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자의 생각'/누가복음 12:16~21
우리는 오래 전부터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습니다. 겉으로는 갈대처럼 약하고 흔들리는 존재로 보이지만, 사실은 생각을 할 줄 알기 때문에 위대하고 존귀한 존재라는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그만큼 생각은 우리 인격에 있어서 기본이 됩니다.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냐?' 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평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우리가 자주 듣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생각을 심어 행동을 거두고, 그 행동을 심어서 습관을 거두고, 그 습관을 심어서 인격을 거두고, 그 인격을 심으면 운명을 거둔다.' 이 말은 매우 의미 깊은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생각은 우리의 행동과 습관과 인격과 운명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기초요, 씨앗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인간은 생각하기에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면 생각 한번 잘해서 참 복된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각 한번 잘못 해서 너무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 한번 바로 해서 지혜로운 자가 되는 가 하면 생각 한번 잘못해서 어리석은 자가 되어 만인의 웃음 거리가 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더욱이 어떤 역경을 당했을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더욱 중요합니다. 그 때 생각 한번 잘못해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사람이 되는가 하면, 생각 한번 바로 해서 오히려 역경 때문에 복을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돈이 막 불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고, 명성이 자자해지고, 건강하고 평안해 질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 입니다. 그 때 생각을 잘 해서 정말로 존귀하고 위대한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때 생각을 잘못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자신도 망하는 것을 봅니다. 역경을 만났을 때 잘못 생각하는 사람보다 형통할 때 잘못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에 더 많은 피해를 끼칩니다. 더 많은 악취를 남기고 맙니다. 그러므로 생각은 참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형통할 때 생각 한번 잘못해서 망한 사람의 예를 우리에게 들려 주시면서 '너희들은 바로 하라.'고 교훈하시는 것을 봅니다. 물론 이 가운데는 형편이 좋은 사람들만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인생의 역풍을 만나서 고통 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역풍을 만났든지, 순풍을 만났든지 간에 문제되지 않습니다. 다만 생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깊이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사람은 부자였습니다. 원래 재산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렇듯 재산이 많은데 농사까지 풍년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고대 사회이기 때문에 '재산'이라고 하면 주로 자기가 추수하는 농작물의 다소를 가지고 평가했습니다. 전답이 많은데 추수까지 해마다 풍년을 만나 점점 재산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그럴 때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재산이 막 불어나고 돈이 많이 생기고 소문이 자자해질 때 마음의 생각이 달라진 것입니다. 심중에 생각을 골똘히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생각하여'라는 말은 '디아로기조마이'라는 헬라어인데, 단순히 흘러가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Think'가 아니라 'Think Over'입니다. 깊이 어떤 생각에 몰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좀 더 나아가 'Reason'을 말합니다. 이리 저리 따지면서 그 생각에 끌려 다니고 그 생각으로 밤낮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재산이 많이 지는 것을 보고 부자는 골똘히 생각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과연 부자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18절 이하에 나옵니다. '곡간을 헐자. 더 크게 짓자. 그리고 나에게 들어오는 이 모든 재산을 쌓아놓자. 모자라면 곡간을 넓혀서라도 또 쌓아 놓자.'
두 번째로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구나. 이제부터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자.' 그러므로 부자의 생각을 두 마디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쌓자. 그리고 먹고 마시며 즐기자.' 이 부자의 생각은 지금 예수 믿지 않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다니지만 아직도 믿음이 어리거나 영적으로 깊이를 모르고 신앙생활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부자 한 사람의 생각과 그 내용이 아닙니다.
이 부자의 생각을 우리가 좀 더 분석 할 필요가 있습니다. 3가지를 분석해야 합니다. 첫째, 부자는 행복이란 쌓고 먹고 즐기는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부자의 생각의 골격이었습니다. 쌓고 먹고 즐기는 것이 일상인 인생에게 무슨 행복이 따로 있냐는 것입니다. 부자는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생각에 말려 든 것입니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압니다. 인생이 행복 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지만 그 가운데 돈이 있어야 됨을 말입니다. 빈 알거지 신세로 무슨 행복을 추구할 수 있습니까?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됨을 다 인정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어느 대학 팀에서 10년 동안 연구해서 발표한 자료를 언젠가 설교를 통해 들으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영국 사람 기준으로 도대체 사람이 재산을 쌓을 때 어느 정도 쌓아야 가장 행복을 느끼는지를 조사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 돈으로 환산한 결과, 약 18억 정도를 가지면 인간은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허와 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데이터를 통해서 수긍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즉 행복이란 돈을 쌓으면 쌓는 대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국 사람의 기준으로 말하면 한 18억 정도 쌓으면 그 다음에는 아무리 재산이 불어나도 행복과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18억을 손에 쥐고 한 생을 살 만큼 돈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평생 씨름해도 18억을 손에 쥐어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날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런 데이터는 아무리 쌓아 놔도 쌓는 그것이 행복을 주지 않음을 말해 줍니다. 적정선의 재물이 있으면 그것이 18억이 아니고 단 1800만원 이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꾸 쌓아라. 자꾸 쌓기만 하면 행복 할 것이다.'라는 말은 완전히 사람을 타락시키는 마귀의 소리입니다. 우리는 이런 연구 발표를 통해서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거짓말도 들어 있습니다. 사람은 적어도 18억 정도를 가져야 가장 행복을 느낀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돈을 어느 정도 가졌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합니까? 그리고 돈이 없다고 해서 모두가 불행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더욱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세계에 들어와 보면 오히려 자기 돈을 흩어서 가난한 자를 위해 씀으로 더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히려 돈이 없으므로 인해 부자가 느끼지도 알지도 못하는 행복의 신비를 체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이 정도의 돈이 있어야 가장 행복을 느낀다는 말은 거짓말인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부자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쌓고 즐기는 것이 바로 행복이며, 그래서 행복과 즐거움, 'Happiness'와 'Fun'을 동일시합니다. 여기에 앉아있는 분들 중에서 아직도 '즐기는 것이 행복이다. 그러므로 즐기자.'라는 사고의 패턴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즐거움과 행복은 전혀 무관합니다. 즐거움이라는 것은 즐거워하는 행동의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반면에 행복은 즐거움이라고 하는 행동을 체험한 후 찾아 오는 감정을 말합니다. 즐겼다고 해서 그 다음에 행복이 따라 옵니까? 마음껏 폭탄주를 들이 마시면서 신나게 즐겼다고 해서 그 다음에 행복이 따라 옵니까? 부부의 도리를 무시하고 어떤 여자에게 또는 어떤 남자에게 눈을 돌려 한번 로맨틱한 꿈을 꾸었다고 해서 그 다음에 행복이 따라 옵니까? 완전히 거짓말입니다.
헐리우드 스타들을 연구한 어떤 사람의 글에 솔직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만큼 즐기는데 익숙한 사람들도 없습니다. 인기 절정에 날마다 호위 호식하며 파티에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그들만큼 비참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즐거움과 행복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환상에 젖어 있습니다.
최근에 지방에 있는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하마터면 심장마비를 일으킬 뻔 했습니다. 그분은 오늘날 한국교회, 특히 한국교회 성도들의 가정이 깨어지고 있는데 대해서 아픔을 동감하고 있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가정이 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의 가정이 계속 깨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가정 붕괴의 원인이 다름 아닌 인터넷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교회가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교회가 존폐 위기를 맞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목회를 철저히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이 세계를 알아야 되겠다는 생각에 인터넷 상으로 소위 음란 채팅하는 곳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분의 결론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의아한 나머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들어가는 사람은 다 가명을 쓰고 자신의 신분을 숨기거나 과장해서 속이고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도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렇게 하고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채팅을 통해 조금 말이 통한다 싶으면 유도 신문에 넘어가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그렇게 많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목사님, 목사님 교회 순장도 들어 와 있는 것 아세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답답한 나머지 물어보았습니다. "무슨 소립니까? 어떻게 저희 교회 순장인 줄 알았어요?" "저도 적당히 꾸미고 들어가서 계속 이야기를 했지요. 그런데 나중에 신앙 이야기가 나와서 예수 믿는 여자가 이런데 들어와서 속닥거리고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아빠가 출근하고 나면 너무 심심해서 들어와 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개월 됐는데 재미있다고 그러더군요." 물론 저는 이 말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교회 순장 가운데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그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자기 이웃 교회에서는 이런 채팅에 들어가 주부들이 주고 받다가 2명의 가정주부가 가출해버려 지금 3달 동안 소식이 없다고 합니다. 남편, 자녀가 눈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어느 남자와 눈이 맞아 완전히 가 버린 것입니다. 인생이 심심하고 재미없으니 '한 번 즐기고 나서 보자.'는 식입니다.
부자의 생각과 똑같습니다. 참된 행복이 쌓아 놓고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인간은 인간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진리를 깨닫기까지 어떤 사람은 엄청난 값을 지불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동안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해 나중에는 부끄러운 죽음을 당하기도 합니다. 즐거움과 행복은 절대 무관합니다.
이 진리를 깨달을 때에 우리는 시간을 해방 시킬 수 있습니다. 즐기기 위해서 함부로 낭비하는 시간을 아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에 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는 돈을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일에 함부로 쓰던 것을 철저히 아껴 영원히 남는 일에 돈을 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의 마음에 있는 악한 생각에서 자유 할 수 있습니다. 형제가 즐기고 여행 다니고 골프 치고 좋아하는 것을 보면 배아파서 못 견디는 못된 심성을 다 쓸어 버리고 자유할 수 있단 말입니다. 그리고 가난할지라도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고 보람되게 살 수 있는 나 자신을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자를 본받지 마십시오.
두 번째, 부자는 자기 생명의 주인이 자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이 어리석은 자여", 곧 "바보야"라는 뜻입니다. "오늘 밤에 내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쌓아 놓은 것이 네 것이 되겠느냐?" 얼마나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진리입니까? 이 부자는 자꾸 재산이 늘어나자 자신감과 힘이 생기고, 사람들이 자기를 우러러 보니까 제 정신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생명도 자기가 좌지우지 하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건강하면 얼마든지 오래 살 수 있다. 돈이 이 정도로 많으면 얼마든지 이 세상을 오래오래 즐기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가 생명을 보장한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라는 존재 이상을 보지 못합니다. 그는 자기 속에 갇혀 버렸습니다. 동서남북 모든 벽이 자기라고 하는 자신만의 벽에 갇혀 버립니다. 그리고 위를 보지 못합니다.
유명한 C.S. 루이스의 평범하지만 진리를 담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항상 눈을 아래로 깔고 사람을 보고 사물을 본다.ꡑ 눈을 아래로 깔고 사람을 보고 사물을 보는 사람은 절대로 위를 보지 못합니다. 바로 부자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위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생명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생명이 자기 손에 있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특히 웬만큼 돈을 가지고 있고 힘이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기 쉬운 어리석은 사고에 대해서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돈이 많아서 평생 부자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보신을 많이 했는지 80세가 될 때까지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좀 더 살고 싶은 마음에, 어느 날 하나님을 찾았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 돈 많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았는데 좀 더 살고 싶어요. 제 재산 중 반을 떼어 하나님께 드릴 테니, 좀 더 살게 해 주세요.' 그 말을 들은 하나님께서 반색을 하시며 '만일 네가 네 재산 전부를 주겠다고 했다면 내가 2천년을 살게 했을 텐데, 재산 반을 떼어 내게 주겠다고 했으니 나도 반을 잘라서 천년을 더 살게 해 주마.' 이 말을 들자 부자는 흥분했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아 놓고 자기가 천년을 더 살게 되었다며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그 다음 날 갑자기 심장 마비로 죽었습니다. 이를 본 아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아와 대들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면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죠. 약속을 지켜야죠. 아버지에게 천년을 약속해 놓고 하루 만에 불러 가시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입니까?'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웃으시면서 '얘야, 성경을 봤느냐? 성경에 보면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여러분, 우리에게 재산이 이로울 수도 있고 해로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돈이 많아서 나는 오래 살 수 있다는 생각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만 보아도 부자처럼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UFO 강연을 했던 클로드 라엘(Claude Rael)이라는 사람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인간 복제에 대한 전세계적인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인간전문 복제회사인 클로나이드(Clonaid) 사를 창업하여 복제에 대한 의지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 과학은 영생을 약속했으며, 영생하기 위하여 자신도 이 인간 복제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평균 수명이 19세였습니다. 그런데 점차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면서 사람의 수명이 연장되었던 것입니다. 100년 전 만해도 미국인의 평균 수명이 40세였으며, 50년 전 한국인의 경우 52세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72~74세가 평균 수명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120세, 150세도 거뜬히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복제 기술이 발전하면 영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살다가 늙어서 몸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제2의 나를 복제해서 젊은 날을 또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또 폐물이 되면 폐기처분하고 또 복제해서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계속 영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그럴 듯한 말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가소로운 이야기입니까? 교만한 인간의 한 단면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말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수중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24, 25절 보십시오. 우주와 그 가운데에 있는 만유를 지으셔서 모든 존재마다 생명을 불어 넣으신 주인공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천지의 주재되신 하나님이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친히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권한을 누가 침범합니까? 이 하나님의 신성한 고난의 영역에 감히 누가 발을 들여 놓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있다고, 건강하다고 생명을 내 것처럼 생각하는 오만 불순한 사람들이 오늘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습니다. 이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또 부자는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을 생각만 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재물을 쌓는 것, 이것이 부자의 생각 전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쌓아 놓자, 먹고 마시고 즐기자."라고 하는 부자의 마음 속에 숨어있는 생각 한 가지를 드러내서 해석해 주셨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이 말은 부자를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부자가 자기만을 위해서 쌓겠다는 생각을 보여줍니다. 재물에 대한 또 다른 목적이나 분명한 철학이 없었습니다. 그저 쌓고, 쌓고, 쌓는 재미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반대로 하나님께 대해서 부요치 못한 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 가난한 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재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쓰라고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입이나 재물이 많아 질수록 그 용도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재물을 관리하는 목적을 분명히 찾아야 하는데 이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계속 가난뱅이가 되고 자기에게는 부자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은 일입니까?
우리는 지금 대각성전도집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한번 보십시오. 열심히 돈 벌어서 뭐 합니까?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 쌓아 놓은 것을 자랑하지 않습니까? 제가 알고 있는 어느 부자입니다. 그 사람은 부동산을 많이 사 놓아서 재산이 수 천 억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각각 1명 밖에 없는 자식에게 얼마를 물려줄 생각인지 지금도 ꡐ더 쌓자.ꡑ라는 생각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이렇듯 돈의 노예가 되어 자기만 찾는 사람, 하나님께서 그 재산을 주신 목적도 깨닫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아 질수록 이 사회는 고통스러운 지옥이 될 것입니다.
왜 한국 사회가 이 꼴이 되어 갑니까? 왜 많은 사람들이 고통 당하며 피눈물을 쏟아야 합니까? 돈을 쌓은 사람이 자신만을 위해 쌓기 때문에 오늘 나라가 이 꼴이 되어가지 않습니까? 이 사회가 이처럼 병들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대각성전도집회를 왜 합니까? 한 영혼을 구원해서 천국에 들여보내는 것, 이것도 좋은 목적이지만 그 이상입니다. 이 나라를 구국하는 길은 소위 하나님은 뒤로 하고 돈밖에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이웃을 헤치면서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구해야 합니다. 그들을 구원해서 하나님 앞으로 데리고 와, 그들로 하여금 생각을 바꾸게 함으로 이 나라를 치유해야 합니다. 이 사회의 병을 고쳐야 됩니다.
그러므로 대각성전도집회는 한 영혼을 구원하려는 데만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이 나라를 구국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 사회를 치유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모두가 다 부자처럼 생각하지 않습니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게 행복이다. 이만큼 쌓아놓고 건강하니까 오래 살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 쌓고 쌓겠다.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도 좋다.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게 해도 좋다. 나라가 망해도 좋다. 무조건 쌓고 보자. 무조건 부동산 사놓고 보자.' 여러분,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 생각을 바꾸기 전에는 이 땅에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생각이 바뀝니다. 잘못된 생각을 우리가 추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될 때, ꡐ이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ꡑ 하고 고개를 돌리면 더 유혹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잘못된 생각을 추방하는 길은 더 좋고 건전한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에게 나쁜 욕망을 추방하는 길은 더 좋고 더 강한 욕망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학교 공부도 잘하지 않고, 그저 놀고 싶어하던 고등학생이 어느 날 마음을 바꿔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ꡐ아, 내가 이러다가는 큰일 나겠구나. 나는 야구에 소질이 있는데, 지금부터 야구를 열심히 해서 박찬호 선수처럼 세계적인 스타가 되고 싶다. 내가 그렇게 해보면 어떨까?ꡑ 그 다음부터는 그 학생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게 됩니다.
부자처럼 어리석고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생각을 바꾸는 길은 예수 믿는 길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놓습니다. 잘못된 생각을 밀어내고,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의 마음에 심어줍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우리 모두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나의 옛 생각, 곧 부자와 같은 어리석은 생각을 벌써 청소해버리고 새로운 생각, 거룩한 생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각을 내 마음에 심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사람이 바뀐다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5-8절에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육신을 쫓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합니다. 이것은 부자의 생각이며, 예수 모르는 사람은 다 육신의 욕망을 따라 부자처럼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ꡐ즐기자. 쌓자. 내가 잘나서 오래 산다.ꡑ는 이상한 생각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신을 쫓는 자의 육신의 생각입니다.
그 다음을 보십시오. 영을 쫓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말씀합니다. 영을 쫓는다는 말은 우리 안에 자리를 잡으신 성령의 생각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성령이 주시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시에 육신의 생각은 밀려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의 모습입니다.
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죽음입니다.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에 따라 생각하면 생명과 평안이 옵니다. 영원히 하나님을 찬송하는 축복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7절을 보십시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부자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만약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부자와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끌려 다닌다면 입으로는 '주여, 주여'라고 해도 속으로는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순종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8절에 보이듯이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자처럼 날마다 자신만 기쁘게 하려고 쌓다가 결국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인생의 가장 중요한 초점으로 삼습니다. '오, 하나님. 나에게 왜 이런 재물을 주시나요? 왜 이렇게 갑자기 돈을 주세요?' 그렇게 기도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이 재물을 어떻게 써야 되겠다라는 하나님의 해답을 받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이 모르는 고상하고, 거룩하고, 영원한 목적을 가지고 인생을 삽니다. 돈을 써도 그렇게 씁니다.
최근에 지미 카터(Jimmy Carter)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와서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 주자.'라는 구호아래 해비타트(Habitat) 운동을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밀러드 풀러(Millard Fuller)라는 한 사람에 의해 30년 전부터 시작된 운동이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 때문에 그는 어릴 때부터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등 많은 상처를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부유한 친구들을 볼 때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가난을 딛고 공부한 결과, 이후에 변호사이자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많은 돈을 축척할 수 있었고, 호화로운 대 저택에 살면서 날마다 아내에게 돈다발을 안겨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 린다(Linda)가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라는 쪽지 한 장을 남겨놓고 가출했다고 합니다. 이에 남편이 충격을 받고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는 자기 집 한 채만을 남겨놓고 모든 재산을 복지재단에 기부하고는 아내와 함께 아프리아로 가서 3년간 선교사로 봉사합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해비타트 운동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무주택자들을 위해 거의 10만 채의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5년 안에 10만 채를 더 짓겠다고 자신의 포부를 밝혔습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마치 무슨 동화를 듣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수준이 높아서 가슴에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특별한 사람만 재물에 대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수입이 얼마든 상관없이 우리가 손에 쥐는 물질을 놓고 고상한 목적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성령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하십니다.
이 시간 제 집안 이야기를 꼭 하나 해야 되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용서를 구하고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평생, 지금까지 30년이 넘도록 정말 존경하고 사랑하는 여성이 한 분 있습니다. 그 분은 저의 장모님입니다. 몇 일전 8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서 어제 경남에 있는 산소에 안치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는 31세에 남편을 여의셨습니다. 그리고 3남매를 데리고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이 없이 인생을 살아야 하는 아주 불행한 여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1년 가까이 날마다 울면서 출입을 잘 하지 않을 만큼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가 자녀를 키워야지 하는 생각에 다시 한번 입술을 깨물고 일어났습니다. 그 때 그를 붙들어 준 것은 믿음이었습니다. 어려울수록 더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남겨놓고 이 일, 저 일 하다가 나중에 어떤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6․25가 나고 또 다시 어려워지자 하나님께서 그 사업을 조금씩 축복해 주셨습니다. 나중에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지방의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서 잘 산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위치까지 가정을 일구었습니다. 자녀들도 소위 말하는 일류대학을 들어가서 자랑스러운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 장모님은 교회에서 가장 헌금을 많이 할 뿐 아니라 남모르게 많은 사람을 돕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돈 없는 목사님들이 찾아오면 절대로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니는 교회에서나 다른 교회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워 고통을 당한다는 말을 들으면 익명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주기로 이미 소문이 나버린 여자였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특별히 사치하고 쌓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자식을 위해서 많이 남겨주겠다는 생각도 거의 없었습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요? 성령이 그의 마음에 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성령이 주시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왜 자신에게 물질을 주시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바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나이가 찬 딸이 누군가의 중매를 통해 한 남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딸은 그 남자와 꼭 결혼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대학을 1~2년 다니다가 고학하느라 병을 얻어 이제는 두 손 든 남자입니다. 소망도, 기댈 언덕도, 돈도 없습니다.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도무지 쓸모없는 남자인데, 이 남자를 놓고 딸이 고집을 피우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결혼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빈소에서 처남을 통해 그 당시 어머니의 생각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두 아들 중 한 명이라도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평소에 생각 하셨지만, 두 아들은 너무 똑똑한 나머지 계속 공부한다고 밖에서 생활했기에 신앙생활을 안 했습니다. 따라서 한 명도 어머니께서 품고 계신 마음의 소원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이상한 남자를 알게 되어 결혼을 하겠다고 하는데, 마침 이 남자는 앞으로 목사가 되겠다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제 대학에 가고, 신학교에 가서 제대로 목사가 될까 생각하니 너무나 길고 먼 험난한 길인 것입니다. 결국 자기가 뒤에서 뒷바라지를 하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결혼을 시켜야 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을 위해서 딸이라도 헌신을 하겠다고 하는데 밀어주자. 하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내가 해보자.' 그렇게 생각하고는 결혼을 허락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나간 날을 돌이켜보면서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거의 13년 동안 식구들을 처가에 맡겨놓고 살았습니다. 전도사가 무슨 돈이 있습니까? 혼자 살기도 힘듭니다. 공부를 제대로 하려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자식들까지 맡겨놓고 저는 주님의 종이 되기 위해서 공부하고 준비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제가 존재하는 그 뿌리를 찾으려고 한다면 장모님을 절대 빼놓지 못합니다. 오늘 사랑의 교회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기도와 수고, 협조가 없었다면 저는 절대로 오늘의 제 자신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큰 십자가를 지고 저를 도와주시면서도 내색하거나 화를 내거나 섭섭하게 말하는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재물을 주셨는데, 주님의 종이 되겠다는 사람을 내가 10년이고, 20년이고 섬기지요.' 하는 자세를 가지고 지금까지 저를 위해서 수고해주셨던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신문에 이름 한번 난 일도 없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이 몇 명 안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그를 보셨을 때 얼마나 사랑하셨을까요? 그렇게 키운 한 사람, 저를 통해 그리고 사랑의교회를 통해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어떠했는가를 여러분들이 조금은 알고 계십니다. 그와 같은 놀라운 일 뒤에 한 무명의 여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여성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생각을 가지고, 돈을 쓸 줄 알았고, 시간을 쓸 줄 알았고, 젊음을 바칠 수 알았기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이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집안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제 어머니를 천국에 보내고 나서 저는 여러분에게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돈이 있습니까? 사람을 키우는 데 쓰십시오. 하나께서 물질을 주십니까? 주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되면 두말하지 말고 여러분의 돈을 쓰십시오. 그리고 그 돈이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서 빛을 발하도록 하십시오. 이것은 아름다운 일이요, 영원히 남는 일입니다. 부자처럼 어리석은 생각을 하다가 모든 것을 놓치는 가장 불행하고 바보 같은 인생을 살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변을 다시 한번 봅시다. 쌓고, 먹고, 즐기는 것만이 인생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저 불쌍한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마치 생명이 자기 손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저 교만한 사람들을 우리 마음에 두고 기도합시다. 자기만을 위해서 돈을 쌓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 마음에 두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합시다. 그들을 구원해서 성령의 생각이 육신의 생각을 대치할 수 있도록 만듭시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 셋, 넷, 자꾸 늘어나면 이 사회가 치유될 것입니다. 이 나라에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임할 것입니다. 우리 후손들이 마음 놓고 사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여 21세기에 하나님이 사용하는 위대한 국가가 될 것입니다. 대각성전도집회는 한 영혼을 구하는 데에만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이 나라를 치유하기 위해서, 이 나라의 소망을 주기 위해서 우리는 한 영혼을 구원하여 그들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 모두가 한 마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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