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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의 치명적인 어리석음 / 시127:1-5 /

by 【고동엽】 2021. 12. 11.

에서의 치명적인 어리석음
시 127:1-5. 2005.11.06.

얼마 전부터 운전할 때 네비게이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었는데, 사용하면 할수록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비게이션이 내가 아는 길과 다른 길을 제시할 때 처음에는 그냥 내가 아는 길을 고집하여 가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제 고집을 꺽고 네비게이션이 지시 하는 데로 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알고 있는 길보다 확실히 더 빠르고 정확한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제가 알고 있는 길보다는 네비게이션이 가르쳐 주는 길을 따라 운전을 하려고 합니다.

제가 전혀 알지 못하는 길도 입력한 후 네비게이션이 지시하여 주는 대로 운전하다보면 정확하게 목적지까지 운전할 수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을 사용한 후로 길과 집을 찾는 일에 신경을 덜 쓰게 되었습니다. 운전을 많이 하고, 잘 알지 못하는 곳을 이곳, 저곳 많이 찾아 다녀야 하는 저에게 있어서 네비게이션은 참으로 유용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네비게이션을 사용하면서 요한복음 14장 6절의 말씀 즉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말씀을 다시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네비게이션이라는 말씀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시편 119편 105절 말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는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네비게이션이라는 말씀이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리석음과 문제는 그 네비게이션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을 주라, 말씀을 진리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음이라 하면서도 따르지 아니하고 실제의 삶은 자기 생각대로, 고집대로, 욕심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 어느 교회의 낡은 돌 판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적혀져 있다고 합니다.

너희 나를 주라 부르면서도 따르지 않고,
너희 나를 빛이라 부르면서도 우러러 보지 않고,
너희 나를 길이라고 부르면서도 따라 걷지 않고,
너희 나를 삶이라 부르면서도 의지하지 않고,
너희 나를 지혜라 부르면서도 사랑하지 않고,
너희 나를 부하다 부르면서도 구하지 않고,
너희 나를 어질다 부르면서도 오지 않고,
너희 나를 존귀하다 하면서도 섬기지 않고,
너희 나를 강하다 하면서도 존경하지 않고,
너희 나를 의롭다 부르면서도 두려워 않으니
그런 즉 너희들
너희를 꾸짖어도 나를 탓하지 말라.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참 마음에 깊이 와 닿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다 잘 알고 있는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 즉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은 믿음에 있어서 생각처럼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흔히 이해가 가지 않아 믿을 수가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얼마나 잘 믿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네비게이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생긴 이후로 전혀 알지 못하는 길을 갈 때에도, 다시 말해 네비게이션이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지시를 하여도 저는 그것을 믿고 따라 갑니다.

믿음은 따라 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주라고 알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섬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길이라고 알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길로 따라 걷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지혜라, 진리라, 복음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입으로 주여, 주여 하여도 하나님을 실제로 주로 섬기고 그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지 않는다면 그것을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복된 삶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름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없이 우리는 절대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노력과 수고와 생각만으로 우리는 절대로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는 오늘 본문의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삶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집을 세울 수 없고, 우리의 성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배워 알고 있는 속담 중에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공들인 탑은 안 무너진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길지는 않지만 인생을 살아보니 꼭 그렇지 많은 않았습니다. 공든 탑도 무너집디다. 성실하게 자기 삶을 지키려고 하는 자의 삶도 무너집디다. 그러므로 공을 들이고, 삶을 지키는 것이 다 허무하고 헛된 것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위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분이 있다면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나님을 종종 무시합니다. 종종이 아니라 그보다 더 자주 무시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과 믿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의 차이가 있다면, 믿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며 사는데, 우리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은근히 무시하며 산다는 것 정도일 것입니다. 사실적으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고 믿지 않고 사는 것은 별반 큰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야곱이 팥죽을 쑤었습니다. 처음부터 에서에게 팔아먹으려고 쑤었던 것은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배가 고파서 먹으려고 쑤었던 것 같습니다. 에서가 사냥에서 아무 것도 잡지 못하고 허기가 져서 내려왔습니다. 동생 야곱이 팥죽을 쑤는 것을 보고 달라하자 야곱이 엄청난 흥정을 해 옵니다. 그것은 팥죽과 장자의 명분을 바꾸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 흥정이었습니다.

장자의 명분은 보다 많은 하나님의 축복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었던 에서에게, 믿음이 없었던 허기 진 에서에게 하나님의 축복 즉 장자 권은 정말 명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배가 고파 죽게 되었는데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아무런 고민이나 문제없이 야곱에게 그 장자의 명분을 팔아 버립니다.

배가 고픈 것은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먹는 것 보다 하나님이 중했고, 에서는 하나님보다 먹는 것이 중했습니다. 배가 부르고 문제가 없을 때에 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배가 고팠을 때 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대개 에서와 같은 사람들 입니다. 그냥 예배당에서 예배드리고 성 경공부할 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실제의 생활에서, 먹고 사는 문제에서, 특별히 그것이 좀 꼬여서 힘들어지고 어려워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팥죽 한 그릇의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쉽게 무시당하고, 쉽게 버림 당하고, 쉽게 잊혀져 버리는 그런 존재가 되고 맙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를 저는 경제라고 봅니다. 목사가 돈 이야기를 하고 돈 이야기를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지만, 그가 목사든 교인이든 상관없이 경제와 돈을 우습게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거나 위선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기반찬 없이 나물로 밥을 먹고, 변변한 국이 없어서 국 대신 물마시고, 변변한 이부자리 하나 없어 팔을 베개 삼아 누어도 부족함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 나물도, 그 맨 밥도, 깨끗한 물 한 그릇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해 굶주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욕심이 없는 것은 좋고 훌륭한 일이지만, 돈과 경제를 쉽게 보고, 가볍게 보고, 함부로 풍류를 읊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볼 때 사치입니다. 교만입니다. 어리석음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돈과 경제에 얽매여 사는 것은 바라지 않지만, 돈과 경제를 우습게 여기고 사는 것 또한 바라지 않습니다.

돈과 경제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은 살 수 없지만 그러나 떡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셨지,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하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과 경제의 문제에 있어서 실패하는 이유가 제 보기에는 있습니다. 그것은 돈과 경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자꾸 배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젖혀 놓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몫의 문제이고, 둘째는 식의 문제이고, 셋째는 목적의 문제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물론 돈과 경제에 대한 말씀만은 아니지만, 돈과 경제에 있어서도 가장 구체적이고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업을 하고 돈을 벌려고 할 때 하나님을 빼놓고는 안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젖혀 놓고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동업을 하여야만 집도 세워지고 성도 지켜진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업에 성공하고자 하시면 오늘 제 설교를 잘 들으시고 그대로 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동업을 하여 성공하고자 하시면 다음 세 성경 구절로 여러분의 네비게이션을 삼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말라기 3장 10절에서 12절의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루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 짐으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제가 사업을 한다면 이 말씀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겠습니다. 이 말씀으로 사업 성공의 네비게이션을 삼겠습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언제나 돈에 쪼들리게 됩니다. 투자할 돈이 언제나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제일 먼저 손을 대는 것이 하나님의 몫입니다. 돈에는 하나님의 몫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일조입니다.

우리는 사업을 하다보니 돈에 너무 쪼들려서 할 수없이 십일조에 손을 댄다고 생각하고 말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쉽게 하나님의 몫을 겁도 없이, 믿음도 없이 손을 대기 때문에 쪼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몫에 손을 대는 것은 사업을 하나님 없이 혼자 하겠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어도, 하나님이 집을 세워 주지 않으셔도, 하나님이 성을 지켜주지 않으셔도 된다는 선언입니다.

사업에 뜻이 없다면 모를까, 사업에 뜻이 있다면, 그리고 저라면 말라기 3장 10절 이하에 말씀에 승부를 걸겠습니다.

둘째는, 잠언 14장 11절의 말씀입니다.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악인은 꾀로 장사하고 의인은 법으로 장사합니다.(시편 1편) 악인의 풀과 같이 생장하고 의인은 종려나무처럼 번성합니다. (시편 92편)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되고, 의인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번성합니다.(시편 1편)

사업과 장사에도 식이 있고 수준이 있습니다. 사업과 장사가 후진을 벗어나 선진이 되려면 식을 바꾸어야만 합니다.

제가 깨끗한 부자라는 책을 썼을 때 어느 대학 교수 한 분이 공개토론 중에 저에게 ‘깨끗한데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 보았습니다. 선진국도 가 보았고, 후진국도 가 보았습니다. 선진국에는 선진국의 식과 철학과 문화가 있고, 후진국에는 후진국이 될 수밖에 없는 후진국의 문화와 식과 철학이 있었습니다.

후진국은 깨끗하면 부자가 될 수 없는, 아니 되기 어려운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진국은 그 반대였습니다. 선진국은 깨끗하지 않으면 부자가 되기 어려운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선진국의 문화와 철학과 식을 보니 그 바탕이 성경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었습니다. 그 법을 무시하고 함부로 장사하는 사람들은 겨 장사였습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는 후진국이었습니다.

장사를 하려면, 장사를 하여 크게 성공하려고 하는 사람은 장사를 하나님께 배워야 합니다. 장사를 하나님과 동업하여야 합니다. 식이 틀리면 답이 틀립니다. 그것은 영적인 세계에서만 통하는 진리가 아니라 돈과 경제 즉 사업에 있어서도 통하는 진리입니다.

마지막 셋째는, 고린도 전서 10장 31절의 말씀입니다.

“그런 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동업하려면, 하나님이 세워주시고 지켜주시는 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사업의 목적이 하나님과 같아야만 합니다.

사업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배재하면 도구가 목적이 됩니다. 그냥 사업을 위한 사업을 하게 됩니다. 거기에 빠지게 되면 인생 끝장입니다. 사업과 돈의 노예가 되어 평생 거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업과 인생은 성공을 해도 실패가 되고 실패를 해도 실패가 됩니다.

죄송하지만 여러분들 중의 대부분은 그와 같은 실패에 의미 빠져 있습니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에서의 치명적인 어리석음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목적은 하나님의 축복을 얻기 위함인데,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에서처럼 경홀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며 절대로 살 수 없습니다. 성공할 수 없습니다. 행복할 수 없습니다. 형통할 수 없습니다. 구원 얻을 수 없습니다. 야곱처럼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축복을 귀히 여기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몫을 정확히 떼고, 하나님의 식대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사업을 하는데도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시험이고 하나님의 테스트입니다. 사탄의 시험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테스트에 합격하게 되면 약속하신 모든 일들이 이루어져 형통하게 되고, 성공하게 되고, 약속하신 축복의 증인이 되실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음의 정면 승부를 거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탄의 유혹과 시험 그리고 하나님의 테스트도 만만치는 않지만, 때문에 오늘 설교의 말씀대로 살기가 만만치는 않지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인생을 거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단호한 결심으로 예수를 믿어 드디어 마침내 구원 얻고, 승리하고, 성공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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