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2009년 12월 6일
마태복음 1장 1절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우리 생애에 가장 큰 축복은 예수님을 믿은 것 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 하고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마태복음 1장에서 요셉의 꿈속에 나타난 주의 사자는 요셉에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라는 이름에 담긴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마태는 본문에서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도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신실한 사람이어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아브라함도 우상을 숭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부족함에도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부르셨고, 훈련하고 인도하심으로 그가 믿음의 사람이 된 것 입니다. 다윗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해 솔로몬을 낳았습니다. 다윗도 죄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리며 예수님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둘 째,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처음 에는 그렇지 못했지만, 점점 변화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축복하고 높여 주십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장자의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장자의 이름만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야곱도 유다도 그리고 다윗도 장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성경에는 다윗이 장자인 것처럼 족보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나라에서 는 믿음이 제일 큰 사람이 장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이고, 교회의 법칙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 싶으십니까? 하나님 이 귀하게 여기시는 성도가 되기 원하십니까? 믿음의 부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했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이 세상에 실존하신 분임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인류 역사 속에서 언제 태어났고, 언제 십자가에서 죽었으며, 언제 승천하였는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인류 역사를 BC(Before Christ, 주전 主 前 )와 AD(라틴어로 Anno Domini, ‘그리스도의 해’라는 뜻, 주후 主 後 )로 나눈 것은 예수님이 이 세 상에 오신 것이 인류 역사의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음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다윗 왕의 후손이며 왕족입니다. 요한복음 18장 33절을 보면,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구약성경에서 약속하신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임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 22장 16-18절에 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 켜 맹세하노니 ...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 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만을 위한 메시아가 아니라 모든 인류, 천하 만민을 위한 메시아시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이미 이방인의 피가 섞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 3절에 나오는 다말은 아랍 여인입니다. 라합은 가나안 땅 여리고 성에서 기생 노릇을 하던 이방 여인입니다.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은 보아스와 이방여인 룻 사이에서 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뒤 제자들 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의인들만 좋아하고 의인만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죄 많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9장 12-13절에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 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 든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무덤에 묻힌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승천하셨고, 다시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 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려움을 당한 분, 고난당한 분, 절망에 빠진 분들은 낙심하지 마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때가 주님을 만날 기회이고, 주님의 음성을 들을 기회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절대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살아 계십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려움을 많이 당해서 이 세상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금식기도하다 죽으면 자살은 아니니 그렇게 죽으면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죽기를 작정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자리에 주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죽었느니라. 그러니 이제부터는 나를 위해서 살아 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서 살아 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서 살아 줄 수 없겠니?” 하고 아주 분명하게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목회하는 40여 년간 주님은 때 때로 오셔서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무덤 속에 계 신 분이 아니라 살아 계신 분이고, 우리 형편을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시기 바랍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날 때, 순교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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