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로버트 머레이 맥체인)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9-10)
"인간 본연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그 은혜를 갈망하며 무릎 꿇을 때의 모습이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속에 사무치는 단어는 어떤 단어일까요?
하나님 아버지, 고난, 죽으심. 부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 동역 자 등 멋진 단어들이 우리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데 제 마음속에 가장 진하게 다가오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은혜란 단어입니다.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 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하나님이 이미 행하신 일들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다 라고 재임스 패커가 말합니다.
여러분! 은혜에 좀 더 집중하시고 은혜를 갈망하십시오. 은혜 속에는 엄청난 보화가 담겨있고 그 은혜는 한 번 고백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평생 동안 여전히 우리를 채울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죄 삼으시고 상상할 수 도 없는 방법으로 그를 심판하시고 우리를 구속해 주심으로 우리는 그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왜 십자가를 사랑합니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십자가를 통해 확증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오! 자기 공로나 헌신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기억되는 것은 오직 은혜뿐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모든 믿는 자를 향한 사도바울의 핍박자의 삶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게 한 주동자였습니다. 은혜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변화될 수 없었던 사람이란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은혜가 무엇인지 깨닫고 난 후 전혀 다른 차원의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이제는 핍박 자가 아닌 핍박을 받는 사람으로 그렇게 살아갑니다. 복음 때문에 돌에 맞기도 하고 죽임당할 뻔도 하고 옥에 갇히기도 합니다.
나 같은 것에게 은혜 베푸셔서 변화되고 복음 전하게 되고 동역자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에 대한 감격과 감사가 우리 안에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반추해 보십시오. 은혜입니다. 은혜 아니면 우리는 여기 있지 못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다른 우리의 선행으로 구원을 쟁취하겠습니까?
은혜를 기억 하십시오 고달픈 인생광야 속에서 지치고 허덕일 때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실까?
의심하는 것이 아닌 언제나 은혜에 사무친 삶을 선언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한결같은 은혜에 사무치기 위한 방안이 있습니다!
1)말씀을 향한 시간을 투자 하십시오. 설교에 집중하십시오.
2) 반복하십시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한 주 동안 묵상하십시오. 묵상이란 되새김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말씀을 삶 속에서 반복적으로 적용하십시오. 말씀을 따라 살고 믿음을 드러내려고 시도하십시오.
언약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의 행동입니다.
말씀을 잘 심고 가꾸어나갈 마음 밭을 준비하십시오. 은혜에 사무치지 않으면 우리의 헌신이나 희생도 외식이 될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외식이란 말은 연극배우 (어떤 역할만을 하는 것을 의미)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연극배우가 아닙니다. 집사 역할만 하지 마십시오, 역할만 하는 것은 참혹한 것입니다.
동역자다운 삶을 살려고 시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기만 하는 자가 아닌 은혜를 기억하고. 그 말씀 따라 성취된 삶을 시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때 하나님의 사람들이 무너집니까?
은혜를 망각했을 때입니다.
은혜를 기억하면 승리한 삶을 살아가지만 상실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바울의 고백은 어떻습니까? 은혜만 사무칩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외면하고 배척하고 의심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품어주셨기에 이렇게나마 응답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나 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9-10)
영원한 나라는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고 자랑하는 곳이 아닌 오직 은혜만 남는 곳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자신의 삶을 모두 내어 놓고 순교의 제물이 되었어도 남는 것은 단 하나 은혜였습니다.
몇 년 예수 믿고 몇 년 헌신 하셨습니까?
은혜로만 살아도 짧고 부족한 삶입니다. 예배 할 때도 헌신 할 때도 삶의 모든 현장에서 그 은혜의 현장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십시오.
은혜는 환경 조건을 초월합니다.
은혜는 있는 현장 그대로를 하나님의 임재의 현장으로 선용합니다.
예배는 분위기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한 달이면 될 것 같았던 공사가 왜 이렇게 지연될까를 생각하며 조급한 마음이 아닌 제가 느끼는 또 다른 은혜가 있었습니다.
석 달 이면 충분한 기회가 아닐까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희생과 헌신을 드리고 우리의 눈물을 담기에 충분한 시간으로 우리가 더 주님을 바라고 의지하는 시간으로 선용하실 것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리는 예배, 헌신, 모두 언제나 사무침으로 은혜로 감당하길 원하며 서로 간에 갈등하고 세상을 향해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어떻게 그들을 품을 것인가?
어떻게 그들을 위해 희생할 것인가를 묵상하는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 안에 차고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포도나무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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