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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천국에 갈수 있을까?/누가복음 23:39-43

by 【고동엽】 2021. 12. 8.
나는 과연 천국에 갈수 있을까?


누가복음 23:39-43


1492년까지 스페인령으로 스페인이 통치하고 있었던 저 유명한 지브랄탈 해역에는, 라틴어의 세글자로 된 작은 표지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세 글자인데 라틴어로, 네블루스 울트라, 네불루스 울트라, 영어로 번역하면 ‘노 모어 비얀더’ (NO MORE BEYOND) 그러니까 이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당시 스페인 사람들,그리고 유럽의 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곳이 지구의 끝이라고 믿었습니다.지구는 여기에서 끝난다, 더 이상은 아무 것도 없다 여기가 끝이다. 그런데 왜 제가 1492년을 얘기했을까요? 1942년에 사건이 발생합니다. 한 사람이 이 지구의 끝을 용감하게 박차고 넘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는 저 건너편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든 지구의 끝, 그리고 참담한 벼랑만이 기다리고 있었든 지구의 끝을 넘어서서 그기에 미지의 새로운 대륙인 소위 아메리카가, 미 대륙이, 신대륙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돌아왔습니다.그리고 이 표지판은 바뀝니다.사람들은 첫 글자를 뗐습니다. 네어 라는 단어를 빠트렸습니다. 네어가 영어로는 노(No)거든요 N0, 단어가 빠지니까 이제는‘MORE BEYOND’ 저 건너편에는 많은 것이 있다! 놀라운 것이 있다! 이렇게 간판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인생의 끝이라고 말하죠. 죽으면 다 끝났다, 죽음 앞에 서서 우리는 다 끝났다 .내 끝이 가까워온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죽음의 현상을 진지하게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 현대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에 죽음에 관한 최대의 연구가는 하바드대의 정신의학자였던 엘리자베스 퀴버라스, 엘리자베스 퀴버라스라는 그런 학자일 것입니다. 그분의 팀들은 소위 죽음에 가까운 사람들의 의식세계를 연구합니다. ‘니어 데스 익스피어린스’라고 그러는데 죽음에 거의 가까이 왔든 사람들, 우리가 보았을 때 죽었든 사람들, 그런데 극적으로 다시 살아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의식세계만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연구했습니다. 그분의 쓴 책은 매우 학문적으로 어렵지만 그분의 조수들이 쓴 책들은 굉장히 여러 권들이 많이 세상에 소개 되었어요. 죽음 건너편에 뭐가 있는가? 죽음에 거의 가까이 왔든, 아니 사람들이 죽었다고 판단했든, 병원이 사형선고를 내렸든,이 사람은 죽었다고 죽음의 진단을 내렸든, 이미 생명이 끊어졌다고 선언을 했든 사람들이 극적으로 다시 살아난 드문 케이스들을 연구하면서 그들의 경험의 세계, 그들이 무엇을 경험하고 돌아왔는지,
이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그것은 터널을 통과한다는 것이고, 그 다음에 한 종류의 사람들은 악몽을 경험하고 옵니다. 아주 끔찍한 고통을 경험하기도 하고.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이런 두 가지 현상을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돌아옵니다.그것은 뭐냐하면 터널을 잠시 통과한 후에 환한 빛의 세계가 기다리고있다 그리고 그 빛의 세계를 잠깐 발을 디뎌 놓는 순간 너무너무 좋았다. 다시는 돌아오고싶지 않았다. 다시는 돌아오고싶지 않았다.
성경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고할만한 메세지라고 생각합니다.우리가 객관적으로 생각을 해도 천국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있거나 없거나 챤스는 반반 입니다. 그런데 파스칼은 지나간 세계의 유명한 수학자요, 과학자요, 철학자였든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런 유명한 얘기를 했어요. ‘천국! 이것은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도박이다! 그냥 우리가 포기해버리기에는 너무나 어마어마한 이것은 도박이다.’ 파스칼은 수학자이니까 계산을 했겠죠? 천국이 없어도,천국을 믿고 살았든 나에게 별로 손해볼 것은 사실은 없다. 그러나 천국이 정말 존재했다면, 준비만 했었으면 갈 수 있었든 천국, 그런데 그 천국을 내가 놓쳐버렸다면 이것은 큰일이다. 이것은 놓쳐버리기에는, 이것은 그대로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어마 어마한 도박이다.그래서 자기를 도박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천국이 있느냐 없느냐 라는 질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있다면 어떻게 갈 수가 있을까? 있다면 어떻게 갈 수가 있을까? 그래서 저는 죽기직전에, 죽기직전에 극적으로 죽음을 보장 받고, 죽음이후의 세계에 대한 보장을 받고,그러니까 죽은 이후에 천국이라는 세계에 대한 보장을 받고, 안심하고 이 세상을 떠나간 사람의 이야기를 잠시 나눌려고 합니다.
누가복음 23장에 나오는 회개한 강도의 이야기, 누가복음23절 39절 이하를 보시면 예수님과 더불어 양쪽에 매달린 두 강도가 있었는데, 두 사람이 다 강도였고 두 사람이 다같이 행악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심경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한 사람은 여전히 죽어가면서 저주하고,죽어가면서 욕설을 퍼붓고,죽어가면서 몸부림을 치는 그를 향해서, 심경에 변화를 일으킨 한 도가 이렇게 말합니다. 또한 사람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고 그 정죄를 받고 이렇게 죽는 것이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은 우리 가운데 매달린 이 사람은 자기가 행한 것에 옳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고 갑자기 자기 곁에 매달린, 자기 곁에서 꼭 같이 몸부림치고 고통하지마는, 뭔가 달랐든 자기 옆에 매달린 한 사람을 향해서 이렇게 외칩니다. 예수여, Oh Jesus!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요.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요. 그 예수님은 역시 똑같은 고통 속에서, 똑같은 몸부림 속에서, 똑같은 신음속에서, 그러나 그 곁에서 이 고백을 한 사람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꺼야.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서, 천국에서 깨어날꺼야’

어떤 미국의 목사님이 병을 앓고 거의 죽어가는 분에게 이사람 얘기를 하면서 십자가상에서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고 구원 받은 사람의 얘기를 하면서, 선생님 지금도 늦지않았어요 이 강도처럼 예수 믿고 구원 받고 천국 가셔야 합니다. 이 사람이 아프면서도, 사람은 아파도 자존심이 있잖아요? 그래서 하는 소리가 목사님, 나는 강도가 아닙니다.하하~ 나는 강도가 아닙니다. 나는 강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대요. 그러면 제가 질문을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위해 사셨습니까? 선생님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습니까? 아,저 하나님 모르니까 제 자신을 위해서 살았겠죠. 그럼 선생님, 이분이 마침 은행계통에서 일하든 분이였다고 합니다. ‘그럼 선생님 지점장도 많이 하셨죠?’ ‘녜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뉴욕은행의 지점장으로 파견이 되었는데 본부는 따로 있고 거기 지점장으로 파견이 되었는데 지점장으로서 본부의 상부의 지시와 전혀 상관없이, 은행을 소유한 사주의 견해와 상관이 없이 마음대로 돈을 쓰시고 그리고 본점에 하나도 보내지않고 다 쓰셨으면 그런 사람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강도겠네요? 하하~ 강도겠네요. 선생님,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주인이십니다.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위해서,하나님을 위해서,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해서 살지 못하고,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다면 그게 강도가 아니겠습니까? 가만히 계시더래요.

그런데 어떤 부자가 죽어가면서, 갑자기 죽어가면서 자기 식구들 보고 변호사 불러달라고, 변호사하고 의사를 불러오라고, 변호사와 의사를 불러오라고, ‘아니 아버님 갑자기 왜 변호사와 의사에요?’ ‘나도 예수처럼 죽고싶다’ 그래서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그러니까 ‘나도 두 강도 사이에서 죽고싶다’ 하하하~ 변호사님, 의사님 계시면 참 죄송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의료보험 많이 빼앗기고 재판하다 보면 법률가들에게 주는 돈이 참 많거든요? 따지고 보면 우리가 다 강도죠? 자기 이기심의 만족을 위해서, 내가 작은 이익을 위해서 몸부림치는 인생, 성경에 나타난 이 사람만이 강도가 아니라,누구나 다 강도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밤 저는 여러분과 좋은 소식을 말하고 싶어요.Good news를 말하고싶어요. 오늘밤 저는 슬픈 소식을 말하고 싶지않아요.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는 날입니다. 우리 대통령께서 노벨상, 평화상을 수상한다는 놀라운 소문을 들은 날인데, 어떻게 비극을 얘기합니까? 하하~ 좋은 소식을 얘기해야 옳을 것입니다. 좋은 소식, 좋은 소식은 이것입니다. 복음은 이것입니다. 강도도 천국 갈 수 있다! 할렐루야? 하하~ 녜, 강도도 천국 갈 수 있다. 강도도 천국 갈 수 있다. 그런데 그냥 가는 거는 아니에요. 어떻게 했어요? 성경에 나타난 이 강도가 천국에 갈 수가 있었을까요? 그것을 기독교의 용어로 말하면 그의 마지막 신앙 고백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마지막 신앙고백 때문에, 그게 무슨 말 입니까? 그걸 또 다른 말로 말하면 두 가지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회개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회개와 믿음으로, 이 말도 어렵죠?

자, 다시 풀어보겠습니다. 이 강도가 예수님으로부터 용서 받고 천국을 보장 받고 눈을 감을 수 있었든 이유, 첫째 자기가 죄인인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인정했어요. 자, 누가복음 23장40절에 보시면 이 강도한 사람이 다른 강도를 꾸짖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41절에 그 다음절에는,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는 이렇게 죽는 것이 이 십자가에서 이런 처형을 받는 것이, 강도로서 다른 사람의 재산에 해를 끼치고 아마도 생명에도 해를 끼쳤을 우리가 이렇게 죽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은 죄값이다. 이 한 사람은 분명한 죄의식이 있었어요. 그리고 죄를 인정했습니다.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성경은 로마서 3장 23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예외없이 모든 사람, 여기 서 있는 저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은 의인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영웅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성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견해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안목에서 볼 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내 심장을 꿰뚫어보시고 겉으로 표출된 내 행동의 배후에 있는, 내 삶의 동기를 살피시며 가장은밀한곳 가장 어두운 곳에서 살고있었던 내 삶의 모든 모습을 보시는 그 하나님 앞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여러해 전에,영국에서 런던의 장난치기 좋아하는 청년 하나가 장난을 쳤습니다. 런던의 가장 유명한 사회적 저명한 명사 40명의명단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일제히 똑같은 Telegram, 전문을 보냈다고 합니다. 전문의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모든 것이 탄로났음 피신하기 바람’ 그 다음날 40명이 다 없어졌습니다.하하~
사람은 다 죄인이에요.그런데 파스칼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다 죄인인데 이땅에는 오직 두 가지 종류의 인간만이 존재한다. 이세상에는 오직 두 가지 종류의 인간만이 존재한다. 하나는 자기가 죄인이면서 죄인인줄 모르는 죄인이 있고, 또 하나는 자기가 죄인이면서 죄인인 것을 인정하는 죄인이 있다. 전자는 희망이 없는 죄인이고 후자는 희망이 있는 죄인이다. 이 세상은 두 가지 종류의 사람 밖에 없어요. 죄인이면서 죄인인 것을 알지 못하는 죄인들이 있고, 내가 죄인이면서 죄인인 것을 아는 죄인이 있다. 전자는 희망이 없다. 절망이다. 그러나 후자는 희망이 있는 죄인이다.

예수님은 종종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이세상에 어차피 의인은 없으니까,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그 다음에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병든 자에게라야 의사가 필요하지,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느니라. 그것을 바꾸어 말하면 이런 얘기입니다. 나는 의사야, 나는 병자를 위해서 왔다,
여러분 병자의 치유의 희망, 병자가 고침을 받고 건강을 향해서 갈 수 있는 새로운 삶의 시작은 뭘까요? 그것은 자기의 병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는 의사 앞에 나와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선생님 제가아파요. 제 여기아파요 막 쑤시고요, 결리고요, 괴로워요, 아파요. 이것이 정확한 진단의 도움이 됩니다. 그것은 치료의 시작입니다. 그것은 건강의 시작인 것 입니다.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까? 어느날 내, 이세상에서 내 삶이 끝나는 그 순간 용서 받은 자로 하나님나라 천국의 소망을 갖기를 원하십니까?
첫째로 죄인인 것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이 강도처럼 말입니다.우리는 이렇게 죽는 것이 옳아, 좀 원색적으로 말하면, 이렇게 죽는 것이 싸, 강도질하고 살아왔던 인생, 이 인생을 위해서,나를 위해서만 살아왔든 내 인생은 이렇게 죽어도 마땅해, 나는 죄인이야, 우리는 정죄된 죄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하나님나라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첫번째 단계에요.
두 번째,나는 죄인일 뿐만 아니라 이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이것이 두번째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두번째 단계입니다.

자 다시 한번 오늘 본문에 있는 이 회개한 강도의 이 부르짖음의 소리를 들어보십시요. 40절에, “하나는 또 다른 그 사람 다른 강도를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않느냐?” 이 강도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시작되었어요.두려움, 두려움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입니다. 이 죄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죄를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안 두려워해요. 왜 사람들이 죄를 범할까요? 죄를 범하는 이유, 하나님이 두렵지않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은 나를 심판한다, 내 말도 심판하고, 내 행동도 심판하고 내의식, 내 생각까지도 심판한다. 내가 한, 쏟아놓은 모든 말, 내 모든 행동, 어느날 나의 창조자 심판자 앞에서 내 일생은 낱낱이 심판된다. 이것을 참으로 믿는다면, 여러분 참으로 믿는다면 죄 범하겠어요?
저는 하나님이 보신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든 사건하나가 있습니다. 요즘 이러한 시대가 좀 뒤떨어진, 벌써 얘기일줄 모릅니다마는, 저는 80년도 말에 평양을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그때만해도 평양 가는 사람 많지 않았으니까, 조금 두려워하면서 갔어요.그래서 뭐 마치 무슨 순교자의 걸음이라도 되는 것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아내에게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면, 뭐 이런 얘기까지 하고, 평양으로 갔다온 적이 있어요. 몇몇 목사님들하고 같이 갔습니다. 그런데 평양에 도착해서 이제 호텔에 들어가는데, 사실은 평양 가기 전에 베이징에서, 북경에서 우리 같이 가는 일행 몇 사람이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 북한에 가면 호텔 안에서 모든 얘기가 다 감청 되고 도청될 테니까 우리 호텔 안에서는 극도로 조심하자, 그런데 한 분은 또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거기는 다 도청장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낱낱이 행동을 다 감시하는 시청장치도 있다. 그러니까 호텔 안에서는 절대로 우리 얘기하지 말자.그리고 우리끼리할 어떤 중요한 얘기 있으면 우리 바깥에 나와서 버스 탈 때, 걸어 다닐 때 길에서 얘기하자 이런 약속을 단단히 하고 우리가 갔거든요? 딱 평양에 도착해서 이제 호텔에 싹 들어갔어요. 저는 호텔에 들어가서 호텔내부를 제 평생에 그렇게 유심히 관찰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하하~녜, 그래서 그날 따라 보니까 호텔내부에 방에 뭐 이렇게 뾰죽한 게 나온 게 있으면 이건가? 이건가? 내가 무슨 엔지니어나 된 것처럼 호텔의 내부구조를 면밀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저 천정주변에 뭐가 하나가 있어요.맞아! 저기서 나를 보는구나,하하~ 이런 생각이 들자 머리가 싹 서더라구요. 그러니까 정말 조심하게 되더라구요. 저는 평생 호텔방에서 그렇게 거북하게 정중하게 주무신 적이 없습니다 하하~.
그 이튿날 나와서 이제 우리가 좀 거리에서 그 얘기를 하는데, 저하고 같이 갔든 아~옆에 방에 드셨든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목사님 한 분이 그러더라구요 자기는 아예 옷을 다 입고 주무셨데요 하하~ 그래서 아무리 목사님 그래도 그렇게 옷까지 다 끼어 입고 어떻게 그렇게 주무셨어요? 그러니까 웃으면서 하는 소리가, 아니 공산당이 보는데 어떻게 빤스 바람으로 자냐? 하하하~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어요.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 그가 나를 감찰하고 있다.

우리가 시편에 보시면, 구약성경에 시편에 이 시편을 기록한 기자가 이런 말을 쓰고있습니다. 주께서는 나의 앉고 일으서심을 보셨나이다. 나의 생각을 통촉 하십니다. 주께서 나의 행동을 하나도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십니다. 내가 하늘 저 높은 곳에 가서 거할지라도 내가 저 음부의 깊은 곳에 가서 눕는다고 할찌라도 내가 저 바다 끝으로 새벽날개를 치면서 가서 거한다고 할찌라도 주님은 나를 보시고 나를 아시나이다.
살아계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전능하신하나님 전지하신하나님, 인생을 지어 만드신 창조주, 우리의 낱낱이 모든 행동과 생각을 살피시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를 보신다. 이것을 우리가 참으로 믿는다면 죄범할 수 있을까요? 죄범? 우리가 죄를 범할 때 무슨 생각이 우리를 사로잡습니까? 아무도 안 보는데, 아무도 보지않는데, 아니요! 불꽃같은 안목으로, 그렇습니다.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불꽃같은 안목으로 나를 꿰뚫어 보시고 내 깊은 패부를 살피시며 내 생각의 밑바닥을 살펴보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 하나님이 나를 보신다. 내가 그 하나님의 존재를 두려워한다면 죄를 범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 이것은 회개의 시작이에요 회개의 시작. 벌써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자체가 회개의 시작이에요. 내가 범한 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내가 주님 앞에 어떻게 설 것인가? 두렵습니다. 떨립니다. 내가 이 모습으로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을 것인가? 두려워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룩한 두려움입니다.성경은 그것을 경외라고 말합니다. 그냥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경건한 두려움 거룩한 두려움, 성경은 이것이 진지한 회개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자기의 죄를 범한 것을 인정하는 사람, 그리고 이 죄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삼판을 받을 것을 참으로 두려워하는 사람,그리고 내 어떤 공적을 들고도 내가 인생을 살면서 조금 잘해놓은, 조금 잘 해놓은 일, 내가 조금 한 자선사업, 그거 가지고 설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 앞에? 그거 가지고 설 수가 있을까요? 그래서 나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는 그 순간, 우리가 해야할 일은 세 번째 밖에 없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 강도 처럼 해야할 이 세 번째의 일, 그는 예수만이 자기를 구원할 수가 있다고 믿고 예수님께 자기의 구원을 호소합니다. 예수님께 매달려 자기의 구원을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저를 생각해 주십시요. 예수님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아니 예수님이 나라를 가지고 있나? 사람들에게 쫓겨다니고 핍박을 받았든 젊은이였는데, 그런데 갑자기 이 강도는 예수를 향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당신의 나라,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아니 예수님이 나라를 가진 분이란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리고 저를 기억해 주십시요. 그 나라에 저를 받아주시고 기억해달라고, 아니 예수가 그런 분인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오늘 이 말을 기독교인들은 흔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메달려 고통을 받으실 때 두 번째 하신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하신 말씀. 그런데 이 말씀 전에 첫번째로 하신말씀이 있어요. 그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첫번째로 하신말씀, 첫번째는 이것입니다. 그가 십자가가 세워지고, 골고다의 언덕에 이 십자가가 세워졌을 때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놓고 십자가에 매달아 놓았던, 로마의 군병들 앞에서 히히덕거리면서 저 예수 십자가에 매달렸다, 이 몸부림치면서 고통 당하고 피 흘리는 예수를 향해서 야유와 비웃음과 조롱을 퍼붓는 십자가 주변의 군중들과 로마의 병정들을 바라보시면서 그 십자가상에 매달린 예수의 첫마디 음성이 이것이였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요. 저들은 저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있습니다.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요. 이때 그 얘기를 들은 옆에 있는 강도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 저분은 남을 용서하고있다 용서하고 있다. 여러분? 사람이 너무 너무 고통스러우면요 그 고통이 극점에 도달하면, 고통이 크라이막스에 도달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의학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고통이 너무 심하면 사람이 다른 생각을 아무것도 못한다 아프다! 그거 밖에는 생각을 못한다 고통스럽다, 고통. 그러나 예수님은 이 고통의 극점에서 자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주세요.이것이 옆에 있는 강도에게 충격을 준 것 입니다.
아니 저 분이 누구야? 세간에 떠돌든 그 동안의 소문처럼, 그 동안의 소문처럼 저분이 메시아일까?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계신 분, 하나님의 나라를 이땅에 올 수 있는 분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사람들을 위해서 준비하시는 분, 그렇다면 저분이 나를 용서해 주신다면, 지금 저들을 향해서,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저분이 나를 용서할 수 있다면 나도 용서 받고 저 천국에 그분의 나라에, 메시아의 나라에 갈 수 있을까? 예수여,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요. 그 말을 바꾸면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 저를 구원해주세요. 쎄이러 미, 저를 구원해주세요. 주님 저를 구원해 주십시요. 이제는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오직 예수님께 용서를 위해서 매달립니다. 자기를 용서해 달라고,그리고 자기를 구원해달라고, 그리고 예수님을 용서할 수 있는 분으로 믿은 것 입니다. 그는 방금 전에 예수님의 선포의 음성을 들었던 것입니다. 이 격렬한 고통과 저주와 야유와 조롱을 받고도 자신의 고통에 집중하기보다도 이웃들을 생각하며 사람들을 용서해달라고 말하는 저 분은 메사아야, 맞았어, 약속된 메시아,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천국에 들이시는 바로 그분이야, 그렇다면 내가 맞이할 수 있는 마지막소망, 마지막 잎새 같은 최후의 소망, 그 소망을 예수에 걸고, 옆에 같이 고통을 토하지만 자기와 전혀 다른 그분을 향해서외칩니다. 예수여! 주예수여 저를 구원해 주십시요 구원해 주십시요.
그때 예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네가 오늘 낙원에 있으리라. 천국은 낙원입니다. 파라다이스 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파라다이스를 말했습니다. 이상향을 말하고 유토피아를 말했습나다 그러나 이땅은 아직도 유토피아를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실상 유토피아란 말의 본래의 뜻을 아세요? 유토피아라는 말은 노 프레이즈, 그런 곳이 없다는 말이에요.하하~ 유토피아는 그런 곳이 없어요. 세상에는 없어요.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진정한 낙원, 우리가 그리던 그 이상향, 우리의 꿈, 우리의 기쁨, 우리의 희망 그리고 우리의 삶의 모든 소망이 충족될 수 있는 그 진정한 나라 파라다이스, 천국은 낙원입니다. 그리고 천국은요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곳이에요. 네가 나와 함께, 나와 함께 천국이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해도 저는 예수님이 없으면 천국 갈 생각은 없어요. 사랑하는 그 분 내가 사랑하는 그 분이 있어서 천국은 진정한 파라다이스일 것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 개척하면서 한 2년쯤, 그 동안은 제 아내가 미국에 있으면서 왔다갔다 했죠. 그래서 제 아내와 떨어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남자들이 다 그렇지만 저도 제 아내의 생일날을 잊어버렸습니다. 깜빡 까먹었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의 생일날 제 아내가 저한테 전화를 했더라구요. 잘 들어십시요 제가 한 전화가 아니라 제 아내가 저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여보 오늘 내 생일이에요’ 보지는 안 했습니다마는 꼬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오늘이 제 생일이에요’ 아이 미안하잖아요. 제가, ‘아이 내가 깜빡 잊어버렸다’고 미안하다고, 그런데 ‘아이 괜찮아요, 괜찮아요. 우리 애들이 카드도 샀고요 꽃도 주었고요, 교인들이 또 아무개 교인 집에서 잔치를 해서 잘 먹었어요’. 그래 좀 이상하더라구요. ‘그런데 왜 전화했어?’ 그랬어요. ‘그런데 왜 전화했어?’ 그러니까 가까스로 하는 소리가 ‘그래도 당신이 없었잖아’, ‘그래도 당신이 없었잖아’ 이런 말이 이해가 되십니까? 이해가 되세요?하하~녜,

제가 20대초에 저는 아주 철학을 좋아했습니다. 뭐 철학을 많이 알지는, 조금알지만 철학에 대한 관심이 있었어요.그래서 철학 책들을 읽고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의 글을 아주 즐겨 읽었습니다. 제가 결혼하고 얼마되지않아서 아직도 신혼 때였는데 그때 유럽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래 회의가 일찍 끝났습니다. 어떤 국제회의에 참석해서 일찍 끝났는데, 저가 너무 너무 가고 싶었던 곳이 덴마크였습니다. 덴마크의 키에르케고르의 어떤 그림자를, 내가 청년 시절에 그토록 좋아했든 이 우수의 철학자, 이 키에르케고르의 발자취와 그림자를 좀 밟아보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저 혼자 비행기 일정을 좀 변경해서 코펜하겐으로 덴마크으로 날라갔어요. 그리고 부지런히 수소문해서 키에르케고르가 살던 집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그런 모든 것을 모아놓은 조그만 유지용, 이런 데를 왔다갔다 했어요. 처음에는 상당히 관심을 갖고 했는데 저는 굉장히 기대를 갖고 왔거든요? 그러나 생각보다는 이렇게 많이 보존되어 있는 것도 아니였고 몇군데 다니다가 그날 오후에 호텔에 돌아오니까 너무너무 힘들더라구요.피곤하고, 그래서 왜 그럴까?내가,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던 코펜하겐의 거리, 그리고 키에르케고르의 집을 갔다왔는데 내 마음속에 흥분이 살아나지 않는 거 있죠, 별 그렇게 좋지 않더라구요.왜 그런지 아세요? 그녀가 없었거든요. 하하~그래서 그냥 아유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아마 와이프(Wife)가 옆에 있었으면 달랐을 꺼에요. Wife가 옆에 있었으면, 저는 이민생활을해서 그 미국에 좀 살아봐서 아는데 미국에 사는 그 우리 한국 사람들 동포들 가운데 친척들이 다 미국으로 간 사람이 있습니다. 친척들이, 가족들이 다 미국에 살아요 한국에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그런 사람들은 한국에 별로 오고 싶어하지 않아요. 별로, 왜 조국을 그리워하는지 아십니까? 거기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할까요? 천국에는 예수님이 계시거든요. 우리를 용서해주신, 우리를 사랑해주신 조건 없이 나를 받아주시고 그리고 나를 위로해 주시고 나를 텃치 해주시고 내게 꿈을 주시고 내게 기쁨을 주시고 노래를 주시는 그 예수님,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 좋은 곳 천국에 있으리라. 자, 이 말을 들었을 때 이 강도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회개하면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너무나 감격스러웠겠죠? 그는 자기가 죽어가는 것을 알고있어요. 조금 있으면 내 생명이 끝날 것이 뻔합니다. 그는 얼마나 평안하게, 얼마나 감사한마음으로 얼마나 평안한마음으로 자기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맞아! 나는 그 분의 낙원에 저 분과 함께 있게 될 것이야, 그 낙원에 있게 될 것이야.
물론 저는 이 강도에게 후회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저분을 일찍 만나서 저 예수의 제자가 되었더라면 나는 강도가 될 필요가 없었을 텐데, 나는 내 인생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을 터인데, 나는 이렇게 인생을 헛되게 살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말이야,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순간 죽음의 마지막 문턱에서, 내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내가 저 분을 만난 것, 그리고 저 분의 보장을 받은 것, 저분이 나를 용서하신다고, 그리고 나를 받아주신데요. 하나님의 나라에 받아주신데요. 그분과 함께 있게 될꺼라구요. 드디어 그분의 심장이 그 강도의 심장이 멎는 순간 그의 영혼이 육체에서 딱 분리되는 그순간 그 분 앞에는 낙원으로 가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 환하게 열려져 있었으리라고 믿습니다.

우리 박관용 형제가 그 눈먼 사람이 소리치며 찬양할 때, 길이 어디냐?, 그 길이 어디냐, 그 길이 어디냐? 인생을사는,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신 영원한 나라로 가는 그길이 어디냐? 예수께서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자가 없느니라’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대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분, 그분을 통해서 용서 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갈 수 있는 길, 아무도 자기의 의, 아무도 자기의 공적,아무도 자기의 크레딧을 가지고 그 분 앞에 창조주 앞에 갈 수 없지만 예수 믿고 용서받아, 예수님의 손을 잡고 갈 수 있는 그 나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

어떤 선교사 한분이 아프리카에 밀림을,정글을 마을마을을 찾아 다니다가 길을 잘 모르겠어요.그래서 그 토인 아프리카 정글지대에 살고있는 토인 하나를 길잡이로 자기 가이드로 고용을 했습니다. 내가 어느 마을에 가기를 원하는데 나를 그기까지 데려다 달라고, 자, 그런데 이 청년 가이드가 그래요? 저를 따라오세요. 돈을 주기로 하고 가이드를 고용하고 그를 따라나섰습니다. 그런데 전혀 길 같지 않는 길로 계속 그냥 가는 거에요. 이게 어디? 정말 그 마을이 나올까? 그래서 가다말고 선교사님이 정색을 하고 말했답니다. 그 청년에게 당신 길을 아시오? 이때 토인청년은 빙그레 웃으면서 선교사를 바라보면서 이 선교사의 평생 잊지못할 대답을 하더래요. 선교사님, 제가길이에요. 내가 길이에요. 아임 더 웨이(I am the way) 내가 곧 길이이에요. 내가 길이에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

저가 와싱톤 지구촌교회에 있을 때, 거기서 저와 같이 신안생활하든 한교인의 얘기를 마지막으로 좀 들려드리고 싶어요. 공치조란 집사란 분이 계셨습니다. 공치조형제, 그 아버지는 장로님이셨습니다.부인도 좋은 그리스도인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그냥 아버지가 장로님이셨으니까 교회 근처에 항상 있었습니다. 그렇게 교회 나오는 의미를 별로 몰랐습니다. 나왔다 안 나왔다, 제가 보기에도 늘 답답한, 목회를 하다 보면 교인가운데 답답한 교인 몇 사람이 있습니다. 제눈을 피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분일지도 모릅니다. 녜, 그런 분 중에 한 분이였어요. 그런데 이분이, 뭐 그래도 좋은 분이에요. 열심히,이민생활 열심히 해서 드디어 세탁소를 차렸습니다. 미국에서 세탁소 차리면 그 인제 이민생활에 익숙해졌고 상당히 어떤 경지에 도달한 거에요.그런데 미국의 이민생활의 풍속도를 풍자하는 얘기가운데서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제가들은 얘기에요.

제가 아는 분 한 분이 LA에 왔어요. 황집사님이라는 분인데, LA로 이민 오셔서 제가 만나서 집사님 요즘 뭘 하세요? 그러니까 이분이 목사님, 제가 LA를 쓸고 다녀요. LA를 쓸고 다녀요.그래서 뭘 하시는데요? 아 진짜 쓸어요.진짜, 진짜 청소해요, 그래요.청소하는 Job을갖고 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만났어요. 집사님 요새는 뭘 하세요? 아이 목사님 제가 LA를 누비고 다닙니다. 누비고 다닙니다. 그래서 뭘 하시게요? 그러니까 봉제공장 다니세요.하루종일 누비는 겁니다. 봉제공장, 그런데 다시 한 2-3년 흘러가서 또 그분을 만났거든요. 집사님 뭘 하세요?그러니까, 목사님 제가 드디어 LA를 주름잡게 되었습니다.하하~그게 뭔 줄아십니까? 그게 세탁소에요. 세탁소가 하루종일 주름 잡는 거 거든요? 뭐 그러다가 조금 더 나가면 이제 뭐 모텔도 사고, 개스 스테이션도하고 그게 이민 가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속도, 삶의 이야기거든요? 이분이 인제 세탁소 차리니까 살만큼 산 거에요. 이제 얼만큼 어떤 자리에 돈도 좀 만지게 되었고 그래서 워싱톤 지역에서 돈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가운데서 부토멕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동네를 부뜨막이라고 불렀습니다. 부토멕, 하하~ 거기 아주 큰집도 이렇게 샀었어요. 그런데 살만하게 되었고 나이 40이 조금 넘었는데 몸이 좀 이상해서 병원에 가서 첵크를 딱 받아보니까, 암이에요. 위암이에요. 얼마나 기가 막혀요? 그런데 뭐 제가 이제 방문을 하는데, 이분이 평소에 와서, 교회에서 뭐 항상 뒤에 앉으세요. 항상 뒤에 앉아요. 제 시선을 피했어요. 구석진 곳,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교회에 하하하~ 졸다가 이렇게 나가시고, 어떤 때는 빠지시고, 하하~ 그런데 이분이 저가 병원에 심방을 갖더니 제 설교테잎을 들어요. 그러면서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목사님 말씀이 꿀같이 달아요. 하하~항상 교회에 와서 졸든 분이 말씀이 너무너무 좋아요 그래요.
아파서 병원에 들어가서 조용히 앉으면서 그때부터 말씀이 들리기 시작한 거에요. 설교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저 목사님 제가 너무 죄를 많이 지었어요.그리고 이제 정말 복음을 알겠어요.십자가를 알겠어요. 어느날 제가 갔더니 ‘저 정말 이제 예수님이 제안에 게세요 저 여기서 일어나면 저 열심히 이제 주님 섬길꺼에요’. ‘그래요 집사님 꼭 일어나셔야 돼요’ 이제 그러면서 제가 계속 찾아간 거죠.
그런데 몸이 계속 쇠약해져요 계속 쇠약해져요.그러다가 조금 회복이 되시는 것 같더라구요. 잠시 퇴원을 했어요. 퇴원을 할 무렵이 였습니다. 퇴원을 할 무렵인데 그때, 와싱톤지구촌 교회에서, 지금 여기서도 우리교회서도 그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만 성지순례를 간다고 그러니까, 이분이 성지순례를 가겠데요. 그래 암환자인데, 앓든 분인데 그러니까 뭐 주치의가, 아이 힘드시다고, 안 된다고, 그런데 꼭 가겠데요. 저한테 좀 얘기를 해달라고, 주치의도 우리교회 집사님이고 의사선생님이시니까, 그런데 이분이 너무 간절하고 제가 보니까 마음속에 어떤 이상한 생각이 들어요. 아,그러면서 ‘저 예수님이 걸으셨든 그 땅을 밟고싶어요’ .예수님이 걸으셨든 그땅을, 그래 제가 그 주치의 되시는 분한테 좀 강요를 했습니다. ‘좀 허락을해주세요. 이분이 너무 가고싶은 모양이에요.하나님이 도와주실꺼에요 잘 갔다오시도록’ 그래 갔습니다. 이분이 성지순례팀에 그 참가를 해가지고, 같이 간 거에요.그래서 이스라엘여러 곳을 다니다가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그 마지막극치,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셨든 삐아돌로 로사의 피묻은 길, 세 번씩이나 쓸어지셨다가 다시 일어나신 그길, 성묘교회라는 곳, 과거에는 성문 밖 골고다의 언덕 그 언덕을 십자가를 지시고 쓸어지셨다 일어나셨다 걸어가셨든 그 거리, 그 거리를 제가 가다보니까 그분이 제 옆에 딱 있더라구요 그런데 너무 힘드신 것같에요. 몸의 표정이, 집사님 저 붙들고 같이가요. 그래서 제가 손을 딱 붙들고, 이분을 붙들고 같이 그 길을 걸었어요. 걸으면서 제가 설명을 했습니다. 쭉, 그 길에 내력 옛날에는 여기보다 조그만 산에 탑이 낮았다고, 보시죠? 조금씩 조금씩 높아지죠? 저기 있는 교회, 저기가 사실은 성문 바깥이에요. 골고다 언덕이거든요 과거에, 예수께서 이 길을 가셨어요. 넘어지시고 다시 일어서시고 피를 떨구시면서 가신 길이죠. 제가 이런 얘기를 하니까 갑자기 그 분이 목사님, 이 길 때문에 하늘가는 그 길도 우리가 가는 거죠?그래요. 이 길 때문에 하늘가는 그 길을 가는거죠? 맞아요. 십자가의길, 예수께서 걸으셨든 십자가, 내 대신 걸으셨든 십자가, 나 대신 못 박히신 십자가, 나 대신 피 흘리신 십자가, 그 십자가 때문에 우리가 죄 용서 받고 하늘가는, 천국 가는 그 길이 열린 거에요. 제가 설명을 해드렸어요. ’그러네요.’ 이분이 막 감동을 하면서 우리가 그 길을 걸어갈 때는 전통적으로 성지순례객들이 노래를 부릅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찬양을 부르면서 그 길을 쭉 걸어올라갔어요. 성지순례 잘하고 오셨어요. 잘하고 오셨어요. 그리고 한 석달 후에 세상을 떠나가셨습니다. 떠나시기 직전에 저가 제가 현장증인은 아니지만 사모님 한테 들은 얘기인데, 갑자기 코마상태 속에, 무의식 상태에 들어가있든 이분이 갑자기 순간적으로 깨어나더래요. 잠시 깨어나더래요. 그러더니 일으켜달라고, 그래서 침대에서 일으켜드리니까 하늘 가는 길이 보여요! 하늘 가는 길이 보여요. 설명할 수 없는 광채가 희열을 가지고 손을 들고 할렐루야, 하늘 가는 그 길이 보여요.

내 사랑하는 형제 공치조 집사님이 가셨든 그 길, 그리고 성경에 나타난 회개한 강도가 갔든 그 길, 하늘가는 밝은 길,그의 죄많은 인생, 그의 허물 많았든 인생, 그럼에도 불과하고 감히 사랑하는 주님에게 천국을 보장받고 마지막 순간에 이 놀라운 말씀을 들을 수 있었든 이 강도, ‘네가 말이야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꺼야.’ 어떻게, 어떻게요. 그가 자기의 죄를 인정했으므로 그리고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에 매달리면서 하나님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저를 구원 주시구요. 당신의 나라가 올 때, Remember me 나를 기억해 주십시요. 주님은 이 영혼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꺼야’ 그의 심장이 멎는 순간 이 밝은 길을 통해서 주님의 품안에 안기는 그 순간 죄송해요 주님, 잘못 살았어요.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염려마라. 염려마라 이제는 다 잊어버려라 너는 나와 함께 있는 거야. 영원히 나와 같이 여기 있는 거야

기도하십시다.
우리 다같이, 우리 다같이 함께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하십시다 축복하는 기도를…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 하나님 성령으로 역사해주시고 주의 권능으로 함께하시고 오늘 결심한 이분들을 축복해주시옵소서. 안아주시고 받아주시고 오 하나님 저들의 이름을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하시고 저들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 아버지 하나님 함께하시고 저들의 마음을 붙들어주시고 저들의 일생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보십시요 이들이 이렇게 결단하며 일어서서 예수님을 부르고 찾았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의 주님이 되십사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십사고 오 하나님 저들의 아름다운결단과 기도를 들어셨을진데 십자기상의 그 강도에게 주셨든 말씀을 주시옵소서 ‘네가 오늘부터 나와 함께 같이 있는 거야, 그리고 천국에서도 영원히 나와 같이 더불어 있는 거야’ 하나님 이제 이 천국의 소망과 확신을 가지고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에도 예수님과 함께 기쁘고 아름다운 삶,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당신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성경 읽고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들과 교제하며 멋지고 아름다운 풍성한 인생을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들, 하나님의 자녀들, 천국의 백성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이제는 다 주님 앞에 맡기는 것 입니다. 혼자 괴로워하고, 혼자 외로워하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 바라보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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