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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5-72 ) / 이수영 목사

by 【고동엽】 2021. 12. 11.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19:65-72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시편 119편을 어떤 주석가는 "대시편"(The Great Psalm)이라 부릅니다. 이 시편 119편을 그렇게 부를만한 충분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 "길이"입니다. 시편 119편은 전체 150편의 시편들 가운데 그 길이가 다른 시편들과 비교가 안될 만큼 월등히 깁니다. 시편 가운데서 뿐 아니라 신구약성경 전체를 통털어서 이보다 더 긴 장(章)은 없습니다.

 

 

 

둘째는 그 문학적 탁월성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작시기법상의 정교함입니다. 이 시편 119편은 22편의 8행시의 묶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히브리어의 22개 문자의 순서를 따라 매 8절이 모두 같은 글자로 시작되는 22편의 시들이 합쳐져 총 176절의 시를 이룬 것입니다. 이것은 이 시편 119편이 대단히 공들여서 만들어진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 시편 119편은 그것을 "대시편"이라고 부른 주석가에 따르면 히브리문학의 하나의 기념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 주제의 중요성입니다. 이 시편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찬양시라고 부르는 데에 주석가들 사이에서 이의가 없듯이 이 시편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시편의 저자가 "증거", "계명", "율법", "법", "도", "법도", "율례", "규례"(teaching, commandment, law, promise, way, precept, decree, rule) 등으로 바꾸어가며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는 이 "말씀"(word)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대한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에게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기에 이것을 주제로 삼은 이 시편 119편은 "대시편"이라 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넷째는 그 표현의 탁월성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과 능력에 대한 체험과 확신과 감사에 대한 최상의 표현이라는 뜻에서 이 시편 119편은 "대시편"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시편 119편은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하는 위대한 시입니다. 이 시편을 구성하고 있는 176절 가운데 "말씀", "증거", "계명", "율법", "법", "도", "법도", "율례", "규례" 가운데 어느 말이든 한 번씩 등장하지 않는 절이 별로 없을 만큼 이 시편을 압도하는 주인공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토록 우리를 압도하는 말씀의 위대함과 이에 대한 찬양 때문에 이 시편 속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인 한 사람을 보기를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는 바로 이 시편에서 매 절마다 일인칭 단수 "나"로 말해지고 있는 그 사람입니다. 그 "나"가 실제로 이 시편의 기자 자신인지 아니면 그가 이 시 속에서 만들어낸 인물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있는,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매개로 하여 하나님 앞에 서있는 한 사람, 하나님께 간구하며 기도하고 있는 그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은 이 시편 119편을 우리의 삶에 더 가까이 느끼게 해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시편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게 하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선 65절에서 그는 자신을 "주의 종"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선하신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65절 하반절에서는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했고, 68절 앞부분에서는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합니다. 그는 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65-66절을 봅니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깨닫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67절 하반절에서도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간구하며 68절 하반절에서도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람에게서 발견하는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그의 말씀에 대한 갈망은 추상적인 것, 그저 어쩌다가 생긴 것이 아님을 본문은 또한 보여줍니다. 67절이 그와 관련해 주목할 구절입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이 짤막한 한 마디 말은 이미 많은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그릇 행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고난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가 어떤 고난을 어떻게 당했는지 이 본문에서는 언급이 없어 잘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는 그 고난을 통해 선하신 하나님, 자기의 불순종과 죄적 삶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선하게 대해주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한 것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보는 65절 말씀은 바로 이 경험을 요약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이 마땅함을 비로소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앞서 그가 자신을 "주의 종"이라 부른 것도 그가 고난 당하기 전에는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그릇 행함으로써 주의 종이라고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의 말씀만을 지킬 것이라는 그의 결의를 분명히 밝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확고하게 그의 삶이 변한 것입니다. 그는 이제 참된 삶의 도리와 기쁨을 깨달았으며 그것이 너무나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71절에서 그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한 것은 정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의 가장 귀중한 소득입니다. 그 기쁨을 그는 72절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새 삶을 사는 것이 평탄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고난과 유혹이 닥쳐왔습니다. 중상모략을 받기도 하고 거짓과 악 가운데 행하며 호의호식하는 자들을 보며 시험에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일들로 흔들리지 않을 만큼 그의 믿음과 새 삶에 대한 그의 의지는 확고한 것입니다. 69-70절은 그의 그러한 마음의 상태를 잘 말해줍니다: "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던 사람들입니다. 믿는다 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그릇 행하며 산 적이 너무나 많은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언제나 선하시며 하나님의 말씀 또한 우리에게 언제나 참되고 신실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이 참되고 복된 삶입니다. 비록 일시적으로 고난과 불이익과 불편함이 따를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신앙고백이요 삶의 다짐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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