸기 때문에 이런 사 람은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좀 부모를 돕지 못해도 이런 사람의 중심은 이해해 주어야 한다라는 성 전의 법규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가르켜서 고르반이라고 불렀습니 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고르반이라 는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늘어 갔어요.그러니까 부모를 몰라라 하 고, 부모를 버리고, 부모를 그대로 팽게쳐 버리는 사람들이 고르반이 라는 제도를 악용하기 시작한 것입 니다. 그래서 부모를 섬기지 않아 요. 부모를 모른 척해요. 그래서 주 변 사람들이 '당신은 어떻게 부모 에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 그 러면 사람들이 뭐라고 대답을 할까 요? '고르반' 그 뜻이 뭐예요? 하 나님께 바쳤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부모를 도와 드릴 돈이 없습니다. 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마가복음 7장에 보시면 예수님이 흥분을 하십니다. 예수님이 열 받으셨어요. 예수님이 너무너무 화를 내셨습니다. 그러면 서 고르반이라는 제도 자체는 하나 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만든 사람의 유전, 사람이 만든 제 도에 불과하다. 사람이 만든 제도 그것도 그 제도를 악용해서 부모를 버리다니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주신 계명, 내 부모를 공경하라라 는 계명을 정 반대로 위반하고 있 는 것이다 라고 예수님이 흥분하면 서 그들을 책망하십니다. 오늘 우 리는 이 말씀 속에서 예수님이 모 세의 계명 그대로. 하나님 말씀 그 대로 부모에 대한 공경과 순종의 도리에 대한 확고한 율리적 원칙을 갖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 니다. 또 예수님의 마지막 십자가 사건을 생각해 보세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 고통스럽고 아프고 괴로우셨습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 의 고통의 절정에서도 예수님은 십 자가에서 내려다 보시고 한 여인을 주목하고 계십니다. 그 여인이 누 굴까요? 어머니 마리아, 그는 자기 의 고통, 사람이 고통이 너무 심해 지면 다른 사람을 생갈할 여유가 없습니다. 자신의 고통에 집중하 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고통의 한 절정 속에서 예수님은 자기의 어머니를 바라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리고 그 옆 에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죠. '요한아, 네 어머니야. 너의 어머니로 모셔다오. 나 대신 네 어머니로 모셔다오.' 이것이 예수님이 마지막 남기신 말 씀 가운데 하나예요. 예수님은 분 명한 효도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자, 예수님의 수제자, 우리가 예수 님의 수제자하면 베드로를 생각하 기가 쉬운데 사실 베드로 보다 더 위대한 수제자는 바울이라고 할 수 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수한 바울은 디 모데 전서에서 이런 말씀을 남겼습 니다. 디모데 전서 5장 8절에 보시 면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믿 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 보다도 악한 자니라.' 여러분, 들어보세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별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믿 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 보다 더 악한 자이니라.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어떻게 이해 하면 좋습니까? 본문의 사건, 그 리고 본문의 교훈을 주께서 전달하 신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 니까? 한 성서 학자는 이렇게 말 했습니다. 아주 중요한 말이예요. 오늘의 본문이 우리에게 전달된 가 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이 가족관 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무슨 뜻이냐? 제가 질문을 하나 드리겠 습니다. 대답해 보세요. 여러분, 자 기 사랑하는 것이 잘하는 일입니 까? 못하는 일입니까? 잘하는 일이죠. 성경은 자기 사랑을 가르 칩니다. 예컨데 내 이웃을 사랑하 기를 뭐 같이 하라구요? 네 몸같이 하라. 나를 아끼는 것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 이예요. 자기 사랑해야합니다. 자기 사랑은 필요하고도 중요한 일입니 다. 자기를 소중히 여길 줄 모르 는 사람, 이 자아상이 낮은 사람, 자기 학대를 하는 사람 인생의 길 에 성공을 할 수가 없어요.자기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또 묻습니다. 자기만 사랑하는 것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건 죄예요. 자기만 사랑하는 것. 나를 사랑한 나머지 이웃들을 몰라라 한다던지,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이웃들을 밟 아 버린다든지,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 그것은 죄입니다. 자기 사랑은 필요한 것이지만 자기만 사 랑하는 것 그것은 죄예요. 자, 범위 를 넓혀서 다른 질문을 드립니다. 민족을 사랑하는 것 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해야 합니다. 그 것은 그리스도인의 국가적 의무이 기도 합니다. 우리는 나라를 사랑 해야 합니다. 그것은 필요한 일이 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 어떻게 생각을 하세요? 자기 나라만 사랑하는 것.그래서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웃 나라 는 얼마든지 짓밟을 수 있다. 이것 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죕니다. 성 경은 죄라고 가르칩니다. 오늘 기 독교 신학에서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사상 중에 하나가 자민족 중심 주의라고 말합니다. 자민족 중심 주의, 우리 민족만 알아요. 그리고 우리 민족의 이익을 위해서 이웃 사람들을 얼마든지 밟을 수가 있 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 다. 그것은 죕니다. 자, 문제를 바 꿔 보겠습니다. 가족 사랑 해야되 요? 안 해야되요? 해야 되지요. 가족 사랑, 필요한 일입니다. 중요 한 일입니다. 그러나 질문을 드립 니다. 자기 가족만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을 하세요? 그건 잘못 이예요. 내 가족의 유익를 위해서 얼마든지 이웃들을 무시할 수 있 다?. 아닙니다. 우리는 가족관의 지평을 넓힐 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예수 님을 나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 하고, 예수님을 믿은 순간 우리에 게 일어나는 가장 놀라운 사건 하 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하면, 만유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사 실이예요. 제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 부르는데, 가만히 보니까 성가 대에서도 기도하면서 하나님 아버 지 그래요. 그러면 나하고 촌수가 어떻게 돼요? 아버지가 같아요. 그러면 뭐예요? 형제죠. 우리가 형 제예요. 오빠래요. 여기 누님도 계 시고.맞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 그러나 역사의 주인, 전능 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사람들이 형제 관 계에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하 늘 나라의 로얄 훼밀리인 것입니 다. 믿으십니까? 이것은 혈통을 초 월합니다. 혈연 관계를 초월합니다. 때로 이것은 인종을 초월합니다. 예수님 믿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 수 안에서 모든 사람이 한 가족이 되어서 살 수가 있다. 이것을 하나 님의 영적인 가족이라고 부릅니다. 주님의 영적 가족.이것이 얼마나 특권이예요. 사람들은 누구나 왕 자나 공주가 되는 꿈을 꿉니다. 어 렸을 때 우리는 그런 꿈을 많이 꿉 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예수 를 영접한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다, 내가 하늘 나라의 하나님의 자녀이다. 믿으십니까? 여러분. 이 얼마나 프라이드예요. 그러나 중요 한 질문이 남습니다. 우리는 어떻 게 그 주님의 영적 가족이 될 수가 있을까요? 주님의 자녀다운 자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제자, 어떻게 주님의 영적 가족이 될 수 가 있을 까요?

첫째로 우리가 주님의 영적 가 족이 되려면 영적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독교 신 앙의 문을 두드리는 그 순간부터 우리 안에서 체험이 생깁니다. 많 은 신앙 체험이 생겨요. 기독교 신 앙은 실로 다양한 영적 체험을 제 공합니다. 사람마다 체험이 다 달 라요. 여기 체험의 다양성이 있습 니다. 그런데 어떤 체험은 나에게 는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필 요 없는 것이 있습니다. 예컨데 방 언의 체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 다.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그 얘기는 하나님이 방언의 은사를 다 주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 떤 사람은 방언을 하고 어떤 사람 은 안해요. 필요를 따라 주시는 거 예요. 하는 사람도 있고, 안하는 사 람도 있어요. 또 어떤 사람은 해야 되고, 어떤 사람은 하지 않아도 괜 찮은거예요. 사랑하시는 여러분, 지금 부터 말하려는 이 체험은 보 편적 체험입니다. 절대적 체험이예 요. 없어서는 안될 체험이예요. 이 것이 없이는 참된 크리스챤이 될 수가 없어요. 이것이 없이는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가장 근본적 영적 체험이라고 말합니다. 그 체험이 뭐냐? 거듭남의 체험인 것입니다. 믿습니까? 거듭난다는 것, 이것은 누구나 다 체험해야 돼 요. 요한 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 이 니고데모라는 사람하고 대화를 나누십니다. 그는 그 당시 그 사회 의 정치 지도자 동시에 종교 지도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를 향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다. 들어갈 수 도 없다. 그래서 유명한 종교 개혁 자 마틴 루터는 우리가 천국에 도 착할 때 천국에 가면 그 입구에 간 판 하나가 붙어 있을텐데, 그 간판 에 틀림없이 이렇게 씌여 있을 것 이다.
"오직 거듭난 자만' 지나간 세기에 영국과 미국에서 활동했던 전도자 가운데 쟌 웨슬리와 함께 쌍벽을 이루었던 유명한 지도자 죠 지 윗필드라는 분이 있었어요. 이 분이 가장 좋아했던 설교가 '당신 은 거듭나야합니다.' 그는 가는곳 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집회마다 그는 사람은 거듭나야한다는 이 메 시지를 선포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은혜받고 거듭나고 주 앞에 돌아왔 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이 은혜 받 고 그 분의 자원 비서가 되었어요. '목사님, 제가 목사님 하고 함께 다니고 싶어요.' 허락을 했습니다. 자원 비서가 된거예요. 그래서 목 사님 가방들고 따라 다닙니다. 우 리가 한참 하던 말 가운데 가방 모찌라는 말이 있지요. 가방 들고 따라 다니는 사람이 되었어요. 처 음에 너무나 흥분하고 좋아했습니 다. 그런데 따라 다니다 보니까 이 목사님이 어디를 가던지 자꾸 똑같 은 설교만 해요. 거듭나야 한다. 그 설교가 반복이 됩니다. 수도 없이 들었어요. 어느날 이 청년의 인내 가 한계에 달했어요. 목사님이 설 교하시고 내려오는데 목사님을 붙 들고 '목사님, 목사님은 설교 레파 토리가 그렇게 없으십니까?' 거듭 나야 한다, 그 설교를 70번도 더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목사님 이 청년을 꽉 붙들더니 '왜인줄 아는가? 네가 거듭나야 하기 때문 이다' 네가 바로 거듭나야 하기 때 문이다. 맞습니다. 거듭나도 좋고 거듭나지 안나도 좋은 옵션의 문제 가 아니예요. 반드시 거듭나야 합 니다. 자, 본문의 이 사건이 일어나 도록 허용하신 이유, 그리고 이 진 리를 주께서 가르치신 이유가 있습 니다. 마가 복음 3장 첫 머리 부분 은 예수님이 12제자를 부르십니다. 12제자가 하나의 가족이 된 것이예 요. 주님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어 떻게 가족이 되었습니까? 주께서 그들을 부르실때 그들은 믿음으로 응답한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내게로 오라.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지요. '맞아, 주님 따 라 가면, 주님 믿고 따라 가면 내 게 안식이 있을거야. 그분이 나를 용서하신다. 그분이 나를 받아 주 신다. 새로운 삶을 주신다.' 예수가 그리스도, 예수가 구세주, 예수가 메시아 되심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 를 의지하는 그 순간, 그 순간 그 들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 예요. 그리스도인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 영접하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받 아 들이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 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 세를 주셨느니라' 믿으십니까? 이 는 혈통으로 된 것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육적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 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 미암은 것이다. 요한 일서 5장 12 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 는 자는 생명이 없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를 믿 는 순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나는 것입니다. 거듭 태 어 난다는 말이 어려운 것이 아니 예요.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순 간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 순간에 내가 무슨 감정적 체험을 했느냐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조용한 마음의 평안일 수도 있습니 다. 내 세계관의 점진적 변화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순간 나 는 달라졌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 의 체험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 다. 그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체험의 위대한 순리의 여정은 시작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 스도의 가족, 하나님의 영적인 로 얄 훼밀리가 될 수가 있을까요? 영 적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체 험? 거듭남의 체험. 오늘 주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거듭남의 은혜를 주시기를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거듭나는 게 여러 번 거듭나는 줄 알아요. 아니 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 주와 주님으로 의지하는 순간, 그 한 순간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 는 것이예요. 우리가 부모님의 자 녀로 몇 번 태어나요? 한 번 태어 나요. 내가 부모 속을 썩이면 부모 자녀가 아닙니까? 안 자녀가 돼 요? 불효자가 될 수가 있어요. 그 러나 나에게 육체적 탄생이 한 순 간이 있었던 것 처럼, 내가 영적으 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영적 체험 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가리켜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제자, 그리스 도인,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릅니다. 자, 어떻게 우리가 좀더 주님이 기 뻐하시는 영적 가족이 될 수가 있을까요?

두 번 째는 영적인 이해가 있 어야 합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순 간 우리에게는 영적 직관력이 생깁 니다.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것들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물론 여기에는 우 리의 투자가 필요해요. 무릎꿇어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접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영적 이 해의 폭은 깊어지고 또 넓어져 가 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교회 나와도 거듭나지 않으면 영적인 것 들이 이해가 안되요. 저는 참 신기 하게 생각한 것이 거듭나지 않아도 교회 열심히 나와요. 어떤 사람들 은. 거듭나지 않고도 교회 열심히 나오는 것. 참 좋은 일입니다. 아직 거듭날 chance가 있으니까. 복음 자주 들으니까. 근데 이만쯤 되면 거듭날 때가 됬는데 아직도 영적인 것들에 이해가 안가요. 그러면서 열심히 나와요. 열심히 졸아요. 그 래서 나오시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 고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거듭 나야 영적인 것들이 제대로 이해가 되요. 그러나 교회 나와도 거듭나 지 않으면 이 사람은 불신자의 상 태로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러니 까 이해를 못해요. 영적인 것들을 이해 못해요.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이 바로 니고데모에게 네가 거듭나야 한다 이렇게 말씀했더니 니고데모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선생님. 내가 이만큼 나이가 늙었 는데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 다 다시 태어납니까? 예수님은 영 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하 셨고 니고데모는 그것을 어떻게 알 아들었습니까? 육적인 것으로 알아 들었어요. 다시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것으로. 이사람 똑똑한 사람입니다. 제가 성경공부 를 해보니까 아주 사회적으로 똑똑 한 사람인데도 성경은 그렇게 모를 수가 없어요. 이해가 안가요. 이해 가. 이 니고데모의 현상이 그래요.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여 인의 얘기가 나오죠. 사마리아여인. 자, 목말라 하는 여인. 이여인을 향 해서 예수님이 자. 내게 오면 내가 생수를 주겠다 생수를 주겠다. 영 적으로 하신 말씀이예요. 근데 사 마리아 여인이 어떤 반응을 보입니 까? 우리 조상 대대로 이땅에 살았 는데 아..우리가 이땅의 우물물 퍼 먹고 살았는데 당신이 혹시 신기한 생수가 쏟아져 나오는 그런 약수터 라도 알고 계십니까? 엉뚱한 얘길 해요. 엉뚱한 얘길해요. 왜 그렇습 니까? 영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것 이예요.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오병 이어의 기적.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만명이상을 먹이는 기적을 행한 뒤에 예수께서 설교를 시작합 니다. 이런 설교를 하셨죠?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내가 하늘나라 에서 내려온 떡이다. 나를 먹는 자 는 영생하리라. 그랬더니 요한복음 6장을 보세요. 사람들이 어떤 반응 을 보이나.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아..저 친구가 자기 잡아먹으래. 제 살을 먹고 살라고 그래. 어떻게 먹 지? 이해가 안가요. 이해가. 도무지 이해가 안가요. 심지어는 제자들까 지도 아직도 제자들이 성숙하지 못 했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제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이 말은 어렵도다 아 직도 이해가 안가는 것이예요. 자. 그래서 예수님 주변에 있었던 가장 가까운 가족들 조차도 이해를 못하 는 것이예요. 자. 본문에 상황이 나 타난 중요한 배경이 있습니다. 자. 마가복음 3장 20절 보세요. 다같이 읽겠습니다. 마가복음 3장 20절. 집 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 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네. 예 수님이 어떤 집에 들어가셨어요. 식사시간이예요. 그런데 식사도 안 하시고 계속 말씀을 전하세요. 그 리고 병자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생각할 때 저 사람이 미쳤나.. 자. 바로 다음 절 에 반응을 보세요. 다음절의 반응. 21절. 가족들의 반응입니다. 육신의 가족들의 반응입니다. 다같이 읽겠 습니다. 시작. 예수의 친속들이 듣 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 다 함일러라 더군다나 바리새인들 은 어떤 반응들을 보였을까요? 그 다음절 22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 들은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 아낸다 하니.. 자. 예수님 병자를 위해 기도해주고 또 어떤 사람 귀 신을 쫓아냈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 생각하기를 야.. 귀신 쫓아내 는 거 보니까 저 사람은 귀신 보다 더한 귀신이 있나 보다. 왕귀신 들 렸다 예수님보고 그런말을 하는 거 예요. 자. 지금 사람들이 뭘 이해하 지 못합니까? 예수님은 말씀을 전 하십니다. 이 말씀. 생명의 말씀.복 음의 말씀. 여러분 이 말씀을 이해 하게 하면서 밤을 새워보셨습니까? 하늘나라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말하는 감격. 그 감동을 아십니까? 이웃들을 섬기는 감동을 아십니까? 고통 당하는 이웃들을 위해서 기도 할 때 그들의 마음속에 치유를 경 험하고 그들의 인생에 새 힘을 얻 는 감동을 아십니까? 영적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인 거예요? 저 친구 미쳤 어. 단단히 미친 모양이야 여러분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는 음악이 음악(惡)으로 들리는 것 입니다. 클래식음악. 아름다운 음악 을 들려줘도 그 음악이 이해가 안 되요.꺼 그래요. 제가 버스를 탔는 데 그 버스 운전사가 아주 고상한 분이예요.아주 클래식한 음악이 나 오는 거예요. 야. 이 버스 안에도 클래식음악이 나오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소리질러요. 그 음 악 꺼! 시끄러워!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귀가 없어요. 이런 사람을 뭐 라고 부릅니까? 음치. 아름다운 그 림을 보여줘도 그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눈이 없는 사람을 뭐라 그 래요? 미치예요. 미치. 미술을 이해 하지 못하는 사람들.제가 미치 인 데요. 음치고 미치인데요. 전.제 아 내가 미술을 그리잖아요. 그런데 이상한 그림만 그려요. 그래서 하 루는 제가 그랬습니다. 좀 이해할 수 있는 자연스런 그림을 그려라 그런데 한번은 자연 풍경을 그렸어 요. 자연 풍경. 그래서 아. 그건 좀 이해가 된다 근데 그림을 집도 그 리고 산도 그리고 나무도 그려놓더 니 그 다음에 하얀 색깔로 다 깔아 뭉개. 하얗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걸 우리집에 걸어놨어요. 하얘. 아무것도 안보여. 하얗게 되었어요. 그래서 야..저게 그림이냐? 저게 도 대체 뭐냐? 그랬더니 안보여요? 저게? 보인다는 거예요. 저게. 안 보이는데 나는. 이 이해하지 못하 는 내 눈에는 안 보이는 거예요. 마찬가지 입니다. 하늘나라의 영 적 비밀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에게는 안 보이는 것입니다. 미친 것으로만 생각될 수가 있어요. 여 러분. 미친 것이 꼭 나쁜 것은 아 니예요. 제대로 미치면 이런 사람 들에 의해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유명한 에디슨이 발명왕 에디슨이 발명에 열중하면서 하루 종일 한끼 도 먹지 않은 때가 있었습니다. 가 족들. 그 wife가 뭐라 그랬는지 아 세요? 저 사람 미쳤어요. He is crazy 미쳤다고 했어요. 저 유명한 헨델이 메시야를 작곡하기 위해서 20일동안 식사를 집어넣어도 한끼 도 먹지 않고 계속해서 작곡에 몰 두합니다. 그는 하늘의 환상을 보 고 있었습니다. 뭐라 그랬을까요? 저 사람 헨델이 빚 많이 지더니 요 새 사람이 완전히 갔다고 했습니 다. 완전히 갔다. 미쳤다. 그러나 그들에 의해서 위대한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따지고 보면 사람들 다 미쳐서 사는 인생 아니예요? 어떤 사람들은 섹스에 몰두하고 어떤 사 람들은 마약에 미치고 어떤 사람들 은 도박에 미치고 여러분 진리에 미쳐 보셨습니까?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미쳐보셨습니까? 하늘나라의 복음화 앞에 미쳐보셨습니까?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미 쳤다는 말이 당연할 지도 모르죠.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 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들은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깨닫지도 못하느니라 자. 우리가 어떻게 정말 주님의 영 적 가족이 될 수가 있어요? 주님과 통할 수 있는. 여러분. 가족들이 통 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마음을 이 해하지 못하는 자식들. 남편과 아 내가 통하지 않아요. 얼마나 비극 이예요. 주님의 영적 가족이 되려 면 주님의 가슴을 이해해야 합니 다. 주님의 꿈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과 더불어 흥분할 수 있는 사람. 주님의 사건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 영적 이해의 폭폭 의 깊이와 넓이가 넓어질 때 주님 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주님의 영적 가족이 될 수 있습니 까?
마지막 세번째로 영적인 목표 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연애해 보셨지요? 연애해 보셨습니까? 왜 대답이 없어요? 연애해 보셨습니 까? 연애하고 비슷한 거라도 해 보 셨습니까? 자 우리가 연애할 때 우 리 온 몸의 지체 가운데서 어떤 부 분이 제일 활동을 많이 해요? 아마 활동적인 사람은 손을 가장 많이 사용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부 분의 사람들은 눈을 많이 사용합니 다. 연인과 연인사이 그 불꽃튀는 눈의 대화, 우리는 쳐다보면서 얼 마나 많은 말들을 주고 받았어요. 그렇지요? 그래서 한 시인은 이런 시를 썼습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고 있었지. 그러다가 결혼합니다. 가정을 이룹 니다. 그러나 이제 부부가 된 우리 는 공동의 목표를 바라보고 있다. 아주 아름다운 시입니다. 자, 결혼 하고 나면 그 다음엔 쳐다봐야 별 볼일 없어요. 그저 그래요. 물론 결 혼하고도 열심히 쳐다보셔야 합니 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이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공동의 목표 가 있어야 돼요. 가족이 함께 바라 볼 수 있는 목표! 참 중요한 것입 니다. 여러분 가정에 공동의 목표 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빌리 그래 함의 가정, 이 가정은 세계 복음화 를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남편은 전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루스 그래함은 남편을 위해서 집에 서 부지런히 중보의 기도를 하고, 아들 프랭클린 그래함은 전세계의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서 생애를 드리고, 복음 전도라는 목표앞에 헌신된 가정! 얼마나 아 름다운 가정이예요? 저 청량리의 최일도 목사님의 가정, 청량리 일 대의 버림받은 여인들, 그리고 버 림받은 노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끌어안는 일에 생애를 바친 이 아 름다운 가족 그들에겐 공동의 목표 가 있습니다. 경기도 광주, 강원도 원주, 고 김용기 장로님의 아들들- 김종일 목사님, 김범일 장로님, 아 버지의 뜻을 따라 농촌을 잘 살게 하는 가나안운동, 복민운동, 이 땅 의 농촌을 재건하는 일을 위해서 그들의 생애를 드린 공동의 목표를 가진 가정, 얼마나 아름다운 가정 이예요? 오늘 여러분과 저의 가정 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지금 주님 이 왜 이 말씀을 하실까요? 자, 오 늘 본문의 결론적인 마지막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35절입니다. 다같 이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 요 모친이니라 지금 예수께서 열 두제자를 부르신 후에 이 말씀을 한 것이예요. 열 두제자들, 그들은 이제 예수님과 더불어 공유해야할 공동의 목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이야 말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최고의 선 이 아니겠습니까? 너희안에서 행하 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 뻐하시는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 자 하나님 의 가장 중요한 뜻이 뭐예요? 전세 계에 복음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에서부터 땅 끝까 지 복음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 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바꾸어 나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 목표, 하나님의 뜻, 그리스도의 지상명령, 최고의 선, 이 가장 중요 한 목표를 위해서 우리는 과연 하 나의 공동체가 되어서 앞을 행해 갈 수가 있을까요? 한 가정의 공동 의 목표가 필요하듯 주께서 열 두 제자를 부르시듯 지금도 제자를 부 르십니다. 그 부르심앞에 우리는 응답하고 와서 한 교회를 이루었습 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표가 어 디 있어요? 이 그리스도의 지상명 령,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 여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고, 고통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끌어 안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래 서 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위대 한 일, 이 하나님의 뜻, 이 최고의 목표앞에 우리의 삶이 드려져 있을 까요? 사랑하시는 여러분! 세상이 험하지요? 시대가 어둡지요? 우리 들의 마음이 착잡하고 고달퍼집니 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일수록 저 는 더 높은 목표, 현실을 넘어서는 목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는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조류학자가 독수리 새끼를 길 렀습니다. 그런데 독수리 새끼를 어디다 길렀는가 하면 닭새끼하고 같은 곳에 넣어서 길렀습니다. 그 러니까 독수리 새끼가 자라나면서 꼭 병아리처럼 행동을 합니다. 주 변을 봐야 병아리밖에 없으니까 병 아리처럼 걷고, 병아리처럼 노래하 고, 삐약삐약 .. 세월이 흘러갑니다. 그런데 이 독수리새끼는 전혀 독수 리다운 근성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꼭 병아리같아요. 이젠 완전히 병 아리로 퇴화를 해 버렸나? 닭이 되 었나? 이런 생각도 해 들었어요. 이제 독수리의 근성이 남아있는가 실험을 합니다. 마당에 갖다 놔 놓 고, 이제 독수리 청년이 되었어요. 날라보라고 해도 푸득푸득, 삐약삐 약, 안 날라요. 어? 희한한 일이다. 그 다음에 이제 독수리 청년이 된 이 독수리를 데리고 이 조류학자가 산으로 올라갔어요. 산 높은 곳에 서 푸른 숲을 보여줘요. 산 공기를 맡게 하고 그리고 산에서 날려봤어 요. 삐약삐약 또 내려앉아요. 날을 생각을 안해요. 그 순간 갑자기 강 력한 바람을 꿰뚫고 다른 독수리 한 마리가 세차게 산을 행해서 올 라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모 습을 주시하고 있 던 이 독수리가 갑자기 날개를 폅니다. 그리고 하 늘을 향한 비상이 시작됩니다. 날 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닭새끼가 아니에요. 이제는 독수리 왕자,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왜 이 런 말씀을 드립니까? 하나님의 자 녀, 로얄 패밀리 그런데 우리가 세 상을 사는 모습은 꼭 닭새끼처럼 살지 않아요? 세상 사람들처럼 조 금 어렵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좌 절하고 주저않아 낙심하고.. 저는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던 그 상황이 얼마 나 멋진 상황인가 그런 생각이 들 었습니다. 마가복음 3장13절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 아온지라 예수님이 열 두제자를 어 디에서 부르셨습니까? 산에서! 저 는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산에서 제자들을 부르시던 분, 아마도 주 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셨을 겁니다. 산에 오르자! 함께 높은 곳을 보자! 제가 가끔 비가 오고 날씨가 나쁠 때 비행기를 탈 때가 있습니다. 비행기가 뜨겠는가? 그 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뜨더라구 요. 바람을 뚫고, 폭풍우를 뚫고, 구름을 뚫고 비행기가 높이 비상합 니다. 저 구름위에 올라가는 순간 저 아래 그 비바람과 전혀 상관없 이 청정한 평화가 있습니다. 펼쳐 지는 하늘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놀라운 세계가 있습니다. 여러분! 삶이 고달프지만, 아플수록 우리에 게는 꿈이 필요해요. 저 높은 곳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산에 오르시 기 바랍니다. 옛날 산에서 열 두제 자를 부르시던 주님이 저와 여러분 을 부르시고 계시지 않나요? 세상 살기가 힘들지만 직장도 불안하지 만 사업도 어렵지만 그럴수록 사랑 하시는 여러분! 산에 오르시길 바 랍니다. 주님의 높은 산에 오르시 길 바랍니다. 주님의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 니다. 나와 함께 걷자. 그리고 세상 을 바꾸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을 전하자. 사람들을 사랑하자. 그 리고 이 세상을 바꾸자. 우리에게 이 꿈이 있다면 우리는 일어날 것 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를 창 조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우 리와 함께 이 땅을 바꾸어 나가는 하늘나라의 위대한 꿈가운데 살기 를 기대하십니다. 이 꿈에 사는 사 람을 가리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 다.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가족, 하 늘 나라의 로얄 패밀리, 오늘 내가 하나님의 가족이 된 그리고 주님의 아들, 주님의 딸,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왕자, 하나님의 공주, 이 프라이드, 이 감동을 확인하면서 앉은 자리, 좌절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새 로운 역사를 창조하시길 주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세상이 어둡 지요, 힘들지요, 그럴수록 꿈을 꾸 어야 합니다. 주님의 꿈을. 옛날 팔 레스타인의 가난한 거리에서 제자 들을 부르시던 그 주님은 오늘 이 땅의 거리에서 당신의 제자들을 부 르십니다.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 여 내게로 오라. 그리고 나와 함께 이 세상을 바꾸어 가자. 이 고달픈 세상, 이 어려운 세상을 바꾸어 가 자, 가서 모든 족속으로 내 제자를 삼으라.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복음을 가지고 살기를 기대하시는 주님, 가정이 어려울수록, 삶이 어 려울수록, 사업도 어려울수록, 그럴 수록 꿈을 꾸십시오. 주님을 바라 보십시요. 높은 곳에 오르시길 바 랍니다. 산에 오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주님, 실망하지 않겠습니다. 좌절하 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소 유하고 내게 주어진 인생의 마지막 걸음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하 나님의 아들답게 하나님의 딸답게 살겠사오니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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