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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무오(無誤)하다고 믿는 로마가톨릭교회 / 최덕성 교수

by 【고동엽】 2021. 11. 18.

교황이 무오(無誤)하다고 믿는 로마가톨릭교회
2014.08.11 18:09 [특별기고] 교황 프란치스코께 묻는다 ④ 교황무오 교리
▲최덕성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황이 무오(無誤)하다고 믿는다. 신앙과 도덕에 관한 무엇을 결정·선포할 때 그에게 오류가 없다고 믿는 것이다. 교황이 결정하고 성명·선포한 것은 교회가 동의할 사안이 아니다. 타인의 승인도 필요하지 않다. 어느 누구도 이의제기를 할 수 없다. 그 내용은 바뀔 수 없다. 후대의 교황이 바꿀 수 없다. 교황무오교리의 유효성은 하나님의 계시와 동등하므로 절대적이며 불변하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준 최상의 교도권(敎導權)이므로 비판·항의·거역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한다.

교황무오교리는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교리는 역사적·성경적 근거가 없다. 정당성 입증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기록되지 않은 성경’이라 일컫는 전통론과 더불어, 지상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교황제국을 떠받쳐 온 권력지향적·배타적·독선적 기둥이다. 교회개혁을 방해한다. 성경이 명백하게 가르치고 금하는 것을 교황이 상반되게 선포해도, 그 명령에 항거하지 못하게 한다. 무조건적 순종·복종·맹종을 요구한다. 교황이 무오하다는 발상은 교황직을 신성불가침 영역에 두어 가부장적 위계질서와 계급주의 제도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이단적 발상이다.

 

 

1. 기록되지 않은 성경

교황무오교리는 사도직 계승론, 교계제도, 교황수위권 교리와 더불어, 로마가톨릭교회론의 바탕인 전통론에 기초해 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전통론을 이해해야 교황무오교리의 정체를 간파할 수 있다.

로마는 전통(傳統, tradition)을 전승(傳承), 성전(聖傳), 유전(遺傳), ‘기록되지 않은 성경’, ‘기록되지 않은 전통’, ‘전승되는 하나님의 말씀’ 등으로 표현한다. 무오(無誤)와 무류(無謬)는 같은 뜻이다. 개신교회는 전자를 로마는 후자를 선호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회 초기부터 눈에 보이지 않고 기록되지도 않고 실체 없이 전승되는 무엇이 교황에게, 교황과 더불어 주교단에게 계시로 주어진다고 믿는다. 교회 초기부터 전승되어 오는 교훈과 실천 관행과 구전(口傳)으로 전달되는 가르침을 일컬어 ‘거룩한 전통’, 곧 성전(聖傳)이라고 한다. 이것이 방치되지 않고 사도직 계승이라는 방법으로 ‘살아 있는 하나님의 계시’가 되었다고 한다. 교황, 그리고 교황과 함께 하는 공의회가 이를 전유(專有), 독점하고 있다고 본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성경과 ‘기록되지 않은 성경’을 모두 진리의 원천이라고 하면서도, 이 두 가지가 병립(竝立)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전통과 성경이 나란히 있지 않고, 전자가 후자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 ‘기록되지 않은 성경(전통)’이 수위(首位)을 차지하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기독교 신앙에 구속력을 가진 전통, 성경, 교황의 교도권(敎導權)은 교차 관계에 있다. 독립적이지 않다고 한다.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난 뒤에 모인 트렌트공의회(1546)는 성경과 전통이 모두 하나님의 계시라고 선언했다. “진리와 규범이 기록된 책들만 아니라 사도들이 그리스도 자신의 입에서 받아들이거나 혹은 사도들에게서 성령의 영감을 받아 손에서 손으로 전달된 기록되지 않은 전승들 안에도 보존되어 있다(제1차 회기, 제1교령, <보편공의회문헌> 3, 663)”고 했다. ‘전통’의 계시를 따라 위경 7권을 구약성경에 포함시켰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성경은 73권이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1870)도 전통의 계시성을 강조했다. “초자연적 계시는 기록된 성경과 기록되지 않은 전통에 담겨 있는데, 이 전통은 그리스도 자신의 입으로부터 나와 사도들에 의해 수용되었거나 성경의 영감에 의해 그 사도들이 손에서 손으로 전수하여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다(앞의 문헌 806)”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계시헌장(1965)’은 복음과 전통을 논하면서 기독교 전체를 묶는 하나의 복음 전통이 있음을 인정한다. “전통과 성경은 밀접히 같이 매여 있고, 서로 공통된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곧 성전과 성경은 하나님의 꼭 같은 샘에서 흘러나오며, … 같은 목적을 향하여 움직이기 때문이다(제9항)”라고 한다. 이것은 세계교회협의회(WCC)가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의 가시적 교회일치를 목적으로 고안한 ‘전통론(1963)’을 일부 수용한 결과이다.

‘계시헌장’은 “오로지 성경으로만 모든 계시 진리에 대한 확실성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제9항,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82조)”라고 한다. “성전(聖傳)과 신구약 성경은 거울과 같아서 하나님을 참 모습 그대로 얼굴을 맞대고 뵈올 수 있을 때까지 지상의 순례하는 교회는 그 안에서 하나님을 관상하며 그분에게서 모든 것을 받고 있다(제7항)”고 한다.

그리고 성경과 전통은 교회 또는 교황의 교도권과 분리할 수 없다고 한다. 기록된 하나님 말씀과 전승되는 ‘하나님 말씀’―전통은 모두 다 하나님의 계시이다. 베드로의 열쇠를 가진 자만이 이것들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열쇠와 교도권은 로마 교회의 수장에게 맡겨져 있다고 한다(계시헌장 제8항,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120조). 로마는 성경의 독립성·완전성·충족성을 부정한다. 성경과 전통과 교도권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한다.

계시의 영역이 하나인가 둘인가 하는 주제는 기독교 신앙의 권위에 해당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성경이 전통의 진행·진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본다. 정경 여부를 판단하는 권한은 전통―성전(聖傳)을 가진 자에게 있다고 본다. 전통의 산물인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고 현실화시키는 데는 전통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전통과 성경을 분리하거나 독립시키면 성경이 갖는 본래의 가치와 생명력을 상실하게 된다고 한다. 성경은 ‘항상 살아 있는 거룩한 전통’ 안에서만 하나님의 말씀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교황무오교리와 직결된 ‘성경과 전통’ 주제는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 사이에 가로놓인 루비콘 강이다. 진리의 원천은 하나인가 둘인가? 16세기 종교개혁자들과 개신교회는 오직 성경만이 교회와 신앙에 구속력이 있다고 믿었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기록인 성경만이 진리의 유일 원천이라고 믿는다. 성령의 직접적인 간섭과 영감 안에서 기록된 성경 66권만이, 신앙과 교리의 최종적인 척도이며 표준이라고 확신한다.

 

 

2. 교황무오교리

교황무오교리는 제1차 바티칸공의회(1870) 문헌 ‘영원한 목자’에 처음 나타난다. 당시의 교황 비오 9세(1846-1878)는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확정행위로 선포할 때, 오류가 없다고 선언했다. “로마 교황이 권위를 가지고 말할 때, 곧 그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목자와 교사로서 자기의 직무를 수행할 때 그는 전(全) 교회가 받아들여야 하는 신앙교리 또는 도덕 문제들을 규정한다. 이때에 교황은 복된 베드로 안에서 약속하신 하나님 때문에 무류하며 결과적으로 로마 교황이 내린 정의들을 변경할 수 없다(Infallibility, The Catholic Encyclopedia VII, 1907, 796)”고 했다. 교황은 우주적 권력을 가진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직책상 완전한 최상의 전권을 가졌고, 믿음과 도덕, 그리고 교리 문제에 대해 오류를 범할 수 없는 존재라고 했다. 교황을 정점으로 피라미드처럼 만들어진 주교단도 무류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의 그르칠 수 없는 교도권 교리를 모든 신자가 굳게 믿어야 할 것”으로 재천명했다(교회헌장 제18조). “교황은 참으로 신앙 안에서 자기 형제들의 힘을 북돋워 주는 사람이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고 목자이며 스승으로서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확정적 행위로 선언할 때에, 교황은 자기 임무에 따라 무오성을 지닌다(제25항)”고 한다.

‘교회헌장’은 교황무오교리가 신성불가침의 진리라고 선언한다. 교황이 결정 선언한 신앙(교리)과 도덕에 관한 것은 바뀔 수 없다. 교회의 승인도 필요하지 않다. 어느 누가 어떠한 이의제기도 할 수 없다. 상소의 대상이 아니다. 교황무오교리는 “하나님의 계시의 위탁이 펼쳐지는 그 만큼 펼쳐진다(가톨릭교회 교리서, 제891조)”. 성경과 전통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교리이다. 변개할 수 없다. 교황이 공적으로 결정·성명·선언한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는 나중의 교황, 공의회가 바꿀 수 없다는 뜻이다.

‘교회헌장’은 주교단도 교황이 지닌 무오성과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교황과 더불어 결정할 때”라는 제한 조건을 붙인다. “교회에 약속된 무류성은 주교단이 베드로의 후계자와 더불어 최고 교도권을 행사할 때에 주교단 안에도 내재한다(제25항)”고 한다.

교황무오교리에 대한 신성불가침 선언은 교황 제국(Papal Monarchy) 건설에 몰입하던 중세기 교황이 선언한 ‘우남상탐(Unam Sanctam, 1302)’을 연상시킨다. 지상에서는 하나의 거룩한 권력(One Holy)만 존재한다. 한 목자 아래에 한 양떼가 있을 뿐이다. 세상 권력은 영적 권력에 의해 심판을 받아야 한다. 영적 권력의 오류는 오직 하나님만이 판단한다고 했다. 교황과 교회의 탐욕스런 세속적 야망을 담은 ‘우남상탐’은 교황 인노센트 3세(1198-1216)가 저지른 신앙과 교리의 오류였다.

예수께서는 로마가 ‘첫 번째 교황’으로 간주하는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이라고 꾸짖었다(마 16:23). 자신의 대속사역 곧 신앙 교리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였다. 교황 바오로 5세(1605-1621)와 우르반 8세(1623-1644)는 천동설이 교회의 해석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갈릴레이 갈릴레오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금서 목록에 올리고, 갈릴레오를 고문하고 종교재판소의 지하 감옥에 가두었다. 교황이 저지른 교리적 오류였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세인들을 고려하여 교황무오교리에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교리를 선포할 때 그르침이 없다(교회헌장 제18조)”는 단서를 붙였다.

교황무오교리의 심각성은 그리스도와 교황을 동격화하고, 나아가 교황, 교황좌, 교황과 주교들로 구성된 교계(敎階)를 신격화, 절대화하는 데 있다.

기독교 전통 가운데는 신빙성이 있는 것들도 있지만(살후 2:15; 고전 11:23; 고전 15:3-11), 그렇지 않은 것들(마 15:2-3, 골 2:8)도 있다. 장로들의 유전인 손 씻는 규례, 할례, 철학, 신화, 민담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기록인 성경과 동격(同格)의 권위를 가졌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하나님은 성경해석을 독점할 권위를 가진 신성불가침의 인물이나 교회를 허락한 적이 없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성경을 해석하는 정확하고 무오한 법칙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새로운 계시 또는 인간의 전통 등 그 무엇도 기독교의 성경 66권에 첨가할 수 없다고 한다(제6조). 로마가톨릭교회가 앞세우는 배타적 교도권이나 ‘거룩한 전통’은 필요하지 않다고 명시한다(제5항).

 

 

3. 역사의 반증

독일 튀빙겐대학교 한스 큉 교수(1929-)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회론과 교황무오교리를 비판하다가 가톨릭 신학교수직을 박탈당했다. 큉은 이 교리가 역사적으로나 성경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했다. 교황, 주교단, 공의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게 보존하고 그릇되지 않게 해석할 수 있는 오류 없는 교도권을 부여받았다는 교리의 증명 불가능성을 입증했다.

큉의 <과연 무오한가?(1970)>는 로마교회의 역사에 나타난 오류들, 교황제도의 폐해, 교황, 공의회, 주교단이 저지른 오류들을 소개한다. 로마가톨릭교회 바깥에서 이 교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안에서도 의심스럽고 모호한 교리로 여겨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교황무오교리의 오류, 곧 ‘교황의 교도직 수행의 오류 없음 교리’의 불합리하고 어두운 면들을 아래와 같이 열거한다(Hans Kung, Infallible?, 1994, 27 이하).

제9세기의 교황 니콜라오 1세(858-867 재위)가 동-서방교회 분열의 책임자로 매도된 포티우스를 파문한 것은 오류이다. 이 파문을 추인한 제4차 콘스탄티노플공의회(869-870)의 결정은 오류이다. 1054년에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미카엘 세룰라리우스를 파문하고 정교회를 일방적으로 정죄한 일도 교회(교황, 공의회, 주교단)의 오류이다.

교회의 교도권을 가진 자들(교황, 주교)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금했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여러 차례 타협을 했다. 이들이 가르침을 바꾼 것도 오류이다. 교황이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를 단죄한 사건은 신앙적 오류이다. 큉은 교회가 인도, 중국, 일본에서 새로운 형태의 예배 형식과 조상제례를 둘러싼 갈등을 비난하고 정죄한 바, 이것은 로마가톨릭 선교를 실패하게 한 큰 규모의 실수였다고 말한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 때까지 로마가 시행한 정죄 또는 출교 결정권은, 교황의 중세기적 지상통치권을 떠받쳐 온 수단이었다. 교회는 20세기 초 성경 각 권 저자들에 대한 비평-역사 방법론을 사용한 신학자들을 정죄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역사와 문학 장르 연구를 단죄했다. 교의학의 현대적 발전에 이바지한 학자들을 처벌했다. 금서 목록을 만들고 내용을 정밀 조사했다. 모두 교황의 그릇된 결정이다. 이 과정에서 신학은 교권을 도왔고, 교권은 신학에 도움을 주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들 가운데 하나가 교황무오교리이다.

교황들이 회칙과 교령을 빌미로 많은 신학자들을 처단한 일은 교황무오교리가 성립 불가함을 반증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13세기에 프랑크 지방 주교관의 문서고에서 850년경에 발견된 ‘이시도리아 법’이라는 위서(僞書)를 가지고 로마교회 주교의 수위권(Supremacy)을 증명하는 데 사용했다. 교황무오교리가 정당화 될 수 없음을 입증한 사건이다. 이 가짜 문서는 교황 수위권에 관한 내용이다. 교황이 홀로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고, 최고의 판단자이며, 교황의 동의 없이는 아무도 주교를 파면할 수 없으며, 전 세계에 권한을 행사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인공 피임법을 불허한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생명(1968)’은 교황무오교리가 성립 불가함을 입증한다. 교황청은 시기를 조절하는 자연적 피임법이 ‘자연법’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허용하면서도, 인공적 수단을 사용하는 피임법은 불허했다. 교황의 가르침은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을 구분하는 바,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스토아주의-고행주의에 바탕을 둔 중세기 발상이며, 성(性)에 대한 인간의 생물학적 책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인의 경험과 사상에 불일치한다. 기독교 진리가 아니라 마니교적 유산이다. 지금부터 약 350년 전의 갈릴레오 정죄 사건의 재현이다.

교황청이 인공 피임금지를 명하면서 이를 교황의 그르칠 수 없는 특별한 직무(magisterium extraordinarium)에 호소하지 않고, 그르칠 수 있는 일상적 직무(magisterium ordinarium)의 권위로 지시한 것도 오류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고 무죄한 자를 살해하는 행위를 잘못이라 가르치는 것은 교회의 특별한 직무에 속한다. 그러나 산아제한 문제는 일상적 직무이다. 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 제25조가 명시하는 주교직의 특별한 직무에 대한 정의와 불일치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은 “각각의 주교들이 무류성의 특권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제25항)”라고 한다. 주교들이 사도들의 계승자라면, 그리고 교황무오교리가 정당하다면, 그들은 개인적으로 그것을 즐기고, 오류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25항은 “베드로의 후계자와 친교의 유대를 보전하면서 신앙과 도덕의 사항들을 유권적으로 가르치는 주교들이 하나의 의견을 확정적으로 고수하여야 할 것으로 합의하는 때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오류 없이 선포하는 것이다”는 진술로 연결된다. 인공적 피임금지가 정당화되려면 자연법이 아니라 하나님 계시의 말씀(성경)에 부합해야 한다. 성경은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사실상 ‘장식 기능의 역할’을 할 뿐이다. 모세오경에 자연법이 포함되어 있다는 논리로 산아제한을 금지한 회칙은 성경이 주장하는 결혼의 존엄성과 불일치한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가 선포한 교황무오교리는 신학적 논의를 거쳐 결정한 것이 아니므로, 신빙성이 없다. 강압적 분위기에서 중세기적 교황 권력에 매력을 느끼며 옛 로마가톨릭교회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열정을 가진 교황 비오 9세가 정치적 동기로 결정했다. 공의회가 모이기 전, 반계몽주의와 반합리주의적 낭만주의 정신을 가진 복고파 운동이 광범위하게 교회와 가톨릭 교회론을 지배하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통치 동안 혼란을 겪은 유럽은 평화와 질서를 바랐고, 정치적·종교적 안정을 유지한 기독교 중세기를 그리워했다. 교황보다 그것을 더 그리워한 사람이 있었겠는가?

당시 로마가톨릭교회 지도자들은 전통주의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성직주의는 반성직주의를 부추겼다. 성직자들은 신학자들의 과학 방법론 도입과 쇄신파 운동에 변증적 자기 방어 자세로 대응했다. 교황무오교리는 이러한 강압적·정치적 풍토에서 만들어졌으며, 교황이 교도직을 잘못 사용한 결과이다.

 

 

4. 성경의 반증

큉은 교황무오교리가 성경이 뒷받침하지 않음을 아래와 같이 서술한다(Hans Kung, Infallible?, 63 이하).

 

첫째, 교황무오교리는 성경이 보증하지 않는다. 교황무오교리는 ‘교황의 그르칠 수 없는 교도직’이라는 가정에 근거해 있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 참석한 교황, 주교들, 신학자들은 성경이 아니라 당대 일반 문화에 적합한 이성적 표본에 따랐다. 로마가톨릭교회도 개신교회처럼 성경을 신앙의 규범으로 여긴다. 그러나 성경이 제공하지 않는 것은 전통―성전(聖傳)이 제공한다고 본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전통을 계시에서 파생된 성경과 동등한 계시 영역으로 간주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성경, 전통, 교도권의 불가분의 관계를 말한다. 공의회는 교회의 갱신을 위한 궁극적인 규범, 수위적 규범(supreme norm)이 무엇인지 논의했고, 새로운 공적 계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고 명시한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와 마찬가지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도 교황무오교리를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았다. 성경적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지도, 밝히지도 않았다.

 

둘째, 교황무오교리는 로마 감독을 포함한 주교들만이 사도직의 계승자들이라는 가정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사도들은 자신들의 무오성을 주장하지 않았다. 사도단이든 사도 개인이든 어떤 형태든 간에, 누구도 오류 불가능성을 말한 바 없다. 사도들은 기본적으로 복음을 설교하는 자로 보냄을 받았다. 그들은 무오성을 선언할 만큼 영웅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들, 연약한 인간, 보배를 가진 질그릇(고후 4:7),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요 15:5)라고 했다.

복음서들은 베드로, 요한, 나머지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 전과 후에도 연약하고, 어리석고, 인간적이며, 실수 많은 사람이라는 특징을 예증(例證)으로 삼고 있다. 베드로는 실수가 많았다. 신속하게 해야 할 사도적 임무 수행(mission)을 지체하게 하는 실수를 범했다. 사도들은 인간 이상이 아니었다. 이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바울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형제들에게 위로와 중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교회의 기초를 놓은 사도들(엡 2:20; 고전 12:28; 계 21:14)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인 의미에서나 직무상으로나 자신들의 무오성을 말한 바 없다. 실수나 오류의 불가능성을 언급한 적이 없다.

 

셋째, 교황무오교리는 로마교회 주교가 사도직의 계승자라는 교리에 기초한 바, 이 주장은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주교들이 사도들의 직접적이고 배타적인 의미의 계승자들이라는 근거가 없다.

 

넷째, 교황은 주교가 교회의 교도직임을 맡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교리는 성경적으로 입증 불가능하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름 받았다. 바울은 사도, 선지자, 교사를 통합하는 단일화 경향을 공박했다(고전 12: 28). 공의회가 교황무오교리를 뒷받침하려고 내세운 성경구절들은 로마가 베드로 교구의 법적 수위권의 근거로 삼는 데 무리하게 사용해 온 본문들이다. 성경은 교황의 수위권(Supremacy)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인용되는 성경구절 가운데 어느 하나도 베드로의 계승자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로마교회의 주교직, 교황직 또는 교황의 무오성을 언급하지 않는다.

성경은 교황무오교리의 근거인 전통―성전(聖傳) 교리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성경은 오로지 복음의 영(靈) 안에서 이루어진 목회와 교도(敎導) 활동의 연속성을 말할 뿐이다. 로마교회의 주교가 아니라 베드로 개인의 영적·카리스마적 사역을 언급한다. 로마가 가지고 있는 문서 중 어느 것도 교황무오성을 말하지 않는다. 로마가톨릭교회 바깥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황무오교리를 확신시킨 로마가톨릭 신학자는 아무도 없다.

큉의 비판을 조리 있게 반박한 신학자는 없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 칼 라너 교수가 “큉이 과연 로마가톨릭교회 신자인지 의심스럽다(Karl Rahner, ‘Kritik an Hans Kung,’ Stimmen der Zeit 1970, 12)”고 궁색한 비난을 한 정도였다. 큉은 신학교수직을 해임당했으나 사제직을 유지하고 있다.

 

 

5. 세계교회협의회의 태도

세계교회협의회(WCC)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전통론과 교황무오교리를 사실상 인정해 준다. 신앙무차별주의와 래티튜디나리안주의(latitudinarianism)를 표방하면서, 한 통 안에 물과 기름을 함께 담으려 한다. ‘오직 성경’ 원리와 기타 중요한 개신교회 신앙의 정박지를 버리고,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회론 교리들을 묵인한다.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 사이에 가로놓인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WCC는 로마와 가시적 교회일치를 꾀할 목적으로 전통론(1963, 몬트리올보고서)을 만들었다. 기독교 전체를 일컫는 ‘전통’을 강조하면서, 성경과 전통이 하나의 샘, 같은 원천에서 흘러나온다고 한다. 하나의 복음 전통(Tradition)에서 성경과 여러 가지 유형의 교회 전통들(traditions)이 나왔다. 계시의 유일의 원천인 하나의 복음전통(Tradition) 또는 기독교 전체로서의 전통에서 성경과 전통들 곧 각 교회, 교회 전통들(traditions)이 유래했다. 새 세대대로 전달되는 복음 그 자체를 의미하는 ‘전통(대문자 T)’과 그 하나의 전통에 대한 교회들의 다양한 표현들을 의미하는 ‘전통들(소문자 t)’은 구분된다.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하나님의 계시의 전통(the Tradition of his revelation)’을 등장시켰고, 거기서 여러 유형의 교회들, 교회 전통들이 파생했다고 한다(WCC, Scripture, Tradition and Traditions, 1963, para.42, 42-63 참고).

WCC 전통론에 따르면, 16세기 종교개혁기로부터 쟁점이 되어 온 성경과 전통의 관계, 그리고 그것에서 발견되는 모순과 불일치는 하나의 주변적인 무엇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진지하게 추구해야 할 과제는 성경 가르침이 아니라 기독교 안의 전통들(소문자 t)과 유일한 복음전통(대문자 T)을 구별하고 이 두 가지의 관련성을 탐색하는 작업이다.

WCC 전통론을 작성한 신앙직제위원회 몬트리올대회는 로마가톨릭교회가 파송한 신학자들을 옵서버로 참가시켰다. 이들은 WCC 전통론 고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계시헌장’은 기존의 두 원천 이론과 달리 전통과 성경이 “동일한 신적 원천에서 솟아나와 … 같은 목적을 지향한다(계시헌장 제9항)”고 말한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과 전통이 하나의 원천―복음전통(대문자 T)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성경과 전통(소문자 t)들이 모두 한 전통(대문자 T)의 산물이라고 한다(계시헌장 제7항). 제1차 바티칸공의회가 ‘전통들’이라는 복수 용어를 사용한 반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전통’이라는 단수용어를 사용했다.

WCC 전통론은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교회라는 인간 제도의 전통(소문자 t)과 대등한 위치에 둠으로써, 특별계시 기록인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킨다. 종교개혁 운동이 강조한 ‘오직 성경’ 원리를 버린다. 성경이 분명히 제시하는 것도 상대적인 무엇으로 해석하게 한다. 로마가톨릭교회와 그 교회의 전통―성전(聖傳)이 유효하다고 인정해 준다. 교황무오교리, 사도직 계승교리, 교황 수위권교리, 계급주의 교회제도, 교황 중심적, 법률적, 패권주의적 전통을 묵인·인정한다. 가경들을 정경에 포함시킴을 비판할 수 없게 한다. 로마가톨릭교회만이 ‘기록되지 않은 성경’을 가졌다는 주장을 묵인한다. 로마가톨릭교회가 성경과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고백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개신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의 복음 안에서의 진정한 하나됨을 방해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WCC에 일부 가담하면서도, 교회 교리를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다. 교황권 권위에 추호의 의구심도 표출하지 않으며, 로마의 교리 규정에서 한 걸음도 양보할 의사가 없다. 로마가 기존의 교리를 양보, 포기하면 교황무오교리가 옳지 않음을 입증하는 격이 된다. 로마가톨릭교회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의 버팀목을 빼버리는 행위가 된다.

 

 

6. 프로테스탄트 정신

교황무오교리 논의의 신학적 핵심 요지는 교회, 교황, 공의회의 결정, 가르침, 교도권 내용이 성경의 가르침에 ‘명백히’ 위배될 때 신자는 이에 항의(protest), 거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로마는 인간인 교황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가두고 신자들에게 무조건 순종할 의무만을 강요한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로마가톨릭교회를 상대로 목숨을 건 혈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까닭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교회, 공의회, 교황이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많은 오류를 범해 왔으며, 성경과 상반되는 결정, 지시, 교리를 공표할 경우 기독인은 교회, 교황, 공의회에 항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교회는 완전하지 않다. 개신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나치독일 치하에서 독일 국가교회는 ‘우상숭배’를 했다. 당대 독일의 유명한 지식인, 신학자, 목사, 지도자들은 앞장서서 ‘히틀러 만세’를 외쳤다. 독일교회는 살인 행진에 열성적으로 동참했다. 일제 말기 한국장로교회도 우상숭배를 행하기로 결정했다.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가 우상숭배를 할 것을 공적으로 결정한 예는 전무후무하다. 교회는 순종하지 않는 신자들을 출교시켰다. 평양노회는 주기철 목사가 교회의 결정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까닭으로 그의 목사직을 파면했다.

예장 고신교단이 가진 교회론적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교회가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성경이 명백하게 가르친 것에 상반되는 교리·고백·실천을 교회가 명했을 때 기독인은 이에 항거(protest)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지식산업사, 2000)>이 상론한다. 네덜란드개혁교회 헌장 제31조는 중세기적 교권과 사악한 교회로부터의 해방 또는 자유(liberation)의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교황무오교리는 인간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교황은 인간이며 신성불가침한 존재가 아니다. 비록 성령이 함께하며 그 안에서 역사하지만, 교회는 인간 집단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교회·교황·공의회는 수많은 오류를 범해왔다. 기독교 역사를 ‘범죄사’로 규정하는 교회사가도 있다. 한때 로마가톨릭교회 신자였던 카를하인츠 데쉬너(K, Deschner)는 자기 일생을 헌신하여 6권의 교회 기독교 범죄사를 저술했다. 기독교회의 역사는 하나님의 승리의 역사이다. 동시에 인간들의 오류·추문·범죄의 역사이기도 하다.

 

 

맺음말과 질문

교황 바오로 2세는 새 천년기가 시작되는 2000년 3월 12일, 바티칸 베드로대교회당에서 ‘용서의 날’ 미사를 집전했다. “기억과 화해: 교회의 과거의 과오들(2000)”을 발표했다. 가톨릭교회가 교회가 죄 없는 사람들을 살육하고, 정복주의 야욕을 채웠으며, 성경적 진리를 신봉하는 자들을 죽인 과거사를 참회했다. 유태인과 무슬림에게 특별한 용서를 구했다. 한글 번역문은 필자의 <양심선언과 역사의식(2000)> 부록에 실려 있다. 바오로 2세의 참회고백은 교황들이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도권 행사에 그릇됨이 많았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도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황무오교리를 변함없이 신봉하고 있다. 모순(矛盾)은 이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어느 교회당 고백실에서 이름 모를 사제에게 무릎을 꿇고 참회고백했다. 자신이 죄인임을 진솔하게 보여주었다.

교황 프란치스코께 묻는다. 역사적으로도, 성경적으로도 증명되지 않는 교황무오교리를 폐기처분한다고 선언하지 않겠는가? ‘전통’을 계시로 여기는 그릇된 교리를 과감히 버리고, 로마가톨릭교회를 성경이 보여주는 초기교회의 모습으로 개혁하지 않겠는가? 로마가톨릭교회와 역사적 개신교회의 일치의 시대를 열지 않겠는가?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기독교사상연구원 원장, 고려신학대학원 교수(198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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