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의 시가서와 지혜서(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I. 욥기(the Book of Job)와 하나님나라 복음
욥기는 문학 장르상 희곡으로 분류되는 작품이다. 이스라엘이 이 세계에 출현하기 오래 전에 고대 동방의 우스(Uz)라는 성읍에 살던 의인(義人) 욥이 하나님을 향하여 쏟아내는 불평과 질문들을 감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의인 욥은 하루 아침에 10명의 자녀들과 재산을 다 잃고 자신은 문둥병과 유사한 병에 걸려 버린다. 졸지에 욥은 가족, 재산, 사회적인 신망과 존경, 건강,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까지 잃어버린다. 욥기는 이처럼 까닭없는 고난을 연속적으로 겪은 욥이 하나님에게 하나님의 정의가 어디있느냐고 항의하는 이야기다. 자신에게 닥친 고난들을 원인론적으로 접근하던 욥은, 욥을 위로하러 왔다가 그의 참혹한 고난을 보고 그것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주장하는 세 친구와 격렬한 논쟁에 빠진다. 욥의 고난을 욥의 숨은 죄, 욥 자녀들의 죄, 그리고 인간 일반이 하나님 앞에서 짓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믿는 세 친구들은, 욥을 강제로 회개시키려하는 종교적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욥을 하나님께 회개시키려다가 욥과 세 차례의 신학적 논쟁을 벌이게 된 세 친구들은 사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채 처음부터 끝까지 교조적인 완고함에 머물고 있다. 뒤늦게 양방의 논쟁에 끼어든 젊은 변사 엘리후의 책망섞인 강론도 사태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는 점에서는 세 친구들의 입장과 별 다를 것이 없다. 고난의 원인을 찾지 못한 욥은 탄식과 자기연민, 항변과 자기변호 사이를 왔다갔다했다. 그 사이에 하나님께서 욥을 찾아오신다. 폭풍과 흑암 속에서 현현하신 하나님은 욥에게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질문들을 퍼붓는다. 창조의 신비에 속한 엄청난 질문공세를 받고서야 욥은 자신이 지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질문을 하나님께 제기한 사실을 알고 회개한다. 욥 자신의 고난은 창조의 신비에 속한 고난임을 알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한 신비로운 “고난”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승복한다. 문학적으로 보면 다소 싱겁게 끝나버리지만 욥기는 적어도 신학적으로는 두 가지 사실을 긍정한다.
첫째, 이 세상에는 죄와 상관없이 애매하고 억울하고 부조리한 고난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이 부조리하고 억울한 고난은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창조의 신비에 속한 일이라는 사실이다(욥 38:8-11). 다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무죄함(적어도 자신이 겪은 고난들과 관련해서는)을 주장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던 욥과, 하나님의 절대 정의를 옹호하기 위해 욥을 정죄하여 회개를 유도하는 세 친구들의 논쟁에서 욥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욥을 위로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환난과 고통을 하나님의 신적인 인과응보 혹은 징벌로만 파악하려는 교조주의적 독단을 더욱 비판하신 것이다.
욥기는 잠언서, 신명기 28-29장, 그리고 일부 예언서 신학의 중심골격인 원칙 곧, 하나님께서는 죄에는 벌, 선행(하나님께 복종)에는 상급(축복)을 주신다는 전통적이고 인습적인 교리에 대한 회의를 제기한다. 욥의 고통은 욥의 죄 혹은 욥의 자녀들의 죄와 분명히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 욥의 세 친구들의 주장들은 결국에 가서 하나님에 의하여 비판받는 입장임이 드러난다. 32-37장에 맹활약하는 양비론(兩非論)의 사도인 엘리후의 입장은 38-39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강론을 이해하도록 준비시키는 한편 욥의 친구들의 교조주의적 입장을 다소 누그러뜨리는 신비주의적 모호성을 드러낸다. 전체적으로 욥기의 주제는 하나님은 왜 의인에게 고통을 주실까 하는 질문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고난의 시기를 의미있게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다소간 실용적인 주제다.
욥기를 읽을 때 한 가지 조심할 것은 이 책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대사들 자체를 교조적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특히 욥기 1-2장에 나오는 사탄과 내기를 벌이는 하나님의 대사들은 그 자체만 분리시켜 교조적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사탄과 내기하다가 욥이 얼마나 강한 믿음의 소유자가인가를 증명하기 위하여 욥과 그의 재산과 가족을 사탄의 공격에 넘겨주는 장면을 교조적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욥기의 하나님의 궁극적인 모습은 38-41장에서 그려지듯이 폭풍우 속에서 나타나시는 신비한 하나님이시다. 고난의 원인을 사람에게 알려주시기보다는 고난 중인 욥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자신이 욥의 고난에 대한 응답인 것이다. 욥기는 어떤 시대의 개인이나 집단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다루고 있으나, 아마도 성서 안에서 욥기는 바벨론 포로살이와 같은 엄청난 환난이 과연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인지 아니면 인간이 해명할 수 없는 심오하고 신비한 하나님의 섭리(신 29:29)가 개입된 일인지에 대한 신학적 고투와 성찰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벨론 포로 1세대는 분명 바벨론 유수를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하였으나 바벨론 포로살이가 그들의 자녀 세대에게는 억울하고 애매한 고통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참혹한 바벨론 포로살이가 길어지면서 바벨론 포로 2-3세대들에게 그들의 바벨론 포로살이가 대속적이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고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일어났을 수다(사 53장 참조).
욥기의 구조
1. 서언-의롭고 행복한 욥에게 닥친 악한 시험(1-2장)
2. 세 친구들과의 논쟁 (3-27장)
1). 욥의 기조 탄식(3장)과 1라운드 논쟁(4-14장)-욥의 대답(9-10장, 12-14장)
2). 2라운드 논쟁(15-21장)-욥의 대답(19장, 21장)
3). 3라운드 논쟁(22-26장)-욥의 대답(23-24장, 26장)
3. 욥의 결론적 담화와 긴 독백(27-31장)
1). 욥의 결론적 담화(27장)
2). 지혜시적 간주곡(28장)
3). 욥의 탄원-결백을 밝혀달라는 아우성(29-31장)
4. 엘리후의 긴 강론(32-37장)
5. 하나님의 긴 담론(38-41장)
6. 결언-욥의 회개와 하나님의 위로(42장)
1. 서언-의롭고 행복한 욥에게 닥친 악한 시험(1-2장)
1장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탄 앞에서 동방의 우스 땅에 사는 욥의 신앙을 칭찬하자 사탄이 이의제기를 하면서 시작된다. 1:6-12은 신앙의 진실성과 순전성에 대한 하나님과 사탄의 논쟁을 보도한다. 사탄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사랑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독립적으로 순전히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주장을 반증하기 위하여 욥을 내세운다. 사탄은 욥을 쳐서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는지 신앙을 지키는지 시험해 보자고 제안하고 하나님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신다. 사탄은 욥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은 제외하고 모든 종류의 악한 시험을 가하여 욥이 신앙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1:13-22은 욥에게 가해진 사탄의 첫 시험을 보도한다. 천재지변과 약탈자들의 침략으로 모든 재산이 상실된다. 또한 단란한 욥의 자녀들 7남 3녀가 순식간에 죽임을 당하는 참담한 환난이 연쇄적으로 욥을 타격한다. 욥은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한다.
2:1-6은 욥을 향한 사탄의 두 번째 시험이 욥을 타격하는 상황을 보도한다. 사탄은 욥에게 악창과 종기가 돋아나게 하여 욥은 온 종일 기와조각으로 자기 몸을 실성한 사람처럼 긁고 있다. 그러나 2:7-10은 이런 참혹한 개인적인 곤경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려는 욥을 증거한다. 2:11-13은 드디어 욥의 세 친구들이 욥을 위하여 위로 방문길에 오르는 상황을 보도한다. 데만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바로 그들이다.
2. 세 친구들과의 논쟁 (3-27장)
이 단원은 처음에는 욥의 처지를 위로하러 왔던 세 친구들이 보수적이고 교조적인 신학의 빛 아래서 욥의 고난을 징벌론적인 관점에서 이해한 나머지, 무조건 욥을 하나님께 숨은 죄를 고백케 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도록 강압하는 상황을 자세히 점층적으로 보도한다. 세 친구들의 신학은 흔히 신명기 신학이라고 불리는데(신 28장) 모든 고난은 죄의 결과라고 보는 입장이다. 욥의 고난은 욥 자신의 숨은 죄, 혹은 그의 자녀들의 죄, 혹은 피조물 일반이 하나님께 대하여 근본적으로 갖는 불완전성과 피조물적인 누추함에 대한 하나님의 공평한 대응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교조적인 주장에 대하여 욥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무죄와 결백을 주장하며 하나님께 오히려 자신의 고난을 해명해 달라고 거칠게 덤벼든다.
1). 욥의 기조 탄식(3장)과 1라운드 논쟁(4-14장)-욥의 대답(9-10장, 12-14장)
2). 2라운드 논쟁(15-21장)-욥의 대답(19장, 21장)
3). 3라운드 논쟁(22-26장)-욥의 대답(23-24장, 26장)
3-26장 단원은 욥과 세 친구들과의 교차 논쟁을 담고 있는데 일종의 소나타 형식으로 진행된다. 기본 주제는 동일한데 약간씩 세부 논쟁이 바뀔 뿐이다. 욥의 핵심 주장은 자신에게 닥친 연쇄적이고 참혹한 고난은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세 친구들의 주장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욥의 숨은 죄가 이 고난의 원인이다. 욥은 어서 빨리 회개하여 하나님과 화목하여야 한다. 둘째, 욥의 자녀들의 명시적 혹은 숨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일 수가 있으니 욥은 회개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절대 공평하신 하나님이기에 까닭없는 고난이나 환난을 내리실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피조물도 더럽고 유한한 존재이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과도하게 주장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욥은 침묵하여야 하며 더 이상 하나님을 고소하는 도발적인 오만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3. 욥의 결론적 담화와 긴 독백(27-31장)
1). 욥의 결론적 담화(27장)
2). 지혜시적 간주곡(28장)
3). 욥의 탄원-결백을 밝혀달라는 아우성(29-31장)
이 단원은 세 친구들에 대한 욥의 답변과 하나님에게 영혼을 쏟아붓듯이 펼치는 감동적이고 긴 독백이다. 이 단원을 읽으면 독자들은 욥의 입장에 더욱 동정적이게 된다. 하나님을 향한 거친 독설적인 불평과 항의가 다소 거슬리긴 하지만 욥의 언어는 불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과 대면하여 해결하고 싶은 강한 열망을 드러낸다. 세 친구들이 하나님을 옹호하고 그의 죄를 자백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욥의 정곡을 찌르는 하나님 규탄언어는 멈출 줄 모른다. 세 친구와 벌인 논쟁에서 욥의 자기변호는 두 가지 극단점을 왕래하고 있다. 자신의 결백과 하나님의 부당한 역사하심에 대한 규탄과, 피조물로서의 인생(자신)의 본질적 곤궁함과 유한성에 대한 탄식과 자기연민에 가득찬 넋두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이 두 극단의 중간 지점에 욥기 23장이 놓여 있다. 자신이 겪고 있는 이 형용할 수 없는 불행과 환난의 참 의미를 언젠가 해명해 주실 구속자, 중보자가 땅 위에 나타날 것을 믿으며 욥은 하나님의 은닉상황을 견딘다.
4. 엘리후의 긴 강론(32-37장)
이 단원은 논쟁의 첫 순간부터 욥과 세 친구들의 논쟁을 지켜보다가 뒤늦게 논쟁에 뛰어드는 젊은 변사 엘리후의 다소 장황하고 산만한 강론이다. 양비론적인 성격을 가진 엘리후의 강론은 첫째, 거칠고 오만스럽게 들리는 욥의 불평이나 태도를 비판한다. 둘째, 욥의 고난에는 징벌 이상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엘리후는 고난 속에 시달리는 욥에 대한 욥의 친구들의 무자비한 율법주의적 단죄를 비판하는 동시에, 욥의 자기의(自己義)에 입각한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의심도 비판한다. 엘리후는 먼저 욥에게 죄를 회개하여 그의 환난이 멈출 수 있게 하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또 한편 엘리후의 논리는 한 마디로 인생과 자연 속에는 인간이 도저히 궁구할 수 없는 신비가 있다는 것이다. 엘리후는 자신의 고난의 원인을 지적(知的)으로 해명하려는 욥의 시도를 책망한다. 엘리후는 구름의 생성과 역할에 대하여 아느냐고 묻는다. 신비하게 생성되는 구름은 그 안에 무서운 번개를 감추고 비를 내리는데 때로는 심판의 비를 내리기도 하고 때로는 피조물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비를 내리기도 한다는 것이다(37:13).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신비로운 일들이 많다는 것이다(37:14, 23). 다만 한 가지 믿어야 할 것은 “사람을 대하실 때에 의롭게 대하시고 정의롭게 대하여 주신다”(23절)는 것이다. 따라서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불공평하다고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엘리후는 하나님은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간주하는 사람들을, 즉 욥이나 욥 친구들을 공히 무시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욥의 고난도 하나님의 공평하심의 표현이기 때문에 욥은 자신의 의로움을 과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엘리후의 강론은 뒤따라 나오는 하나님의 강론(39-41장)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세상 안에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신비로운 일들이 많기 때문에 믿음으로 참고 견디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공평하심과 정의로움을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엘리후의 강론이 갖는 신학적 무게다.
5. 하나님의 긴 담론(38-41장)
하나님의 강론은 두 강좌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 강론의 주제는 삼라만상 온 피조물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창조주적 권능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38장(4-38절)은 주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창조주적 권능을 증거하는 무생물들(땅, 바다, 태양, 지하세계, 빛과 어둠 등)을 나열하고 39장(38:39-39:30)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창조주적인 권능을 증거하는 생물들을 나열한다. 40-41장은 엄청난 지혜와 지식으로 고난의 원인을 알고자하는 욥에게 세상의 미묘한 이치들과 원리들에 대하여 질문을 퍼붓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제기함으로써 욥 자신이 고난에 관한 원인을 머리로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 얼마나 무모했던가를 깨우쳐 주신다. 욥은 이제 폭풍우 속에서 현현하셔서 신묘막측한 피조세계에 관한 질문을 퍼붓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하나님을 정죄하듯이 하나님께 불평하고 따져들 듯이 고난의 원인을 해명해달라고 강청한 것이 잘못된 요구임을 알게 된다.
6. 결언-욥의 회개와 욥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42장)
42장은 재와 티끌 사이에서 회개하는 욥을 꾸짖고 욥의 친구들을 정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세 친구들에 비하여 욥이 더 옳고 의로왔음을 인정하시며 욥을 위로해 주신다. 오히려 욥은 세 친구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림으로써 세 친구들의 사죄를 요청하여야 할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자 욥의 중보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고 무식한 말로 욥을 정죄하였던 세 친구들을 용서해주신다. 욥의 잘못은 자신의 무죄를 확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고난을 해명해달라고 요청한 방법과 태도임을 알게 된다. 42:10-17에서 하나님께서는 욥의 가정을 완전히 새롭게 창조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갑절의 부와 명예를 선사하심으로써 억울하고 애매한 고난으로 망가진 세월을 회복해 주신다.
II. 시편과 하나님나라 복음
시편은 일백 오십편의 시편, 다섯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1권은 1-41편은 주로 다윗의 개인생애사와 관련된 시편이다. 2권은 42-72편으로 제 2성전시기의 찬양단을 구성했던 고라 자손이 편집한 악곡들이다. 3권은 73편-89편으로 제 2성전시기의 찬양단을 구성했던 아삽자손이 편집한 관여한 악곡들이다. 4권 90-106편은 표제어가 거의 없고 책임편집이 누구의 것인지 명시되지 않은 공예배용 시편들이다. 하나님의 통치사상이 가장 명시적으로 드러난 부분이다. 5권은 107-150편으로 절기나 공예배시에 불려졌던 찬양단 악곡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120-134편은 성전에 올라갈 때 부르는 시편이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다. 시편 150편으로 다섯권으로 재구성된 이유 중 하나는 시편이 모세오경과 맞먹는 권위를 가졌다는 편집의도를 드러내기 위함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시편의 내용은 모세오경과 예언서에 전개된 이스라엘 구원사를 운율과 곡조로 되살려낸다. 시편의 내용은 아브라함부터 제 2성전시기(에스라-느헤미야)까지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사 음송(吟誦)이다. 하나님의 천지창조, 열조들의 선택과 언약, 표적과 기사를 통한 출애굽 구원, 광야인도, 시내산언약, 가나안 땅 정복, 사사시대를 끝내고 왕정을 도입한 다윗의 신정통치, 열왕시대의 반역과 패역으로 인한 멸망과 바벨론유수, 고레스 칙령으로 인한 포로귀환, 성전재건축과 봉헌, 성전순례를 통한 야웨신앙 부활과 재건이 노래되거나 회상되고 있다. 인물로 보면 이 모든 노래의 중심에 다윗이 있다. 이스라엘 구원사의 시조 아브라함, 중간시조 모세, 그리고 중간종결자이나 성전건축자 다윗, 그리고 이스라엘과 유다의 몰락을 넘어 다시 구원사를 개시할 메시야 등이 시편에 노래되는 사람들이다. 토라는 좁게는 모세오경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넓게는 이스라엘 구원사 전체를 담은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시편이 압축적으로 말해 토라찬미송이라고 말해도 무방한 것이다.
시편은 한 마디로 음악 기호가 붙어있는 모세오경이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시편음송을 돕는 아주 세부적인 음악연주용 혹은 음송용 음악부호(musical notations)가 붙여져 있다. 시편은 원래 찬양과 기도의 노랫말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시편 가사를 보면 비둘기 곡조로 노래하라, 관악기를 써서 반주하라, 타악기로 반주하라, 현악기를 두드려 반주하라 는 등등 지시노트가 다 다르다. 어떤 시편에는 “영장을 위하여”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영장(지휘자)이 편곡하거나 영장의 지휘에 따라 다소 신축성있게 불러도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현악기를 가지고 연주하라는 것은 실내악적인 시편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절대로 드럼을 쳐서 반주하거나 연주하면 안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떤 노래는 드럼을 치면서 행진곡처럼 불러야 된다. 슬픈 시편 13편이나 51편은 첼로하고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 연주가 적합하다. 그래서 시편은 “슬픈 비둘기 곡조”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곡조 이름이 붙여져 있고 더러는 ‘영장을 위하여’(‘to the music master’)라는 말이 붙어 있어 지휘자가 마음대로 편곡할 수 있는, 혹은 지휘할 때 약간의 변주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두기도 했다.
많은 시편이 “다윗의 시편”이라 되어 있습니다. 이 호칭의 뜻은 다윗이 저작한 시편이라는 뜻이면서도 동시에 다윗에게 돌려진 시편, 혹은 다윗과 관련된 주제의 시편이라는 뜻도 된다. 다윗이 쓴 시편이라는 말은 Mizmor David이다(시 18, 51편, 57편 등). 글자 그대로 다윗의 시입니다. 이것은 소유격 ‘의’가 들어갔습니다. 또 다른 많은 시편들은 Mizmor le David, 다윗에게 바쳐진 시편이라는 뜻의 표제어를 갖고 있다. a Song to David 혹은 a Song concerning David, 이런 뜻이다. 시편 150편 중 약 30편만 Song of David, 다윗이 쓴 시편이다. 그런데 다윗에게 바쳐진 시편의 경우 다윗의 인생주제가 모티브가 된 노래라는 뜻이다. 주로 아삽 자손과 고라 자손이 주로 지었다. 고라 자손과 아삽 자손은 제 2성전 시기에 주로 성전에서 섬기던 레위인들로서 유급 찬양대원이었다(음악길드 구성원). 성가대나 작곡가 자손들이 다윗의 인생 전기에서 모티브를 발굴해서 노래를 지었기 때문에 전부 다 “다윗에게 바친 노래”라고 되어 있다.
시편의 주제도 하나님나라 복음이다. 과거의 하나님나라의 위엄과 영광 회상이며 또한 하나님의 통치가 사라진 현실에서 하나님의 통치권능을 다시 보여달라는 간청과 탄원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시편의 주제는 이 두 가지입니다. 그 중에서도 한 가지만 뽑으라고 한다면 시편의 중심은 하나님의 통치가 충분히 실현되지 않은 세상에서 내짖는 부르짖음이다. 시인은 부재중인 하나님나라에 살면서 시편의 주인공들은 하나님의 보좌를 향해 온갖 종류의 간구와 탄원, 감사와 찬양, 결심과 각오를 올려린다. 시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인간의 기도, 찬양, 항의, 탄식, 불평의 언어가 하나님 말씀이다. 시편기도는 하나님의 심장으로 빨려들어가는 인간기도언어, 찬양언어, 불평과 탄식, 저항과 의심의 언어의 진수를 보여준다. 시편은 부재중인 하나님나라에 사는 하나님 자녀들의 영적인 생존분투록이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냉정하지고 심드렁해진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미로운 친밀감을 회복하는 데 가장 유익한 책이 시편이다. 하나님의 통치흔적이 사라진 땅의 팍팍한 현실에서 기도언어가 끊어져 빌 바를 알지 못하는 탄식에 눌릴 때 시편은 위력을 발한다. 그래서 시편을 여러분 많이 사랑하고 시편을 많이 암송할수록 기도가 잘 되고 기도가 잘 될수록 모든 일들을 절대주권적 섭리로 받아들이거나 해석할 수 능력이 신장된다.
시편에서 부재중인 하나님나라에 속한 의인은 세 가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다. 첫째, 자신의 죄 때문에 고난당하고 강한 심판자에 의해 추격당하는 자다. 죄악의 창수에 엄몰을 경험하는 자다(시 69편).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허락하신 고난을 겪는 상대적으로 죄없는 자들의 고난이다(시 22편). 욥같은 의인들이 공연히 당하는 고난이다. 사울에게 쫓기며 박해당하던 청년 다윗처럼 자신의 죄와 상관없이 추격당하고 고난당하면서 박해받는 사람이 시편의 중심 음조를 대변한다. 이 두 유형의 인물이 시편의 중심 주인공들이다. 자기 죄 때문에 고난받는 사람도 시편에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편을 읽어 보면 누군가가 곧 터질듯한 내 복장(腹臟)에 들어와서 내 마음을 다 알고 대변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실로 시편에는 폐부를 찌르는 말이 많다. 셋째, 자기가 속한 공동체가 범한 죄 때문에 고난당하는 자의 경험이다. 자신은 의롭지만 동포들의 패역과 죄악을 참아내며 하나님의 언약파트너로 삼아 남은 자의 고난이다. 그 남은 자는 자기 동포들의 범한 죄가 아무리 극악무도하더라도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은 파기불가능할 것이라는 종말론적 확신을 보유한다. 시편 중 많은 경우에는 슬픈 단조를 끝나지만 대부분은 하나님의 유보된 은총, 유예된 자비와 은총의 날을 기다리며 노래를 마무리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시온이 처참하고 황무해져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조롱과 야유의 대상이 될 때에도 하나님의 시온 복귀, 시온 통한 하나님의 세계통치에 대한 믿음이 이런 시편들의 노랫말과 곡조에 묻혀있다. 이 세번 째 유형의 고난을 겪는 자가 바로 시편에 나타난 그리스도다. 시편은 죄없는 자가 죄인을 대신해 부르짖는 메시야적 대속고난의 저음에 익숙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사야, 시편, 창세기, 신명기 순으로 구약성경을 애독하셨고 즐겨 인용하셨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 중 8복 선언은 시편 메시지의 가장 아름다운 압축본입니다. 시편신학의 진수를 담는 “복되도다...하는 이여”(아숴레 하이쉬 아쉐르 로-할라크 바아차트 러샤임....)의 구문은 구약에서 시편에서만 나오는 구문이다. 나사렛 예수는 로마제국과 헤롯분봉왕, 예루살렘 종교권력자들이 담합해 압제적 지배를 일삼던 시대의 이스라엘 갈릴리에서 일생을 보내셨다. 거기서 그가 맛본 것은 역동적인 하나님나라가 아니라 부재중인 하나님나라였다. 믿음과 고요한 기다림 속에서 향유된 하나님나라였다. 시편의 부재중 하나님나라를 묵상하고 묵상하던 나사렛 예수에게 부재중이 하나님나라가 복귀했다. 예수의 온 몸과 영, 그의 삶이 이뤄지는 갈릴리 일대가 예수의 몸과 영에 강림한 하나님나라의 역동적 분출과 현존을 목격했다. 나사렛 예수도 부재중인 하나님나라의 갈릴리 지방민으로 사실 때 시편을 음송하시고 시편을 인용하시며 십자가 죽음을 기꺼이 감수했다. 이처럼 시편들은 부재중인 하나님나라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존속시키는 데 유익하다. 또한 암송하기에 적합하다. 예를 들면, 시편 119편은 모두 176절로 되어 있는데 각 연은 모두 8절로 구성되어 있다. 히브리어 알파벳 22자가 각 연의 처음 자음이다. 첫 연은 히브리어 알렙으로, 마지막 스물두번째 연은 타우로 시작된다. 힙히브리어 알파벳 알렙(a), 벹(b), 김멜(g), 달렛(d)로 시작한다. 첫 연 여덟절은 이렇게 읽힌다. 1절 아숴레 터미메-데렠...2절 아숴레 노춰레 에도타이브, 3절 앞-로 파알루 아붤라...4절 아타 치뷔타 피쿠데카...5절 아할라이 이코누 드라카이 6절 아즈 로-예보쉬 ...오드콰 브요쉐르 레밥 8절 엩-후퀘콰 에숴모르다. 마지막 연은 이렇게 읽힌다. 169절 티크랍 린나티 러파네콰 아도나이.... 170 터보 터힌나티 러파네콰 171절 타바으나 세파티 터힐라...172절 타안 리쇼니 이므라테콰 173절 터히-야드콰 러오즈레니...174절 타압티 리슈아터콰 아도나이 175 터히-나프쉬 부터할레콰 176절 타이티 커쉐 오베드...
이 말은 이 토라 찬미 시편 전체가 암송되어야 될 언어지 산문처럼 읽고 지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시편 전체에서 자주 반복되는 단어인 묵상하다는 히브리어 하가(hagah)인데 그것은 암송하다, 낮은 음조로 읊조리다의 의미한다. 시편의 찬미와 기도는 암송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또 하나의 언어적 표현이다. 시편언어를 암송하면 눈을 감았을 때 드디어 하나님의 심장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도언어를 터뜨릴 수 있다. 부재중인 하나님나라에서 절대고독과 버림받았다는 신적 유기감으로 괴로워하는 영혼은 시편언어를 읇조리면서 영적 갱신과 회복을 맛본다. 자신의 기도언어가 영감의 사닥다리를 타고 하늘로 급타전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편 언어가 우리의 사유를 매개하지 않고 상상력 발동을 도와주지 않으면 기도는 공허한 맹목의 자맥질이 된다. 언어없는 상상력은 불가능하다. 시편언어가 없이는 이 세상의 레미제라블에 대한 동정심도 안생기고 이 세상의 레미제라블에 대한 하나님의 아픈 공감에도 공감할 수 없다. 시편은 부재중인 하나님나라, 은닉과 동면모드로 역사 깊은 곳으로 잠적한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을 불러낸다. 부재중인 하나님나라를 가깝게 느낄수 있도록 영적 상상력을 북돋아준다. 이처럼 시편언어는 자기 죄 때문에 고난 받는 자, 타인의 죄 때문에 고난 받는 자의 언어다.
시편 일백오십편의 기도와 찬양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 기도 생활이 엄청 풍요로워진다. 시편을 자유자재로 암송하고 그 내용들을 통달할 수 있고 암송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면 우리는 독수리 날개치며 하늘보좌로 비상할 수 있다. 시편 안에는 다윗의 굽이치는 파란만장한 인생 모티브가 기승전결의 구조로 나타나 있기 때문에 다윗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다윗의 기승전결의 인생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 은총의 발자국이 시편 장르에 다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가 다윗의 생애를 배경으로 시편언어를 묵상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나라복음의 관점에서 시편 일백오십편 모두의 제목을 다음과 같이 붙여볼 수 있을 것입니다.
1권 부재중인 하나님나라를 유리방황하는 영혼의 노래
1편 복되도다! 야웨의 율법을 즐겨 읽고 주야로 음송하는 의인들이여! 2편 너는 내 아들이라, 3편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4편 나의 의의 하나님이여 응답하소서, 5편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6편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옵소서, 7편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로다 8편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9편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10편 여호와여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11편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12편 여호와여!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13편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 니이까? 14편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15편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니이까? 16편 내게 줄로 내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17편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히 살피소서 18편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니이다 19편 여호와의 율법은 영혼을 소성시키시며 여호와의 증거는 지혜롭게 하는도다 20편 네 마음의 소원을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 이루어 주시기를! 21편 왕이 주의 힘으로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크게 즐거워하게 하소서 22편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4편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25편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26편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27편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구원이시니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28편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29편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30편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31편 나의 반석과 산성이신 주여!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32편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33편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34편 여호와는 마음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통회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35편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36편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37편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38편 여호와여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 39편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40편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책에 있나이다 41편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 날에 여호와께서 건지시리로다
2권 살아계신 하나님의 땅에서 추방당한 영혼의 노래
42편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43편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44편 나의 왕이신 하나님이시여!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소서 45편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46편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47편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48편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 49편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50편 하늘이 그의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51편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52편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53편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4편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55편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56편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57편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58편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59편 진노하심으로 악을 소멸하사 하나님이 야곱 중에서 다스리심을 땅 끝까지 알게 하소서 60편 하나님이여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61편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를 인도하소서 62편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63편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64편 하나님이여 내 근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소서 65편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66편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 사람의 아들들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 67편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 68편 하나님이 일어나시니 원수들은 흩어지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은 도망하리이다 69편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70편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71편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 72편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3권 시온을 중심으로 온 세계를 다스릴 하나님나라
73편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74편 하나님이여 일어나 주의 원통함을 푸시고 우매한 자가 주를 비방한 것을 기억하소서 75편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76편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러 일어나시도다 77편 환난 날에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78편 우리가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그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79편 갇힌 자의 탄식을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해진 자도 보존하소서 80편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의 얼굴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81편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82편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83편 주의 광풍으로 그들을 쫓으시며 주의 폭풍으로 그들을 두렵게 하사, 여호와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84편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85편 인애와 진리가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86편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주를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87편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시온에서 났다 하리로다 88편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89편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
4권 하나님나라의 세상복귀를 알리는 하나님나라 복음
90편 주여 땅과 세계도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91편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92편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며,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레바논 백향목 같이 번성하리로다 93편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크니이다 94편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95편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96편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 97편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98편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야웨, 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99편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100편 여호와 우리 하나님,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101편 아침마다 내가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악행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 102편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땅을 굽어보시사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시는도다 103편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104편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105편 여러 나라의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은 그들이 그의 율례를 지키고 그의 율법을 따르게 하려 하심이로다 106편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여러 나라로부터 모으시고 우리가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5권 귀환포로들의 형제연합과 동거 속에서 경험되는 영생의 나라, 하나님나라의 복음
107편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108편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109편 그들이 악으로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사랑을 갚았사오니 악인이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소서 110편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111편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112편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113편 여호와 우리 하나님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지도자로 세워주시는도다 114편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115편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 116편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니,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117편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18편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119편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120편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121편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122편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123편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124편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125편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126편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127편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128편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129편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 130편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131편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132편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133편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134편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135편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 136편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7편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수금타는 재주를 잊을지로다 138편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 139편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140편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리이다 141편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하지 아니할지라 142편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143편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144편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145편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146편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147편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148편 하늘의 하늘도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149편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150편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III. 잠언(Proverbs)과 하나님나라
구약성서 전체는 교육적 목적으로 저작되었다(딤후 3:15-17; 시편 1, 19, 119편). 그 중에서도 모세오경(창세기-가족적 맥락에서 일어난 교육; 출애굽기-민족형성사의 측면에서 일어난 교육; 레위기-예배 교육; 민수기-광야의 자유인 품성교육; 신명기-가정, 사회, 공동체, 국가 맥락에서 이뤄진 교육)과 잠언서 등은 교육신학의 대강과 세목을 담고 있는 책이다. 구약성서가 주창하는 교육 내용, 주체, 목적은 다음과 같다. 구약성서는 첫째,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경험하고 맛보고(받고), 둘째, 유일무이하신 하나님을 전심으로(undivided loyalty)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다. 셋째, 유일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회 및 가정생활에서 구현하고 국제적 맥락에서 실현하는 인격자, 가정, 교회, 국가를 창조하는 데 구약 교육의 핵심이다. 넷째, 구약에서 새 세대의 교육 책임은 부모에게 위탁되어 있다. 다섯째, 구약 교육신학의 목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와 아름답고 감미로운 순종관계를 이루며 이웃에게는 유용하고 유익한 존재가 되도록 가르치는 품성교육이었다. 품성 교육이 기술 및 직업 교육에 우선하였다. 이런 구약의 교육신학의 대강(大綱)과 세목(細目)이 잘 드러난 책이 잠언서다. 잠언서에서 교육은 품성 개발 교육(character formation)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체적으로 잠언서는 전도서와 욥기에 비하여 다소 보수적인 지혜를 대변한다. 이 책은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중상류층에 속한 신자의 관점을 보다 더 많이 반영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아주 긴요한 하나님의 실용적인 지혜를 담고 있다. 잠언서를 바르게 생각하는 것, 분수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부모의 자녀양육 지혜, 초달로 다스려야 될만큼 다루기 힘든 반역성과 내적 취약성을 가진 청소년 세대, 근면한 노동의 보람, 어리석고 우매한 사귐의 파탄적 결과, 그리고 불확실한 인생살이에서 북극성과 같은 하나님의 신적 인도를 받는 방법, 자신의 능력과 판단에 대한 과도한 신뢰가 가져올 낭패, 교만의 사탄적인 성격, 신분사회에서 인정받고 성공하는 다소 세속적으로 보이는 처신 지혜 등에 관하여 자세히 반복적으로 가르쳐 준다.
잠언서의 구조
1. 서론(1:1-7)
1). 저자-다윗의 아들이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1:1)
2). 잠언서의 목적들(1:2-6)
3). 잠언서의 원칙들: 야웨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1:7)
-지혜를 배척하는 것은 어리석음이다(어리석음은 탐욕과 교만).
-지혜로운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 야웨를 경외하는 것의 시발점이다.
2. 솔로몬의 잠언록 1권-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회고체 훈계들(1:8-9:18)
1). 지혜를 주목하라(1:8-9)
2). 교훈 1: 강도들과 살인자들의 초청에 넘어가지 말고 지혜자의 초청을 거절하지 말라 (1:10-33).
(1) 악한들의 초청을 감연히 거부하라: 1:10-19
(2) 지혜의 초청을 받아들이라. 각각의 결과를 비교하라: 1:20-33
3). 교훈 2: 아들아, 지혜의 말씀들을 받아들이라(2:1-22)
4). 교훈 3: 하나님을 신뢰하고 영화롭게 하라(3:1-10)
5). 교훈 4: 아들아, 지혜가 하나님의 복을 가져다 줌을 이해하라(3:11-26)
6). 교훈 5: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지혜로울찌어다(3:27-35)
7). 지혜 권면의 간주곡: 아들아, 지혜를 얻는 것이 생의 최고목표가 되게하라(4:1-9)
8). 교훈 6: 순전함의 길을 따르고 나쁜 길을 피할 것을 훈계하시는 아버지(4:10-19)
9). 교훈 7: 아들아, 동기들과 행동들을 감찰함으로써 스스로를 경계할지어다(4:20-27)
(1) 아버지 말씀을 주의하여 경청하라(4:20-22)
(2) 동기들과 행동들을 잘 지키고 경계하라-마음, 입, 눈, 발을 경계하라(4:23-27)
10). 교훈 8: 성적 부도덕의 결과와 비용을 잘 계산할지어다(5:1-14)
11). 교훈 9: 악행의 결과들을 고려하면서 삶 자체를 즐길찌어다(5:15-23)
12). 교훈 10: 악행하는 사람들, 게으름뱅이, 낯선 채무자들, 도덕적 비류(匪類)들과 어울 리지 말지어다(6:1-19)
13). 교훈 11: 음녀를 피하라(6:20-35)
14). 교훈 12: 음녀를 피하고 “지혜 부인”을 따르라(7:1-8:36)
(1) 음녀를 피하라(7:1-27)
(2) 지혜 부인을 따르라(8:1-36)
15). 요약 교훈: 경쟁하는 여인들, 경쟁하는 마음들, 두 상극적 결과들(9:1-19)
(1) “지혜”라는 이름의 귀부인(9:1-12)
(2) “우매”라는 이름의 추녀는 젊은이를 죽음의 파티에 초청한다(9:13-18)
3. 솔로몬 잠언록 2권-짧은 경구들(10:1-22:16)
1). 의로운 삶과 악한 삶을 대조하는 잠언들(10:1-15:33)
2). 의로운 삶을 높이는 잠언들(16:1-22:16)
4. 지혜자들의 잠언들(22:17-24:34)
1). 지혜자들의 첫 잠언들: 삼십 잠언(22:17-24:22)
(1) 서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생에 대한 늘 준비된 자세로 살지어다(22:17-21)
(2) 가난한 자를 강도짓 하지 마라(22:22-23)
(3) 성마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라(22:24-25)
(4) 빚보증을 함부로 서지 말라(22:26-27)
(5) 옛 지계표 이동 금지(22:28)
(6) 능숙한 자가 되라(22:29)
(7) 왕 앞에서 탐식가로 굴지 말라(23:1-3)
(8) 물질주의자로 굴지 말라(23:4-5)
(9) 이기적인 사람과 함께 먹지 말라(23:6-8)
(10) 바보와 말하지 말라(23:9)
(11) 옛 지계표들을 함부로 옮기지 말라(23:10-11)
(12) 중간 서론: 훈계에 착심하라(23:12)
(13) 자녀 징계를 지체하지 말라(23:13-14)
(14) 지혜롭고 올곧은 사람이 되라(23:15-16)
(15) 형통한 죄인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야웨를 두려워하라(23:17-18)
(16) 지혜로운 자가 되고 술주정뱅이와 탐식가들과 어울리지 말라(23:19-21)
(17)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고, 나이 든 어머니를 멸시하지 말라(23:22-23)
(18) 지혜로운 자가 되라(23:24-25)
(19) 아버지의 법도들을 따르고 음녀를 피하라(23:26-28)
(20) 술주정뱅이가 되지 말라(23:29-35)
(21) 죄인을 부러워하지 말라(24:1-2)
(22) 지혜로운 자가 되라는 간접적인 충고(24:3-4)
(23) 지혜로운 모략을 얻으라는 간접적인 충고(24:5-6)
(24) 바보가 되지 말라는 간접적인 경고(24:7)
(25) 죄를 기획하지 말라는 간접적인 경고(24:8-9)
(26) 강한 자가 되라는 간접적인 충고(24:10)
(27) 희생당한 사람들을 도우라는 충고(24:11-12)
(28) 영혼에 달콤한 지혜를 찾으라(24:13-14)
(29) 경건한 사람의 가산을 빼앗지 말라(24:15-16)
(30) 원수가 넘어질 때 기뻐하지 말라(24:17-18)
(31) 죄인을 부러워하지 말라(24:19-20)
(32) 야웨를 경외하고 배교자들을 피하라(24:21-22)
2). 지혜자의 두 번째 잠언들: 여섯 잠언들(24:23-34)
(1) 재판시 특혜를 주지 말라(24:23-25)
(2) 정직하고 똑바른 답변을 하라(24:26)
(3) 네 밭을 경작하라(24:27)
(4) 거짓 증언하지 말라(24:28)
(5) 복수를 경계하라(24:29)
(6) 게으른 삶을 경계하라(24:30-34)
5. 솔로몬의 잠언록 3권(히스기야 신하 편집)(25:1-29:27)
1). 1 단락-잡다한 잠언들:
(1) 서론(25:1)
(2) 왕들에 관하여(25:2-7)
(3) 법정 출두와 재판에 관하여(25:8-10)
(4) 언어와 말에 관하여(25:11-15)
(5) 지나침에 관하여(25:16-17)
(6) 신뢰할 수 없는 존재에 관한 잠언들(25:18-20)
(7) 원수들에 관한 잠언들(25:21-22)
(8) 험담에 관한 잠언들(25:23-24)
(9) 냉수와 진창에서 솟는 샘에 관한 잠언들(25:25-26)
(10) 자부심과 자기통제에 관한 잠언들(25:27-28)
(11) 바보들에 관한 잠언들(26:1-12)
(12) 게으름뱅이들에 관한 잠언들(26:13-16)
(13) 수다쟁이들에 관한 잠언들(26:17-28)
(14)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관한 잠언들(27:1-5)
(15) 친구들에 관한 잠언들(27:6-10)
(16) 관계성에 관한 잠언들(27:11-22)
(17) 농사에 관한 잠언들(27:23-27)
2). 2 단원-악인과 의로운 자의 대조(28:1-29:27)
(1) 의로운 태도와 악한 태도를 대조시키는 잠언들(28:1-28)
(2) 의로운 관계들과 악한 관계들을 대조시키는 잠언들(29:1-27)
6. 아굴의 잠언서들(30:1-33)
1). 서론(30:1)
2).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으뜸성(30:2-9)
3). 유사한 것들에 관한 잠언들(30:10-33)
(1) 노예를 다루는 일에 관한 충고(30:10)
(2) 네 종류의 죄인들(30:11-14)
(3)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네 가지 존재(30:15-16)
(4) 부모를 멸시하지 말라(30:17)
(5) 이해할 수 없는 네 가지 일들(30:18-19)
(6) 음녀를 피하라(30:20)
(7) 네 가지 불공평한 일들(30:21-23)
(8) 작지만 네 가지 지혜로운 존재들(30:24-28)
(9) 으스대는 네 가지 존재들(30:29-31)
(10) 교만과 분노를 피하라(30:32-33)
7. 결론-지혜를 추구하라-르무엘의 잠언들(31:1-31)
1). 르무엘 왕의 잠언들(31:1-9)
2). 잠언의 의인화-이상적인 아내 지혜 부인(31:10-31)
잠언서의 핵심 모토는 “야웨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다”라는 명제다(1:7). 서언은 잠언서의 저작 및 공부 목적(2절)을 진술한다. 잠언서 저작 및 공부의 목적은 세 가지다. 그것의 도덕적 목적은 순종/판단의 기술을 길러주고 그릇된 습관이나 품성을 바로잡아 주는 교정적 가르침을 주는 데 있다(1:2a). 그것의 정신적 목적은 지혜의 말들을 분별하도록 돕는 데 있다(1:2b). 1:3-6이 말하는 잠언서 저작 및 공부의 확장된 목적은 훈육(Discipline), 의(Righteousness)의 함양, 판단력(Judgment)의 함양, 공명정대(Equity)를 익히게 함이다(1:3). 특히 잠언서는 생각이 단순한 자에게 사려분별을, 젊은이들에게 지식과 깊은 심사숙고의 판단력을 가르친다(1:4). 그것은 배우자에게 학식과 지혜로운 모략과 경륜을 증가시켜 준다(1:5). 마지막으로 그것은 잠언적 경구, 비유, 지혜자의 말씀들, 지혜자의 수수께끼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1:6)
2 단원(1:8-9:18)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회고체 훈계들로서 1:7을 자세히 예를 들어 강해하고 있다. “지혜와 어리석음 사이에 무엇을 선택하는가?”가 교육의 근본문제라는 것이다. 지혜를 선택하도록 돕는 것이 이 단원의 교육적 주안점 중 하나다(지혜와 어리석음의 두 길을 잘 비교하고 예해한다).
3 단원(10:1-22:16)은 객관적 서술적 문체로 쓰여진다. 이 단락은 지혜와 어리석음의 두 길이 한 사람의 일생에 얼마나 집요하게 선택을 요구하면서 접근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개별적인 잠언들 모두가 선택과 판단의 중차대성을 강조한다. 인생은 선택과 판단의 씨줄과 날줄로 짜여져 가는 피륙과 같다는 것이다. 냉정하고 객관적이고 경험적인 현실관찰이 잠언서 교육의 또 하나의 주안점이다.
4 단원(1. 22:17-24:22; 2. 24:23-24)은 다시 1-9장의 훈계조 문체로 쓰여진다. 궁중 혹은 왕실 서기관들인 지혜자들의 잠언들이다. 5 단원(25:1-29:27)은 히스기야의 신하들에 의하여 채집되고 결집된 솔로몬의 잠언들의 묶음이다. 국가정책상의 지혜와 어리석음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적절하게 보여준다.
6 단원(30:1-31)은 아굴의 잠언들인데 잡다운 영역에서의 지혜의 효용을 논한다. 77 단원(31:1-31)은 르무엘 왕의 말들로서 잠언서의 결론부를 구성한다.
IV. 전도서(the Book of Ecclesiastes)와 하나님나라
전도서는 코헬렛(qohelet, 영어 이름은 ecclesiastes)으로서 그 뜻은 편찬자 혹은 수집자를 의미하거나 선포자 혹은 설교자를 의미한다.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도 전도서는 제목 그대로 지혜적 잠언의 수집물이면서 동시에 젊은이를 포함한 독자들에게 양(陽)의 방식이 아니라 음(陰)의 방식으로 야웨 신앙을 가르쳐준다. 이 책은 불신앙과 신앙의 경계선에서 방황하고 의심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야웨 신앙의 내면으로 한 단계 초청하는 철학적 신학적 묵상록이다. 바벨론 포로 생활의 고달픔에 대한 신학적 절규로 읽힐 수 있는 욥기와 시편(137편) 등과 같이, 전도서도 야웨의 전통적인 공평과 정의로운 통치에 대한 방법론적인 의심을 표출하고 있다. 저자가 솔로몬 왕이라는 말은 전도서에 나타나지 않으나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으로서 잠언을 짓고 모으는 일에 열심을 낸 왕은 솔로몬 왕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전통적으로 솔로몬의 저작이라고 믿어져 왔다. 전도서 자체의 주인공 화자는 솔로몬적인 극단 경험(극단적 지혜와 지식 추구, 극단적 쾌락과 성욕 추구, 극단적 부와 명예 추구)을 통해서 인생의 환희와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모든 것은 불확실하고 견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경험한다. 세상은 불공평한 것처럼 보이며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가 모두 함께 쇄도하는 불행과 불운의 피해자로 전락하며, 재판정과 법정은 악한 강자의 손 아래 놀아나는 것처럼 보인다. 페르샤 제국이나 바벨론 제국의 치하에서 살았던 경건한 야웨주의 신앙인이 야웨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은 공평과 정의로 견고하게 확정된 세상인데 “왜 세상이 이 모양이냐?”고 묻는다. 욥기와 더불어 전도서는 구약성서에서 불확실하고 위험한 세계에 대한 대표적인 현실비판적 신앙교본이다. 욥기와 더불어 이 전도서도 전통적인 야웨신앙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기록으로서 회의하고 좌절하는 모든 야웨주의자들을 위로하고, 야웨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계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탱하고 지지해 주는 위로의 책이다. 외견상 으로는 전도서가 삶의 불확정성(unreliability)과 허무성에 대하여 고백하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세상의 부조리와 불공평, 불확정성과 허무함에도 불구하고 젊은 날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루 하루를 즐기며 사는 평범하고 겸손한 삶이 얼마나 좋은가를 가르친다.
비록 전도서 안에서 화자는 자신을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이라고 소개하지만, 전도서의 정경적인 완성은 화폐경제가 일상화되고 중산층이 부(富)를 추구하려고 불확정적인 현실에서 투자를 하다가 망하기도 하는 아주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페르샤 제국 시기였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도서의 저작 기원과 배경에는 솔로몬의 지혜 추구와 수집 및 편찬 활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모종의 역할을 했음이 틀림없다.
전도서의 구조
1. 표제와 저자 소개(1:1)
2. 주제 선포: 세상 의존적인 삶의 무의미성과 허무함(1:2)
1). 서론: 아! 지루하고 피곤한 세상이여!(1:3-11)
2). 담론 1: 명백한 모순과 허무성에도 불구하고 삶은 하나님의 선물이다(1:12-11:6)
3). 담론 2: 죽음과 노화가 곧 찾아오기 때문에 젊은 날 인생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11:7-12:7)
3. 주제의 반복 (12:8)
4. 결론: 삶의 무의미성을 극복하는 방법(12:9-14)
1. 표제와 저자 소개(1:1)
저자는 자신을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이라고 말한다. 제목은 전도자(코헬렛)의 말씀이다. 저자는 솔로몬 왕이거나 솔로몬적인 경험을 가진 후 현재의 전도서 말씀같은 깨우침을 얻은 인물이다.
2. 주제 선포(1:2): 세상 의존적인 삶의 무의미성과 허무함
1:2은 전도서의 전체 주제인 하나님과 분리되어 사는 삶, 즉 세상의존적인 삶의 무의미성과 허무함을 천명한다. 1장 2절에서 전도서는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말을 다섯 번이나 반복한다. 여기서 “허무하다”는 말은 중국의 노장사상이나 도가(道家)가 말하는 무(無) 혹은 불교의 화엄경이 말하는 공(空) 사상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 말은 철학적인 성찰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삶의 불안전성과 불확실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허무하다는 것은 “불확정적이다!,” “불확실하다!,” 혹은 “믿을 만한 항속적인 실체가 없다”라는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을 떠난 삶의 관점에서 세상만을 쳐다보면, 세상에는 우리 인간의 영혼이 닻을 내릴 만한 안전한 항구가 없다는 것이다.
1). 서론: 아! 지루하고 피곤한 세상이여!(1:3-11)
이 단락은 이 세상 안에는 전혀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세상 만사가 지루한 반복일 뿐이라고 말한다. 세상 만물은 피곤에 찌들어 있고 이전 세대와 현재 세대와 장래 세대는 전혀 의미있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역사적 허무주의가 짙게 배여있다. 해가 지고 세월이 흐르는 것, 바람이 부는 것, 강물이 흘러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전혀 경이롭고 신비한 하나님의 일하심의 반영이 아니고 지루하고 권태로운 반복일 뿐이라고 말한다.
2). 담론 1: 명백한 모순과 허무성에도 불구하고 삶은 하나님의 선물이다(1:12-11:6)
이 단원의 핵심은 삶 자체의 명백한 모순과 난제(무의미성/허무성)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향유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이 단락에서 여러 가지 주제에 걸쳐서 전도자는 전통적인 신학의 잘 정리된 정통 교리에 비판적 성찰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전도자는 주일학교 학생같은 단순한 흑백논리나 희화화된 신명기적 확신(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상을 주고 죄를 지으면 벌을 준다는 교리, 즉 신 28장을 보라)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신비의 영역, 불가해한 허무의 영역이 있음을 인정한다. 전도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도덕적인 무의미주의 혹은 허무주의를 심어줄 때가 많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그는 불확정적인 삶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경건이요 신앙이라고 말한다. 이런 전도서의 주장은 정통 교리의 가르침으로 해결 안 되는 삶의 모순에 개안하는 성년 신자의 고백일 수도 있다.
1:12-18은 극단적 지식과 쾌락 추구와 야심만만한 생의 성취 등이 인생의 무근거성과 허무감을 극복케 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2장은 극단적인 부의 축적과 호화로운 생활 등이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데 무력함을 말하고, 오히려 평범한 일상생활의 향유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3장은 천하범사에 때가 있으므로 불행을 순식간에 행복으로 바꿀 수 없으며 아픈 상태를 급작스럽게 건강상태로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피조물 인간은 때와 시간에 속박된 유한한 존재라는 것이다. 4장은 세상에 벌어지는 부조리, 학대와 불공평, 신분상의 상승과 쇠락을 담담하게 관찰하며 세상살이의 허무함과 부조리성을 보여준다. 5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가치, 재물과 부요, 존귀한 신분에 대한 탐닉의 어리석음과 헛됨을 말한다. 6장은 재물욕, 식욕, 가족적 흥성에 대한 집착의 헛됨을 말한다.
7장은 지혜자와 우매한 자의 차이가 별 것이 아님을 말하고 지혜를 얻어 지나치게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 지혜의 한계를 가르쳐 준다. 8장은 악인과 의인이 신명기 신학의 원칙에 따라 처벌받거나 상을 받지 못할 때가 있음을 말한다는 점에서 욥기를 생각나게 한다. 9장은 악인과 의인의 운명이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 선악의 경계가 애매모호한 것처럼 보이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지혜의 효용이 있음을 인정한다. 10장은 전통적인 잠언서의 지혜를 생각나게 하는데 지혜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지혜가 모든 것을 해결하고 만사형통케 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닐지라도 우매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11:1-6은 지혜로운 사람은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3). 담론 2: 죽음과 노화가 곧 찾아오기 때문에 젊은 날 인생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 (11:7-12:7)
이 단락은 젊은이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단락은 젊은이들이 다가올 미래, 즉 노화와 죽음을 대비하여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루 하루의 삶을 즐기면서 사는 것과 즉 하나님의 선물인 인생을 향유하는 것과 쾌락주의와는 다름을 강조한다. 전도서가 말하는 젊은이의 지혜는 젊은 날 창조주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3. 주제의 반복 (12:8)
12:8은 1:2의 주제 구절을 반복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미래를 대비하되 과도한 욕망 추구, 부의 추구, 지식 추구, 명예 추구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인생은 시간과 때에 속박된 유한한 피조물임을 기억하고 하나님 안에 영혼의 닻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4. 결론: 삶의 무의미성을 극복하는 방법(12:9-14)
결론 단락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하라(잠언 1:7)는 전통적인 잠언을 상기시킨다. 전도서에서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 없는 세상의 지루한 반복성, 불확정성, 그리고 삶의 유한성과 제한성, 모순성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V. 아가(雅歌)서(Song of Songs)와 하나님나라
아가(雅歌)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 “노래 중의 노래,” 혹은 절창(絶唱)을 가리킨다. 아가서는 아랍풍의 연가인데 “솔로몬의 아가”라는 표제를 갖고 있다. 그것은 회당과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신부 이스라엘에 대한 신랑 야웨 하나님의 감미로운 사랑, 혹은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멈출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신비주의적 명상시로 이해되어 왔으나(베르나르 드 끌레르보) 문자적으로 읽었을 때 무엇보다도 남녀간의 가장 강렬하고도 감미로운 사랑의 노래다. 결국 아가서의 주제는 연애같은 신앙생활, 영성생활을 북돋우는 데 긴요한 책이지만 사랑 자체의 궁극성을 탐색하는 연애가임이 분명하다. 남녀간의 사랑에 투신되고 몰입된 사람이 하나님과의 감미로운 연합과 동거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고 반대로 하나님과의 영적 동행과 감미로운 사귐을 누리는 사람이 남녀간의 사랑에 입문하는은혜를 누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가서의 장르는 극시(오페라)에 가깝다. 등장인물은 남자여인(솔로몬 왕의 페르소나를 가진 남자 목동주인공), 솔로몬 왕의 페르소나를 가진 남자연인의 미천한 출신의 여자연인 슬라미 처녀(이 둘은 우연히 만나 꿈같은 사랑을 주고받았다가 어느 순간에 헤어진다. 둘 사이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을 듯한 사랑이다. 처녀가 아직 어렸으므로!), 그리고 이들의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사랑의 순전성을 테스트하기 위하여 끼어드는 예루살렘 여인들이다. 모두 여덟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아가서는, 현재 한글성서나 영어 성서들에서는 각 구절들이 누구의 대사인지가 분명치 않아 아가서를 충분히 음미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은 인칭과 성수(gender and number)가 명시되어 있기에 각 구절이 누구의 말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세익스피어를 무색케 할 정도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사랑의 절창이 아가서의 각 장을 지배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가서는 솔로몬왕 역할을 하는 대역 남자연인(솔로몬의 페르소나)과 슬람미 소녀 사이에 흐르는 성애적 감정을 가장 진솔하고 역동적인 이미지와 비유로 묘사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연애 편지를 쓸 때 인용할만한 명언들과 명시구들이 가득 찬 책이다. 대담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육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들, 성적 접촉이나 성적 애무에 대한 묘사들은 성애적 상상력을 고조시킨다. 이처럼 아가서는 명백하게 사랑 노래다.
그런데 한 차원 더 깊이 읽어보면 아가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깊은 명상시다. 하나님 마음 속으로 들어가고픈 무한정 열망을 가진 영성가들의 사랑 노래다. 아가서가 말하는 영성은 하나님과의 감미로운 교제 속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지와 순종의 능력이다. 영성은 연애적 친밀성과 배타적인 소속감을 추구하기 때문에 연애적 감정몰입과 의지적 투신을 요구한다. 아가서가 말하는 연애는 영성적 몰입과 연합이며, 아가서가 말하는 영성은 연애적 흥분과 친밀감, 배타적 친밀감을 느끼고자하는 강력한 사모감정으로 추동(推動)된다. 진정한 연애경험과 하나님과의 영적 결합을 최고의 희열이자 목적으로 삼는 영성적 추구는 둘 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심화되고 역동화된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의지와 지성과 감정을 사로잡아 하나님과의 깊은 연합 상태로 이끌고 들어간다. 이런 점에서 아가서는 영성이 무엇인가를 묵상하는 데 깊은 통찰을 던지는 책 중 하나다.
이처럼 아가서는 남녀간의 절절한 연애를 노래하는 시임과 동시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되신 교회(신자) 사이에 있어야 할 깊고 순결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아가서는 유월절 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회고할 때 불렀던 노래다. 이스라엘에게 신앙은 하나님의 압도적인 사랑의 육박이요 저항할 수 없는 접근이요 초청이었다.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생활은 연애와 같은 면이 있다. 거리를 초월하고 상황을 초월하고 신분을 초월하여 서로에게 강력하게 소속되는 감정 몰입과 의지적 투신이 연애이듯이, 하나님께서는 거리를 초월하시고 신분을 초월하시면서까지 시골뜨기 슬람미 소녀같은 우리들을 사랑하신다.
아가의 구조
1. 표제(1:1)-솔로몬(저자이면서도 이 연시의 작중인물로 분한 솔로몬)의 연애감정을 표출하는 절창(絶唱)
2. 첫 만남(1:2-2:7)
이 단락은 사랑 안에 있는 불합리할 정도의 강력한 충동성을 노래한다. 사랑에는 합리성을 초월하는 불가해하고 거룩한 충동성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신부를 더욱 깊고 친밀하게 경험하고자 신부의 방을 훔쳐보는 신랑과 같다. 그는 우리 성도들을 향하여 이런 참기 힘든 사랑을 느끼신다. 여기서 신랑의 사랑의 공세를 받고 있는 이 슬람미 여인은 육체적인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포도원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는 하녀요 그래서 얼굴이 검게 그을린 여인이다. 오라버니들에게 미움을 받아 하루 종일 포도원의 막일을 하도록 대우받고 사는 소녀다. 아가서의 전체 구조를 살펴보면 이 슬람미 소녀는 예루살렘 여인들로 불리는 도회지의 세련된 여인들에게 놀림도 당하고 조롱도 당하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찾아다닌다는 비아냥도 듣는다. 그러나 여인은 먼 거리를 초월하여 사랑하는 연인을 찾아 온다(슬람미에서 예루살렘까지).
3. 두 번째 만남(2:8-3:5)
왕 또한 엄청난 신분상의 거리를 초월하며 사랑의 공세를 멈추지 않는다. 이 단락은 왕의 신분을 가진 남자가 저항할 수 없는 애모(愛慕)의 열정을 이 술람미 소녀에게 쏟아 붓는 상황을 그린다. 남자는 여인의 창가에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른다. 그것은 더 깊은 차원의 사랑으로 도약하자는 초청의 밀어(密語)다.
4. 세 번째 만남(3:6-5:1)
이 단락은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가히 최음제적인 자연 묘사와 육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직유와 은유가 넘치는 단락이다. 입맞춤과 성교를 암시하는 단어들이 여인과 왕의 사랑이 절정에 치닫는 듯한 인상을 준다.
5. 네 번째 만남(5:2-6:3)
이 단락은 여인의 방문에 연신 노크를 하는 남자, 밤이슬을 맞으면서 달려온 남자에게 여인이 문을 열어주는 장면 묘사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반절정적 상황이 발생한다. 여인이 문을 열어주자 왕은 벌써 물러가 버렸다. 여인은 연인인 왕을 찾으러 나선다. 자신의 연인을 만나려고 예루살렘 거리를 쏘다니다 박해와 냉대를 받는다(5:6-7).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과 성을 파수하는 자들이 슬람미 소녀를 상하게 하였고 겉옷을 벗겨가버리기도 한다. 여인은 자신의 연인을 잃어버리고 하루 종일 찾지만 만나지 못한다. 슬람미 여인은 고향으로 내려가 자기 양떼를 먹이고 있다. 마침내 왕이 여인을 찾는다.
6. 다섯 번째 만남(6:4-8:4)
이 단락은 슬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왕의 격정적 묘사부터 시작된다. 슬람미 여인은 60명의 왕비보다 더 아름답고 80명의 후궁보다도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 왕은 낙향한 슬람미 여인에게 “되돌아오라”고 절규한다. “돌아오고 돌아오라 슬람미 여자야”(6:13). 여인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가 절정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왕은 여인에게 공공연히 입맞춤을 하지도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한다(8:1). 예루살렘에서 님을 찾지 못한 채 혹독한 박해를 당하여 낙향하여 칩거하던 여인이 돌아오기를 열망하며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자신과 슬람미 여인의 사랑을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7. 문학적 절정(8:5-7)
마침내 고향 시골로 떠났던 여인이 되돌아온다.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고?” 역동적인 애모의 정념이 왕의 가슴으로부터 여인을 향하여 발출된다. 솔로몬은 깨닫는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로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8:6-7).
8. 결론(8:8-14)
슬람미 여인의 오라버니들은 그녀의 누이가 솔로몬과 결혼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슬람미 소녀의 오라버니들은 청혼받는 날에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이처럼 아가서는 결혼을 예기하며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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