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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설교(시편 39편)

by 【고동엽】 2021. 12. 5.

시편은 모두 다섯 권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1편부터 41편 까지가 일 권입니다. 그래서 일편에 제일 마지막 구절이 제일 마지막 38, 39, 40, 41은 모두 다 죽게 된 병상에서 드린 기도입니다. 그런데 38, 39, 40, 41은 전부다 병상에서 드린 기도인데 이 병이 죄와 관련 있다고 본인이 생각합니다. 이 병이 죄와 관련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지금 이렇게 병상에 누워있고 쓰러져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나를 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노골적으로 병을 말합니다. 39편 13절에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40편에는 2절에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이 말씀도 결국은 병든 사람이 드리는 기도입니다. 여기 보면 12절에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그 다음 41편 8절에는 이르기를 악한 병이 그에게 들었으니 이제 그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오며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병상에서 드린 절망적인 상황에서 드린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너무 많이 대변한다고 해서 루터는 이 시편 전체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인을 위해 드린 기도라고 했는데 시편 안에는 중간중간에 참 그런 말씀이 많습니다. 우리 주님이 시편을 가지고 거의 자기 일생의 사역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 예수님은 시편을 전광석화처럼 핵심적으로 인용하십니다.

 

오늘 본문 같은 경우에는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 이 말씀과 비슷한 말씀이 나오는데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시편 40편에는 주의 두루마리에 기록된 말씀을 행하려 내가 왔나이다 시편 40편 7절요.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이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다고 히브리서가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시편으로 거의 자기를 단련했습니다. 아마 예수님이 제일 많이 읽었을 책이 뭘까 이사야, 시편, 창세기가 구약에서 예수님이 제일 많이 인용한 새 책입니다. 시편은 단연코 예수님의 교과서였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재판받을 때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치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는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니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재판 받을 때 절대적으로 침묵했던 내적 마음 태도를 드러냅니다.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을 바라지 아니하리니 나의 근심이 더하도다. 여러분 상대적으로 자기가 옳으면서도 말하지 못할 때는 폭발합니다. 안에서. 내가 옳음에도 불구하고 말하지 못할 때 그 안에 병이 들고 폭발하게 됩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 묵상이란 말은 시편 1편에 나오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가운데, 묵상이 여기서는 끙끙거리며 앓다 라는 뜻입니다. 묵상은 고요하게 성철 스님이 암자 안에서 하는 그것이 묵상이 아닙니다. 그건 명상이고 묵상은 속에서 바퀴가 계속 돌아가면서 엄청나게 다이나믹하게 돌아가는데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를 하나님 말씀대로 세상이 돌아가는가를 깊이 내적 고투를 하면서 곰곰이 생각하는 것 그것이 묵상입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끙끙거리면서 영적인 고투를 할 때 내 마음에 화, 화병 열이 엄청나게 일어납니다. 내 마음에 화가 발하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결국은 자기가 이 세상의 부조리 앞에서 악인 앞에서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을 강요당하는 것처럼 될 때 그가 자기의 내적인 취약성, 자기 연약성을 깨닫고 오히려 마음이 넓어집니다. 여러분 그래서 여러분이 화가 너무 날 때 여러분을 화내게 하는 그 사람을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방향을 돌리시길 바랍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어떠함을 알게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소서. 내가 이렇게 성 내는 것마저도 내 종말에 어떠한가 내 연한의 그 짧음에 비하면 내 성내는 것마저도 상대화 시킬 수 있다. 내가 지금 너무 화가 나는데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 이 일마저도 나의 짧은 연한 안에서는 상대화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5절, 6절에 내 연한이 짧다는 말은 내가 남은 날 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며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지금 너무 화나는 일도 시간가면 화 안 납니다. 지금 너무나 미운 사람도 시간 가면 안 미워집니다. 지금 너무 애통하고 원통한 일도 연한에 짧음 앞에서는 금방 세월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지금 절대로 내가 그 사람 얼굴 보기 싫다 그렇지 않습니다. 순식간에 바뀝니다. 우리 연한이 너무 짧고 우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날, 하루 반나절 밖에 안 되는 우리 인생을 살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유한성 앞에 가면 웬만한 것을 전부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님 내 인생을 한 뼘 넓이만큼 되게 하시고 그 정도만 내 날을 이렇게 짧은 것이 내 인생이다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그래서 내 일생이 없는 것 같기 때문에 사람이 전성기 때 든든히 서서 가장 잘 나갈 때에도 전성기처럼 견고하게 뿌리를 내린 것처럼 보이는 그 순간마저도 견고하게 보일 때도 진실로 신뢰할 수 없는 허사뿐이라는 말은 불확정적이다라는 말입니다. 전도서 1장에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할 때 그 헛되다란 말은 뭐냐면 안정되지 못했다 안전하지 못하다 신뢰할 수 없다 이런 뜻입니다. 지금 우리가 주식투자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돈 많이 가진 사람이 오랫동안 많이 못 가집니다. 어떤 사람이 부자라고 금방 부자 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전성기를 구가하는 사람마저도 그 사람은 돈을 열심히 버는데 그 열심히 번 돈도 누가 다 가져갈지 모릅니다.

 

사실 너무 우스운 것이 우리가 지금 돈 열심히 벌어도 돈 열심히 버는 사람들이 돈을 어떻게 남한테 빼앗기냐면 그 아버지가 번 돈을 관리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아들이 태어납니다. 그 어리석은 아들이 태어나는데 똑똑한 며느리가 들어와서 그 돈이 전부다 처가로 가게 됩니다. 반대로 똑똑하지 않은 자녀들 배치시키고 그 밑에 훨씬 똑똑한 참모들이 회사를 장악하게 됩니다. 회사도 다 가져가게 됩니다. 그렇게 가고 하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마음먹으면 괜찮습니다. 어차피 내가 번 돈 누가 가져갈지 모른다 이렇게 마음먹으면 편합니다. 그런데 이 돈을 내 자식한테 줘야지 해서 전부다 정주영처럼 이건희처럼 전부다 보십시오. 삼성계열 이건희, 이병철, 정주영 전부 보시면 우리나라 참 유별납니다. 이것은 왜 그게 부도덕하냐면 그 사람들 우리나라 대기업은 국가 돈이 70%이상 들어갔습니다. 자기 돈은 15%정도 들어갔고 국가의 돈이 70% 남의 돈이 15% 국가 자산입니다. 대기업 오너는 위탁 경영인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국민기업으로 하지 않고 전부다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너무나 부도덕한 겁니다. 부도덕한 사람들이 돈 받은 것은 너무 기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국가가 일본으로부터 가옥을 몰수하고 일본으로부터 남은 기업체를 빼앗아서 전부다 거의 국가가 다 공짜로 주다시피 한 겁니다. 그래서 사실 노무현 대통령이 정말 우리나라 지금까지 나온 사람들 중에서 제일 똑똑합니다. 핵심을 알고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에 대통령 참모들은 도덕적으로 절대로 깨끗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 너무 민주적이다 보니까 힘도 없고 아무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겁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하나님께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도 지금 몇 년째 형제간에 재판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생명 다 깨졌습니다. 이제는 점점 대기업도 다 하나님이 세세히 분해시켜서 누가 그 제물을 취할지 알지 못하게 반드시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께서 돈 많이 버실 때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이것 남 가져가도 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버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내 자식이 누릴 것이라고 절대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어리석은 자식을 주십니다. 아버지가 너무 똑똑하고 그러면 반드시 그 밑에 적당하게 보통 수준의 아들이 나오고 그 보통 수준의 아들의 돈을 다 훔쳐 먹는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릅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너무 부지런합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고 영원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너무 투자합니다. 헛되고 덧없는 일에 시간을 너무나 투자함으로 공연히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이게 바로 인생 전성기 때 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전성기 때 하는 일은 뭡니까? 사람마다 든든히 섰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사실 알고 보니까 전성기 때 별로 안 중요한 일로 너무 바쁘게 살고 두 번째로 돈 열심히 벌지만 아무도 그 돈 못 가져가고 그래서 헛된 겁니다.

 

7절에 주여 내가 무엇을 바랍니까 내 소망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지금은 여러분이 깨달으실 나이가 되었습니다.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 여러분 이 시인은 지금 뭐냐면 지금 병에 걸려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병에 걸려있거나 뭔가 몰락했거나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원수 앞에서 조롱당하는 것처럼 살지만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고 불평하지 않는 이유는 이 일을 하실 이는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나쁜 일들을 주님이 행하셨다고 믿어야겠습니까? 사탄이 행했다고 믿어야겠습니까? 만일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나쁜 일은 나쁜 일 전담신, 악신이 했다 이러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도 대책을 못 세우는 악령이 마음대로 나에게 이런 재난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의 도덕성은 보호해주지만 뭐가 됩니까? 하나님 절대 주권이 훼손됩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일어난 나쁜 일마저도 이 일을 행하신 분은 누가 했다고 믿어야 됩니까? 이사야 45장 7절요.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여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그래서 나쁜 일도 하나님과 관련된 일이죠?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나쁜 일도 하나님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이것을 순식간에 사탄아 물러가라 그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징책을 주셨다고 생각하고 참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10절에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제가 볼 때 이것은 예수님 마음 같습니다. 주님의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 진노의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 내가 고민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 요한복음 12장 볼까요? 우리 예수님의 마음. 12장 24절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 자체가 너무 멋있죠? 좀 목가적이고 시적이죠? 이것은 지금 예수님이 죽게 되었을 때 한 말입니다.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여기에 핵심이 있습니다. 자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27절요.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요한복음식 겟세마네 기도입니다. 주님이 이 기도를 한 번만 드린 것이 아니라 종종 드렸다는 느낌이 들죠?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이 말씀이 우리 주님에게 있었던 큰 영혼의 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소망을 어디로 두어야 합니까? 그러면 여러분 주님께 소망을 둔다는 말은 뭐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많이 하는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신 그것이 여러분 나중에 저울에 달 때 인생의 무게를 저울에 달 때 그것만 올라갑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뜻을 행한 그것만 올라갑니다. 주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셔서 내가 눈물을 흘릴 때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손님처럼 되었고 거류자 하룻밤 묵어가는 숙박객처럼 되었는데 내가 너무 하나님과 멀리 떨어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과 내 사이에는 너무나 먼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뜻입니다. 왜냐면 자기 몸이 너무 아프니까 병상에 누워있거든요. 병상에 누워있기 때문에 내가 이제 하루 살다가 죽을 것 같습니다 이 말입니다. 내가 이제 하루 살다가 죽을 것 같고 생명이 한 1년 정도 밖에 안 남은 겁니다. 죽음을 1년 앞두고 드린 기도정도 라고 볼 수 있겠죠? 그래서 주는 나를 용서하사 그런데 병상에서 아직까지 죄 문제가 해결이 안 된 겁니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숨 넘어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시인의 기도입니다. 여러분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잘 표현했습니다. 38, 39, 40, 41 이것은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예수님 자신의 기도이고 그래서 예수님이 왜 아픈 사람을 동정했는가 이해가 되죠? 이런 기도를 그렇게 많이 읽었기 때문에 동정심이 많은 겁니다. 여러분 시편 많이 읽으면 동정심이 많이 생길 가능성이 많습니다. 어떻게 되요? 남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이 생각나겠죠? 그래서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에 신적 동정심을 공급한 하나의 영감의 원천입니다. 시편은 동정심을 길러주는 좋은 책입니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38, 39, 40, 41은 병상에서 한 뼘밖에 남지 않은 사람 암 걸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한 뼘밖에 남지 않은 사람 정도의 종말론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자기 영혼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투하는 기록이다. 물론 다른 시편도 많습니다. 특별히 병과 관련되어서는 그런 시편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우들 중에서도 몸이 아픈 사람이 있죠? 병들어 속이 망가져서 실제로 속이 망가지면 신체가 망가집니다. 내면이 망가지면 반드시 망가집니다. 우리 영혼이 망가지죠? 영혼이 망가졌다는 말은 뭐죠? 영혼과 이음매를 가지고 있는 육체가 망가지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육체도 망가지면 영혼이 망가집니다. 내가 크게 교통사고를 당해서 3도 화상을 입으면 내 영혼도 같이 망가집니다. 육체가 망가지면 영혼이 망가지고 영혼이 망가지면 육체가 망가집니다. 그래서 외모가 너무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은 너무 그때 병듭니다. 사춘기 청소년들은 외모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못생겨도 엄청나게 행복하게 사는 사람 이야기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춘기 때 지금 중학생하고 초등학교 고학년 고등학생 까지는 아마도 10년 동안은 외모 문제가 친구에게 내가 어떻게 인정받나 혹시 내가 못생겼기 때문에 친구에게 사랑 못 받나 이런 것들이 그들의 60% 이상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이런 우리를 망가지게 만드는 이런 사회병리학적인 문화도 극복을 하고 그 안에 병든 우리 영혼도 보호하고 개인도 보호하는 이런 건강한 공동체가 참 좋습니다. 우리 교회가 어떻게 그러면 치료가 되냐? 그것을 극복한 사람들이 밝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치료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목사들은 여러 사람을 많이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극복한 사례들 특별히 우리 청소년들을 가진 부모님들은 이런 점에서 우리 자녀들이 병들지 않도록 사실 공부 못한다고 자살하는 이것은 우리 한국사회가 너무 완악한 사회라는 뜻입니다. 공부를 못해도 분명히 살길이 있습니다. 분명히 있는데 공부 못한다고 과목 8과목 어떤 사람에게 너무 유리한 과목입니다. 우리나라가 구석기 시대였으면 창던지기, 도끼질 이런 것도 같이 다 경쟁을 해야 되는데 지금은 수학, 너무 짧은 시간에 급하게 치는 시험 이때 성적 좋은 사람만 좋으니까 사람마다 머리가 느리게 돌아가고 2시간만에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15분 만에 치는 시험 그래서 저는 시험성적 매길 때 시험성적은 40% 정도 밖에 안 매깁니다. 60%는 전부다 학습태도 출석으로 점수를 줍니다. 시험성적이라는 것은 너무 짧은 시간에 순식간에 해야 되기 때문에 이것은 성질 급한 사람만들기 너무 좋은 겁니다. 그것 못한다고 자살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공부 못하는 사람들 입으로만 위로해서는 안 됩니다. 공부 못했지만 출세하고 이 세상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음을 보여주어야 되고 얼굴 좀 못생겼지만 인생 사는 데 너무 잘 풀린 사람들 이야기가 나와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총체적으로 하는 것을 회복시킨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회복한다 할 때 병상에 앉은 개인만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 모두를 병들게 만드는 사회구조를 혁신하면서 회복하는 여기까지 우리가 가야겠습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 사회가 자살을 권유하는 사회로 성한 사람을 타격하여 병상에 눕게 하는 사회인 것을 용서해주시옵소서. 우리 어른들이 만든 이 악한 사회가 수능점수가 모자른다고 자살하고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자살하는 청소년들을 양산하고 1년에 만 6천명씩 학교를 떠나버리는 참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또한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 하나님 이 사회 안에 살다가 병 들어서 몸과 마음이 병 들었습니다. 주님 헛된 일에 노력하며 몰아치는 경쟁 분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암으로 그 몸을 망쳐가면서까지 회사에서 살아남는 사람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 우리 사회가 이렇게 힘든 사회입니다. 주님 우리 모두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 우리가 본질적으로 추구할 가치를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교회가 우리를 멍들게 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시고 교회의 수많은 그 일들이 우리 영혼을 상처내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시고 자유를 위해서 모이게 하시옵시고 우리 성장을 위해서 모이는 자유의 공동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교회 때문에 가정이 힘들어지지 않게 하시고 교회 일 때문에 우리 영혼이 망가지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시고 하나님 교회 오는 것은 자유이며 특권인 것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 이 모든 일에 완전한 자유함으로 위협받지 않고 내적인 자유와 확신을 가지고 참여하는 교회생활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한 뼘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우리 모든 교우들을 하나님 이 시간 격려하시고 그 병상에서 그들이 떠나가기 전에 하나님 속히 회복시켜 주시옵시고 그들의 대적자들에게 보란 듯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연약한 건강으로 나오지 못한 교우들을 살려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그들 살려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가족에게 돌려주시옵소서. 우리 공동체에 돌려주시옵소서. 오늘도 출근하는 우리 교우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절제하게 도와주시옵시고 돈 버는 일에도 절제하게 도와주시옵시고 영혼을 상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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