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시편 3-4)
둘 다 잠잘 때 드리는 기도입니다. 앞의 3편은 자고 나서 깨어서 드리는 기도고, 잠 잘 자고 깨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기도입니다. 뒤에 4편은 잠을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들끓는 불평과 원망과 약 오름 이런 상태를 극복하는 기도입니다. 둘 다 잠과 관련된 기도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 적은 시라고 표지가 돼 있습니다. 3편을 읽어보면 인해전술로 나오는 대적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2절 ‘많은 사람’이 나옵니다. 6절 ‘천만인’ 이 나오고 7절 ‘나의 모든 원수’가 나옵니다. 우리가 지금 원수에게 쫓기는데,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갔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 압살롬의 반역. 사무엘하 17장에 맏아들 암논이 압살롬의 여동생. 암논의 이복동생이 압살롬인데, 압살롬에 다말이라는 여동생이 있는데, 그 여동생이 암논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합니다. 왕의 궁중 안에서. 그래서 압살롬이 자기 바로 친누이의 복수를 위해서 암논을 죽입니다. 자기 형 암논을 죽이고 3년 동안 망명생활을 지방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 압살롬이 아버지를 반역해서 이스라엘 왕국 2분의 1을 끌고 갑니다. 그래서 압살롬이 아히도벨이라는 유명한 참모를 거느리고 다윗의 궁중을 유린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압살롬에게 피해서 머리띠를 헝클고, 왕은 원래 머리 의관을 잠잠하게 합니다. 왕으로서의 책무를 다 스스로 포기하고 재를 얼굴에 흩뿌리면서 맨발로 감람산, 올리브 산으로 도망가는 장면입니다. 그때 나의 대적이 많다. 다윗이 그런 심정에 이런 시를 지었다고 할 때 여러분과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가 죄가 전혀 없는데 이런 애매한 고통을 당한다는 확신이 들 때는 괜찮습니다. 우리가 전혀 죄가 없는데 갑자기 나에게 닥친 고난 이거 견딜만 합니다. 정신적인 여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 죄와 관련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창피를 주신다고 생각하면 그때 한없이 슬픔과 낙망 속에서 무너져 내립니다. 다윗이 왜 이렇게 바로 자기 아버지 어머니의 침상에서 근친상간이 일어났을까, 다윗 자신이 그런 나쁜 짓을 한 왕이었습니다. 수도경비사령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했던 사람입니다. 다윗 자신이 바로 성적인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성적인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물론 그건 지금 현재 용서를 받았고,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 사건은. 그런데 다윗 자신이 벌써 그런 흉악한 죄를 범하고 죄책감 속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죄를 용서받았지만 여전히 하나님 앞에 유감스러운 일로 남아 있었는데, 바로 자기 아들 둘이 한 사람은 성폭행범이 되고 한 사람은 살인범이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자기가 성폭행범이 되고, 살인을 했습니다. 정확하게 자기가 했던 죄악의 대역을 아들 둘이 나누어서 하고 있는 겁니다. 기가 막힌 일인 겁니다. 자기가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암논은 자기 여동생 다말을 범하고, 여동생의 친 오라버니 압살롬은 암논을 죽였습니다. 살인과 성폭행. 성범죄와 살인이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정확하게 옛날에 자기가 범한 죄를 완벽하게 재생시켜 놓는 그 일이 바로 자기 침상에서 일어났습니다. 자기 죄를 생각나게 만드는 고난이 사람에게 큰 고통이 됩니다. 자기 죄를 생각나지 않게 하는 고난, 애매한 고난은 정신으로 버텨나갈 수 있지만 나의 죄를 생각나게 만드는 고난은 그때 무너지게 됩니다. 지금 내가 당하는 고난은 내 죄를 10년 기다렸다가 심판하시는 무서운 심판이다. 이제 나에게는 구원이 없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변의 모든 대적들이, 보아라, 저 사람 예전에 저질렀던 죄 때문에 심판받고 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은총을 잊어버렸다. 이렇게 말하는 그 장면이, 이것이 영적으로 우리를 붕괴시키고 어렵게 하죠.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음 앞에 압도됩니다. 대적이 많을 때 그리고 100% 나의 대적이 나의 유죄를 확신할 때, 내가 지금 당하는 이 고난이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있는 속 깊은 사연은 아무도 모르고, 그냥 저 사람이 부도나는 걸 보니까 저렇게 망하는 거 보니까 저렇게 가정이 박살나는구나, 자녀가 잘못되는 거 보니까 숨은 죄가 많구나. 저 사람 죄 때문에 그렇다고 봅니다. 그렇게 험담 중상 모략하는 사람이 많다. 이 많음이 우리를. 스페인 세발랴라고 하는 한 도시에 건실하고 의로운 한 유대인 청년이 살았는데, 스페인 세발랴는 유대인 집성촌,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던 집성촌입니다. 이 유대인 청년은 거룩하고 아름다웠는데, 스페인 사람들이 유대인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에 유대인을 어떻게 해서든 마을에서 쫓아내려고 하는데 핑계거리를 찾지 못했어요. 그런데 그 마을에 우물가에서 마침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그 지점에 그 청년이 우연히 지나갔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 청년을 살인범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리고 거짓증언자 10명을 동원했습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그 장소에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은 저 남자였다, 나는 보았다, 나는 보았다, 많은 증인들이 배심원보다 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이 사람을 정죄했습니다. 이 경건한 세발랴의 유대인 청년은 감옥 속에 하릴없이 갇혔습니다. 그래서 그는 살인범으로 몰렸습니다. 그때 그는 시편을 읽고 랍비의 상담을 받았습니다. 많은 랍비들이 상담하고 위로했지만 그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네의 결백을 믿네, 자네의 백골이 진토가 돼서 이 땅에 훨훨 날릴 때 천상에서 하나님께서는 위로를 할 거네. 이런 위로만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한 랍비는 매우 실제적인 위로를 했습니다. 이렇게 둘이서 귀를 속삭이며 면회가 매우 짧게 이뤄졌습니다. 면회가 끝난 후 이 청년과 랍비가 둘 다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재판이 그 다음날 열렸습니다. 스페인 사람들 재판하는 방법은 참 나쁜 방법입니다. 종이 2장을 써서, 네가 이 종이 중에서 하나를 뽑는데 하나를 뽑는데 Guilty, 유죄라는 종이를 뽑으면 유죄이고, Not Guilty, 무죄를 뽑으면 무죄가 된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50% 정도는 유죄가 됩니다. 그런데 이 스페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둘 다 유죄라고 썼습니다. 둘 다 Guilty 니까 어떤 걸 뽑아도 죄인입니다. 그런데 랍비가 뭐라고 가르쳤냐면 그 중에 하나를 삼키라고 그랬습니다. 말아가지고 삼키라, 그러면 뭐가 남았습니까? Guilty만 남았으니 삼킨 건 뭐가 됩니까? 이론적으로? 무죄가 돼야 합니다. Guilty가 남았으니까 무죄를 선택한 겁니다. 이런 방법으로 이 청년이, 이런 식으로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학살을 견뎌냈습니다. 유럽에서 유대인들은 시편을 읽으면서 시편에서 많은 대적들, 유대인들이 이걸 제일 이해를 잘 합니다. 압도적으로 많은 대적들에게 쫓겨본 사람들은 시편을 이해합니다. 압도적인 대적들, 압도적인 채권자들로부터 쫓겨본 사람들, 바짓가랭이를 끌어당기면서 꼬집으면서 손가락질하는 많은 대적들 앞에서 속삭이는 대적의 중상모략을 견뎌본 사람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도움이란 말이 구원입니다. 로 에슈아 로우 엘로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구원을 베풀지 않는다, 그에게는 구원이 없다. 하나님은 그를 버렸다. 그래서 그에게는 이제 도와줄 후견인이 없다, 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확신 속에는 대적의 소리가 클수록 어떤 확신이 새록새록 솟아나나요?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영광이시요라는 말은 다른 말로 번역하면 나의 군사력이요 이런 뜻입니다. 카보드, 이 단어가 영광이라는 말만 있는 게 아니라 군사력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이 번역할 때 히브리어를 잘 아는 사람이 없어서 번역에 오역이 좀 있습니다. 나의 군사력이요 이런 말입니다. ‘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누가 지금 머리를 숙이고 있습니까? 고난당해서 머리를 수그린 남자입니다. 고난당했기 때문에. 우리 한국 사람은 특별히 그렇습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내 운명이여, 고난당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은 전부 다 정죄감에 내가 죄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돼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면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다니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아무리 죄가 없는 사람도 고난을 당하면 고개를 쳐 박고 다닙니다. 머리를 박고 다닙니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많은 대적들이 죄인이라고 안 해도 본인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난당할 때, 머리를 처박고 다니고 머리를 숙이고 다닙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이 확신이 언제 들었습니까? 수많은 대적들의 속삭임 속에 이 확신이 들었어요.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의 확신. 여러분이 아무리 많은 비방을 받는다 하더라도 여러분 주변에 1개 여단 병력이 진 칠지라도 여러분의 모든 친한 사람들이 여러분을 이해하지 못할 지라도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이해하는 그런 구원의 확신이 정신건강을 지켜줍니다. 참 지켜줍니다. 여러분 이건 어찌 보면 고집처럼 보이고, 아집처럼 보입니다. 가끔은 고집과 아집일지라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붕괴되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죄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자포자기한 것보다는 하나님의 구원의 확신을 받고 견디는 게 낫습니다. 어떤 사람을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해서 죄를 고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죄인도 손가락질해서는 못 고칩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짓고, 고개를 숙이고 다닌다 할지라도, 저놈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돌팔매질해서는 그 사람이 낫지를 못합니다. 그 사람 낫지 않습니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보고 이 화냥년, 하며 돌을 가지고 머리를 친다 하더라도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은 바뀌지 못합니다. 그때 돌을 치지 않은 예수님만이 그 여인을 도울 수 있습니다. 천만인이 돌로 내 머리를 칠지라도 주님은 내 방패시고, 주님은 나의 군사력이시고, 주님은 고개 숙인 내 비참한 인생, 시궁창에 굴러 떨어진 내 인생, 옷매무새도 흐트러져버리고, 인간의 존엄성마저도 빼앗긴 이 간음여인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십니다 이렇게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께서 죄인의 마지막을 고쳐주셔야만 우리 하나님이 그 여인을 그 남자를 창조하신 목적이 성취십니다. 여러분 죄를 짓는다 할지라도 죄인 중에서라도 이런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비록죄인일지라도, 돌에 맞을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이라 할지라도 내가 비록 부도를 내고 이렇게 도망치는 죄인일지라도, 약속어음을 갚지 못해 지금 석 달째 기도원에 갇혀 있는 파산한 실업자라 할지라도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창조주 당신만이 내 머리를 드십니다. 나를 다시 한 번 재기하게 하십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이런 확신이 필요합니다. 4절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그래서 부르짖는 기도가 언제 필요합니까? 여러분이 이때 부르짖을 수 있겠습니까? 많은 대적이 천만인이 여러분을 향해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넘어지길 바라고 있고, 여러분이 도움 얻지 못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때 우리 하나님 앞에 주는 다른 사람이 아닌 주는 나의 방패이십니다, 나의 군사력이십니다, 내 머리를 드시는 분입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이 응답이라는 것은 군사력을 보내주는 게 아닙니다. 이 응답은 그냥 응답일 뿐입니다. 이 응답을 받고 나서, 세 가지 동사가 나옵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이 동사가 제일 중요합니다. 나는 기도 응답받고 잠들었다. 나는 누웠다, 잠들었다, 깨었다, 왜냐하면 주께서 나를 지탱시켰기 때문이다. 여러분, 염려와 근심 없이 잠자는 방법 있습니까? 기도를 많이 해도 잠이 안 오고, 책을 많이 읽어도 그렇고, 우리 소은이는 오늘 드디어 90점 넘기로 자기가 결심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한 번도 시험 칠 때 안 아픈 채 시험을 보러 갑니다. 요즘 우리 소은이가 공부 바람이 들어 난리입니다. 옛날에 우리 소은이는 반 40명 중에서 한 30등 해도 행복했던 사람입니다. 인생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사람입니다. 제 자신도 절대로 공부 가지고는 스트레스 안 주고, 계속 놀러가자고 했는데, 요즘 우리 소은이가 약간 공부에 대한 각성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90점을 받아서 40명 중에 20등이 안 됩니다. 요즘 학원에서 워낙 잘하기 때문에 95점을 받아도 10등이 안 됩니다. 드디어 우리 소은이가 20등 권으로 진입을 합니다. 분명히 할 겁니다. 우리 소은이가 요새 공부를 그렇게 하고, 모의고사에서 만점을 받는데, 잠을 못 자는 겁니다. 공부하는 것, 갑오경장, 갑신정변 이걸 계속 틀립니다. 김홍집 내각 안 맞아서 어젯밤에 끝까지 확인하고, 제가 하기 5분 전에 잠이 들었더라고요. 어린 학생도 벌써 그렇습니다. 공부한 것이 확신이 들지 못하면 잠이 들지 못합니다. 내일 사업이 잘 될 것인가, 내일 개업을 할 것인가, 내일 과연 손님이 올 것인가, 내일 과연 그 사람이 약속대로 돈을 갚아줄 것인가, 이런 저런 것들은 우리를 잠자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어쨌든 하나님의 달콤한 위로를 받으며 스르륵 잠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불확실성 속에서, 염려 속에서, 잠잘 때 기도할 때 응답받지 못하고 고함만 지르면 잠이 안 옵니다. 최고는 확신입니다. 기도는 많이 했는데, 소리는 질렀는데, 감미로운 응답의 확신이 안 들면 잠이 한두 시간 안 옵니다. 끝까지 응답의 확신이 올 때까지 눈물로 베갯속을 적시며 기도하다가 스르륵 자는 게 참 좋습니다. 그때 잠자는 것은 보통 잠자는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고, 내 대문 앞에서, 내 문 앞에 와서 천만인이 내 사무실 앞에서 진을 치고 있을 때, 그리고 나에게 비방하는 말을 할 때, 저놈이 다시는 기도응답 다시는 못 받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할 때,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잠들 때, 잠자고 일어났을 때, 여호와가 나를 이 밤도 붙드셨구나. 시편 127편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이런 확신을 갖게 됩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천만인이 진을 치는 한 가운데 잠이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고 일어났더니,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훨씬 공격적인 기도죠? 앞에서는 자기를 보호해달라고 방패를 달라고 기도했는데, 뒤에 새벽에 한 번 자고 일어나서 하는 기도의 내용이 얼마나 공격적으로 바뀝니다. 악인을 정벌하고 무장해제 시켜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사실상 알고 보면 신앙의 적이 많습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 하나님을 조롱하는 저 삶과 가치관과 그들의 죄악된 문화로 우리가 꿈꾸는 세계를 방해하는 대적들이 무진장 많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도시의 한복판에서 하나님 나라의 순수한 공동체의 꿈을 꿀수록 대적이 많은 걸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이런 도시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성산에서 들려오는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면 우리는 오아시스 없이 사막을 가는 대상과 같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팍팍한 도시문명의 한복판에서 부르짖는 기도를 가지고, 하나님 천만인이 에워싼 이 엄청난 인해전술로 우리를 압박하는 대적들의 한 가운데서 절대적인 구원의 확신을 기도로 응답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자고 눕고 깨는 것은 우리 인간의 자율신경이 조절되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되는 것인데, 하나님이 자고 눕고 깨는 이일을 지탱시킵니다. 이 일을 계속 일어나게 하십니다. 이 밤에도 여러분을 자고 깨고 일어나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의 고개 숙여진 머리를 들게 하시는 하나님을 간절히 만나시길 바랍니다. (행사일정 광고) 이 모든 행사들은 행사를 하는 건 쉽지만, 이 엄청난 영적인 활력을 가지고 행사를 지탱시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 모든 행사들은 어마어마한 영적인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성경공부, 성가대수양회도 영적인 에너지가 필요하고, 여름수양회는 엄청난 수력발전소급 하나의 영적인 활력이 모아져야만 수양회가 은혜로워집니다. 이 에너지가 모아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전부 다 축전기가 되어서, 모여 있어야만 Power Plant. 발전기가 생겨서, 신령한 모임으로 유지됩니다. 여러분과 제가 시편기도를 통해서 이런 교회 안에 당면한 행사들을 영적인 발전소를 만들어서 거기에 오는 사람들을 기도하는 사람을 빼고, 혜택을 누리는 어린 신자들이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영적인 발전소, 영적인 진지가 생겨서 천만인이 둘러친 이 도시 한복판에서 우리 교우들이 눕고 자고 평안히 깨기도 하는 이런 기본적인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수 있도록 수련회가 그런 행사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통성기도) 아버지 하나님 도시 문명 한복판에서 천만인이 진을 치고 하나님 백성을 윽박지르고 협박할 때,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와주소서.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주님의 진으로 데려가셔서 기도응답의 확신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하나님 우리는 개척교회입니다. 아버지 우리는 아직까지 영적으로 강력한 공동체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말씀이 빈약하고 아직도 모든 것이 빈약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을 섬기기에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 공동체를 성령의 충만함으로 채우시고, 은총이 사라진 공동체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대적한다할지라도 하나님의 성산에서 응답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가 내일은 청년부 성경공부가 있고, 모레는 성가대 수양회가 열립니다. 우리 교회 하나둘씩 수련회가 열립니다. 이 모든 일은 엄청난 영적인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방패되시고, 우리의 영력이 되시고, 천만인을 치고 악인의 떼를 공격할 수 있는 영적인 활력을 주시고, 발전소를 주소서. 아버지 하나님, 우리 공동체를 채우시고 무장시켜 주소서. 도와주소서. (마무리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 교회 기도제목이 첩첩산중처럼 쌓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교회 사랑하는 형제자매들 기도제목이 쌓여서 환우들의 고통도 쌓이고, 초신자들의 어려움도 쌓이고, 생활이 힘듦도 쌓이고 삶 전체가 흔들리는 담과 같은 교우들도 있습니다. 아버지 이 모든 기도제목들은 우리를 현기증나게 만들만큼 엄청난 영적인 능력을 요구하고, 엄청난 영적 활력을 요구하는 기도제목들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지 못하는 공동체, 우리 공동체에 구원이 없다는 비방과 대적들의 속삭임들을 물리치도록 공격적인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진친 악인들의 뼈를 꺾으며 이를 꺾을 수 있는 영적인 활력을 허락하여 주소서. 신앙이 혼미하고 마음이 냉미해져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하나님을 순수하게 모르고 그냥 교회문을 두드린 30여명의 순전한 초신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 중직의 형제자매들이 기도의 용사로 거듭나게 도와주시고, 독립적인 신앙생활이 가능하며 어디에서도 전천후 신앙인처럼 하나님 영적인 공동체를 이루어갈만한 장군이 되게하여 주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우들 중에서 잠을 박탈당하고 생명의 안식을 박탈당한 자, 눕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깨어나지도 못하는, 식물인간처럼 사는, 안타까운 영적인 무기력 속에 사는 사람들 있습니다. 하나님 그들을 되돌려 주시고, 기력을 회복시켜 주시고, 진친 대적들을 물리쳐 박차고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오늘도 우리를 지탱시켜주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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