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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봉헌생활 (잠 3:9)
신앙생활은 봉헌생활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주님께 드리는 생활이 봉헌생활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소중한 것들을 다 주셨습니다. 주시되 남김없이 다 주셨습니다. 자존심도 버리셨고 체면도 버리셨고 생명도 포기하셨고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다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창조주가 피조물들로부터 죽임을 당해서 땅에 묻히는 수모도 당했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제물 되어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봉헌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 주셨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나를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께 다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봉헌생활이고 신앙생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드리고 봉헌하는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은 이 봉헌생활에서 기쁨을 얻어야 하고 행복함을 얻어야 합니다. 마르틴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자유“라는 논문에서 “기독교인의 가장 큰 자유함은 헌신하는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참 기쁨은 마음껏 행동하며 헌신하며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신앙의 삶은 헌신하고 봉헌하는 삶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드리고 봉헌할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 몸을 드리는 봉헌”입니다.
우리나라는 130년 전에 선교사들이 이 땅에 들어옴으로 복음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들어올 그 당시 우리나라 형편은 참으로 암울했던 때입니다. 어둡고 미개하고 가난하고 지극히 전근대적이고 우상과 악습과 우매함이 극에 달해 있을 때입니다. 그때는 우리민족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세상 넓은 줄을 모르고 이 좁은 땅 안에 갇혀 살아갈 때입니다. 그때 복음이 이 땅에 들어와서 오늘 우리민족이 비로서 눈이 뜨이고 머리가 깨이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넓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사람은 이렇게 살아가는 존재로구나 하는 점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참 생각할수록 기적 같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때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겠습니까. 선교사들의 사역은 처음에는 미약하지만 나중에는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미개한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했던 그 때의 선교사들은 모두 몸으로 봉헌하고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처음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은 돈이 없어서 가재도구를 다 팔아서 그 돈을 가지고 여비삼아 들어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순전히 몸으로 때운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몸의 헌신입니다. 몸으로 드린 봉헌생활입니다.
오늘 아프리카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히는 사람이 리빙스턴입니다. 리빙스턴은 어려서 부흥회에 참석합니다. 그 부흥회를 참석했을 때 마침 아프리카를 위해서 헌금하고 있었습니다. 조상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많이 억압하고 괴롭혔는데 이제 오늘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한다 해서 모두 헌금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리빙스턴은 돈이 없었습니다. 헌금바구니는 돌아오는데 돈은 없고 그래서 두발을 헌금통에 넣었다고 합니다. 그때 교회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가 하는 짓이 신기하기도 해서 모두 웃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웃었지만 그는 엄숙한 마음으로 “주님 나를 드립니다.” 하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후에 그 어린 아이가 성장해서 아프리카로 건너가 선교사가 됩니다. 그리고 사역을 다 마친 후 마지막 운명 직전에 유언하기를 “내가 죽으면 내 심장을 이 아프리카 땅에 묻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심장은 그 땅에 묻고 나머지 시신은 영국으로 돌아와 웨스트민스터 사원 가장 높은 계단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프리카에서는 리빙스턴하면 전설 같은 존재로 모두 존경합니다. 이것이 몸으로 드리는 헌신입니다. 금년 한해를 이 몸으로 헌신하고 봉헌하는 심정으로 섬겨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늘 우리의 헌신을 기쁨으로 받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을 건강하고 신선하고 부지런하게 움직일 수 있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시간을 드리는 봉헌”입니다.
봉헌생활에는 몸을 드리는 봉헌이 있고 시간을 드리는 봉헌이 있습니다. 헌신의 삶을 살아가려면 우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시간이 없어서 봉사를 못하겠다는 분이 있습니다. 시간을 드리는 것도 소중한 봉헌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너무 많이 사용합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놀고 즐기고 유흥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는 인색합니다.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께 봉헌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시간을 적절하게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새해에는 이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려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게으른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할 일 다 하고 남은 시간가지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할 일도 다해야 하고 헌신의 삶도 살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누구보다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오늘같이 분주하고 바쁜 시대에 시간을 내서 헌신생활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주일날은 한 시간이라도 더 잠을 자고 싶을 것입니다. 한 시간이라도 더 놀고 싶을 것입니다. 회사 일에 한 시간이라도 더 투자하고 싶을 것입니다. 주일날 가족과 한 시간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을 것입니다. 취미생활도 더 하고 싶을 것입니다. 생각하면 부질없는 일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더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여러분, 앞으로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오리라던 그 종말을 생각하며 신앙을 가꾸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때는 핑계도 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장사 열심히 하느라고 못했습니다. 그 대신 선교헌금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이유가 되겠습니까. “사업 열심히 하느라고 헌신의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11조 열심히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대답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기회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기회 다 지나가 버리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봉헌에는 몸으로 하는 봉헌도 있고 시간을 드리는 봉헌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봉헌”입니다.
봉헌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는 모두 좋은 은사 한가지씩을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가르치기를 잘 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찬양을 잘하는 분, 악기를 잘 다루는 분, 음식솜씨가 좋은 분, 차량안내를 잘 하는 분, 물질에 여유가 있는 분 등 모두 소중한 것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이고 달란트입니다.
가르치기를 잘 하는 일 얼마나 소중한 재능입니까. 그것 아무나 못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재능이고 달란트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나에게 논리적인 언어를 주시고 가르치는 요령을 주신 은사입니다. “내가 누구를 가르친다.” 얼마나 소중한 일입니까. 또 찬양하는 일, 이것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능이고 달란트입니다. 아름다운 목소리가 내게 주어진 것, 축복 아닙니까. 내가 음을 알고 이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그리고 내가 악기를 잘 다루는 능력이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다. 그것도 달란트중의 달란트입니다. 재능입니다. 그런데 보면 그렇게 좋은 음성을 주시고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재능이 주어졌는데 그것을 돈벌이에 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은사를 주신 분이 참 속상할 것 같습니다. 그것을 활용하라고 주셨는데 자기만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밉살스럽겠습니까.
또 차량 봉사하는 일도 은사입니다. 여기 오신 여러분은 모두 천사가 아닙니다. 가끔 차량안내자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여러분 중 어떤 분들은 참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예배를 마치고 차를 움직일 때 보면 상식이하의 행동을 하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차량안내자들은 월급 받고 일하는 용역업체 사람들도 아니고 여러분들의 차량질서를 돕기 위해서 추운 날씨에 수고하고 있는데 그들의 안내에 상식이하로 대하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그런 모습보고 내가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가 하고 그 일을 그만둔 분들도 있습니다. 지금 있는 분들은 그런 경지를 초월한 분들이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분명 은사입니다. 그것도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운전할줄 알면 다하는 일이 아니고 누구보다도 인내의 지혜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진정한 봉사자들입니다. 그것이 봉헌의 생활입니다.
또 물질로 봉사하는 일도 봉헌의 생활입니다. 물질은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이 물질을 대합니다. 그래서 이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생활이 봉헌생활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습니까. 야곱은 11조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약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복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 자손들이 마침내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이루지 않았습니까.
십일조 생활은 하나님이 강조하신 봉헌생활입니다. 성경에 보면 11조를 통해서 나를 시험해 보라고 했습니다. 11조 생활은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척도입니다. 신앙인이 11조를 드릴 수 있는 실력이면 일단 그 믿음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각종 직분을 맡길 때 그 첫 번째 기준이 주일성수 생활이고 또 하나는 11조 생활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에서 이 두 가지를 완벽하게 이루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두 기둥입니다.
제가 헌금을 뒤에 연보통을 놓지 않고 예배시간에 하는 이유는 순전히 봉헌정신 때문입니다. 들어올 때 뒤에 있는 연보통에 넣고 오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서 요즘 교회들이 그렇게 하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예배시간에 내 손으로 내가 준비한 그 헌금을 두 손으로 드리고 봉헌하는 마음을 좋아합니다. 헌금은 그렇게 드려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헌금이고 봉헌입니다. 토요일이면 내일 주일날 주님께 드릴 시간을 미리 준비해 놓습니다. 주님께 드리기 위해서 옷을 준비하고 머리를 손질하고 헌금을 미리 새 돈으로 준비해서 드리려고 준비해 놓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그 준비된 마음을 주님께 드립니다.
저는 그 마음, 그 준비가 봉헌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마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봉헌의 정신입니다. 주일을 위해서 그렇게 준비한 마음으로 주일날 온 가족이 함께 예배에 참석해서 마음을 드리고 뜻을 드리고 헌금을 드리는 그 예배, 그것이 예배의 정신입니다. 여러분 새해에는 한번 그렇게 해 보십시오. 그리고 연말에 가서 여러분의 삶의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살펴보십시오. 아마 신비하도록 변화된 여러분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새해에는 이 봉헌생활에 한번 심혈을 기울여 보십시오. 용기를 내서 봉헌다운 봉헌의 생활을 해 보십시오. 이 11조 봉헌생활도 한번 용기 있게 해 보십시오. 지금까지 못하신 분은 믿음으로 한번 해 보십시오. 그리고 한번 기대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저는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증거가 있습니다. 온전히 하지 못하면 조금씩이라도 시작해 보십시오. 하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믿음이 성장하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무슨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일에 기쁨을 느낍니다. 주일날 헌금 준비하는 일에 기쁨이 있습니다. 새 돈을 보면 먼저 헌금해야지 하는 마음이 앞섭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런 마음으로 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새 돈이 생기면 “이 돈 두었다가 아가씨에게 팁 주어야지” 그런 생각이 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슨 돈이 생기면 지금 헌금할 일이 없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가끔 제 아들이 “아버지 오늘 저녁은 제가 살 테니 가요” 그럼니다. 그 아이가 사 봤자 뭘 사겠습니까. 겨우 가락국숫집이나 만두집이나 피자집에 갑니다. 그게 그 아이의 수준입니다. 그래도 “내가 살 테니까 가자” 하는 그 말이 참 좋습니다. 그 사는 돈은 누구 돈입니까. 모두 제가 용돈 준 것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 테니 가자 그 말은 용돈 떨어져가니 더 달라는 사인입니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이 참 좋습니다. 부모는 이래저래 자식에게 속아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부모는 그 삶이 즐겁습니다. 그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그것이 어찌 부모의 마음뿐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꼭 그렇습니다. 그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한 주간동안 준비하고 정성껏 마련한 마음으로 드리고 봉헌하는 모습,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 것입니까. 주일날 급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래도 “일찍 예배드리고 가야지.” 그것이 봉헌정신입니다. 11조를 드려야 하는데 갑자기 돈 쓸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때에 우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고 뚝 떼어놓을 수 있는 결단력, 그것이 봉헌정신입니다. 우리들이 현재의 눈앞에 나타난 현실만 보면 그것은 신앙인도 아닙니다. 신앙의 눈은 멀리 보는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세기적인 부자 록펠러는 할아버지로부터 어려서부터 이 십일조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용돈을 주고는 반드시 그 용돈 중에서 11조 드리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그의 앞날을 위해서 늘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후에 세기적인 성공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의 11조만 관리하는 직원만도 30명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신학이 아닙니다. 율법도 아닙니다. 이것은 그런 차원과는 별개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신앙인의 삶입니다. 봉헌의 삶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혹시 삶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하고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고 믿음의 삶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남은 것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쓰고 남는 것도 없지만 쓰고 남은 것을 드려야 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성경은 첫 열매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첫 자식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첫 새끼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나 첫 열매는 소중합니다. 자식도 첫 자식이 소중합니다. 열매도 첫 열매가 소중합니다. 월급도 첫 번 받은 월급이 귀합니다. 사랑도 첫사랑이 오래 기억됩니다. 친구도 첫 친구가 오래갑니다. 믿음도 첫 믿음이 오래 기억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 열매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봉헌의 정신입니다. 이같은 봉헌생활로 새해는 한번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 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이정익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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