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시인하는 믿음 (로마서 10장 9-10절) 인터넷에서 스크랩
< 입으로 시인하는 삶의 의미 >
고등학교 때 열심히 교회를 다닌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예수님은 약자를 위한 혁명가였다.”란 사상에 심취해 걸핏하면 죄 문제를 얘기하는 목사님 얘기가 지루하게 들렸습니다. 또한 여러 사회적 문제 등을 생각할 때 개인의 죄 문제 해결에 매달리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신앙이라고 여기면서 점차 교회를 멀리했습니다.
어느 날, 결혼 후 첫째 아이를 낳았는데 말로만 듣던 뇌성마비였습니다. 심한 심적 고통 중에서 그의 가치관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그때 그는 “한 영혼이 정말 중요하구나!”하는 깨달음과 함께 인간의 죄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비로소 죄 문제를 해결해주신 예수님이 얼마나 소중한 분인지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생활 문제도 해결되고 건강과 평강과 축복의 가능성도 커집니다.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합니까? 예수님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입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다른 것을 보지 않고 입의 고백을 듣고 구원을 주시고 은혜도 주십니다. 입으로 시인하는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요?
1.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의미
어떤 사람은 “입의 시인이 뭐 그렇게 중요하냐? 구원받고 싶어서 거짓으로 시인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에 예수님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래서 입의 시인은 진실한 신앙 유무와 구원 유무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성도는 생사가 달린 위험한 상황에서도 진실한 신앙고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위험과 고난과 손해가 예상되어도 끝까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로마서 6장 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예수님과 함께 이미 죽었다면 더 이상 죽을 일이 없고 앞으로는 살 일만 남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두려운 것이긴 해도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는 믿음을 훈련하고 그런 믿음을 달라고 평소에 기도로 많이 준비해야 합니다. 기도는 달라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것도 기도고 내일의 고통의 때를 대비하는 것도 기도입니다.
1999년 봄, 미국 덴버에 있는 콜럼바인(Columbine) 고등학교에서 학생 2명이 자기들을 따돌린 친구들에게 총을 난사했습니다. 그 사건으로 학생 12명과 선생님 그리고 총을 쏜 학생 2명이 죽었습니다. 그때 한 범인이 캐시란 여학생에게 총을 겨누고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캐시가 대답했습니다. “그래, 나는 하나님을 믿어!” 그러자 범인은 총부리를 더 가까이 겨누면서 소리쳤습니다. “하나님은 없어!” 캐시가 또 말했습니다. “아냐 있어!” 곧 범인은 총을 쐈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미국 청소년들이 캐시 버넬(Cassie Burnell)을 추모하며 그녀의 T셔츠를 사서 입었습니다. 그 T셔츠에는 “그래, 나는 하나님을 믿어!(Yes, I believe in God)”란 그녀의 고백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때 한 신문이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캐시가 미국 교회에 불을 질렀다.” 성도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하나님! 그래도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힘들어도 믿음의 길을 포기하지 말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할 때 참된 평안과 명예와 승리가 주어질 것입니다.
2. 더욱 적극적으로 살겠다는 의미
입으로 시인하면 더 실천하고 참여하게 되면서 신앙도 자랍니다. 요새 교회에 매이기를 싫어하는 교인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요새 그런 교인을 ‘UFO(미확인 비행물체) 교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공동체에 가든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헌신해야 그 공동체의 기둥이 되고 참된 행복과 축복도 얻습니다. 또한 계속 스스로를 향해 “나는 주님의 자녀다!”라고 입으로 시인하면 신앙의 의식화가 이뤄지면서 헌신도 점차 쉬워집니다.
어느 날,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설교했습니다. “여러분! 많이 버십시오,” 그러자 앞자리에 앉은 한 부자 성도가 “아멘! 아멘!”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웨슬레 목사님이 계속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많이 저축하십시오.” 그러자 그가 또 “아멘!”하고 외쳤습니다. 웨슬레 목사님이 또 계속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많이 나누십시오.” 그때 갑자기 그 성도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귀에 손을 대고 말씀이 잘 안 들린다는 모습을 했다고 합니다.
성도는 복을 나눠주는 것도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을 나눠주는 사람이 복의 근원이 된다는 의식수준의 변화를 이뤄내야 합니다. 신분의 변화는 쉽지만 의식수준의 변화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예가 자유인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유인이 된 후에 옛날에 가졌던 노예근성을 버리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애굽을 탈출했지만 애굽에서의 편한 노예생활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왜 많은 교인들이 주일에 받은 은혜를 며칠도 지탱시키지 못하고 곧 옛날로 돌아갑니까? 신분은 변했는데 하나님의 자녀란 의식이 확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생각나고 성질이 날 때마다 자신을 의식화시키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덤 인생으로서 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자.” 끊임없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입으로 고백하며 자신감을 가지고 살면 점차 능력 있는 삶이 자신을 통해 나타날 것입니다.
3. 믿음의 말을 하겠다는 의미
사람과 짐승의 결정적인 차이 중의 하나는 언어 능력입니다. 인간의 언어능력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능력과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그 언어 능력이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언어에서 믿음과 감사와 말씀이 넘치게 해야 합니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언어를 보면 교양과 유무식이 다 드러납니다. 더 나아가 성도의 경우에는 믿음과 능력이 다 드러납니다. 마귀는 다른 어떤 것도 겁내지 않고 오직 말씀에만 겁을 냅니다.
왜 “예수쟁이들은 말을 잘해!”란 냉소적인 말이 생깁니까? 말을 실천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말을 잘 한다’는 말보다 ‘말을 잘 지킨다’는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약속도 잘 지켜야 합니다. 시간약속을 잘 지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성도는 말한 것을 힘써 지켜야 하고 “저 사람은 정말 성도답다!”란 말을 들을 정도로 언어도 발라야 합니다. 잠언 6장 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입 때문에 고통스런 올가미에 걸린다는 뜻입니다. 살면서 행복한 삶과 좋은 분위기를 무엇이 깹니까? 말 한 마디가 깰 때가 많습니다. 요즘 장관들이 옷을 벗는 이유는 상당히 많은 경우가 입을 잘못 놀리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가 왜 깨집니까? 대부분 입을 잘못 놀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행동도 잘해야 하지만 입이 잘못되면 행동을 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에 입이 잘 되면 다른 많은 축복이 저절로 따라옵니다. 그래서 입은 팔자를 고치는 도구라고 합니다. 입은 나라와 민족의 팔자도 고칩니다. 국가가 발전하려면 언어문화도 발전해야 됩니다. 더 나아가 입은 천국 입성과 행복과 축복도 좌우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으면 창조성도 넘치게 나타납니다. 그처럼 성도의 입에서 나오는 믿음의 말도 부분적인 창조적 능력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4. 복음 전파에 힘쓰겠다는 의미
로마서 10장의 주제는 “구원은 복음 전파를 수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다음의 14절, 15절, 17절에서 모두 복음 전파를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시인할 때 직접적인 말로 시인할 수도 있고 찬송과 감사로 시인할 수도 있고 때로는 헌신하고 충성하는 삶으로 시인할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전도하고 선교하는 삶으로 시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처럼 은혜와 축복을 이웃에게 전해줌으로 복음에 마음이 열리도록 할 때 자신에게도 더욱 은혜와 축복이 넘치게 됩니다. 결국 전도와 선교는 구원의 증표이자 축복의 예표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자랑하고 싶습니다. 그처럼 성도에게는 복음 전파의 꿈이 늘 있어야 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상급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행할 때 받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영혼을 구하는 일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면 부모가 아이를 낳는 것과 같은 큰 기쁨과 보람을 얻습니다. 결국 전도와 선교는 교회와 성도가 가장 우선적인 목표로 두어야 할 사명입니다.
사도행전 11장을 보면 안디옥 교회가 계속 성장하자 외적으로는 모임 장소를 넓히는 문제가 시급해서 그 문제로 기도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어떤 명령을 주셨습니까? “교회를 건축하라!”는 명령 대신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보내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필요하다면 건축도 해야지만 먼저 전도와 선교에 힘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 분은 복음 전파의 필요성은 알지만 늘 전도와 선교를 차후로 미루고 남에게 미룹니다. 그러나 축복은 내 것이고 전도와 선교는 남의 것이라고 하면 축복도 자기 것이 되기 힘듭니다. 또한 좋은 일은 일찍 할수록 인생의 낭비가 줄어듭니다. 얼굴의 아름다움보다 발과 손의 아름다움은 더욱 중요합니다. 교회의 아름다움도 전도하고 선교하는 모습에 달려있고 성도의 아름다움도 전도하는 발과 선교하는 손에 달려있습니다.
< 복음 전파에 힘쓰십시오 >
저는 원래 선교사가 되려고 미국 신학교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신학 공부를 하면서 저의 달란트가 직접 전방 선교사의 길을 가는 것보다는 후방에서 전방선교사를 지원하는 길로 가는 것이 더 알맞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91년 선교사 훈련학교 및 후방 선교기지의 꿈을 품고 혈혈단신 귀국했습니다. 그때 꿈과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적어도 40세가 되는 2000년쯤에는 ‘선교사 훈련학교’의 첫 삽을 뜰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첫 삽을 뜨지 못했다. 대신 문서선교의 꿈을 담은 인터넷 말씀사역의 첫 삽을 떴습니다.
그렇게 인터넷 말씀사역을 하면서 2002년에 ‘문서선교와 선교사 후원’을 목표로 한 ‘요삼일육선교회(John316 Mission)’가 생겼고, 2005년에는 ‘성경 전체 강해설교 완성 및 기독교 서적 출판’을 위한 ‘미션퍼블릭(Mission Public)’이 생겼고, 2008년에는 네트영어의 비전이 구체화되었습니다. 2014년에는 월새기(월간 새벽기도)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월새기 사역을 통해 많은 영혼들이 살아나고 새롭게 되는 것을 보면서 지금은 영어판 월새기 사역에 대한 꿈을 품고 세계를 향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70세까지 사역한다면 앞으로 15년밖에 남지 않았기에 요새는 기어를 한 단 높여 도약하려고 기도 중입니다. 앞으로 한국에 40개 선교하는 교회를 개척하고 많은 선교사들을 도우려면 기도도 해야 하지만 실질적인 역량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생각합니다. “목사님! 교인도 얼마 되지 않으면서 40개 교회를 세워요? 꿈 깨세요.” 그러나 허황된 꿈이 결코 아닙니다. 누군가 인물이 되면 그 사람 혼자 40개 교회 이상도 세울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장관이 얼마나 높게 보입니까? 자기 교회에 장관이 출석한다면 은근히 그 사실을 자랑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상 상황이라면 그런 장관 20명이 다 힘을 합쳐도 대통령 한 사람의 권력과 영향력을 넘지 못합니다. 그만큼 인물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인물이 되든지, 인물을 만들든지, 인물을 데려오든지, 인물을 위해 기도하든지 해서 인물 한 사람만 나오면 엄청난 일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인물이 되면 신기하게 그 인물에 걸맞은 또 다른 인물 동역자도 생깁니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것도 결코 신기루만은 아닙니다.
찬란한 비전을 품고 나갈 때 길이 막히는 현실에 처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죽으면 죽으리라! 망하면 망하리라!” 하고 끈질기게 비전을 붙들고, 계속 기도하면서 방법을 찾고 때를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내가 무너져도 내 목자가 일어서고 내 교우가 일어섬으로 같이 일어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망감이 들 때마다 요셉과 다윗과 바울도 죽음의 고통을 겪었음을 기억하고 비전의 불꽃을 새롭게 점화시키십시오.
저는 비전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구약의 한 인물을 생각하면서 비전의 불꽃을 새롭게 점화시켰습니다. 그 인물은 바로 느헤미야였습니다. 저는 느헤미야를 읽을 때마다 감탄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멋진 평신도 인물이 있는가?” 이방 지역에서 탁월한 지혜와 충성으로 영향력을 얻은 느헤미야가 성벽건축의 비전을 세우고 움직이자 수십 년 간 방치된 성벽재건의 비전이 단 52일 만에 이뤄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물의 힘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많이 약해진 상태입니다. 이때 느헤미야와 같은 인물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이제 수시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느헤미야와 같은 인물을 붙여주소서! 아니면 그런 인물이 되게 하소서!” 소중한 꿈은 소중한 인물을 만들고 위대한 꿈은 위대한 인물을 만듭니다. 하나님은 축복 전에 항상 거룩한 꿈을 먼저 줍니다. 찬란한 꿈을 품고 나가면 그 꿈이 이뤄지는 꿈같은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저희 기독교 선교연맹(C&MA)의 창시자인 심슨 목사님은 늘 이렇게 도전했습니다. “신기루 같은 꿈도 하나님이 도와주면 현실이 된다.”
살면서 복음 전파의 꿈이 결코 퇴색되지 않게 하십시오. 그러면 복음을 힘 있게 전파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이 주실 것입니다. 불행한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여는 능력은 복음에 있습니다. 그 복음의 씨앗을 널리 뿌리려고 하십시오. 전도와 선교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입니다. 내가 천국 백성이라면 남도 천국 들어가도록 힘써야 진짜 천국 백성이고 내가 은혜를 받았으면 남도 은혜를 받도록 힘써야 진짜 은혜 받은 것입니다.
일전에 한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이리 봐도 희망이 없고 저리 봐도 희망이 없다.” 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없게 되었습니까? 문제는 많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목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거룩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 전파의 사명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최종적으로는 복음 전파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명을 가지고 산다면 더욱 멋진 인생이 연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많은 영혼을 건지려고 최선을 다함으로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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