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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새벽기도.설교 (시편 34편)

by 【고동엽】 2021. 12. 4.

1절부터 10절까지는 다윗의 개인적 곤경과 고난에서 구원받은 경험을 간증하는 내용입니다. 11절부터 22절은 젊은 세대에게 부모님 세대가 자기가 하나님을 평생을 통하여 맛보아 온 그 내용,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경험해 본 결과 소자들아 와서 젊은 세대들아 와서 내게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함을 너에게 가르치리로다. 여러분 11절이 신앙이 전달되는 결정적인 고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 세대가 아버지 세대가 1절부터 10절에서 극한 고난과 곤경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맛보아 알다 경험적으로 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아 아는 경우는 대부분이 고난과 곤경을 통해서입니다. 고난과 곤경을 통할 때만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알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맛보아 아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함을 많이 맛보려면 시시때때로 고난 가운데 빠져있는 경험이 필요하고 고난 가운데 천사가 둘러 진을 치는 경험을 할 때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우리 주부들이 늘 음식 만들 때 맛을 보죠? 주부들이 음식을 맛보아 알 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먹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먹고 맛을 보고 기운을 차리고 안다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을 확실하게 본 사람이 젊은 세대들에게 소자들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의 개인적인 고난과 곤경은 젊은 세대가 배워야 할 신앙적인 교훈이 이루어지는 현장이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척 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다 이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다윗이 언제 아비멜렉한테 쫓겼어요? 언제 미친 척 했습니까? 사울왕에게 쫓겨서 블레셋이란 곳으로 도망을 갔는데 시글락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국경의 서쪽 해변가로 밀려 갔습니다. 여기 시글락이라고 하는 작은 해변가에서는 약간 내륙 도시에 아비멜렉이라는 왕이 있었는데 다윗이 아비멜렉의 봉신으로 자기를 붙여 살았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왜 봉신이었는가가 중요한데 다윗 혼자만 도망간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왜 한 나라의 그 왕이 될 사람이 블레셋 밑에 가서 식객이 되었는가 하는 것은 다윗 자신이 혼자 간 것이 아니라 다윗의 떼거리가 몰려다녔기 때문에 다윗 같이 떼거리가 몰려다닐 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전쟁과 약탈을 통해서 끊임없이 먹을 것을 간구하거나 아니면 힘센 왕 밑에 가서 용병으로 자기 몸을 파는 방법 밖에 없는데 다윗은 용병으로 자기 몸을 팔러 갔습니다. 그런데 용병으로 몸을 팔려다가 발각되어서 쫓겨납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살아남기 위해서 아예 미친 척을 하는데 침을 질질 흘리면서 블레셋 그 신하들이 저 놈이 큰 인물 될 놈인데 그렇게 하면서 그러니까 블레셋 왕이 있다가 ‘야 이 미친놈이 뭐 큰 인물이 되겠냐’ 이러면서 두 번째는 쫓아냅니다. ‘우리나라는 미친놈 충분히 있으니까 저녀석 받지 마라, 우리나라에 미친 녀석이 적어서 또 한 놈 받겠냐’ 그러면서 쫓아냅니다. 그때 미친 척 해서 살아남은 이야기를 시로 지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미친 척 한다는 말은 굴욕감을 감수하면서 구원받는 겁니다. 우리 인간의 존엄성 일부가 훼손되면서 받는 구원입니다. 극한 고난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런 극한 고난 가운데서 이렇게 했습니다. 여호와를 항상 높였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높임이여 그를 높임이 내 입에 계속 되리로다 여호와를 높이는 것이. 그래서 먼저 하나님이 나의 고난 가운데서 높임 받기를 바란다고 먼저 여러분께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곤경을 당할 때 제일 하지 말아야 될 말이 ‘아이고 나는 죽었구나’ 이 말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안 해도 죽긴 죽는데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고 나는 죽었구나’ 이렇게 하지 마시고 딱 고난을 당할 때 무슨 생각을 하냐면 주님 제 고난을 통해서 실감은 안 가지만 시편에 있는대로 말씀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높아지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하십시오.

 

여호와를 내가 항상 송축함이여 내 환경과 상황과 상관없이 나는 먼저 그를 송축하겠습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겠습니다, 곤고한 사람이 내 이야기를 듣고 기쁨을 가질 수 있도록. 그래서 나와 함께 있는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권유하려고 합니다 여호와를 높이세 그는 광대하시다. 같이 나는 동참시키려고 합니다. 여러분 내 개인적인 얘기를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나는 곤고한 자였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국경에서 망명당한 한 쫓기는 벼룩처럼 죽은 개처럼 이스라엘 국경 남단을 슬피 울며 방황했습니다. 나는 심히 곤고한 자였습니다. 나는 국제 난민이었습니다. 블레셋에서는 미친 사람으로 분류되어서 쫓겨났고 이스라엘 땅으로부터는 왕이 되려는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사람으로 비난받아 쫓겨났습니다. 주님 나는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피합니다. 주님 제가 어디에 피합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피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피했다는 말이 뭐냐면 사람들 속에 피하지 못하고 사람 없는 곳에 국경선 사각지대 이스라엘 군대가 도저히 미칠 수 없는 황야에 몸을 맡깁니다. 블레셋에게도 쫓겨났고 이스라엘에게도 쫓겨났고 갈 데는 뭡니까? 사람이 살지 않는 유대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여호와께 피했다는 말은 유대 광야의 동굴 속에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아둘람 굴과 마혼 황무지와 셋 황무지와 엔게디 광야 여기가 바로 여호와께 피했다. 여호와께 피했다는 말은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하지 않고 홀로 무인지경의 광야에 가서 피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모든 쫓기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지는 고달픔입니다. 그래서 그는 무인지경의 광야에 쫓김 받았기 때문에 일단 먹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 혼자만 다닌 것이 아닙니다. 그 주변에 많은 부하들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래서 그가 마혼 황무지 셋 황무지 엔게디 광야 반석과 바위로 넘실대는 곳을 다녔는데 그런 황야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방법이 아니면 도저히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황무지에서 살아났고 광야에서 살아났습니다. 젊은 사람은 굶주릴 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먹고 살기 때문에 절대로 굶주리지 않는다. 여러분께서 금식기도 할 때 뭘 먹어야 되는지 아세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고 알아야 됩니다. 금식기도 할 때 만일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안 먹고 밥을 굶으면 위장에 엄청난 위험한 행동입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먹는 곳이 어딥니까? 광야에서 보내는 시간입니다. 마혼 황무지에서 보내는 시간이고 아둘람 동굴에서 보내는 시간입니다. 여러분께서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에 기력이 회복되는 경험, 이것이 바로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을 광대하시다고 찬양하자고 부르짖는 하나의 내용입니다.

 

8절요.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러분도 이 세상 살면 반드시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람에게 피해 가서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이 나를 쫓아다니는 사울 군대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족과 친지와 직원들이 사울 군대처럼 여러분들을 박해할 수 있고 쫓아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배우자가 자식이 선생님이 학생이 여러분을 죽여 가는 사울 군대처럼 될 때 정말로 외롭고 고독할 때 굴속으로 들어가서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아 먹으면서 그분께 피할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고 아는 사람만이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 먹지 못하고 동굴로 피하고 반석으로 피하고 무인지경의 광야로 피할 때도 한 가지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을 쫓아다니는 사울 군대가 있습니까? 여러분을 박해하는 블레셋 왕 아기스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께서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아 아는 이 일로 나를 인도하기 위해서 나를 이렇게 한 마리 벼룩처럼 연약한 자가 되게 하는구나 죽은 개처럼 나를 이렇게 박대하시는구나, 다윗 같은 사람도 늘 이렇게 했습니다. 어찌하여 사울 왕이시여 이스라엘 대왕이신 당신이 죽은 개와 같은 나를 이렇게 쫓아다닙니까 벼룩 한 마리 잡기 위해서 초가삼간을 태우려고 합니까 이렇게 하면서 자조섞인 말을 합니다. 자기를 죽은 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사람을 바라보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쫓는 사울 군대, 다윗은 한 번도 사울이라는 사람을 입에 놓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주여 나를 쫓아다니는 저 사울 군대를 벌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 항상 이 고난과 곤경이 하나님과 자기 자신의 영혼 사이에 있어야 할 친밀한 교제를 위한 발판이 된다고 늘 말했습니다.

 

젊은 사자는 굶는 일이 있더라도, 젊은 사자는 거의 안 굶습니다. 원래는. 그런데 젊은 사자가 굶어야 될 만큼 기근이 올 때도 나는 기근을 벗어난다 왜?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끊임없이 마시니까 이런 것이 다윗의 고백입니다. 10절요.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학생 같으면 뭐에 부족함이 없겠습니까? 젊은 대학생은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모든 자는 무슨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까?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러분께서 여기서 꼭 이것에는 예외입니다 하면서 학점, 나는 아무리 하나님을 찾아도 학점은 늘 부족함이 많습니다 이렇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진짜 여러분이 찾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원종수 권사님은 대전고등학교에서 400명 중에서 350등 한 분입니다. 하나님과 관련 없이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다녔는데 그 담임 선생님이 불러서 너 어머니 밖에 안 계시는데 이렇게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겠느냐 분발하여라 딱 한마디 들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 말씀도 아니고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2학년부터 분발하기 시작해서 1등으로 졸업했습니다. 지금도 원종수 권사님은 미시간주 부근에 교포들에게 암전문 박사로 영적인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의학면에서도 타고난 업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분명히 보십시오. 여호와를 찾는 사람들은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부족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지 않는한 충만하게 채우십니다. 지금도 보시길 바랍니다.

 

15절에 여호와는 누구를 복줄까 궁리하고 복 줄 실마리만 찾으면 쏟아 부어주시기 위해서 의인을 향하십니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이 이 말을 정말로 진심으로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의인을 찾아서 온 우주 만물을 다 뒤져서 복 줄만한 사람이 없는가를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그러므로 복 받을 만한 하나님을 추구하는 고조된 추구가 있어야 되고 초점이 잡힌 추구가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젊은 사자인 여러분이. 여러분 우리 젊은 학우들 여러분들께서 하나님 앞에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 만큼 부르짖는 기도의 사람이 이 젊은 날에 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이 들어 쓰십니다. 여러분 특별히 우리 교우들 여러분들께서 기억할 것은 여호와의 눈은 항상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그래서 저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받는다고 봅니다. 지속적이고 간절한 기도는 언제 응답받는가의 차이일 뿐 반드시 응답받으며 특별히 새벽에 골이 띵하고 아픔에도 불구하고 나와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그래서 여러분들이 복을 받으리라 믿고 저는 여러분 때문에 저도 덩달아 복 받을 줄 믿는데 우리 장경철 목사님 말씀처럼 여러분이 잘 돼서 저도 덕보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한다고 했는데 한 사람만 잘 되어도 옆의 사람도 다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잘 될 가능성이 안 될 가능성보다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만 명의 술주정뱅이보다 한 명의 깨어있는 사람이 만 명을 다 끌고 가는 것이 세상의 원리이기 때문에 9999명이 다 깨어 있는 지도자가 안 되어도 9999명이 술취한 술주정뱅이라고 할 지라도 한 명만 깨어 있으면 만 명의 운명을 지고 갑니다. 이 세상은 절대로 잘못될 가능성보다 잘 될 가능성이 훨씬 많습니다. 하나님의 관심 초점 어린 시선을 자아내고 하나님의 귀 기울이심을 유도하는 사람 그 사람이 이 세상에 복을 펼칠 도구가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이 세상에 복을 유통시키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찾습니다. 내가 일산두레교회를 축복하고 싶은데 누구를 도와야 축복할까 하나님의 눈은 의인을 찾으십니다.

 

17절입니다.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그래서 여러분도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의 심방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심방 받을 때 목사 심방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 많이 해서 응답 받은 사람 심방을 받아야 합니다. 의인의 역사는 간구하는 힘이 크기 때문에 하나님께 오랫동안 커뮤니케이션이 잘 단련된 사람의 심방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사도 심방을 받아야 하고 교황도 심방을 받아야 합니다. 누구를 통해서? 의인의 심방을 받고 기도 많이 해서 응답 많이 받은 사람의 기도를 들을 때 우리가 응답받습니다. 하나님께 기도 많이 한 사람은 하나님이 즉각 기도를 들어주시고 신실하게 들어주심으로 의인의 간구가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으로 슬퍼하는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구원의 전문가이신 하나님 중심으로 슬퍼하고 회개하는 자를 즉시 건져주시는 데 전문가이신 하나님 그분을 가까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록 의인이 고난이 많다는 말이 아닙니다. 의인에게는 고난이 없을 수도 있는데 의인에게는 때때로 고난이 많아도 그 고난은 전부다 구원을 경험하게 만드는 경험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겁니다. 19절은 의인은 무릇 고난이 많다 이런 말이 아니라 의인에게는 고난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많은 고난 가운데 항상 건져주시기 때문에 나중에는 고난 받으면 또 어떻게 나를 구원하실까 그런 생각까지 들면서 기대감이 듭니다. 그러나 의인은 고난 가운데 뼈가 부서지고 망가지는 이런 고난은 없다 우리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20절입니다.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그래서 2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의 영혼을 속량하시나니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벌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결론적으로 여러분께서 오늘도 하나님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하나님의 귀를 여러분에게 집중시키는 간구하는 사람 부르짖는 사람이 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이 세상을 젊은 소자들까지도 하나님 신앙 대열에 합류시키려고 할 때 어른들의 신앙간증이 너무나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어른들이 청년들을 그냥 방치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청년들끼리 모여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그것을 그대로 두면 안 됩니다. 청년들은 자연적으로는 자기들끼리 모여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른이 가서 신앙간증을 하면 처음에는 불편하게 여기다가 신앙 간증을 들으면 청년들이 충격을 너무 받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청년 대학부에 어른을 자꾸 배치시키려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소자들은 반드시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본 어른들의 신앙간증을 끊임없이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청년부에 우리 어르신들의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본 이야기가 줄줄이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우들 중에 모든 어른들이 신앙의 선배들이 청년부 선생님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젊은 소자들을 여호와는 광대하시다고 합류시킬 수 있는 담대한 신앙간증이 젊은 소자들을 향해서 쏟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우리 숭실대학생들이 일산두레교회가 아름답고 건강하게 부흥되게 하소서 라는 기도제목과 함께 헌금을 바쳤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 마무리 잘하고 내려가시길 바랍니다. 또 우리 교회 어르신들 우리 젊은이들을 성심껏 맞아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하고 우리 지금 대구유니버시아드에서 우리나라 민주시민참여네티즌에서 북한 선수단을 너무나 괴롭히고 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이런 원시적인 충돌이 일어나는데 오늘 여러분께서 1분간만 우리 남북화해와 통일의 물결이 역류하지 않도록 이 도도한 민족화해의 물결 오늘은 북경에서 육자회담이 열립니다. 이 두 가지를 놓고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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