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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메노 시몬스 (Menno Simons, 1496-1561) (네덜란드)

by 【고동엽】 2021. 11. 13.
메노 시몬스는 1496(혹은 1497년) 년경에 북부 네덜란드의 프리슬랜트(Friesland)에서 태어났다. 1524년에 그는 사제가 되엇으나 오랜 전부터 화체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때에 그는 성경으로 돌아왔고 로마 카톨릭의 가르침이 거짓되다는 것을 결론짓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의 직무를 그대로 감당했다. 얼마 후에 그는 근처에서 일어난 재침례파 사람들의 순교 소식을 접해 들었다.


"재침례라는 말을 듣는 것이 내게는 생소한 것으로 여겨졌다. 나는 성경의 각 책을 부지런히 살피고 정직하게 그것들을 숙고했으나 유아 세례에 관한 기사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초대 교부와 개혁자들에게로 눈을 돌렸으나 유아 세례에 대한 시종 여일한 변증을 찾지 못했다. 그는 결론내기를 "우리는 유아 세례에 관하여 속았었구나"라고 하였으나, 그것에 관하여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이 때까지 그는 재침례파 사람들과 아무런 직접적인 접촉도 가진 적이 없었다.


1534년에 뮌스터(Munster)시가 거친 혁명적 재침례파 사람들에 의하여 점령되엇다. 그들은 그 도시를 요한계시록에 예언되어 있는 새 예루살렘으로 보았다. 그들은 구약의 증거를 들어 일부 다처제를 소개하였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는 연합하여 그 도시를 포위 공격하여, 1535년에 성을 탈환하고 재침례파에 대한 대학살이 감행되엇다. 이 사건은 혁명적 재침례파는 종국을 고하게 되고, 오히려 평화 지상주의적 복음적 재침례파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메노 시몬스는 뮌스터 사건의 결말과 지도자가 없이 흩어진 재침례파 교도들의 박해를 보았다. 그는 로마와의 외적 일치의 위선적 삶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는 그가 믿는 바를 공개적으로 전파하기 시작하였고, 그후 9개월이 지난 1536년에 유랑하는 재침례파 전도자가 되려고 고향을 떠났다. 그는 18년동안 여행하던 끝에 1554년 북부 독일의 홀스타인(Holstein)에 있는 어느 귀족의 자택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죽기까지 평화롭게 글을 쓰며 그곳에서 지낼 수 있었다.


메노는 네덜란드와 독일 북서 지방의 재침례파 운동의 지도자가 되엇다. 그는 자체의 지도자를 갖는 독립 회중파를 구성했다. 곧 이어 그의 추종자들은 메노나잇파(Mennoniter)로 알려지게 되엇다. 그 운동은 비교적 관대한 네덜란드에서 성장했다. 18세기에 메노나잇파는 캐터린 대제의 초청으로 러시아에까지 파급되었다. 현재는 약 70만의 메노나잇 교도들이 미국과 캐나다에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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