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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설교 (시편 30편)

by 【고동엽】 2021. 12. 3.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3절부터 7절을 괄호 안에 넣고 이렇게 다시 읽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그러고 나서 기도 응답 받은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3절부터 7절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병들기 직전 상태, 자기 확신 속에 살았던 때 그리고 자기가 병들었을 때 가졌던 참담한 절망 이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3절 볼까요?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3절에 보니까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는 자기가 무덤으로 내려가는 사람 중에 있었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6절입니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너무 자신이 형통했기 때문에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라는 말을 했다는 겁니다. 한 때 하나님께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내 인생을 굳은 반석처럼 굳게 세웠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영원히 이렇게 잘 될 줄 알았죠. 그런데 주님께서 얼굴을 가리시는 순간 내가 크게 낙담했습니다. 자기가 병 걸렸을 때 자기의 일종의 탄식의 언어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한 겁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뭐라고 기도 했냐면 번역이 좀 이상합니다. 내가 멸망하는 것이 당신께 무슨 덕이 될 것이며 내가 음부로 떨어지는 것이 당신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진토가 주님 앞에 찬송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망하여 죽은 자가 되었을 때 당신의 신실하심을 산 사람에게 선포 하겠습니까 이렇게 자기 죽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께 손해라는 겁니다. 내가 진토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 버리면 주님의 신실함을 노래할 수 없고 주님의 신실하심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릴 기회가 없다는 겁니다. 자기가 이렇게 앓다가 죽으면. 그러니까 앓다가 죽으면 하나님께 별로 이익이 없고 내가 앓다가 죽는 것보다 이 무덤으로 내려가는 자의 대열에서 부활해서 영혼의 고양을 맛보는 것이 하나님께도 훨씬 좋다 이런 것을 깨달은 겁니다.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그랬더니 아마 밤에 이런 기도를 많이 한 거 같아요.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아마 자기가 죽어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베옷을 입은 것 같습니다. 아마 회개의 분위기가 집안을 지배한 것 같습니다.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그래서 내 가슴은 진동합니다. 내 가슴은 당신이 나에게 베푼 구원의 영광 때문에 나는 쉴새없이 내 가슴은 아프리카 그 토인들의 북처럼 진동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잠잠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터져 나오는 하나님의 감사의 노래 이것이 오늘 나를 지탱합니다.

 

참 오늘 이 본문의 제목을 보면 성전 낙성식 때 불렀다고 그랬죠? 성전 낙성식 때 이런 노래를 불렀으니까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라는 말입니다. 성전에 오면 기도 응답이 된다는 말이죠? 성전에 와서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된 사람들의 간증이라는 것이죠. 베옷을 벗기고 찬송의 옷을 입혀주신 하나님의 그 극적 간증이 성전 하나님 앞에 와서 주의 성소를 향해서 손을 펼치면서 주님 나를 이 비밀한 장막 가운데 감추어 주십시오 이렇게 부르짖었던 사람들의 간증이 끊임없이 성전에 이어지고 이어져서 그래서 사람들이 또 성전에 와서 기도할 마음이 일어났겠죠? 아마 어느 순간에 성전 낙성식에 한 번만 부른 노래가 아니라 아마 성전에서 예배 때마다 들려지는 노래일 것입니다. 시편은 한마디로 간증의 신학입니다. 시편은 전부다 뭡니까? 특별한 개인들의 구원경험을 간증하는 새 노래들이죠. 그래서 먼저 우리가 전체 내용을 보았습니다.

 

다시 구체적으로 보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여 내가 당신을 높입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 나를 흑암의 심연에서 높이셨기 때문입니다. 내 대적들이 나를 의기양양하게 내려 깔보지 않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인은 죽을병에 걸려있는데 대적들이 뭐라고 말하냐면 저 친구가 이제 죽을병에 걸렸구나 하나님이 그를 내치시는구나 이제 그는 산자의 땅에서 끊어졌구나 이렇게 조롱하고 있습니다. 조롱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나를 음부로 내려가는 추락의 길에서 높이 건지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저 심연, 저 깊은 어둠의 심연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는 나를 높이 드셨기 때문에 나는 주님을 높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높이려면 뭘 경험해야 합니까? 의무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으려면 우리 생활에 뭐가 있어야 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번쩍 높이 드는 영혼의 고양 경험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 고개 숙인 내 모습을 몰락해 가는 내 모습을 점점 영적인 등고선이 처져 가는 내 모습을 번쩍 들어주셔야만, 내 몰락을 역전시키셔서 내가 지옥의 권세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있는 나를 번쩍 들어 올려주셔야만 나 또한 하나님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게 참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신령한 거래가 이루어져요.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원을 먼저 맛보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먼저 찬양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의 감격으로 고동치게 하지도 않고 찬양하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고개 숙인 남자처럼 점점 영적 고도를 향해서 영적 등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내 영적 에너지가 추락해 갈 때 옛날에는 그래도 기도 한 시간, 두 시간 끄덕도 없었는데 지금은 눈 감으면 5분밖에 안 될 때, 옛날에는 그래도 말씀 읽을 때는 3시간, 4시간 읽어도 지루한 줄 몰랐는데 요즘은 10분만 읽어도 진드기 같은 생각이 들어서 잘 안될 때 이게 영적인 등고선이 아래로 처지는 거거든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수준이 뚝 떨어지면 그 자체가 잘못 되었다기 보다는 그 영적으로 수준이 떨어졌을 때 그 때 발생하는 재난이 일어나면 해석할 길이 묘연해지고 마음에 냉각심이 확 들어옵니다. 영적으로 충만하고 고양되어 있었을 때는 사고를 겪었을 때도 금방 회복이 됩니다. 그런데 영적 등고선이 아래로 쳐졌을 때는 나쁜 일을 겪으면 하나님에 대해서 싸늘하게 마음이 바뀌어 버립니다.

 

여러분 그래서 기도를 평소에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재난 앞에서도 빨리 복구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를 평소에 많이 하지 않고 영적 등고선이 밑으로 쳐질 때 그 때 사고가 일어날 때 해석할 여지가 없어집니다. 누가 이런 극적인 대반전을 경험했습니까? 원수 대적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놓고 죽이고 이제는 더 이상 성가신 존재가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큰 소리칠 때 그러나 누가 내 주를 음부에 버려두어서 썩지 않게 하시며 번쩍 높이 들어줬습니까? 누구를?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그래서 이런 기도를 마틴 루터는 시편은 모조리 그리스도 자신의 기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자신의 기도라는 말이 맞는데 그리스도 자신의 기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백성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기도입니다. 왜? 하나님 백성들이 이런 일들을 너무나 많이 겪거든요. 하나님 백성들은 너무나 몰락해가다가 원수들이 조롱할 때 내 영혼이 수렁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런데 그 때 내가 죽을 병에 걸려서 음부 안으로 빨려들어 갈 때 그 때 내 원수들이 매우 좋아하는 분위기가 되었을 때 갑자기 나를 번쩍 높이 드셔서 그래서 여러분 어떤 사람들은 승진에서 2년 연속 탈락했다가 3년에 턱걸이로 승진한 사람 제가 봤습니다. 참 여러분 직장에서 이 승진이라는 것도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자리는 제한되어 있는데 승진해야 되면 승진의 시점이 다가오는 10월, 9월이 오면 바삐 찻잔이 오고가고 봉투가 오고가고 난리가 납니다. 전북 임실 군수한테 천만원 줬다가 승진하지 못해서 계장님이 음독 자살을 했는데 참 슬픈 일입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말아야 될 것은 입사 동기들 2년 연속 승진하는 것을 보고 두드러질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는 그리스도인 사나이가 3년 째도 승진이 안 됐습니다. 그런데 이 사나이의 진가를 알아보는 팀장이 와서 졸지에 승진하여 2년 전에 먼저 한 사람보다 더 잘 풀리는 경우도 있는 겁니다. 승진 안되면 회사 회식에 가면 자기 입사 동기를 과장님이라고 불러야 되는 이 대리의 고단한 슬픔은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순간에 빛을 보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우리가 우리 원수 대적들이 우리를 조롱하는 그것이 나에게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면 안 되고 하나님 주님도 이거 겪었죠 저도 겪겠습니다 이래야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정말 죽고싶다 그래서 죽으면 안 됩니다. 오래 산 사람만이 좋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다. 하나님 백성들에게 이런 처참한 일이 일어나고 훌륭한 사람에게도 일어나고 보통 평범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런 비참한 전락이 있습니다. 내 원수들 앞에 내가 점점 값어치가 없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일을 당할 수가 있는 겁니다.

 

우리 장로님 한 분이 건설회사를 경영하시다가 부도를 만났습니다. 이 분이 예전에 건설회사 회장하셨을 때는 헌금 10억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던 분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비자금이라는 것을 두지 않아서 회사가 망할 때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다 망했습니다. 최근까지도 법정에 구속될 위기가 오면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가 옛날에 10억 헌금 했을 때는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수석장로라면서 그렇게 치켜세웠는데 헌금하지도 못하고 이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니까 아무도 오는 사람도 없고 교회에서 그렇게 10억 헌금했으면 제가 볼 때 그건 연금 좀 받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10억 헌금 했다면 교회에서 구제헌금 1000만원 정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체 안 쳐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해 동료 장로들이 그를 수군거리고 그가 마치 도덕적인 흠이 있는 사람처럼 대우했습니다. 그러기를 4년, 5년, 얼마전에 최종판결이 나왔습니다. 이분이 기대했던 최고의 판결은 집행유예입니다. 집행유예를 받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구원을 받은건데 이 분은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4-5년 동안 이 사람이 고달프게 시궁창에 빠져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게 빠져 보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전락과 굴욕의 체험이 하나님 우리 인생에 필수 아미노산 같은 겁니다. 우리가 굴러떨어져 보는 것 원수 대적들의 조롱을 받으면서 서서히 추락해보는 경험도 필수 아미노산과 같고 비타민과 같은 겁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전락하고 굴러떨어질 때 무슨 생각을 하면 안 되죠? 아이고 나는 버림받았구나 이런 생각 하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무슨 생각을 해야되요? 아 내가 모의고사 다 본거지 시편에도 있었다 이렇게 나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 영혼을 무덤으로 내려가는 사람 대열에서 끌어내시고 나를 번쩍 높이셨기 때문에 나는 주님을 높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님이 우리로부터 높임 받으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도 우리를 높여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6절에 내가 형통할 때에는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내 인생은 다시는 원수, 대적이 넘볼 수 없는 출세의 반석 위에 섰다 이렇게 했는데 주님이 얼굴을 일순간 가리울 때 내가 병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진토아래로 빠져가고 내 몸은 이제 무덤 속으로 반은 들어갔습니다. 그때 이 시인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진토가 되어버려 한줌 흙으로 들어가면 주님의 역사하심을 노래할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주님 제가 아예 망해버리면 주님께서 그동안 나에게 베풀어 주신 그 엄청난 은혜를 내가 마음껏 노래할 길이 없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간증할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이 기도는 참 좋은 기도입니다. 그래서 밤에 이렇게 복잡한 생각으로 기도를 했더니 이게 하룻밤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비유로 말하면 어두컴컴한 밤과 같은 시간에 이렇게 기도를 했더니 아침이 왔습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여러분 기쁨으로 띠 띠우시는 것은 참 좋은 겁니다. 띠라는 것은 역도 선수들이 차는 그런겁니다. 그걸 차고 역기를 들면 띠를 띠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잘 들어집니다. 허리를 받치기 때문에. 기쁨으로 가득 찬 사람은 내가 옛날에 들지 못했던 것을 들어올릴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기쁨은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통하여 환경을 지배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스트레스가 100이라면 기쁨은 100보다 크면 되는 겁니다. 여러분 기쁨으로 가득 찬 사람은 띠를 해서 물건을 들어올리듯이 스트레스를 들어올릴 수 있고 문제도 들어올릴 수 있습니다. 문제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문제보다 더 큰 힘을 확보했기 때문에 갑자기 상대적으로 되어 버리는 겁니다. 저도 글을 쓰거나 설교를 써보면 어떤 때는 원고지 50매 글 쓰는 것이 너무나 힘든 때가 있습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지 못할 때 특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100매 원고도 순식간에 기쁨으로 쓸 수 있습니다. 내 심령이 은혜로 가득 차고 기쁨으로 가득 차면 어떤 일도 거의 피곤을 모르고 극복할 수 있는데 내가 기쁨이 없을 때는 직장생활도 힘들고 모든 것이 힘듭니다. 우리가 기쁨으로 띠 띠우신 하나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적으로 띠 띠우시기 위하여 우리를 잠시 어떻게 하신다고요? 무덤으로 내려가는 자의 반열속에 우리를 두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12절에 우리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갑자기 내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춤, 여러분 춤 추어보셨습니까? 특히 유교권에 사는 우리는 거의 춤을 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춤이 나오면 무슨 경지인지 알지를 못하는데 여러분께서 춤이라는 것은 내 몸이 음악에 지배될 때 나오는 자연스런 행동입니다. 강력한 음악이 음악의 영이 나를 지배할 때 내 몸은 춤추게 됩니다. 춤은 건강한 생활에 너무 도움이 됩니다. 춤을 추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온몸의 자율 신경들이 다 움직이고 내 몸의 세포 마디마디가 일어나서 창조주를 찬양하라 이렇게 됩니다. 여러분 춤 출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나라 문화가 춤을 추는 것을 정죄하는 문화, 공자의 제자들의 문화입니다. 김용옥 선생이 쓴 책에 보면 공자가 바로 노나라 시대에 춤 전문가라고 그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공자의 춤 문화가 없어지고 춤추는 것은 상놈들이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춤을 좀 추면은 좀 끼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춤을 못 춥니다. 원래는 성경 말씀이 추라고 하면 추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니까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었다고 하면 춤이 되어야 하는데 여러분 춤 출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아내가 그렇게 춤을 정죄합니다. 저는 춤을 상당히 잘 춥니다. 저는 춤을 매우 강조하고 제 아내는 춤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 수 있는 한 우리 교회도 선한 기쁨을 감격적으로 표현하는 선한 춤이 나와서 우리 몸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칠 수 있기를 바라고 이렇게 잠잠하지 못하는 내 가슴에 고동치는 기쁨, 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찬양 이것이 내 영혼의 중금속을 이겨내고 내 고단한 일상의 피곤을 이겨내고 이 기쁨의 행진곡으로 그 다음날 또 할 수 있는 시온으로 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 성전 낙성식 때 불렀던 노래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노래가 여러분 가슴에 고동치는 노래가 되기를 바라고 주님이 여러분을 높였기 때문에 드셨기 때문에 주님이 여러분의 영혼을 고양하셨기 때문에 여러분도 주님을 하루 종일 높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밤새도록 비가 내렸습니다. 이제 8월의 마지막 비가 산천초목을 적시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대지가 주님이 주시는 아름다운 생명수 빗물을 먹고 많이 자라게 하시고 더 푸르게 하시옵시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영혼도 은혜의 단비에 젖어서 춤추지 않고는 견딜 수 없고 기쁨의 띠를 띠고 생활의 모든 고단한 노고와 피로를 번쩍 들어 올리는 강력한 힘의 소유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이 세상의 고단함을 이겨내는 저희들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무덤으로 내려갈 자의 반열 속에 있었습니다. 주님 우리가 외치고 부르짖었을 때 주님 우리를 태산 같은 반석 위에 세우셨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우들 중에서 무덤 아래에 내려가는 자의 교우, 어깨 처진 교우들의 흐느끼는 기도가 있고 아버지 하나님 채 큰 소리로 발설되지 못하는 기도가 있사오니 하나님 아버지 그들의 기도를 작게 여기지 마시고 크게 들어주시옵시고 응답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주님 그들의 영혼을 고양시켜 주시고 그들을 음부로부터 번쩍 들어주셔서 그들이 진토가 아닌 상태에서 산자의 땅에서 주님을 마음껏 찬양하며 고동치는 찬양을 드릴 수 있도록 하나님 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사랑하는 교우들 새벽 제단을 쌓고 눈물의 제단을 쌓고 있는 사람들 밤마다 아버지 하나님 옷소매를 적시며 기도하는 안타까운 우리 사랑하는 교우들, 하나님 그들을 춤 출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옵시고 그들의 가정에 있는 슬픔이 변하여 재가 변하여 화관이 되게 하시옵시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의 제단이라는 우리 교회에서 기도하는 형제 자매들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아버지 하나님 참으로 춤이 되는 이 극적인 반전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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