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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복의 근원이 되어라(창 12:1-6) / 박조준 목사

by 【고동엽】 2021. 12. 3.

너는 복의 근원이 되어라

 

 

오늘 우리는 2001년 새해 첫 주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향해 주신 말씀을 읽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 중에 믿음의 후배인 우리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분이십니다. 물론 그에게도 약점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기자신을 굴복시키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된 본보기가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성령 안에서 행하고, 주님을 온전히 의지했기 때문에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 그가 언제나 승리하고 성공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때는 공포와 회의에 빠져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게 되고 그럴 때 그는 완전히 실패하고 망신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1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던 때는 바벨탑이 무너진 얼마 후였습니다. 고고학적으로 연구한 바에 의하면 1000년 후에 있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 시대와 비교할 정도로 문명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이 죄악의 도시는 문명의 요람 속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아브라함 내외가 살기는 적합하지 못하다고 생각되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그 도시 밖으로 불러 내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기 아버지와 친척에게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과 더불어 하란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아버지 데라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또다시 그 곳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그의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브라함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이 성격적으로 어려웠습니다. 매사에 아브라함에게는 조바심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버지를 떠나는 것을 주저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지만 자기가 알지 못하는 땅이니까 거기에 갈 때도 안전을 기하기 위한 최후의 방편으로 조카 롯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그가 안전을 위한 방편으로 삼았던 롯 때문에 오히려 불편한 일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자세히 보면 발견할 수 있는 것인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문법적으로 말하면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전에 이미 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한번 되풀이해서 다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여섯 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1.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2. 너를 축복하겠다.

 

3. 네 이름을 크게 하겠다.

 

4.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5. 내가 네 편이 되겠다. 그래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겠다.

 

6. 너는 땅 위의 모든 복 받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다. 만일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따랐다면 그의 마음이 상하거나 혼란에 빠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받아들여 그 약속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한번도 불성실하게 대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오늘 주신 말씀 7절에 보니까 하나님은 얼마 후에 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특별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때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물론 그 당시의 평균 수명이 요즘보다 길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75세를 청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고향과 친척을 떠나 정처 없이 먼길을 떠난다는 것은 모험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고향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긴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결단입니다. 아브라함은 큰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약속받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놀라운 믿음의 행위는 그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칭호를 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옛날 아브라함을 향해서만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죄악된 세상에서 분리되어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삽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속해서는 안됩니다. 배가 물을 떠나면 배 구실을 할 수 없지만 물 속에 잠겨서도 안됩니다. 물론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 우리 성도들의 고민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쉽습니까? 위엣 것을 생각해야 될 줄 아는데 땅엣 것이 먼저 생각나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이것이 우리의 현실 아닙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내가 원하는 선은 행치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고 탄식했습니다.

 

이와 같은 내적인 싸움은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더러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은 만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단순히 외모로 구별되게 사는 것보다는 실제 생활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어야 하고 하나님 안에 있는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이대로 사느냐 하는데 따라서 오늘 주신 축복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여기 자세히 보세요.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라"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지시 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너는 무조건 떠나라. 그리하면 내가 네 갈 길을 지시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는 고향과 친척을 떠났습니다. 갈 바를 모르고 하나님이 지시하시겠다고 하셨으니까 그대로 떠난 것 뿐 입니다. 친구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정든 고향 산천을 뒤에 두고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복을 주어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지 아니하였을 때는 그 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가 애굽에 내려가서 애굽 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겪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에 그가 구별된 생활을 했었다면 그런 어려움은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면서 자기 목숨을 지키려 했지만 거기서 부끄러움을 당했고,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의로운 책망을 받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일생을 돌이켜 볼 때 차라리 좀 외롭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살 때는 그에게 축복이 임했지만 세상과 짝해서 세상 방법대로 살 때는 하나님의 축복이 그에게 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괴로움을 당하곤 했습니다.

 

우리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가까이 하며 주님의 말씀 안에 살 때 주님이 주시는 무한한 축복을 누리며 삽니다. 그러나 세상으로 나아가 세상 사람들처럼 살면 하나님의 채찍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세상과 구별된 생활을 할 때 약속하신 축복인 것입니다.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축복은 먼저 개인에게 임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지 못하면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복의 근원이 될 수 있겠습니까? 내 떡 그릇이 비어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떡을 나눠 줄 수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먼저 우리 자신이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 자세히 보면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슨 축복을 주셨습니까?

 

 

 

1. 안식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아브라함은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장막생활은 불편하고 안정되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장막생활은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떠돌아다니는 생활입니다. 그에게 소유권이 있는 땅이라고는 한 평도 없었습니다. 성경에 말씀 하신대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육신적으로 보면 불안정한 생활을 했었지만 사실 아브라함처럼 평안히 산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산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했기 때문에 언제나 조용하고 고상한 인품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솔직하고 단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아무런 이의 없이 따랐습니다. '네 친척과 고향을 떠나라'고 말씀하실 때 그대로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니 왜 가야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고 그저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는 곳에는 가나안 원주민이 있는데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아브라함은 두려움 없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으로 가라고 하시므로 거기로 갔고 자기가 거기에 당당하게 거할 권리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어디에 있어도 만족한 생활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뜻이 유일한 삶의 법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위인처럼 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고 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 같은 평안을 누리며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대로 축복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크면 큰 축복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믿음대로 될찌어다' 우리 모두 금년 일년 큰 믿음으로 살아 큰 축복 받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그대로 받아 들여 그 약속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번도 불성실하게 대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두려움이 우리 사람에게 끼치는 해독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거듭 거듭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도 말씀을 들었습니다마는 다윗은 용감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주장하실 때 우리의 두려워하는 약점을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두려움 때문에 비겁한 일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거하던 땅에 가뭄이 들어서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고 애굽으로 내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애굽 왕들은 후궁이 많았고 아내와 첩을 택하는데 결혼한 여자건 안한 여자건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겁이 났습니다. 자기 아내가 아름답기 때문에 아름다운 아내를 빼앗으려고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에게 "당신은 내 누이라고 말하라. 그리하면 내가 안전하고 당신 때문에 내가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라의 아름다운 모습이 애굽 왕의 눈에 띄게 되었고 왕 앞에 불려가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녀의 오라비라고 들은 왕은 아브라함에게 호의를 가지고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왕이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 벌을 받고야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브라함과 사라는 죄를 모면 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두려워하는 생각 때문에 그들은 결국 거기서 쫓겨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방인의 나라에서 몹시 창피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일이 한 두 번 있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점점 하나님에 대한 은혜와 지식이 자라감에 따라 변화 받게 되었고 자기 자신의 모든 생각을 포기하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만 쫓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을 쓰신 끝에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두려움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깊어지고 두려움도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가장 큰 상급이니라."

 

아브라함이 처음에는 하나님을 자신의 보호자로 최대의 상급으로 여기는 일을 주저했습니다. 그 대신 그는 인간적인 해결책을 강구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방법을 따라 할 때마다 그는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약속을 따를 때 하나님은 그에게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면 기적을 불러 일으킵니다.

 

 

 

2.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라" 아브라함은 싸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싸우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는 열과 성을 다해 싸웠으므로 대적이 물러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7절에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3절 이하에는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했다"고 말씀했습니다.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언제나 승리했습니다. 역사를 통해 보면 지식 많은 사람, 권세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 경험 많은 사람이 다 실패했지만 믿음 있는 사람은 승리했습니다.

 

어떻게요? 믿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승리합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능력을 주신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온전히 그 만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서명 날인만 해 놓은 백지 수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서명 날인한 백지 수표 위에 우리가 쓰는 대로 하나님이 다 보증해 주시니 얼마나 귀한 특권입니까!"

 

여러분 이런 축복을 다 받으셨습니까? 이 놀라운 축복을 다 받으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우리도 믿음을 가지면 바로 그 때 우리의 필요를 따라 우리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 각 사람에게 온전히 이루어 질 것입니다.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감당키 어려운 시련을 만납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음으로 살면 우리가 세상을 끝날 때 이런 기록이 남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축복하셨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밀어닥치는 악을 선으로 바꾸십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길에 언제나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때는 이해 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시련과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련과 고통을 믿음으로 이기고 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욥도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기고 난 다음에 한 간증이 무엇입니까? "내가 전에는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뵈옵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어떤 시련도 견디어 내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나이 많아 얻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할 때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죽은 자도 살리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이 커다란 시련이 있은 후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시련을 겪은 순간은 그의 생애 중에 잠시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련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주신다 하셨고 실제로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가는 길이 언제나 평탄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 때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시련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이기고 나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니라"라는 말씀의 뜻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3. '너는 복의 근원이 되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축복해 주실 때 내가 또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게 하십니다. 인류 역사를 농해서 우리는 이런 사람을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 뿐 만이 아닙니다. 모세도 그렇습니다. 여호수아도 그렇습니다. 엘리야도 엘리사도 그랬습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그랬습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 성 어거스틴이 그런 사람입니다. 무디 같은 사람, 빌리 선데이 같은 분, 챨스 스펄전 같은 분은 다른 사람에게 많은 축복을 안겨준 사람들이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므로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의 기도가 복의 근원이 되게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망에서 구원해 주셨는데 우리도 다른 사람 위해 기도하는 일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 낙스의 기도는 스코틀랜드를 구했습니다. 우리 나라는 지금 이 한국을 구원하고 이 조국을 축복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가장 큰 복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다른 심령을 주님께 인도하여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금년 일년 나로 말미암아 사망의 그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심령을 주님께로 인도해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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