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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놀라운 은혜(사 53:4-6) / 지용수 목사

by 【고동엽】 2021. 11. 26.

놀라운 은혜
이사야 53:4∼6


한 버스에 할머니가 타셔서 짐을 내려놓으신 다음에 돈주머니를 살피시더니 아주 당황하셨습니다.
"여보시오, 기사 양반. 어떡하나? 돈이 하나도 없어요. 미안해서 어떡하나?"
"돈이 없는데 왜 탔어요! 어서 내려요. 왜 돈 없이 차를 타요! 내려요."
기사가 화를 내었습니다.
할머니는 집에 가야 되니 차에서 내리면 안 됩니다. 그런데 기사가 내리라고 하자 어쩔 줄 몰라 쩔쩔
매셨습니다. 그런데 승객들까지 할머니 한 분 때문에 버스가 출발을 하지 않으니 불평하기 시작했습니
다.
"어서 내려요!"
그때 한 고등학생이 만 원짜리를 꺼내어 요금 함에 넣으면서 말했습니다.
"아저씨, 이 돈으로 할머니 차비 하시고, 다음 번에 또 어떤 분이 할머니처럼 돈 없이 차를 타시면 화
내지 마시고 남은 돈으로 그분의 차비로 쓰세요."
그때 버스의 모든 승객들은 숙연해졌고, 버스 기사 분은 말없이 버스를 출발시켰다고 합니다.
한 고등학생의 착한 행위가 우리 가슴을 훈훈하게 해 준 것입니다.
한 달 전에는 미국 홀링스워즈 회사의 사장 존 디 홀링스워즈 2세가 자기 손자들에게는 약간의 학비만
유산으로 남기고, 자선 단체에 5000억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아름다운 선이 듣는 이의 가슴을 훈훈하게 합니다.
하지만 아담 이후 지금까지 선한 사람들의 선한 일들을 다 쌓아놓아도 우리 예수님 한 분께서 행하신
사랑의 희생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의 희생은 너무너무 커서 그것을 깨달으면 지구촌이
감동하고, 깨달아 믿는 자는 그 앞에 경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왜입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이 아니셨습니다. 이 지구촌에 사신 분이 아니고, 이 지구를, 우주를
지으시고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외아들이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천지를 지으신 영광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신 분이십니다.
어떤 분은 이 말씀 들으며 '하나님의 좌편에는 누가 있을꼬?' 할지 모르겠는데,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십
시오. 좌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고 그 우측에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쓸데없는 일에 신
경 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어쨌든 천군 천사, 만만 군사들이, 하늘 나라 영적인 천사들이 예수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
정도로 영화로운 분이시고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신데, 그분이 이 땅에 오시게 됩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너무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우주를 지으시고 지구
촌을 지으시고, 그리고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온 세상은 말씀으로 지으셨는데, 사람은 흙으로 곱게 만드
셨습니다. 그리고 '후' 하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이 되게 하신 다음에 낙원, 파라다이스를 만
들어 주셨습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최고로 좋은 환경인 에덴 동산을 만드셔서 이브와 함께 살게 하셨
습니다. 행복하게 살게 하셨단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불행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따 먹지 말라 하신 선악과를 이브가 따 먹어서, 욕심을 내어 죄를 지어서 낙원에서
쫓겨나 불행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모든 사람들은 죄의 뿌리가 있어서 죄를 짓고, 그리고는 마귀를 위해 예비해 놓은 지옥에
다 들어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이 불쌍하셔서, 하나님께서 아주 잘 빚어 만드신 사람이 그렇게 망하는 것이
불쌍하셔서 살리시고파, 구원하시고파 아이디어를 내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죄 지은 자를
그냥은 용서해 주지 못하십니다.
왜입니까?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대가를 지불하시도록 예수님을 여기에 보내셔서 피 흘리
게 하셨습니다.
우리 잘 아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나라에 음풍이 들어 남편을 둔 아내가 다른 남자랑 더불어 놀고 아내를 둔 남자가 다른 여자랑 더불어
놀아 나라가 망하게 되자, 희랍의 한 왕이 무서운 법을 세웠습니다.
음란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로마도 그래서 망했습니다. 우리 한국도 음란하면 망합니다. 소돔 고모라가
음란하다가 망했습니다. 이 땅의 정치, 경제가 어려운 것은 음란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정치를 잘못해서
가 아니라, 경제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음란의 죄가 퍼져 이 땅을 하나님께서 벌하시는지도 모릅니다.
음란으로 나라가 망하게 되니 '누구든지 음란하면 두 눈을 뽑는다.'는 무서운 법을 왕이 세웠는데, 첫
범법자가 왕위를 계승할 왕자였습니다. 왕자라고 그냥 용서해 주면 그 법이 무너지기 때문에 왕은 고민
하다가 만조백관 앞에서 아들의 한 눈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한 눈은 아들의 나머지 눈을 뽑지 않고 왕
자신의 한 눈을 뽑아서 두 눈을 뽑았습니다. 그래서 공의가 서 그 나라가 견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장님을 면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셔서 그냥은 죄를 용서하지 못하십니다.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피가 흘려져
야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데, 사람의 피는 죄가 있어서 쓸데없습니다.
의로운 피, 흠 없는 피는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의 피뿐이기 때문에 그분을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으로
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시다가, 33세에 여러분과 저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6절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의 십자가에 우리의 죄를 다 담당시키셔서 구원해 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
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닙니다. 그냥 두어도 다 망하는데,
더 이상 무슨 심판이 필요합니까?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
라 구원하시려고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셔서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
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
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것은 이 말씀이 690년 전에 벌써,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690년 전에 벌써 하나님께서 이사야
를 통해 알려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몇 년 전, 부산의 어느 교회에 집회를 인도하러 갈 때입니다.
아침에 '주님, 이제 출발합니다. 가는 길, 오는 길 지켜 주시고 집회를 잘 하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하
는데,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부흥회는 한 교회에서 하는데 강사가 두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지
용수 밑에 또 한 강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제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좋지 않았겠습니까?
기분이 좋지 않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그 교회로 갔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교회에 딱 들어서니 '부흥성회 강사 지용수' 밑에 다른 이름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 왜 집회에 강사가 둘입니까?"
"목사님, 금요일까지 해 달라고 그렇게 사정해도 목사님이 목요일 새벽까지밖에 안 해주시니, 목요일
밤과 금요일, 이틀 강사를 새로 모셨지요."
신비로웠습니다. 여섯 시간 전에, 여덟 시간 전에 강사가 두 사람인 것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것도
참으로 신비로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것, 탄생하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은 690년 전에 벌써 이사야를 통
해 예언하셨습니다. 그가 오셔서 우리 죄를 지고 돌아가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구체적으로 어떻게 예언하셨습니까?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제 방에 가시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찔리신 가시가 있는데,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
이 있으면 그것으로 한 번 찔러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약 5cm 내지 3cm가 되는데, 무섭습니
다. 그 가시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예수님 머리에 콱 눌러 씌웠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몸에서 피가 낭자히 흘렀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찔리신 것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허물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허물은 내가 악을 품고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가 실수로 잘못을
하는 것입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고, 내가 무심코 한 일이 그만 실수를 해서 남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부부 교사 가정에 지능 지수가 낮은 가정부가 있었습니다. 선생님 부부가 출근하면서 "얘야, 세
탁기로 세탁하고, 아이 목욕시키는 것도 잊지 마라."라고 말했습니다.
지능 지수가 낮은 가정부는 '세탁기로 아이를 목욕시키라는 말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세탁기에 아이를
넣은 뒤, 세탁기를 돌렸습니다. 아이는 피투성이가 되어 죽었습니다.
가정부가 아이를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목욕을 잘 시키려고 했는데, 지능 지수가 낮으니 아이를
세탁기에 집어 넣은 것뿐입니다. 그것은 허물이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가정부는 살인자가 되어 일생 그 허물의 짐을 지고 살지 않겠습니까?
서울의 유명한 목사님이 오전에 장례식을 두 번 집례한 후, 오후에 결혼식 주례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주례를 하시면서 "신랑 신부의 장례식을 거행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랑 신부를 저
주하려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만 입이 실수를 한 것입니다. 오전에 있었던 장례식에 신
경을 쓰시다 보니, 오후의 결혼식을 장례식이라고 하신 것뿐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 무심코 하는 일이 사람에게 상처를 줄 때가 많습니다.
제가 무심코 던진 말에 제 아내가 상처를 받아 3일 간 말도 하지 않고, 눈이 퉁퉁 부은 적도 많았습니
다.
그런 허물이 우리를 짓누르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 허물을 다 사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찔리심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찔리심으로 우리의 허물이 다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허물에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제가 목사 안수를 받은 해에 대구 대봉교회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30여 명의 교우들과 식사를 했습니다. 제 앞에 아는 분이 앉아 계셔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이 새신자였습니다. 헤어질 때가 되어서 믿음 생활을 열심히 잘 하
라고 말한다는 것이 그만 실수로 "아주머니, 열심히 계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말에는 지우개가 없는데, 30여 명이 그 말을 다 들었습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할 때인데, 그 말을 장로
님들과 권사님들이 다 들었습니다. '열심히 계세요.' 라는 인사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런 인사 말을
들어본 사람이 계십니까?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버스를 타니까 의자에서 '열심히 계세요.' 하는 것 같았습니다. 집에 가니 아내가 "이제 오세요?" 하는
데 '열심히 계세요.' 하는 것같이 들렸습니다. 아내가 저녁 상을 차려 왔는데, 밥에서도 국에서도 '열심히
계세요. 열심히 계세요.'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성경을 펴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열심히 계세요. 열심히 계세요.'
밤에 잠을 자려고 하니까 사탄이 제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목사는 평생 말로 살아야 되는데, 인사도 하나 못하는 주제에 무슨 목사를 하겠노? 농사나 지으러 가
라.'
'맞아, 나는 목사는 안 돼. 말도, 인사도 하나 못하는 것이 어떻게 해?'
그래서 3일 간 슬럼프에 빠져서 '정말 농사를 지으러 가야 하나? 농사를 지으러 가야 되나?'라며 고민
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 이사야 43장을 읽다가 제가 기뻐서 뛰었습니다. 18절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얼마나 시원했는지 모릅니다.
'그래, 괜찮다. 열심히 계시면 어떻고, 안 계시면 어떻냐?'
말을 하다 보면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그것을 잊어먹었습니다.
그리고 남들은 이미 다 잊어버린 일인 것입니다. 남의 허물은 3일도 가지 않는 법입니다. 남들은 다 잊
어버리고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자신만 거기에 짓눌려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리고 19절에 보면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예수님 안에 있으면 허물이 없어집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이 행한 허물, 그것을 우리 주님께서 가시에 찔리셔서 다 해결하신 것을 믿고 자유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새 일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과거를 후회하는 것은 톱밥을 톱으로 써는 것과 같습니다. 톱으로 톱밥을 아무리 썰어도 생산되지 않
습니다.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흘러간 과거는 보내고 새 일 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피를 흘리시고 온 몸이 상하셨는데,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죄인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죄는 우리를 지옥에 빠뜨립니다.
지금 아프리카 탄자니아에는 파리가 사자를 죽여 비상이 걸렸답니다. 침파리라는 흡혈 파리가 상처 난
사자에게 달려가서 피를 뽑아 먹는데, 그 흡혈 파리한테 쏘인 사자, 피를 빨아 먹힌 사자는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고 무서워서 숲 속에 들어가 숨어 사는데, 곧 죽고 만답니다. 그 작은 파리가 큰 사자를 죽이
는 것입니다.
암도 처음에는, 우리 몸에 퍼질 때는 쪼그마하지만 결국 우리를 삼키듯이, 작은 죄도 우리를 지옥 가게
합니다. 큰 바윗돌만 물에 가라앉는 것이 아니고 작은 모래알도 물에 가라앉습니다. 그래서 우리 중에
살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다 죄 값으로 영원히 망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하나님께서 모르시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미국의 한 의사가 여행 중에 호텔의 타올이 탐이 나서 서너 개를 가방에 집어넣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4년 뒤에 그린 카드, 영주권 심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심사위원이 컴퓨터를 탁탁 치더니 "4년 전에 어디
로 여행한 일이 있었지요?"하고 물었습니다.
"예."
"어느 호텔에서 잤지요?"
"아,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때 호텔에서 수건 몇 장을 갖고 갔습니까?"
미국은 무서운 나라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가난한 것도 아니고 타올이 탐나서 그냥 가져간 것뿐인데 그렇게 되었으니 얼마나 난처
했겠습니까? 그렇다고 잡아뗄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잘못했습니다. 제가 그만 욕심을 부렸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심사위원이 "미국 시민이 되면 그러면 안 됩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때 바른 말을 해서 그린 카드를 받은 것입니다. 만일 그 의사가 "아니오."라고 했으면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호텔에서 타올 몇 장 훔쳐 온 것도 미국 컴퓨터에 입력이 됩니다.
여러분이 지은 죄를 여러분만 알고 말 줄로 아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만홀
히 여김을, 속임을 당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한 것을 다 아십니다.
그래서 그 죄가 여러분을 지옥으로 빠뜨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법을 만드셨습니다.
"내 아들 예수를 믿으면 그 피 값으로 죄를 사함 받는다."
로마서 8장 1절에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할렐루야!
죄를 짓지 않아도 우리는 죄인입니다. 배를 맺지 않은 어린 묘목, 어린 배나무도 배나무입니다. 그 배
나무가 자라면 배를 맺습니다.
서울 한신교회 집회에 갈 때입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비행기도 고속버스도 움직이지 못해서 어렵
게 기차표를 구해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기차 안에서 재미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제 바로 뒤에 코흘리개 아이가 앉아 있었는데, 다른 아이가 과자를 먹는 것을 보더니 말했습니다.
"과자 먹고 싶다. 과자 먹고 싶다."
과자를 갖고 있는 아이가 나누어 먹지 않으려고 하니까 그 엄마가 과자 몇 개를 집어서 주었습니다.
그것을 받은 아이가 다 먹고 나더니 "아! 맛있다. 맛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 엄마는 과자를 사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옆에 앉아 계시던 남의 할머니가 큰 봉지에 들어있는 과자를 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기의 것을 다 먹은 아이가 과자를 먹기 시작하는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깨달았습니다.
'사람 팔자 시간 문제다.' 정말 사람의 일은 순간입니다.
자기 과자를 다 먹은 아이가 "과자. 과자."라고 하니, 할머니가 과자를 먹고 있는 아이에게 "얘야, 좀
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가 "할머니, 쟤는 입이 작아 못 먹어."라고 했습니다.
먼저 과자를 먹은 아이가 조금 더 어렸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는 입이 작아서 먹지 못한다는 것입니
다.
"얘야, 무슨 소리를 하니? 쟤가 먹는 것을 너도 봤잖아. 너도 과자를 얻어 먹었지 않니?"
"그래도 입이 작아 못 먹어."
그러면서 끝까지 주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에게 누가 악을 심어 주었습니까? 그 피에 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 23절 말씀대로,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있으면 예수님의 피, 십자가의 피가 우리 죄를 다 사하십니다. 할렐루야!
제가 어느 가게에 외상으로 사 먹은 과자 값 3000원이 있어서, 빚이 있어서 그 가게 앞을 지나가지 못
하고 빙 둘러 산으로 다닌다고 합시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아시고 가게에 가셔서 3000원을 갚
으셨습니다. 그러면 제가 그 앞을 활보하고 다니게 됩니다.
우리가 지은 죄, 내가 지은 죄가 엄청나도 주님께서 이미 다 갚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뻔뻔하게 사
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꾼들은 다 뻔순이 뻔돌이인 것입니다.
몸에 때가 끼지 않는 사람이 없듯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나 믿는 자나 죄는 모두 짓습니다.
여러분, 몸에 때가 끼듯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조금조금 죄가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차이는
있지만, 죄가 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아주 큰 죄를 지으면 매를 맞기는 하지만, 지옥
갈 죄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는 지옥에 아무리 가고 싶어해도 가지 못합니다.
제가 이번 목요일에 뉴욕에 가는데,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앉아 있기만 하면 뉴욕으로 갑니다.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 아무리 북한으로 가고 싶어해도 북한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비행기를 타면 아무리 지옥에 가고 싶어해도 지옥에는 가지 못합니다. 천당으로 가게 되
어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어떻게 갑니까? 수영해서 갑니까? 뛰어 넘어갑니까? 태평양을 어떻게 넘어가겠습니까?
그러나 비행기만 타면 가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 비행기만 타면 천당에 가는 것입니다. 3미터도 뛰지 못
하는 우리가 어떻게 천당에 가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 비행기를 타게 되어 천당까지 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신비롭습니다.
이것은 거짓말 못하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아들을 믿으면 내 아들이 되고 죄 사함을 받는다." 할렐루야!
정말 신비롭습니다.

 

그 다음에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죄 없는 예수님께서 죄인처럼 법정에서, 빌라도 법정에서, 제사장 가야바 법정에서 심문을
받으시고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실 때에 "베드로, 요한, 야고보야. 내가 고민하여 심히 죽게 되었으니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같으신 분도 중보기도가 필요하셨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또 사람 몸을 입으셔서 십자
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것이 너무 고민스러우시니 불안하셔서, "얘들아, 깨어서 기도 좀 같이 하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평화의 왕, The King Of Peace, 평화의 왕께서 죄인처럼 떨고 불안해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고민스러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징계를 받으신 것은 우리의 불안, 우리의 긴장을 없애 주시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 위해서였
습니다.
뱃속의 아기도 걱정이 있습니다. 한번 물어 보세요.
"너는 걱정 없니?"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아, 말할 수 없이 걱정 돼요. 내가 열 달이 되면 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요? 나가다 죽을지 무사할지
모르잖아요."
그리고 뱃속에서 나온 아기도 허전해 합니다. 사방이 감싸여 있는 곳에 있다가 나오니 허전하고, 쿵쿵
거리는 어머니의 심장 고동 소리를 듣다가 그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허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태어나면
두 시간 안에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심장 소리를 들려 주어야 정신적으로 안정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
데 요즈음에는 간호사가 아기를 엄마에게서 빼앗아 가니 아기가 불안한 것입니다. 갈수록 정신병자가
느는 것은 엄마가 아기를 안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금 자란 아이들도 역시 불안합니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선교원에 보내고, 어린이 집에 보내
고, 탁아소에 보내고, 엄마는 직장에 나가니 불안합니다. 엄마에게서 떨어지면 죽는 줄 아는데 떨어져
있어야 하니 불안합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불안합니다. 엄마가 맞벌이 하러 가서 집에 가도 엄마가 없습니다.
중, 고등학생들, 대학생들도 불안합니다. 대학에 들어가지 못할까봐 불안하고, 대학에 들어가도 불안합
니다. 졸업해도 취직이 안 될까봐 불안합니다.
청년이 되어도 불안합니다. 아무리 예쁘고 잘난 청년이라도 결혼을 하지 못할까봐 불안합니다. 결혼을
해도 불안합니다. 아이를 낳지 못할까봐 불안하고, 아이를 낳아도 아이가 잘못될까봐 불안합니다.
회사의 이사가 되고 직장의 별이 되어도 언제 떨어질지 몰라 불안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최고 불안은 죽음입니다.
정주영 회장님은 이 나라 경제계의 별입니다. 큰 일을 하신 분이지만 죽음의 문제를 어떻게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86세로 돌아가실 때 얼마나 가슴을 치셨겠습니까?
아무리 성공해도 죽음의 문제 앞에서는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다 떱니다. 죽
음으로 끝나면 좋은데, 죽음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미래가 없는 사람은 결국 쇠퇴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 지역의 마을 사람들이 오손도손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동사무소에서 사람이 와서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동민 여러분, 이제 1년 8개월이 지나면 여기에 새로운 댐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면 이 마을은 다 물
에 잠기게 되니, 어서 이사를 가십시오."
너도나도 이사갔습니다. 몇 달 뒤에는 그 마을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왜입니까? 미래가 없는 동네에 누가 살겠습니까? 내일 모레면 다 물 속에 잠기게 되는, 미래가 없는
동네에 누가 살겠습니까?
오늘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은 죽음 너머에 미래가 없으니까 그냥 폐허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겉 사람은 후패해도 속 사람은 새로워집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클리블랜드로 가는 배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런데도 한 분인이 계속해서 평화롭게 기도를 하고 있었
습니다. 얼마 뒤에 바다가 조용해졌습니다. 두려워 떨던 많은 사람들이 그 부인 때문에 바다가 잔잔하게
된 줄 알고 그 부인 곁에 모여서 물었습니다.
"부인, 무서운 노도가 치는데, 어떻게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있었습니까?"
"예,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저에게는 두 딸이 있는데, 큰딸은 천국에서 살고 둘째딸은 클리블
랜드에서 삽니다. 그래서 노도가 칠 때 이렇게 기도했지요. '하나님, 제가 오늘 천국에 사는 큰딸을 만나
게 됩니까? 클리블랜드에 사는 작은딸 만나게 됩니까?'"
저는 이 말씀을 매년 한 번씩 하기를 원합니다. 한 번 한 설교는 다시 하지 않기를 원하고, 한 번 말씀
드린 예화도 다시 하지 않기를 원하지만, 몇 가지는 해마다 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없으면 살아도 불안하고 죽어도 캄캄하지만, 예수님 있으면 살아도 주와 함께 동행하니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이 되고 죽어도 천국입니다. 할렐루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지금 죽으면 천국의 아버지랑 제 아버지랑 같이 살고, 살면 제 어머니랑 제
아내랑 같이 살게 되니, 지금 죽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지금 죽기를 원치는 않지만, 죽어도 문제가 없
습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평화는 은행의 통장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평화는 내 집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Peace be with you!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예수님을 믿을 때 주십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병은 행복의 씨가 아닙니다. 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한 의사 선생님의 몸에 갑자기 병이 왔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즐기던 골프도 하지 못합니
다. 한 시간도 앉아 있지를 못하니 환자도 돌보지 못합니다. 자기가 의사인데도 자기 몸이 아프니 제게
와서 기도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분도 울고 부인도 울었습니다.
병은 사람을 울게 합니다. 일하지 못하게 합니다.
건강하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어제 아침에 성경 읽다가 다시 은혜를 받았습니다.
"의인은 뼈 하나도 부러지지 않게 보호하겠다." (시편 34:20) 할렐루야!
우리가 병들었을 때 의사님을 통해, 약을 통해서도 치료를 받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치료해 주실 때도
많습니다.
제가 다리 관절염으로 지팡이 짚고 절룩거리며 다녔습니다. 수없이 침을 맞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토
끼 똥 같은 약을 하루에 네 번, 다섯 번씩 먹으라고 했습니다.
하루는 '이렇게 살아서 뭣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제가 이 약을 한꺼번에 다 먹
을 테니까 이것 먹고 나으면 낫고 아니면 죽게 해주세요.'하고는 수백 개의 약을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
은 뒤에 물을 마시고 쓰러졌습니다.
약 기운으로 낫든지, 약의 독으로 죽든지 할 줄 알았습니다. 몇 시간 뒤에 죽지 않고 깨어났는데, 낫지
도 않았습니다. 다리가 그대로 아팠습니다.
그런데 제 모 교회 부흥회 때입니다. 최용문 목사님 오셔서 월요일부터 토요일 새벽까지 부흥회를 하
셨는데, 제가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마지막 날 새벽에 목사님이 "아픈 곳에 손을 얹
으시오." 하시더니 조용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병에서 나은 사람은 일어서시오."라고 하셨습니다.
일곱 명이 일어났습니다. 폐결핵 환자인 제 친구 어머니도 일어나셨습니다. 제가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들이 나아서 일어났나? 그냥 일어난 건가'
그렇지 않습니까? 폐결핵이 나았는지 낫지 않았는지 당장 어떻게 압니까? 그런데 목사님이 저를 보시
면서 "왜 의심해요? 의심하면 하나님 영광을 못 봐요."라고 하셨습니다.
'아이구, 나보고 하는 소리인가 보다.'
그래서 밑져 봐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그날 새벽에 관절염이 깨끗하게 나아서 지
금까지 아프지 않습니다. 그 목사님이 제 몸에 손을 대신 것이 아닙니다.
그때 관절염이 나아서 제가 군에 있을 때 부대 마라톤 경기에서 일등을 했습니다.
이번에 장로회신학대학교의 한 교수님이 제게 참 고맙게 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총장님께 "총장
님, ○○○ 교수님이 참 자상하시고 성실하세요."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총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
다.
"목사님, 그분이 몸이 아파서 수년 동안 학교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불치병이었는데, 하나님의 기적으
로 나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새롭게 일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교수님은 죽을 목숨이 살았으니 더 귀하게 사역하시는
가 봅니다.
어제 공항에서 돌아올 때 우리 직원이 말했습니다.
한 분이 오랜 심장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계셨는데, 우리 교회 방송 설교를 들으시다가 심장병이 나았
답니다. 그래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러 오겠다고 하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립시다.
저를 찾아올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 됩니다. 할렐루야!
사도행전 19장 1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의 손수건을 환자한테 갖다 얹어도 병이 나았습니다. 그것은 바
울의 능력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신 공로로 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가운데 병 있는 자는 우리 주님의 공로로 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허물에서 자유를, 죄에서 자유를, 불안에서 평화를, 질병에서 건강을 얻게 되지만, 예
수 믿어도 질병을 계속 앓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런 사람은 바울 같은 사람입니다. 또 병이 나으면 교만해져서 망할 사람이나 병이
나으면 교회에 나오지 않아 망할 사람은 병을 그냥 두시기 때문입니다.
병이 있어도 구원을 받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 귀한 축복을 우리가 받아야 됩니다.
지금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것을 받으라. 예수를 받으라. 예수 십자가의 은혜를 받으라."고 말
씀하십니다. 여러분이 받으면 되는데, 받지 않으면 여러분 것이 되지 않습니다.
작년에 우리 교회의 한 청년이 서울의 큰 병원, 유명한 병원 원장님 따님과 선을 보았습니다. 굉장한
집안의 따님인데, 그 따님과 집안의 어른들이 우리 교회 청년을 사랑해서 결혼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
나 우리 청년은 난생 처음 본 선이라 결정을 하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1년이 지나도록 연락을 하지 않았
습니다. 그런데 1년 몇 달이 지나서 자기에게 호감을 가졌던 그 아가씨가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1년이
훨씬 넘도록 연락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전화를 하기도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그 사실을 알고 도움을 주려고 전화를 했습니다. 저도 병원 원장님은 모르니까 그분이 다니시는
교회의 목사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아! 지용수 목사님."
"우리 교회 청년이 그 교회 아무개 병원 원장님 따님하고 선을 본 지 1년 몇 달이 지났는데 …."
"아, 그래서요?"
"그동안 이런 저런 일로 바빠서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지금 다시 보기를 원하는데…."
"아이구, 그 집사님 딸, 결혼 날짜 받아놓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따라합시다.
"종 쳤다."
여러분, 그 쪽에서 아무리 하자 해도 내가 받아들여야 그 집의 사위가 되지, 미루면 안 됩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에게 이런 기회가, 이런 축복의 기회가 또 있겠습니까?
오늘 한 번으로 영원히 끝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아멘!" 하고 예수님을 받으면, 여러분은 십자가의 복을 다 받습니다. 할렐루야!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미래가 열립니다.
그러나 '좀 미뤄 보자.' 하면 영원히 여러분의 구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도 모두 예수님을 영접하여 십자가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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