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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35-42(예배설교) 심는 사람과 거두는 사람의 세대간 동역)

by 【고동엽】 2021. 12. 9.

(인도네시아 발리 선교이야기) 오늘 제 메시지는 간략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당대에 오셔서 당대에 하셔야 할 미션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냥 세상의 구세주가 되시려고 오신 분이 아니라 특수하고도 자기 당대에 해야 할 과업을 하다가 세상의 구세주가 되신 분이지, 세상의 구세주가 되기 위하여 전 세계 만민에게 자기가 자기 목숨을 내어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다, 그렇게 바로 나가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자기 당대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 공동체를 회복하여 이스라엘을 회복하려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자기를 보내신 뜻입니다. 4장 3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 구체적으로 이 뜻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대에 성취할 수 있는 규모의 뜻입니다. 예수님 당대에 해야 할 과업, 사명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당대에 해야 할 구체적 사명을 성취하고 나면 그게 나중에 무시간적이고 초시간적인 가치를 지닌 업적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시대에 둔 뜻을 제쳐놓고 전 인류를 위해서, 지금 신림동 서울역 비산동 국지적 사명 대신에 전 인류를 위한 사명을 한다고 하면 아무것도 우린 이루지 못합니다. 인류를 사랑한다는 말은 우리 동네 사람을 사랑한 것이고, 옆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두지파 이스라엘 공동체, 즉 잃어버린 자를 모아서 하나님께서 열두지파로 모아주신 이스라엘을 하나 되게 만드는 미션을 가져왔습니다. 그 미션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비무장 비왕조 비군사적인 공동체의 결속과 회복이었습니다. 이건 예수님 당시에 경합하는 다른 프로그램과 비교해보면 분명히 다릅니다. 당시에 하나님 나라를 이렇게 구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 체제로서 거룩한 사람이 거룩하지 못한 사람을 배제함으로써 깨끗한 사람만이, 성전 중심의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만이 참여하는 천국 이미지를 가진 사람, 하나님 나라의 이미지를 가진 사람,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하나님 나라 이데올로기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는 안 되고 관료와 상비군이 갖춰진 신정국가가 왕조처럼 들어서야만 하나님 나라가 왔다고 믿는 열심당원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분리주의적인 고독파가 있었습니다. 에세네파는 광야에서 깨끗한 사람만이 가는 천국 이미지를 가진 집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경합하는 프로그램과 달리 도시와 마을과 촌락과 이 세상 한복판에서 무제한적인 개방과 포용을 가지고 이스라엘 공동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보편적인 사랑의 공동체를 구성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 시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매우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이 열두지파를 고집했던 이유는, 원래 이스라엘이 열두지파 공동체입니다. 열두지파를 모은다는 말은 계층 간의 위화감이 없는, 하나됨을 성취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런 말을 합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나는 아브라함의 잃어버린 자녀를 구하러 왔다, 이런 말을 잘 썼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당대의 사명감을 가장 잘 집약하는 부분은 요한복음 10장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그 선한목자라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1, 14절에요. 예수님께서 그 선한목자라는 말을 하실 때 어디에 있는 선한 목자입니까? 에스겔 34장에 나오는 그 선한 목자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에스겔 34장에서 말하는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끌어 모으고 유리방황하고 상한 양떼들을 끌어 모아, 짐승과 삯꾼 목자들로부터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출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의 꼴로 먹이고 하나님의 치료의 광선으로 상처를 싸매는 의로운 통치자로서의 자의식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왕으로써, 왕조를 거느린 왕이 아니라 예언자들이 꿈꾸는 섬기고 다스리고 이끄는 자의식을 분명히 가졌습니다. 예수님의 구체적 사명이 이렇게 당대 안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겁니다. 이게 정말 중요한 겁니다. 예수님의 구체적 목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당대 안에 성취할 수 있는 규모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안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답입니다. 예수님은 당대 안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고 했고, 그 노력은 나중에 영원히 세계 만민 사람들에게 범례, 패러다임이 되는 하나님 나라 운동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전세계 만민 안에 일어나야 할 하나님 나라로 표준화 했습니다.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운동만이 전 세계 만민에게 전파되어야 할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는 걸 입증해주신 사건입니다. 그게 바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간단합니다.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한 왕이 세계 만민을 다스린다는 왕이 된다는 원리입니다. 구원에 자꾸 집착하면 안 됩니다. 구원에 집착한다면 우리 성경에 대해서 참 편벽되게 보는 겁니다. 구원에 집착하면 안 되고 하나님께 집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는다? 사람들은 자꾸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구원 받습니까? 이렇게 묻는 건 아예 성경을 잘못 읽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에 내가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하나님 나라의 객관적 구원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이렇게 물어야지, 내가 이렇게 하면 구원받겠습니까? 라고 묻는 건 너무나 개인적인 구원관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예수님이 당대 안에서 이루고자 했던 성취, 그 과업이 하나님 나라라는 것, 하나님 나라는 채무노예가 풀리고 눈먼자가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문둥병자가 깨끗해지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가난한 자가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가난한 자에게 인정받는 것입니다. 이 땅의 가난한 자가 인정하는 게 하나님 나라입니다. 삼성전자가 20조 정도의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뉴스에서 수십 조 번 삼성전자의 돈은 전혀 한국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코멘트를 합니다. 왜? 삼성전자의 46% 이상이 외국자본입니다. 롯데, 포스코,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자본은 절대로 국내에 와서 국내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외국 자본이기 때문에 삼성이란 로고가 대한민국 로고라고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전혀 기여하지 않습니다. 왜? 전부 외국자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삼성전자나 롯데나 포스코 같은 단체가 수십조를 남기더라도 구매력을 회복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여러분, 지금 세계가 왜 만성적자, 경제 불황이 무엇인지 아세요? 보통 사람의 구매력 멸절입니다. 정의합니다. 경제 불황, 구매력의 멸절, 즉 돈을 쓸 수 있는 보통 사람의 구매력이 없어진 것이 불황입니다. 불황이 오니까 물건이 안 팔리고 공장이 가동 되도 적자가 되니까 기업이 무너지는 겁니다. 이게 불황이에요. 만성구매력 결핍,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를 읽어도 경제 불황은 만성구매력 결핍입니다. 만성구매력 결핍, 결국 가난한 사람이 돈을 갖지 모하고 쓸 돈을 갖지 못하면 경제가 불황이 오는 겁니다. 삼성전자나 포스코가 그렇게 돈을 많이 버는데 그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외국으로 가는 겁니다. 이번에 외환은행의 모든 돈 거래 론스타가 다 가져갑니다. 결국 우리 대한민국 한반도 내에 일어난 GDP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GDP는 국적 불문하고 일어난 경제적 부가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롯데제과 48만 원 짜리 주식 없죠? 삼성전자 70만 원 짜리 주식 있는 사람 없죠? 대부분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주류경제학에 자발적 고립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문 볼 일이 없습니다. 전부 다 우리랑 상관 없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점점 이 시대에 깨어 있는 마음을 갖지 못합니다. 정의감이 사라집니다. 저도 없지만 저는 정의감 때문에 봅니다. 이런 기사를 저는 주도면밀하게 얽어내려갑니다. 없지만 그래야만 하나님 앞에 이런 것들을 고치자고 하는 게 하나님 나라 운동입니다. 이걸 고쳐야만 하나님 나라의 공평과 정의가 회복되고, 이런 것들 때문에 성령이 주어집니다. 성령은 자기를 부인하는 영입니다. 자기의 계층적 계급적 기득권을 부인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대의명문과 진리를 위해서 복종할 수 있는 용기, 이게 성령입니다. 성령은 내가 구원받았단 확신을 막 쟁여주면서 어떤 짓을 해도 구원받았다는 구원의 확신을 증폭시키는 게 구원이 아니라 참 성령은 영생을 위하여 거두어진 열매, 성령 받은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가 온 세상에게, 즉 가난한 사람에게까지 인정받는 공평과 정의가 되도록 자기를 부인하는 겁니다. 마크 헤서웨이 워렌 버핏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 소득이 두 번째라네요. 이 사람이 오바마 대통령을 도와주기 위해서 미국 TV에 나와서 지금 내 비서는 나보다 월급이 엄청 적은데 38%의 세금을 내고 있고, 나 같은 부자는 16%의 세금밖에 안 낸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부조리가 어디 있느냐면서 비서와 TV에 나가서 나에게 38% 세금 매기고 이 사람에게 16%의 세금을 매기라고 한 겁니다. 저도 세금을 엄청 냅니다. 500만원을 받으면 실제로 200만원이 세금입니다. 그리고 어딘가 보면 다 세금이 나갑니다. 보통 소득세 7, 80만원입니다. 월급쟁이들은 하나님 앞에 십자가에 매달려 버린 겁니다. 완전히 매달려서 꼼짝없이 세금을 냅니다. 세금 액수만 해도 엄청납니다. 이렇게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2월에 조금 돌려주긴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세금을 내지 않고 지금 그 많은 세금이 누수 되고 있기 때문에, 55조 정도의 종부세라고 하는 세금은 지방자치단체의 교부금으로 다 나간 겁니다. 서울에 집중된 경제력을 형평하게 하여 종부세로 걷힌 돈 55조를 지방으로 보내는 것, 이것이 노무현 정부 때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종부세가 없어지니까 지방에 보낼 돈이 없어졌습니다. 55조가 없어진 겁니다. 이런 걸 고치는 게 기독교인의 관심이고, 정치에 뚜렷한 관심을 가지고 이 땅의 하나님 나라 통치의 혜택을 골고루 나누려고 애쓰는 것이 전도고 이것이 선교이고, 이것이 참 교회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질적으로 잘 잡히지도 않는 기독교, 창백한 구원을 놓고 구원의 확신만 강화시키려고 하는 죄악된 종교 죄악된 기독교는 민중의 아편입니다. 저는 처음 우리 한국교회는 미성숙한 교회와 성숙한 교회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아예 거짓된 복음을 들었던 처음부터 잘못된 기독교와 정통 기독교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나라가 좋지 않은 상태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려고 했던 것이 사마리아와 유대,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에 있는 불화상태, 적개심 상태, 지역적 분열 상태를 극복해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당대적 미션, 당대적 목적입니다. 이런 당대적 미션이 전 세계 만민에게 전파될 만한 영원한 가치가 있는 패러다임이 된 행동입니다. 그래서 구원사건이 된 거죠. 4장 3-4절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이것은 예수님이 우발적으로 사마리아를 간 것이 아닙니다.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마리아와 유대 사이에 있는 적개심을 해소시키려는 마음,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끌어 모아 화해시키려는 그 마음 때문에 갔다는 말이에요. 4장 3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사마리아로 보내신 이의 뜻, 이스라엘로 보내신 이의 뜻. 열두지파의 화해를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적어도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생애에서 통제할만한 일을 하기 위해서 일생을 바칠 때 얼마나 사람이 힘이 넘치는지 몰라요. 그때는 엄청난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과 같은 원기가 난단 말이에요. 무엇 때문에? 보내신 뜻을 행하는데 일생을 매진하면요. 여러분 이것은 직업의 영역이나 소명의 영역입니다. 소명의 영역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에요.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위해서 마땅히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게 소명이란 말이에요. 이 소명을 성취하다보면 자체 에너지가 self generating system이 돼요. 에너지를 스스로 발동시키는 것과 마찬가지가 돼요. 우리 시대는 무엇입니까? 분단문제 해소, 지역감정 해소, 분열되고 깨어져버린 공동체의 회복, 남북문제의 해결, 전 세계 에너지 빈국과 에너지 부국의 갈등문제 해결, 92평방킬로미터의 땅을 죽음의 땅으로 포기해버린 일본의 원자력 사태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서 애씀, 이런 것이 우리 당대의 미션이 돼야 하고, 우리 당대의 뜻이 돼야 한단 말이에요. 저 같은 경우는 젊은 지성인들을 깨우는 일이 제 미션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일에 투신했고 이 일은 항상 저를 힘차게 만들었고 저를 능력 있게 만들었고 저를 지금까지 발전시켰어요. 이 미션의 성취, 제가 젊은 지성인들을 복음화 시켜서 제자로 양성하고 지도자로 만들어야 하겠다, 이것에 제가 투신했기 때문에 저는 엄청난 에너지를 주유 받았어요. 여의도 면적 11배의 땅이 일본에서 포기됐어요. 체르노빌보다 더 큰 땅, 일본 도호쿠 지방 땅이 다 끝났어요. 다시는 회복될 수 없고 470만년 후에나 사람이 살 수 있어요. 세슘과 플루토늄 반감기가 470만년, 479년만이 지나야마 일본 후쿠시마 92평방킬로미터 땅은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이 돼요. 그래서 일본은 지금 원자력발전소 54개 중 50개를 스톱시켰어요. 4개마저도 스톱시킬 거예요. 그런데 신라 경주 천년고도, 우리 조상 알지께서 묻혀 있는 그곳에 방폐장이 들어섰어요. 경주 울진 원전 동해안일대는 후쿠시마보다 어마어마하게 끝나버릴 가능성이 있어요. 울진에서 양산까지를 보세요. 얼마나 허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믿어졌던, 어떤 재앙도 일어날 수 없다고 믿어졌던 그 땅에다 원자력 발전소를 쭉 세웠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14개를 더 세울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92평방킬로미터 전 지역이 죽음의 땅이 되어 가고, 체르노빌 땅이 다 죽음의 땅이 되어 가는데, 470만년 후에 쓸 수 있는 땅이 되는데, 이런 것을 우리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lifetime mission으로, 우리 당대에 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 설정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요? 모두 다 자기분야에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정확하게 자각해야만 에너지가 넘치는 거예요. 이런 뜻을 성취할 때 엄청 좋은 음식을 먹은 것처럼 원기가 난단 말이에요. 예수님은 사마리아 한 자매를 전도했을 때, 사마리아 사람들이 막 몰려왔을 때, 벌써 넉 달이 지나야만 추수하는 자연농사 달력과는 달리 전도하자마자 씨를 뿌리자마자 추수할 것이 많아지는 신령한 영적 농사를 보면서 기분이 너무 좋아졌습니다. 36절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사마리아 사람을 영생에 이르는 열매로 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노력했고 다른 사람 즉 사도들, 사도행전 8장을 이야기합니다.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사도들의 전도활동, 대 사마리아 전도활동이 언제 활활 불탔습니까?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집사와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사마리아를 복음화 시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9장 31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참 중요한 표현입니다. 요한복음은 결국 사마리아 교회버전의 복음서입니다. 요한복음은 사마리아 교인들이 많은 교회복음서입니다. 사마리아교회가 얼마나 초대교회에 이바지를 했나? 요한복음이 바로 그 증거가 됐습니다. 사마리아와 유대의 산물, 사마리아와 유대가 이룬 화해의 산물, 사마리아와 갈릴리가 이룬 화해의 산물이 요한복음이에요. 이렇게 특수한 시대의 화해, 지역의 갈등문제를 해결하고, 특수한 지역의 불화상태를 해결하신 멋진 예수님을 보고, 어떤 유대인도 시도하지 않았던 갈릴리 통과를 시도한 예수님을 보고 사마리아 여자가 감동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만 감동시키면 됩니다. 전략적인 한 사람만 감동시키면 동네사람 모두에게 파급효과가 와요. 우리가 한 사람이 중요해요. 한 사람을 감동시키면 그 한사람이 끌고 오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에게 전도했을 때 사마리아 지역과 화해가 일어났어요.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예수님을 사마리아와 유대 사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역평화전문가가 아니라 이런 예수님의 정신 이런 예수님의 삶, 예수님의 희생의 감수는 전 세계 만민에게 구세주가 될 만한 분이다, 라는 인식과 고백을 얻어 내신 거예요. 결론 맺습니다. 지역적이고 특수한 문제의 전문가적 식견을 발휘하고 지역적이고 특수한 쟁점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한 사람, 그런 사람이 세계 만민에게 통용 가능한 하나님 나라 운동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 세상의 구주라는 고백을 받는 것은 지역적으로 국지적으로 예수님이 화해를 일구었고, 지역평화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성인으로 봤을 때 우리 인생은 40-60년밖에 안 됩니다. 우리가 적어도 우리 돈을 가지고 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나이는 40년 밖에 안 됩니다. 이런 짧은 40년, 한 세대밖에 안 되는 기간 동안 우리가 manage 할 수 있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삶의 계획, 그 삶의 목표를 우리가 세워야 합니다. 그런 목표에 우리가 투신할 때 힘이 납니다. 원기가 가득 찹니다. 여러분도 신문을 제대로 보고 깨어 기도한다면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정말로 모니터링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많이 할수록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가를 알게 됩니다. 기도 많이 할수록 우리 시대의 항구적인 불화상태, 사마리아와 유대의 갈등문제, 이런 것들이 내 가슴에 맺히는 문제가 되고, 그것을 내가 풀기 위해서 애쓰다가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려고 하는 용기와 상상력이 나오는 거예요. 기도 많이 하면 나와요. 기도 많이 하면 소명의 영역이 나와요. 하나님 안에서 사무치게 그리워하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발견된단 말이에요. 원기를 가득 먹은 음식을 먹는 것과 똑같아요. 저는 79년부터 지금까지 정말 제 아내도 봤겠지만 한 번도 원기 없을 때가 없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원기가 가득 찰까요? 그 이유는 사명감 때문입니다. 제 또래의 다른 사람과 저를 구분해주는 가장 큰 차이는 제가 해야 할 lifetime mission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80년대부터 남산에 있던 통일원에 가서 노동신문을 기어코 읽었습니다. 노동신문을 읽어봐야겠다고 주사파가 날뛸 때, 김일성에 대해서 일방적 찬미가 있을 때 저는 노동신문을 읽어봐야겠다는 그 마음으로 노동신문 열람권을 신청해서 노동신문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북한방송을 여러 번 들어봤습니다. 북한문제에 전문가가 되기 위하여, 숱한 북한 꿈을 꿨습니다. 북한 책을 많이 읽어서요. 그런데 제가 실제로 북한에 가본 것은 2006년밖에 안 됩니다. 저는 이 땅의 청년 대학생들을 각성시키기 위하여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젊은 청년들과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저는 종결감이나 완결감이 들지 않습니다. 이만하면 되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아직도 저는 목이 마릅니다. 제가 했던 어떤 사역도 제게 너는 되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이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이런 종결감이 들지 않고 미완성감 때문에 저는 목마르고 더 공부해야겠고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20대 때 허무맹랑한 추상적인 사고에 사로잡히지 말고 국지적 지역적 쟁점에 전문가가 되고, 내 살과 피부에 와 닿고 내가 이 문제에 투신하면 이득 볼 사람이 있는 문제를 나의 사마리아로 통과하는 영역으로 삼는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영생을 위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불멸의 가치가 있는 일에 여러분을 써주실 줄 믿습니다. 이런 지역적 일에 성공할 때 세상의 구주라는 말, 즉 보편적으로 확산가능하고 유포 가능한 원칙의 첫 명제가 되는 거예요. 아직 제 인생 끝나지 않았고, 저는 아직도 목이 마릅니다. 한 번도 제가 제대로 쓰임 받았단 생각을 못합니다. 목이 마르지만 제가 깨닫는 건, 내가 왜 이렇게 지치지 않을까? 한 가지 비견은 제게 주신 일을 아직 완성하지 못했고 이 일 외에도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0대 때 어떤 사람이 힘이 넘칩니까? 소명의 궤도에 올라간 사람이 힘이 넘칩니다. 어떤 사람이 잘 달려요? KTX가 280-300km 달리는데 KTX가 논두렁 위에 달리는 거 아닙니다. 궤도 위에 달릴 때 300km가 나옵니다. 소명의 궤도, 소명이 바로 궤도에요. 소명감을 찾으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찾으면 300km로 달리는 인생이 됩니다. 여러분 모두 원기 가득 찬 청년 여러분 되셔서 이 땅의 하나님 나라, 이 지역적 국지적 영역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헌신하고 투신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고맙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자기 당대에 하실 일에 충실하셨을 때 영원히 세계만민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자, 세상의 구주가 되셨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지역문제, 우리 시대문제, 정신 바짝 차려서 소명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예수님 이름 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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