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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지켜야 할 3가지

by 【고동엽】 2021. 12. 11.

성도가 지켜야 할 3가지
디모데후서 1장 11-14절

< 하나님이 주신 마음 >

저는 대학교 때까지 남 앞에 서면 논리를 잃어버리고 너무 떨려서 말을 잘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소명을 받고 신학교를 갔습니다. 말을 잘 못하니까 설교자가 되기보다는 몸으로 봉사하는 선교사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의 길은 더욱 못할 것 같았습니다. 특히 음식문제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처음 유학을 갔을 때 잠깐 인도에서 청년과 룸메이트를 했었습니다. 그때 그 친구가 카레 냄새를 풍길 때 “내가 선교사를 꿈꾸면서 이런 냄새를 못 견디면 안 돼지.”라고 끊임없이 자기극복을 시도했지만 그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잠시 미국에 들린 Y선교사님이 자신은 인육을 먹어봤다고 했습니다. 동남아 오지의 어떤 종족은 조상의 유지를 계승하고 조상의 영혼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 죽은 조상의 살점을 조금 떼어서 종족들이 나눠먹는데, 그때 그 의식에 동참한 사람만 가족과 형제로 여긴다고 합니다. 그런 종족을 전도하려면 인육도 먹을 각오도 해야 된다고 Y선교사가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목회를 해서 선교사를 돕겠다고 진로를 수정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 앞에서 설교할 때 생각과 입이 막히는 증상을 극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도사로 있던 교회에서 처음으로 전 교인을 대상으로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일주일 전부터 떨렸습니다. 그때 가장 힘이 되었던 말씀 중의 하나가 바로 디모데후서 1장 7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성도는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복음을 위한 일이라면 더욱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담대하게 우리의 사명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 성도가 지켜야 할 3가지 >

본문에는 12-14절까지 매 구절마다 ‘지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축복과 더불어서 책임과 의무를 주셨습니다. 성도는 버릴 것을 잘 버려야 하지만 지켜야 할 것도 잘 지켜야 합니다. 성도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1. 사명적인 삶

본문 11-12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이 구절에서 ‘이를 인하여’라는 말은 ‘복음 전파를 위하여’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다가 고난 받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명을 따라 살면 하나님이 지켜주신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성도는 항상 강한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요새 사람들은 고통이 없는 편안한 삶을 원하고 사명을 외면합니다. 그러나 사명을 외면하면 고통은 무서워지고, 불안은 커지고, 허무는 깊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디모데후서를 쓰고 2주 후에 목이 베여 순교했습니다. 그처럼 처형을 앞둔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본문 바로 다음에 나오는 말씀처럼 제자와 동료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모두 그를 외면한 것이었습니다. 그처럼 그의 생애 중에서 가장 고통스런 순간에도 그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고통보다 사명을 크게 생각했고, 최종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라고 고난도 허락하십니다. 사실 고난은 믿음의 수준을 보여줍니다. 일이 잘 풀릴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일이 잘 안 될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일이 안 될 때 감사하는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3종류의 성도가 있습니다. 첫째는 ‘만약에(if) 성도들’이 있고, 둘째는 ‘때문에(because) 성도들’이 있고, 셋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regardless) 성도들’이 있습니다. ‘만약에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신다면 믿고 따르겠다.”고 합니다. ‘때문에 성도들’은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따릅니다. 그들은 축복이 없으면 금방 믿음에 회의를 가지니까 깊은 믿음이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반면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는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믿고 따릅니다. 믿음으로 축복받은 모든 위대한 선진들은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도 고난이 옵니다. 마가복음 4장을 보면 주님이 탄 배에도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고난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믿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우리에게 현재 시점에서 무엇이 최선인지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명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독일 수용소에서 극도의 고통을 겪었던 할머니 부흥사 코리 텐 붐은 언젠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질문은 줄어들고 신뢰는 늘어갑니다.” 우리도 신앙연조가 오래될수록 예언, 은사, 기적, 교리 등에 대한 질문과 호기심은 줄이고 신뢰와 실천은 늘려야 합니다.

2. 믿음과 사랑

본문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이 구절에서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바른 진리를 뜻합니다. 그 진리를 지킬 때 어떻게 지키라고 합니까? ‘믿음’과 ‘사랑’으로서 지키라고 합니다.

먼저 굳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가 두려움이 없이 담대한 믿음으로 서면 사단이 꼼짝 못하지만 두려워하면 사단이 좋아합니다. 우리는 사단이 좋아하는 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단은 성도를 공격할 때 먼저 두려움부터 심습니다. 사단은 두려움을 이용하는 천재입니다. 그 근심과 두려움이 삶을 비참하게 느끼게 합니다.

1916년에 죽은 헤티 그린(Hetty Green)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구두쇠였습니다. 그녀는 당시 1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갑부였는데 물을 데우는 비용을 절약하려고 찬 오트밀로 식사를 했고 아들의 다리에 심한 상처가 났는데도 공짜 병원을 찾느라고 너무 시간을 지체해서 감염 때문에 다리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물질을 잃을 것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과 염려 때문에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담대한 믿음이 없으면 현실보다도 훨씬 비참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믿음은 축복과 행복의 기본 요소입니다. 그러나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강하게 나가면서도 항상 사랑의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승리하게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지난주에 한 헌병 출신 목사님이 들려준 얘기입니다. 그분은 미국에 있을 때 군부대 근처에서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을 위한 이민목회를 했습니다. 그 교회에는 60세가 넘은 ‘왕 언니’가 있었는데, 그 왕 언니에게 잘못 보이면 목사님은 완전히 왕따가 되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왕 언니가 부임한 목사님을 몇 사람이나 쫓아냈다고 합니다. 특히 왕 언니는 예배 시간에 늦게 오는 것을 자신의 권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것을 고치겠다고 마음먹고 먼저 주기철 목사님과 조만식 장로님 얘기를 했습니다. 한국 초대 교회 때, 조만식 장로님이 예배 시간에 늦게 오자 젊은 주기철 목사님이 호통을 쳤습니다. “장로님! 자리에 앉지 말고 거기 서서 반성하고 계셔요.”

그 말대로 나이 많은 조만식 장로님이 한참 서서 반성했습니다. 예배가 끝날 무렵 주기철 목사님이 조만식 장로님에게 기도를 시키자 그때 장로님은 눈물로 회개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예배에 늦어 주의 종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 뒤로 더욱 목사님과 장로님이 가까워졌습니다.

그 얘기를 했는데도 그 왕 언니가 또 계속 늦자 참다못해서 목사님이 옛날에 헌병 때 하던 식으로 그 왕 언니가 예배 시간에 들어올 때 소리쳤습니다. “집사님! 앞에 나와 무릎 꿇고 손들고 서 계세요.” 목사님이 그렇게 나오자 왕 언니가 갑자기 기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무릎은 꿇지 않았지만 예배당 앞에서 예배 시간 내내 손들고 서 있었습니다. 예배 후에 국제 결혼한 남편은 목사님에게 못할 짓을 했다고 자기 아내를 무섭게 때렸습니다.

그 뒤로부터 교회에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번에 오신 목사님! 세던데.” 그 다음부터는 왕 언니가 목사님 하는 일에 시비를 걸지 않고 슬금슬금 시선을 피했습니다. 교회가 잠잠해졌습니다. 그러면 목회가 편해질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뭔가 성도들과 거리감이 생겼습니다. 그 거리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분은 “여기는 내 목회지가 아니구나!” 하고 그곳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 얘기가 끝나자 다른 헌병 출신 목사님이 자신의 이미 목회 경험을 얘기해주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왕 언니 노릇을 하다가 교회를 다니지 않는 40대 초반의 한 여자 성도 집으로 성도들과 함께 심방을 가자고 했습니다. 교인들이 다 말렸습니다. “목사님! 그 여자한테 가지 마세요. 가는 목사님들마다 다 망신을 당해요.”

목사님은 순수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잃어버린 양떼인데 전도해야지요.” 그래서 차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그분 집으로 심방을 갔습니다. 목사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 왕 언니가 주변에 있는 4가정을 불렀습니다. 목사님은 그들을 보고 “잘하면 교회가 크게 부흥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목사님은 열심히 은혜롭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예배 후에 그 왕 언니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성경을 조금 더 연구하세요. 그것도 설교라고 하세요.” 목사님은 당황했지만 전도해야 하니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설교가 은혜가 되지 않았어도 멀리서 왔으니까 밥부터 먹고 얘기합시다.” 그 말을 듣고 왕 언니가 말했습니다. “아휴! 설교를 그렇게 하고 밥을 먹을 생각을 해요. 밥이 아깝다.”

그 말을 듣고 은근히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래도 참았습니다. 그리고 밥을 다 먹고 불편한 표정으로 집을 나오려고 하니까 그 왕 언니가 성도들 있는 데서 또 약을 올렸습니다. “목사님! 삐졌죠. 사내가 뭐 그런 말로 삐져요.” 성도들 있으니까 초면에 화를 낼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그 일을 생각해보니까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옛날 성격이 막 올라왔습니다.

다음 날, 목사님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당신! 성경 많이 안다고 하는데 만나서 성경에 대해 논의합시다.” 그래서 서로 중간 지역에 있는 한 쇼핑 몰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어디 갈 곳도 없고 해서 쇼핑몰의 차 안에서 얘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목사님이 대뜸 말했습니다. “너 나보다 5살 어리니까 내 막내 여동생과 같아. 너 어디서 말을 함부로 해. 이제 나 말 논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어! 목사님이 세게 나오네.”

곧 성경 얘기를 했습니다. 조금 후에 그녀가 어떤 말을 하자 목사님이 그 여자 머리를 세게 쥐어박았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왜 남의 머리를 때려요?”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가게에서 수박을 살 때 수박이 익었는지 툭툭 쳐보잖아. 네 머리가 찼는지 쳐보는 거다.”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서 여자가 교만한 말을 할 때마다 목사님이 머리를 또 세게 쥐어박았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아니! 왜 때려? 목사가 아니라 깡패네.”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그래! 네 버릇 고치려고 온 깡패다! 이제까지 네가 목사님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알겠다. 네 버릇을 고쳐놓겠다.” 목사님이 그렇게 나오자 여자가 기가 죽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한 번 더 때리면 경찰을 부를 거예요.” “그래! 어디 한번 불러봐라!” 그러면서 또 한 대 쥐어박았습니다. 그러자 정말 여자가 차를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쇼핑몰의 공중전화로 갔습니다.

목사님은 겁이 덜컥 났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경찰을 부르지 않게 하소서!” 한참 기도하는데 조금 후에 그녀가 와서 차 창문을 두드렸습니다. “목사님! 이번에는 참았어요. 다음부터는 때리지 마세요.” 그때부터 그녀가 고분고분해졌습니다. 그리고 교회도 어느새 그 소문을 듣고 평안해졌습니다. 그런데 무엇인가 성도들 간에 깊은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결국 그 목사님도 그 교회를 사임했다고 합니다.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그때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아도 항상 뒷맛이 개운치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나가되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문제를 사랑으로 풀려고 해야 합니다. 참고 인내하면 사단도 스스로 물러가고, 원수도 스스로 물러가고, 고난도 스스로 물러가게 됩니다. 그처럼 조금만 더 참으면 뒷맛이 개운한 진정한 문제해결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3. 복음 중심적인 삶

본문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이 구절에서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복음’입니다. 끝까지 복음에서 이탈하지 말고 복음 안에 있으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복된 선물은 주님의 십자가와 복음입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3대 축복이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입니다. 둘째는 ‘능력’입니다. 셋째는 ‘변화’입니다. 이 3가지 축복은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축복의 집대성입니다. 그 놀라운 축복의 원천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중심적인 삶에서 결코 이탈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을 등한시하는 것은 모든 축복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 전파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떤 성도는 복음 전파를 할 때 공격적으로 강요하는 스타일로 합니다. 어떤 분은 점과 저주 비슷한 얘기로 겁을 주어 전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를 얻고 둘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분은 때가 되면 하나님이 다 알아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하면서 전혀 전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더욱 잘못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지혜롭게 전도해야 합니다.

요즘은 전도가 힘들기 때문에 더욱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전도라는 최종 목적을 두고 잘 전도할 수 있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제가 인터넷으로 사랑칼럼 사역을 하는 것도 최종적으로는 전도를 위해서입니다. 지금 사랑칼럼 독자들 중에 불신자도 많습니다. 불자들도 꽤 있습니다. 어떤 불자는 자기들의 블로그에 저의 사랑칼럼을 매번 싣습니다. 그런 간접 전도에도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 복음 전파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

이번 미션센터도 선교사 훈련과 더불어 언어교육을 통해 간접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 동안 저는 좋은 선교사 배출의 꿈을 가지고 ‘선교사 훈련학교’를 세우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 비전이 눈에는 뚜렷했지만 손에는 잘 잡히지 않았는데 이번에 갑자기 샛별 얼라이언스 미션센터를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스포츠 센터까지 우리가 다 쓰면 실 평수가 208평이 됩니다. 상당히 넓은 공간을 쓰니까 기분은 좋지만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미션센터를 억지로 세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에도 돌려줄 보증금이 없어서 비전을 2년 뒤로 연기했는데 갑자기 스포츠 센터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해서 떠밀려서 한 것입니다. 또한 신기하게 외부 집사님을 통해서 보증금도 마련되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순적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인테리어를 잘해야 합니다. 사치를 부리지 않되 최선을 다해 예쁘게 꾸며야 합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화장을 하라고 합니다. 예쁘게 화장하고 전도하면 부스스한 얼굴로 전도하는 것보다 훨씬 호감을 줍니다. 남을 외모로 차별하면 안 되지만 내 외모는 잘 꾸며야 합니다. 외모를 잘 꾸미는 부지런함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요새 우리 아이들이 사춘기로 들어갑니다. 외모에 신경을 쓰는 나이입니다. 그 전까지는 엄마 아빠가 무조건 자랑스럽지만 사춘기에 들어서면 친구들에게 “엄마 아빠가 예쁘고 잘생기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심리를 느끼기에 저도 아이들 친구를 볼 때나 학교에 갈 때는 거울을 한번이라도 더 봅니다.

부모님이 세수 안 한 얼굴로 학교에 오면 아이들은 싫고, 자신감을 잃을 수 있습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변함없이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 아빠가 저런 모습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생각해서 학교에 갈 때나 자녀 친구를 만날 때는 단정하게 자신을 꾸며야 합니다. 남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내가 잘 단장해서 남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자기 단장에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저는 넥타이를 하나 매면 그것이 닳을 때까지 몇 년 동안 그것만 맸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한 목사님이 “그것은 성도를 고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흥이 안 됩니다!”라는 말을 듣고 요새 넥타이를 자주 바꿔서 맵니다. 옛날에는 목회자가 꾸미지 않으면 “보기만 해도 은혜가 된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성도들은 고문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성도들도 “저분이 우리 목사님이야!”라고 자랑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키가 작고 옷걸이도 좋지 않은데 꾸미지도 않고 고무신을 신고, 두루마기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부스스한 얼굴로 다니면 성도들도 싫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제는 조금 꾸미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지난주에는 한 집사님의 식사초청을 받았습니다. 그 전에는 양복이 꾸겨질까봐 콤비를 입고 나갔지만 그때는 정장을 하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멋은 부렸지만 얼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흐뭇했습니다. 그렇게 단장하면 같이 다니는 성도들이 조금이라도 격이 높아지는 느낌을 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사치를 부리지 않더라도 깔끔하게 단장하면 얼마든지 돈을 들이지 않아도 호감을 줄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막교회에서도 은혜가 넘칠 수 있고, 지하교회에서도 말씀이 풍성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 성도는 외모로 교회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기회가 된다면 우리의 능력과 정성스런 손길이 닿는 범위 내에서 교회를 예쁘게 꾸미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교회로 초청하는 일에도 자신감이 조금 더 생길 것이고, 내 정성이 들어간 교회라면 교회 사랑의 깊이도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이제 곧 선교센터 인테리어 공사를 합니다. 이번 기회에 출입구부터 깔끔하고 눈에 띠게 만들 것입니다. 워낙 넓은 공간이라서 절약하고 아끼고 지혜를 짜내고 몸으로 때워도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도록 기도해주십시오.

현재까지 인테리어 공사비로 우리 교인들과 선교회 후원자들이 헌금한 재정이 1500만 원, 제가 아이들 대학 등록금으로 쓰려고 저축했던 저축성 보험을 해약해서 1800만 원, 이번 겨울에 첫딸 은혜의 이빨 교정하려고 모아둔 재정 500만 원, 제가 신용으로 대출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이 2000만 원으로 인테리어를 위해 최대한 끌어 쓸 수 있는 재정이 도합 5800만 원 정도입니다.

본당 부분을 빼고 전체 인테리어를 해야 할 공간이 150평이기 때문에 평당 50만원으로 최소한 잡아도 7500만 원 정도가 소요됩니다. 나머지 금액이 채워져서 선교센터를 아름답고 봉헌하고 전국 각지에서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이 방문할 때 좋은 이미지를 주고, 전도를 할 때도 “와 보라!”고 하면서 좀 더 자신 있게 전도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공사가 끝나면 내년 2월 3일에는 필그림 앙상블 팀을 초청해서 선교센터 오픈 기념예배를 드리고, 3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선교언어 훈련원’을 시작합니다. 먼저 영어 과정부터 시작할 텐데 더욱 기도하고 노력하면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의 삶과 일과 관심의 최종목적은 항상 전도와 선교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 전파를 위해서라면 내 것을 기쁘게 나누고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왜 공허해집니까? 목적이 없으면 공허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특별한 목적을 두고 창조하셨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통해 보다 많은 영혼을 구하는 것입니다. 목적이 있는 삶과 공허한 삶의 결정적인 차이는 영혼 구원을 위한 열정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 안에서 축복을 많이 받고, 축복을 받은 후에는 그 축복을 통해 많은 영혼을 구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인생들이 되길 바랍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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