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님은 누구신가
2010년 12월 5일
마태복음 16장 13-17절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지금도 그렇지만, 2천 년 전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도 주님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무척 드물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몰랐습니다.
이때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교회는 베드로와 같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앙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집니다. 수만 명이 모여도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만큼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종이 자기 주인에게 ‘주’ 라고 말할 때는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라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과거에는 종이 주인의 소유물이자 재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종은 자기 것이 없고, 목숨과 몸도 주인의 것이고 주 인의 뜻대로만 살아야 했습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종, 예수님의 종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 황제들이 기독교를 핍박한 이유 중 하나는 황제만을 ‘주’라고 해야 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주’ 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가리켜 ‘주’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죽을 각오를 하고서야 그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입으로 예수님을 시인하는 일이 쉽지만, 초대 교회 당시에는 생명을 내놓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믿음이 필요한 고백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며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세상의 왕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서 그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주의 종 된 삶을 살았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처럼 살라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그렇게 살 수 있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사랑의 문제입니다. 믿음의 사람 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원해서, 기쁨으로,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고 충성합니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은 디베랴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찾아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 사람 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는 이 말을 주님의 음성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도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사마리아에서 만난 수가 성 여인은 처음에 예수님이 누구신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메시아인줄 깨달은 이 여인은 메시아를 만난 기쁨이 너무 커서 물동이도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 하고 외칩니다. 그러자 수가 성 사람들이 모두 달려 나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합니까? 예수님을 누구라고 전하겠습니까?
도마는 예수님의 못 박힌 상처를 만져 본 뒤에야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 했습니다(요 20:28). 사도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죽이려고 다메섹 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고는 완전히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기독교를 핍박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고 헌신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저도 주님을 만난 후 놀라운 변화를 겪었습니다. 주님을 만난 뒤에는 하루 24시간을 주님만 생각하며 주의 일만 하고 싶었습니다. ‘산다면 주님을 위해서 살 것이고, 주님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서 밥벌이에 시달리며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복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는 것이 소원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무조건 순종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들으시고 그분의 뜻을 가르쳐 주셨고, 그 뜻을 따라 살다 보니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평생 교회에 다니며 예배를 드리지만, 주님을 만난 경험이 한 번도 없는 것,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사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입니 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자원하여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을 기쁨과 영광으로 알고,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교회에 나와서 덕을 보려 하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 주님을 이용하려 하므로 평생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받는 사례비를 전부 감사헌금으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나를 지금까지 키워 주셨고, 이 재능은 하나님의 영광 을 위해서 사용할 것이므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분들을 보면, 주님을 만난 사람과 만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의 봉사는 하나님을 감동시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주님을 만난 사람들로 가득 차기를 소망합니다. 자원하여 기쁨으로 주를 위해 살고 싶은 사람이 넘쳐나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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