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자료 18,185편 ◑/자료 16,731편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마4:1-4)

by 【고동엽】 2021. 11. 25.
 
전체 목록가기 말씀 목록 돌아가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마4:1-4)


예수님께서 30살 쯤 되던 해에 요한이 세례를 베풀고 있는 요단강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신다는 공식적인 선언하십니다. 메시야, 그리스도로서의 임직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제물로 자신을 드리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
또한 성령 하나님께서 비둘기 같이 임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증 가운데,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위대한 복음 전파의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주님께서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의 전파를 시작하시려 위대한 순간에 무슨 일을 먼저 하셨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시는 일이었습니다.
비장한 각오와 결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어떠한 자세로 하여야 하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비장한 각오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강한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강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포항에 가면 해병대 훈련소가 있는데 그 담장에 "해병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는 글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도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과 연단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아무 것도 드시지 않으시는 금식을 통하여 철저하게 인간 예수를 죽이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야로서 철저한 준비를 하신 것입니다. 훈련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려는 우리 모두에게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모세는 그냥 지도자로 세움을 입은 것이 아닙니다.
40년 동안 애급의 궁궐에서 학문과 지혜와 무예를 익혔습니다.
그러나 높은 학문과 무예만 가지고는 하나님께 쓰임 받기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광야로 보내졌습니다. 40년 동안 산과 들과 바람과 짐승 만이 살고있는 광야에서 사는 동안 그의  교만함은 무너졌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만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믿음을 배우게 됩니다.
이렇게 강한 훈련과 연단을 마친 뒤에 비로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좋은 가문에서 높은 학문을 소유한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바울은 고삐 풀린 망아지 같기에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사울을 주님이 친히 권능 가운데 부르시고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아라비아 사막으로 내 모셔서 3년 동안 훈련을 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자로 겸손과 인내를 배우게 하시고, 그의 지식을 복음 안에서 정리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훈련을 마치신 뒤에 사도 바울을 온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위대한 복음 전도자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이렇게 훈련과 연단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부족하구나?
내가 누구를 보낼꼬?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서 지금도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일꾼을 찾으시는 하나님께서, 일꾼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꾼으로 삼으시기 위하여 때로는 시련을 통하여, 때로는 연단을 통하여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은 뒤돌아보십시오!
가장 열심히 기도하였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가장 순수했던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가장 간절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내가 아파하였던 그때, 내가 힘들어하였던 그때,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그때가 아니었습니까?
나의 삶속에 있었던 이러한 날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오늘의 나로 만드셨습니다.

지난해에 돌아가신 코미디언 곽규석씨는 빚 때문에 일본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예수님을 뜨겁게 만났습니다. 그리고 후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예전에 너라는 노래를 불렀던 이종용이라는 가수가 있었는데 대마초 가수로 구속 수감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을 만났고 그도 목사가 되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나 조용기 목사님은 폐병 말기 환자였습니다.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경직 목사님은 97세까지, 조용기 목사님은 아직도 건강하게 능력 있는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약할 때에 곧 강함이라" 고백하였는데 모든 신앙인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평안하십니까? 평안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평안함을 주신 하나님께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십시오.
요사이 어렵고 힘드십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 나를 강한 신앙인, 순수한 신앙인, 열정적인 신앙인, 기도하는 신앙인으로 만들기 위하여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욥이 고백한 것처럼 (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련과 연단은 우리를 정금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시련과 연단을 하나님의 더욱 크고 놀라운 은총을 입게 하는 축복의 열쇠요, 은총의 문입니다.

예수님도 연단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을 따라는 우리도 연단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어떠한 시련과 연단이든지, 잘 통과하여 정금과도 같은 순수하고, 온전한 신앙인으로 서게 되기를 바라고, 주님을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 기도하시며 공생애를 준비하셨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광야에 오셨는데 금식과 기도를 통하여 더욱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셨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신 주님께서 어떠한 일을 만나셨습니까?
그것은 만사형통이 아닙니다. 부귀와 영화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가 아닙니다.
간교한 마귀의 시험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넘어뜨리려는, 실족케 하려는, 복음 전파의 사역을 훼방하려는 교활한 마귀가 시험을 하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어.
그분은 기도 많이 하시는 분이신데, 그분은 성령의 충만함 분이신데, 그분은 거룩한 분이신데 그럴 리가 없어!"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간교한 마귀는 기도 많이 한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 정직한 사람, 의로운 사람 ---- 어느 사람이든지, 어떠한 때이든지 공경하여 넘어뜨리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자가 사냥을 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사냥감을 발견한 뒤에는 살금살금 소리 없이 다가갑니다.
얼마나 머리고 좋은지 바람을 맞으면서 다가갑니다. 사냥감이 자기 냄새를 맡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기회를 엿보다가, 틈이 보이면 날렵하게 달려들어 사냥감을 낚아채는 것입니다.

간교한 사탄은 이렇게 우리를 공격합니다. 넘어뜨리려 합니다. 실족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충만하심을 입었을 때에 사탄이 공격하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어느 분은 예수님을 너무도 사랑하고, 예수님을 닮고 싶어 예수님처럼 40일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때 사탄이 그에게 왔습니다. "당신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40일 금식기도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예수님 외에 별로 성공한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사탄의 이러한 속삭임에 그는 교만해졌습니다.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였고, 결국에는 교주가 되었습니다.

박태선 장로도 주님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어쫓고, 능력을 행하던 사람입니다. 그에게 사탄이 다가가서 대단한 사람으로 추겨 세웠습니다. 이러한 달콤한 속삭임에 마음이 흔들린 그는 자신을 동방의 의인으로 칭하더니, 감람나무라고 말하더니 천부교의 교주가 되었습니다.

(고전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눅 17:32) 롯의 처를 생각하라 - 구원 받았다고 생각할 때에도 넘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작년도 노회에서 개최하는 목사 장로 수련회가 현리 광성 기도원에서 열렸습니다.
그때 아주 훤하게 잘 생긴 교수님께서 환경 운동에 대하여 강의를 하였습니다.
자신이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감동 있게 들었습니다.
많이 먹으면 배설을 많이 하고, 배설을 많이 하면 그만큼 환경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적게 먹고 적게 배설하기 위하여 하루에 한끼만 먹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지금 충청도 아주 자그마한 마을에 자그마한 집에서 살고 있는데 도둑놈이 왔다가 가지고 갈 것이 없어서 그냥 갈 만큼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큰 것을 좋아하지만 실제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도 하여 주었습니다.

이렇게 모범적인 삶을 살면서 환경에 대한 멋진 강의를 하신 분이 바로 장원이라는 분입니다.
이러한 분이 총선 시민 연대의 대변인으로 일하고 있기에 총선 시민 연대에도 박수와 격려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성추행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저는 그 분이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습니다. 멋지게 살아왔습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환경에 대하여 일깨워 주는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 순간 실족하고 넘어진 것입니다.

진실 되게 목회를 하시던 목사님도 일순간 넘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과 교회와 직장 외에는 알지 못하고 늘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살던 분이 일순간 넘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악한 영은 늘 이렇게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것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지 않으면 넘어질 수 있습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실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진실한 신앙인입니까? 누가 성령의 충만한 사람입니까?
우리를 넘어뜨리고 실족시키는 사탄의 유혹에서 이기는 사람입니다.

누가 세상에서 인격자입니까?
우리를 흐트러지게 하고, 추하게 만들려는 모든 유혹과 흔들리는 마음에서 절제하는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를 보면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있는데 제일 처음이 사랑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사랑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이 절제입니다.
절제는 성령 충만한 삶, 진실한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기회를 엿보며 우리를 넘어뜨리고, 쓰러뜨리고, 실족시키려는 사단의 유혹을 능히 물리치며, 절제의 삶을 통하여 진실 된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세 가지 시험을 받으십니다.
그 첫 번째는 40일 동안 금식하셔서 시장하신 예수님에게 마귀가 다가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 무슨 말입니까?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래서 능력과 권능과 권세를 가지고 있단다.
너는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구세주로 왔단다. 그러나 누가 이렇게 40일 금식한다고 알아 주는 사람이 있느냐? 누가 떡 한 조각이라도 갖다 주더냐?
다 부질 없는 일이다 네가 가지고 있는 권세와 능력이라면 너는 얼마든지 풍요롭고 넉넉하게 살 수 있단다.
일단 네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돌을 떡으로 만들고 주린 배부터 채워라.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자신을 위하여 쓰라고 하는 유혹입니다. 자신의 안일함과 평안을 위하여 살라는 유혹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가지고 계신 권세와 능력을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하시는데,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데, 많은 영혼을 구원해 내시는데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오 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이러한 기적을 행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너희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 하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다음 날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을 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이러한 기적을 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썩어질 육신의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썩지 아니할 영원한 양식을 위하여 살아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생명의 양식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하여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때는 너무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 열매를 따서 잡수시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거닐 때에 밀을 훑어서 먹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친히 말씀하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돌로 떡을 만들어 잡수실 수도 있지만 그 능력을 자신의 안일을 위하여 사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복음의 전파를 위하여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루는 제자들에게 무겁게 입을 여셨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붙잡혀 많은 고난과 욕을 당한 뒤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이다"
이 말을 듣자 마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안됩니다. 주님께서 돌아가셔서는 안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하여 엄한 목소리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책망하셨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예수님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십자가의 사명을 망각하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안일함과 평안함을 위하여 살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가지고 자신의 위하여 살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여 이 십자가의 쓴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시고 결단하신 뒤에 묵묵히 갈보리 십자가, 고난의 자리, 사명의 자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는 자리로 걸어가셨습니다.


악한 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님에게 속삭였던 그 목소리로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너에게 건강이 있지? 너에게 재물이 있지? 너에게 여러 가지 재능이 있지?
젊어서 놀아야 해, 늙어지면 놀 수도 없다네!  
한 번 뿐인 인생인데, 가면 다시 오지 않는 인생인데 멋지게 즐기면서 살게!
정직하게 살고, 진실하게 산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하는가!

사탄은 빛과 소금의 삶을 살라고 부름을 받은 우리들에게 이 사명을 망각하고 우리를 위하여 살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봉사하며 섬기며 살라고 부름을 받은 우리들에게 내 만족을 위하여 살라고 속삭입니다.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부름을 받은 우리에게 나의 만족과 나의 영광을 위하여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이웃에게 선을 베풀며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 가운데 사명을 망각하며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봉사의 일을 감당하도록 건강을 주셨는데 자신을 위하여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섬기며 살라고 재물을 주셨는데 재물이 자기의 것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쓰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생명을 주셨는데 하나님을 경배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시간을 도적질하여 자기의 만족을 위하여 쓰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탄의 유혹에 대하여 주님께서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말씀하시며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잠시 주린 배를 채우는 세상의 떡을 위하여 살고 있지 않습니까?
잠시 유쾌한 썩어질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위하여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인생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인데 이 짧은 세상을 살면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썩어질 세상 것에 매여서 썩어질 세상 것을 위하여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어여삐 여기시사 일꾼으로 부르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문책을 당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며 직무유기를 범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시는데 "원하는 참포도를 맺지 못하고 들포도를 맺음이 어쩜인고? 내가 이 포도원을 다 헐어 버릴 것이다"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이었고, 얼마 있지 않아 이스라엘이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간 것을 기억하십시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귀하고 복된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