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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봉사자 (이사야서 61:6-11)
몇 일 전 신문에 주인이 벗어두고 간 장화 곁에서 주인을 기다리다가 지쳐 탈진상태에 이른 개 한 마리에 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추운 겨울 매서운 북풍이 몰아치는 강가,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에서 개 주인이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 돌아오지 않자 그 장화를 지키면서 일주일, 열흘이 지나 이제 탈진상태가 되어도 여전히 주인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개의 충성심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뭉클케 하였습니다. 어떤 이는 이 기사를 읽고 "개가 사람보다 낫다."고 하며 죽기를 각오하고 주인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어디 쉽겠냐고 반문했습니다. 바울은 일찍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라며 충성을 고백하고 사는 목적을 분명히 한 일이 있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사람은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를 스스로 물어야 하며 이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 질문 없이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그저 본능에 따라 살뿐입니다. 사람의 본능에는 죽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생욕, 먹어야 하겠다는 식욕, 많이 가지고 좋은 것을 가져야 한다는 탐욕, 그리고 성욕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욕, 식욕, 성욕, 탐욕은 동물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저 본능에 의해 사는 사람은 짐승과 별반 다를 바 없고, 오히려 짐승은 죽어 사람들에게 고기라도 제공하지만 이에 비해 사람은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니 짐승만도 못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오직 돈만을 위해 살면 수전노가 되어 추해지고 더러워집니다. 오직 권력이나 명예만을 위해 살면 이기주의자나 기회주의자로 전락하여 그 삶이 지극히 비천해 집니다. 이처럼 사람은 그가 무엇을 위하여 사느냐에 따라 세계관과 가치관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종교나 어떤 교회만을 위하여 산다면 그 사람은 그 종교나 교회의 종이 되어 우상숭배자라는 그늘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참으로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무엇을 위해 오늘을 살고 있는 것입니까?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지를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I. 하나님의 봉사자로 살아야 합니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6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대(大) 선지자 중의 선지자인 이사야는 총 66장의 이사야서를 통해 크게 두 가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심판이요(1장-39장), 둘째는 구원입니다(40장-66장). 혹자는 첫째 부분을 제 1이사야서라 하고, 둘째 부분은 제 2이사야서라고 합니다. 둘째 부분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즉 고난받는 종을 통한 구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특히 61장1절 이하에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행하실 선교 사역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 자신도 당신 자신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라며 인용하셨습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것은 곧 복음 전하는 선교 사역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오늘의 본문은 구원받은 자 다시 말하면 기독자의 사명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 교훈의 첫 머리가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봉사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봉사자요, 여호와의 제사장입니다. 이 말씀의 문맥을 살피면 내가 하나님의 봉사자로서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나는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이름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중요한 책임은 봉사의 사역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봉사자입니다. 봉사란 무엇입니까? 어느 신학자는 봉사란 다음 다섯 가지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가 있습니다. 첫째는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하는 일, 둘째는 강제적으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일, 셋째는 자기가 마땅히 해야할 책임 이상을 하는 일, 넷째는 이러한 행위가 다른 이에게 유익을 끼칠 때, 다섯째는 자신의 사랑과 희생이 동반될 때 비로소 봉사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복음에 대한 봉사입니다. 주의 몸된 교회에 대한 봉사입니다. 봉사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는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봉사입니다. 자신의 시간과 재산, 기술과 힘으로 주의 복음을 위해 봉사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정신적인 봉사입니다. 자신의 지식과 은사,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고상하고도 경건한 생활의 모범, 아름답고 거룩한 인격자로서 이웃에게 미치는 좋은 영향은 보이지 않는 큰 봉사요,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셋째로 영적인 봉사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모습, 복음 선교를 위해 헌신하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믿고 천국을 향해 올곧게 걸어가는 영적인 인격을 통하여 봉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이러한 봉사자들이 많은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자기의 것이라고 해서 그것을 움켜쥐고 끝까지 고집스럽게 사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이 필요로 하실 때 "주여 나를 보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응답하는 믿음 생활이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봉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II. 여호와께 복받은 자들로 살아야 합니다
"그들은 여호와께 복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9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친히 책임지시고 복되게 하십니다. 요즘 새벽기도회 때 다니엘서를 강해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17세의 나이로 바벨론 나라의 포로가 되어 잡혀갑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침공으로 주전 606년 제1차 포로들이 잡혀가는데 이 때 다니엘도 잡혀가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살다가 90세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느부갓네살 왕, 다리오 왕, 고레스 왕을 거치면서 변함없이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머리는 영특했습니다. 둘째로 준수한 용모를 주셨습니다. 준수할 뿐만 아니라 건강했습니다. 셋째로 무슨 일이든지 그에게 맡겨진 일은 남달리 잘 해 내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넷째로 어떤 경우에서든지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다니엘 뿐 아닐 것입니다. 믿음 생활을 잘하면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도 축복하셔서 지혜를 주심으로 공부도 잘하고, 건강하고 예쁘게 자랄 뿐만 아니라 주어진 일은 무엇이든지 잘 해 낼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1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신이 성전을 짓는 석공들에게 임하자 그들에게 특별한 재능을 생겨나 돌들을 마치 떡 주무르듯 다루어 세상 사람들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운 예술품을 조각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자굴 속에 들어가든지 풀무불 속에 들어가든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다니엘을 보호하셨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전 세계에 고작 600만명의 유태인들만이 살고 있지만 세계의 문학, 예술, 경제, 금융, 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으뜸인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사장의 나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봉사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종교 개혁 이후 오늘의 교회는 만인 제사장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꼭 같이 하나님께 직접 기도하고 찬송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거기로부터 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더욱 중요한 의미는 "내가 너에게 봉사자, 희생자로 산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권리임과 동시에 이웃과 세계에 대하여는 책임지는 봉사자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같은 봉사의 책임, 제사장의 책임을 다하는 백성에게 축복하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원받은 감격과 은혜로 행할 책임입니다.
III. 봉사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로다(10절)." 이것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구원하시고 의롭고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의 봉사도 이처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막연하고 모호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다음 주일 우리 교회는 창립 44주년을 맞습니다. 더불어 장로, 집사, 권사의 안수식이 있습니다. 지난 주일 찬양예배가 끝난 후 그 동안 당회 아래에서 공부하고 훈련받은 집사, 권사 후보에 대한 면접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적어도 항존직을 받으면 다음과 같이 봉사해야 한다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첫째로 친교실에서의 주방 봉사는 필수적으로 해야 합니다. 교구별로 한달 씩 돌아가면서 봉사하는데 특히 시무 권사는 빠짐없이 여기에서 봉사해야 합니다. 다른 부서에서 봉사하는 분이라도 친교실 봉사는 필수적으로 해야 할 봉사입니다.
둘째로 상가 가는 일에 열심을 내십시요. 특히 가난하고 어려운 가정을 찾아가서 위로하며 이를 전도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셋째로 언어 봉사에 유의하십시요. 특히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나 개인에게 덕이 되지 않는 말은 하지도 말고 혹 들었더라도 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발터라는 사람은 "부주의한 말은 싸움에 불을 붙일 것이다. 잔인한 말은 사람을 때리고 죽일 것이다. 지혜로운 말은 길을 평탄하게 닦아줄 것이다. 때에 적합한 말은 고통을 완화시켜줄 것이다. 인자한 말은 상처를 고쳐주고 축복이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넷째로 기도하는 일을 좀더 열심을 내십시요. 정한 시간에 경건한 자세로 기도하는 모습은 다른 이에게도 은혜가 됩니다.
다섯째로 구제하는 일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눈여겨보고 적어도 일년에 몇 차례는 개인적으로도 구제하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섯째로 본 교회 바깥의 단체나 교회, 기관과 접촉하거나 관계를 가질 때에는 그것이 아무리 좋아도 반드시 교구 목사님이나 당회장과 의논하는 것이 항존직의 기본 자세입니다. 주위에 이상한 단체들이 많고 기도회나 봉사회도 많은 데 이러한 단체에서는 동신교회의 안수집사나 권사가 왔다고 하면 일단은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데 보장이 되기 때문에 할 수 있는대로 끌어들이려고 할 것입니다. 항존직은 이러한 일에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일곱째로 헌금 생활을 좀더 무게있게 해야 합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힘겹게 헌금하는 성도와 제직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헌금 생활은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씀씀이가 지나친 교인들도 있습니다. 안 가도 될 국내외 여행에 몰려다니고 개인 생활에서 조금 절약해도 될 것을 자신을 위해서는 조금도 아끼지 않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에게는 좀 인색하더라도 헌금생활, 선교활동, 구제 등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힘겹도록 일하시는 분들의 인격이 돋보이는 것입니다. 지나친 말씀인지는 모르지만 제직이 되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동전 몇 개 드리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몇 십만원도 아까워하지 않는다면 말은 하지 않지만 비천하고 불쌍해 보입니다.
이런 내용을 항존직 임직자들에게 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주님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자기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할 것 다하면서 교회 일 할 수 없고, 자기 쓸 것 다 쓰면서 하나님께 드릴 예물은 없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찮은 개 한 마리도 자기 죽음을 각오하고 주인을 기다리는데 우리는 주님의 종이라고 하면서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한 번 생각하는 오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봉사자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출처/강동수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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