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02
고린도전서 1:18-25
오늘 본문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 가 헬라어로는 '호 로고스 투 스타우르'이고, 영어로는 'The message of the cross'인데 그 십자가의 메시지, 그 십자가의 말씀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정말 이상하고 신비한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메시지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신 후에 사람을 너무 사랑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담이 생겨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스탑되고 오지 못하여 사람은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망과 허물로 살다가 영원히 멸망하는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의 숙명이요 운명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너무 불쌍하고 애처롭게 생각하시어 사람을 구원하시는데, 그 길은 오직 한 길뿐입니다. 죄악의 담을 헐고 사람을 영생하게 하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흠도 점도 죄도 없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하나뿐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려야 그 피의 공로로 모든 사람이 죄 사함을 받고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믿기만 하면, 무슨 죄가 있어도, 아무리 부끄러운 과거가 있어도 무조건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딸로 삼아 주시고 구원해 주셔서 영원히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케리그마,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유대인에게는 거리낌이 되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하늘의 위대한 왕으로 천군 천사와 더불어 내려오시기를 기다렸는데, 마구간에 태어난 초라하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 구세주라니 거리낌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 나무에 달려 죽는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는 자라고 했는데,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 저주 받아 죽은 예수가 구세주라고 하니 거리낌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은 여러분과 제가 나무에 달려 저주받을 것을 주님께서 대신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벌거벗은 몸으로 달리셔서 창피를 당하셨는데, 여러분과 제가, 유대인들이 당할 창피를 주님께서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부끄럽게 죽은 예수가 구세주라는 사실이 거리낌이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을 자기들이 죽였습니다. 자기들이 빌라도에게 청원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이 구세주라니 거리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헬라인들과 이방인들에게는 이것이 미련한 소리, 허튼 소리였습니다. 요즘처럼 매스컴이 있는 시대가 아니었으니, 요즘처럼 신문이나 라디오, TV가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들은 예수님께서 나신 것도 모르고, 예수님께서 누구인지도 모르고,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것도 몰랐습니다. 고린도에서는 유대 사건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울이 고린도에 나타나서, 죄악이 많으면서도 문화가 발달하고 부유하고 지식 수준이 있는 도시, 철인들이 많은 지성과 죄악의 도시인 고린도에 와서 그들이 생판 모르는 예수를 전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믿으면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는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허튼 소리로 들렸겠습니까?
아니, 그들이 예수님을 보기나 했습니까? 예수님에 대해 듣기나 했습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정보가 전혀 없는데, 어느 날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니 얼마나 어리석은 소리로 들렸겠습니까?
그런데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바울아, 잠잠하지 말고 외쳐라. 이 성에 내 백성이 많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무조건 십자가의 복음만 고린도 시민들에게 전했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너도나도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여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마침내 고린도에 큰 교회가 서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신비로운 일입니다.
바울이 생각해도 신비로웠습니다.
'나는 십자가의 도를 전하기만 했는데, 예수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찌 예수님을 믿어 이렇게 큰 교회가 되는고?'
또 하나 이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듣고 고린도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데, 믿지 않는 사람들은 왜 믿지 않는고?'
몇십 명, 몇백 명, 몇천 명이 모인 자리에서 똑같이 말씀을 전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회개하고 기뻐하며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며 믿음 생활을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돌아간 후에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의 능력이 헬라어로는 뒤나미스인데, 그것은 다이너마이트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십자가의 복음을 듣는 사람의 가슴에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해서 의심하고 불신하는 바위 같은 냉랭한 마음, 굳은 바위 같은 마음이 폭발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로마서 1장 16절에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The power of God(하나님의 능력).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바다를 가르시는 하나님, 태양을 멈추기도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능력이 다이너마이트처럼 그 사람 속에 들어가 폭발해서 믿지 않고는 못 견디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복음을 믿을 수가 없고 '허튼 소리를 하네.'하고 마는 것입니다.
같은 태양 빛을 받아도 살아 있는 식물은 탄소 동화 작용을 일으키며 자라지만 죽은 나무는 더 빨리 마르듯이, 같이 비를 맞아도 살아 있는 식물은 푸릇푸릇 자라지만 죽은 나무는 더 잘 썩는 것같이, 같이 십자가의 복음을 들어도 구원받을 사람은 구원받고 멸망하는 사람은 깨닫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에 수많은 지혜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없고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믿게 하시면 어리석은 사람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참 신비롭습니다.
오늘날 미국이나 유럽은 나라 전체가 기독교 분위기입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취임사를 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손을 얹고 하나님 앞에서 선서를 합니다. 또 목사님의 축복 기도를 받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반대하지 못합니다. 만일 한국에서 대통령이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고 목사님이 축복 기도를 하면 다른 종교 단체에서 무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계에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미국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재채기만 해도 옆에 있던 사람이 "God bless you(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기를)!"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Thank you."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스운 일은 이민 온 사람들은 옆 사람이 재채기를 해도 "God bless you!"라는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미국 사람들은 옆 사람이 그 말을 했지만 자신이 재채기한다고 못 들은 줄 알고 "Thank you."라고 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놀라운 일을 만나도 "Oh God!" 일이 잘 안 풀려도, 기가 막힌 일을 당해도 "Oh my God!"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돈에도, 큰돈이든 작은 돈이든, 일 센트짜리 동전에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나라의 분위기가 교회의 분위기와 같습니다. 그러면 미국 사람들은 다 예수님을 믿습니까? 아닙니다. 미국 사람이라고 다 주일에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주일에 바다로 가는 사람은 바다로 가고, 골프하러 가는 사람은 골프하러 가고, 교회에 오는 사람만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미국에 십자가가 영광스럽게 나타나지만, 모두가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이너마이트를 그 마음에 주셔서 터뜨린 사람만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한국에 선교사가 처음 와서 복음을 전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선교사가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세요."하는 그 말이 우리에게는 허튼 소리였습니다. 2000년 전의 예수, 유대인으로 나서 죽은 예수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니, 2000년 전에 났다가 죽은 예수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나시는 것을 보았습니까?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선교사님들이 와서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라고 하는 그 말을 듣고 안창호 선생님이 예수를 믿고, 조만식 선생님이 예수를 믿고, 김구 선생님이 예수를 믿고, 이승만 대통령이 예수를 믿고, 윤보선 대통령이 예수를 믿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습니다. 신비롭습니다.
평생에 처음 듣는 이름인 예수님의 이름만 듣고도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점잖은 사람, 지성인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무식한 사람도 믿습니다. 남의 집 머슴도 예수님을 믿고 머슴의 전도를 받은 주인도 예수님을 믿습니다. 깡패도 예수님을 믿습니다.
김익두는 아주 무서운 깡패,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평양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서워서 덜덜 떠는 무서운 깡패이니 그런 사람에게 누가 예수님을 전하겠습니까? 예수님을 전하다가 맞아 죽을까 봐 겁이 나서 아무도 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황 권사님이라면 전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황 권사님은 스님을 만나도 따라가며 "스님,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하는 말릴 수 없는 전도꾼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황 권사님도 아마 김익두 같은 깡패는 겁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김익두를 모르는 미국인 처녀 선교사님이 길에서 김익두를 만나자 "청년,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하며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김익두가 그 전도지로 코를 팽 풀어서 집어던졌습니다. 김익두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를 모르는 선교사님이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청년, 전도지로 코를 풀면 코가 썩어요."
그런데 그 말에 능력이 들어가니, 그때부터 김익두의 코가 간질간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꼭 코가 썩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밤에 자리에 누웠는데도 코가 폭싹 문드러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강심장인 김익두가 떨기 시작했습니다. 더럭 겁이 났습니다.
'내 코가 정말 썩으면 어떻게 하나?'
다음 날 수소문해서 처녀 선교사님을 찾아갔습니다. 제발 코가 썩지 않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하니, 코가 썩지 않기를 바란다면 예수님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김익두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는데, 은혜를 받고 나니 너무 좋아서 입만 열면 "예수, 예수."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옛날의 김익두는 죽었다. 깡패 김익두는 죽고, 새 사람 김익두가 살아 있다."하며, 여기 저기 다니면서 예수님을 전하다가 결국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나병환자를 낫게 하고, 장님의 눈에 손을 대고 기도하여 눈을 뜨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예수님의 복음을 얼마나 많이 전했는지 모릅니다.
십자가의 도가 그를 구원한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등학생이 대학 교수에게 예수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도 대학 교수가 믿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머슴이고 상대방은 주인이라도 예수님을 전하면 주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한 작은 시골 마을의 목사님은 얼마 되지 않은 그 마을 사람들을 다 구원해야겠다는 마음이 늘 끓어올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동민들이 다 예수님을 믿을까?'
이런 마음이 있어야 참 교인입니다. 사람들을 구원하고 싶은 마음,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막 끓어올라야 합니다.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끓어올라서 견디지 못하던 목사님은 큰 종이에 교회에 다니지 않는 모든 동민들의 이름을 다 적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말했습니다.
"금년에는 우리 모두 한 사람씩, 두 사람씩 책임지고 전도합시다."
장로님들로부터 모든 교인들이 한 사람 이상 전도하기로 하고, 교인들이 "저는 이 사람을 전도하겠습니다."해서 모든 동민을 다 맡았는데, 한 사람만 남았습니다. 호랑이로 소문난 윤 노인라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무섭던지, 그분을 전도하겠다는 교인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상수라는 초등학생이 "제가 윤 노인을 책임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상수라는 이름이 좋은가 봅니다. 우리 교회도 박상수 장로님이 전도를 제일 많이 하십니다. 전도를 많이 하는 장로님이 귀한 장로님인 줄로 믿습니다.
상수가 윤 노인을 책임지겠다고 하니,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네가 윤 노인을 전도하겠다고?"
"예."
다음 날부터 상수는 학교 가기 전에 윤 노인의 집에 가서 외쳤습니다.
"할배요, 예수 믿으세요!"
"뭐? 야소 믿으라고? 이놈의 자식이!"
할아버지가 잡으러 오면 도망을 갔습니다. 할아버지가 아이를 따라잡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상수는 무사히 학교로 도망을 갔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윤 노인의 집에 가서 대문을 열고 소리쳤습니다.
"할배요, 예수 믿으세요."
"이놈의 자식이!"
다음 날 아침에 또 "할배요, 예수 믿으세요."하면 할아버지가 따라오고, 또 학교로 도망을 가고, 또 오후에 "할배요, 예수 믿으세요."라고 했습니다.
며칠째 계속 그러니 할아버지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놈이 나를 놀린다.'고 생각한 할아버지가 하루는 상수가 올 시간에 대문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상수가 대문을 열고 "할배요, 예수…."하는 순간에 그 무서운 윤 노인이 상수를 붙잡아 가지고 어른을 놀린다며 얼마나 사정없이 때렸는지 상수가 절뚝거리며 막 울었습니다. .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에 상수가 또 와서 소리쳤습니다.
"할배요, 예수 믿으세요."
할아버지는 나가서 또 때리려 하다가 '아니, 예수가 뭐기에 저 아이가 매를 맞으면서도 예수를 믿으라 하나? 예수가 뭐기에 그렇게 혼나 놓고도 또 오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자기 발로 걸어서 교회에 나왔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도 할아버지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좋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상대방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훌륭하게 말할 필요 없습니다. 십자가의 복음 그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습니다."라고만 전하면 그 사람이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신비롭습니다.
최권능 목사님은 너무 바빠서 자리에 앉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민족을 어서 예수 믿게 하려는 급한 마음에, 길을 가다가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예수 천당!"하고 소리쳤습니다. 할아버지를 만나든, 처녀를 만나든 "예수 천당!"하고 외쳤습니다. 길 가던 사람들이 그렇게 외치는 최 목사님을 보면서 "저 미친 놈 좀 봐라."라고 했지만, 그들이 결국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왜입니까? 잠을 자려고 하는데도 "예수 천당! 예수 천당!"하는 소리가 자꾸 귓가에서 맴도니, '아이구, 예수 귀신이 붙었구나.'라고 생각하고, 예수 귀신을 떼려고 교회에 갔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하루는 최권능 목사님이 길을 가고 있는데, 맞은 편에서 신사 다섯 사람이 걸어왔습니다.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예수 천당!"
그때 그 신사들이 "우리도 목사요."라고 하니, 최 목사님이 "벙어리! 벙어리! 벙어리! 벙어리!" 라고 했습니다. '전도도 하지 않는 목사가 목사냐? 벙어리지.'라는 뜻입니다.
최권능 목사님의 "예수 천당!"하는 말을 듣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전도는 내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에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미련하게 보여도 똑똑한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약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약해 보이는 것도 사람보다 강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하나님께서 약해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저렇게 약하다니, 하나님께서 힘이 없으시구나.'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 때문에 여러분과 제가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지혜가 어리석어 보여도 마귀의 지혜보다도 더 지혜롭습니다. 마귀는 사람 위에 있습니다. 사람보다 더 지혜로운 마귀도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이면 자기들이 승리할 줄 알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만세를 불렀습니다. 3일 뒤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을 마귀는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3일 만에 부활하시니, 마귀는 통곡하고 옆구리가 부러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해 보이는 것도 강하십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찬란하게 흐르고,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흐르고, 하나님의 사랑이 온 세계에 퍼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내 능력으로 쇠를 자석에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자석만 들고 가면, 아기가 들고 가든 할아버지가 들고 가든 대학 교수가 들고 가든 의사가 들고 가든 환자가 들고 가든 자석만 들고 가면 쇠가 달라붙습니다. 자석의 능력으로 쇠가 달라붙는 것이지 사람의 실력으로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말이 지혜로워 내가 전도할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자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이것만 자랑하면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놀랍습니다. 물론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해도 믿지 못합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8절에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 주세요."라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내가 보여 줄 것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 요나가 큰 물고기 속에 3일 동안 있었던 것같이 나도 땅 속에서 3일간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입니까? 표적을 보아도 믿을 사람만 믿지, 믿지 않을 사람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것,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기시는 것, 죽은 지 4일 된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셔서 나사로를 살리시는 것,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것, 장례식 하러 가는 나인성 과부 아들의 관에 손을 대고 "청년아, 일어나라."고 말씀하셔서 청년을 살리시는 것을 다 보았어도 믿지 않고 예수님을 팔아먹었습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표적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마다 천사가 백 명씩 내려와서 우리 교회 성가대에 앉아 찬송하고 올라가면 우리 나라 사람이 다 예수님을 믿을 줄 아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래도 믿을 사람만 믿고 믿지 않을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 십자가가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낌이 되는데, 지금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는지 모릅니다. 지금 많은 유대인들이 세계 각처에서 예수님께 돌아오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허다한 제사장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웃기는 일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왜 저렇게 교회에 모이지? 어리석은 사람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교회가 생명이고 예수님이 생명이십니다. 교회에 우리의 삶이 있고 소망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의 도만 믿으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영원히 사는 축복을 받는데, 이 축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미국의 팝 가수인 마이클 잭슨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요즈음에는 별로이지만, 저도 한때는 그를 좋아해서 미국에 있을 때 그가 공연하는 것을 TV에서 몇 번 보았는데, 참 희한했습니다. 걷지 않는 것 같은데 걷고, 좌우간 흉내도 낼 수 없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늙지 않으려고 치료하는 광선이 나오는 비싼 유리관에서 잠을 잔답니다. 그리고 매일 전기가 흐르는 금속판에 몸을 접촉시킨답니다. 그러면 그 충격으로 몸이 새로워지기 때문이랍니다. 또 채소는 혹시 균이 들어올까 봐 꼭 익혀서 먹고, 하루에 비타민을 오십 알씩 먹는답니다. 그리고 젊어지기 위해 동물과 논답니다. 원숭이에게 자기 옷을 입혀 놓고 원숭이하고 놀고, 또 다른 동물과도 논답니다.
그렇다고 늙지 않습니까?
마이클 잭슨이 화장을 짙게 하고 나오니 잘난 것처럼 보이지, 화장을 지우면 얼마나 보기 싫은지 모른다고 합니다.
불로장생하기 위해 별 수단을 다 써도 늙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죽습니다. 영원히 죽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사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 십자가의 도뿐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 이 세상 사는 동안에도 마이너스가 플러스가 되어 우리의 삶이 피어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손이 귀한 집안의 한 사람이 결혼을 했는데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다방 여자나 술집 여자나 가리지 않고 돈을 듬뿍듬뿍 주면서 아기 하나만 낳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몸에 병을 얻었습니다. 이 여자 저 여자를 상대하다가 몹쓸 병에 걸려 몇 년간 고생하다 보니, 그 모습이 형편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도를 받아 가지고 예수님을 믿게 되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입만 열면 예수님 자랑, 입만 열면 찬송이었습니다. 아내에게 잘못한 것도 회개하고 아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도 예수님을 믿게 되어 금슬이 좋은 잉꼬 부부가 되고, 늘 기뻐했습니다. 자식이 없어도 후대가 없어도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구원받은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감사하며 사는데 아내가 잉태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참 행복은 주 안에 있습니다.
제 아내의 사랑하는 친구의 조카가 서울대학의 좋은 학과에 합격했을 때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나이가 서른 하나인가 둘이 되었는데 아직 고시에 합격하지 못하니 꺼벙하게 살고 있습니다. 서울대학에 합격하면 좋아하지만, 끝까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좋은 소식이 별로 없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은데 좋은 소식이 별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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